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혜선은 성연이 멍하니 있자 입꼬리를 당겨 올리면서 살짝 웃어 보였다.“생각해 보니, 당신은 아직 나에 대해 모르는 것 같군요. 내 소개를 하자면, 나는 진혜선이라고 해요. 다국적 무역을 하고 있어요. 나는 당신이 누군지 알고 있어요. 강무진 대표의 약혼녀지요?”성연은 의문이 들었다.“무진 씨를 아세요?”“그저 아는 사이가 아니라 아주 친한 걸요. 강무진 대표도 나를 누나라고 부르지요.”진혜선의 동작 하나하나에 성숙한 여인의 매력이 넘쳤다.‘엄청난 카리스마를 가졌으면서도 친화력이 좋아.’‘그러나 이런 친화력은 자신의 기세에 눌린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상황 하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나오는 거야.’‘아주 교양이 있는 사람이야.’‘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 절도 있는 행동들이 사람을 아주 편안하게 해.’‘이 여자는 인간관계 처리가 아주 여유 있어.’이 모든 게 진혜선에 대한 성연의 첫인상이었다.게다가 방금 자신을 도와주었기에, 성연은 진혜선에 대한 호감도가 더 높아졌다.“안녕하세요, 여사님. 저는 송성연이라고 합니다.” 성연도 자기소개를 하며 대답했다.“당신도 나를 언니라고 불러요. 여사님이라고 부르면 어찌나 서먹한 기분이 드는지. 그렇지만 나는 성연 씨가 맘에 들어요.” 진혜선이 시원시원하게 말했다.성연을 본 진혜선은 첫눈에 성연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원래는 강무진 때문이었지만, 성연과 얘기를 나누면서 성연을 여동생으로 대하려는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진혜선의 솔직하고 화통한 말이 성연을 좀 쑥스럽게 만들었다.“혜선 언니.”“자, 우선 이걸 걸쳐. 안 그러면 금세 추워질 거야.” 진혜선이 직원을 불러 성연이 걸칠 외투를 가져오게 했다.“괜찮아요, 숄로 가릴 수 있어요.” 성연은 진혜선이 자신에게 너무 잘해 주는 것 같아서 바로 잘 적응이 되지 않았다.“이제 밤이 깊어져서 이슬도 맺히고 꽤나 쌀쌀해. 나한테 사양할 필요 없어. 나를 언니라고 불렀으니 내가 도와주는 건 당연한 거야.”성연의 거절
무진은 몹시 흥분한 모습이었다.평온하기만 하던 그가 드물게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무진이 혜선을 부르는 호칭에 성연은 순간 멍해졌다.‘너무 친근한 느낌이잖아!’자신도 모르게 무진과 진혜선이 도대체 어떤 관계인지 생각하게 되었다.진혜선은 온화한 표정을 지으면서 살짝 웃었다.“꼬맹이가 다 커서 대표님이 되다니, 이제는 누나가 너를 못 쫓아가겠어.”혜선의 말을 들은 무진은 왠지 좀 너그러운 표정이 되었다.머뭇거리는 기색이 아주 부자연스럽게 보였다.무진이 진짜 사이가 좋은 상대에게만 드러내는 표정.느긋하게 긴장을 푼 무진이 눈앞의 상대에게 무방비한 상태로 있을 때의 모습.성연은 이런 표정을 짓는 무진을 처음 보았다.무의식적으로 입술을 깨문 성연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시선만 진혜선과 무진 사이를 왔다갔다했다.무진이 말이 없자, 진혜선은 농담을 멈추고 손을 들어 성연의 어깨 위에 얹었다.“내가 네 약혼녀를 찾아서 이야기하고 있었어.”성연은 즉시 마음속의 의혹을 거두고 얼른 받았다.“혜선 언니가 방금 나를 도와줬어요.”“혜선아, 고마워.”서프라이즈가 한차례 지나간 후, 무진은 이미 평상 시의 담담함을 회복했다.진혜선이 손을 흔들어 이번에 나서서 도운 걸 전혀 마음에 두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오늘 이 장소는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적당하지 않아. 다음에 내가 다시 너희 커플을 찾아 갈게. 오늘은 일단 사람들을 좀 응대해야 해.”진혜선도 오늘 밤 이 모임의 중심 인물 중 한 명이었다.그녀가 바쁜 데다가 여기 또한 지나간 얘기들을 나눌만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 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진혜선이 떠나자, 무진이 성연의 손을 잡았다.“조금 전에 누가 널 괴롭혔던 거야?”“별 거 아니에요. 파리 몇 마리가 좀 귀찮게 굴었을 뿐이에요.”“왜 나를 부르지 않았어?” 무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감히 내가 있는 자리에서 성연을 괴롭히는 인간이 있어?’“무진 씨는 바쁘잖아요? 내가 해결할 수 있어요.” 조금 전의 상황에
모임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그러나 성연의 마음은 좀 휑한 상태에 몹시 답답했다.‘진혜선, 너무 아름다워. 마치 여신처럼 저 멀리 아득히 높은 곳에 있는 것 같아.’‘보통의 여자들은 그 여자 앞에서 자신이 못나게 여겨지겠지?’성연도 예외는 아니다.성연도 보통 여자들처럼 자신감이 엄청 강하고 그렇지는 않았다.원래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지만, 진혜선이 무진에게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차에 탄 뒤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성연의 감정이 널뛰기를 심했다.한참을 생각해도 끝내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아니면 무진에게서 답을 찾고 싶은 것일까?성연은 차에 앉아서 무심코 묻는 척했다.“혜선 언니는 뭐 하는 사람이에요?”무진은 여태까지 성연에게 숨긴 적이 없었다.“혜선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자라는 내내 같이 어울리던 친구야. 나보다 두 살이 많은데, 사업적인 감각도 뛰어나고 고생도 마다하지 않아. 아프리카 지역의 사업은 가서 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어. 진씨 가문에서 이번에 아프리카 사업을 확장하면 실력이 한 단계 더 올라갈 거야. 강씨 집안의 절반 정도의 실력은 가지고 있어.”옛날을 떠올려 보면, 진씨 가문은 아주 작은 가문이었다.“지금의 진씨 가문이 있게 된 건 모두 진혜선의 공로 덕분이야.”성연은 진혜선 같은 아름다운 미인이 아프리카처럼 척박한 곳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 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그러나 진혜선은 아프리카에 건너가 머물렀다. 건너 간 지 벌써 5년이 되도록.진혜선은 여장부가 확실했다.성연이 시큰둥하게 말했다.“그럼 무진 씨와 혜선 언니는 죽마고우인 거네요?”무진은 성연의 말투가 좀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서로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어.”‘어디 그 뿐이겠어! 그야말로 아주 친밀한 사이가 됐겠지.’‘가족을 제외하고, 무진 씨의 외부 사람에 대한 평가가 그렇게 높은 건 처음 봤어.’“혜선이는 아주 뛰어난 사람이야. 나중에 만나면 너도 알게 될 거야.”무진의 말에서 진혜선에
“나하고 혜선이는 어렸을 때 장난꾸러기였어. 혜선이는 아주 말괄량이었지. 고택 뒤쪽에 산이 하나 있는데, 혜선이는 늘 나를 데리고 산에 올라갔어. 산을 넘고 고개를 넘으면서 온갖 희한한 열매들을 수집하기도 했지.”“한번은 정원에 들어가서 풀을 뽑아서 할머니를 깜짝 놀라게 해드리고 싶었어. 그런데 뽑은 풀들이 모두 할머니가 키우시던 진귀한 꽃 모종이었던 거지. 엄청 화가 나신 할머니가 우리 두 사람을 사당 안에서 무릎을 꿇게 하셨는데, 몰래 빠져나간 혜선이가 먹을 걸 가지고 와서 내게 먹여 줬지.”어렸을 때의 일들을 언급하면서 무진이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진혜선과 함께 했던 추억 가득한 시간들이 정말 좋았던 모양이다.“어렸을 때 일인데 아직도 그렇게 똑똑히 기억하는 거예요?” 성연이 입술을 삐죽거렸다.‘무진 씨의 기억 가장 깊은 곳에는 진혜선이라는 여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잘 기억 안 나는 것도 있지만, 혜선이를 보니 자연히 기억이 나네.”“초등학교 때, 밝고 명랑한 성격인 혜선이는 학교에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어. 내가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혜선이가 마치 큰 누나 같은 기세로 나타나서 아래 학년인 나를 도와줬어.”당시 진혜선이 위세를 부리던 모습을 떠올리던 무진은 아직도 생생한 기억에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그때, 그의 부모님이 비행기 사고로 돌아가셨다.그 사람들이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강씨 가문은 넋이 나간 상태였고, 무진 그는 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로 거친 아이였다.성격이 내성적인 무진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게 어려웠다.이전에 무진에게 아부하던 사람들이 하룻밤 사이에 변했다.가장 악랄한 말로 그를 공격했고, 화장실에 가두고 찬물을 끼얹기도 했었다.불쑥 앞에 나타난 진혜선이 무진에게 깨끗한 옷을 건네면서 따뜻하게 위로해 주기도 했었다.진혜선이 아니었다면 그 당시를 견딜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그래서 진혜선에 대해서는 줄곧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죽마고우인 진혜선이 강무진을 구
무진과 성연의 집, 엠파이어 하우스.무진이 성연을 가볍게 안아 침실로 들어가 침대에 내려놓은 후에 이불을 덮어주었다.‘성연이 처음에는 자는 척하더니 결국 진짜 잠이 들었군.’잠든 모습은 정신이 나갈 정도로 사랑스러웠다.무진의 손끝이 성연의 뺨을 가볍게 스쳐갔다.무진은 성연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한 뒤에 불을 끄고 나갔다.서재에 들어가니, 손건호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수트 상의를 벗고 의자에 기대어 앉은 무진이 관자놀이를 가볍게 비비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보스, 적호의 행적이 다시 드러났습니다. 우리 수하들이 발견했습니다.”눈을 크게 뜬 무진이 몸을 곧게 펴고 손건호를 바라보았다.“어디에 있어?”손건호는 적호를 찾으려는 무진의 절박한 심정을 알기에 경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보스, 이건 함정일 가능성이 높습니다.”적호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킬러다.그들이 지난번에 적호의 행방을 발견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다.이는 절대 적호가 일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적호가 고의로 허점을 드러내면서 자신들을 끌어들이려는 가능성이 높았다.적호가 자신들을 데리고 놀고 있는 것이다.그런데 그는 왜 무진이 감히 맞서 싸우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것일까?무진의 눈에 노기가 잔뜩 들어차며,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지난번에 적호 그 놈이 내 수하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어.’‘이 원수는 반드시 갚아야 해.’이곳은 북성, 아무리 적호라고 해도 그는 혼자다.무진이 그를 겁낼 까닭이 없었다.“준비해, 내가 직접 적호를 만나러 갈 계획이야.”무진이 의자에서 일어났다.손건호가 만류했다.“보스, 그만두시는 게 어떻습니까? 적호의 이번 목적은 너무 확실합니다. 바로 우리를 나오게 하려는 겁니다. 우리는 다음 기회를 기다리면 됩니다.”“안 돼, 적호가 이 연막탄을 터뜨렸어. 나를 끌어들이려고 적호는 반드시 현장에 있을 거야. 그가 나타나기만 하면 우리는 이 기회에 제거할 수 있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기다리기만 하면 위험 요소만 한 층 더
무진은 사람들을 데리고 적호가 있다는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이전과 달랐다.지금 적호가 기거하고 있는 곳은 빈민가로 복잡하고 지저분했다.마지막 동에 이르렀을 때, 앞에서 안내하던 수하가 동작을 멈추었다.무진이 고개를 들어 건물을 바라보았다.수리를 중단한 지 이미 오래되어 보였다. 자잘한 전구 몇 개가 깜박였다.가장자리의 창문도 곧 떨어질 것 같았다.“적호가 정말 여기에 살고 있을까?”누가 물었다.‘어떻게 말하든 적호는 어쨌든 최고의 킬러다. 임무 하나를 맡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수십억 원을 받는다. 그런 적호가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무진은 오히려 적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진짜 킬러라고 느꼈다.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환경, 조건에도 적응할 수 있다니.적호가 자신들의 적이라는 사실은 잠시 제쳐놓는다면, 무진은 그런 적호의 정신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조용히 해. 방심하지 말고 경계해야 해.” 무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당부했다.그 사람이 바로 입을 다물었다.무진은 사람들을 데리고 천천히 복도에 접근했다.깜빡거리는 불빛이 그들의 얼굴을 비추었다.계단도 무거운 하중을 감당하지 못한 채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계단에 들어서자마자 정면에서 검은 모습이 나타났다.그의 얼굴은 어둠 속에 숨겨져 있었지만, 한순간 밝아진 불빛이 바로 그 사람의 얼굴을 똑똑히 비추었다.그의 얼굴에는 놀랍게도 흉악해 보이는 칼자국이 하나 있었다.‘저 놈이 바로 적호군!’정신을 차리자마자 날카로운 주먹이 무진을 향해 곧장 엄습했다.무진이 허리를 굽혀 적호의 동작을 피하면서 빠르게 맞이했다.그러나 이 주먹만으로도 무진의 적호에 대한 인식이 뒤집혔다.예전에 그들은 적호를 너무 얕보았다.‘방금 적호가 뻗은 주먹의 힘과 타격의 방향을 생각하면, 미처 피하지 못했다면 바로 즉사했을 가능성이 높겠군.’‘적호, 정말 강한 놈이군.’‘실력이 이전보다 많이 늘은 것 같아서 상대하기가 더 힘들겠어.’‘역시 킬러 차트에 오를 만한 놈이야.’킬러 차
수하들은 무진이 드러나지 않도록 주변을 에워싸듯이 보호하면서, 동시에 적호를 공격했다.뒤에 선 무진은 적호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기회를 엿보았다.몇 몇이 적호와 뒤엉켜 싸웠다.고요한 복도에 근육이 부딪치는 소리들로 가득하다.이들은 조직에서 선발된 최정예 요원들이다.그러나 이들의 연합 공격에도 적호는 여유가 넘쳤다. 심지어 무진의 수하들이 점점 뒤로 밀려나는 상황.무진이 미간을 찌푸렸다.‘적호가 너무 강하군. 수하들은 적호의 반격을 전혀 못 받아내고 있어.’‘퍽’손건호가 돌려차기로 적호의 가슴을 걷어찼다.온몸이 뒤로 물러나면서 벽에 부딪친 적호가 윽, 하고 침음성을 냈다.‘바로 지금이야!’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내달린 무진이 적호에게 다시 한 번 발길질을 날렸다.맹렬한 무진의 공격에 좁은 구석으로 내몰린 적호는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었다.두 손을 들어올려 머리를 감싸 안은 채 방어하기에 급급한 적호는 무진의 반격에 맞설 여력이 전혀 없었다.무진은 전력을 다해 적호를 공격했다.수하들도 가만히 있지 않고 모두 무진을 뒤따라서 적호를 바로 생포할 준비를 했다.적호가 처음으로 이렇게 패색을 드러내자 무진이 그를 바짝 쪼였다.적호 또한 자신이 이렇게 낭패스러운 일을 당하게 될 줄은 몰랐다.이미 주변 환경에 아주 익숙해진 적호.‘지금은 더 이상 남을 수 없게 된 게 분명해.’무진의 공격을 방어하면서 동시에 계단 모퉁이로 물러났다.마지막 힘을 다해 반격하자 무진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틈을 탄 적호가 과감하게 몸을 돌려 2층 계단 입구로 숨었다.순간 적호의 모습이 금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쫓아!”적호가 모습을 감추자 무진의 싸늘한 음성이 빠르게 울렸다.수하들은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서 적호를 추적했다.그들은 꼭대기 층에서 적호를 따라잡았다.전체 층수는 다른 층에 비해 비교적 높아서 맨 위층까지 꼬박 6층이다.적호는 다음 순간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무진의 수하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그들
적호는 도망쳤지만, 그렇다고 무진이 포기한 건 아니었다.적호에 대한 추적은 계속되고 있었다.지난번에 성연과 함께 놀러 가면서 무진의 업무 시간을 많이 뺐었다.회사 대표실 데스크 위에는 처리해야 할 서류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다른 사람들이 결정할 수 없는 많은 서류들이 무진의 결재를 기다리고 있다.지금 회사는 또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요한 시기였다. 무진도 며칠 동안 한가한 시간을 보냈지만, 다시 회사로 돌아온 후부터 바빠진 업무로 조금의 여유도 없었다.회사의 일이 쉴 틈이 없어서, 무진은 자연히 성연과 함께 할 시간을 만들 수가 없었다. 그저 성연이 집에서 잘 지내기만을 바랄 수밖에.성연은 놀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다. 이처럼 긴 시간 동안 집에만 있자, 곧 답답해 죽을 것 같았다.그러나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무진을 볼 때마다 성연은 철 좀 들어, 라고 자신을 타이를 수밖에 없었다.줄곧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는 무진인데, 성연이 신경 쓰이게 할 수는 없었다.무진이 저렇게 피곤한데도 서재의 불빛이 밤새도록 밝게 켜져 있는 걸 보는 성연은 마음이 몹시 아팠다.무진이 저녁에 돌아왔을 때, 성연이 직접 몸에 좋은 보양식을 하나 만들었다.“무진 씨, 왜 그렇게 필사적인 거예요? 회사에 쓸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성연은 무진의 책상 위에 보양식을 올려놓았다.그녀의 말투는 약간 원망을 품고 있었지만, 무진이 수저를 잘 잡을 수 있게 세심하게 도와주었다.“따뜻할 때 빨리 드세요. 모두 무진 씨 몸에 좋은 거예요.”“아랫사람에게 맡기고 좀 쉬어요.” 무진은 국물을 그대로 들이켰다.성연이 무진의 어깨를 껴안았다.“나는 집에 이렇게 있으면서 진작에 충분히 쉬었어요. 무진 씨는 자신의 몸을 전혀 아낄 줄 몰라요.”무진이 성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계획으로야 줄곧 성연과 함께 할 수 있었다. 매일 함께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조금만 시간을 내면 성연 혼자 있게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지금 적호가 등장함으로
성연은 은침으로 두 번 찔렀으니까 적어도 한동안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래도 어지럽고 무기력한 느낌이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어쩔 방법이 없었다.마음 깊은 곳에서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눈앞의 모든 것이 모호해지면서 단지 카타르시스를 찾아 자신의 모든 욕망을 털어놓고 싶을 뿐이다.조수경은 성연이 끊임없이 머리를 흔들며 자신을 깨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이제 다 됐어’조수경은 조급해하지 않으면서 성연의 낭패한 모습을 감상했다.‘평소에 송성연은 나를 볼 때 도도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지?’‘지금은 왜 거드름을 피우지 못하는 거야?’조수경은 계속 일부러 물었다.“성연 씨, 성연 씨, 정말 괜찮아요?”성연은 이제 대답할 힘도 없었다.자신이 무슨 이상한 소리를 낼 것 같아서 가까스로 몸의 반응을 억제했다.성연은 천천히 테이블 위에 엎드려 좀 더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사실 그래도 정신이 약간은 남아 있엇다.하지만 조수경은 성연이 이미 잠들었다고 생각했다.‘더 이상 참을 수 없어.’바로 일어서서 성연의 뒤에 앉아 있는 검은 정장 차림의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빨리 이 여자를 옮겨요.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도록 하고 당신들 마음대로 가지고 놀아요”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는 여전히 경계하는 태도를 유지했다.“여기 사는 사람들은 모두 부자가 아니면 고귀한 신분의 사람들이야. 우리가 지체 높은 사람에게 미움을 사게 하는 건 아니겠지?”말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이곳의 사람들에게 절대 미움을 사면 안 돼.’‘작은 돈 때문에 엮이게 된다면 정말 가치가 없어.’조수경은 상관없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면서 허튼소리를 했다.“이 여자의 차림새를 봐요. 어디 부자 같아 보여요? 바로 학생인데, 내가 여기로 약속을 정하지 않았다면, 평생 그렇게 맛있는 커피를 마셔보지 못했을 거예요.”방금 조수경이 성연과 이야기를 나눌 때 이들도 내용을 똑똑히 듣지 못했다.조수경은 이들에게 여자를 데리고 놀라고 하면서 돈도 많이 주겠다고 했
사실 성연도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기에 조수경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경계심을 놓지 않았다.레모네이드를 마시는 순간 이미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조수경이 자신이 마신 레모네이드에 약을 넣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러나 뜻밖에도 이 약은 너무 독해서, 순식간에 머리가 무거워지면서 현기증이 났다.정신이 혼미해지더니 온몸에서 열이 나면서, 옷을 찢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가 없었다.하지만 여기가 카페이기에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성연은 이것이 무슨 약인지 단번에 알아맞혔다.‘조수경이 나를 초대한 게 바로 이 개떡같은 약을 먹이기 위해서라는 걸 미처 몰랐어.’지금 성연은 조수경을 찢어 죽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원래 조수경은 좀 깨닫게 될 줄 알았어.’‘조수경이 결국 이렇게 간이 배 밖에 나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내게 약을 먹이면 무진 씨가 분노가 폭발할 텐데 두렵지 않은 거야?’‘다른 건 몰라도, 이 위기를 견뎌낸다면 절대 조수경을 용서하지 않겠어!’단호하게 은침을 부러뜨려서 성연은 자신의 허벅지 혈을 찔렀다.간신히 정신이 좀 돌아와서 그나마 겨우 버틸 수 있었다.성연의 볼이 붉어지는 걸 본 조수경은 약효가 곧 올라올 것이라고 생각했다.의기양양한 표정을 하고서 일부러 물었다.“아이고, 성연 씨, 왜 그래요? 어디 아픈 데 있어요? 안색이 좀 이상한데요?”성연은 이를 악물고 맞은편의 조수경을 바라보았다.조수경의 득의양양한 모습을 보자 정말 밟아버리지 못하는 게 한스러웠다.‘조수경,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뒷감당을 생각해 보지도 않은 건 아니겠지?’그러나 성연은 자신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조수경을 끝장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조수경이 또 이어서 자신에게 무슨 수단을 쓸 지 알 수 없었다.성연은 잠시 시간을 끌 수밖에 없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좀 덥네요.”성연은 담담하게 말하면서 조수경에게 자신의 이상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했다.‘송성연, 너의 모든 반응은 얼굴에 드러나 있어.’조수경
성연은 조수경의 계략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게다가 이 약은 확실히 무색무취해서, 은침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성연은 안에 뭐가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레모네이드를 한 모금 마신 성연이 컵을 내려놓았다.그리고 바로 조수경에게 말했다.“당신이 떠나기를 원한다니까, 일단 당신을 믿겠어요. 오늘은 당신도 어떤 심리적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성연은 자신이 조수경을 용서하고 싶은 것도 터무니없다고 느꼈다.그러나 이렇게 말해서 조수경의 양심이 괜찮을 수 있다면 한마디 해도 될 것이다.그리고 성연은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조수경이 고의로 그랬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하지만 조수경이 이미 사직하려고 하는 이상, 앞으로 무진과 만나는 일이 없다는 걸 증명한다면 자신이 굳이 언쟁을 벌일 일도 없을 것이다.“성연 씨. 내게 이런 기회를 줘서 고마워요. 그렇지 않으면 내 마음은 정말 미안했을 거예요.” 조수경은 정말 감동한 듯 성연에게 감사를 표시했다.그러나 성연의 변화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그리고 검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들어왔다.소리 없이 성연의 뒤쪽 자리에 앉았다. 그들은 성연이 중독되어 약효가 나타나면 데려가려고 기다렸다.두 사람이 앉은 곳은 성연의 시선에서 사각지대여서, 성연은 전혀 보지 못했다.“그렇게 너무 많이 생각할 필요 없어요. 이곳을 떠나도 당신의 집에 잘 돌아가면 좋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할머니도 힘드실 거예요.” 성연은 담담하게 말했다.“아니, 난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조수경은 무슨 무서운 일이 생각났는지 놀라서 고개를 저었다.그리고 나서야 자신이 추태를 부렸다는 걸 깨닫고 해명했다.“성연 씨, 정말 숨기지 않겠어요. 누군가 줄곧 나를 귀찮게 하고 있어요. 내가 이번에 여기에 온 것도 그 사람 때문이에요. 만약 내가 돌아간다면 결국 좋은 날이 없을 거예요.”“나는 조수경 씨의 성격이면 어디서든 잘 지낼 수 있다고 믿어요. 당신 생각은요?” 성연이 눈썹을 찌푸렸다.사실 조금만 조사하면 조수경이 말한 게
엠파이어 하우스 부근의 한 커피숍 안.성연이 도착했을 때, 조수경은 이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성연을 본 조수경이 바로 손을 흔들었다.“성연 씨, 여기에요.”성연은 다가가서 조수경의 맞은편에 앉았다.“무슨 일인지 솔직히 얘기하세요.”예쁘게 차려 입은 성연을 보자 조수경의 눈에서 또 한바탕 질투가 났다.‘약혼자가 있는데도 누구한테 보여주고 꼬시려고 이렇게 치장하고 나온 거야?’‘강씨 집안이 아니라면, 송성연 이 촌닭은 평생 이런 명품도 입을 수 없겠지.’조수경은 마음속으로 이미 성연을 전혀 쓸모없는 사람으로 폄하했다.그러나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조수경이 가식적으로 성연에게 사과하기 시작했다.“성연 씨, 당신이 그렇게 오랫동안 오해하게 해서 정말 미안해요. 그날 밤에 나는 정말 무진 오빠를 부축하면서 쉬고 싶었을 뿐이에요. 제가 무진 오빠를 부축하고 돌아가자고 했지만, 오빠는 기어이 거기가 자기 방이라고 말했어요. 바로... 당신이 봤던 모습으로 변했어요. 사실 나와 무진 오빠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성연은 담담한 표정으로 조수경을 바라보았다.“당신이 지금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나는 여전히 당신이 무진 씨와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말하겠어요.”“당연히 무진 오빠하고 거리를 둘 거예요. 저는 곧 회사를 떠날 거예요. 사직서는 이미 작성했어요.”조수경은 사직서를 성연에게 건네주었다.성연은 반신반의하면서 결코 조수경을 완전히 믿지 않았다.‘사직서 하나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어.’그래서 성연이 할 수 없이 말했다.“좋은 곳으로 가기를 바라겠어요.”조수경은 이를 악물었다.마음속으로는 성연이 속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그래도 조급해선 안 돼. 결국 방법이 있을 거야.’성연이 믿지 않는 걸 본 조수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부러 슬픈 눈빛을 드러내면서 자신을 더욱 믿게끔 행동했다.성연이 억지로 웃으며 물었다.“조수경 씨, 뭘 마시고 싶으세요?”조수경의 이런 모습을
이날 성연은 다시 조수경의 전화를 받았다.성연은 원래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다.그때 조수경의 표정과 태도를 모두 똑똑히 보았다.‘그럴듯하게 꾸몄지만 무슨 그럴 필요가 있겠어?’그러나 마침 심심하기도 해서 바로 전화를 받았다. ‘조수경이 또 어떤 수작을 부리는지 두고 봐야지.’전화를 받은 성연은 바로 입을 열지 않았다.성연이 전화를 받았다는 걸 안 조수경이 먼저 말했다.[성연 씨,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이 도시를 떠날 거예요. 이것으로 나는 정말 성연 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겠어요. 내가 유일하게 마음에 걸리는 건 성연씨 당신에게 설명할 수 없다는 거예요.]‘회사를 그만둔다는 건 결코 농담이 아닐 거야.’성연은 조수경의 말을 약간은 믿었지만 완전히 다 믿지는 않았다.‘조수경 이 여자는 너무 잘 꾸미고 간교한 수작도 잘 부려.’ 성연은 반드시 방비하면서 조수경을 쉽게 믿지 말아야 했다.“조수경 씨가 무슨 결정을 내리든 당신의 생각이니, 외부인인 제가 간섭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무진 씨의 약혼녀인 제가 당신에게 무진 씨와 거리를 두라고 요구하는 것도 제 권리입니다.”성연은 담담하게 사무적인 말투로 말했다.조수경에게 무슨 감정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도 귀찮았다.전화기 맞은편의 조수경은 주먹을 꽉 쥐었다.손톱이 살에 박혔지만 아픔을 느끼지도 못했다.그러나 오늘의 목적을 생각하고 조수경은 참았다.조수경이 약간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사실 저는 무진 오빠를 오빠처럼 생각했을 뿐이에요. 집에 일이 생기자 할머니, 고모, 그리고 무진 오빠가 제게 그렇게 잘해 준 건데 성연 씨가 오해한 거예요. 성연 씨를 만나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지난번에 만났을 때 불쾌하게 헤어졌다.성연은 조수경을 만나도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느꼈다.원래는 조수경을 거절하려고 했다.그러나 성연의 심리를 간파한 듯이 조수경이 바로 입을 열고 강조했다.[저는 지금 바로 성연 씨 집 근처에 있어요. 여기서 성연 씨를 기다리고
한바탕 격렬했던 정사가 끝난 후, 조수경은 이 약의 효과가 대단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약을 먹은 후의 모든 과정에서 자신의 의지를 완전히 상실하고 오직 본능만 남았던 것이다.그동안 조수경은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전혀 몰랐다.손민철은 조수경의 이런 행동에 더욱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조수경의 어깨를 껴안고 말했다.“필요하다면 더 큰 프로젝트를 줄게. WS그룹에서의 당신의 지위가 더 확고하게 될 거야.”조수경은 원래 한번 시험해 보려는 마음이었다.뜻밖에도 손민철이 여기 온지 얼마 안 됐는데, 이런 약을 구할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이 약이야 말로 조수경이 오늘 손민철을 만난 목적이었다.다만 손민철의 말은 의외의 놀라움을 주었다.지금 손민철은 확실히 조수경에게 적지 않은 이익을 안겨주었다.WS그룹에서 조수경의 지위는 한층 더 높아졌다.만약 머리를 굴려서 손민철이 기꺼이 자신을 힘껏 돕게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조수경은 손민철의 어깨에 기댄 채 부드럽게 미소지었다.“당신은 내게 정말 잘해 줘.”그런데 당신은 언제 돌아가서 나하고 결혼할 거야? 지금 아버지가 하루 종일 나를 재촉하고 있어.” 손민철은 단지 투정하는 듯이 말했지만, 조수경의 몸을 굳어지게 만들었다.조수경은 손민철을 보면서 애교를 부렸다.“우리는 지금도 좋지 않아?”“하지만 정하면 더 좋지. 우리 둘은 당당하게 함께 할 수 있어, 설마 당신은 그러고 싶지 않은 거야?” 손민철은 조수경을 떠보았다.조수경은 지금 어쨌든 손민철이라는 이 조력자를 잃을 수 없다.그래서 손민철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지금 우리의 큰 계획도 완성하지 못했는데, 결혼은 성공한 뒤에 다시 이야기해. 만약 강무진이 우리가 결혼한다는 걸 알게 된다면, 나를 WS그룹에 남겨두겠어? 지금 강씨 가문에서 순전히 동정 때문에 나를 받아들였는데, 나는 이 보호막을 잃고 싶지 않아”손민철은 그런 일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기본적으로 조수경이 말하는 대로 하는 것일뿐.지
오늘 조수경은 청순한 재스민 같은 평소의 스타일을 완전히 바꿨다.오늘은 빨간색의 깊은 브이넥 원피스를 입었는데, 원래 겉에 숄을 하나 더 걸쳤다.방금 문을 열러 나올 때에 숄은 이미 벗어버린 뒤.조수경은 또 손민철을 향해 눈을 깜박였다.“나 오늘 예뻐?”“아름다워, 너는 언제나 가장 아름다워.” 손민철은 이미 더는 기다릴 수가 없었다.조수경이 손민철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당신은 왜 매번 그렇게 조급해?”“너 때문이야, 내가 어떻게 조급하지 않을 수 있겠어? 매번 나를 이렇게 유혹하는데.” 손민철이 다가가서 조수경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조수경은 거부하지 않고 손민철의 목을 껴안았다.“오늘 어쩐 일이야? 웬일로 나를 찾을 마음이 생겼어?” 손민철은 정말 어렵게 조수경의 이런 모습을 보게 되었다고 느꼈다.“일이 없으면 당신을 찾을 수 없어?” 조수경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동작 하나하나가 모두 손민철이 넋을 잃게 만들었다.손민철이 좀 더 진도를 나가려고 하자, 조수경이 손을 붙잡고 말했다.“조급해하지 마.”손민철의 눈은 이미 욕망으로 빨갛게 달아올랐는데, 지금 막히자 더 짜증이 났다.“왜 그래? 나를 오라고 해놓고 나를 가지고 놀려는 거야?”조수경은 눈살을 찌푸렸다.“당신, 지금 나한테 그런 나쁜 말투로 말한 거야?”그리고 눈에는 불만이 가득했다.상황을 파악한 손민철이 얼른 구슬리며 말했다.“그런 뜻이 아니야.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당신을 볼 때마다 내 자신을 통제할 수가 없어. 당신이 내 성격을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조수경 잠시 생각했다.‘하긴, 그렇지 않았다면 나도 손민철을 수중에 꽉 쥐지 못했을 거야.’‘지금 이 시점에서는 모든 자원을 이용해야 해.’‘그럼 바로 손민철부터야.’“나는 당신하고 재미있게 즐기고 싶어. 늘 그런 식이면 전혀 새로운 게 없잖아.”“어떻게 놀고 싶은데?” 손민철도 물론 자극적으로 즐기고 싶었지만, 매번 조수경이 동의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지금 조수경이 먼
무진과 성연은 방금 집에 돌아왔다.성연이 떠나지 않았다는 소식이 조수경의 귀에 전해졌다.이 소식을 듣고 조수경은 은근히 기분이 나빠졌다.원래는 송성연이 떠나면 다시 강무진에게 제대로 사과할 생각이었다.그리고 안금여와 강운경이 좋게 말해 주도록 유도해서 다시 무진의 신임을 얻는 것이다.‘그런데 결국 이렇게 되어 버렸어.’‘송성연이 저기에 떡하니 있으니,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어.’송성연이 없다면 조수경은 불쌍한 척 가장해서, 저들이 자신을 측은하게 여기고 동정하게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게 할 수 없게 됐어.’조수경은 송성연을 혼내 주기 위해서 심사숙고했다.그렇지 않으면, 이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사실 강씨 가문에서 나온 뒤 조수경의 생활은 힘들지 않았다.지금 살고 있는 곳도 큰 빌라였다.‘마음이 울적해.’‘이런 고급 빌라에 사는 게 무슨 소용이 있어?’조수경이 꿈꾸는 것은 강씨 가문의 사모님이 되어 높임 받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그래서 반드시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한참을 생각한 끝에 한 사람을 떠올렸다.그 사람은 바로 손민철.조수경은 북성에 친척도 친구도 없다.어쩌면 지금 곳곳에서 무진이 감시하고 있을지도 몰랐다.‘다른 사람을 부르는 건 아주 불편해.’‘오직 손민철만 가능해. 내가 손민철과 접촉하는 건 누구도 절대 생각하지 못할 거야.’결국 조수경이 이전에 가졌던 손민철에 대한 공포감이 이미 마음속에 깊이 파고들었다.조수경은 바로 호텔로 갔다.호텔에 도착한 뒤 손민철에게 전화를 걸었다.“시간 있어요?” 조수경의 목소리는 달콤하고 매혹적이다.조수경에 푹 빠져 있던 손민철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설사 지금 일이 있다 해도 즉시 내팽개칠 터였다![있어, 당연히 시간이 있지. 우리 자기가 어쩐 일이야?]“나는 호텔에 있어, 당신... 올래?” 조수경은 일부러 말을 길게 끌었다.[가야지! 주소를 보내줘.] 손민철이 얼른 말했다.조수경이 먼저 자신을 찾는 건 정말 아주
휴대폰 화면을 넘기며 탑승을 준비하고 있던 성연.전세기라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막 뉴스를 검색하던 화면 위에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 관한 속보가 떴다.성연은 얼른 기사를 찾아 읽었다.역시 학교 안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 때문에 지금은 학생들이 학교 안에 머무를 수 없다는, 그리고 당분간 휴교한다는 내용이었다.기사를 확인한 성연이 걸음을 멈추었다.그녀는 속으로 탄식했다.‘설마 나보고 북성에 남으라는 하늘의 계시인 걸까?’‘기왕에 이렇게 되었으니 여기에 남아야지.’‘무진 씨가 다시 한번 결혼 이야기를 꺼내면, 그럼 이번 기회에 못 이기는 척 결혼을 할 수도 있어.’그때 쫓아온 무진도 성연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걸 보고, 초조하게 유럽 학교의 상황을 설명했다.“지금 유럽 쪽은 너무 위험해. 위험이 지나가고 학교의 일을 잘 해결되고 난 후에 다시 가도록 해.”성연이 웃으면서 말했다.“그럼 내가 국내에 남아서 무진 씨를 많이 돌봐야겠네요.”무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면서 눈에는 미소가 짙게 어려 있었다.성연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봐, 하늘도 우리 이별을 허락하지 않는 거야.”“그건 그래요.” 성연은 무진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이제 집으로 가자, 응?” 무진이 성연의 마음을 달래며 말했다.성연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우리 집으로 가요.”‘이제 유럽도 못 가는데 집에 가는 것 말고 또 어디를 갈 수 있겠어?’그동안의 우울한 분위기는 말끔히 사라지고, 돌아가는 길에 무진의 눈에서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그만큼 정말 기분이 상쾌했다.성연도 아주 홀가분한 마음이었다.‘어차피 뜻밖의 사고인 이상, 순리 대로 따르는 거야.’성연은 무진과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있으면서 서로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되었다.‘무진 씨의 사람됨은 믿을 수 있어.’‘그리고 무진 씨 곁에는 여자가 너무 많아.’성연도 일찌감치 무진과 결정하려고 했다. ‘그러면 그렇게 많은 여자들이 무진 씨를 기웃거리지 않을 거야!’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