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은 사무실에서 왔다갔다하며 서성거렸다.그는 사리 분간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실력이 뛰어난 보건교사 서한기는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단순한 소문으로 사람을 해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하지만 그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 교장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성연의 집안 배경이 이런데 또 누가 감히 상대할 수 있겠는가.결국 교장은 서한기를 불러 직접 물어보기로 결정했다.“교장선생님, 무슨 일로 찾으셨는지요?” 10분 후, 서한기가 교장 앞에 섰다.서한기를 한 번 훑어보았다. 확실히 여학생들한테 인기 많을 외모이긴 했다.“이렇게 된 마당이니 그냥 묻겠습니다. 송성연 학생과 연애하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입니까? 송성연 학생은 아직 어려서 감정을 컨트롤 할 수가 있는 나이가 아닙니다. 두사람이 연애를 한다고 해도 미래가 없습니다.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감정이 깊어지기 전에 일찌감치 정리하세요.”교장이 난감하다는 듯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교장은 숨기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서한기에게 말했다.교장의 말을 듣던 서한기는 눈만 동그랗게 뜬 채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심정이었다.‘이 사람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렇게 삐뚤어진 생각까지 하다니, 참 나.’두 눈 멀쩡한 사람이라면 자신과 성연을 하나로 엮지 않을 것이다.더구나 서한기는 그럴 배짱도 없었다.할 수 없이 서한기가 설명하기 시작했다.“사실이 아닙니다. 정말 너무 억울하군요. 송성연 학생은 심각한 기면증이 있습니다. 마침 제가 그 방면 치료 경험이 있어서 치료해 주고 있을 뿐입니다.”사실과는 다르다 하더라도 그럴싸한 핑계를 찾아내야 했다.사실 그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요 며칠 거의 하루 종일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다 보니 이런 것들에 주의하지 않았다.연구실에서 나와보니, 지금 이렇게 교장실에 불려와 있는 것이다.교장도 난처하긴 마찬가지다.“확실합니까?” 여전히 의심을 지우지 않은 채 교장이 다시 물었다.“물론입니다, 교장선생님. 송성연 학생은 아직 미성년자입니다.
오후가 되어 성연이 보건실로 들어오자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던 서한기가 교장실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늘어놓기 시작했다. 교장이 그에게 던진 경고까지.성연 역시 이번 일로 고민했다. 이윤하도 이 문제를 빌미로 수업시간에 시비를 걸었던 거고.서한기까지 교장에게 불려갈 줄은 몰랐다.하지만 그 이상까지는 생각지 못했다. 서한기가 교장실에 불려간 게 무진의 입김 때문이었음도 여전히 알지 못했고.그저 소문이 너무 많이 퍼지게 되면 학교 입장에서도 당연히 안 좋을 테니 서한기를 불러 주의를 준 것이라고만 생각했다.어쨌든 소문이 무성해지도록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 터.“어떻게 할 생각이야?” 성연이 고개를 들어 서한기를 쳐다보았다.“저요?” 서한기는 성연이 자신에게 물어볼 줄 몰랐지만, 대수롭지 않은 듯한 말투로 말했다.“저라면 말이죠. 당연히 신경 안 쓸 것 같은데요. 어차피 사실도 아니니까.”갑자기 교장의 말속에 들어있던 다른 의미가 떠오른 서한기가 히죽히죽 웃으며 성연의 곁으로 다가갔다.“제가 보기엔 말이죠. 강씨 집안 쪽에서 보스에게 관심이 무척 많은 것 같은데요.”“무슨 뜻이야?” 인상을 찡그린 성연이 곁에 다가온 서한기를 한옆으로 밀어냈다.서한기가 교장의 말을 그대로 읊었다.“거물이, 강씨 집안 외에 또 누가 있겠어요?”서한기가 으쓱 어깨를 들어올려 보였다.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굳은 표정을 지었다.“지난번에 내가 할머니 연구소에 모시고 왔을 때 마침 강무진이 찾아왔었지. 이미 그때 의심을 산 걸지도. 신경 쓰지 마.”그 이유 말고는 생각나는 게 없다.‘서한기가 그냥 생각난 김에 꺼낸 거겠지.’강씨 집안 같은 세력가라면, 모든 일에 경계하고 조심하는 게 정상이었다.“제가 보기엔 그런 게 아닌 것 같은데…….”서한기가 일부러 말을 길게 늘였다.강씨 집안 거물(?)이 학교에까지 전화해서 경고를 했다는 건 질투일 확률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안타깝게도, 우리 보스는 절대 그쪽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
같은 시각. 강운경이 연기했던 주주총회 최종 기한이 되었다.강상철과 강상규는 이날 만을 기다려 왔다.시간이 되자 즉시 주주들을 모아 주주총회를 열었다.강상철과 강상규는 이미 충분한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회의실에는 긴장감이 흘렀다.강상철이 일어섰다.“지난번에 서류를 나눠드렸으니 주주님들 모두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회장님이 지금 저런 상황이니 더이상 회장직에 계실 수는 없을 겁니다. 이제 우리 WC그룹은 더 능력 있는 사람이 이끌어가야 합니다.”말을 하면서 기억 못하는 사람이 있을 까 주식합의서를 눈앞에 늘어놓았다.운경과 무진 모두 참석했으나 안금여의 자리만 비어 있었다.강상철이 말을 꺼내자 주총 현장엔 정적이 감돌았다.“만약 회장님의 건강만 좋으시다면 2년 정도 옆에서 보좌해드리는 것도 괜찮겠지만, 안타깝게도…….”뒷말을 흐렸지만 강상철의 의도는 불 보듯 뻔했다.지금의 안금여로서는 이 자리에 참석할 수 없다는 것쯤은 모두가 뻔히 아는 사실.속으로는 안금여가 죽기를 그렇게 절박하게 바라면서도 입으로는 그럴싸한 말을 뱉었다. 정말 역겹고 볼썽사나웠다.운경은 참고 또 참았다. 잠시 후에 일어날 일을 생각하니 초조한 마음을 가누기 힘들었다.침묵을 지키고 있는 운경을 슬쩍 훑는 강상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안금여는 끝났다. 큰 집도 더 이상 입을 못 열 것이다.‘그래, 이게 바로 내가 바라던 바야.’“주주 여러분들, 다른 의견이 있으십니까? 다른 의견이 없으시다면 새로운 회장을 선출하기로 하겠습니다. 각자 마음속에 이미 생각하고 계시는 인물이 있을 것이라 봅니다만.”강상철이 턱을 들어올렸다.현재 보유 주식이 가장 많은 사람은 자신이었다.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주위를 살피던 주주들이 회장 재선출에 동의했다. 회사에 경영자가 없어서는 안되는 법이다. 그러나 안금여가 금방 좋아질 리도 만무하고.게다가 회사 내의 주주들 대다수가 강상철과 강상규에게 매수된 상황이라 본가로서는 조금도 승산이
운경의 말이 떨어지자 강진성과 강일헌은 마치 무슨 농담이라도 들은 듯 웃었다.“큰댁은 정말 재미있군요. 큰 할머님 병세가 위급해서 병원으로 모신 거 아닙니까? 이런 상황에서 저런 루저에게까지 희망을 걸다니 정말 우습기 짝이 없네요. 지금 이 자리에 다른 분들도 계시니 형님 체면을 봐서 이 정도만 하지요. 그런데 형님께 그런 기대를 품고 계시다니 본인의 의견은 들어 보셨습니까?” 강일헌은 말하는 내내 무진을 응시했다. 명백한 경멸의 시선을 담고.“그럼요, 고모님. 너무 그렇게 편파적이시면 안 되지요. 저희도 절반은 고모님 조카 아닙니까? 앞으로도 고모님의 회사 내 위치는 절대 낮지 않을 겁니다. 형님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기대를 갖지 않으시는 게 좋을 거라 말씀드리고 싶군요. 그렇지 않다가 너무 실망하시지 않겠습니까?”강진성의 말에는 운경을 끌어들이려는 의도도 들어 있었다.강무진의 친 고모이긴 하지만 작금의 큰 댁 상황에서 볼 때 강운경이 아직 회사에 발을 담고 있어야 했다.직위도 낮지 않은 강운경이 자신들에게 돌아서면 자연 일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다만, 강운경이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눈치 빠른 사람들이라면 강무진이 루저라는 사실을 다 알 것이다.안금여와 강운경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한사코 저런 쓸모없는 놈을 편애하다니.그들은 시간으로 증명할 것이다.과연 누가 최선인지.“회사를 더 높이 끌어올려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무능력하신 형님에 대해 말하자면 저택에 머물며 정신병부터 치료해야 맞는 것 같은데, 고모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강일헌 저들은 강무진을 무시하고 있음이 명백했다.요 몇 년 동안 회사에서 고생한 사람은 자신들이었다. 그에 반해 강무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 않나 말이다.회장직을 물려받으려면 자신들의 동의뿐만 아니라 주주들까지…….물론 동의하지 않을 테지만.강운경의 눈이 조소를 띠었다. 속이 쓰린 건 말할 것도 없고.저들보다 몇 십 배나 뛰어난 무진이가,
운경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 안이 잠시 정적에 잠겼다. 그러더니 곧이어 믿을 수 없어 하는 소리들이 들렸다.차라리 이 모든 일들을 안금여 회장이 한 것이라면 모를까 강무진이라는 저 루저가 했을 거라고는 절대 믿기지 않았다.강상철과 강상규의 반발은 더 컸다.큰집이 회장직을 지키려고 모든 공을 억지로 강무진에게 돌린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었다.“강 대표, 거짓말도 정도가 있어야지. 있지도 않은 일을 늘어놓고 사람들을 기만하다니. 재미없군.”“그래요, 고모님. 늘 형님을 아껴 오신 걸 잘 알지만, 이렇게 과장할 필요는 없지요. 아마도 모두 고모님의 상상에서 나온 것 같은데요.”말하면서도 강일헌은 웃음을 참느라 죽을 지경이었다. 얼굴에 경련이 일 정도였다.일부러 지어낸 과장된 표정과 동작은 모두 큰집의 호의도 모르는 큰 댁을 비웃기 위함이었다.저들의 태도를 하나하나 지켜보던 운경의 마음이 한층 더 차가워졌다. 냉소를 띈 운경이 입을 열었다.“여러분들이 믿지 않을 줄 알았죠. 그래서 증거를 준비했습니다.”대형 스크린을 열고 세계 100대 기업 중 하나와 직접 연결했다. 현재 WC그룹과 협력관계에 있는 유럽 최대의 회사였다.세계적적 기업으로 이 회사의 회장은 미스터 애벗이었다.자리에 참석한 주주들은 모두 알고 있다 할 수 있는 인물.하지만 비즈니스에서는 보통 자신의 비서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처리했고, 미스터 애벗 본인은 사람을 잘 만나지 않는 걸로 유명했다.그러나 지금 미스터 애벗의 익숙하지만 직접 대면하기 힘든 얼굴이 대형 스크린에 등장해 주주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다.동시에 운경의 말에 대해 조금씩 믿음이 가기 시작했다.스크린에 모습을 보인 미스터 애벗은 곧장 무진에게 시선을 고정한 뒤 인사를 건넸다.“헤이, 무진. 요즘 잘 지냅니까?”“음, 아주 좋아요. 애벗 씨도 좋아 보이는군요.”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난 오랜 친구처럼 먼저 인사를 나누었다.그리고 사업상의 일을 논의하기 시작했다.강씨 그룹이 최근 계약을 체결한 대형 수주 건이었
미스터 애벗 쪽의 회담이 끝난 뒤 무진은 또 다른 두 기업과 영상 회의를 진행했다.믿고 싶지 않지만 생생한 현실이었다.강상철과 강상규 등 무진을 무시하던 이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예전 강무진을 얼마나 경멸했는지 생각하면 지금 얼마나 난감할까.강무진이 보여주는 현실에 그야말로 자신들의 얼굴이 땅에 처박힌 꼴이었다.모든 회의가 끝나자 주주들은 모두 조용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더 이상 말할 면목이 없는 표정들이다.천지분간 못하고 눈앞에서 껍죽댔는데 결국 강무진이 그룹의 리더였던 것이다.운경 곧장 일어나 선언했다.“요 몇 년 동안 회사가 지금의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모든 게 무진이 뒤에서 손을 쓴 덕분입니다. 이 일은 회장님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지금 회장님의 연세는 쉬셔야 하는 게 맞습니다. 강무진은 자신의 신분에 맞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이때 무진은 예전처럼 침묵으로 대처하지 않고 마침내 입을 열어 발언했다.“여러분은 조금도 불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계속 회사에 남아서 여러분이 원하는 것들을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 회사를 더 잘 이끌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의견을 제기하셔도 됩니다.”무진이 차가운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패기가 넘치는 말투에 그동안 애써 가두어 뒀던 기운이 발산되자 다들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다.타고난 카리스마에 두려움에 몸이 떨릴 정도였다.소위 지배자의 기운이란 게 아마 이렇지 않을까.주주들 중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중요한 합작회사들과 모두 긴밀한 관계에 있는 무진이 그룹의 생명줄을 쥐고 있다고 봐야 했다.지금 만약 화가 난 강무진이 모든 인적 자원을 거둬 버리기라도 한다면자신들은 조금도 이익을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경악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는 주주들의 모습을 운경이 흐뭇하게 바라보았다.지금 저들이 목격한 강무진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평소 말하지 않은 건 그들과 실랑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뿐.강상철과 강상규까지 더하니 진짜 못 볼 지경이었
모두 의문을 품고 있음을 알아차린 운경이 숨김없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그 해 큰 오빠와 올케가 사망한 이후, 무진이 또한 알 수 없는 살해 위협에 끊임없이 시달려 왔습니다. 요 몇 년 동안 여러분들이 편안하게 배당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여러분들이 ‘쓰레기’라고 부르던 무진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주주들은 순간 한 대 크게 얻어 맞은 듯했다. 창피해서 고개조차 들기 힘들었다.주주들 하나같이 닳고 닳은 사람들이다. 자연히 자신들에게 이익을 줄 사람을 편들 것이다.강무진이 회사를 이어받아 경영하는 것에 아무런 이견이 없는 게 당연했다.이날 회사 경영권을 정식으로 넘겨받은 무진이 드디어 음지에서 양지로 나왔다.그러나 회장직에 관심이 없는 무진은 그룹의 총괄 대표이사 직을 넘겨받았다. 최고 의결권을 가진.회사 직원들 동작도 빠르지, 회사 내에 즉시 무진의 집무실이 만들어졌다.의심할 여지없이 그룹 건물 전체에서 채광이 가장 좋은 위치였다.그의 위상이 단연 돋보이는 상황이다.그동안 사람들의 눈을 가리기 위해 안금여의 사무실에서 일을 봐 왔었다.사실 무진에게는 별도의 사무실이 있었다.회사 내 아는 사람이 없었을 뿐.사무실 준비를 벌써 끝내다니 회사 직원들이 그래도 눈치가 좀 있는 듯하다.직원들이 새로 마련한 소파에 앉아 있다 회의실에서 나온 무진이 휠체어에서 일어나 직접 걸어 들어왔다.맞은편에 앉아 있던 운경의 눈엔 염려의 빛이 아직 남아있었다.“다리는 괜찮아? 의사가 서서 걸어도 된다고 했어?”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 고모 운경이다.가까스로 좀 나은 터라 하루아침에 다치기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괜찮아요. 의사가 운동을 많이 하는 게 다리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군요.” 무진이 운경을 달래듯 웃었다.성연의 치료 방식이 아주 좋은 덕에 그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빨리 회복되었다.시간이 좀 더 필요하겠지만 그의 다리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그럼 됐어. 성연이가 도와준 거지? 엄마 말씀이 맞나 봐. 성연이
주주총회 직후.강상철의 집으로 들어서는 강상철, 강상규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형님, 무진이 다리 진짜일까요?” 사실 눈살을 찌푸린 강상규가 진짜 묻고 싶은 것은 따로 있었다. 무진이 뭔가 기억을 떠올린 건 아닐까, 하는.“걷기까지 했는데 가짜겠어? 내가 그 놈을 얕잡아보았어. 지금 그 놈 능력이라면 우릴 속이는 것도 간단했겠지.”강상철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 있었다. 형수 안금여 쪽에서 이런 수를 남겨 두었을 줄은 전혀 예상 못했다. 간신히 손에 넣었는가 싶었더니 또 이렇게 빠져나가 버렸다.본가 형수 쪽은 정말 운이 좋은 듯하다. 그런데 어째서 매번 이렇게 공교롭게 여겨지는 거지?괜히 그들을 힘들게 한 셈이 아닌가.가만 생각해 보면 그들을 힘들게 한 것도 아니지 않나?큰형님이 계실 때 늘 눌려 살았는데, 형님 가시고 난 뒤 또 눌려 지냈다.자신들보다 일찍 태어난 게 그렇게 대단한 거란 말인가?강상철의 마음에는 깊은 불만이 자리하고 있었다.“그럼 이제 어찌 해야 합니까?” 입을 연 강상규의 얼굴이 음산했다. 강무진의 명이 그리 길 줄 누가 알았겠나.가장 마음을 놓고 있던 대상이 거꾸로 화근이 되었다.“지금의 강무진은 우리가 건드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우선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지.”강상철이 양 입술을 힘주어 다물었다. 본가의 회생을 누구보다 원치 않는 이가 바로 자신이었다.그러나 또 누구보다 정세 판단이 빠르기도 했다. 지금 강무진과 강하게 부딪혀봐야 아무런 이득도 얻지 못할 것이다. 아니 엄청난 손해를 볼 수도.기회를 봐서 일격에 그 놈을 보내 버리는 수밖에는!“어떻게…….”강상규 또한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으나 결국 한숨만 길게 내쉴 뿐이었다.매번 성공을 코 앞에 두고는…….강상규가 강상철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형님, 운이 나빴습니다. 우리가 큰집의 자리를 대신할 날이 꼭 올 겁니다. 그땐 저 눈엣가시 같은 놈을 반드시 뽑아버릴 겁니다!”“네 말이 맞다. 형수를 치매로 만든 우리가 아니냐? 강무진을 못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