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자신이 기품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주 느끼했다.사실 남자의 생김새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다. 다만 성연을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노골적이라는 것. 마음속의 생각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 있어서 몹시도 반감을 자아냈다.성연이 어찌 이 남자의 마음을 모를 수 있겠는가? 성연의 표정이 곧 싸늘해졌다.“미안하지만, 저는 춤을 출 줄 몰라요.”“출 줄 모르면 제가 가르쳐 줄게요.” 어렵사리 눈독을 들인 사냥감을 남자가 그냥 그대로 쉽게 포기할 리는 없을 터.“아니요, 춤출 생각은 없어요.” 남자를 똑바로 쳐다보는 성연의 차가운 눈빛에는 거절의 의미가 분명했다.그러나 남자는 보지 못한 듯했다. 아니 보고서도 못 본 척한 표정을 지었다.성연의 힘이 아주 약할 거라고 생각한 남자. 조금 전까지 지켜본 결과, 같이 온 친구는 앨리스 한 명뿐인 듯했다. 바로 자신이 손을 쓰기 좋은 절호의 기회.성연의 곁에 앉은 그는 바로 성연의 손을 잡았다.“이 친목회에 온 건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 아닌가?”그러나 남자가 손을 건드리는 순간 성연이 그의 손을 치면서 말했다.“무슨 짓이야!”의자에서 일어난 성연은 이 남자가 무슨 더러운 물건인 양 휴지로 손을 박박 닦았다.성연의 동작을 본 남자의 표정이 살짝 변했지만, 여전히 놀리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예쁜 아가씨, 우리 집은 F국의 갑부야. 나를 따라오기만 하면 절대 섭섭하게 하지 않을 거야. 지금까지 내 신분을 밝히지 않은 내 잘못이야. 아가씨 또한 무슨 말인지 잘 알 거라고 믿어. 그렇지?”성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눈에는 비웃음을 가득 담고.“집안 재력에나 기대 사는 백수 노릇이 뭐가 대단해서?”성연의 이 말을 듣고 화가 난 남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래서 내 호의를 무시하겠다는 거야! 얘들아, 이 여자애 끌고 가!”남자는 원하는 걸 손에 넣지 못하면 가만히 참지 못하는 성격이 분명했다.남자의 명령에 갑자기 사방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나타나 성연을 향해 모
심재환이 성연을 보호하는 모습이 분명해 보이자, 사람들은 두 사람이 무척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했다.심재환은 유럽의 경제 신문에 자주 등장한다.공인된 권세를 가진 심재환이 지금 뜻밖에도 성연 옆에 등장하자, 심재환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는 주변 여자들은 모두 부러움에 질투가 날 지경이었다.사람들이 주위에서 수근거렸다.“저 여학생과 미스터 심과는 대관절 무슨 관계일까? 무슨 사이이길래 미스터 심이 이렇게 저 아가씨를 위해서 나서게 됐을까?”“그러게, 내 기억에 미스터 심은 예전부터 다가가기 힘든 사람이야.”“말도 마. 내가 최근 몇 년 간 SNS 상으로, 또 친목회 때마다 안부를 물어도 아무런 여지도 주지 않던 미스터 심이야.”남자도 심재환을 알아보았지만, 성연이 심재환을 알고 있을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그는 더듬거리며 겨우 말했다. “미, 미스터 심.” 심재환은 아주 부드러워 보이는 사람이지만 사업가이기도 하다. 게다가 재력과 권세가 하늘을 찌를 듯해서 그의 카리스마 또한 당연히 장난 아니었다. 심재환이 고개를 돌려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남자를 향해 경고했다.“너, 성연 양에게서 멀리 떨어져. 그렇지 않으면 네 집안이 어느 나라 재벌이건 간에 유럽에서 사업을 계속하지 못하게 만들 테니까.”심재환의 표정을 보니 절대 농담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남자가 F국 재벌이라고 해도 심재환처럼 유럽 대륙 전체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유명인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남자도 앞뒤를 잴 줄 알기에 즉시 거만한 자세를 버리고 심재환에게 연이어 허리를 굽혔다.“죄송합니다. 미스터 심, 죄송합니다. 제가 눈이 삐어서 하마터면 미스터 선의 친구분에게 무례할 뻔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심재환은 그런 남자의 태도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적어도 눈치는 있었다. 성연이 있는 쪽을 힐끗 바라본 심재환이 말했다.“네가 사과할 대상은 내가 아니야.”바로 깨달은 남자는 성연에게 허리를 굽히고 정성을 다해서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아가씨. 정말 죄송합니다. 제
성연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심 선생님, 알고 계세요? 당신이 한 말은 쉽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답니다.”심재환은 그 말에 얼른 두 손을 들어 장담했다.“천지에 양심을 걸고 맹세하지. 내가 어떻게 감히 너에 대해 분수에 맞지 않는 생각을 하겠어? 만약 네가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을 알면서도 내가 도와주지 않은 것을 스승님이 아신다면 내 다리를 부러뜨리실 게 분명해.”성연은 고개를 저으며 심재환의 이미지가 완전히 망가진 것 같았다.‘여기 어디에 기업 대표의 모습이 있느냔 말이지.’두 사람이 말하는 사이에 분위기도 어느새 한결 가벼워졌다.마침 이때 피아노 음악이 울렸다.플로어 가운데에 있던 사람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허리를 살짝 숙인 심재환이 성연에게 손을 내밀면서 숙녀에게 춤을 청하는 신사 흉내를 냈다.“송성연 양, 숙녀분께 춤을 청해도 될까요?”심재환은 방금 전까지 긴장된 시간을 겪은 성연에게 춤을 청해 긴장을 풀어줄 생각이었다.성연은 즉각 손을 내밀지 않고 다소 궁색하게 말했다.“나 잘 못 춰요.”심재환이 부드럽게 말했다.“괜찮아, 내가 가르쳐 줄게.”성연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심재환의 몸에 손을 얹었다.두 사람은 음악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성연은 처음에는 잘 따라다녔다.그러나 뒤로 갈수록 몸이 점점 더 긴장했다.그러다 결국 심재환의 구두를 바로 밟았다.바로 동작을 멈춘 성연이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죄송해요. 제가 잘 못 춘다고 했잖아요? 그만 출래요.”성연은 심재환의 구두 위에 찍힌 자신의 구두 자국을 보았다. 바로 자신의 서투름을 증명하는 증거. 성연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심재환이 가볍게 성연의 손을 잡아 끌었다.“네가 이렇게 한 건 이미 잘 한 거야. 많은 초보자들은 여전히 너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니 천천히 해. 넌 총명하니까 분명 빨리 배울 수 있을 거야.”그의 부드러운 음성에 성연이 금세 자신감을 회복했다. 이런 간단한 스텝에도 익숙하지 못한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투지를
한 곡이 끝났다.더 이상 출 생각이 없었던 성연은 심재환의 손을 놓고 반대편의 휴식 공간에 가서 앉았다.심재환은 주스 두 잔을 들고 와서 성연에게 건네주었고, 자신은 성연의 맞은편에 앉았다.과일 주스를 살짝 한 모금 마신 성연은 실내 장식을 둘러볼 생각에 고개를 돌렸다.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던 성연이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이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눈으로 본 탓.‘소지연도 여기에 왔어!’‘이번 친목회는 정말 요란스럽네. 와야 할 사람, 오지 말아야 할 사람이 모두 오다니.’소지연 옆에는 핑크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바로 오웬의 여동생. 이번에 소지연과 함께 오늘 이 자리에 참석했다.소지연은 원래 오고 싶지 않았다.오웬의 여동생은 너무 어렸다. 자신에겐 어린아이와 함께 노닥거릴 시간이 없었다.그러나 오웬의 여동생은 찰거머리처럼 하루 종일 자신에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자신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하지만 소지연은 절대 동의하지 않았다.자신에게 부탁해도 안되자 결국 오웬의 여동생은 오빠 오웬이 자신을 찾아오게 만들었다.소지연은 오웬의 명령에 반항 한 번 못하고 올 수밖에 없었다. “언니, 나 저거 먹고 싶어.” 오웬의 여동생은 딸기 케이크를 가리키며 순진하게 눈을 깜박였다.소지연은 속으로 째려보았다. ‘분명히 성인인데도 내내 귀여운 척 하는 거 봐.’마음속은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겉으로는 인내심을 가지고 말했다.“너무 많이 먹으면 안 돼. 그렇지 않으면 충치가 생길 거야.”소지연의 말에 불만을 품은 오웬의 여동생이 소지연의 팔을 흔들면서 애교를 부렸다.“언니, 언니, 제발, 하나만 더 먹을게.”소지연은 이 여자애 역시 오빠 오웬처럼 사람을 못 살게 군다고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알았어, 하나만 더 먹어.” 결국 소지연은 오웬의 여동생에게 딸기 케이크를 다시 가져다주었다.그리고 몸을 돌리던 순간 송성연의 시선과 마주쳤다.소지연의 마음속에 당황스러움이 스쳤다. 송성연이 이 자리에
성연이 계속 다른 쪽을 쳐다보는 것을 본 심재환은 궁금해져서 물었다.“성연아, 뭘 보고 있어?”“아는 사람요. 전화 좀 하고 올게요.”성연이 말하면서 일어섰다.심재환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여기서 기다릴게.”화장실에 도착한 성연은 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연의 전화를 받은 무진은 좀 의아했다.“오늘 저녁에 친목회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시간이 나서 내게 전화했어?”성연은 바로 말했다.“내가 친목회에서 소지연을 봤어요.”“정말이야? 정말 소지연이야?” 무진의 말투가 한결 심각해졌다.그들은 지금 전력을 다해 소지연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소지연이 감히 사람들의 시야에 드러난 것.“맞아요, 정말 그 여자예요.” 성연이 확실하게 대답했다.“좋아, 내가 바로 사람을 보낼게.”무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가서 지켜보겠어요, 무슨 소식이 있으면 전화할게요.” 말을 마친 성연은 전화를 끊었다.예전이라면 그래도 자신이 손을 써서 도왔을 것이다.그러나 그녀는 무진이 이터너티의 보스라는 걸 알게 된 이후로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사람 하나 잡는 일일 뿐이야. 무진 씨 그 정도 능력이 되니까.’성연이 돌아갔을 때 심재환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리고 소지연도 옆에서 성연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지금 나갔다가 들어온 성연을 보면서 아마도 자신의 행방을 전했을 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다. ‘더 이상 여기에 있을 수 없어.’마침 오웬의 여동생이 딸기 케이크를 다 먹자 그녀는 무거운 짐을 벗은 듯이 말했다.“딸기 케이크를 다 먹었네. 나는 갈게. 너 혼자 잘 놀아.”이번에도 오웬의 여동생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말했다.“언니, 좀 더 나와 함께 있어줘요. 망고 케이크도 먹고 싶어요.”소지연은 마음이 초조해 죽을 지경이다.여기에 오래 있을수록 자신이 잡혀갈 위험은 커질 것이다지금 오웬의 여동생이 계속 여전히 매달리자, 소지연은 인내심을 완전히 잃었다.“먹어, 먹어. 네가
무진은 소지연을 잡았다는 수하들의 보고를 전해 들었다.무진은 조급하게 소지연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학교 밖에서 성연에게 연락해서 나오게 했다.연락을 받은 성연이 일어서서 나가려고 하는데 심재환도 따라서 일어섰다.“어디 가려고?”“잠깐 밖에 나갔다 오려고요.” 성연이 담담하게 말했다.“나하고 같이 가자.” 성연을 혼자 보내자니 심재환은 다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그래요.” 성연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성연은 심재환을 따라 함께 학교 밖으로 나왔다.온화한 표정으로 학교 입구에 선 채 성연을 기다리고 있던 무진.다른 남자와 같이 나오는 성연을 보았다.무진의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동시에 온몸에서 차디찬 기운을 내뿜었다.목현수가 등장한 이후 무진은 성연의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모두 민감했다.성연은 곧장 무진의 분위기가 변했음을 감지했다.그리고 이런 변화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는 이마를 탁 쳤다.그녀는 이마를 짚었다. ‘우리 집 질투쟁이 때문에 골치가 아프네.’‘심재환 씨 때문에 무진 씨가 저러는 게 분명해.’‘그래도 조금 전에 심재환 씨가 나와 같이 나오길 잘했어.’‘그렇지 않았으면 나중에 가서 분명하게 설명하기도 힘들었을 테지.’성연은 두 사람 사이에 서서 양쪽을 소개했다.“무진 씨. 이쪽은 내 친구 심재환 씨예요, 이쪽은 제 약혼자인 강무진 씨이고요.”“강 대표님의 명성은 저도 들은 바가 있습니다. 비록 오늘 만나 뵈었지만 과연 대표님은 명불허전이시군요.”심재환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무진도 손을 내밀어 심재환과 악수를 했고 두 사람의 손은 닿자마자 떨어졌다.성연이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약혼녀임을 인정하자 무진의 표정이 약간 풀렸다.“안녕하십니까?”심재환도 남자다. 무진의 표정을 보고 바로 대략적인 상황을 알아차렸다.“강 대표님, 오해하지 마세요. 저와 성연 양은 단지 친구입니다. 이번 친목회에서 마침 우연히 만나서 이야기만 나눴을 뿐입니다.”성연도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그래요, 방금 심재환
무진은 심재환을 훑어보면서 신비에 싸인 성연의 신분에 대해 감탄했다. 돈과 권력 모두 갖춘 이런 잘 생긴 킹카와도 안면이 있다니.‘비교가 되니 내가 더 노력해야겠군.’그는 성연이 자신을 떠날 수 없을 정도로 더 잘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심재환도 물러날 때를 알고 있다.원래 자신은 성연에게는 다른 뜻이 없었다.지금 무진이 왔으니 당연히 여기에서 훼방꾼 노릇을 할 수는 없었다.심재환은 핑계를 대고 떠났다.“강 대표님, 제가 오늘 학교에 온 것은 일이 좀 있어서입니다. 제가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면 교장이 저를 찾을 겁니다.”무진도 시원스럽게 말했다.“네, 그럼 심 선생님 다음에 만날 때는 제가 식사를 대접하겠습니다.”심재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곧 입구에는 성연과 무진 두 사람만 남았다.다른 사람이 없자 무진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걱정이 되어 말했다.“내 약혼녀가 이렇게나 대단한 사람이었군. 내가 너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어.”성연이 타박하며 말했다.“그게 무슨 말이에요? 어울리고 어울리지 않는 게 어디 있어요, 게다가 그 사람들은 모두 친구들이에요. 무진씨하고는 다른 개념이라고요.”“친구와 남자친구를 어떻게 비교할 수 있어요?”‘무진 씨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고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없어.’‘그러나 무진 씨는 내가 자기를 위해서 이미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는 걸 몰라.’‘됐어, 원래 내가 이렇게 한 건 단지 무진 씨를 더 잘되게 하려고 한 것일뿐이야.’‘무진 씨가 아는지 모르는지는 상관없어.’‘무진 씨가 나 때문에 희생한 것도 이미 많아.’“내가 네 마음속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이야?” 무진은 다소 유치한 질문을 했다.성연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무진 씨는 내 마음속에서 물론 가장 특별하고 대체할 수 없는 존재인 걸요.”그녀가 이렇게 말한 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확실히 사실이 그런 걸.성연의 말을 들은 무진은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사납게 들끓던 마음이 가라앉으며 위로를 받았다.그
소지연은 버려진 창고 안 어두컴컴한 공간에 앉아 있었다.사방에서 찍찍거리는 쥐 소리가 들려왔다.소지연은 몸과 마음이 다 움츠러든 채 약간 무너져서 울고 싶었다.그녀는 아직도 왜 무진과 자신이 지금 이 지경까지 됐는지 알 수 없었다.‘내 정조도 지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길거리 쥐새끼처럼 숨어야 했어.’‘만약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송성연이 나타나지 않았던 때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얼마나 지났을까, 밖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어두운 창고에 한줄기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고개를 쳐든 소지연은 무진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소지연의 눈에 황홀한 빛이 어렸다.“무진 오빠...”무진의 눈에는 냉소가 가득했다.“나에게 네가 이렇게 오빠라고 부를 만한 가치가 있을까?”소지연의 마음속을 한 가닥 아픔이 스쳐 지나갔다.‘이제 내가 순결하지 않기에, 무진 오빠가 나를 더 무시할 게 분명해.’고개를 숙인 무진은 차가운 눈빛으로 소지연의 눈을 마주하면서 물었다.“너는 도대체 성연이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해코지를 한 거야? 지난 번에 킬러를 보낸 건 네가 맞지? 그리고 송아연의 일과 이번에 성연이 교통사고를 당할 뻔한 것도 모두 네가 꾸민 짓이야?”잡혔으니 소지연도 할 말이 없었다.아예 자포자기하고 말았다.“맞아, 모두 내가 한 거야. 걔가 나에게서 오빠를 빼앗으려고 했어, 오빠는 내 거야!”소지연이 무진 앞에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그러나 이 시기는 아무리 봐도 옳지 않았다.소지연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본 무진은 고개를 저었다.“나는 누구의 것도 아니야. 게다가 사람의 감정을 이렇게 억지로 할 수 없다는 걸 몰라?”그의 마음은 좀 복잡했다. 자신은 예전에 소지연을 정말 믿었다.두 사람에게 이런 상황이 닥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런데 십여 년 동안 함께한 우리 감정은? 송성연 한 사람보다 못한 거야?” 소지연은 무진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그동안 느낀 억울한 마음이 전부 쏟아져
“그렇게 하겠습니다.” 외삼촌이 말한 걸 그래함은 모두 승락했다.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외삼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유채연은 외삼촌이 제시한 조건들에 대해서 아주 불만이었다.‘내가 그래함과 함께 하는 건 두 사람이 예전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그러나 지금 외삼촌이 그렇게 많은 요구를 하는데, 오히려 내가 그래함의 돈 때문에 그래함과 함께 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유채연이 항의했지만 외삼촌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래함을 바라보았다.“어때? 내 이 조건들을 자네가 승낙한다면 채연이가 자네와 함께 떠나도 돼. 자네가 승낙하지 않는다면... 그럼 말할 필요도 없지!”유채연이 다시 말을 하려고 했지만, 바로 뒤에 있던 성연이 유채연의 옷소매를 당기면서 권유했다.“사형에게 저런 요구를 한 건, 외삼촌이 언니에게 사고가 생길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에요. 나중에 혹시라도 집안이 몰락하게 될까 봐 일부러 이런 요구를 한 거예요. 만약 언젠가 정말 의외의 사고가 생긴다 해도, 언니가 읍내로 돌아올 수 있게 말이죠.”옆에 있던 성연은 벌써 외삼촌의 뜻을 알아차렸다.‘외삼촌이 말한 조건은 모두 채연 언니에게 유리한 것들이야.’‘외삼촌은 자신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어.’‘돈도 채연 언니 계좌에 넣고, 집 명의도 채연 언니 앞으로 하라고 했어.’‘모두 채연 언니에게 만약의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한 거야.’성연도 그제서야 외삼촌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삼촌의 마음이 이렇게 세심한 줄은 몰랐어.’‘사형이 채연 언니를 아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외삼촌이 말한 이런 상황은 생기지 않을 거야.’‘그러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이기도 해. 결국 앞으로의 일은 아무도 모르니까.’유채연도 그제서야 외삼촌의 의도를 알게 되었다.‘외삼촌의 요구는 모두 나를 위해서였어.’유채연은 더더욱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그저 그래함을 바라볼 뿐이다.“외숙부님이 말씀하신 건 다 문제없습니다. 채연이에게 사 줄 집을 한번
성연은 식당 입구의 작은 가게에서 그래함과 유채연을 기다렸다.두 사람이 손을 잡고 식당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고, 성연은 두 사람이 함께 하기로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성연은 묵묵히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그래함이 유채연을 데리고 가더라도 바로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유채연의 외삼촌이 별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해도.그러나 유채연의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다. 유채연을 데려간다면 그래함은 반드시 외삼촌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그래함은 유채연과 함께 돌아가서 외삼촌을 만났다.외삼촌이 그래함을 난처하게 만들 것을 염려해서, 유채연은 원래 그다지 외삼촌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외삼촌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자, 유채연도 조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생각해보니 외삼촌은 아마 동의할 것 같아.’그들이 집에 도착했을 때, 유채연의 외삼촌은 거실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외삼촌.” 유채연은 그래함의 뒤에 숨은 채 외삼촌을 바라보았다.‘외삼촌은 지금까지 내가 여기서 살게 해주셨어.’‘어쩌다 내게 온정을 보이기도 했지만.’유채연도 외삼촌 본인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외삼촌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그래함은 유채연의 손을 토닥이면서 긴장을 풀고 모든 건 자신에게 맡기라는 눈짓을 했다.“외숙부님.” 그래함이 유채연과 함께 외삼촌 맞은편에 앉았다.외숙부라는 호칭을 듣자마자 외삼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험악판 표정을 지으며 그래함을 바라보았다.“지금 뭐라고 했어? 나는 당신 같은 조카는 없어.”그래함은 오히려 외삼촌을 두려워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어차피 이제 모두 한 가족이 될 테니까 제가 외숙부님이라고 해야지요.”그래함의 말에 반박하려던 외삼촌은, 부끄러워하면서도 기대감에 가득 찬 유채연의 눈빛을 마주하자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무슨 일이야!” 외삼촌은 코웃음을 치면서 그래함을 쳐다보았다.“저는 채연이를 데리고 가고 싶습니다. 여기서 나가서 더 잘 살 수 있게
이튿날 오후, 가게문을 닫은 뒤 유채연은 성연의 안내로 그래함을 만났다.이번에는 유채연의 수줍은 성격을 고려해서, 밀크티 가게가 아니라 칸막이가 있는 식당을 골랐다.엉성한 칸막이지만 그래도 모두 다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우아한 분위기가 넘치는 잘생긴 그래함을 보자, 유채연의 얼굴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유채연이 그래함에게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감정이 없었다면 그 옥노리개도 간직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채연아,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그래함이 유채연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나는, 다 괜찮아.” 유채연은 그래함을 똑바로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그래함은 이렇게 멋스러운데, 나는 진흙밭의 진흙일 뿐이야.’요 몇 년 동안 유채연은 전혀 자신을 꾸미지도 않았다.날마다 그럭저럭 지냈을 뿐이다.지금은 그래함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도 없었다.‘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래함에게 어울릴 수 있겠어?’그래함이 종업원을 불러서 가정식 요리를 몇 개 시켰다.모두 유채연이 좋아하는 음식들이다.그래함이 시키는 요리 이름을 들으면서, 유채연은 놀라면서도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다, 당신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어?”그래함이 유채연을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좋아하는 걸 내가 어떻게 기억하지 못하겠어?”“당신...”그래함이 자상하게 대할수록 유채연은 더 열등감을 느꼈다.‘나한테 무슨 덕과 능력이 있어서 이런 사람에게 어울리겠어?’“애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음식부터 먹자.” 그래함의 마음은 더 긴장하면서 안절부절 못했다.이번에 또다시 거절 대답을 듣게 될까 봐 두려웠다.성연은 턱을 괸 채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유채연은 그다지 먹고 싶은 것 같지 않았다. 그래함은 수시로 유채연에게 음식을 집어 줬지만, 식사하는 내내 유채연을 쳐다보느라 음식도 그다지 먹지 않았다.안타까움이 가득한 식사였다.가까스로 식사를 마친 뒤, 그래함은 종업원에게 앞의 음식을 치우고 주스와 과일을 내오도록 했다.그래함이 유채
“나도 모르겠어.” 유채연은 고개를 저었다.이 옥노리개를 보고 유채연은 큰 충격을 받은 게 분명했다.그러나 여전히 모든 걸 맡길 용기를 내지 못했다.“언니,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세요. 만약 언니가 사형을 믿지 않는다면, 먼저 사형을 좀 지켜보다가 적당할 때 다시 승낙하면 돼요.” 성연은 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유채연을 너무 팽팽하게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언니의 마음속에 열등감이 있기 때문에 천천히 진행할 수밖에 없어.’“하지만...”유채연은 입술을 깨물었다.“별거 아니에요, 이건 언니하고 사형 두 사람의 일이잖아요. 같이 있을 수 있다면 당연히 더 좋겠지만, 그래도 사형을 한번 만나보세요.” 성연은 입이 닳도록 말하면서 언제 유채연을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느꼈다.합쳐진 옥노리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채연이 마침내 용기를 냈다.“알았어. 그래함과 얘기해 볼게.”유채연도 그래함이 진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말만 하는 거니까 별거 아니야.’마침내 이 말을 듣자 성연은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드디어 유채연을 설득한 것이다.“그래요. 언니에게 기회를 주고 그래함 사형에게도 기회를 줘야 하지만 그래도 고려해 봐야겠지요.” 성연은 드디어 해냈다고 생각했다.‘오늘 헛걸음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야.’“고마워.” 유채연은 손에 든 옥노리개를 꼭 쥐었다.‘만약 성연이가 내게 그렇게 많이 권하지 않았다면.’‘아마 그래함을 만나지도 못했을 거야.’‘하지만 이렇게 비참해진 나한테 더이상 비참한 일은 없을 거야.’‘그러니 나도 한번 노력해보겠어.’“언니, 자신의 마음을 존중하고 선택하면 좋겠어요.” ‘채연 언니가 사형에게 아무런 느낌도 없는 건 아니야.’“그럴게.” 유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유채연이 성연에게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지만, 성연은 그래함 때문에 사양했다.유채연도 더는 붙잡지 않았다.호텔로 돌아온 성연이 문을 열자, 그래함이 옆방에서 걸어 나왔다.‘사형이 계속 이쪽의
성연이 보니 이제 때가 된 듯했다.그래서 유채연에게 그래함 얘기를 꺼냈다.“채연 언니, 사형이 이번에 돌아온 건 바로 언니 때문이에요. 사형은 바로 언니를 찾으려고 온 거죠. 사형이 언니한테 어떻게 너에게 대하는지 언니도 봤을 거예요. 사형은 정말 언니를 좋아해서 언니한테 잘해주는 거예요. 언니도 앞으로 결혼하겠죠, 그렇죠? 그런데 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아요?”성연이 한 말도 일리가 있지만 유채연은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그동안 자신의 모든 것이 소멸되다시피 했다.유채연에게는 전혀 그런 자신감이 없었다.유채연이 목이 메인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나는 그래함에게 어울리지 않아.”말을 마친 유채연이 또 눈물을 흘렸다.그래함의 찾아와서 유채연의 마음속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그러나 유채연은 자신과 그래함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되었다.자신은 이미 감히 그래함을 원할 수 없었다.성연은 유채연의 어깨를 토닥여 주고 싶었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감정의 일이 이렇게 복잡할 줄 몰랐어.’‘좋아하는데 그냥 함께 하면 돼잖아.’‘게다가 두 사람은 너무 많은 걱정을 하고 있어.’‘하지만 지금 채연 언니에게는 사형의 신분이 큰 문제야.’성연도 이해할 수 있었다.‘미래가 정말 너무 막막할 거야.’성연이 갑자기 반쪽짜리 옥노리개를 꺼냈다.옥노리개를 본 유채연은 깜짝 놀라면서 뭔가를 회상하는 것 같았다.‘이 옥노리개를 뜻밖에도 그래함이 여전히 가지고 있었어.’성연이 옆에서 말했다.“그래함 사형은 줄곧 언니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렇게 오랫동안 여자친구도 없이 줄곧 언니를 기다린 거예요.”유채연이 목에 차고 있던 다른 반쪽의 옥노리개를 이어 붙이자, 완전한 옥노리개가 되었다.흥분한 유채연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나는 원래 그리움에 이 옥노리개를 남겨 두었을 뿐이야.’‘그동안 그래함도 나와 같은 생각일 줄은 전혀 몰랐어.’“그동안 그래함에게 정말 여자 친구가 하나도 없었어?” 유채연
저녁 무렵에 성연이 다시 왔다.두 사람이 이번에 온 목적이 유채연을 데려가는 것인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그래함도 오고 싶었지만, 유채연의 감정이 너무 격해질까 봐 성연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메로나 두 개요.” 카운터 앞으로 바로 간 성연이 유채연을 향해 말했다.성연의 출현에 유채연의 마음도 흔들렸다.그러나 자신이 그렇게 동요하는 모습을 본 성연이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유채연은 말없이 묵묵히 냉장고에서 메로나 두 개를 꺼냈다.“여기 있어. 돈은 필요 없어.”성연은 미소를 지었다. ‘채연 언니가 어떤 모습으로 변했든 언니 마음은 항상 착해.’성연도 계산을 하지 않고 포장을 뜯고 먹으면서 나머지 한 개는 유채연에게 주었다.“채연 언니, 여기요.”성연이 자신에게 줄 줄은 몰랐기에 유채연은 놀라서 성연을 바라보았다. 성연이 웃으면서 말했다.“예전에 언니도 우리에게 하드를 많이 사줬잖아요.”유채연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과거의 기억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어.’‘사람이든 일이든 다 똑같아.’유채연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성연이 주는 하드를 거절하지 않고 받아서 먹기 시작했다.성연이 고개를 돌려 유채연을 보면서 감탄했다.“채연 언니, 언니는 이전보다 더 예뻐졌어요.”‘채연 언니는 정말 예뻐. 그렇게 많은 일을 겪고도 여전히 부드럽고 아름다워.’‘이전과 달리 언니의 미모가 세월 속에 쌓였어.’유채연은 자신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얼굴을 붉혔다.“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몰라. 이렇게 거친 얼굴이 어디가 예쁘겠어.”‘내가 좀 더 나은 모습이라면 그래함과 함께 할 용기가 있을 텐데.’‘그러나 세상 일은 종종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피부 관리만 잘하면 돼요. 화장만 하면 천상의 선녀보다 더 예뻐요.” 성연은 유채연의 바로 옆에 앉아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때때로 사람들이 물건을 사러 오거나 손님이 많은데 유채연이 바쁠 때면, 성연도 옆에서 도와주었
이때 산책하고 돌아오던 외삼촌이 성연을 보고는 불만을 표시했다.“걔가 원하지 않으면 그만둘 것이지, 왜 또 강요하는 거야? 나는 성질 좋은 사람이 아니야. 채연이를 괴롭히지 마.”외삼촌의 말을 들은 성연은 유채연을 한참 바라보다가 결국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성연도 중재자일 뿐이기에 유채연을 대신해서 결정할 수는 없었다.지금 유채연의 외삼촌 때문에 대화를 나누기가 더 불편했기에, 돌아가서 다시 방법을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성연이 나간 뒤 외삼촌을 보면서 유채연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그 자리에 선 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보는 사람을 더없이 가슴 아프게 했다.유채연의 이런 모습을 본 외삼촌은 크게 화를 냈다.바로 유채연을 향해 화를 내며 소리쳤다.“너 왜 그래? 아까 그 남자가 바로 네 사진 속에 있던 걔가 맞지? 그 사진을 몇 년이나 보고 있었는데, 그 남자를 좋아하는 거지? 그럼 나가. 이 작은 가게는 나 혼자서도 관리할 수 있어.”예쁘고 부지런한 유채연이 요 몇 년 동안 일하는 모습을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었다.유채연에게 남자를 소개해 주겠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유채연은 응하지 않았다.맞선을 볼 때마다 유채연은 자기 방문을 꼭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언젠가 문을 잠그는 걸 깜빡했을 때, 외삼촌이 무심코 유채연의 손에 든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유채연은 마치 보물을 대하듯이 사진을 보고 있었다.그때 외삼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금 그 사람이 정말 나타났는데 조건도 아주 좋아 보여.’‘채연이가 그 남자와 함께 한다면 지금보다 더 잘 살 수 있을 거야.’외삼촌의 말에 유채연은 순간 멍해졌다.유채연은 자신이 나간다고 하면 외삼촌이 제일 먼저 반대할 거라고 생각했다.자신이 떠나면 외삼촌을 챙겨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유채연의 눈에 외삼촌은 줄곧 나쁜 사람의 모습이었다.하지만 그래도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는 외삼촌이 자신을 돌보고 보호해줄 거라고 생각했다.‘외삼촌이 가끔씩 말을 거칠게 해도 속마음은 부드러워.’
다음 날 아침 일찍 성연이 왔다.성연은 바로 가게에서 유채연과 이야기하고 싶었다.“채연 언니.”어제 두 사람에 대한 유채연의 태도는 좋았다.그러나 오늘 유채연은 냉담하게 거부하는 모습이었다.성연을 보고 정색을 하면서 미소도 전혀 짓지 않았다.“성연아, 물건을 사지 않으면 나가. 우리 가게는 작으니까 여기에 있지 마.” 축객령을 내린 것이 분명했다.그런 유채연을 보면서 성연은 단지 가슴이 아팠을 뿐이다.‘두 사람에게는 분명히 좋은 미래가 있어.’‘그러나 채연 언니는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해.’“채연 언니, 언니하고 그래함 사형 사이에 분명히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 두 사람이 잘 이야기하면 오해도 잘 해결될 거예요.” 성연도 두 사람이 잘 지내면서 행복하게 함께 있기를 바랐다.하지만 매번 뜻대로 되지 않았다.“우리 사이에 무슨 이야기할 만한 게 있겠어. 나를 찾아온 거라면 돌아가. 만약 나를 찾으러 온 게 아니라면, 여기서 즐기면서 나한테는 더 이상 오지 마.”이렇게 말하면서, 유채연은 마음속으로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그러나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돼.’‘그래함과 성연만 여기서 나가면 돼.’‘이렇게 하면 나도 그렇게 생각을 많이 하지 않을 거야.’‘예전의 꿈만 기억하면 돼.’‘나는 다시 내 생활을 계속할 수 있어.’“언니, 언니는 지금 사형에게 정말 아무런 느낌도 없어요?” 성연은 유채연이 그래함에 대해서 아무런 느낌도 없다는 걸 믿지 않았다. 유채연의 눈빛이 반짝거렸지만 말을 하지 않았다.성연은 아직 희망이 있다고 느꼈다.더욱 분발해서 열심히 권유했다.“채연 언니, 언니의 생각이 어떤 지를 떠나서 나는 단지 언니가 사형하고 잘 얘기하고, 무슨 문제가 있으면 함께 해결하기를 바랄 뿐이에요.”유채연도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자신이 자격이 없다고 여겼다.자신과 맺어질 수 없는 그 사람을 지나치게 원하지 않기 위해서, 아예 생각을 끊으려는 것이다.“나는 여기에 남아서 가게를 봐야 해. 성연아, 네
외삼촌에게 밥을 차려준 뒤 유채연은 혼자 가게를 지켰다.손님에게 물건을 가져다주면서.오늘 밤, 유채연은 가게 문을 닫는 시간을 좀 연장했다.외삼촌이 의심할까 봐 유채연도 너무 오래 끌지는 못했다.마침내 작은 슈퍼마켓의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다.유채연은 혼자 길모퉁이까지 걸어가 보았다.그러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갑자기 더없이 서글퍼지자, 유채연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그래함은 납득했겠지.’‘내가 지금 어떤 처지인데, 또 어떻게 그래함을 연루시킬 수 있어?’‘나도 너무 뜬구름 잡는 생각만 한 거야.’유채연은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하긴, 그래함이 왜 내게 반했겠어?’‘지금의 내게 그래함이 좋아할 만한 게 뭐가 있겠어.’유채연은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방 문을 잠근 뒤 이불 속에 눕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마음속으로는 모든 걸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마음은 그래도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그때 어머니의 병이 아니었다면 집안이 망하지는 않았을 거야.’‘아마도 나도 대학에 갔을 거고, 그래함과 함께 성장할 수 있었겠지.’‘어쩌면 모든 게 달라졌을지도 몰라.’‘그런데 지금 이런 생각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어.’‘나와 그래함도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이제 나는 아름다운 추억만 간직하고 살아가면 돼.’‘지금의 나는 이전처럼 헛된 망상을 할 자격도 없어.’‘현실로 돌아가는 게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야.’유채연의 마음은 몹시 복잡했다.똑똑똑- 넓은 방안에 문 밖의 노크 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크게 울렸다.유채연은 이런 장면에 익숙한 듯 눈물을 닦고 침대에서 일어났다.“외삼촌, 무슨 일이세요?”약간 갈라진 듯한 유채연의 목소리는 특히 표시가 났다.하지만 유채연은 그렇게 많은 걸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내 맘대로 하면 돼.’“너 오늘 저녁 안 먹었지?” 밖에서 외삼촌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안 먹을래요.” 생각할수록 슬퍼서 유채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