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은 사람들을 데리고 적호가 있다는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이전과 달랐다.지금 적호가 기거하고 있는 곳은 빈민가로 복잡하고 지저분했다.마지막 동에 이르렀을 때, 앞에서 안내하던 수하가 동작을 멈추었다.무진이 고개를 들어 건물을 바라보았다.수리를 중단한 지 이미 오래되어 보였다. 자잘한 전구 몇 개가 깜박였다.가장자리의 창문도 곧 떨어질 것 같았다.“적호가 정말 여기에 살고 있을까?”누가 물었다.‘어떻게 말하든 적호는 어쨌든 최고의 킬러다. 임무 하나를 맡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수십억 원을 받는다. 그런 적호가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무진은 오히려 적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진짜 킬러라고 느꼈다.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환경, 조건에도 적응할 수 있다니.적호가 자신들의 적이라는 사실은 잠시 제쳐놓는다면, 무진은 그런 적호의 정신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조용히 해. 방심하지 말고 경계해야 해.” 무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당부했다.그 사람이 바로 입을 다물었다.무진은 사람들을 데리고 천천히 복도에 접근했다.깜빡거리는 불빛이 그들의 얼굴을 비추었다.계단도 무거운 하중을 감당하지 못한 채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계단에 들어서자마자 정면에서 검은 모습이 나타났다.그의 얼굴은 어둠 속에 숨겨져 있었지만, 한순간 밝아진 불빛이 바로 그 사람의 얼굴을 똑똑히 비추었다.그의 얼굴에는 놀랍게도 흉악해 보이는 칼자국이 하나 있었다.‘저 놈이 바로 적호군!’정신을 차리자마자 날카로운 주먹이 무진을 향해 곧장 엄습했다.무진이 허리를 굽혀 적호의 동작을 피하면서 빠르게 맞이했다.그러나 이 주먹만으로도 무진의 적호에 대한 인식이 뒤집혔다.예전에 그들은 적호를 너무 얕보았다.‘방금 적호가 뻗은 주먹의 힘과 타격의 방향을 생각하면, 미처 피하지 못했다면 바로 즉사했을 가능성이 높겠군.’‘적호, 정말 강한 놈이군.’‘실력이 이전보다 많이 늘은 것 같아서 상대하기가 더 힘들겠어.’‘역시 킬러 차트에 오를 만한 놈이야.’킬러 차
수하들은 무진이 드러나지 않도록 주변을 에워싸듯이 보호하면서, 동시에 적호를 공격했다.뒤에 선 무진은 적호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기회를 엿보았다.몇 몇이 적호와 뒤엉켜 싸웠다.고요한 복도에 근육이 부딪치는 소리들로 가득하다.이들은 조직에서 선발된 최정예 요원들이다.그러나 이들의 연합 공격에도 적호는 여유가 넘쳤다. 심지어 무진의 수하들이 점점 뒤로 밀려나는 상황.무진이 미간을 찌푸렸다.‘적호가 너무 강하군. 수하들은 적호의 반격을 전혀 못 받아내고 있어.’‘퍽’손건호가 돌려차기로 적호의 가슴을 걷어찼다.온몸이 뒤로 물러나면서 벽에 부딪친 적호가 윽, 하고 침음성을 냈다.‘바로 지금이야!’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내달린 무진이 적호에게 다시 한 번 발길질을 날렸다.맹렬한 무진의 공격에 좁은 구석으로 내몰린 적호는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었다.두 손을 들어올려 머리를 감싸 안은 채 방어하기에 급급한 적호는 무진의 반격에 맞설 여력이 전혀 없었다.무진은 전력을 다해 적호를 공격했다.수하들도 가만히 있지 않고 모두 무진을 뒤따라서 적호를 바로 생포할 준비를 했다.적호가 처음으로 이렇게 패색을 드러내자 무진이 그를 바짝 쪼였다.적호 또한 자신이 이렇게 낭패스러운 일을 당하게 될 줄은 몰랐다.이미 주변 환경에 아주 익숙해진 적호.‘지금은 더 이상 남을 수 없게 된 게 분명해.’무진의 공격을 방어하면서 동시에 계단 모퉁이로 물러났다.마지막 힘을 다해 반격하자 무진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틈을 탄 적호가 과감하게 몸을 돌려 2층 계단 입구로 숨었다.순간 적호의 모습이 금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쫓아!”적호가 모습을 감추자 무진의 싸늘한 음성이 빠르게 울렸다.수하들은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서 적호를 추적했다.그들은 꼭대기 층에서 적호를 따라잡았다.전체 층수는 다른 층에 비해 비교적 높아서 맨 위층까지 꼬박 6층이다.적호는 다음 순간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무진의 수하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그들
적호는 도망쳤지만, 그렇다고 무진이 포기한 건 아니었다.적호에 대한 추적은 계속되고 있었다.지난번에 성연과 함께 놀러 가면서 무진의 업무 시간을 많이 뺐었다.회사 대표실 데스크 위에는 처리해야 할 서류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다른 사람들이 결정할 수 없는 많은 서류들이 무진의 결재를 기다리고 있다.지금 회사는 또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요한 시기였다. 무진도 며칠 동안 한가한 시간을 보냈지만, 다시 회사로 돌아온 후부터 바빠진 업무로 조금의 여유도 없었다.회사의 일이 쉴 틈이 없어서, 무진은 자연히 성연과 함께 할 시간을 만들 수가 없었다. 그저 성연이 집에서 잘 지내기만을 바랄 수밖에.성연은 놀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다. 이처럼 긴 시간 동안 집에만 있자, 곧 답답해 죽을 것 같았다.그러나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무진을 볼 때마다 성연은 철 좀 들어, 라고 자신을 타이를 수밖에 없었다.줄곧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는 무진인데, 성연이 신경 쓰이게 할 수는 없었다.무진이 저렇게 피곤한데도 서재의 불빛이 밤새도록 밝게 켜져 있는 걸 보는 성연은 마음이 몹시 아팠다.무진이 저녁에 돌아왔을 때, 성연이 직접 몸에 좋은 보양식을 하나 만들었다.“무진 씨, 왜 그렇게 필사적인 거예요? 회사에 쓸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성연은 무진의 책상 위에 보양식을 올려놓았다.그녀의 말투는 약간 원망을 품고 있었지만, 무진이 수저를 잘 잡을 수 있게 세심하게 도와주었다.“따뜻할 때 빨리 드세요. 모두 무진 씨 몸에 좋은 거예요.”“아랫사람에게 맡기고 좀 쉬어요.” 무진은 국물을 그대로 들이켰다.성연이 무진의 어깨를 껴안았다.“나는 집에 이렇게 있으면서 진작에 충분히 쉬었어요. 무진 씨는 자신의 몸을 전혀 아낄 줄 몰라요.”무진이 성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계획으로야 줄곧 성연과 함께 할 수 있었다. 매일 함께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조금만 시간을 내면 성연 혼자 있게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지금 적호가 등장함으로
성연이 백화점에 거의 다 왔을 때, 갑자기 타이어가 미끄러지면서 차가 통제력을 잃었다.급히 핸들을 잡고 차의 방향을 제어하면서 브레이크를 세게 밟았다.끼익!차가 가드레일에 부딪히기 직전에 성연은 아슬아슬하게 차를 멈출 수 있었다.바로 차에서 내린 성연은 눈썹을 찌푸렸다.‘차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생긴 거야?’‘내가 돌아온 다음에 처음 운전했는데, 설마 누가 차에 무슨 짓을 한 건 아니겠지?’성연은 허리를 굽히고 차 곳곳을 둘러보았다.그제서야 오른쪽 타이어가 움푹 들어갔고 바퀴에 압정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어느 빌어먹을 놈이 압정을 길에 놔 둔 거야?’‘다행히 이 구간에 차가 별로 없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위험했을 거야.’차가 이렇게 멈춘 데다가 근처에는 정비소도 없어서 성연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빵빵” 클랙슨 소리가 성연의 귓가에 울렸다.벤틀리 한 대가 서서히 다가왔다.성연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벤틀리의 차창이 천천히 내려갔다.“아가씨, 도움이 필요한가요?”성연은 손사래를 쳤다.“괜찮아요, 정비소에서 오는 사람을 기다리면 됩니다. 감사합니다.”성연은 생면부지의 낯선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기가 쑥스러웠다.말없이 성연의 앞에 차를 세운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정장 차림에 금테 안경을 쓴 남자는 온화한 분위기에 아주 점잖아 보였다.남자가 몸을 숙여 성연의 차량을 살펴보았다.그리고 곧바로 몸을 일으킨 남자가 말했다.“아가씨, 차의 타이어에 펑크가 났군요.”난처해진 성연이 어색하게 대답했다.“맞아요, 언제 압정에 찔렸는지 모르겠어요.”“차에 스페어 타이어는 있겠지요? 타이어 교체해 본 적이 있어요. 스페어 타이어로 교체해 드릴까요? 이 구간은 최근에 개통되어서, 러시아워에는 차량이 많습니다. 여기에 차를 세워두는 건 별로 안전하지 않아요.”성연은 우호적인 남자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오늘 한시가 바쁘다 보니 타이어를 교체하고 빨리 갈 수 있다면 당연히 좋을 것이다.러시아워에 묶여 멍청하게 도로 위에서
그렇다. 이렇게 성연을 도와 타이어를 교체하는 일은 오래 전에 이미 계획되었던 것.성연을 도와준 이 남자, 바로 안진검이다.전혀 경계하지 않는 성연의 모습을 보며 안진검은 만족했다. ‘이런 방식으로 송성연에게 접근할 수 있다니 다행이군.’‘앞서 오웬과 제이슨이 너무 멍청했어. 내가 적이오, 하는 식으로 광고해대며 나타났으니, 당연히 강무진에게 깨끗이 당한 거지.’지금 강무진이 적호를 탐색하는 과정을 통해서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안진검은 무진이 그저 잘나가는 사업가의 신분만은 아닐 거라고 판단했다.‘어쩌면 강무진에게는 또 다른 신분이 있을지도 몰라.’‘구체적으로 어떤 신분인지는 알 수 없지만.’그래서 안진검은 직접 성연에게 접근해서 알아볼 작정이었다.‘어쩌면 송성연을 통해서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어린 여자애들은 사람을 쉽게 믿기 마련이지.’펑크 난 타이어는 빠르게 스페어 타이어로 교체되었다.처음부터 끝까지 그 모습을 지켜본 성연이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했다.“오늘 정말 폐를 끼쳤습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아주 매끈하고 잘생긴 용모를 가진 안진검은.처음 보면 절대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친근하고 호감이 가는 스타일.자신을 돕는 모습에 준수한 외모까지, 성연은 당연히 자신의 도움을 거절하지 못할 터.안진검의 머리속이 온통 나쁜 생각들 채워져 있다는 사실도 당연히 알 수 없을 터.안진검의 오늘 목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그는 마치 놀리기라도 하듯이 가볍게 성연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고맙다는 인사를 말로만 하는 겁니까?”그 말에 성연의 눈에 좀 아연한 기색이 나타났다 사라지며 재빨리 대답했다.“죄송해요. 타이어 교체가 얼마나 하는지 생각 못했어요. 그리고 인건비도요. 제가 모두 드릴게요.”‘남자의 모습을 봐서, 돈이 부족해 보이지는 않아.’‘그렇다고 아무 대가 없이 도와달라고 할 수는 없지.’성연이 진짜 휴대폰을 꺼낸 금방이라도 계좌이체를 하려는 듯한 모습에, 안
백화점과 그리 멀지 않았던 터라 두 사람은 금세 목적지에 도착했다.안진검은 이미 슈트 상의를 다시 걸쳐 흰 와이셔츠에 묻은 얼룩을 가렸다.손바닥에 까만 기름 자국이 조금 남아 있어 좀 거슬렸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개의치 않는 듯 성큼성큼 백화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리고 분위기도 괜찮고 보통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는 적당한 가격의 커피숍을 선택했다.종업원이 자리를 안내하자, 안진검은 신사답게 성연에게 먼저 의자를 권한 다음에 자신도 자리에 앉았다.이런 세심한 매너와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 자신이 아주 친절한 사람임을 보여주었다.일부러 고급 레스토랑이 아닌 이 커피숍을 고른 까닭은 성연의 지갑이 곤란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기 때문이다.성연이 돈이 있든 없든, 이렇게 상대를 배려하는 듯한 안진검의 행동은 상대방에게 아주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홀에 사람이 많아서 안진검이 불편해할까 봐 성연은 종업원에게 자리를 룸으로 바꿔달라고 했다.안진검은 좀 놀라면서도 흔쾌히 따라갔다.룸으로 들어가자 비로소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성연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선생님이 주문하세요.”그리고 안진검에게 메뉴판을 건넸다.안진검은 사양하지 않고 블루마운틴을 주문했고, 성연은 과일주스 한 잔을 주문했다.“저를 도와주셨는데, 저는 아직 성함도 모르네요.”“저는 안진검이라고 합니다.”말을 하면서 안진검은 안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냈다.성연이 받은 명함을 들고 속으로 읽었다.‘안진검.’‘이 남자의 이름이구나.’성연도 자신을 소개했다.“안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송성연이라고 합니다.”“송성연 씨는 이름과 아주 잘 어울리는 것 같군요. 아주 듣기 좋은 이름이에요.”안진검이 좀 과장해서 말했다.“고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무슨 일을 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궁금해진 성연이 물었다.“투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적당히 생활할 정도입니다.”안진검은 아주 겸손하게 대답했다.안진검의 옷차림을 살펴본 성연은 이 남자가 그저 겸손하게
시계를 본 안진검은 시간이 거진 됐다고 느꼈다.적당한 정도에서 그만둬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30분 동안 얘기를 나누면서 커피도 마침 다 마셨던 터.의자에서 일어선 안진검은 우아한 동작으로 옷 매무새를 정리했다.“송성연 씨,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볼일이 남아있어서 먼저 가 봐야겠군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다시 만나지요.”성연도 따라서 일어섰다.“안 선생님,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안진검은 밖으로 나가서 바로 벤틀리에 올라 그곳을 떠났다.성연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안진검, 저 사람에게서 보이는 것들을 모두 종합해 보면 아주 교양이 있는 남자야.’‘성공한 사람이지.’안진검은 아주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그러나 성연이 인정하는 가장 능력 있는 사람은 바로 강무진.성연의 마음속에서 무진의 지위는 절대 흔들릴 수가 없었다.어쨌건 간에 성연도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소지한, 심재환, 그래함 씨 같은 사람들...‘모두 명성이 자자한, 정말 대단한 인물들이지만.’남은 주스를 다 마신 성연은 계산을 마친 뒤에 백화점 식품 코너에서 간식을 샀다.무진이 왜 자신에게 외출하지 못하게 했는지 잘 알고 있는 성연.‘방금 길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지체했어.’‘내가 안 보이면 무진 씨가 걱정할 거야.’성연은 간식과 필요한 물건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성연이 문에 들어서자마자 누군가 뒤에서 껴안았다.청신한 향이 코 안을 가득 채웠다.성연은 얌전히 안긴 채 깜짝 놀란 듯이 물었다.“오늘 바쁘지 않아요? 어떻게 이렇게 빨리 퇴근했어요.”무진은 그녀의 손에 든 쇼핑백을 받아 한쪽으로 던지고 바로 성연의 허리를 끌어안았다.성연이 부드럽게 무진의 목을 감싸 안았다.“나가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하지 않았어? 내 말을 안 들은 거야?”성연이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무진 씨가 시간이 없어서 그런 거잖아요. 나가서 먹을 걸 좀 사 왔어요.”“말을 안 들었으니 벌을 받아야 해.” 무진이 성연
무진은 성연에게서 명함을 받은 든 후에 중얼거렸다.“안진검? 들어본 것 같은데.”“아는 사람이에요?” 성연이 놀라면서 물었다.‘만약 무진 씨가 정말 안진검 씨를 알고 있다면, 진짜 신기한 우연인 걸.’“직접적으로 아는 건 아니지만,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아. 이런 이름의 뛰어난 투자자가 있는데, 외국에서 유학했고 또 수재라고 말이야.”안진검이라는 사람의 이력이 정말 대단했기 때문에, 무진은 아주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하지만 안진검은 내내 서북지역에서 사업을 하지 않았었나?’‘어떻게 갑자기 북성에 왔지?’‘어쨌든 이런저런 일로 성연이 도움을 받았다니, 운이 좋았어.’무진이 성연을 향해 놀리듯이 말했다.“잘생겼어? 영웅이 아름다운 여성을 구한다? 마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상황인데 말이야.”성연이 재빨리 대답했다.“그래도 우리 강 대표님만큼 멋지지는 않지요.”성연의 칭찬에 무진은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소파에 몸을 기댄 두 사람. 성연은 무진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장난을 쳤다.‘무진 씨는 평상시에는 차가운 표정인데 얼굴 피부는 정말 부드러워.’‘피부에 모공이 하나도 안 보일 정도로 매끄럽고 말이야.’‘그리고 평소에 피부관리를 거의 하지 않는 데도 이런 효과를 내다니, 윽!’‘정말 질투 나!’속으로 부러워하던 성연이 무진의 얼굴을 만지던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자, 곧바로 무진의 볼이 빨개졌다.새하얀 피부에 붉은 자국이 아주 뚜렷하게 남았다.무진은 아무 말없이 성연의 허리를 감싼 채, 성연이 자신의 얼굴을 멋대로 주무르도록 내버려 두었다.무진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 성연은 마음이 아파왔다.무진의 볼을 만지면서 물었다.“아파요?”“아니.” 무진이 고개를 저었다.성연이 살짝 코웃음을 쳤다.“무진 씨의 이 피부는 왜 두부처럼 빚을 수 없을까요.”무진이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렸다.‘송성연, 이렇게 적반하장으로 나오겠다 이거지?’무진을 밀치고 일어선 성연은 바닥에 떨어진 쇼핑백에서 간식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
예민주가 무진을 보러 매일 회사에 올 수는 없는 노릇.그러나 자신이 잘 쓰는 방법을 사용해서 WS그룹에 자기 부하를 하나 심었다.매일 무진의 스케줄을 예민주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오늘 아침 전화한 사람은 두 아이가 몰래 대표실에 들어갔는데, 줄곧 대표님을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평소 기발한 행동을 해서 명문가에 시집가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운성 경제의 명맥을 쥐고 있는 무진과 누가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겠는가!매일 프런트에서 자칭 ‘강무진의 아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을 몇 명이나 상대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거의 대부분은 프론트에서 차단되지.’‘그런데 오늘 대표 집무실로 직접 들어온 아이들이 있다니.’원래 예민주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머릿속에 문득 성연의 모습이 번뜩였다.‘결국 당황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급히 회사로 달려왔는데.’‘뜻밖에도 정말 송성연과 관계가 있었어!’예민주는 다시 눈앞의 이 두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예민주의 눈빛에 음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너희들은 평소에 엄마하고 같이 있지 않니?”사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요, 매일 엄마하고만 같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가 보고싶어요.”아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자, 예민주는 내친 김에 계속 캐물었다.“너희들은 이전에 줄곧 외국에 있었는데, 아빠 가족들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어?”“아빠 가족들요?” 뭔가를 눈치챈 듯, 사진이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오빠를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한 두 아이는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을 사용했다.‘이 여자는 그냥 회사를 좀 구경하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사무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아주머니, 이게 잘 안 들어가는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갑자기 사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레고 블록을 든 채.예민주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사무가 성깔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청을
남자는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간 쉰듯한 목소리에서는 차가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예민주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이 두 아이 귀엽지 않아요? 오히려 오빠가 그렇게 쫓아냈는데, 만약 누군가 영상이라도 찍었다면, 회사의 명성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누가 감히 우리 WS그룹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겠어?”무진의 말에는 힘찬 기세가 담겨 있었다.무진이 결코 지나치게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강경할 수 있는 것이다.무진이 이렇게 말하자 예민주는 잠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잠시일 뿐!다시 무진에게 다가간 예민주가 작은 소리로 무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사실 쟤들은 이 참에 오빠하고 잠시 함께 있기 위한 핑계였어요.”예민주가 다가오자, 순간 그윽한 향기가 무진의 코에 스며들었다.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린 무진이 몸을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 사이에 막 좁혀졌던 거리가 다시금 벌어졌다.무진은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접근해서 기회를 틈타 상류층으로 오르려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심지어 한 번만 만나려고 머리를 쥐어짜내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매번 비서진이 쉽게 대처했지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은 예민주다.자신의 여자 친구인.무진의 이런 습관을 예민주도 사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예민주는 절대로 이렇게 짙은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그래야 무진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무진이 이렇게 배척하지 않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예민주는 이 ‘금기’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방금 무진의 동작은 지금 예민주의 눈에는 적나라한 거부이자 분명한 소외감이었다.그러나 예민주는 감히 이 억눌린 마음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겉으로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했다.입가에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애들하고 얘기를 해 볼게요. 애들이 왜 대표실을
“감탄할 수밖에 없어! 저 아가씨가 사랑 앞에서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대표님 여자친구는 정말 총명하다는 거야!”“뭔데?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회사에서는 업무 시간에 뒷담화를 하지 못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어떻게 그런 일이 없을까?어떻게 다 금지할 수 있을까?지금 회사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여전히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오히려 당사자들은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회사 식당에 온 예민주는 룸에 도착했다.평소에 무진은 사실 사실 이쪽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손건호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늘 대표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하지만 여전히 무진을 위한 개인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바깥의 인테리어도 좋지만, 내부 공간은 여전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바로 돈이 있어서 좋은 점!단지 식사를 하는 공간이지만, 룸 안에는 대형TV와 편안하고 넓은 가죽 소파가 갖춰져 있었다. 또 각종 커피 메이커, 정수기, 그리고 국외에서 수입한 첨단 설비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야말로 작은 휴게실이나 다름없었다.“아줌마, 회사 구경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왜 왔어요?”사진은 자신의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무진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하지만 남자들이 이동하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오빠, 나 아빠 옆에 있고 싶어.”무진의 행동이 이렇게 소원하자, 사진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다.여동생을 힐끗 본 사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나도 어쩔 수가 없어.”“엉엉. 사진이한테는 너무 어려워!”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피 우는 소녀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예민주는 들어오기 전에 미리 장난감과 먹을 걸 준비해 달라고 시켰다.지금 이미 예민주가 시킨 물건들을 보내왔다.이쪽을 보니 무진은 옆에 있는 아이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느 집 아이들인데 지금 회사에 있는 거니?”온화한 모습으로 살짝 몸을 숙인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예민주의 모습에는 어떤 허세도 보이지 않았다.두 아이는 이전에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본 데다가,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인 걸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우호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흥분한 표정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면서 사진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저희는 여기를 구경하고 싶어요.”사진은 여린 목소리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고개를 살짝 끄덕인 예민주는 고개를 돌려서 무진을 한 번 보았다. 무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래, 그럼 아줌마가 너희들 회사 구경을 시켜줄까?”“이제 곧 점심 시간이야. 너희들도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아줌마가 맛있는 걸 사줄까?”예민주의 제안은 시원시원하고 아주 열정적이라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목소리였다.“민주야, 이 두 아이는 내력이 분명하지 않아. 그렇게 애들을 여기 남겨두고 놀게 하다가, 무슨 일에 엮일 지도 몰라.”“괜찮아요. 이 두 아이가 무슨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겠어요. 그저 단지 여기를 지나다가 궁금해서 좀 더 구경하고 싶을 뿐일 거예요.”예민주가 시간을 보니 마침 12시가 다 되었다.“같이 한 바퀴 돌아볼래요? 오빠도 한참동안 나하고 함께 있지 못했잖아요.”철이 든 모습의 예민주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결국 무진의 마음속 예민주에 대한 미안함이 이성에 승리를 거두었다.두 아이는 지금도 무진에 대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사무실에 있을 때는 우리한테 냉담했지만, 결국 우리 친아빠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잘못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모두 처음 겪은 일이기에, 잠시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던 아이들도 마음을 놓았다.‘어렵게 왔는데, 아빠하고 좀 더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