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효는 손바닥에 전신의 힘을 실어 때렸다.소지연의 얼굴이 곧바로 부어올랐다.극심한 통증이 밀려오자 그제야 소지연은 정신을 차렸다.몸을 비틀거리면서 일어나려고 했다.그러나 몸을 움직이는 순간 위장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그리고 바로 고개를 기울이며 웩웩거렸다.이상효는 바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공기 중에 알코올과 시큼한 냄새가 가득 차서 정말 참기 어려웠다.화가 치솟은 이상효는 소지연이 이 자리에서 당장 사라졌음 좋겠다 싶었다.소지연을 바라보는 눈에서 곧 불이 날 것만 같았다.‘내가 이런 골칫덩어리를 마누라로 얻은 거야?’분노를 참지 못한 이상효가 핸드폰을 꺼내서 소지연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당장 이리로 와 보세요! 우리 이씨 가문에서는 대단하신 당신네 소씨 가문의 따님을 모실 수가 없군요!”이상효의 전화를 받은 소지연의 부모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결혼식장에서 돌아왔던 소지연의 부모가 황급히 다시 이씨 가문 저택으로 달려갔다.소지연의 부모가 이씨 가문에 도착했을 때 이상효와 소지연은 이미 거실에 나와 있었다.이상효는 절대로 아까 그곳에서 악취를 맡고 싶지 않았다.소지연의 부모는 딸의 빰이 부었다는 걸 한눈에 볼 수 있었다.뽀얀 얼굴에 다섯 손가락 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소지연의 모친이 가슴 아픈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다.이미 반쯤 술이 깬 소지연은 자신이 한 일을 떠올리고는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소파에 앉은 이상효는 턱을 치켜들고 소지연의 부모를 바라보았다.“이 결혼, 나는 하지 않을 겁니다. 내일 떠날 거니까 당신네 딸 소지연 씨는 당신들이 데리고 돌아가세요! 나는 더 이상 이 여자를 보고 싶지 않아요.”이상효의 말은 소씨 가문의 마지막 희망마저 철저하게 박살내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더 이상 소지연의 얼굴에 난 상처를 돌볼 겨를도 없이 소지연의 부친이 바로 용서를 빌었다.“이보게, 부부 사이의 싸움은 모두 칼로 물 베기 아닌가. 무
이상효의 지나친 요구에 소지연의 부모는 바로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다.그들 두 사람의 나이를 합치면 모두 백 살이 넘는다. 이상효가 자신들에게 무릎을 꿇기를 요구한다고 해서 그 정도 감당해 내지 못하겠는가?그러나 이상효와 같은 부잣집 도련님은 이른바 도덕심이라는 게 전혀 없었다.소지연이 계속 다른 남자를 입에 담으면서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 이상효의 체면을 땅에 짓밟아 버린 것이나 매한가지였다.이상효가 요구에도 소지연의 부모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선 채 꼼짝하지 않았다.이상효의 안색이 가라앉았다.“무릎을 꿇고 싶지 않다는 거죠! 됐어요, 당신네 소씨 가문의 기개가 높다는 것을 알았으니, 내 생각을 바꾸려는 생각도 하지 마세요!”말을 마친 이상효는 소파에서 일어나서 나가려고 했다.소지연의 부모는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거의 무릎을 꿇을 듯한 모습이었다.그 모습을 본 소지연은 가슴이 아팠다.이상효의 곁으로 기어가서 이상효의 바짓가랑이를 잡은 소지연은 입술을 꽉 깨물며 피눈물을 흘리는 심정으로 말했다.“상효 씨, 제가 무릎을 꿇을게요. 제가 무릎을 꿇겠어요!”소지연은 한 걸음 한 걸음 칼날 위를 걷고 있는 심정이었다.두 다리를 모은 채 이상효의 앞에 무릎을 꿇은 소지연의 눈에서 연신 눈물이 쏟아졌다.그녀의 마음은 짙은 원한과 굴욕으로 가득 차 있었고, 앞에 있는 이상효를 죽이지 못하는 것이 원망스러웠다!그러나 머리가 희끗희끗한 부모를 돌아본 소지연은 쉰 목소리로 울먹이면서 이상효의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상효 씨, 내가 잘못했어요. 이씨 가문에서 나를 쫓아내지 말아주세요. 앞으로는 아내의 역할을 잘 해내겠습니다.”소지연이 직접 태도를 취하면서 다짐을 하자 그제야 이상효의 마음도 많이 수그러들었다.그는 다시 앞으로 나가서 소지연을 일으켜 세웠다.“당신도 참, 결국 이렇게 될 일인데 진작 이런 각오를 가졌으면 좋았잖아?”마음속으로 반감을 품은 채 혐오감을 느꼈지만, 소지연은 이상효의 손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그
일렬로 쭉 뻗은 건물이 구름 속으로 우뚝 솟아 있다.은백색의 양복을 입은 남자가 빌딩 내의 창문 앞에 서서 맞은편 빌딩을 바라보고 있다.‘저기가 바로 WS그룹의 본사.’안진검은 WS그룹 맞은편에 위치한 이 건물의 한 층을 임대해서 자신이 말했던 창업을 준비했다.물론 이는 모두 위장이다.그의 목표는 당연히 MS 가문에서 내린 지시, 즉 WS그룹을 파괴하라는 지시를 그대로 수행하는 것!안진검은 창 앞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빈 사무실에 전화벨이 울리자 안진검은 정신을 차렸다.힐끗 돌아본 핸드폰 화면에는 특수한 번호가 떠 있었다.적호가 건 전화였다.[오웬은 이미 죽었어!] 적호의 음산하고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 말을 들은 안진검은 속으로 기뻐했다.‘며칠 동안 지지부진하더니 겨우 마음에 드는 일이 하나 있군.’“다른 사람한테 들키진 않았어? 미행은?” 안진검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MS 가문의 세력은 유럽 전역에 퍼져 있었다.그리고 오웬은 칠장로가 가장 총애하는 아들이 아닌가.오웬이 별안간 비참한 죽음을 당했으니 MS 가문에서 절대 그냥 있지 않을 것이다.[미행하고 추격하는 놈들도 꽤 됐지만, 내가 다 따돌렸어. 가면을 써서 얼굴을 완전히 감춘 나를 그들은 전혀 못 알아봤어. 신분만 바꾸면 돼.]적호가 담담하게 설명했다.안진검은 속으로 흥분감을 느끼며 호쾌하게 말했다.“곧 백억을 쏴 줄 테니까, 잠시 유럽에서 휴식하며 재정비하도록 해. 내가 더 많은 리스트를 보내줄 테니.”적호는 아무런 대꾸 없이 안진검의 말이 끝나자마자 전화를 끊었다.안진검이 막 전화를 끊는 순간에 곧장 또 다른 전화가 들어왔다.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안진검의 양부, 일장였다.그가 전화한 목적도 오웬의 일 때문이었다.[오웬이 죽었어. 네가 요 몇 년 동안 오웬으로부터 억압받았다는 것도 알아. 이번에야 말로 너에게 좋은 기회야. 네가 WS그룹을 전복시키기만 하면 가문에서는 틀림없이 너를 크게 들어 사용할 거야!]안진검은 마음속으로 역시 오
대표실에 앉아 업무를 하던 무진이 고개를 돌려 맞은편 빌딩을 쳐다보았다.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내내 느끼고 있었다.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다.데스크 위의 전화가 울리며 무진의 정신이 돌아왔다.[보스, 적호가 유럽에서 MS 가문 칠장로의 아들 오웬을 죽였습니다. 이 일로 유럽이 한바탕 시끄러웠습니다. 그런데 적호가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신분을 숨겨서인지 아무도 그의 소행인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만약 무진이 사람을 보내서 계속 주시하지 않았더라면, 이 일이 적호의 소행임을 그들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무진이 미간을 찌푸렸다.‘적호의 행동으로 해서 이 일 전체가 모호해졌어.’‘도대체 누가 적호에게 지시를 내린 거지?’‘설마 적호가 나를 노린 게 MS 가문과 상관이 없단 말인가?’‘그런데 MS가문에서 사주한 거라면 왜 도리어 MS가문의 사람을 죽인 거지?’‘아니면 저들 사이에 내분이라도 생긴 건가?’무진이 묵직한 음성으로 지시를 내렸다.“계속 주시하면서 무슨 소식이 있으면 즉시 보고하도록 해. 만약 자신이 있다면 적호를 생포하고, 자신 없으면 그냥 없애 버려.”어쨌든 적호라는 인간은 이 세상에 남아 있으면 안되었다.그가 살아 있는 한 무진과 성연의 안전은 늘 위협받게 될 테니까.[예.]수하에게 지시를 내린 무진이 전화를 끊었다.적호의 위협이 사라지자 무진의 마음이 다소 홀가분해졌다.적호가 북성을 떠났다는 사실은 성연의 외출 금지가 해제된다는 뜻이기도 하다.이제 성연은 언제 어디든 외출할 수 있게 된 것.불현듯 마음이 내킨 성연이 차를 몰고 무진의 회사로 찾아왔다.그룹 빌딩 일층에 차를 세운 성연이 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맞혀 봐요?”성연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얼굴에서 음산한 기운을 모두 걷어낸 무진이 웃으며 말했다.“어디인데?”“맞혀보라니까요.” 성연이 애교를 부렸다.“모르겠는데? 그냥 얘기해 주면 안돼?” 무진의 입
조수경은 두 사람의 차가 사라진 방향을 주시하며 이를 갈았다.‘나는 지금 무진 씨를 만날 수도 없건만.’‘송성연은 어떻게 저렇게 쉽게 불러낼 수 있는 거지?’‘도대체 송성연의 어디가 좋다는 거야!’조수경은 이렇게 앉아서 무진의 처분을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계속 이러면 무진 씨가 나를 거들떠보기나 하겠어?’저녁에 퇴근한 조수경은 또 다시 많은 선물과 건강기능식품을 사서 고택으로 찾아갔다.집사는 바로 안으로 들이는 대신 조수경의 방문을 먼저 안금여에게 보고했다.안금여와 강운경이 고개를 돌려 서로 쳐다보았다.그날 밤의 일에 대해 나중에야 알게 된 두 사람.정말이지 조수경이 무진에게 그런 마음을 품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하마터면 무진과 성연 사이에 오해가 생길 뻔했던 것.조수경을 쉽게 믿었던 안금여는 마음속으로 성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조수경에서 고택 외부에 따로 거처를 마련해주었다.옛 친구의 체면을 고려해서 안금여는 그래도 조수경이 계속 회사에 남아있게 해서 체면을 세워주었다.조수경이 방문했다는 말에 안금여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됐어, 가서 한번 만나 봐야겠어.”강운경이 안금여를 부축하며 밖으로 나갔다.회사에서부터 화를 참고 왔던 조수경은 자신을 밖에서 기다리게 하자 더 화가 났다.‘이전에는 이 집을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었어.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거절당하다니!’안금여와 강운경이 나타나자 조수경은 억지로 눈물 몇 방울을 쥐어짜내며 불쌍한 척 쇼를 하기 시작했다.“할머니, 고모, 제가 잘못한 거 알고 있어요. 용서해 주세요. 두 분이 정말 보고 싶었어요.”부드럽고 여리여리한 외모의 조수경의 두 눈은 촉촉하면서 약간 충혈되어 있어서, 보는 사람이 더 동정심을 갖게 했다.안금여는 조수경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원래 여린 마음을 가진데다가 지금 조수경이 보이는 모습에 더 괴로운 마음이 들었다.하지만 안금여는 강씨 가문의 입장 또한 잊지 않았다.안금여 또한 차마 조수경에게 심한 말
조수경은 바로 손민철을 찾아갔다.두 사람은 커피숍에서 만났다.칸막이가 쳐진 룸에서 손민철은 조수경을 껴안고 뺨에 키스를 했다.“왜 그래, 우리 자기, 겨우 며칠 못 봤을 뿐인데 내가 보고 싶었어?”“나도 보고 싶었어요.” 조수경이 당당하게 대답했다.손민철의 표정이 일순 흐려졌다. 자신이 보고싶었다고 조수경이 자신의 입으로 처음 시인한 것이다.손민철이 곧바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도 네가 보고 싶었어.”말을 하면서 조수경에게 입을 맞추었다.조수경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의 목을 껴안고 고개를 들어 키스를 받아들였다.키스를 마친 두 사람은 모두 숨소리가 거칠어졌다.부족하다고 느낀 손민철은 다시 키스하고 싶었다.조수경이 손민철의 입술에 손가락을 대면서 가로막았다.“민철 씨에게 할 말이 있어.”손민철은 키스하려던 동작을 멈추고 물었다.“무슨 일인데?”“내가 더 큰 성과를 올리게 해 줘요. 지금으로서는 아직도 턱없이 부족해!”조수경의 눈에 모질고 포악한 기색이 번쩍였다.‘내가 높은 자리에 오른다면, 무진 씨가 나를 다시 보게 될 거야.’손민철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그러지.”그러고는 조수경의 손을 더듬거리면서 말했다.“하지만 오늘 밤 무조건 나와 같이 있어야 해!”농담하듯이 웃는 조수경의 표정에는 이전의 내키지 않아 하던 모습은 전혀 없었다.“그래.”“밤은 짧아. 지금 가자!” 손민철은 한시도 기다릴 수 없었다.다급한 모습으로 조수경을 이끌고 호텔로 가서 방을 잡았다.객실 안으로 들어서자 바로 조수경을 벽에다 밀어붙인 채 격렬하게 키스를 했다.조수경의 옷을 벗기려던 순간, 조수경이 손민철의 손을 잡고 말했다.“너무 조급하게 굴지 말아요. 오늘 밤은 충분히 기니까 천천히 즐겨요.”손민철은 애가 타면서도 속으로는 동시에 조수경이 자신에게 어떤 즐거움을 선사할지 기대감마저 가지고 있었다.천천히 객실 안으로 들어선 조수경이 와인 한 병과 잔 두 개를 들고 나왔다.베란다로 나가 앉은 조수경이 손민철에게 손을 흔들었
“정말요?”“비행기 시간을 알려주면, 제가 그 시간에 마중 나갈게요.”전화를 받다가 의자에서 일어선 성연의 음성에 기쁨이 철철 넘쳐 흘렀다.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던 무진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폰 건너편 음성이 남자 같은데...’무진이 무의식 중에 한마디를 꺼냈다.“누구?”성연이 재빨리 대답했다.“사형인데 벌서 북성으로 오는 중이라고 하네요. 나보고 마중나와 달라는데, 무진 씨도 같이 갈래요?”마음이 좀 불편해진 무진이 미간을 찡그렸다.‘그 자식은 왜 또 튀어나오는 거야? 사형이면 사형답게 행동해아지. 왜 자꾸 성연에게 들러붙는 거야?’성연이 혼자 목현수를 마중 나간다면 당연히 마음이 놓이지 않을 터.잠시 고민하던 무진이 이내 대답했다.“음, 내가 같이 가지.”“무진 씨 일은 안 바빠요? 바쁘면 나 혼자 가도 돼요.”그냥 공항으로 사람을 마중하러 가는 것이니 별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고 성연은 생각했다.무진이 바쁜 시간을 짜내 가면서 자신과 함께 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괜찮아, 내가 같이 갈게.” 무진이 노트북을 닫았다.고개를 끄덕인 성연이 따라 일어섰다.“시간이 거의 다 됐어요. 우리가 공항에 도착하면 딱 맞을 거예요. 가요.”무진이 성연의 뒤를 따랐다.잠시 후, 북성의 공항.비행기 도착 시간보다 먼저 공항에 도착한 성현과 무진. 목현수가 탑승한 비행기는 아직 착륙하기 전이었다.두 사람은 함께 대합실에서 목현수가 나오기를 기다렸다.“목말라?” 무진이 물었다.“괜찮아요.” 성연이 고개를 저었다. 무진이 움직이는 순간, 성연은 그가 물을 사러 간다는 것을 알았다.성연이 무진의 팔을 잡아당겼다.“귀찮게 갈 필요 없어요. 우리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사형이 곧 도착할 거예요.”무진이 걸음을 멈추고 대답했다. “그래.”핸드폰을 들고 시간을 확인하던 성연이 투덜거렸다“나올 때가 됐는데...”성연의 말이 끝나자마자 입국 게이트에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다시 고개를 숙여 시간을 확인하니 바로 목현수가
“너네 A국의 경치가 아름답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진작부터 와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현수 씨한테 데리고 가달라고 졸랐죠. 첫 번 째로 성연 씨를 보러 온 거예요.” 미스 샤넬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가득했다.어떤 의미에서는, 목현수가 자신을 A국으로 데려온 것 자체가 자신을 인정한 거라고 생각하는 미스 샤넬.미스 샤넬이 따라온 걸 본 무진은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성연의 허리에 감겨 있던 팔이 아무 내색 없이 슬그머니 풀렸다.미스 샤넬과 성연이 다정한 모습으로 앞장서 걸었다.목현수와 무진이 그 뒤를 따라 걸었다.서로를 싫어하는 두 사람은 누구 할 것 없이 입을 열지 않았다.공항 밖을 나온 사람들은 모두 무진이 준비한 차량에 탑승했다.무진은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아주 독특한 매력을 지닌 음식점으로 데려갔다.북성에서 아주 유명한 음식점인 이 곳은 언제나 식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하지만 이곳의 VIP고객인 무진은 얼굴을 보이자마자 곧바로 특실을 준비해 주었다.음식점의 총지배인이 직접 메뉴판을 가져와서 무진 일행의 주문을 받았다.살짝 허리를 숙인 채 아주 정중한 자세로 지배인이 말했다.“강 대표님, 최근 저희가 아주 참신한 신 메뉴 하나를 선보였는데, 평이 아주 좋습니다. 한번 맛보시겠습니까?”“이곳의 특선 메뉴들을 하나씩 내오세요.” 무진이 담담하게 말했다.지배인이 만면에 희색을 띠면서 말했다“알겠습니다, 대표님. 바로 가서 준비하겠습니다.”특실 안에는 성연과 무진이 나란히 앉고, 그 맞은편에 샤넬과 목현수가 나란히 앉았다.북성이 처음이라 연신 두리번거리던 미스 샤넬은 흥분한 음성으로 말했다.“이게 바로 A국 스타일? 정말 예뻐요. 유럽과는 정말 다르군요.”“미스 샤넬, 여기가 마음에 들면 자주 오세요. 여기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해요. 특히 미스 샤넬 같이 아름다운 외국 여성에게는 더요.” 성연이 미스 샤넬에게 차를 한 잔 따라 주며 놀리듯이 말했다.성연의 칭찬에 미스 샤넬은 좀 쑥스러운 표정을
성연은 은침으로 두 번 찔렀으니까 적어도 한동안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래도 어지럽고 무기력한 느낌이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어쩔 방법이 없었다.마음 깊은 곳에서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눈앞의 모든 것이 모호해지면서 단지 카타르시스를 찾아 자신의 모든 욕망을 털어놓고 싶을 뿐이다.조수경은 성연이 끊임없이 머리를 흔들며 자신을 깨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이제 다 됐어’조수경은 조급해하지 않으면서 성연의 낭패한 모습을 감상했다.‘평소에 송성연은 나를 볼 때 도도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지?’‘지금은 왜 거드름을 피우지 못하는 거야?’조수경은 계속 일부러 물었다.“성연 씨, 성연 씨, 정말 괜찮아요?”성연은 이제 대답할 힘도 없었다.자신이 무슨 이상한 소리를 낼 것 같아서 가까스로 몸의 반응을 억제했다.성연은 천천히 테이블 위에 엎드려 좀 더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사실 그래도 정신이 약간은 남아 있엇다.하지만 조수경은 성연이 이미 잠들었다고 생각했다.‘더 이상 참을 수 없어.’바로 일어서서 성연의 뒤에 앉아 있는 검은 정장 차림의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빨리 이 여자를 옮겨요.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도록 하고 당신들 마음대로 가지고 놀아요”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는 여전히 경계하는 태도를 유지했다.“여기 사는 사람들은 모두 부자가 아니면 고귀한 신분의 사람들이야. 우리가 지체 높은 사람에게 미움을 사게 하는 건 아니겠지?”말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이곳의 사람들에게 절대 미움을 사면 안 돼.’‘작은 돈 때문에 엮이게 된다면 정말 가치가 없어.’조수경은 상관없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면서 허튼소리를 했다.“이 여자의 차림새를 봐요. 어디 부자 같아 보여요? 바로 학생인데, 내가 여기로 약속을 정하지 않았다면, 평생 그렇게 맛있는 커피를 마셔보지 못했을 거예요.”방금 조수경이 성연과 이야기를 나눌 때 이들도 내용을 똑똑히 듣지 못했다.조수경은 이들에게 여자를 데리고 놀라고 하면서 돈도 많이 주겠다고 했
사실 성연도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기에 조수경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경계심을 놓지 않았다.레모네이드를 마시는 순간 이미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조수경이 자신이 마신 레모네이드에 약을 넣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러나 뜻밖에도 이 약은 너무 독해서, 순식간에 머리가 무거워지면서 현기증이 났다.정신이 혼미해지더니 온몸에서 열이 나면서, 옷을 찢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가 없었다.하지만 여기가 카페이기에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성연은 이것이 무슨 약인지 단번에 알아맞혔다.‘조수경이 나를 초대한 게 바로 이 개떡같은 약을 먹이기 위해서라는 걸 미처 몰랐어.’지금 성연은 조수경을 찢어 죽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원래 조수경은 좀 깨닫게 될 줄 알았어.’‘조수경이 결국 이렇게 간이 배 밖에 나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내게 약을 먹이면 무진 씨가 분노가 폭발할 텐데 두렵지 않은 거야?’‘다른 건 몰라도, 이 위기를 견뎌낸다면 절대 조수경을 용서하지 않겠어!’단호하게 은침을 부러뜨려서 성연은 자신의 허벅지 혈을 찔렀다.간신히 정신이 좀 돌아와서 그나마 겨우 버틸 수 있었다.성연의 볼이 붉어지는 걸 본 조수경은 약효가 곧 올라올 것이라고 생각했다.의기양양한 표정을 하고서 일부러 물었다.“아이고, 성연 씨, 왜 그래요? 어디 아픈 데 있어요? 안색이 좀 이상한데요?”성연은 이를 악물고 맞은편의 조수경을 바라보았다.조수경의 득의양양한 모습을 보자 정말 밟아버리지 못하는 게 한스러웠다.‘조수경,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뒷감당을 생각해 보지도 않은 건 아니겠지?’그러나 성연은 자신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조수경을 끝장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조수경이 또 이어서 자신에게 무슨 수단을 쓸 지 알 수 없었다.성연은 잠시 시간을 끌 수밖에 없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좀 덥네요.”성연은 담담하게 말하면서 조수경에게 자신의 이상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했다.‘송성연, 너의 모든 반응은 얼굴에 드러나 있어.’조수경
성연은 조수경의 계략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게다가 이 약은 확실히 무색무취해서, 은침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성연은 안에 뭐가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레모네이드를 한 모금 마신 성연이 컵을 내려놓았다.그리고 바로 조수경에게 말했다.“당신이 떠나기를 원한다니까, 일단 당신을 믿겠어요. 오늘은 당신도 어떤 심리적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성연은 자신이 조수경을 용서하고 싶은 것도 터무니없다고 느꼈다.그러나 이렇게 말해서 조수경의 양심이 괜찮을 수 있다면 한마디 해도 될 것이다.그리고 성연은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조수경이 고의로 그랬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하지만 조수경이 이미 사직하려고 하는 이상, 앞으로 무진과 만나는 일이 없다는 걸 증명한다면 자신이 굳이 언쟁을 벌일 일도 없을 것이다.“성연 씨. 내게 이런 기회를 줘서 고마워요. 그렇지 않으면 내 마음은 정말 미안했을 거예요.” 조수경은 정말 감동한 듯 성연에게 감사를 표시했다.그러나 성연의 변화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그리고 검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들어왔다.소리 없이 성연의 뒤쪽 자리에 앉았다. 그들은 성연이 중독되어 약효가 나타나면 데려가려고 기다렸다.두 사람이 앉은 곳은 성연의 시선에서 사각지대여서, 성연은 전혀 보지 못했다.“그렇게 너무 많이 생각할 필요 없어요. 이곳을 떠나도 당신의 집에 잘 돌아가면 좋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할머니도 힘드실 거예요.” 성연은 담담하게 말했다.“아니, 난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조수경은 무슨 무서운 일이 생각났는지 놀라서 고개를 저었다.그리고 나서야 자신이 추태를 부렸다는 걸 깨닫고 해명했다.“성연 씨, 정말 숨기지 않겠어요. 누군가 줄곧 나를 귀찮게 하고 있어요. 내가 이번에 여기에 온 것도 그 사람 때문이에요. 만약 내가 돌아간다면 결국 좋은 날이 없을 거예요.”“나는 조수경 씨의 성격이면 어디서든 잘 지낼 수 있다고 믿어요. 당신 생각은요?” 성연이 눈썹을 찌푸렸다.사실 조금만 조사하면 조수경이 말한 게
엠파이어 하우스 부근의 한 커피숍 안.성연이 도착했을 때, 조수경은 이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성연을 본 조수경이 바로 손을 흔들었다.“성연 씨, 여기에요.”성연은 다가가서 조수경의 맞은편에 앉았다.“무슨 일인지 솔직히 얘기하세요.”예쁘게 차려 입은 성연을 보자 조수경의 눈에서 또 한바탕 질투가 났다.‘약혼자가 있는데도 누구한테 보여주고 꼬시려고 이렇게 치장하고 나온 거야?’‘강씨 집안이 아니라면, 송성연 이 촌닭은 평생 이런 명품도 입을 수 없겠지.’조수경은 마음속으로 이미 성연을 전혀 쓸모없는 사람으로 폄하했다.그러나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조수경이 가식적으로 성연에게 사과하기 시작했다.“성연 씨, 당신이 그렇게 오랫동안 오해하게 해서 정말 미안해요. 그날 밤에 나는 정말 무진 오빠를 부축하면서 쉬고 싶었을 뿐이에요. 제가 무진 오빠를 부축하고 돌아가자고 했지만, 오빠는 기어이 거기가 자기 방이라고 말했어요. 바로... 당신이 봤던 모습으로 변했어요. 사실 나와 무진 오빠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성연은 담담한 표정으로 조수경을 바라보았다.“당신이 지금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나는 여전히 당신이 무진 씨와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말하겠어요.”“당연히 무진 오빠하고 거리를 둘 거예요. 저는 곧 회사를 떠날 거예요. 사직서는 이미 작성했어요.”조수경은 사직서를 성연에게 건네주었다.성연은 반신반의하면서 결코 조수경을 완전히 믿지 않았다.‘사직서 하나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어.’그래서 성연이 할 수 없이 말했다.“좋은 곳으로 가기를 바라겠어요.”조수경은 이를 악물었다.마음속으로는 성연이 속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그래도 조급해선 안 돼. 결국 방법이 있을 거야.’성연이 믿지 않는 걸 본 조수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부러 슬픈 눈빛을 드러내면서 자신을 더욱 믿게끔 행동했다.성연이 억지로 웃으며 물었다.“조수경 씨, 뭘 마시고 싶으세요?”조수경의 이런 모습을
이날 성연은 다시 조수경의 전화를 받았다.성연은 원래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다.그때 조수경의 표정과 태도를 모두 똑똑히 보았다.‘그럴듯하게 꾸몄지만 무슨 그럴 필요가 있겠어?’그러나 마침 심심하기도 해서 바로 전화를 받았다. ‘조수경이 또 어떤 수작을 부리는지 두고 봐야지.’전화를 받은 성연은 바로 입을 열지 않았다.성연이 전화를 받았다는 걸 안 조수경이 먼저 말했다.[성연 씨,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이 도시를 떠날 거예요. 이것으로 나는 정말 성연 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겠어요. 내가 유일하게 마음에 걸리는 건 성연씨 당신에게 설명할 수 없다는 거예요.]‘회사를 그만둔다는 건 결코 농담이 아닐 거야.’성연은 조수경의 말을 약간은 믿었지만 완전히 다 믿지는 않았다.‘조수경 이 여자는 너무 잘 꾸미고 간교한 수작도 잘 부려.’ 성연은 반드시 방비하면서 조수경을 쉽게 믿지 말아야 했다.“조수경 씨가 무슨 결정을 내리든 당신의 생각이니, 외부인인 제가 간섭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무진 씨의 약혼녀인 제가 당신에게 무진 씨와 거리를 두라고 요구하는 것도 제 권리입니다.”성연은 담담하게 사무적인 말투로 말했다.조수경에게 무슨 감정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도 귀찮았다.전화기 맞은편의 조수경은 주먹을 꽉 쥐었다.손톱이 살에 박혔지만 아픔을 느끼지도 못했다.그러나 오늘의 목적을 생각하고 조수경은 참았다.조수경이 약간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사실 저는 무진 오빠를 오빠처럼 생각했을 뿐이에요. 집에 일이 생기자 할머니, 고모, 그리고 무진 오빠가 제게 그렇게 잘해 준 건데 성연 씨가 오해한 거예요. 성연 씨를 만나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지난번에 만났을 때 불쾌하게 헤어졌다.성연은 조수경을 만나도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느꼈다.원래는 조수경을 거절하려고 했다.그러나 성연의 심리를 간파한 듯이 조수경이 바로 입을 열고 강조했다.[저는 지금 바로 성연 씨 집 근처에 있어요. 여기서 성연 씨를 기다리고
한바탕 격렬했던 정사가 끝난 후, 조수경은 이 약의 효과가 대단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약을 먹은 후의 모든 과정에서 자신의 의지를 완전히 상실하고 오직 본능만 남았던 것이다.그동안 조수경은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전혀 몰랐다.손민철은 조수경의 이런 행동에 더욱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조수경의 어깨를 껴안고 말했다.“필요하다면 더 큰 프로젝트를 줄게. WS그룹에서의 당신의 지위가 더 확고하게 될 거야.”조수경은 원래 한번 시험해 보려는 마음이었다.뜻밖에도 손민철이 여기 온지 얼마 안 됐는데, 이런 약을 구할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이 약이야 말로 조수경이 오늘 손민철을 만난 목적이었다.다만 손민철의 말은 의외의 놀라움을 주었다.지금 손민철은 확실히 조수경에게 적지 않은 이익을 안겨주었다.WS그룹에서 조수경의 지위는 한층 더 높아졌다.만약 머리를 굴려서 손민철이 기꺼이 자신을 힘껏 돕게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조수경은 손민철의 어깨에 기댄 채 부드럽게 미소지었다.“당신은 내게 정말 잘해 줘.”그런데 당신은 언제 돌아가서 나하고 결혼할 거야? 지금 아버지가 하루 종일 나를 재촉하고 있어.” 손민철은 단지 투정하는 듯이 말했지만, 조수경의 몸을 굳어지게 만들었다.조수경은 손민철을 보면서 애교를 부렸다.“우리는 지금도 좋지 않아?”“하지만 정하면 더 좋지. 우리 둘은 당당하게 함께 할 수 있어, 설마 당신은 그러고 싶지 않은 거야?” 손민철은 조수경을 떠보았다.조수경은 지금 어쨌든 손민철이라는 이 조력자를 잃을 수 없다.그래서 손민철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지금 우리의 큰 계획도 완성하지 못했는데, 결혼은 성공한 뒤에 다시 이야기해. 만약 강무진이 우리가 결혼한다는 걸 알게 된다면, 나를 WS그룹에 남겨두겠어? 지금 강씨 가문에서 순전히 동정 때문에 나를 받아들였는데, 나는 이 보호막을 잃고 싶지 않아”손민철은 그런 일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기본적으로 조수경이 말하는 대로 하는 것일뿐.지
오늘 조수경은 청순한 재스민 같은 평소의 스타일을 완전히 바꿨다.오늘은 빨간색의 깊은 브이넥 원피스를 입었는데, 원래 겉에 숄을 하나 더 걸쳤다.방금 문을 열러 나올 때에 숄은 이미 벗어버린 뒤.조수경은 또 손민철을 향해 눈을 깜박였다.“나 오늘 예뻐?”“아름다워, 너는 언제나 가장 아름다워.” 손민철은 이미 더는 기다릴 수가 없었다.조수경이 손민철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당신은 왜 매번 그렇게 조급해?”“너 때문이야, 내가 어떻게 조급하지 않을 수 있겠어? 매번 나를 이렇게 유혹하는데.” 손민철이 다가가서 조수경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조수경은 거부하지 않고 손민철의 목을 껴안았다.“오늘 어쩐 일이야? 웬일로 나를 찾을 마음이 생겼어?” 손민철은 정말 어렵게 조수경의 이런 모습을 보게 되었다고 느꼈다.“일이 없으면 당신을 찾을 수 없어?” 조수경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동작 하나하나가 모두 손민철이 넋을 잃게 만들었다.손민철이 좀 더 진도를 나가려고 하자, 조수경이 손을 붙잡고 말했다.“조급해하지 마.”손민철의 눈은 이미 욕망으로 빨갛게 달아올랐는데, 지금 막히자 더 짜증이 났다.“왜 그래? 나를 오라고 해놓고 나를 가지고 놀려는 거야?”조수경은 눈살을 찌푸렸다.“당신, 지금 나한테 그런 나쁜 말투로 말한 거야?”그리고 눈에는 불만이 가득했다.상황을 파악한 손민철이 얼른 구슬리며 말했다.“그런 뜻이 아니야.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당신을 볼 때마다 내 자신을 통제할 수가 없어. 당신이 내 성격을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조수경 잠시 생각했다.‘하긴, 그렇지 않았다면 나도 손민철을 수중에 꽉 쥐지 못했을 거야.’‘지금 이 시점에서는 모든 자원을 이용해야 해.’‘그럼 바로 손민철부터야.’“나는 당신하고 재미있게 즐기고 싶어. 늘 그런 식이면 전혀 새로운 게 없잖아.”“어떻게 놀고 싶은데?” 손민철도 물론 자극적으로 즐기고 싶었지만, 매번 조수경이 동의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지금 조수경이 먼
무진과 성연은 방금 집에 돌아왔다.성연이 떠나지 않았다는 소식이 조수경의 귀에 전해졌다.이 소식을 듣고 조수경은 은근히 기분이 나빠졌다.원래는 송성연이 떠나면 다시 강무진에게 제대로 사과할 생각이었다.그리고 안금여와 강운경이 좋게 말해 주도록 유도해서 다시 무진의 신임을 얻는 것이다.‘그런데 결국 이렇게 되어 버렸어.’‘송성연이 저기에 떡하니 있으니,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어.’송성연이 없다면 조수경은 불쌍한 척 가장해서, 저들이 자신을 측은하게 여기고 동정하게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게 할 수 없게 됐어.’조수경은 송성연을 혼내 주기 위해서 심사숙고했다.그렇지 않으면, 이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사실 강씨 가문에서 나온 뒤 조수경의 생활은 힘들지 않았다.지금 살고 있는 곳도 큰 빌라였다.‘마음이 울적해.’‘이런 고급 빌라에 사는 게 무슨 소용이 있어?’조수경이 꿈꾸는 것은 강씨 가문의 사모님이 되어 높임 받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그래서 반드시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한참을 생각한 끝에 한 사람을 떠올렸다.그 사람은 바로 손민철.조수경은 북성에 친척도 친구도 없다.어쩌면 지금 곳곳에서 무진이 감시하고 있을지도 몰랐다.‘다른 사람을 부르는 건 아주 불편해.’‘오직 손민철만 가능해. 내가 손민철과 접촉하는 건 누구도 절대 생각하지 못할 거야.’결국 조수경이 이전에 가졌던 손민철에 대한 공포감이 이미 마음속에 깊이 파고들었다.조수경은 바로 호텔로 갔다.호텔에 도착한 뒤 손민철에게 전화를 걸었다.“시간 있어요?” 조수경의 목소리는 달콤하고 매혹적이다.조수경에 푹 빠져 있던 손민철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설사 지금 일이 있다 해도 즉시 내팽개칠 터였다![있어, 당연히 시간이 있지. 우리 자기가 어쩐 일이야?]“나는 호텔에 있어, 당신... 올래?” 조수경은 일부러 말을 길게 끌었다.[가야지! 주소를 보내줘.] 손민철이 얼른 말했다.조수경이 먼저 자신을 찾는 건 정말 아주
휴대폰 화면을 넘기며 탑승을 준비하고 있던 성연.전세기라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막 뉴스를 검색하던 화면 위에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 관한 속보가 떴다.성연은 얼른 기사를 찾아 읽었다.역시 학교 안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 때문에 지금은 학생들이 학교 안에 머무를 수 없다는, 그리고 당분간 휴교한다는 내용이었다.기사를 확인한 성연이 걸음을 멈추었다.그녀는 속으로 탄식했다.‘설마 나보고 북성에 남으라는 하늘의 계시인 걸까?’‘기왕에 이렇게 되었으니 여기에 남아야지.’‘무진 씨가 다시 한번 결혼 이야기를 꺼내면, 그럼 이번 기회에 못 이기는 척 결혼을 할 수도 있어.’그때 쫓아온 무진도 성연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걸 보고, 초조하게 유럽 학교의 상황을 설명했다.“지금 유럽 쪽은 너무 위험해. 위험이 지나가고 학교의 일을 잘 해결되고 난 후에 다시 가도록 해.”성연이 웃으면서 말했다.“그럼 내가 국내에 남아서 무진 씨를 많이 돌봐야겠네요.”무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면서 눈에는 미소가 짙게 어려 있었다.성연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봐, 하늘도 우리 이별을 허락하지 않는 거야.”“그건 그래요.” 성연은 무진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이제 집으로 가자, 응?” 무진이 성연의 마음을 달래며 말했다.성연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우리 집으로 가요.”‘이제 유럽도 못 가는데 집에 가는 것 말고 또 어디를 갈 수 있겠어?’그동안의 우울한 분위기는 말끔히 사라지고, 돌아가는 길에 무진의 눈에서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그만큼 정말 기분이 상쾌했다.성연도 아주 홀가분한 마음이었다.‘어차피 뜻밖의 사고인 이상, 순리 대로 따르는 거야.’성연은 무진과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있으면서 서로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되었다.‘무진 씨의 사람됨은 믿을 수 있어.’‘그리고 무진 씨 곁에는 여자가 너무 많아.’성연도 일찌감치 무진과 결정하려고 했다. ‘그러면 그렇게 많은 여자들이 무진 씨를 기웃거리지 않을 거야!’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