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 줄 테니, 닦을래요? 갈아 입을 드레스라도 찾아 줄까요?”“음... 시골 사람들은 모두 땅 파서 먹고 산다던데, 옷에 흙이 묻어도 신경 안 쓰잖아요? 이건 급 와인이니 안 닦아도 괜찮겠죠?”“어쨌든 그래도 내 잘못이니까, 미안해요, 송성연 씨!”서연정이 연신 사과했다. 구구절절이 진심인 듯이. 그러나 말끝마다 사람의 약점을 찔러 댔다.조금 전에 성연에게 반격을 당했던 여자는 서연정이 나서서 자신을 위해 분풀이를 해주었다고 생각하며 턱을 치켜들었다.주위를 에워싼 여자들의 눈에는 성연을 향한 조롱과 경멸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존중이라는 말이 뭔 지도 모르는 거야?’‘명문가 아가씨들이라고 폼을 잡지만, 교양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네.’타이트하게 몸에 핏이 된 성연의 드레스. 축축하게 뿌려진 와인은 이미 드레스를 뚫고 피부 사이로 스며들어 끈적끈적했다.모두 가벼운 여름 드레스 차림이었다. 만약 드레스 위에 두른 숄이 없었더라면 성연의 속살이 그대로 다 비쳤을 터였다.성연의 두 눈에 사나운 기운이 휙 일었다.그저 말 몇 마디 가지고 이렇게 뇌가 없는 인간들과 따질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이 여자들이 결국에는 부득부득 성연의 한계선을 넘어버렸다.‘이제 나를 탓할 수는 없어!’성연의 눈빛이 차갑게 변하면서 손가락 끝에 은침을 끼웠다. 두 눈에서는 여전히 사나운 기운이 일렁거렸다.“그만!”성연이 반격할 준비를 하고 순간, 한 여자가 다가왔다.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여자는 무척 아름다운 얼굴에 차갑고 도도한 분위기를 풍겼다.여자는 차가운 목소리로 서연정을 비난했다.무리를 뚫고 성연에게 다가간 여자는 아직 와인이 절반 정도 남은 잔을 성연의 손에 쥐어 준 다음에 서연정을 향해 정면으로 뿌렸다.서연정의 머리에 와인을 뿌리자, 얼굴과 머리에서 와인이 뚝뚝 흘러내렸다.방금 전 성연의 모습보다 몇 배나 처참한 모습이었다.그러나 성연의 곁에 서서 차가운 얼굴로 엄청난 포스를 발산하는 여자를 본 서연정. 차마 속에서 이는 분노를 터트
진혜선은 성연이 멍하니 있자 입꼬리를 당겨 올리면서 살짝 웃어 보였다.“생각해 보니, 당신은 아직 나에 대해 모르는 것 같군요. 내 소개를 하자면, 나는 진혜선이라고 해요. 다국적 무역을 하고 있어요. 나는 당신이 누군지 알고 있어요. 강무진 대표의 약혼녀지요?”성연은 의문이 들었다.“무진 씨를 아세요?”“그저 아는 사이가 아니라 아주 친한 걸요. 강무진 대표도 나를 누나라고 부르지요.”진혜선의 동작 하나하나에 성숙한 여인의 매력이 넘쳤다.‘엄청난 카리스마를 가졌으면서도 친화력이 좋아.’‘그러나 이런 친화력은 자신의 기세에 눌린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상황 하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나오는 거야.’‘아주 교양이 있는 사람이야.’‘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 절도 있는 행동들이 사람을 아주 편안하게 해.’‘이 여자는 인간관계 처리가 아주 여유 있어.’이 모든 게 진혜선에 대한 성연의 첫인상이었다.게다가 방금 자신을 도와주었기에, 성연은 진혜선에 대한 호감도가 더 높아졌다.“안녕하세요, 여사님. 저는 송성연이라고 합니다.” 성연도 자기소개를 하며 대답했다.“당신도 나를 언니라고 불러요. 여사님이라고 부르면 어찌나 서먹한 기분이 드는지. 그렇지만 나는 성연 씨가 맘에 들어요.” 진혜선이 시원시원하게 말했다.성연을 본 진혜선은 첫눈에 성연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원래는 강무진 때문이었지만, 성연과 얘기를 나누면서 성연을 여동생으로 대하려는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진혜선의 솔직하고 화통한 말이 성연을 좀 쑥스럽게 만들었다.“혜선 언니.”“자, 우선 이걸 걸쳐. 안 그러면 금세 추워질 거야.” 진혜선이 직원을 불러 성연이 걸칠 외투를 가져오게 했다.“괜찮아요, 숄로 가릴 수 있어요.” 성연은 진혜선이 자신에게 너무 잘해 주는 것 같아서 바로 잘 적응이 되지 않았다.“이제 밤이 깊어져서 이슬도 맺히고 꽤나 쌀쌀해. 나한테 사양할 필요 없어. 나를 언니라고 불렀으니 내가 도와주는 건 당연한 거야.”성연의 거절
무진은 몹시 흥분한 모습이었다.평온하기만 하던 그가 드물게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무진이 혜선을 부르는 호칭에 성연은 순간 멍해졌다.‘너무 친근한 느낌이잖아!’자신도 모르게 무진과 진혜선이 도대체 어떤 관계인지 생각하게 되었다.진혜선은 온화한 표정을 지으면서 살짝 웃었다.“꼬맹이가 다 커서 대표님이 되다니, 이제는 누나가 너를 못 쫓아가겠어.”혜선의 말을 들은 무진은 왠지 좀 너그러운 표정이 되었다.머뭇거리는 기색이 아주 부자연스럽게 보였다.무진이 진짜 사이가 좋은 상대에게만 드러내는 표정.느긋하게 긴장을 푼 무진이 눈앞의 상대에게 무방비한 상태로 있을 때의 모습.성연은 이런 표정을 짓는 무진을 처음 보았다.무의식적으로 입술을 깨문 성연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시선만 진혜선과 무진 사이를 왔다갔다했다.무진이 말이 없자, 진혜선은 농담을 멈추고 손을 들어 성연의 어깨 위에 얹었다.“내가 네 약혼녀를 찾아서 이야기하고 있었어.”성연은 즉시 마음속의 의혹을 거두고 얼른 받았다.“혜선 언니가 방금 나를 도와줬어요.”“혜선아, 고마워.”서프라이즈가 한차례 지나간 후, 무진은 이미 평상 시의 담담함을 회복했다.진혜선이 손을 흔들어 이번에 나서서 도운 걸 전혀 마음에 두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오늘 이 장소는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적당하지 않아. 다음에 내가 다시 너희 커플을 찾아 갈게. 오늘은 일단 사람들을 좀 응대해야 해.”진혜선도 오늘 밤 이 모임의 중심 인물 중 한 명이었다.그녀가 바쁜 데다가 여기 또한 지나간 얘기들을 나눌만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 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진혜선이 떠나자, 무진이 성연의 손을 잡았다.“조금 전에 누가 널 괴롭혔던 거야?”“별 거 아니에요. 파리 몇 마리가 좀 귀찮게 굴었을 뿐이에요.”“왜 나를 부르지 않았어?” 무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감히 내가 있는 자리에서 성연을 괴롭히는 인간이 있어?’“무진 씨는 바쁘잖아요? 내가 해결할 수 있어요.” 조금 전의 상황에
모임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그러나 성연의 마음은 좀 휑한 상태에 몹시 답답했다.‘진혜선, 너무 아름다워. 마치 여신처럼 저 멀리 아득히 높은 곳에 있는 것 같아.’‘보통의 여자들은 그 여자 앞에서 자신이 못나게 여겨지겠지?’성연도 예외는 아니다.성연도 보통 여자들처럼 자신감이 엄청 강하고 그렇지는 않았다.원래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지만, 진혜선이 무진에게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차에 탄 뒤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성연의 감정이 널뛰기를 심했다.한참을 생각해도 끝내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아니면 무진에게서 답을 찾고 싶은 것일까?성연은 차에 앉아서 무심코 묻는 척했다.“혜선 언니는 뭐 하는 사람이에요?”무진은 여태까지 성연에게 숨긴 적이 없었다.“혜선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자라는 내내 같이 어울리던 친구야. 나보다 두 살이 많은데, 사업적인 감각도 뛰어나고 고생도 마다하지 않아. 아프리카 지역의 사업은 가서 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어. 진씨 가문에서 이번에 아프리카 사업을 확장하면 실력이 한 단계 더 올라갈 거야. 강씨 집안의 절반 정도의 실력은 가지고 있어.”옛날을 떠올려 보면, 진씨 가문은 아주 작은 가문이었다.“지금의 진씨 가문이 있게 된 건 모두 진혜선의 공로 덕분이야.”성연은 진혜선 같은 아름다운 미인이 아프리카처럼 척박한 곳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 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그러나 진혜선은 아프리카에 건너가 머물렀다. 건너 간 지 벌써 5년이 되도록.진혜선은 여장부가 확실했다.성연이 시큰둥하게 말했다.“그럼 무진 씨와 혜선 언니는 죽마고우인 거네요?”무진은 성연의 말투가 좀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서로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어.”‘어디 그 뿐이겠어! 그야말로 아주 친밀한 사이가 됐겠지.’‘가족을 제외하고, 무진 씨의 외부 사람에 대한 평가가 그렇게 높은 건 처음 봤어.’“혜선이는 아주 뛰어난 사람이야. 나중에 만나면 너도 알게 될 거야.”무진의 말에서 진혜선에
“나하고 혜선이는 어렸을 때 장난꾸러기였어. 혜선이는 아주 말괄량이었지. 고택 뒤쪽에 산이 하나 있는데, 혜선이는 늘 나를 데리고 산에 올라갔어. 산을 넘고 고개를 넘으면서 온갖 희한한 열매들을 수집하기도 했지.”“한번은 정원에 들어가서 풀을 뽑아서 할머니를 깜짝 놀라게 해드리고 싶었어. 그런데 뽑은 풀들이 모두 할머니가 키우시던 진귀한 꽃 모종이었던 거지. 엄청 화가 나신 할머니가 우리 두 사람을 사당 안에서 무릎을 꿇게 하셨는데, 몰래 빠져나간 혜선이가 먹을 걸 가지고 와서 내게 먹여 줬지.”어렸을 때의 일들을 언급하면서 무진이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진혜선과 함께 했던 추억 가득한 시간들이 정말 좋았던 모양이다.“어렸을 때 일인데 아직도 그렇게 똑똑히 기억하는 거예요?” 성연이 입술을 삐죽거렸다.‘무진 씨의 기억 가장 깊은 곳에는 진혜선이라는 여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잘 기억 안 나는 것도 있지만, 혜선이를 보니 자연히 기억이 나네.”“초등학교 때, 밝고 명랑한 성격인 혜선이는 학교에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어. 내가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혜선이가 마치 큰 누나 같은 기세로 나타나서 아래 학년인 나를 도와줬어.”당시 진혜선이 위세를 부리던 모습을 떠올리던 무진은 아직도 생생한 기억에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그때, 그의 부모님이 비행기 사고로 돌아가셨다.그 사람들이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강씨 가문은 넋이 나간 상태였고, 무진 그는 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로 거친 아이였다.성격이 내성적인 무진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게 어려웠다.이전에 무진에게 아부하던 사람들이 하룻밤 사이에 변했다.가장 악랄한 말로 그를 공격했고, 화장실에 가두고 찬물을 끼얹기도 했었다.불쑥 앞에 나타난 진혜선이 무진에게 깨끗한 옷을 건네면서 따뜻하게 위로해 주기도 했었다.진혜선이 아니었다면 그 당시를 견딜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그래서 진혜선에 대해서는 줄곧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죽마고우인 진혜선이 강무진을 구
무진과 성연의 집, 엠파이어 하우스.무진이 성연을 가볍게 안아 침실로 들어가 침대에 내려놓은 후에 이불을 덮어주었다.‘성연이 처음에는 자는 척하더니 결국 진짜 잠이 들었군.’잠든 모습은 정신이 나갈 정도로 사랑스러웠다.무진의 손끝이 성연의 뺨을 가볍게 스쳐갔다.무진은 성연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한 뒤에 불을 끄고 나갔다.서재에 들어가니, 손건호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수트 상의를 벗고 의자에 기대어 앉은 무진이 관자놀이를 가볍게 비비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보스, 적호의 행적이 다시 드러났습니다. 우리 수하들이 발견했습니다.”눈을 크게 뜬 무진이 몸을 곧게 펴고 손건호를 바라보았다.“어디에 있어?”손건호는 적호를 찾으려는 무진의 절박한 심정을 알기에 경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보스, 이건 함정일 가능성이 높습니다.”적호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킬러다.그들이 지난번에 적호의 행방을 발견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다.이는 절대 적호가 일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적호가 고의로 허점을 드러내면서 자신들을 끌어들이려는 가능성이 높았다.적호가 자신들을 데리고 놀고 있는 것이다.그런데 그는 왜 무진이 감히 맞서 싸우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것일까?무진의 눈에 노기가 잔뜩 들어차며,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지난번에 적호 그 놈이 내 수하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어.’‘이 원수는 반드시 갚아야 해.’이곳은 북성, 아무리 적호라고 해도 그는 혼자다.무진이 그를 겁낼 까닭이 없었다.“준비해, 내가 직접 적호를 만나러 갈 계획이야.”무진이 의자에서 일어났다.손건호가 만류했다.“보스, 그만두시는 게 어떻습니까? 적호의 이번 목적은 너무 확실합니다. 바로 우리를 나오게 하려는 겁니다. 우리는 다음 기회를 기다리면 됩니다.”“안 돼, 적호가 이 연막탄을 터뜨렸어. 나를 끌어들이려고 적호는 반드시 현장에 있을 거야. 그가 나타나기만 하면 우리는 이 기회에 제거할 수 있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기다리기만 하면 위험 요소만 한 층 더
무진은 사람들을 데리고 적호가 있다는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이전과 달랐다.지금 적호가 기거하고 있는 곳은 빈민가로 복잡하고 지저분했다.마지막 동에 이르렀을 때, 앞에서 안내하던 수하가 동작을 멈추었다.무진이 고개를 들어 건물을 바라보았다.수리를 중단한 지 이미 오래되어 보였다. 자잘한 전구 몇 개가 깜박였다.가장자리의 창문도 곧 떨어질 것 같았다.“적호가 정말 여기에 살고 있을까?”누가 물었다.‘어떻게 말하든 적호는 어쨌든 최고의 킬러다. 임무 하나를 맡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수십억 원을 받는다. 그런 적호가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무진은 오히려 적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진짜 킬러라고 느꼈다.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환경, 조건에도 적응할 수 있다니.적호가 자신들의 적이라는 사실은 잠시 제쳐놓는다면, 무진은 그런 적호의 정신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조용히 해. 방심하지 말고 경계해야 해.” 무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당부했다.그 사람이 바로 입을 다물었다.무진은 사람들을 데리고 천천히 복도에 접근했다.깜빡거리는 불빛이 그들의 얼굴을 비추었다.계단도 무거운 하중을 감당하지 못한 채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계단에 들어서자마자 정면에서 검은 모습이 나타났다.그의 얼굴은 어둠 속에 숨겨져 있었지만, 한순간 밝아진 불빛이 바로 그 사람의 얼굴을 똑똑히 비추었다.그의 얼굴에는 놀랍게도 흉악해 보이는 칼자국이 하나 있었다.‘저 놈이 바로 적호군!’정신을 차리자마자 날카로운 주먹이 무진을 향해 곧장 엄습했다.무진이 허리를 굽혀 적호의 동작을 피하면서 빠르게 맞이했다.그러나 이 주먹만으로도 무진의 적호에 대한 인식이 뒤집혔다.예전에 그들은 적호를 너무 얕보았다.‘방금 적호가 뻗은 주먹의 힘과 타격의 방향을 생각하면, 미처 피하지 못했다면 바로 즉사했을 가능성이 높겠군.’‘적호, 정말 강한 놈이군.’‘실력이 이전보다 많이 늘은 것 같아서 상대하기가 더 힘들겠어.’‘역시 킬러 차트에 오를 만한 놈이야.’킬러 차
수하들은 무진이 드러나지 않도록 주변을 에워싸듯이 보호하면서, 동시에 적호를 공격했다.뒤에 선 무진은 적호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기회를 엿보았다.몇 몇이 적호와 뒤엉켜 싸웠다.고요한 복도에 근육이 부딪치는 소리들로 가득하다.이들은 조직에서 선발된 최정예 요원들이다.그러나 이들의 연합 공격에도 적호는 여유가 넘쳤다. 심지어 무진의 수하들이 점점 뒤로 밀려나는 상황.무진이 미간을 찌푸렸다.‘적호가 너무 강하군. 수하들은 적호의 반격을 전혀 못 받아내고 있어.’‘퍽’손건호가 돌려차기로 적호의 가슴을 걷어찼다.온몸이 뒤로 물러나면서 벽에 부딪친 적호가 윽, 하고 침음성을 냈다.‘바로 지금이야!’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내달린 무진이 적호에게 다시 한 번 발길질을 날렸다.맹렬한 무진의 공격에 좁은 구석으로 내몰린 적호는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었다.두 손을 들어올려 머리를 감싸 안은 채 방어하기에 급급한 적호는 무진의 반격에 맞설 여력이 전혀 없었다.무진은 전력을 다해 적호를 공격했다.수하들도 가만히 있지 않고 모두 무진을 뒤따라서 적호를 바로 생포할 준비를 했다.적호가 처음으로 이렇게 패색을 드러내자 무진이 그를 바짝 쪼였다.적호 또한 자신이 이렇게 낭패스러운 일을 당하게 될 줄은 몰랐다.이미 주변 환경에 아주 익숙해진 적호.‘지금은 더 이상 남을 수 없게 된 게 분명해.’무진의 공격을 방어하면서 동시에 계단 모퉁이로 물러났다.마지막 힘을 다해 반격하자 무진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틈을 탄 적호가 과감하게 몸을 돌려 2층 계단 입구로 숨었다.순간 적호의 모습이 금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쫓아!”적호가 모습을 감추자 무진의 싸늘한 음성이 빠르게 울렸다.수하들은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서 적호를 추적했다.그들은 꼭대기 층에서 적호를 따라잡았다.전체 층수는 다른 층에 비해 비교적 높아서 맨 위층까지 꼬박 6층이다.적호는 다음 순간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무진의 수하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그들
꼭두새벽에 손건호가 별장에 도착했다.성연이 코디한 무진의 정장이 후리후리한 체형에 잘 매치되자, 성연의 두 눈에는 그야말로 하트가 가득했다.‘정말 멋있어, 너무 멋있어!’손건호가 다급한 표정으로 초대장을 건네주었다.“보스, 운성시의 상공회의소에서 보낸 초대장인데, 오늘 저녁 8시에 유니버설 호텔에서의 파티입니다.”무진은 눈길을 주지도 않았다. 이런 초대는 매일 몇 개나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오늘 스케줄에 이건 없지?” 말을 하면서 회사로 출발할 발걸음을 재촉했다.“없습니다.” 손건호는 입을 딱 벌린 채 말을 더듬었다.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 무진이 눈살을 찌푸리고 손건호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 있으면 빨리 말해. 빙빙 돌리지 말고!”“예!” 손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바로 이겁니다. 오늘 밤 이 파티의 주최자가 연계진의 연운그룹입니다. 그리고 진씨 가문도 참석한다고 합니다!”무진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진씨 가문은 정말 연계진과 같은 길을 가려고 하는 모양이네. 진 백부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진교철 한 명 때문에?’“손 비서, 곧바로 진교철의 국외에서의 모든 이력을 샅샅이 조사해줘! 그리고 파티에 참석하는 걸로 저녁 일정을 바꿔!”무진의 눈빛이 변했고, 그윽하게 빛나는 눈빛에는 형언할 수 없는 예리함이 가득했다.“보스, 왜 참석하시려는 겁니까? 그러면 연계진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닙니까? 보스, 가지 마세요. 연계진에게 보스는 쉽게 초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손건호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무진이 가볍게 웃으면서 손건호의 어깨를 토닥였다.“너는 아직 좀 어려. 연계진 그 인간이 이렇게 초대장을 보내지 않아도 되는데 왜 굳이 보냈겠어?”“그럼 이건 연계진이 고의로 도발한 겁니까?”고개를 끄덕이며 거실에서 나온 무진은 벤틀리를 향해 걸어갔다.손건호가 얼른 차문을 열어준 뒤 바로 운전석에 올랐다.2층 안방에서 남편이 떠나는 모습
연운그룹 빌딩 회장실.연계진은 명문가의 두 자제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의 가문은 모두 WS그룹 자회사에 납품하는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전 선생님과 임 선생님께서 가문의 사람들을 설득해서 상품을 우리 연운그룹에 조달할 수 있다면, WS그룹의 가격보다 30%를 더 쳐서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전혀 이익을 보지 않고 모두 당신들에게 양보하는 거나 한가지입니다.”연계진의 가늘고 긴 두 눈이 웃는 듯 마는 듯 두 남자를 바라보았다.두 부잣집 도련님들은 크게 동요한 게 분명했다. 30%의 이윤이라면 대충 계산해도 1년에 20억 원이 넘는 이익이 더 생길 것이다.이런 이익이라면 그들은 당연히 집안 어른들 앞에서 내세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기만 한다고 자신들을 욕하지 못할 것이다.“연 회장님,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분명히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며칠의 시간을 더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일단 좋은 소식이 있으면 즉시 회장님께 연락 드리겠습니다.”두 사람은 바보가 아니다. 연계진이 이렇게 좋은 조건을 제시한 것은 WS그룹과 한 판 겨뤄보겠다는 게 분명했다. 만약 WS그룹과 등을 돌리게 된다면 결과는 아주 심각할 것이다.“그렇게 하세요. 가문의 발전에 관한 큰일이니까 두 분은 돌아가서 잘 협상해 보세요. 절대 가족들의 화목을 해쳐서는 안 됩니다.”연계진은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여유로운 모습으로 말했다. 그의 온몸에는 제왕의 기세가 가득해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연계진을 믿게 되었다.두 부잣집 도련님이 나가자, 조수경의 마음은 크게 동요하면서 연계진을 대하는 눈빛은 반작거렸다.‘과거에 강무진에게 꽂혔을 때는 강무진이야말로 비즈니스의 제왕이라고 생각했어.’그러나 이제는 연계진도 이렇게 사람을 매혹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강무진을 물리치고 정상에 올라서 원한을 풀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 돕고 싶었다.‘물론 송성
이른 아침, 샤넬의 전화를 받은 성연은 임신기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연이 전통 지식들을 가르쳐 주자, 샤넬은 어리둥절하게 들으면서 목현수에게 받아 적도록 했다.“샤넬, 이건 현수 사형도 다 알아요. 사실 당신이 직접 물어보면 되는데 굳이 내게 물어볼 필요가 있어요?”성연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러나 샤넬이 크게 웃는 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샤넬이 뽐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무진은 최근 양대 조직의 부하들을 모두 모은 뒤에 훈련을 실시했다.손건호와 서한기는 서로 팀장 자리를 놓고 한바탕 겨뤘다.서로 치열하게 경합하자 결국 무진이 나서서 두 사람이 교대로 팀장을 맡고 한 달에 한 번 교대하도록 조치했다. 이번 달에는 서한기가 팀장을 맡도록 하자, 부팀장이 된 손건호는 불만이 가득했다.최종적으로 합친 조직의 이름은 무진과 성연의 이름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서 ‘진성’으로 정했다.성연은 이 명칭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진성의 이름은 곧 전국, 나아가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해외의 수많은 조직에서는 보스들이 분분히 부하들에게 앞으로 ‘진성’을 만나면 처벌하지 않을 테니까 임무를 바로 포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이렇게 많은 준비를 한 진성의 첫 임무는 당연히 연계진을 전방위적으로 조사하는 것이다.“무진 씨, 이건 너무 사소한 일에 조직을 과다하게 사용하는 거 아니에요? 한 가문에 불과한 연씨 가문이 대단한 무력을 보유할 정도는 아니잖아요?”성연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무진에게 물었다.“나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적은 드러나지 않았고 우리는 드러난 상태야. 나는 더 이상 당신에게 어떤 위험도 없기를 원해. 그래서 안전을 확보하려고 조사하는 거야.”최근 한동안 무진은 운성시 전체에서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전개되었고, 중견 기업의 기업가들과 일부 가문들도 연계진의 포섭을 받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약속한 이익이 매혹적이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미 매수되었다.물론 거절하는 쪽이 더 많았다. 그들은 모두WS그룹의 든든한 지원군으
이른 아침, 연계진은 최근에 구입한 운성의 저택 침실에 있었다.잠에서 깬 조수경은 손에 시가를 든 연계진이 창문 앞에 선 채 먼 곳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헐렁하고 섹시한 잠옷 차림의 조수경이 고양이처럼 가볍게 남자의 뒤로 다가가서 껴안았다.조수경은 이 남자의 능력은 무진에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이 남자는 성연에게 복수하겠다는 내 소원을 반드시 실현시킬 수 있을 거야.’고개를 숙여 자신을 껴안은 두 손을 보는 연계진의 눈빛은 차가웠지만, 입가에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일어났네!”“계진 씨, 정말로 진혜선과 결혼할 거예요?”이 남자를 따라다니면서 소원을 이루기만 하면 된다고 일찌감치 자신에게 다짐했지만, 스킨십이 있게 되자 조수경도 다소 감성적이게 되었다.몸을 돌린 연계진의 두 눈에는 순식간에 따뜻함이 가득했다. 손에 든 시가를 끄고는 돌아서서 활짝 웃으면서 조수경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래. 이건 반드시 해야 해. 진씨 가문의 실력은 WS그룹의 모든 지지 세력 중에서 가장 강력해. 진씨 가문과 혼인할 수만 있다면, 연씨 가문이 강씨 가문을 이겨서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거야!”남자는 마치 7, 8살 정도의 여자아이를 위로하는 것처럼 천천히 완곡하게 말했다.조수경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당신 말을 따를 테니까 나를 잊지만 않으면 돼요!”연계진은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웃었다.“그럴 리가. 내 가장 큰 조력자인 당신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내가 왜 가장 먼저 당신을 찾았겠어?”약속을 받자 조수경은 흡족했다.오늘이 계획 실행을 시작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송성연, 결혼했다고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 너에게 가장 심각한 일격을 날려 줄게!”옷을 갈아입고 선글라스와 모자를 쓴 조수경이 총총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연계진의 비서 서진아가 조수경을 그 감옥으로 안내하는 일을 책임질 것이다.한 시간 남짓 달려서 운성시 북쪽의 한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조수경은 절차에 따라서 접견실에서 송아연
“혜선 언니는 승낙했어요?”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진혜선의 눈빛에 걱정이 드러났지만 곧바로 웃으면서 숨겼다.“아직 승낙하지 않았어. 하지만 무진이도 알겠지만 나는 집안의 결정을 거역할 수 없어. 당연히 두 사람의 도움을 청하고 싶어서 만나자고 한 거야.”“무진 씨보고 이 모든 걸 막아달라는 말이에요?”성연은 갑자기 뭔가 불편한 느낌이 솟아나는 걸 느꼈다.‘이건 결국 진혜선 자신의 혼사야. 내 남편이 다른 여자의 혼사에 간섭하는 건 어쨌든 좀 이상한 걸.’무진은 줄곧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진씨 가문에서 뜻밖에도 연씨 가문과 가깝게 지내기로 결정할 줄은 몰랐어. 연계진은 도대체 어떤 좋은 점을 약속한 걸까?’‘두 집안이 이미 이렇게 오랫동안 연합하면서, 진씨 가문은 줄곧 기꺼이 강씨 가문의 거대한 조력자가 되어 주었어. 원래 진상철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자립해서 가문을 이끌 수 있었지. 아니면 WS그룹에서 나오는 진씨 가문의 이익을 차단할 수도 있었지만, 그때 진씨 가문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걸 선택하지 않았어.’‘지금 갑자기 태도를 바꾸다니, 이건 정말 너무 이상한데.’무진의 마음을 한순간에 간파한 듯 진혜선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무진아, 진씨 가문에는 두 일가가 있다는 걸 잊지 마. 우리 장남 일가는 과거에 줄곧 차남 일가를 눌렀기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강씨 가문과 함께 할 수 있었어. 그러나 최근 차남 일가에서 진교철이라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 나왔어. 진교철이 막대한 자금을 가지고 해외에서 돌아왔는데, 이번에 동의하지 않으면 우리 일가와 관계를 끊겠다는 거야.”“형제 간의 반목으로 가문을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우리 아버지는, 진교철의 요구에 동의하고는 나보고 연계진과 혼인하라고 하셨어. 아무튼 이번에는 정말 네가 나를 도와주면 좋겠어.”이렇게 직접적인 진혜선의 SOS 요청에 무진은 다소 놀란 듯했다. ‘진혜선은 평소에 성숙하고 침착한 여장부의 모습을 보였어. 정말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라면 이렇게 먼저 내게 도
진혜선이 고른 식당은 도심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서 한 시간 가까이 차를 탄 뒤에야 도착했다.남쪽에서는 흔치 않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한옥이었다. 차에서 내리자 공기 중에는 은은한 풀내음이 났고, 개울가의 작은 다리와 고풍스러운 정자가 눈에 들어왔다. 상쾌한 환경에 아주 쾌적한 느낌이 들었다.이미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진혜선이 성연을 보자 웃으면서 인사했다.“성연 씨 오늘 이 옷은 정말 운치가 있네. 과연 결혼한 여자야말로 진정한 매력이 넘치는 모양이야.”“혜선 언니 놀리지 마세요. 제가 어떻게 언니하고 여자의 운치를 비교할 수 있겠어요?” 성연은 진혜선의 옷차림을 관찰했다. 오늘은 오히려 캐주얼한 옷차림인데, 이전에 몇 번 봤던 화려한 옷차림과는 전혀 달랐다.‘정말 아름다워. 이렇게 간단하게 꾸몄는데도 막 대학을 졸업한듯한 모습이야.’하지만 성연은 진혜선이 무진보다 두 살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성연은 마음 속으로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혜선 언니와 무진 씨는 자연스럽게 친근한 관계야. 그리고 탁월한 능력에 저런 미모라면 내가 남자라도 마음이 움직일 거야.’“가자, 이 식당은 예약제야. 매일 여덟 테이블의 손님만 받아.” 진혜선은 두 사람을 데리고 청룡각이라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이 여덟 테이블 중에서 청룡각이 제일 먼저 공략 대상이 될 게 분명해. 예약한 사람도 아마 더 많을 것 같은데.”무진은 진혜선을 바라보았다.진혜선은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좀 어렵긴 했어. 하지만 오늘 WS그룹 대표께서 오셨으니 이 사람들 복이기도 해!”고전적인 한복을 입은 종업원들이 메뉴를 건네주자 지배인이 공손하게 말했다.“강 대표님과 사모님, 두 분께서 메뉴를 좀 봐주세요. 고르기 어려우시면 제가 메뉴를 추천해 드리겠습니다.”무진은 성연에게 메뉴를 건네주었다.“좋아하는 게 있는지 한번 봐.” 성연이 메뉴를 보니 요리 이름도 ‘안개비 내리는 숲’ ‘눈 덮인 호숫가’ ‘호수의 기억’처럼 남쪽 지방의 정취가 가득한 독특한
무진이 일어나려고 할 때 갑자기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자리에 앉은 무진이 손건호에게 눈빛을 보냈다.“들어오세요!”손건호가 대답했다.문이 열리자 잘생긴 젊은 남자가 들어와서 무진을 향해 공손하게 말했다.“대표님 안녕하세요, 실례하겠습니다.”들어온 사람은 바로 소지연의 먼 친척이자 유럽지역 본부장인 소태경이다.“괜찮아요. 무슨 보고할 게 있습니까?” 무진은 평온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다소 어색해하면서 몇 초 동안 망설이던 소태경이 결국 입을 열었다.“대표님, 바로 이 얘기인데요. 제가 사전에 상황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연계진 씨의 초청에 잘못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야 연씨 가문과 우리 WS그룹이 아주 직접적인 경쟁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잘못된 처신을 처벌해 주시기 바랍니다!”무진은 소태경이 자발적으로 찾아와서 사죄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원래 그 일이었군요! 괜찮아요, 그런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당신을 유럽 지역의 본부장으로 임명한 건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작은 일을 가지고 어떻게 소 본부장을 의심할 수 있겠어요?”무진은 온화한 미소를 지었지만, 소태경은 무진의 동작 하나 하나가 책략을 세우는 듯한 느낌이어서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소태경은 조금도 기쁜 기색이 없이 계속 말했다.“다음번에는 반드시 명심하고 절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겠습니다. 이번에 귀국한 것도 사촌누님의 부모님을 보살펴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국 예전에 농촌에 있던 저를 데리고 나와 주셨기 때문입니다.”“효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나도 이 점을 굳게 믿습니다! 더 이상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일이 마무리되면 빨리 유럽으로 가서 진두지휘하세요. 지금 MS 가문은 이미 몰락했으니 소 본부장이 실력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무진의 간단한 몇 마디에 사기가 고무된 소태경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빛을 빛냈다.“제가 반드시 우리 WS그룹을 유럽에서 3위 안에 들게 만들겠습니다!”소태경이 나가
WS그룹 대표 사무실.“보스, 보스가 안 계시던 요 며칠 동안 연계진은 파티를 크게 열었습니다. 북성의 명사들을 참석하도록 초청했는데 아주 떠들썩했습니다.”“뿐만 아니라 연계진은 비밀리에 우리 회사의 두 지역 본부장을 만났습니다. 유럽 본부장으로 새로 부임한 소태경과 북미 본부장 진상철입니다.”손건호도 유럽으로 따라갔지만, 북성에 배치된 모든 정보망은 끊임없이 계속 운영되고 있었다. 돌아오자마자 바로 모든 정보를 정리해서 가장 빠르게 무진에게 보고했다.소태경, 무진은 그 이름이 익숙했다. 소지연의 먼 사촌동생으로서 전에는 소지연을 도와서 유럽 업무를 처리했다. 소지연이 잘린 뒤에도 소태경은 계속 위로 올라갔다.진상철, 이 사람도 오랜 지인이었다. 진씨 가문과 강씨 가문은 수십 년 동안 친밀한 관계를 이어 왔다. 무진이 둘째, 셋째 일가를 정리할 때 진씨 가문은 더욱 확고부동하게 무진의 모든 결정을 지지하였다. 물론 진상철은 바로 진혜선의 오빠라는 또 하나의 신분을 가지고 있다. 성격이 침착하고 업무 처리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북미 지역의 최근 2년 동안의 실적은 대단히 빠르게 늘어났다.연계진이 왜 하필 이 두 사람을 찾은 것인지 무진은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약 소태경만 찾았다면 오히려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결국 앞서 소지연의 일로 격노한 무진은 소씨 가문에 아주 쓰라린 교훈을 안겨주었다. 소씨 가문의 일맥인 소태경이 소지연의 복수를 생각하거나, 쉽게 모반을 획책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그러나 진상철 그는 무진보다 말을 아끼는 사람이다.진상철은 이미 북미 지역에 7년을 머물렀지만 돌아온 적이 없었다. 평소에 화상회의 외에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고, 무진도 기본적으로 진상철의 어떤 일에도 간섭하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업적을 올릴 생각만 하는 순수한 사람이었다.“그래서 네 말은 진상철이 최근에 귀국했다는 거야?” 이 핵심을 떠올린 무진의 입꼬리가 절로 떠올랐다.손건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습니다. 돌아온 지 며칠
북성, 이씨 가문의 저택.눈앞의 연계진을 살펴보는 이상효의 마음이 한바탕 복잡해졌다.유난히 얌전하게 홍차를 우려낸 소지연이 이상효 앞에 공손하게 차를 들고 왔고, 곧바로 손님에게도 차를 내주었다.마치 노예처럼 마음속으로 무수한 괴로움을 겪었지만, 소지연은 발버둥칠 수도 없었다.입덧을 꾹 참은 채, 언제든지 차를 추가할 수 있도록 찻주전자를 들고 옆에서 조심스럽게 기다려야 했다.‘나를 이렇게 쓰라린 처지로 만든 건 바로 송성연이야.’ 소지연은 수없이 분노하고 저주하면서 성연이 일찍 죽기만을 기원했다.“내게 기회를 주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기회만 있다면 독사처럼 목덜미를 물어뜯겠어.”소지연의 마음은 이미 완전히 비뚤어졌다. 만약 뱃속의 아이가 아니었다면, 성연과 함께 죽을 생각도 수없이 많이 했다.지금 이상효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고 느꼈다. 당대에는 견줄 만한 바가 없던 결혼식에서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강씨 가문의 넓은 인맥과 막강한 권세였다.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이상효가 강씨 가문을 번거롭게 만드는 걸 반대하고 나섰다.그러나 이상효는 강력한 적일수록 베어 먹는 이익은 더욱 감동적이라면서 반박하는 의견을 제기하였다.이씨 가문의 세력은 너무 작아서 이렇게 큰 운성시에서는 전혀 주류를 이루지 못했다. 그의 야심은 반드시 강력한 세력에 의지해야만 실현될 수 있었다.의심의 여지없이 지금의 연계진은 아주 좋은 기댈 만한 세력이다.연씨 가문이 이번에 남방에서 손을 썼는데,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연씨 가문이 이미 재정비하고 일어섰다는 것을 똑똑히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아주 명확한 태도를 취했다. 물론 연씨 가문이 생각처럼 그렇게 약하지 않아서, 함께 협력하면 강씨 가문을 상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이상효에게도 똑똑히 보여주기 위해서였다.만약 연계진이 그렇게 준수하고 깨끗하게 생기지 않았다면, 이상효는 좀 더 신임했을 것이다.“연계진 씨, 예전에 강씨 가문에 내분이 일어나서 죽기 살기로 싸웠을 때, 당신은 왜 그 기회를 틈타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