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연이 웃었다. ‘생각하지도 못했네. 지금 내 이름이 이렇게 ‘인기’ 있을 줄은. 학교 밖에까지 소문이 났단 말이야?’“부정행위? 직접 봤어요? 직접 봤다면 증거를 내놔 봐요. 몇 시 몇 분, 어디서 부정 행위를 했는지? 정확하게 말 못하면 유언비어 날조에 인신모욕으로 고소할 테니까.” 성연의 얼굴이 싸늘했다.영문도 모른 채 한바탕 막말을 들었다. 특히 자신이 하지 않은 일로 욕을 먹으니 순식간에 기분이 나빠졌다.알바생이 기세 등등하게 대답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데, 가짜겠어? 아직도 몰라? 너 지금 게시판에서 유명인이야.”게시판이라는 말이 언급되자, 성연이 눈썹을 찌푸렸지만 표정에서는 드러내지 않았다.입술을 빼문 채 눈에는 비아냥거림이 가득했다.“다른 사람이 내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하면, 내가 부정행위를 한 게 되는 거야? 당신이 진짜로 봤냐고? 그럼 다시 말해서, 내가 당신이 돈 훔치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면, 당신 진짜 훔친 게 되겠네?”말하면서 성연이 휴대폰을 꺼내 점원을 향해 계속 사진을 찍었다.“아이고, 밀크티 가게 알바생 손이 너무 더러워. 마침 나한테 딱 걸렸네.”말하는 내내 알바생을 향해 큰 눈을 깜박였다.“이 사진들 게시판에 이 제목으로 올리는 게 어때요?”알바생의 얼굴이 온통 벌겋게 달아올랐다.“돈, 안 훔쳤어. 그만 멈춰, 그만해.”자신도 알았다. 성연이 정말 사진을 게시판에 올리면, 자신이 훔치지 않은 걸 거짓으로 올렸다해도 많은 네티즌들이 댓글창에서 자신을 비난하고 쑥덕댈 것이다.진짜 소문이 퍼지면 이 밀크티 가게 사장님도 가게 명성을 위해 자신을 해고할 게 분명했다.그럼 이 알바도 끝이다.곰곰이 생각하던 알바생은 마침내 성연이 이렇게 하는 이유를 깨달았다.‘송성연이 부정행위를 했냐, 안 했냐는 나 혼자 결론 내릴 수도 없는 거지, 뭐.’‘스스로 꽤 정의감이 있다 생각했는데, 사실 흑백도 가리지 않고 떠드는 사람들과 무슨 차이가 있지?’‘이렇게 억울함을 당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야.’
성연이 호주머니에 있던 손을 꺼내 인터넷 게시판에 들어갔다.이전에 가입했지만, 줄곧 들어간 적은 없었다.게시물을 뒤적거리다가 제일 위에 자신에 관한 글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온갖 죄명들이 모두 그녀의 머리에 씌워져 있었다.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네티즌들이 많았다.성연은 학교 측에서 상황을 명확하게 확인해서 자신의 누명을 벗겨줄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었다.그러나 지금까지 학교 측에서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이런 유언비어는 이미 자신의 생활 깊숙이까지 파고들어 심각한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자신에게 무슨 손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학교에서는 그렇다 쳐도 게시판을 통해 이미 학교 밖에까지 소문이 났다.앞으로 그녀가 밥 먹으려 어디 들어가면 모두 쫓겨나지 않을까 싶다.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조급해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손을 써야 할 때다.보건실에 가서 서한기를 찾았다.마침 게임을 끝낸 서한기가 고개를 들어 씩씩거리며 들어오는 성연을 쳐다보았다.보건실의 업무는 비교적 한가한 편이다.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면 자신이 침대에 누워 잠자거나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보스, 왜 그래요?” 얼른 핸드폰을 내려놓고 의자에서 일어섰다.“네 컴퓨터 꺼내 봐, 내가 좀 쓰자.” 성연은 침대에 기대어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서한기는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바로 캐비닛 안의 배낭에서 얇은 노트북을 꺼냈다. 성연이 직접 만든 이 노트북은 부하마다 한 대씩 가지고 있었다.노트북을 건네받은 성연은 고개를 숙인 채 말도 하지 않고 길쭉한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재빨리 입력했다.게시판에 들어가서 글쓴이를 찾은 다음, 그가 글을 올린 시간을 따라 IP 주소를 찾아냈다.그리고 바로 그 놈의 컴퓨터를 해킹해서 개인 정보를 조회했다.성연은 글쓴이가 놀랍게도 북성남고 학생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검은 테의 안경을 쓴 얼굴에는 여드름 자국이 가득했다. 자세히
서한기는 학교 보건실 선생님으로서 CCTV를 확인할 수 있었다.그는 학교 경비실에 가서 보안요원에게 작은 물건을 잃어버려서 CCTV를 확신할 필요가 있다고 사정했다.조금도 의심하지 않은 보안요원이 바로 서한기에게 CCTV를 보여주었다.한 시간 후, 서한기는 그날 밤의 CCTV 화면을 찾았다.화면을 성연 앞으로 돌렸고, 화면은 검은 뒷모습에서 멈췄다.성연이 화면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CCTV에서 확인해 보니, 영상 속의 사람이 송아연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전에는 그저 송아연에 대해 의심만 했었다. 성연은 송아연이 좀 더 똑똑하게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의외였다. 이 시험지는 뜻밖에도 송아연이 직접 학교에 숨어 들어와서 훔쳤다.아마도 최근에 송씨 집안이 송아연 때문에 20억을 써서 돈이 없어서일 거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을 터.영상 속 인물이 송아연이니, 훨씬 일을 처리하기 쉬워졌다.“그날 밤 송씨 저택 앞의 CCTV를 확인해봐. 내가 IP주소를 줄게. 풀 수 있지?” 성연은 노트북을 켰고, IP주소를 입력했다.“보스, 저를 너무 우습게 보는군요, 당연한 것을.” 서한기는 보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바로 풀기 시작했다.10분도 안 되어 송씨 저택 앞의 CCTV를 확인했다.두 사람의 몸매를 비교해 보니, 자신을 모함한 사람이 송아연이라는 게 확실해졌다.“너는 이 두 CCTV를 녹화 영상을 편집해서 다운로드해서 내 휴대폰으로 전송해.”송성연은 손을 주머니를 꽂으며 나갔다.동영상을 편집하느라 바빴던 서한기가 다시 고개를 들어 그녀를 한 번 보았다.“보스, 어디 가세요?”“그루터기에 토끼가 부딪쳐 죽기만을 기다린다.” 성연은 이 말만 하고 바로 가버렸다. 서한기는 영문 모르게 제자리에 서 있었다.교실이 있는 건물 옆의 큰 나무에 기대어 앉은 성연이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자 많은 학생들이 건물에서 쏟아져 나왔다.학생들을 관찰
성연은 유성에게 송아연과의 채팅기록과 통장 거개내역을 캡쳐하게 한 뒤, 두 개의 CCTV영상 기록과 함께 게시판에 올리도록 했다.겁도 많고, 배짱도 없는 유성이 돌연 마음이 바뀔까 전혀 걱정되지는 않았다. 두 개의 CCTV에 이미 송아연의 범죄 사실이 모두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자신과 연루되는 것이 두려운 유성이 성연의 말을 듣기로 했다.“너 잘들어, 딴 맘 먹을 생각 하지도 마! 안 그럼 네 손가락 하나 부러지는 걸로 끝나진 않을 테니까!” 성연은 경고하듯 손가락을 꽉 잡았다.유성은 고구마를 먹은 듯 가슴이 답답했다. 송성연은 갓 시골에서 올라온 뜨내기라, 다루기 쉬울 거라는 송아연의 얘기를 듣고, 돕겠다고 시작했는데.‘그런데 이제 누가 좀 말해 줘. 앞에 있는 악마 같은 애는 도대체 누구인지.’“내가 어떻게 감히……지금 바로 올릴 게.” 손가락이 부러지는 듯한 고통을 참으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휴대전화를 꺼내어 한 글자, 한 글자 입력하기 시작했다.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잘못을 반성하는 취지로 성연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글을 게시판에 올렸다. 마지막으로 채팅기록과 CCTV 영상을 업로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게시판을 본 사람들은, 이런 반전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들 놀라서 어안이 벙벙했다.게시물 아래 달린 댓글 논쟁은 더욱 치열해졌다.기본적으로 ‘송아연 범죄의 실체’ 라는 논조였다.[송성연이야말로 가장 무고한 피해자네!][송아연이 송성연에게 고의로 뒤집어씌운 게 분명하구만!]게시판이 난리가 났다. 분위기에 휩쓸려 성연을 비방하던 사람들도, 자발적으로 댓글창에 사과의 글을 올렸다.이와 동시에, 성연은 관련 증거들을 모아 교무주임 사무실로 가져갔다.가져간 자료를 본 교무주임의 안색이 확, 변했다. 얼른 전화를 걸어 이윤하 선생을 불렀다. 이윤하는 송아연의 담임교사다. 송아연이 관련된 일이므로 당연히 담임 이윤하가 자리에 있어야 한다.모든 증거들을 본 이윤하는 성연을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그런데 이 증거
예전 송아연이 피아노 경연대회에서 상을 받았을 때, 이윤하는 교장의 지시로 송아연의 집으로 가정방문을 간 적이 있었다.저기는 송아연 집이 확실했다.사진은 조작이 가능하다 쳐도, CCTV 영상은 편집하기 힘들다. 학교에서 찍힌 뒷모습과 송아연의 집에서 나오는 아연의 옷차림이 똑같았다.교장 또한 착한 아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려 왔다.지금 이 상황에 이르러서도 아연은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교장이 교무주임에게 눈짓을 보냈다.즉시 교장의 의중을 알아차린 교무주임이 아연을 교장실 옆의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갔다.교장실과 이웃한 벽 한 면은 유리로 되어 교장실 내부가 다 보였다.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아연은 교무주임을 따라 옆의 방으로 들어갔다.교장은 직접 송아연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송씨 집안에서 이 시간 한가한 사람은 딱 한 명, 지금 전화를 받는 임수정이다.교장이 온화한 어조로 인사하며 물었다.“송아연 어머님, 뭐 좀 궁금한 게 있어 전화 드렸습니다…… 혹시 송아연 학생이 월례고사 전날 밤에 어디에 있었는지요? 별 다른 뜻은 없습니다. 형식적인 것으로 학부모님들께 연락 드려 학생들 동정을 학인하는 취지입니다.”교장의 공손한 태도에, 임수정은 경각심을 늦추며 기억을 떠올렸다.시험 전날 밤이라면 지금도 똑똑히 기억난다.아연은 교장이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손가락을 손바닥 안으로 말아 쥐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제발 자신이 집에 있었다고 엄마가 말해 주길 빌었다.하지만 애석하게도, 딸의 울부짖음을 끝내 듣지 못한 엄마 임수정이 곧장 대답했다.“그날 아연이가 동급생 생일 파티가 있다고 했어요. 9시가 되어서 나갔다가 11시가 넘어서 돌아왔을 걸요. 그래서 제가, 곧 시험인데 집에서 복습이나 할 것이지 어디 또 나가냐고 했더니, 친구 생일이라고 하더라구요…… 아연이는 어른들 걱정 안 시키는 아이라 그냥 보내줬어요. 교장선생님,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아, 아닙니다. 감사합니
이 폭탄 같은 뉴스가 터진 후, 사람들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게시판의 상황이 전해졌을 때, 모두들 반신반의했다.하지만 학교에서 인정하니 거짓일 리도 없었다.심지어 이 일이 송아연과 관련 있다니, 정말 생각도 못한 일이다.지난번 임정용 사건까지 돌아보며, 그 역시 송아연의 소행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지금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평소에 학교에서 청순 가련형의 외모로 인기 있던 아이였다. 그렇게 순수하고 연약해 보였던 애가 이처럼 모질고 악랄할 줄이야!평소 학교에서 송성연, 송아연 두 사람은 별 왕래도 없는 사이였다.그런데 이런 짓을 하다니 정말 상상이 안되었다.송아연의 악행이 적발됨과 동시에, 성연의 성적이 진짜라는 사실도 증명되었다.눈곱만큼의 거짓도 없이!많은 아이들이 성연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이제 약간의 동경과 팬심이 들어갔다.점수를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 있다니, 이건 그냥 ‘열공생’의 수준이 아니라 ‘공부의 신’수준이다.하지만 아이들의 이런 시선에도 성연은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그냥 평소처럼 자기 할 일을 할 뿐이다.다만 아이들이 소신을 좀 가졌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 말에 쉽게 휘둘리지 말고.송아연 문제는 해결되었다.얼마나 속이 시원한지 모르겠다.그날 밤 엠파이어 하우스로 돌아온 성연은 밤새도록 기분이 좋았다.학교에서 성연에게 일어난 일을 매일 보고하는 사람이 있었다.비서 손건호도 무진에게 대신 해결해줄 것인지 물었었다. 그런데 글쎄 사모님 혼자 알아서 잘 처리한 것이다.무진도 굳이 그녀의 흥을 깰 생각은 없었다. ‘이 집에서 제 하고 싶은 대로 하며 무척 편하게 지내는 것 같은데, 뭐.’저녁식사를 마친 성연은, 게임기를 꺼내 소파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게임을 했다.게임 종류가 참 다양하기도 하다. 하다가 싫증나면 다른 걸로 바꾸고, 물리면 또 다른 걸 한다. 제 하고 싶은 대로.게임들은 모두 성연이 직접 개발, 제작한 것들이다. 따라서 시중에는 없는 게임들은 자신의 성격에 딱 맞게 아주 스
어느덧 일년에 한 번 열리는 WS 그룹의 주주총회가 다가왔다.주주총회를 위해 안금여는 오늘 특별히 옷차림에 신경을 썼다. 그래서인지 어느 때보다 우아하면서도 위엄이 느껴지는 모습이다.안금여와 강무진, 강운경, 그리고 강씨 집안 일가들 및 WS그룹 계열사 임원진들에 주주들까지 속속 대강당에 도착했다.회장인 안금여가 제일 먼저 자리에 앉았다.주주들과 강씨 집안 일가들의 호심탐탐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야욕에 찬 승냥이 떼 같은 눈빛들이 야심에 찬 눈빛들이 회의장을 둘러보던 안금여의 눈에 들어왔다. 분명 오늘 이 자리에서 격전이 벌어지리라는 것이 자연히 예상되었다.하지만, 여전히 평온한 안금여 얼굴엔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강무진과 강운경이 각각 안금여 양편에 앉았다.“모두 다 오셨습니까? 요즘 회사 실적이 양호합니다. 그럼 회의 시작하죠.” 안금여는 낮지만 힘있는 음성으로 총회를 열었다.“회장님, 연세도 많으신 데 집에서 편히 쉬시며 노후를 보내실 때가 되지 않으셨습니까? 괜히 회사 일 때문에 노심초사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제 회사에 젊은 인재들도 넘쳐 나는데,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셔야지요.” 주주 한 명이 느닷없이 일어서서 자신의 주장을 말했다.진작부터 나이 많은 전 회장의 부인이 눈에 거슬렸다.회사에 기여도 적은 사람이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니 늘 불만이었다.지금까지 군소리 없이 강씨 집안의 WS그룹에서 힘들게 일해 왔건만, 이 모든 게 누굴 위한 거란 말인가?“지금 그 말, 무슨 뜻입니까?” 안금여가 차가운 표정으로 조금 전의 발언자를 바라보았다.“무슨 뜻이긴요. 회장님. 강씨 고택은 노후를 보내시기에 더없이 좋은 곳 아닙니까? 회장님이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셨지만…… 지금WS그룹은 답보상태입니다. 새로운 대형 사업이라 할 게 없습니다. 이제 그만 물러나실 때가 되었습니다.”그의 의사는 매우 명확했다.‘회사에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없다면 꺼져라.’ 라는 말이다.WS 그룹은 비록 강씨 집안의
“강씨 집안은 남아 도는 게 돈이니, 강무진이 아무리 막 나가도 망하지 않을겁니다. 다들 더 이상 걱정 마세요.”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조카를 괴롭히는 게 눈에 거슬렸던 강운경이 나서서 무진을 비호했다.“운경아, 네 말 참 듣기 거북하구나. 이 자리에 있는 작은 아버지와 삼촌들 모두 네 아버지, 내 형님을 따라 생사를 함께 했던 형제들이 아니냐? 우리 또한 이 강씨 집안의 일원이란 말이다! 그런데 지금 네 말에 삼촌들이 얼마나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이겠니?” 강씨 집안 셋째 어른인 강상규가 일어섰다. 그리고 강운경의 시선과 마주했다.입술을 깨문 강운경이 울분에 찬 눈빛으로 깊은 숨을 내쉬었다.애초에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는 충성을 다하는 척했던 두 사람이었다.이제 아버지가 안 계시니 본색을 드러낸다.“둘째 서방님, 말씀을 참 잘 하셨습니다. WS그룹은 모두의 것입니다. WS그룹에 오늘이 있게 된 것은 모두의 공로이지요. 그러나 우리 선대 회장님이 살아 계실 때, 여러분께 결코 박하지 않게 해드린 걸로 알고 있는데……오늘 이자리에서 강씨 본가를 곤란하게 하는 건 좀 지나치신 것 같군요” 차가운 음성으로 일갈한 안금여가 매서운 시선으로 둘째 시동생을 쳐다보았다.“형수님, 지나치긴요? 능력 있는 이가 자리에 오르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 또한 형님이 가르쳐 주셨던 교훈이지요.” 둘째 강상철의 얼굴은 웃고 있지만, 눈에는 냉기를 내뿜었다.회의장에 있는 대부분의 주주들은 모두 강상철과 강상규에게 강요받은 상태였다. 두 사람의 세력이 회사에서 점차 강대해지며, 주주들은 자연 그들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일부 주주들은 알아서 두 사람에게 줄을 섰다.그들 말이 틀리진 않다.지금 강씨 본가에는 강무진뿐이다. 그리고 별 도움 안되는 안금여도.줄을 잘못 섰다가, 앞날에 무슨 화가 닥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눈치 빠른 이들은 둘째 강상철과, 셋째 강상규 쪽이 더 가능성 있다고 과감하게 그쪽 라인으로 갈아탔다.그러니 회의장 내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보낸 후 성연의 시간은 다시 한가해졌다.지금 성연은 정원에서 꽃나무에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다.꽃모종이라고 하지만, 사실 다소 귀한 약재들이다.엠파이어 하우스는 산중턱에 위치해 있다.거의 비료를 준 적이 없는 셈인데도 토양이 아주 비옥했다.성연이 몇 그루를 심어 보았는데 모두 살아남았다.손을 씻고 거실로 들어오는데 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폰이 울렸다.화면에 뜬 낯선 번호에 성연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누구지, 이 사람은?’‘기억에 없는 번호인 것 같은데?’원래 받기 싫은 마음에 잠시 망설이던 성연이 결국 전화를 받았다.“네.”“송성연 양, 저 조수경이에요.”휴대폰 건너편에서 조수경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성연의 두 눈썹 앞머리가 올라갔다.“조수경 씨가 무슨 일로 전화하셨죠?”조수경이 자신 때문에 고택에서 쫓겨난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성연은 조수경을 보지 못했다.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자신에게 전화를 할 줄은 정말 뜻밖이었다.‘그런데 내 폰 번호를 어떻게 알았지?’조수경은 가는 음성으로 말했다.“송성연 씨, 얘기 좀 하고 싶어요.”성연은 나갈 생각이 없었다. 조수경은 더더욱 보고 싶지 않았고.조수경을 본다면 그날 밤의 그 장면이 떠오르며 불쑥 화가 치밀어 오를 것이다.‘그런데 왜 조수경은 자신의 화를 돋우려 하는 거지?’“죄송합니다만, 요즘 바빠서 시간이 없네요.” 성연의 음성은 의외로 담담했다. 음성이 오르내림이 전혀 없이.오늘 반드시 성연을 만날 결심을 한 조수경이 애원을 하듯이 사정했다.“송성연 씨, 제발, 한 번만 저를 만나 주세요. 요 며칠 저는 무척 괴로웠어요.”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수경이 더 간절히 매달리며 이어 말했다.“그냥 송성연 씨와 몇 마디 하고 싶을 뿐이에요. 다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성연 씨, 제발 부탁해요.”성연이 조수경을 겁내서가 아니었다.그러나 그녀가 이렇게 억울하다는 듯이 사정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도대체 조수경이 자신에게 무슨 이
5일의 일정 동안 세 사람은 북성의 명소 네다섯 곳을 돌아다녔다.원래 좀 더 있을 생각이었지만, 샤넬 가문에 뭔가 일이 생겼는지 곧 돌아가야 했다.성연은 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더 재미난 곳도 많은데.풀이 죽어 있는 성연의 모습에 미스 샤넬이 웃으며 성연의 뺨을 꼬집었다.“그러지 마. 나중에 우리 다시 올 기회가 있을 거야.”갑자기 일이 생겼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란 생각에 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성연은 매일 같이 업무로 바쁜 무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떠나는 미스 샤넬과 목현수를 대접하기 위해 음식점 한 곳을 예약했다.성연이 이번에 예약한 곳은 평이 좋은 가정식 요리 전문점이었다.오랜 시간 외국에서 생활한 목현수가 이런 정통 가정식을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을 거라 생각한 성연이 특별히 그에게 맛 보여 주기 위해 선택한 곳이었다.테이블에 오른 음식들은 소담하면서도 먹음직스러웠다. 미스 샤넬은 눈앞의 음식들을 보며 폰을 들어 한참 촬영을 한 후에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정말 맛있어. 와, 매번 색다른 맛을 경험하게 해 주네요.” 이곳의 음식이 정말 마음에 들었는지 미스 샤넬이 연신 감탄했다.입에 맞지 않는 것들은 전혀 없는 모양이다.“맞아요. 우리 북성에는 맛있는 음식과 재미난 것들이 정말 많아요.” 성연이 미스 샤넬씨에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맞아요. 이곳은 산수가 수려해서 경치도 너무 아름다워요. 앞으로 현수 씨가 원한다면, 현수 씨를 따라 이곳에 와서 정착해도 좋겠어요.” 첫날을 제외하고 그 이후의 시간을 미스 샤넬은 무척 즐겁게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좋아요. 그러면 그 때 우리 적당한 곳을 고를 수 있어요. 나랑 무진 씨도 두 사람과 같은 곳에 살고.” 그 생각을 하던 성연은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것도 좋죠.” 샤넬 양이 맞장구를 쳤다.그러나 그 가능성은 몹시 희박했다.샤넬 가문은 유럽에서 세력이 무척 큰 가문 중의 하나.지금 연세가 많은 미스 샤넬의 아버지는
남은 일정 내내 성연은 미스 샤넬, 목현수와 함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북성 주위의 관광 명소들은 전부 한 바퀴 돈 셈이다.무진의 당부를 새기며 최대한 깊은 물이 있는 곳은 피하면서.또 성현은 미스 샤넬과 목현수 두 사람을 위해 온갖 명소들을 방문해서 즐길 계획을 짰다.성연은 하룻밤 내내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그래도 무진의 말을 잘 따른 셈이다. 위험한 곳들은 가지 않았으니까.오늘 그들이 함께 온 곳은 커플들을 위한 테마파크였다. 주위에는 온통 팔짱을 낀 젊은 커플들이었다. 공기 중에는 핑크빛 기운이 가득했다.반면, 목현수와 미스 샤넬의 사이에 혼자 낀 성연은 눈치 없는 들러리 같았다.성연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미스 샤넬과 목현수 두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이곳을 선택한 거니까 말이다.그러나 지금 서로 손을 깍지 낀 채 닭 털을 날리고 있는 두 사람을 보니, 성연 자신이 피해 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다.성연은 속으로 후회했다. ‘괜히 사서 고생한 거 아냐?’‘진즉 알았으면 무진 씨를 데리고 올 걸 그랬지.’“샤넬, 저기 아이스크림 파는데, 먹을래요?”성연은 핑크색으로 장식을 한 건너편의 가판대를 가리켰다.성연과 미스 샤넬은 생각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다.그래서 성연은 미스 샤넬이나, 샤넬 양이라고 부르는 게 좀 어색해서 그냥 바로 이름을 불렀다.“나도 먹어요.” 미스 샤넬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목현수가 잠시 주변을 살폈다. 아직 해가 높이 떠 있는 낮 시간.하지만 건녀편에는 그늘이 전혀 없었다.목현수는 양산을 두 사람에게 건네며 말했다.“두 사람은 여기서 잠시 기다려. 내가 사올 게. 무턱대고 저쪽으로 갔다가 더위 먹으면 어떡하려고?”고개를 살짝 끄덕인 성연은 목현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샤넬, 무슨 맛 아이스크림을 먹을 거야?” 목현수가 먼저 미스 샤넬에게 물었다.“다 괜찮아요, 당신이 사 주는 거랴면요.”
식당 안.미스 샤넬은 자신이 좋아하는 메뉴를 앞접시에 가득 담았다.그러나 목현수는 음료수 한 잔만 손에 쥔 채 미스 샤넬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의아하게 쳐다보던 미스 샤넬이 물었다.“안 먹어요? 왜 날 쳐다보고 있어요?”오늘 목현수가 좀 이상했다.“많이 먹어. 부족하면 더 시켜줄 게.” 정상적인 대화이긴 하지만, 목현수의 말투가 많이 부드러워진 게 확연하게 느껴졌다.조금 전에는 먼저 수저를 놓아주기도 했다.이전이라면 자신이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을 사람이 목현수였다.미스 샤넬의 오늘 모습은 목현수로서는 정말이지 좀 새롭게 보였다.주스를 한 모금 마신 목현수가 입을 열었다.“미스 샤넬, 오늘 왜 굳이 성연을 구하러 강에 뛰어들었어? 설마 네도 위험하게 될 줄 몰랐어?”목현수의 눈에 미스 샤넬은 늘 연약하기만 한 존재였다.그런데 위급한 상황에 제일 먼저 강에 뛰어들어 성연을 구한 사람은 미스 샤넬이었다. 목현수의 물음에 잠시 멍해 있던 미스 샤넬이 옅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송성연이 당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어요. 만약 그때 그러지 않고 송성연이 잘못되었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평생 자책하며 살 테죠. 그래서 나는 반드시 송성연을 구해야 했어요.”그러니까 미스 샤넬은 목현수 때문에 송성연을 구했다는 의미.만약 송성연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강물에 뛰어들 용기가 나지 않았을 터였다.미스 샤넬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어 말했다.“공교롭게도 내가 한 수영하잖아요? 그러니까 내려갔지, 그렇지 않았으면 나도 감히 그런 용기 못 냈지.”미스 샤넬의 유머러스한 표현 덕분에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순간 목현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목현수를 위해 자신의 안위도 돌보지 않은 미스 샤넬.목현수 자신이 더 이상 생각할 게 뭐가 있겠는가?목현수가 진지한 음성으로 미스 샤넬에게 약속했다.“이전에는 정말이지 결혼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은 미스 샤넬 당신과 기꺼이 결혼할 거야.”미스 샤넬의 눈에
민박집에 들어오기 전에 성연은 이 일을 무진에게 알리지 말라고 손건호에게 당부했다.지금은 이미 괜찮아졌는데, 말해 봤자 쓸데없이 걱정만 할 뿐이니까.그러나 이렇게 큰 일을 손건호는 자신의 보스에게 감히 숨길 수가 없었다그래서 무진도 알게 되었다.모든 일을 내팽개친 채 무진은 당장 성연 일행이 간 관광지로 달려갔다.지금 성연은 이미 옷을 단정하게 갈아입은 상태였다.성연이 무사한 모습을 본 무진은 비로소 완전히 안심했다.그는 미스 샤넬을 보고 감동한 표정으로 말했다.“미스 샤넬, 성연이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미스 샤넬은 대수롭지 않게 손을 흔들었다.“그런 말씀하실 필요 없어요. 성연 씨는 제 친구인 걸요.”“어쨌든 감사합니다.” 오늘 일어난 상황을 생각한 무진은 두려웠다.자신이 성연의 곁에 없었기에 성연이 어떤 위험을 겪었는지 상상하기가 더 어려웠다.“괜찮아요. 배고파요, 현수 씨. 우리 뭐 먹으러 가요.” 말을 마친 미스 샤넬은 목현수를 끌고 나가면서 성연과 무진에게 두 사람만의 시간을 주었다.방안은 곧 조용해졌다.성연을 보는 무진의 표정은 심각했다.성연은 감히 무진의 얼굴을 볼 생각도 못한 채 입술을 삐죽거리며 발 밑만 내려다보았다. “잘못한 거 알아?” 가볍게 한숨을 내쉰 무진은 결국 차마 책망하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성연이 소리치며 말했다.무진은 하마터면 기가 차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무진이 성연의 어깨를 잡은 채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먼저 자신의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구해야지? 만약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무진은 이 말을 하는 순간에도 진저리를 쳤다.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걸 그가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성연은 무진의 어깨를 다시 안고 가볍게 두드리며 달랬다.“지금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이 남자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잠시 잊었다.‘언제나 나를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자인데
목현수도 한숨을 돌렸다.방금 성연에게 일이 생기자 목현수는 바로 손건호에게 알렸다.원래 다른 곳에 있던 손건호가 그제서야 달려왔다.“작은 사모님, 괜찮으십니까?” 성연의 온몸이 축축하게 젖은 것을 본 손건호의 표정에 걱정이 가득했다.“난 괜찮아요.” 손사래를 치던 성연이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손건호에게 당부했다.“이 일은 무진 씨에게 말하지 마세요. 그냥 지나가면 돼요.”손건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우리 둘이 옷을 갈아입게 민박집을 좀 잡아주세요. 자칫하다 감기에 걸리겠어요.”이 관광지는 비교적 유명한 곳이라 근처에 민박집들이 많이 있었다.물론 이곳에 오기 전에 성연이 미리 조사한 사항들이다.“예.” 고개를 살짝 끄덕인 손건호가 그들을 데리고 나가서 모두 차에 올랐다.차에 올라탄 성연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정중하게 말했다.“미스 샤넬, 고맙습니다. 오늘 당신 덕분에 살았어요.”물속에서의 질식감을 떠올린 성연은 여전히 심장이 벌렁거리는 듯했다.“괜찮아요. 당신은 내 친구니까 구할 수 있었어요. 물론 내가 구하긴 했지만 마음에 두지 말아요. 친구끼리는 서로 도와야지요.” 미스 샤넬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대범하게 말했다.말은 그렇게 했지만, 성연은 그전에 미스 샤넬과 적지 않은 오해를 겪었다.그런데도 그녀가 몸을 던져 자신을 구해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미스 샤넬의 손을 잡은 성연은 한참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곧 그들은 손건호가 잡은 민박집으로 들어갔다.목현수가 미스 샤넬과 성연을 향해 말했다.“두 사람은 먼저 들어가서 좀 씻어. 내가 갈아입을 옷을 구해올 게. 여기 있는 옷들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또 무슨 문제가 있을지도 몰라.”“그래요.” 미스 샤넬은 별 생각이 없었다.그러나 목현수가 옷을 사 주겠다고 하자 성연은 아무래도 좀 어색했다.예전엔 별일 아니었지만, 이제 그들은 다 자란 성인들이었다.성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나, 나는 필요 없으니까 미스 샤넬만 사주면 돼요
미스 샤넬이 성연의 팔을 잡아당기자 성연은 비로소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물속에서 발버둥치기 시작했다.성연의 반응이 너무 커서 곧 사레가 들릴 지경이 되자, 샤넬이 황급히 성연의 입을 막았다.물속에서 말하기가 불편한 미스 샤넬은 입모양으로만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했다.점차 침착함을 되찾은 성연이 미스 샤넬의 동작에 따랐다.미스 샤넬이 성연을 끌면서 점점 강가로 헤엄쳐 갔다.강가에 거의 도착한 미스 샤넬이 힘을 써서 먼저 성연을 보냈다.옆에서 누군가가 즉시 와서 도와서 성연을 끌어올렸다.미스 샤넬도 따라서 천천히 강기슭으로 올라갔다.강가에 서서 두 사람 모두 성공적으로 구조된 것을 본 사람들이 곧장 환호성을 질렀다.“정말 운이 좋았어요. 다행이에요, 괜찮아서 다행이에요.”그때 소년의 어머니가 소년을 끌고 다가왔다.그녀는 성연과 샤넬을 향해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천만에요. 다음에는 아이를 좀 더 주의 깊게 살피세요.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이번처럼 운이 좋지는 않을 거예요.” 성연은 진지한 표정으로 소년의 어머니에게 말했다.“네, 알겠습니다. 다음부터는 꼭 주의하겠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진 아이의 어머니는 겁에 질려서 여전히 떨고 있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성연과 샤넬이 없었다면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을 것이다.“아이를 데리고 내려가서 잘 달래 주세요. 오늘 같은 상황에 아이가 분명히 많이 놀랐을 거예요.”성연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성연의 옷은 젖어서 축축했다.그러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그저 아이를 구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누나, 고마워요.” 아이는 아직도 어리둥절한 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성연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맑은 목소리에 성연도 마음이 점차 누그러졌다.“괜찮아, 네가 괜찮으니 됐어.”“두 분 아가씨, 제 제가 돈을 얼마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 돈이라도 드려서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 불
“누가 물에 빠졌어요.”“빨리 와요, 사람 살려요.”“빨리 여기 구조대에게 연락해서 빨리 사람을 구하러 오게 해.”주위에서는 모두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르는 소리였다.성연은 물에 빠지는 순간 바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다행히 호수의 물이 깊어서 바닥에 부딪치지는 않았다.그러나 갑자기 물살에 충격을 받자 현기증이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아래의 물살이 좀 급해서 물살에 말려들자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힘을 쓸 수가 없었다.성연은 수영을 할 줄 알지만 손발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짙은 무력감이 그녀를 엄습해 왔다.성연의 몸은 천천히 계속해서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이럴 수가, 누구 수영을 할 줄 알아요? 빨리 내려가서 사람을 구해주세요.” 구조된 소년의 어머니도 옆에서 소리쳤다.자신의 과실로 인해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마당에, 다른 사람까지 다치게 할 수는 없었다.비록 자기 자식이 사고를 당하는 걸 원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기적이기만 하지는 않았다.몹시 조급해진 목현수는 몇 번이나 아래로 바로 뛰어내리려고 했다.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던 게 그는 수영을 할 줄 몰랐다. 주위의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점점 커갔지만, 구조대는 한참이나 오지 않고 있었다.“이걸 어떡하지?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할 텐데.”“아니면 구급차를 불러서 구해달라고 해.”“여기 너무 무책임한 거 아냐? CCTV도 있지 않아? 왜 이렇게 사고가 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오지 않는 거야!”“...”많은 사람들이 시끄럽게 말을 해대고 있었지만, 직접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없었다.주위에 모인 사람들은 주로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이었다. 성연을 구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물에 뛰어들 용기는 부족했다.자기 자식이 잘못된 걸 본다면 뛰어들었겠지만 말이다.옆에서 잠시 지켜보던 미스 샤넬이 주저함 없이 바로 물에 뛰어들려고 했다.그러나 옆에 있던 목현수가 눈치 빠르게 붙잡았다.“샤넬, 뭘 하려는 거야?”성연 한 명이 빠진 걸로 이미 충분히 애
성연이 목현수와 미스 샤넬을 데리고 온 관광지는 교외에 있었다.산과 물을 끼고 곳곳에 푸른 풀이 깔려 있어서 생동감이 넘쳤다.그리고 즐길 수 있는 것들도 많았다.관광지에는 또 전문적으로 설계된 정자와 누각이 있었다. 넓은 숲의 나무들이 그늘을 이루고 있어서 또 그 속으로 소풍을 갈 수도 있다.미스 샤넬이 앞으로 걸어가면서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이곳의 공기는 정말 좋네요.”“맞아요, 내가 오기 전에 자료를 좀 찾아봤는데, 여기 있는 것들은 모두 순수하고 천연적이라고 했어요. 원래의 모습을 파괴하지 않은 채 약간만 손을 댔을 뿐이니, 진정한 원래의 생태 관광지인 셈이죠.”성연은 설명할 때, 미스 샤넬이 일부 단어를 알아듣지 못할까 봐 영어로 말하기도 했다.미스 샤넬은 혀를 내두르며 박수를 쳤다.“성연 씨, 아는 게 정말 많네요.”“아니에요, 이런 관광지는 우리 A국에 아주 흔해서 조금만 이해하면 알 수 있어요. 유럽 각지에 정통한 미스 샤넬을 난 따라가지도 못하는 걸요.”각기 장점이 있다. 성연은 북성에서 그렇게 오래 지내서 기본적인 상식을 좀 알고 있는 것이지, 칭찬할 건 아니다.“성연 씨가 그렇게 전면적이지 않다는 건 알아요. 가요, 우리 저쪽으로 가 봐요.” 샤넬 양이 먼저 앞으로 걸어갔다.성연은 오해를 피하기 위해 재빨리 미스 샤넬의 뒤를 따라가면서 목현수와 약간의 거리를 두었다.목현수는 성연이 자신을 계속 피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됐어, 성연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면 나도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을 거야.’‘하지만 샤넬 양과의 관계는 정말 잘 생각해봐야 해.’그들은 다리 위로 걸어갔다. 아래는 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은 호수였다.미스 샤넬이 포즈를 취하고 성연이 사진을 찍었다.성연은 여러 장면을 잘 포착해서 찍었다. 아주 의기양양해 보였다.미스 샤넬이 달려왔다. “어떤 지 내가 한번 볼게요.”성연은 핸드폰을 건네주었다.미스 샤넬은 한 장 한 장 살펴보면서 감탄했다.“성연 씨, 사진 촬영 기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