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연이 웃었다. ‘생각하지도 못했네. 지금 내 이름이 이렇게 ‘인기’ 있을 줄은. 학교 밖에까지 소문이 났단 말이야?’“부정행위? 직접 봤어요? 직접 봤다면 증거를 내놔 봐요. 몇 시 몇 분, 어디서 부정 행위를 했는지? 정확하게 말 못하면 유언비어 날조에 인신모욕으로 고소할 테니까.” 성연의 얼굴이 싸늘했다.영문도 모른 채 한바탕 막말을 들었다. 특히 자신이 하지 않은 일로 욕을 먹으니 순식간에 기분이 나빠졌다.알바생이 기세 등등하게 대답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데, 가짜겠어? 아직도 몰라? 너 지금 게시판에서 유명인이야.”게시판이라는 말이 언급되자, 성연이 눈썹을 찌푸렸지만 표정에서는 드러내지 않았다.입술을 빼문 채 눈에는 비아냥거림이 가득했다.“다른 사람이 내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하면, 내가 부정행위를 한 게 되는 거야? 당신이 진짜로 봤냐고? 그럼 다시 말해서, 내가 당신이 돈 훔치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면, 당신 진짜 훔친 게 되겠네?”말하면서 성연이 휴대폰을 꺼내 점원을 향해 계속 사진을 찍었다.“아이고, 밀크티 가게 알바생 손이 너무 더러워. 마침 나한테 딱 걸렸네.”말하는 내내 알바생을 향해 큰 눈을 깜박였다.“이 사진들 게시판에 이 제목으로 올리는 게 어때요?”알바생의 얼굴이 온통 벌겋게 달아올랐다.“돈, 안 훔쳤어. 그만 멈춰, 그만해.”자신도 알았다. 성연이 정말 사진을 게시판에 올리면, 자신이 훔치지 않은 걸 거짓으로 올렸다해도 많은 네티즌들이 댓글창에서 자신을 비난하고 쑥덕댈 것이다.진짜 소문이 퍼지면 이 밀크티 가게 사장님도 가게 명성을 위해 자신을 해고할 게 분명했다.그럼 이 알바도 끝이다.곰곰이 생각하던 알바생은 마침내 성연이 이렇게 하는 이유를 깨달았다.‘송성연이 부정행위를 했냐, 안 했냐는 나 혼자 결론 내릴 수도 없는 거지, 뭐.’‘스스로 꽤 정의감이 있다 생각했는데, 사실 흑백도 가리지 않고 떠드는 사람들과 무슨 차이가 있지?’‘이렇게 억울함을 당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야.’
성연이 호주머니에 있던 손을 꺼내 인터넷 게시판에 들어갔다.이전에 가입했지만, 줄곧 들어간 적은 없었다.게시물을 뒤적거리다가 제일 위에 자신에 관한 글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온갖 죄명들이 모두 그녀의 머리에 씌워져 있었다.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네티즌들이 많았다.성연은 학교 측에서 상황을 명확하게 확인해서 자신의 누명을 벗겨줄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었다.그러나 지금까지 학교 측에서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이런 유언비어는 이미 자신의 생활 깊숙이까지 파고들어 심각한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자신에게 무슨 손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학교에서는 그렇다 쳐도 게시판을 통해 이미 학교 밖에까지 소문이 났다.앞으로 그녀가 밥 먹으려 어디 들어가면 모두 쫓겨나지 않을까 싶다.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조급해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손을 써야 할 때다.보건실에 가서 서한기를 찾았다.마침 게임을 끝낸 서한기가 고개를 들어 씩씩거리며 들어오는 성연을 쳐다보았다.보건실의 업무는 비교적 한가한 편이다.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면 자신이 침대에 누워 잠자거나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보스, 왜 그래요?” 얼른 핸드폰을 내려놓고 의자에서 일어섰다.“네 컴퓨터 꺼내 봐, 내가 좀 쓰자.” 성연은 침대에 기대어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서한기는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바로 캐비닛 안의 배낭에서 얇은 노트북을 꺼냈다. 성연이 직접 만든 이 노트북은 부하마다 한 대씩 가지고 있었다.노트북을 건네받은 성연은 고개를 숙인 채 말도 하지 않고 길쭉한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재빨리 입력했다.게시판에 들어가서 글쓴이를 찾은 다음, 그가 글을 올린 시간을 따라 IP 주소를 찾아냈다.그리고 바로 그 놈의 컴퓨터를 해킹해서 개인 정보를 조회했다.성연은 글쓴이가 놀랍게도 북성남고 학생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검은 테의 안경을 쓴 얼굴에는 여드름 자국이 가득했다. 자세히
서한기는 학교 보건실 선생님으로서 CCTV를 확인할 수 있었다.그는 학교 경비실에 가서 보안요원에게 작은 물건을 잃어버려서 CCTV를 확신할 필요가 있다고 사정했다.조금도 의심하지 않은 보안요원이 바로 서한기에게 CCTV를 보여주었다.한 시간 후, 서한기는 그날 밤의 CCTV 화면을 찾았다.화면을 성연 앞으로 돌렸고, 화면은 검은 뒷모습에서 멈췄다.성연이 화면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CCTV에서 확인해 보니, 영상 속의 사람이 송아연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전에는 그저 송아연에 대해 의심만 했었다. 성연은 송아연이 좀 더 똑똑하게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의외였다. 이 시험지는 뜻밖에도 송아연이 직접 학교에 숨어 들어와서 훔쳤다.아마도 최근에 송씨 집안이 송아연 때문에 20억을 써서 돈이 없어서일 거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을 터.영상 속 인물이 송아연이니, 훨씬 일을 처리하기 쉬워졌다.“그날 밤 송씨 저택 앞의 CCTV를 확인해봐. 내가 IP주소를 줄게. 풀 수 있지?” 성연은 노트북을 켰고, IP주소를 입력했다.“보스, 저를 너무 우습게 보는군요, 당연한 것을.” 서한기는 보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바로 풀기 시작했다.10분도 안 되어 송씨 저택 앞의 CCTV를 확인했다.두 사람의 몸매를 비교해 보니, 자신을 모함한 사람이 송아연이라는 게 확실해졌다.“너는 이 두 CCTV를 녹화 영상을 편집해서 다운로드해서 내 휴대폰으로 전송해.”송성연은 손을 주머니를 꽂으며 나갔다.동영상을 편집하느라 바빴던 서한기가 다시 고개를 들어 그녀를 한 번 보았다.“보스, 어디 가세요?”“그루터기에 토끼가 부딪쳐 죽기만을 기다린다.” 성연은 이 말만 하고 바로 가버렸다. 서한기는 영문 모르게 제자리에 서 있었다.교실이 있는 건물 옆의 큰 나무에 기대어 앉은 성연이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자 많은 학생들이 건물에서 쏟아져 나왔다.학생들을 관찰
성연은 유성에게 송아연과의 채팅기록과 통장 거개내역을 캡쳐하게 한 뒤, 두 개의 CCTV영상 기록과 함께 게시판에 올리도록 했다.겁도 많고, 배짱도 없는 유성이 돌연 마음이 바뀔까 전혀 걱정되지는 않았다. 두 개의 CCTV에 이미 송아연의 범죄 사실이 모두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자신과 연루되는 것이 두려운 유성이 성연의 말을 듣기로 했다.“너 잘들어, 딴 맘 먹을 생각 하지도 마! 안 그럼 네 손가락 하나 부러지는 걸로 끝나진 않을 테니까!” 성연은 경고하듯 손가락을 꽉 잡았다.유성은 고구마를 먹은 듯 가슴이 답답했다. 송성연은 갓 시골에서 올라온 뜨내기라, 다루기 쉬울 거라는 송아연의 얘기를 듣고, 돕겠다고 시작했는데.‘그런데 이제 누가 좀 말해 줘. 앞에 있는 악마 같은 애는 도대체 누구인지.’“내가 어떻게 감히……지금 바로 올릴 게.” 손가락이 부러지는 듯한 고통을 참으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휴대전화를 꺼내어 한 글자, 한 글자 입력하기 시작했다.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잘못을 반성하는 취지로 성연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글을 게시판에 올렸다. 마지막으로 채팅기록과 CCTV 영상을 업로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게시판을 본 사람들은, 이런 반전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들 놀라서 어안이 벙벙했다.게시물 아래 달린 댓글 논쟁은 더욱 치열해졌다.기본적으로 ‘송아연 범죄의 실체’ 라는 논조였다.[송성연이야말로 가장 무고한 피해자네!][송아연이 송성연에게 고의로 뒤집어씌운 게 분명하구만!]게시판이 난리가 났다. 분위기에 휩쓸려 성연을 비방하던 사람들도, 자발적으로 댓글창에 사과의 글을 올렸다.이와 동시에, 성연은 관련 증거들을 모아 교무주임 사무실로 가져갔다.가져간 자료를 본 교무주임의 안색이 확, 변했다. 얼른 전화를 걸어 이윤하 선생을 불렀다. 이윤하는 송아연의 담임교사다. 송아연이 관련된 일이므로 당연히 담임 이윤하가 자리에 있어야 한다.모든 증거들을 본 이윤하는 성연을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그런데 이 증거
예전 송아연이 피아노 경연대회에서 상을 받았을 때, 이윤하는 교장의 지시로 송아연의 집으로 가정방문을 간 적이 있었다.저기는 송아연 집이 확실했다.사진은 조작이 가능하다 쳐도, CCTV 영상은 편집하기 힘들다. 학교에서 찍힌 뒷모습과 송아연의 집에서 나오는 아연의 옷차림이 똑같았다.교장 또한 착한 아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려 왔다.지금 이 상황에 이르러서도 아연은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교장이 교무주임에게 눈짓을 보냈다.즉시 교장의 의중을 알아차린 교무주임이 아연을 교장실 옆의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갔다.교장실과 이웃한 벽 한 면은 유리로 되어 교장실 내부가 다 보였다.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아연은 교무주임을 따라 옆의 방으로 들어갔다.교장은 직접 송아연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송씨 집안에서 이 시간 한가한 사람은 딱 한 명, 지금 전화를 받는 임수정이다.교장이 온화한 어조로 인사하며 물었다.“송아연 어머님, 뭐 좀 궁금한 게 있어 전화 드렸습니다…… 혹시 송아연 학생이 월례고사 전날 밤에 어디에 있었는지요? 별 다른 뜻은 없습니다. 형식적인 것으로 학부모님들께 연락 드려 학생들 동정을 학인하는 취지입니다.”교장의 공손한 태도에, 임수정은 경각심을 늦추며 기억을 떠올렸다.시험 전날 밤이라면 지금도 똑똑히 기억난다.아연은 교장이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손가락을 손바닥 안으로 말아 쥐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제발 자신이 집에 있었다고 엄마가 말해 주길 빌었다.하지만 애석하게도, 딸의 울부짖음을 끝내 듣지 못한 엄마 임수정이 곧장 대답했다.“그날 아연이가 동급생 생일 파티가 있다고 했어요. 9시가 되어서 나갔다가 11시가 넘어서 돌아왔을 걸요. 그래서 제가, 곧 시험인데 집에서 복습이나 할 것이지 어디 또 나가냐고 했더니, 친구 생일이라고 하더라구요…… 아연이는 어른들 걱정 안 시키는 아이라 그냥 보내줬어요. 교장선생님,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아, 아닙니다. 감사합니
이 폭탄 같은 뉴스가 터진 후, 사람들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게시판의 상황이 전해졌을 때, 모두들 반신반의했다.하지만 학교에서 인정하니 거짓일 리도 없었다.심지어 이 일이 송아연과 관련 있다니, 정말 생각도 못한 일이다.지난번 임정용 사건까지 돌아보며, 그 역시 송아연의 소행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지금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평소에 학교에서 청순 가련형의 외모로 인기 있던 아이였다. 그렇게 순수하고 연약해 보였던 애가 이처럼 모질고 악랄할 줄이야!평소 학교에서 송성연, 송아연 두 사람은 별 왕래도 없는 사이였다.그런데 이런 짓을 하다니 정말 상상이 안되었다.송아연의 악행이 적발됨과 동시에, 성연의 성적이 진짜라는 사실도 증명되었다.눈곱만큼의 거짓도 없이!많은 아이들이 성연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이제 약간의 동경과 팬심이 들어갔다.점수를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 있다니, 이건 그냥 ‘열공생’의 수준이 아니라 ‘공부의 신’수준이다.하지만 아이들의 이런 시선에도 성연은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그냥 평소처럼 자기 할 일을 할 뿐이다.다만 아이들이 소신을 좀 가졌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 말에 쉽게 휘둘리지 말고.송아연 문제는 해결되었다.얼마나 속이 시원한지 모르겠다.그날 밤 엠파이어 하우스로 돌아온 성연은 밤새도록 기분이 좋았다.학교에서 성연에게 일어난 일을 매일 보고하는 사람이 있었다.비서 손건호도 무진에게 대신 해결해줄 것인지 물었었다. 그런데 글쎄 사모님 혼자 알아서 잘 처리한 것이다.무진도 굳이 그녀의 흥을 깰 생각은 없었다. ‘이 집에서 제 하고 싶은 대로 하며 무척 편하게 지내는 것 같은데, 뭐.’저녁식사를 마친 성연은, 게임기를 꺼내 소파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게임을 했다.게임 종류가 참 다양하기도 하다. 하다가 싫증나면 다른 걸로 바꾸고, 물리면 또 다른 걸 한다. 제 하고 싶은 대로.게임들은 모두 성연이 직접 개발, 제작한 것들이다. 따라서 시중에는 없는 게임들은 자신의 성격에 딱 맞게 아주 스
어느덧 일년에 한 번 열리는 WS 그룹의 주주총회가 다가왔다.주주총회를 위해 안금여는 오늘 특별히 옷차림에 신경을 썼다. 그래서인지 어느 때보다 우아하면서도 위엄이 느껴지는 모습이다.안금여와 강무진, 강운경, 그리고 강씨 집안 일가들 및 WS그룹 계열사 임원진들에 주주들까지 속속 대강당에 도착했다.회장인 안금여가 제일 먼저 자리에 앉았다.주주들과 강씨 집안 일가들의 호심탐탐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야욕에 찬 승냥이 떼 같은 눈빛들이 야심에 찬 눈빛들이 회의장을 둘러보던 안금여의 눈에 들어왔다. 분명 오늘 이 자리에서 격전이 벌어지리라는 것이 자연히 예상되었다.하지만, 여전히 평온한 안금여 얼굴엔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강무진과 강운경이 각각 안금여 양편에 앉았다.“모두 다 오셨습니까? 요즘 회사 실적이 양호합니다. 그럼 회의 시작하죠.” 안금여는 낮지만 힘있는 음성으로 총회를 열었다.“회장님, 연세도 많으신 데 집에서 편히 쉬시며 노후를 보내실 때가 되지 않으셨습니까? 괜히 회사 일 때문에 노심초사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제 회사에 젊은 인재들도 넘쳐 나는데,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셔야지요.” 주주 한 명이 느닷없이 일어서서 자신의 주장을 말했다.진작부터 나이 많은 전 회장의 부인이 눈에 거슬렸다.회사에 기여도 적은 사람이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니 늘 불만이었다.지금까지 군소리 없이 강씨 집안의 WS그룹에서 힘들게 일해 왔건만, 이 모든 게 누굴 위한 거란 말인가?“지금 그 말, 무슨 뜻입니까?” 안금여가 차가운 표정으로 조금 전의 발언자를 바라보았다.“무슨 뜻이긴요. 회장님. 강씨 고택은 노후를 보내시기에 더없이 좋은 곳 아닙니까? 회장님이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셨지만…… 지금WS그룹은 답보상태입니다. 새로운 대형 사업이라 할 게 없습니다. 이제 그만 물러나실 때가 되었습니다.”그의 의사는 매우 명확했다.‘회사에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없다면 꺼져라.’ 라는 말이다.WS 그룹은 비록 강씨 집안의
“강씨 집안은 남아 도는 게 돈이니, 강무진이 아무리 막 나가도 망하지 않을겁니다. 다들 더 이상 걱정 마세요.”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조카를 괴롭히는 게 눈에 거슬렸던 강운경이 나서서 무진을 비호했다.“운경아, 네 말 참 듣기 거북하구나. 이 자리에 있는 작은 아버지와 삼촌들 모두 네 아버지, 내 형님을 따라 생사를 함께 했던 형제들이 아니냐? 우리 또한 이 강씨 집안의 일원이란 말이다! 그런데 지금 네 말에 삼촌들이 얼마나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이겠니?” 강씨 집안 셋째 어른인 강상규가 일어섰다. 그리고 강운경의 시선과 마주했다.입술을 깨문 강운경이 울분에 찬 눈빛으로 깊은 숨을 내쉬었다.애초에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는 충성을 다하는 척했던 두 사람이었다.이제 아버지가 안 계시니 본색을 드러낸다.“둘째 서방님, 말씀을 참 잘 하셨습니다. WS그룹은 모두의 것입니다. WS그룹에 오늘이 있게 된 것은 모두의 공로이지요. 그러나 우리 선대 회장님이 살아 계실 때, 여러분께 결코 박하지 않게 해드린 걸로 알고 있는데……오늘 이자리에서 강씨 본가를 곤란하게 하는 건 좀 지나치신 것 같군요” 차가운 음성으로 일갈한 안금여가 매서운 시선으로 둘째 시동생을 쳐다보았다.“형수님, 지나치긴요? 능력 있는 이가 자리에 오르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 또한 형님이 가르쳐 주셨던 교훈이지요.” 둘째 강상철의 얼굴은 웃고 있지만, 눈에는 냉기를 내뿜었다.회의장에 있는 대부분의 주주들은 모두 강상철과 강상규에게 강요받은 상태였다. 두 사람의 세력이 회사에서 점차 강대해지며, 주주들은 자연 그들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일부 주주들은 알아서 두 사람에게 줄을 섰다.그들 말이 틀리진 않다.지금 강씨 본가에는 강무진뿐이다. 그리고 별 도움 안되는 안금여도.줄을 잘못 섰다가, 앞날에 무슨 화가 닥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눈치 빠른 이들은 둘째 강상철과, 셋째 강상규 쪽이 더 가능성 있다고 과감하게 그쪽 라인으로 갈아탔다.그러니 회의장 내
그래함과 유채연은 앞에 놓인 밀크티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유채연의 눈빛은 이미 이전처럼 빛나지 않고 유난히 어두웠다.그래함은 그녀를 보면서 가슴속에 가득 찬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자신이 유채연을 아프게 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면서, 자신이 듣고 싶지 않은 결과를 듣게 될까 봐 걱정했다.두 사람이 그렇게 앉아 있자 분위기가 좀 어색했다.결국 역시 성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채연 언니, 그동안 언니는 어떻게 된 거예요? 그 중년 남자는 누구에요? 언니 남편이에요?”사실 그때 일이 터졌을 때 유채연이 그들 중 한 사람에게 구조를 요청했다면, 일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지금은 이미 지나간 뒤라서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한숨을 쉰 유채연은 성연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물었다.“너하고 그래함의 모습을 보니까 잘 지내고 있겠지? 두 사람이 함께 하는 거야?”성연은 뜻밖에도 유채연이 이런 오해를 할 줄은 몰랐다.그래서 얼른 설명했다.“언니, 어떻게 그렇게 생각했어요? 나하고 그래함 사형이 어떻게 함께 하겠어요?”성연은 그런 누명을 쓰고 싶지 않았다.지금 그래함과 유채연의 관계는 한창 긴장될 때였다.“아니라고?” 유채연이 별다른 감정 없이 중얼거렸다.성연은 그래함과 유채연 사이의 분위기를 알 수 없었다.그래함에게 말을 하라고 눈짓으로 암시했다.그래함도 지금은 자신이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러나 유채연을 보자 그래함의 마음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채연 언니, 여기 다른 맛있는 건 있어요?” 성연이 자신의 배를 문지르면서 말했다.아침에 그래함과 함께 유채연을 보러 달려오느라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유채연은 성연의 모습을 보자 웃음을 참지 못했다.“성연아, 배고프니?”성연은 다소 난처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성연도 사실 그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여기 밀크티는 맛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바로 설탕만 잔뜩 들어 있어서 성연은 당연히 그
유채연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그 남자를 한 번 보고는 말했다.“아니야, 나는 단지 여기에서 거들어줄 뿐이야.”말을 하면서 유채연의 눈빛은 다른 곳을 향했다.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지만, 유채연은 감히 그래함을 마주보지 못했다.그러나 자신과 중년 남자의 모습을 보면서 그래함이 어떤 느낌이었는지는 몰랐다.일찍이 풋풋하던 시절 마음에 두었던 여자가 이렇게 변했기에, 그야말로 더없이 가슴이 아팠다.그러나 그래함은 이런 유채연을 보면서, 마치 자신들이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또 낯설게 느껴졌다.그래함도 마음속의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성연과 그래함이 이곳에 나타나자 유채연의 마음도 복잡했다.아까는 왜 그런지 몰랐지만, 지금은 두 사람이 자신을 찾으러 왔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고개를 든 유채연이 그래함을 향해 작은 소리로 물었다.“그래함, 정말 술을 살 거야?”지금의 유채연은 이미 더 이상 어떤 망상도 할 수 없었다.그래함은 고개를 젓더니 남자 앞으로 다가갔다.그는 두말하지 않고 바로 돈다발을 하나 꺼내서 앞에 있는 남자에게 건네주었다.“제가 일이 있어서 유채연 씨를 찾는데, 이 돈을 드리겠습니다.”방금 전에 본 모습을 통해서, 그래함은 이 남자가 돈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판단했다.‘지금 채연이 입장도 명확해.’‘만약 이 남자가 풀어주지 않으면, 채연이는 틀림없이 나와 함께 가지 않을 거야.’그래서 미리 준비한 현금을 꺼낸 것이다.원래 그래함은 유채연을 찾는데 도우려고 돈을 찾았는데, 마침 지금 쓸모가 있게 되었다.과연 이 돈을 본 남자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더니, 유채연을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괜찮아. 가서 얘기해.”성연이 유채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채연 언니, 우리 가요.”말을 하면서 성연은 바로 유채연의 손을 잡고 나갔다.그래함이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너희들 일부러 나를 찾아온 거야?” 유채연은 가게에서 멀리 떨어진 뒤에야 비로소 물었다.“맞아요, 우리가 온 목적
줄곧 말없이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성연은 마음이 정말 괴로웠다.유채연이 도대체 지금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정말 상상할 수가 없었다.‘저 남자가 혹시 채연 언니의 남편일까?’‘그러나 그렇게 늙어 보이는데 채연 언니하고 전혀 어울리지 않아.’참을 수가 없게 된 성연은 유채연에게 다가가면서 곧장 소리쳤다.“채연 언니, 저 성연이예요.”그 말을 들은 유채연은 완전히 멍해졌다. 먼저 성연을 보고는 다시 그래함을 바라보았다.그리고 잠시 생각하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는 깜짝 놀랐다.유채연을 잘 아는 것처럼 부르자, 중년 남자는 성연과 그래함을 경계하듯이 보면서 유채연에게 화를 냈다.“저 사람들은 누구야!”마치 성연과 그래함에게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것처럼 아주 흉악한 목소리였다.‘채연 언니가 이런 사람의 수중에서 어떻게 잘 지내겠어. 생각할 필요도 없어.’유채연은 중년 남자에게 천성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남자에게 얼른 대답했다. “고향 친구예요. 이 사람들은 제 고향 친구들이에요.”그 말을 들은 중년 남자는 표정이 좀 누그러졌지만 성연과 그래함을 힐끗 보기만 했다.“고향 친구라니, 너한테 어떻게 이렇게 돈 많은 고향 친구가 온 거야?”남자는 그 말을 별로 믿는 것 같지 않았다.‘유씨 집안이 얼마나 비참했는지 내가 몰라?’‘그때는 아무도 없었는데 누가 또 유채연을 기억하겠어?’“정말 내 고향 친구들이에요.” 남자가 무슨 심한 말이라도 할까 봐 유채연은 애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남자는 성연과 그래함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그러나 유채연의 모습을 보고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유유히 흔들의자에 누워서 TV를 보는 걸 가장 좋아했다.마치 남자가 마음대로 부리는 하인처럼 더럽고 힘든 일은 유채연이 모두 맡아서 했다.반면에 이렇게 큰 남자는 그저 앉아서 TV만 보고 있었다.이 장면을 본 성연은 주먹을 꽉 쥘 수밖에 없었다.성연도 예전에 다른 사람한테서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하지
그래함은 피하지 않고 바로 유채연의 눈을 바라보았다.그 순간 그래함의 눈빛에는 무한한 온화함이 넘쳐흘렀다.오기 전에는 많은 생각을 했다.하지만 앞에 있는 유채연은 자신이 상상했던 모습과는 달랐다.하지만 그래함은 여전히 유채연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그래함의 얼굴을 보자 유채연의 눈빛도 순간 반짝였다하지만 이내 당황하면서 눈길을 돌렸다.“무, 무슨 술을 원하세요? 맥주, 아니면 포도주?” 유채연의 목소리는 더듬거리면서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유채연도 분명히 그래함을 알아보았다.그런데 이런 낭패한 상황이라니.하지만 고된 삶에 일찌감치 무감각해진 유채연의 가슴은 잠시 두근거렸지만 곧 잠잠해졌다.그래도 생각마저 억누를 수는 없었다.‘그래함이 왜 여기에 있지?’‘설마 나를 찾으러 온 걸까?’‘하지만 그래함이 입은 화려한 옷은 이곳의 모든 것과 어울리지 않아.’‘내가 또 뭐 볼 게 있다고 나를 찾아왔을까?’예전의 유채연은 이런 자신감이 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지금의 그녀에게는 자부심은 조금도 남지 않았다.술을 가지러 가는 유채연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유채연의 목소리를 듣자 그래함은 안도감을 느꼈다.조금도 피하지 않고 유채연의 움직임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아무 거나 당신이 괜찮다고 생각한 거면 돼.”결국 그래함의 목적은 술을 사는 것이 아니라 유채연을 보기 위해서다.다만, 이런 유채연의 모습을 볼 줄은 몰랐다.하지만 그래도 유채연을 볼 수 있어서 다소나마 마음을 놓을 수는 있었다.유채연은 안쪽의 상자에서 술을 꺼낸 뒤 그래함에게 건네주었다.“나도 무슨 술이 좋은지 모르지만, 모두 많이 사는 술이니까 아마 괜찮을 거예요.”유채연이 내민 맥주를 본 그래함은 유채연의 손이 아니라 눈을 바라보았다.유채연은 그 눈길이 그다지 편안하지 않았다.“술을 살 거예요?”“술은 물론 살 거야. 하지만 당신은 정말 내가 왜 왔는지 모르겠어?” 그래함은 약간 화가 났다.유채연이 지금도 자신을 모르는 척하고 있기
성연은 이 소식을 무진에게 알려준 뒤, 유채연의 행방을 조사해 달라고 했다.자신과 그래함을 보호하기 위해서 무진이 사람을 보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아예 무진에게 이 일을 맡긴 것이다.‘무진 씨의 인맥은 절대 나보다 뒤지지 않아.’“사형, 안심하고 기다리세요. 무진 씨가 이미 사람을 보냈으니 곧 결과가 나올 거예요.”그래함이 너무 조급해할까 봐 성연이 옆에서 위로했다.“내 일 때문에 너희에게 폐를 끼쳤구나.”여기에는 그래함의 인맥이 없기에 그래함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어쨌든 성연과 무진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사형, 나한테 뭘 사양해요? 사람을 찾는 것뿐이니까 사형도 마음에 두지 마세요.” 성연은 결코 이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이 일에 비하면 그래함이 이전에 자신을 위해 한 일이 훨씬 더 많았다.두 사람은 여기에서 하룻밤을 묵었다.무진의 수하는 적지 않은 관계를 동원한 뒤에야 어렵사리 유채연의 행방을 찾을 수 있었다.이튿날, 이 소식을 접한 성연이 바로 그래함에게 알려주었다.“사형, 찾았어요. 정말 이웃한 읍내에 살고 있대요.그래함은 그 소식을 반겼지만 이웃한 읍내라는 말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어떤 것 같아? 채연이가... 정말 결혼했을까?”성연은 고개를 저었다.“그 사람들은 위치만 알아내고 다른 건 자세히 조사하지 못했어요. 사형, 왜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세요? 같이 가서 채연 언니를 만나면 모든 걸 알게 될 거예요.”그래함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네 말이 맞아.”성연과 그래함은 함께 유채연이 있는 곳으로 출발했다.이웃 읍내의 한 슈퍼마켓 입구.”성연과 그래함이 한 여자를 만났다.여자는 성숙하면서도 소박한 옷차림인데 아가씨가 아닌 건 분명해 보였다.슈퍼마켓은 장사가 아주 잘 돼서 여자는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도와주는 사람도 없이 모든 일을 혼자서 하고 있었다. 여자의 얼굴은 예쁘지만 안색은 그다지 좋지 않아서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처럼 보였다. 예전의 활발했던 모습
그래함은 실의에 빠졌다.‘만약 그때 내가 있었다면 아마 도울 수 있었을 거야.’‘하지만 지금은 채연이 혼자서 그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어.’“이장님,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세요?” 성연은 지금 마음이 괴로운 그래함은 말을 하고 싶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래서 성연은 아예 자신이 묻는 걸 도와주기로 했다.이장은 그때를 회상하는 것처럼 바로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일로 이곳에서는 아주 큰 소란이 일어났어. 채연이 아버지 병이 위중해서 치료비를 마련하려고, 채연이를 시집보내려는 것 같았어. 아마도 옆에 있는 읍내로 시집갔을 거야. 우리 이 지역에서는 그나마 옆의 읍내에 돈이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유채연이 이미 시집갔다는 말을 듣자, 성연의 표정이 변하면서 무의식적으로 그래함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최악의 결과라고 생각했다.성연이 힐끗 보니 과연 그래함은 완전히 멍한 모습이었다.성연이 이장에게 말했다.“이장님, 오늘 이런 소식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이장은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내가 아는 건 얘기했지만 나도 모르는 건 어쩔 수가 없어.”“고맙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한 성연이 그래함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지금 그래함은 이곳에 온 이후로 표정이 아주 이상했다.성연은 그래함이 소식을 알아보는 걸 이미 기대하지 않았다.‘결국, 사형의 모습을 보니 충격이 꽤 커 보여.’“사형, 우리 찾으러 갈까요?” 성연이 그래함을 보고 물었다.그래함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찾으러 가야지.”‘이런 소식을 듣고도 사형은 채연 언니를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어.’‘직접 보기 전에는 단념하지 않을 거야.’‘외국에 있을 때는 채연 언니를 생각하면서 사형이 지금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지.’‘이제 와서 이토록 잔혹한 소식을 전해야 하다니.’‘채연 언니가 직접 자신에게 말하지 않는 한 사형은 믿지 않을 거야.’“알았어요, 내가 사람을 시켜서 조사하게 할게요.” 성연은 그래도 그래함의 결정을 존중해야
채연 언니의 원래 이름은 유채연으로 집은 바로 옆 마을에 있었다.두 마을 사이에는 왕래가 아주 빈번했다.이리저리 오가는 중에 유채연도 성연과 성연의 사형들하고 익숙해졌다.유채연은 원래 성격이 좋은 사람이다.그렇지 않았다면 그래함의 성격상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성연은 그래함과 함께 유씨 가문의 고택으로 갔다.이곳의 길은 좁아서 운전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연과 그래함은 걸어갔다.다행히 거리도 가까웠고 두 사람의 체력도 좋았다. 그래서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다만 그곳에 도착했을 때.한때 기세등등했던 유씨 가문의 고택은 이미 잡초가 무성했고, 이미 사람이 거주한 흔적이 없어 황량해 보였다.성연과 그래함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혹시 채연 언니가 이사를 갔나요?” 의문이 든 성연이 물었다.유채연에 대한 그래함의 마음이 그렇게 깊다는 걸 알았다면, 성연이 이쪽의 움직임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모르겠어.” 눈앞의 정경을 보자, 그래함의 표정이 아련해지는 것 같았다.결과가 반드시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오기 전에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말로 이미 황량하고 인적이 없는 이곳의 모습을 보자, 그래함의 마음속에는 한바탕 복잡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그래함의 표정을 본 성연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위로하고 싶은데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어.’‘지금 사형은 이미 이곳에 도착했어.’‘하지만 여전히 채연 언니를 생각하고 있어.’‘두 사람의 당시 감정이 꽤 깊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어.’‘다만 나중에는 정말 유감스럽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었지.’눈앞의 장면을 바라보던 성연의 뇌리에 갑자기 뭔가 생각이 번쩍였다.“사형, 우리 이 마을의 이장님한테 가 봐요. 이장님은 채연 언니의 소식을 알 거예요.”“맞아.” 그래함의 눈에 드디어 생기가 돌았다.“빨리 가 보자.” 그래함의 발걸음은 바빴다.그 뒤를 따르던 성연은 그래함의 절박한 모습을 보자 자기도
무진은 원래 성연과 함께 가려고 했다.그러나 안금여가 가로막고 나섰다.[성연이는 너무 오랫동안 돌아가지 않았어. 그리고 사형이 함께 있는데, 네가 끼어서 무슨 구경을 하겠다는 거야? 그럴 시간이 있으면 빨리 결혼 준비를 해.]무진은 그야말로 꿈속에서도 성연을 아내로 맞아 집으로 데려가고 싶었다.그러니 당연히 결혼식의 일부터 준비해야 했다.무진이 안금여와 전화 통화를 할 때 성연은 옆에서 듣고 있었다.갑자기 얼굴이 빨개졌다.‘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어.’‘결혼도 조만간의 일이야.’성연도 이번 결혼식을 정말 기대하고 있었다.옆에 있으면서 반박하지 않고 묵인함으로써 동의한 셈이다.성연이 들었다는 걸 아는 무진이 다가가서 볼에 뽀뽀를 했다.“그럼 너 혼자 가. 안전에 주의하고. 나는 집에서 기다릴게.”“알았어요.” 성연은 부끄러워하며 무진의 가슴에 머리를 묻었다.성연도 자신이 그렇게 일찍 결과를 만들어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그러나 이 모든 게 무진과 함께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자신도 이 남자를 사랑하고 있으니까.성연과 그래함이 시골로 가는 날, 무진은 여전히 집에서 성연의 물건을 정리해주었다.무진의 손에 든 가방을 받은 성연이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이 안에... 뭐예요?”“세면용품에 옷도 몇 벌 있고 외투도 있어. 저쪽은 모두 산간 지역이니까 추울 수도 있어. 만약 무슨 의외의 사고가 생겨서 돌아오지 못한다면 이걸로 우선 아쉬운 대로 참아.” 무진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그러나 지금 자신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있다.앞에 있는 물건들을 본 성연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우리는 잠깐 갈 뿐인데 어디에 그렇게 많은 물건이 필요해요? 그쪽에서 살 수 있어요.”“네가 쓰는 게 익숙하지 않을까 걱정돼.” 무진은 가방을 성연의 손에 밀어 넣었다.무진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성연은 가방을 건네받았다.“그래요, 알았어요.”무진은 줄곧 아주 주도면밀하게 고려했다. 지금 성연과 동반할 수 없게 되자, 잘 보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던 성연이 뭔가를 떠올리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여전히 채연 언니를 잊지 않았어요? 어쩐지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사형이 여자 친구 이야기도 하지 않더라니.”그래함은 속내를 들킨 듯이 우물쭈물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잠시 후에 성연이 비로소 말했다.“사형의 생각을 알겠어요. 괜찮아요.”“이틀만 있다가 가자.” 그래함의 심정은 사실 좀 불안했다.자신이 한결같이 마음에 두고 있던 사람이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살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그러나 결국 돌아가서 한 번 보려던 것이 이미 여러 해가 되었다.“그래요.” 성연이 대답했다.모처럼 그래함이 국내에 왔는데, 이 작은 소원을 성연이 어떻게 들어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그리고 성연도 오랫동안 할머니를 보러 가지 않았기에 할머니를 뵈러 가야 했다.‘할머니는 나를 기대하시면서 잘 지내셨을 거야.’‘이제는 할머니에게 나는 확실히 잘 지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별장에서 돌아간 성연은 무진에게 이 일을 알려주었다.“시골 마을로 돌아간다고? 왜 갑자기 시골에 갈 생각을 했어?” 무진은 여전히 호텔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까 봐 걱정을 했다.‘지금은 정말 안전하지 않아.’‘시골 마을에 가면 불안정한 요소가 많아.’“그래요, 사형이 부탁한 건데 어쨌든 같이 가 봐야죠.” 성연은 이런 일을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몰랐다.“좀 보자, 성연아. 네가 시골 마을에 있을 때 그래함도 너하고 함께 살았어?”무진이 물었다.‘알고 보니 그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알고 지냈구나.’‘그리고 이제서야 내가 이 일을 알게 된 거야.’성연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 일은 말하자면 길어요.”원래 당시 성연이 스승님 밑에서 배우고 있을 때 그래함도 있었다.스승님은 그래함이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함으로써 해외 유학을 하고 사업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다만, 지금은 제자들이 하나같이 모두 이름을 날리게 되었지만, 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