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혜선은 성연이 멍하니 있자 입꼬리를 당겨 올리면서 살짝 웃어 보였다.“생각해 보니, 당신은 아직 나에 대해 모르는 것 같군요. 내 소개를 하자면, 나는 진혜선이라고 해요. 다국적 무역을 하고 있어요. 나는 당신이 누군지 알고 있어요. 강무진 대표의 약혼녀지요?”성연은 의문이 들었다.“무진 씨를 아세요?”“그저 아는 사이가 아니라 아주 친한 걸요. 강무진 대표도 나를 누나라고 부르지요.”진혜선의 동작 하나하나에 성숙한 여인의 매력이 넘쳤다.‘엄청난 카리스마를 가졌으면서도 친화력이 좋아.’‘그러나 이런 친화력은 자신의 기세에 눌린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상황 하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나오는 거야.’‘아주 교양이 있는 사람이야.’‘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 절도 있는 행동들이 사람을 아주 편안하게 해.’‘이 여자는 인간관계 처리가 아주 여유 있어.’이 모든 게 진혜선에 대한 성연의 첫인상이었다.게다가 방금 자신을 도와주었기에, 성연은 진혜선에 대한 호감도가 더 높아졌다.“안녕하세요, 여사님. 저는 송성연이라고 합니다.” 성연도 자기소개를 하며 대답했다.“당신도 나를 언니라고 불러요. 여사님이라고 부르면 어찌나 서먹한 기분이 드는지. 그렇지만 나는 성연 씨가 맘에 들어요.” 진혜선이 시원시원하게 말했다.성연을 본 진혜선은 첫눈에 성연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원래는 강무진 때문이었지만, 성연과 얘기를 나누면서 성연을 여동생으로 대하려는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진혜선의 솔직하고 화통한 말이 성연을 좀 쑥스럽게 만들었다.“혜선 언니.”“자, 우선 이걸 걸쳐. 안 그러면 금세 추워질 거야.” 진혜선이 직원을 불러 성연이 걸칠 외투를 가져오게 했다.“괜찮아요, 숄로 가릴 수 있어요.” 성연은 진혜선이 자신에게 너무 잘해 주는 것 같아서 바로 잘 적응이 되지 않았다.“이제 밤이 깊어져서 이슬도 맺히고 꽤나 쌀쌀해. 나한테 사양할 필요 없어. 나를 언니라고 불렀으니 내가 도와주는 건 당연한 거야.”성연의 거절
무진은 몹시 흥분한 모습이었다.평온하기만 하던 그가 드물게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무진이 혜선을 부르는 호칭에 성연은 순간 멍해졌다.‘너무 친근한 느낌이잖아!’자신도 모르게 무진과 진혜선이 도대체 어떤 관계인지 생각하게 되었다.진혜선은 온화한 표정을 지으면서 살짝 웃었다.“꼬맹이가 다 커서 대표님이 되다니, 이제는 누나가 너를 못 쫓아가겠어.”혜선의 말을 들은 무진은 왠지 좀 너그러운 표정이 되었다.머뭇거리는 기색이 아주 부자연스럽게 보였다.무진이 진짜 사이가 좋은 상대에게만 드러내는 표정.느긋하게 긴장을 푼 무진이 눈앞의 상대에게 무방비한 상태로 있을 때의 모습.성연은 이런 표정을 짓는 무진을 처음 보았다.무의식적으로 입술을 깨문 성연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시선만 진혜선과 무진 사이를 왔다갔다했다.무진이 말이 없자, 진혜선은 농담을 멈추고 손을 들어 성연의 어깨 위에 얹었다.“내가 네 약혼녀를 찾아서 이야기하고 있었어.”성연은 즉시 마음속의 의혹을 거두고 얼른 받았다.“혜선 언니가 방금 나를 도와줬어요.”“혜선아, 고마워.”서프라이즈가 한차례 지나간 후, 무진은 이미 평상 시의 담담함을 회복했다.진혜선이 손을 흔들어 이번에 나서서 도운 걸 전혀 마음에 두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오늘 이 장소는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적당하지 않아. 다음에 내가 다시 너희 커플을 찾아 갈게. 오늘은 일단 사람들을 좀 응대해야 해.”진혜선도 오늘 밤 이 모임의 중심 인물 중 한 명이었다.그녀가 바쁜 데다가 여기 또한 지나간 얘기들을 나눌만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 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진혜선이 떠나자, 무진이 성연의 손을 잡았다.“조금 전에 누가 널 괴롭혔던 거야?”“별 거 아니에요. 파리 몇 마리가 좀 귀찮게 굴었을 뿐이에요.”“왜 나를 부르지 않았어?” 무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감히 내가 있는 자리에서 성연을 괴롭히는 인간이 있어?’“무진 씨는 바쁘잖아요? 내가 해결할 수 있어요.” 조금 전의 상황에
모임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그러나 성연의 마음은 좀 휑한 상태에 몹시 답답했다.‘진혜선, 너무 아름다워. 마치 여신처럼 저 멀리 아득히 높은 곳에 있는 것 같아.’‘보통의 여자들은 그 여자 앞에서 자신이 못나게 여겨지겠지?’성연도 예외는 아니다.성연도 보통 여자들처럼 자신감이 엄청 강하고 그렇지는 않았다.원래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지만, 진혜선이 무진에게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차에 탄 뒤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성연의 감정이 널뛰기를 심했다.한참을 생각해도 끝내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아니면 무진에게서 답을 찾고 싶은 것일까?성연은 차에 앉아서 무심코 묻는 척했다.“혜선 언니는 뭐 하는 사람이에요?”무진은 여태까지 성연에게 숨긴 적이 없었다.“혜선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자라는 내내 같이 어울리던 친구야. 나보다 두 살이 많은데, 사업적인 감각도 뛰어나고 고생도 마다하지 않아. 아프리카 지역의 사업은 가서 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어. 진씨 가문에서 이번에 아프리카 사업을 확장하면 실력이 한 단계 더 올라갈 거야. 강씨 집안의 절반 정도의 실력은 가지고 있어.”옛날을 떠올려 보면, 진씨 가문은 아주 작은 가문이었다.“지금의 진씨 가문이 있게 된 건 모두 진혜선의 공로 덕분이야.”성연은 진혜선 같은 아름다운 미인이 아프리카처럼 척박한 곳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 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그러나 진혜선은 아프리카에 건너가 머물렀다. 건너 간 지 벌써 5년이 되도록.진혜선은 여장부가 확실했다.성연이 시큰둥하게 말했다.“그럼 무진 씨와 혜선 언니는 죽마고우인 거네요?”무진은 성연의 말투가 좀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서로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어.”‘어디 그 뿐이겠어! 그야말로 아주 친밀한 사이가 됐겠지.’‘가족을 제외하고, 무진 씨의 외부 사람에 대한 평가가 그렇게 높은 건 처음 봤어.’“혜선이는 아주 뛰어난 사람이야. 나중에 만나면 너도 알게 될 거야.”무진의 말에서 진혜선에
“나하고 혜선이는 어렸을 때 장난꾸러기였어. 혜선이는 아주 말괄량이었지. 고택 뒤쪽에 산이 하나 있는데, 혜선이는 늘 나를 데리고 산에 올라갔어. 산을 넘고 고개를 넘으면서 온갖 희한한 열매들을 수집하기도 했지.”“한번은 정원에 들어가서 풀을 뽑아서 할머니를 깜짝 놀라게 해드리고 싶었어. 그런데 뽑은 풀들이 모두 할머니가 키우시던 진귀한 꽃 모종이었던 거지. 엄청 화가 나신 할머니가 우리 두 사람을 사당 안에서 무릎을 꿇게 하셨는데, 몰래 빠져나간 혜선이가 먹을 걸 가지고 와서 내게 먹여 줬지.”어렸을 때의 일들을 언급하면서 무진이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진혜선과 함께 했던 추억 가득한 시간들이 정말 좋았던 모양이다.“어렸을 때 일인데 아직도 그렇게 똑똑히 기억하는 거예요?” 성연이 입술을 삐죽거렸다.‘무진 씨의 기억 가장 깊은 곳에는 진혜선이라는 여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잘 기억 안 나는 것도 있지만, 혜선이를 보니 자연히 기억이 나네.”“초등학교 때, 밝고 명랑한 성격인 혜선이는 학교에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어. 내가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혜선이가 마치 큰 누나 같은 기세로 나타나서 아래 학년인 나를 도와줬어.”당시 진혜선이 위세를 부리던 모습을 떠올리던 무진은 아직도 생생한 기억에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그때, 그의 부모님이 비행기 사고로 돌아가셨다.그 사람들이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강씨 가문은 넋이 나간 상태였고, 무진 그는 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로 거친 아이였다.성격이 내성적인 무진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게 어려웠다.이전에 무진에게 아부하던 사람들이 하룻밤 사이에 변했다.가장 악랄한 말로 그를 공격했고, 화장실에 가두고 찬물을 끼얹기도 했었다.불쑥 앞에 나타난 진혜선이 무진에게 깨끗한 옷을 건네면서 따뜻하게 위로해 주기도 했었다.진혜선이 아니었다면 그 당시를 견딜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그래서 진혜선에 대해서는 줄곧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죽마고우인 진혜선이 강무진을 구
무진과 성연의 집, 엠파이어 하우스.무진이 성연을 가볍게 안아 침실로 들어가 침대에 내려놓은 후에 이불을 덮어주었다.‘성연이 처음에는 자는 척하더니 결국 진짜 잠이 들었군.’잠든 모습은 정신이 나갈 정도로 사랑스러웠다.무진의 손끝이 성연의 뺨을 가볍게 스쳐갔다.무진은 성연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한 뒤에 불을 끄고 나갔다.서재에 들어가니, 손건호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수트 상의를 벗고 의자에 기대어 앉은 무진이 관자놀이를 가볍게 비비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보스, 적호의 행적이 다시 드러났습니다. 우리 수하들이 발견했습니다.”눈을 크게 뜬 무진이 몸을 곧게 펴고 손건호를 바라보았다.“어디에 있어?”손건호는 적호를 찾으려는 무진의 절박한 심정을 알기에 경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보스, 이건 함정일 가능성이 높습니다.”적호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킬러다.그들이 지난번에 적호의 행방을 발견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다.이는 절대 적호가 일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적호가 고의로 허점을 드러내면서 자신들을 끌어들이려는 가능성이 높았다.적호가 자신들을 데리고 놀고 있는 것이다.그런데 그는 왜 무진이 감히 맞서 싸우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것일까?무진의 눈에 노기가 잔뜩 들어차며,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지난번에 적호 그 놈이 내 수하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어.’‘이 원수는 반드시 갚아야 해.’이곳은 북성, 아무리 적호라고 해도 그는 혼자다.무진이 그를 겁낼 까닭이 없었다.“준비해, 내가 직접 적호를 만나러 갈 계획이야.”무진이 의자에서 일어났다.손건호가 만류했다.“보스, 그만두시는 게 어떻습니까? 적호의 이번 목적은 너무 확실합니다. 바로 우리를 나오게 하려는 겁니다. 우리는 다음 기회를 기다리면 됩니다.”“안 돼, 적호가 이 연막탄을 터뜨렸어. 나를 끌어들이려고 적호는 반드시 현장에 있을 거야. 그가 나타나기만 하면 우리는 이 기회에 제거할 수 있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기다리기만 하면 위험 요소만 한 층 더
무진은 사람들을 데리고 적호가 있다는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이전과 달랐다.지금 적호가 기거하고 있는 곳은 빈민가로 복잡하고 지저분했다.마지막 동에 이르렀을 때, 앞에서 안내하던 수하가 동작을 멈추었다.무진이 고개를 들어 건물을 바라보았다.수리를 중단한 지 이미 오래되어 보였다. 자잘한 전구 몇 개가 깜박였다.가장자리의 창문도 곧 떨어질 것 같았다.“적호가 정말 여기에 살고 있을까?”누가 물었다.‘어떻게 말하든 적호는 어쨌든 최고의 킬러다. 임무 하나를 맡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수십억 원을 받는다. 그런 적호가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무진은 오히려 적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진짜 킬러라고 느꼈다.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환경, 조건에도 적응할 수 있다니.적호가 자신들의 적이라는 사실은 잠시 제쳐놓는다면, 무진은 그런 적호의 정신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조용히 해. 방심하지 말고 경계해야 해.” 무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당부했다.그 사람이 바로 입을 다물었다.무진은 사람들을 데리고 천천히 복도에 접근했다.깜빡거리는 불빛이 그들의 얼굴을 비추었다.계단도 무거운 하중을 감당하지 못한 채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계단에 들어서자마자 정면에서 검은 모습이 나타났다.그의 얼굴은 어둠 속에 숨겨져 있었지만, 한순간 밝아진 불빛이 바로 그 사람의 얼굴을 똑똑히 비추었다.그의 얼굴에는 놀랍게도 흉악해 보이는 칼자국이 하나 있었다.‘저 놈이 바로 적호군!’정신을 차리자마자 날카로운 주먹이 무진을 향해 곧장 엄습했다.무진이 허리를 굽혀 적호의 동작을 피하면서 빠르게 맞이했다.그러나 이 주먹만으로도 무진의 적호에 대한 인식이 뒤집혔다.예전에 그들은 적호를 너무 얕보았다.‘방금 적호가 뻗은 주먹의 힘과 타격의 방향을 생각하면, 미처 피하지 못했다면 바로 즉사했을 가능성이 높겠군.’‘적호, 정말 강한 놈이군.’‘실력이 이전보다 많이 늘은 것 같아서 상대하기가 더 힘들겠어.’‘역시 킬러 차트에 오를 만한 놈이야.’킬러 차
수하들은 무진이 드러나지 않도록 주변을 에워싸듯이 보호하면서, 동시에 적호를 공격했다.뒤에 선 무진은 적호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기회를 엿보았다.몇 몇이 적호와 뒤엉켜 싸웠다.고요한 복도에 근육이 부딪치는 소리들로 가득하다.이들은 조직에서 선발된 최정예 요원들이다.그러나 이들의 연합 공격에도 적호는 여유가 넘쳤다. 심지어 무진의 수하들이 점점 뒤로 밀려나는 상황.무진이 미간을 찌푸렸다.‘적호가 너무 강하군. 수하들은 적호의 반격을 전혀 못 받아내고 있어.’‘퍽’손건호가 돌려차기로 적호의 가슴을 걷어찼다.온몸이 뒤로 물러나면서 벽에 부딪친 적호가 윽, 하고 침음성을 냈다.‘바로 지금이야!’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내달린 무진이 적호에게 다시 한 번 발길질을 날렸다.맹렬한 무진의 공격에 좁은 구석으로 내몰린 적호는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었다.두 손을 들어올려 머리를 감싸 안은 채 방어하기에 급급한 적호는 무진의 반격에 맞설 여력이 전혀 없었다.무진은 전력을 다해 적호를 공격했다.수하들도 가만히 있지 않고 모두 무진을 뒤따라서 적호를 바로 생포할 준비를 했다.적호가 처음으로 이렇게 패색을 드러내자 무진이 그를 바짝 쪼였다.적호 또한 자신이 이렇게 낭패스러운 일을 당하게 될 줄은 몰랐다.이미 주변 환경에 아주 익숙해진 적호.‘지금은 더 이상 남을 수 없게 된 게 분명해.’무진의 공격을 방어하면서 동시에 계단 모퉁이로 물러났다.마지막 힘을 다해 반격하자 무진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틈을 탄 적호가 과감하게 몸을 돌려 2층 계단 입구로 숨었다.순간 적호의 모습이 금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쫓아!”적호가 모습을 감추자 무진의 싸늘한 음성이 빠르게 울렸다.수하들은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서 적호를 추적했다.그들은 꼭대기 층에서 적호를 따라잡았다.전체 층수는 다른 층에 비해 비교적 높아서 맨 위층까지 꼬박 6층이다.적호는 다음 순간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무진의 수하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그들
적호는 도망쳤지만, 그렇다고 무진이 포기한 건 아니었다.적호에 대한 추적은 계속되고 있었다.지난번에 성연과 함께 놀러 가면서 무진의 업무 시간을 많이 뺐었다.회사 대표실 데스크 위에는 처리해야 할 서류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다른 사람들이 결정할 수 없는 많은 서류들이 무진의 결재를 기다리고 있다.지금 회사는 또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요한 시기였다. 무진도 며칠 동안 한가한 시간을 보냈지만, 다시 회사로 돌아온 후부터 바빠진 업무로 조금의 여유도 없었다.회사의 일이 쉴 틈이 없어서, 무진은 자연히 성연과 함께 할 시간을 만들 수가 없었다. 그저 성연이 집에서 잘 지내기만을 바랄 수밖에.성연은 놀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다. 이처럼 긴 시간 동안 집에만 있자, 곧 답답해 죽을 것 같았다.그러나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무진을 볼 때마다 성연은 철 좀 들어, 라고 자신을 타이를 수밖에 없었다.줄곧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는 무진인데, 성연이 신경 쓰이게 할 수는 없었다.무진이 저렇게 피곤한데도 서재의 불빛이 밤새도록 밝게 켜져 있는 걸 보는 성연은 마음이 몹시 아팠다.무진이 저녁에 돌아왔을 때, 성연이 직접 몸에 좋은 보양식을 하나 만들었다.“무진 씨, 왜 그렇게 필사적인 거예요? 회사에 쓸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성연은 무진의 책상 위에 보양식을 올려놓았다.그녀의 말투는 약간 원망을 품고 있었지만, 무진이 수저를 잘 잡을 수 있게 세심하게 도와주었다.“따뜻할 때 빨리 드세요. 모두 무진 씨 몸에 좋은 거예요.”“아랫사람에게 맡기고 좀 쉬어요.” 무진은 국물을 그대로 들이켰다.성연이 무진의 어깨를 껴안았다.“나는 집에 이렇게 있으면서 진작에 충분히 쉬었어요. 무진 씨는 자신의 몸을 전혀 아낄 줄 몰라요.”무진이 성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계획으로야 줄곧 성연과 함께 할 수 있었다. 매일 함께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조금만 시간을 내면 성연 혼자 있게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지금 적호가 등장함으로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