강명기도 옆에 서서 그들 두 사람이 날카롭게 대립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성연은 그를 흘깃 쳐다보았다.강명기는 키가 크고 말랐는데, 보기에는 아주 준수하고 기질이 아주 속되지는 않았다.그러나 은근히 비호감을 느끼게 했다.감히 다가갈 수 없는 느낌이다.강명기는 무진과 성연이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성연에게 시선을 준 다음 턱을 들고 경멸하는 눈빛을 보였다.이런 모습은 순전히 업신여기는 것이다.강명기는 그녀를 힐끗 쳐다본 후에야 무진에게 물었다.“무진아, 이 사람은 누구냐?”무진이 바로 대답했다.“제 약혼녀, 송성연입니다.”성연도 자신이 해야 할 예의를 다했다.“안녕하세요.”강명기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지 않았다.그리고 나서 그는 다른 쪽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아이고, 정말 세상은 여전한데 사람은 달라졌어. 나이도 많은 두 노인이 또 감옥에 갇힐 줄은 몰랐어.”그는 무진을 보면서 계속 말했다.“우리 강씨 가문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강명기는 강일헌보다 훨씬 똑똑했다.윗사람으로 무진을 눌러도 무진은 절대 두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그리고 두 노인을 구해내려면 반드시 무진이 입을 다물어야 했다.그들의 이번 목적도 무진인 것이다.분노 때문에 순식간에 표정이 굳어졌다.강일헌과 강진성의 눈빛에는 모두 조롱이 섞여 있었다.마치 후원자를 찾은 것 같았다.무진의 눈을 바라보며 비웃기도 했다.무진도 그들처럼 어린 사람들 앞에서 횡포를 부릴 수밖에 없다.‘어른들 앞에서는 역시 강아지처럼 찌질하잖아.’‘특히 강명기처럼 신분이 높은 어른 앞에서는 더 찍소리도 못하겠지?’‘게다가, 두 노인을 감옥에 가게 한 건 본래 무진이가 잘못한 거야.’그들도 무진의 체면을 세워줄 필요가 없다.이번에 본가에 온 것도 처음이다.앞으로 강명기와 강명재가 돌아오고 무진이 편할 때가 있다.무진은 너무 많이 반응하지 않았다.이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 무진은 마음속으로 아주 분명했다.‘만약 조급해한다면, 그들이 목적을 달성하게
무진은 곧장 성연을 데리고 고택으로 들어갔다.강명재와 강명기는 옆의 사람들과 바쁘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사람들이 그들 옆을 에워싼 채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두 사람이 돌아와서 너무 좋구나. 지금 강씨 집안 꼴이 말이 아니야.”“맞습니다. 지금 강씨 집안은 체면도 아예 신경 쓰지 않아. 윗사람이 아랫사람들에게 뭐라 말도 못해. 지위가 높다고 우리 어른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 치들도 있어.”“그래, 이제 너희들이 돌아왔으니 강씨 집안이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의 강씨 집안은 정말 제멋대로야. 예전의 대동단결하던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원.” 사람들은 말하는 음성을 낮추지도 않았다.암암리에 모두 무진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강명재와 강명기는 그 옆에 서서 막지도 않았다.두 사람은 눈썹을 치켜 세웠다.과연 자신들이 떠나 있었던 시간이 얼마이든 간에 이들에 대한 영향력은 여전했다.아니, 지금 자신들이 돌아오니 무진은 신경도 쓰지 않는 사람들이다.강명재가 그제서야 여유롭게 말을 받았다.“지금의 강씨 가문은 비록 지위가 다소 상승하고 회사도 괜찮다 해도 가족들 사이의 관계가 확실히 좋질 않습니다. 가족들 간의 관계는 잘 유지해야 하지요. 우리 강씨 가문이 가족들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까? 모두 한 가족인데 너와 나를 나눌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지금 이 자리에 많은 강씨 집안 방계 혈족들이 와 있었다.이 사람들은 모두 무진에게 경고를 받은 적이 있었다.지금 무진이 그룹 경영을 맡은 이후에 회사는 확실히 괜찮았다.그러나 자신들 수중의 권리는 엄청나게 축소되었다.무진이 설마 혼자 독식하려는 것은 아니겠지?자신들 방계 혈족은 아무런 공적도, 수고도 없으니 자연히 불만이었다.돈이 적게 들어오면 누구나 불만을 가지게 된다.이때 강명재가 자신들을 대변하듯이 불만의 목소리를 내니 따라서 목소리를 키우는 이들이 나왔다.“맞다. 회사도 잘 관리해야 하지만 가족들 관계도 잘 유지해야 해. 걸핏하면 여기저기 뜯
고택의 홀로 성연이 들어가니 안금여와 강운경의 안색이 매우 나빠 보였다.성연을 보는 순간 안색이 좀 누그러진 안금여가 성연을 불렀다.“성연아, 이리 오너라.”성연은 안금여의 곁으로 다가갔다.안금여가 한탄하듯이 말했다.“무진아, 여기가 이런 상황일 줄 알면서도 왜 성연일 여기로 데려온 거니?”강씨 집안의 일은 정말 너무 복잡해서 성연까지 끌어들여 힘들게 하고 싶지 않은 안금여다.‘별로 좋은 일도 아닌 것을.’“제가 무진 씨 따라오겠다고 한 거니 야단치지 마세요.” 성연은 할머니 안금여가 자신을 생각해서 그런다는 것을 잘 알았다.그러나 스스로 원해서 왔으니 무진을 탓할 수 없다.성연이 무진을 편들어 말하자 안금여는 비로소 무진을 바라보았다.“저 사람들이 너를 난처하게 하지는 않았어?”저 두 어른 모두 좋은 이들이 아니었다.바깥의 동정은 안금여와 강운경의 귀에도 들렸다.‘이렇게 요란스럽게 만들어 무진의 체면을 깍으려는 게지.’저들이 어떻든 상관없지만, 무진이 저들에게 억울함을 당할까 봐 걱정되었다.속이 깊은 무진은 자신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안금여가 가장 염려스러운 사람이 바로 저들이었다.무진이 고개를 저으며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저 두 사람 당분간 그럴 여력이 없을 겁니다.”만약 저들이 자신에게 맞설 방법이 있었다면, 일부러 사람들을 몰고 이곳에 와서 위세를 떨지 않았을 것이다.당장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안금여가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어딜 감히 건방지게! 애초에 네 할아버지가 인자하고 마음이 약하지만 않았더라면 저들을 10년, 20년 못 들어오게 했을 텐데. 지금 돌아오자마자 우리 앞에서 위세를 떨다니, 애초에 자신들이 벌인 짓을 잊은 게야!”저들이 한 짓을 생각하면, 애초에 무진의 할아버지 강상중은 저들에게 인의를 다한 셈이다.가족들은 저들을 더 오래 쫓아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영감이 사람들의 뜻을 물리치고 6년만 유배를 보낸 거였다.결국에는 지금 돌아와서 은혜를
무진과 성연은 안금여와 강운경을 따라 홀을 나와 정원으로 향했다.강명재와 강명기는 오늘 안금여를 겨누고 찾아왔다.그러니 당연히 최선을 다해 맞서야 한다.안금여를 본 두 사람이 연달아 앞으로 나오며 인사했다.“큰 어머님, 얼마 전에 사고가 날 뻔했다고 들었는데 괜찮으세요?”안금여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괜찮다. 일이 생겼으면 너희들도 볼 수 없었겠지.”“명수, 명호가 철이 없었습니다.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가 걱정된 마음에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한 모양입니다. 안 그렇습니까?”강명재는 자기 동생 얘기를 하면서 저들의 죄를 가볍게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자기 아버지가 걱정돼서 한 짓이란다.‘이렇게 내 앞에서 선수를 쳐?’안금여가 어찌 강명재의 말에 숨은 뜻을 못 알아들었겠는가?안금여가 바로 받아서 말했다.“그럼, 너희 아버지들은 어른이고, 나는 아니란 말이냐? 저들이 그런 짓을 벌인 것이 인지상정이라고?”안금여의 말에는 비아냥거림이 다분했고 강명재를 향한 냉소가 담겨 있었다.안금여가 이런 말로 반격할 줄은 몰랐던 강명재는 좀 멍해졌다.그러나 그가 어떤 사람인가. 바로 정신을 차린 후에 웃으며 말했다.“큰 어머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두 동생이 어리고 철이 없어서 충동적으로 한 짓이잖습니까? 어른으로서 이해해 주셔야지요.”이 허울 좋은 말에 하마터면 기가 차서 웃음이 터질 뻔한 안금여.지금 저들은 이치에도 맞지 않은 걸 알면서도 큰 죄를 작게 하려고 기를 쓰는 거였다.강명재는 정말 상대하기 어려운 인물이다.안금여는 한쪽에 선 채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그녀는 이미 말과 행동으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고 강명재의 말에 동의하지 않음을 나타냈다.옆에 있던 강명기는 더 과장했다.안금여를 보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입을 열었다.“큰 어머님, 우리 두 사람 몇 년 동안 못 보셨잖습니까? 많이 뵙고 싶었습니다. 큰 어머님은 여전히 예전처럼 정정해 보이시네요.”안금여가 강명기를 흘깃 쳐다보았다.지금은 아직 정정하다 해도 저들에
안금여의 말에는 아랑곳 없이 강명재와 강명기는 사람들을 돌려보내지 않았다.이처럼 사람들을 불러모아 자신들의 영향력을 과시하며 큰집에 본때를 보여주는 것이 오늘 자신들이 고택을 찾은 목적이 아닌가.그러니 그리 쉽게 사람들을 철수시킬 수야 없지.본가인 큰집에 선전포고를 하기 위해 북성에 돌아온 자신들인데 큰어머니가 가란다고 가겠느냐 말이다.정말 자신들을 뭘로 생각하는 건지.강명재와 강명기, 두 사람 역시 입을 다문 채 침묵으로 자신들의 태도를 표시했다.당연히 두 사람이 불러낸 사람들 또한 떠나지 않은 채 고택의 정원에 모여있었다.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무진과 성연의 시선이 서로 마주쳤다.이 두 오촌 아저씨들은 ‘사열식’같은 모습으로 자신들의 실력을 과시하고 있었다.이만큼의 사람들을 불러모을 만큼 자신들의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걸 보여주며 무진의 기를 꺽으려는 게 분명했다.무진이 심리적 압박감을 크게 느낄수록 자연히 자신들의 아버지 강상철, 강상규를 풀어주게 될 거라는 계산으로.그러나 무진을 비롯한 큰집 쪽 사람들이 저들 생각처럼 쉬이 타협할 리는 없는 법.모인 사람들 속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무진의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 다 아는 인물들이다.그룹의 지분을 가진 방계 혈족들도 보이고, 중소 계열사의 경영진들이 많이 보였다.주요 계열사 쪽은 드물긴 하지만 없지는 않았다.그렇다 한들 또 어쩌겠는가?어쨌든 지금 그룹을 경영하고 있는 이는 강무진이다.저들이 그룹 경영에 조금이라도 손 대지 못하게 하리라 다시 한번 다짐했다.성연과 무진도 서로 손을 맞잡은 채 안금여를 따라 고택 현관 안으로 들어갔다.응접실에는 차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집안의 가장 큰 어른인 안금여가 당연히 제일 상석에 앉았다.강명재와 강명기는 안금여의 오른쪽 편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무진과 성연은 자연히 저들의 맞은편, 안금여의 왼쪽 소파에 앉았다.모두 자리에 앉자 강명재와 강명기가 바로 안금여에게 따지기 시작했다.강명재가 먼저 입을 열었다.“큰어머님, 요 근래 강씨
그 순간, 강명재와 강명기의 얼굴이 말할 수 없이 어두워졌다.잠시 침묵이 흘렀다.성연은 수시로 두 사람의 표정을 관찰했다.마치 소리 없는 전쟁터 같았다. 각자에게서 뿜어져 나온 기운이 서로 격렬하게 부딪히며 싸우는 듯하다. 옆에 있던 강일헌과 강진성의 기운도 조금 전보다 강해졌다.아마도 자신들의 아버지라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어서인지, 두 사람의 기세 매서워졌다. 그리고 무진을 바라보는 시선에 경멸의 빛을 품고 있었다.안금여는 한참을 망설이다 강명재와 강명기에게 말했다.“너희들 얘기는 내가 고려해 보겠다. 원래는 멀리서 돌아온 너희를 위해 환영 만찬이라도 열어주어야겠지만, 지금 내 몸이 좋지 못해 그냥 넘어가는 걸 너희가 이해하려무나.”두 사람의 생각을 꿰뚫고 있는 안금여다.저들의 말에 수긍하는 모습을 보인 까닭은 일단 두 사람을 달래서 보내기 위해서였을 뿐이다.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두 사람의 성격으로 봐서 만약 자신이 별말 하지 않는다면 무슨 꼬장을 부릴지 알 수 없다.두 사람을 바라보는 내내 어찌나 눈에 거슬리는지 안금여는 온몸이 쑤시고 아픈 듯하다.역시 강상철, 강상규의 자식들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못살게 들쑤시는 공력이 제 아버지들 버금갔다.꼴 보기 싫어 죽겠건만 기어코 저들을 대면해야 하는 점이 가장 괴롭다. 무진이 두 사람을 향해 다시 목소리를 내었다.“두 분 모르시나 본데, 밖의 저 소규모 계열사 사장들이 무슨 능력이 있겠습니까? 우리 강씨 집안에서 보자면 쥐뿔도 없는 치들이 이리 몰려와서는 망신만 당할 뿐이죠.”저들이 이렇게 시위할 생각이라면 무진 또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할 필요가 있다.자신은 저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저 작은 계열사 사장들 백 명, 천 명이 와도 결과는 같다.무진에게는 어떤 위협도 될 수 없다.저 밖에 서 있는 강씨 가문의 방계 혈족 중, 일부는 예전부터 강상철, 강상규를 따르던 자들이다.저들의 힘은 예전보다 약해져 크지 않았다.무진이 자신들의 면전에서 이런 말을 하자 강명
오늘 있었던 일 때문에 성연과 무진은 엠파이어 하우스로 돌아가지 않고 고택에 남아 할머니 안금여와 고모 강운경 곁을 지켰다.젊은 자신들이야 문제없지만, 연로한 할머니 안금여 회장이 저들을 상대하며 마음 상한 것을 생각하니 속이 상한다.강명재와 강명기, 두 사람은 정말 양심이란 게 있는지 모르겠다.저녁 식사를 마치고 침실로 돌아간 성연과 무진.오늘 고택에서 벌어진 상황을 생각하자 성연은 분노가 치밀었다.“아니, 당숙 두 분 너무 무례하지 않아요? 자신들이 아주 대단하다고 생각하나? 그래도 여기는 강씨 본가 고택인데, 여기까지 와서 소란을 피우며 할머니를 몰아세우다니. 자기들도 체면 깍이는 건 싫어하면서!”저들이 위세를 부리던 모습이 떠오른 성연의 눈에 불이 붙는 것 같았다.만약 이 일로 할머니의 건강이 나빠지기라도 한다면 저들 목숨 몇으로도 배상하지 못할 것이다.무진이 입가에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둘째, 셋째 일가 사람들은 늘 그랬어. 저들에게 도덕이니 양심이니 이런 것들은 말해도 소용없어.”저들도 낯짝이 있다면, 작정한 듯이 저 많은 사람을 끌고 와서 본가를 곤란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다들 한 가족, 한 가족이라고 말들 하지만, 도대체 누가 누구와 한 가족이고 또 누가 누구와 적인지, 저들이 그걸 모른단 말인가.“앞으로 저들 때문에 할머니가 힘드시지 않도록 잘 지켜드려야 해요.” 할머니 안금여는 이미 연로한 나이이니 이런 일들은 자연히 손아래 젊은 세대인 자신들이 상대해야 하는 게 맞다.안금여 같은 노인이 걱정하게 할 수는 없는 법 아니겠는가?“그건 맞아. 하지만 우리 강씨 집안 일에 너까지 끌어들인 셈이야. 넌 우리 때문에 너까지 힘들어졌다는 생각은 안 들어?” 강씨 집안에서 벌어진 일로 성연이 이런 번거로운 상황에 처했다고 생각한 무진이 성연에게 물었다.만약 성연이 강씨 집안에 오지 않았다면 이런 힘든 일들은 겪지 않아도 되었을 테니까.“어떻게 그래요? 그런 생각 해 본 적 없어요. 할머니가 평소 저한테 얼마나 잘해 주
성연의 반응이 빨랐다. 얼른 안금여를 부축해서 자신의 침실로 모셨다.할머니 안금여를 침대에 눕힌 뒤에 이불을 꼼꼼히 덮어드렸다.이 모든 과정을 끝낸 후에 성연은 강운경에게 말했다.“고모, 할머니 몸을 좀 닦아드려야 할 텐데, 따뜻한 물 좀 받아 주실래요?”반대쪽에 서 있던 무진이 다급히 응급 콜을 불렀다.성연이 주위를 둘러보니 강운경과 무진 모두 바삐 움직이느라 성연 쪽에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주머니에서 천천히 은침을 꺼낸 성연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안금여에게 시침했다.성연의 동작은 아주 가볍고 민첩했다. 맥을 짚은 후 증상을 살핀 후에 안금여의 혈 자리에 침을 찔러 넣었다.지금 침은 겨우 보조적인 작용을 할 뿐이지만 발작 상태의 안금여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침을 맞은 안금여의 몸이 서서히 이완되어 갔다.하지만 두 눈은 여전히 꼭 감긴 채였다.입에서도 더 이상 이상한 말을 뱉지 않았다.안금여의 상태를 지켜보던 성연이 눈살을 찡그렸다.조금 전 안금여가 보인 모습은 극도의 공포상태에서 대뇌가 혼란을 일으켰을 때 나타나는 증세였다. 제대로 버텨내지 못할 시에는 정신착란이나 발광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그래서 성연은 일단 침을 놓아 할머니 안금여를 잠시 진정시킨 후에 잠을 재웠다.그렇지 않았으면 할머니의 증세는 곧 더 이상 통제가 되지 않는 방향으로 발전했을 터였다.할머니를 진정시키자 무진이 침대 옆으로 다가왔다.침대에 얌전히 누운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무진은 또 다시 가슴이 철렁했다.“할머니가 왜 갑자기 조용해지신 거지? 기절하신 건가?”성연이 침을 놓았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무진은 할머니에게 또 다른 문제가 생긴 건 아닌가 싶어 걱정이 앞섰다.“별일 없을 거예요. 잠이 드신 거예요.” 조금 전 맥을 짚어 본 성연은 안금여의 몸 상태가 그리 나쁜 편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견뎌 내실 거야.’그때 강운경이 따뜻한 물을 준비해 왔다.조금 전까지 흥분 상태였던 안금여의 이마는 온통 땀투성이였다.강운경이 따뜻한
식사를 마치자 종업원이 디저트를 가지고 왔다.네 사람은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래함은 줄곧 유채연의 손을 꽉 잡은 채 놓으려 하지 않았다.유채연은 처음에는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사랑을 과시하는 것이 정말 쑥스러워서 손을 빼려고 했다.그러나 나중에는 정말 그래함을 말릴 수가 없어서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사형,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외국으로 나갈 거예요?” 성연은 그래함의 기초가 해외에 있으니까 결국 출국할 거라고 생각했다.‘다만 채연 언니가 좀 걱정이야.’‘지금 국내에서의 차이에도 아직 적응하지 못했는데, 만약 외국에 간다면 틀림없이 더 힘들 거야.’해외라는 말을 듣자 유채연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래함, 우리 해외로 가야 해?”유채연은 시종 열등감에 빠져 있었다.그래함이 하는 일에 대해서 자신은 조금도 알지 못했다.그래함이 외국에서 유학했다는 것만 알고 있어서, 이제는 돌아왔으니 다시 해외로 나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유채연이 눈썹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 그래함은 유채연이 내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그래함도 유채연이 즉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채연아, 해외로 한 번은 나가야 해.” 해외야말로 그래함이 있어야 할 곳으로 더욱 편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하지만 나는 영어도 할 줄 모르는데, 해외로 나가면 나는 어떻게 해?” 유채연의 눈에는 곧 출국하게 될 긴장과 당황스러움이 담겨 있었다.‘국내에서는 그래도 다른 사람과 교류라도 할 수 있지만, 출국한다면 비행기 티켓도 못 살 거야.’“채연아, 아직 얘기 안 끝났어. 내가 너하고 여행을 갈 거야. 우리 먼저 국내부터 시작하는 게 어때?” 그래함이 유채연을 보고 말했다.유채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행하는 거라면 가도 괜찮겠지.’‘그런데...’“일은 안 해도 돼? 일이 바쁘지는 않아?”유채연은 자신 때문에 그래함이 지체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괜찮아. 내가 귀국했을 때 챙겨놓고 왔어. 다른 사람이 처리하니
무진과 성연은 잠시 낮잠에 빠져들었다.저녁이 되자 무진이 예약한 곳으로 가서 그래함과 유채연과 함께 밥을 먹었다.유채연을 본 무진은 정말 미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예쁜 여자들도 많지만.’‘세상 물정을 모르는 그런 단순함은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지.’‘그래서 그래함이 좋아했구나.’무진은 유채연이 수줍게 그래함의 뒤에 숨어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이 먼저 유채연에게 인사를 했다.“유채연 씨, 안녕하세요, 저는 성연이 약혼자인 강무진입니다.”유채연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안녕하세요.”요리가 곧 나오자 무진이 말했다.“채연 언니, 사양하지 마시고 드시고 싶은 대로 드세요. 모두 친구인데 너무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지요.”성연도 웃으면서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언니. 이 집의 생선 요리는 정말 잘 해요. 비린내도 하나도 없는 데다가 아주 신선해요. 빨리 먹어봐요.”말을 하면서 유채연의 접시에 듬뿍 집어 주었다.유채연은 약간 머뭇거렸다.이제야 자신과 그래함과의 차이를 실감한 것이다.이전에 자신은 넘볼 수 없었던 곳을 그래함은 마음대로 도달할 수 있었다.게다가 유채연은 이런 고급 식당에서 밥을 먹은 적이 없어서 다소 불편했다.거의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집어주는 대로 먹었다.‘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뜨기처럼 행동하면 그래함이 망신을 당하겠지.’그래함은 유채연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스테이크를 썰어 유채연의 앞에 주면서 말했다.“당신이 낯선 음식을 잘 먹지 못할까 봐 완전히 익힌 걸로 시켰어. 입맛에 맞는지 먹어봐.”유채연은 다 익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예전엔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다 먹었는데, 이렇게 비싼 음식은 말할 것도 없어.’고개를 숙이고 먹으려고 할 때, 그래함이 휴지로 유채연의 입을 닦아주면서 낮은 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만약 먹기 싫으면, 먹지 말고 그냥 놔두고 다른 걸 먹어.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어. 나는 단지 당신이 즐겁게 식사하길 바랄 뿐이야.”그래함이
‘그래함과 무진 씨 사이는 썩 괜찮은 것 같아.’성연은 두 사람이 언제 번호를 교환했는지도 몰랐다.‘그런데 사형이 전화를 받는 속도가 꽤 빨랐어.’성연은 궁금해하며 물었다.“사형하고 채연 언니는 뭐하고 있대요?”‘채연 언니가 멀미를 했으니까, 사형도 당연히 언니하고 같이 쉬고 있었을 텐데.’‘전화를 그렇게 빨리 받을 수가 없어.’그래서 성연은 약간 궁금해졌다.“두 사람이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맞혀 봐?” “뭐 먹고 있었나...?” 성연이 머뭇거리며 답을 말했다.“두 사람은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도 서둘러야 하지 않겠어?”성연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면서 얼굴을 가렸다.‘사형하고 언니는 대낮인데도...’‘하필이면 무진 씨가 들었어.’‘하지만 두 사람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 호텔에는 방해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바로 불이 붙은 거야.’‘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것도 정상일 거야.’말을 하던 무진이 성연에게 바로 키스를 했다.무진의 키스를 받은 성연은 숨을 헐떡이며 무진의 품에 안겨 있을 수밖에 없었다.무진의 동작은 갈수록 대담해졌다.성연의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너무 조급하게 그러지 말아요.”‘여긴 집무실이라서 언제든지 사람들이 들어올 거야.’‘문을 잠그더라도 누군가 보고하러 문을 두드릴 거야.’성연은 아직 이런 정도로 개방적이지는 않았다.그리고 아이를 만드는 것도 조급해하지 않았다.‘적어도 결혼식 후에 생각해야지.’‘나는 아직 그렇게 젊은데, 아이가 생기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해.’‘생각만 해도 정말 귀찮아.’“안 돼,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성연이 사무실에서 그러는 걸 원하지 않는 이상, 무진도 개의치 않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그곳이라면 조용하고 공간도 넓어서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거야.’“무진 씨, 좀 진정해요...”성연은 얼굴을 붉히며 무진의 가슴을 밀어냈다.‘무진 씨는 정말 갈수록 대담해져.’‘누가 강무진을 금욕주의자라고 했어?’‘나를 잡아먹으려고 눈이 벌개져 있는데, 그런
무진은 전례 없이 빠른 발걸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섰다.문을 열고 성연의 뒷모습이 보이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곧장 달려가서 성연을 백허그로 안았다.고개를 돌린 성연이 무진을 향해 미소를 지으면서 키스를 날렸다.무진은 키스를 잠시 중단하고 대표실 문을 잠궜다.이어서 성연에게는 숨막히고 공격적인 키스가 기다리고 있었다.무진의 손도 슬슬 위험 수위를 넘나들기 시작했다.점점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성연도 빨갛게 뺨이 달아올랐지만 무진의 손을 잡고 막았다.“지금은 회사라서 안 돼요.”성연이 불편한 듯한 모습을 보이자, 계속해서 진도를 나가려던 무진은 마음속의 욕망을 억지로 눌러야 했다.그리고 성연을 품에 꼭 안았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무진의 마음이 비로소 진정되었다.성연을 껴안은 채 소파에 앉았다.그리고 나서야 성연에게 그래함의 일에 대해 물었다.“어떻게 됐어?”성연은 그래함과 유채연의 일을 간단하게 말해주었다.그전의 우여곡절들은 많이 생략했지만, 그래도 핵심적인 내용들은 거의 다 말했다.이야기를 듣고 난 무진은 큰 충격을 받았다.‘그래함이 그렇게 다정한 남자인 줄 몰랐네.’‘그래함의 권력과 지위라면 어떤 여자인들 얻지 못하겠어?’‘줄곧 고향의 연인만을 애타게 기다렸다니.’무진의 생각이 지나치다고 탓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그러나 내가 성연과 함께 있을 때 성연의 신분도 그리 대단하지 않았어.’‘감정이란 건 아무것도 보지 않고 오로지 느낌만 따라야 해.’무진은 유채연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좀 궁금해졌다.‘그래함 같은 대단한 남자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라니.’“무진 씨도 믿기지 않지요?” 성연이 고개를 들면서 물었다.“그래.” 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좀 믿기 힘든 일이야.’“이전에 사형이 채연 언니를 찾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더 믿을 수가 없었어요. 나중에 사형이 예전에 채연 언니가 자신에게 준 증표를 여전히 가지고 있었고, 채연 언니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걸
북성에 도착하자 그래함은 유채연을 데리고 최고급 호텔을 체크인했다.뒤에서 그들의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고 있던 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무진이 생각났다.‘나도도 약혼녀가 있는 사람이야. 뭐.’‘요 며칠 사형과 채연 언니가 애정을 과시하는 것만 바라보았지.’유채연과 그래함도 성연을 잊지 않았다.유채연이 물었다.“성연아, 너 우선 우리 호텔로 가서 쉬지 않을래? 차를 그렇게 오래 탔는데 힘들었잖아.”유채연은 멀미가 나서 창백한 표정으로 그래함의 품에 기대고 있었다.“됐어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두 사람의 세계를 방해할 수 있겠어요? 저는 먼저 갈게요.” 성연은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며 혼자 차를 타고 떠났다.유채연은 성연이 떠나는 방향을 보면서 걱정했다.“성연이 걔가 갈 곳이 있어? 시간도 늦었는데 여자가 밖에 있으면 얼마나 위험해.”“특히 이런 대도시에서는.”그래함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채연아, 성연이는 이곳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너 잊었어? 전에 내가 너한테 말했잖아. 성연이에게는 아주 대단한 약혼자가 있다는 거 말이야.”유채연은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성연에 대해서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그래서 약혼자를 찾아간 거야?”“그래, 걱정하지 마. 지금 멀미하지? 힘들면 내가 밖에 나가서 약 좀 사올까?” 그래함은 유채연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유채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좀 자면 돼.”“그럼 그렇게 해.” 그래함도 마음 놓고 유채연을 혼자 둘 수 없었다.‘처음 이곳에 왔는데, 내가 채연이 곁에 없다면 채연이가 불안해할 가능성이 높아.’한편 성연은 바로 무진을 찾아갔다.그러나 자신이 돌아온 걸로 무진에게 서프라이즈 선물을 주려고 무진에게는 말하지 않았다.성연은 예전에 지문을 입력해 놓아서, 보고 없이 바로 최고층까지 갈 수 있었다.요 며칠 동안 무진을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이제 곧 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설레는 듯했다.성연이 집무실 입구에 도
외삼촌은 다가가서 무릎을 꿇은 두 사람을 부축했다.여전히 울고 있던 유채연이 일어나자, 그래함이 어깨를 감싸고 위로했다.“얼른 가거라.” 외삼촌도 울먹이는 목소리였고, 두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그래함은 외삼촌을 한 번 본 뒤 유채연이 차에 타도록 부축해 주었다.유채연은 외삼촌을 애틋하게 바라보았다.성연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외삼촌이 몸을 돌릴 때 눈물이 땅에 떨어지는 걸 봤지만, 유채연이 걱정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성연이 옆에서 따라서 소리쳤다.“외삼촌, 제가 채연 언니하고 자주 돌아올 게요. 저는 외삼촌 가게 하드가 좋아요.”그제야 서둘러 눈물을 닦은 외삼촌이 몸을 돌려서 말했다. “그래, 너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마.”차가 천천히 시동을 걸자, 창밖의 장면도 빠르게 바뀌었다.차에 앉아서도 유채연은 여전히 훌쩍거렸다.그래함은 유채연을 꼭 안고 자신의 품에 기대게 했다.“채연아, 외삼촌이 보고싶으면 앞으로 자주 돌아와서 볼 수 있어. 내가 같이 올게.”“정말?” 그래함을 바라보는 유채연의 눈은 마치 토끼의 눈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물론이지, 네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내가 다 해 줄게.” 예전에는 그래함도 뭘 해도 혼자였다.하지만 이제 유채연이 있으니 모두 달라졌다.그래함은 틀림없이 유채연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이다.어쩌면 유채연을 위해 정말 국내로 이주할 수도.“그런데 내가 없는데 외삼촌은 어떡하지? 자기 몸을 잘 추스릴까?” ‘예전에는 집안의 모든 일을 내가 책임졌지.’‘지금 내가 떠났으니 외삼촌은 잘 수습할 수 있을지 몰라.’성연은 조수석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성연은 일부러 그 자리에 앉아서 유채연과 그래함에게 공간을 내주었다.그 말을 듣고 성연이 웃으며 말했다.“채연 언니, 외삼촌은 마음이 그렇게 섬세한 분이니까 잘 지낼 수 있을 거예요.”떠날 때 그래함은 외삼촌에게 체크카드를 남겨 두었다. 비밀번호도 쪽지에 써 두었다. 그 돈이면 외삼촌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평생 편안하게
이런 유채연의 모습을 보고 외삼촌은 또 한바탕 잔소리를 했다.“정말 재수 없게 징징거리고 있지. 꼴이 그게 뭐야? 나는 상관하지 말고 빨리 가. 나한테 돈도 있고 차도 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는 말할 것도 없어. 너는 나한테 짐만 될 뿐이야!”유채연은 외삼촌이 어떤 마음인지 알고 있었다.대부분 외삼촌은 그저 입으로만 모질게 굴었을 뿐이다.사실 자신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애초에 집에 그렇게 많은 일이 생기자 친척들마다 모두 양보하면서 피했다.외삼촌만 자신을 받아들이기를 원했다.모두들 유채연이 흉악한 외삼촌을 따라가면 틀림없이 좋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그러나 그동안 삶의 질이 좀 떨어진 걸 제외하면, 외삼촌은 진심으로 자신을 보호해 주었다.가게에 온 손님 중에 간혹 유채연의 예쁜 모습을 보고 희롱하려고 했지만, 모두 외삼촌에게 두들겨 맞고 쫓겨났다.이전의 여러 일들을 생각하자, 유채연은 외삼촌이 자신에게 그렇게 잘해 준 걸 알게 되었다.유채연이 갑자기 털썩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외삼촌, 그동안 거둬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옆에서 그 모습을 본 그래함도 유채연을 따라 무릎을 꿇었다.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외숙부님, 채연이의 부모님이 안 계시니 외숙부님이 채연이 아버님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무릎을 꿇고 맹세하겠습니다.”“저희는 곧 결혼하게 되면 반드시 읍내에서 잔치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채연이를 보고 비웃지 못하게 할 테니, 채연이를 제게 주시면서 안심하셔도 됩니다. 제가 채연이에게 정말 잘 하겠습니다.”남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존엄성이다.그러나 그래함은 유채연을 위해 외삼촌 앞에 무릎을 꿇었다.이 역시 그래함의 성의를 충분히 드러낸 것이다.두 사람의 감정을 외삼촌은 더욱 눈에 새겨 두었다.‘채연이가 그래함과 함께 있으면서 미소도 눈에 많이 많아졌어.’“너희들 빨리 일어나!” 외삼촌은 유채연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게 아니었다.입으로는 듣기 싫은 말을 하지면, 개를 길러도 이
이전에 유채연이 입었던 옷은 전부 그래함과 성연이 함께 골라준 옷으로 교체되었다.유채연은 트렁크를 사서 물건을 다 넣었다.곧 떠나야 할 때, 유채연이 외삼촌과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내가 같이 갈게.” 유채연을 도와 트렁크를 닫고서 그래함이 일어났다.“그래도 나 혼자 갈래...” 유채연은 망설였다.“채연아, 이제는 우리 둘이 같이 있잖아. 외삼촌은 우리 관계의 증인이자 네 유일한 가족이야. 내가 널 데리고 갔다가, 내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야?” 그래함이 유채연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했다.요 며칠간 함께 지내면서, 유채연은 자연스럽게 그래함과 더 가까워졌다.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그래함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만약 외삼촌이 그래함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 마음이 더 괴로울 거야.’“그래, 같이 가자.” 유채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두 사람이 함께 문을 나섰다.나오다가 마침 두 사람을 찾으려던 성연과 마주쳤다.“성연아, 우리 외삼촌 보러 갈 건데, 너도 갈래?” 유채연은 요 며칠 성연과 계속 붙어 있어서, 성연에 대한 감정도 이미 예전처럼 좋았다.어디를 가든지 성연을 데리고 가야 해서, 그래함이 한바탕 질투하기도 했다.“출발하기 전에 외삼촌과 작별인사 하러 가는 거예요?”성연이 물었다.“그래.” 유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나도 함께 갈게요.” 눈치 빠른 성연은 유채연의 손을 잡지 않고 뒤에서 따라갔다.‘채연 언니하고 그래함 사형이 나란히 다정하게 가는 모습을 보면, 외삼촌이 좀 안심할 수 있겠지.’유채연과 그래함은 앞에서 함께 걸어갔다.유채연의 마음은 여전히 좀 불안했다.‘예전에 외삼촌이 못마땅했을 때는 여기를 탈출하겠다는 생각도 했지.’그러나 정말로 외삼촌과 작별을 고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유채연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비록 그다지 내 생각대로 지내지는 못했지만.’‘하지만 예전에는 이곳이 내 유일한 피난처였지.’“걱정 마, 외삼촌은 좋은 분이니까 이해해 주실 거야.”
그 말을 듣자, 유채연은 코가 시큰거리면서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꽉 쥐었지만 뜬금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 지금처럼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은 없었다.유채연의 얼굴에 눈물이 가득한 걸 보자, 가볍게 한숨을 쉰 그래함이 휴지로 부드럽게 눈물을 닦아주었다.“왜 그렇게 울기를 좋아해? 앞으로 나하고 있으면서 내가 잘 해줄 테니까 이렇게 울면 안 돼. 네가 눈물을 흘리는 게 안타까워.”그래함의 부드러운 말을 들으면서 유채연의 감정도 점차 가라앉았다.감정이 진정되자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맛보았다.아주 달았다. 이 달콤함이 유채연의 마음속에 스며들면서 마음을 천천히 따뜻하게 했다.“고마워, 그래함.” 유채연은 코를 훌쩍이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내가 너에게 고마워해야지. 그렇게 오래 되었는데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잖아. 내가 좀 일찍 너를 찾아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래함의 말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우리는 지금이 좋아.” 유채연은 그래함의 이런 의기소침한 모습을 그냥 지켜볼 수 없었다.“그래, 이제 네가 있으니까 앞으로 우리는 더 좋아질 거야.”그래함이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비록 성연은 어느새 감정이 없는 도구로 전락해버렸다.그러나 계속 뒤를 따라 가면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성연은 정말 기뻤다.자신도 그런 분위기가 달콤하게 느껴졌다.예전에는 그저 단순하게 그래함 사형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그러나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자, 정말 두터운 그래함의 깊은 정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성연은 두 사람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처음에 굳어 있던 두 사람이 점차 풀어질 때까지 이미 정말 잘 지나왔어.’“두 분, 연애하면서 여동생도 잊어버렸지요? 나 너무 배가 고파요. 밥 먹으러 가고 싶어요.” 성연도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게에서 별로 먹지 않고 이렇게 오래 걸었더니 벌써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그 말을 들은 유채연이 바로 뒤돌아서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