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신미가 예상하지 못한 것. 성연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는 사실.허신미가 다가왔을 때 성연은 이미 침을 준비하고 있었다.바로 침을 찌르지 않은 채 먼저 날랜 몸짓으로 허신미의 동작을 피했다.그러자 허신미는 완전히 미친 듯한 모습이다.두 눈이 광기로 번뜩이는 것이 당장 성연의 뼈를 발라 씹어 먹지 못해 안달이 난 듯 보였다.허신미는 잠시 이성을 잃고 제 정신이 아닌 듯이 보였다.성연의 생각에 지금 허신미의 몸에 침을 찌른다 해도 모를 터였다.그래서 방금 허신미의 공격을 피하는 순간 정확한 혈자리에 침을 세 번 연속으로 찔러 넣었다.성연이 5초를 세자, 아니나 다를까 허신미가 바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눈을 감은 채 온몸으로 경련을 일으키는 게 마치 당장 숨이 넘어가는 모습이었다.조금 전 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하던 여자가 지금 온몸이 술범벅이 된 채 바닥에 드러누워 있다. 정말이지 볼썽 사나운 몰골이 아닐 수 없다.성연이 차가운 얼굴로 허신미를 내려다보았다.침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수 있으니까.그래서 조금 전 허신미가 공격해 올 때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허신미는 무사히 넘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허신미 같은 사람이야 작은 기술 하나로 상대해도 충분하다.허신미는 자신의 실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성연 앞에서 보인 언행, 동작 모두에서 이미 허점을 드러냈다. 성연이 손을 쓸 기회를 준 셈이었다.침을 맞는 순간에도 허신미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아니, 이건 자업자득이야.’지금 바닥에 쓰러져 온몸을 떨고 있는 모습이 정말 보기 흉했다.‘방미정과 한통속이니 역시 나쁜 여자야.’‘그리고 똑같이 머리가 나빠.’‘이런 사람과 어울려 봤자 발전이 없어.’갑작스러운 상황에 옆에 있던 허신미의 수하들이 모두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얼른 옆으로 다가가 허신미를 깨우려 시도했다. “아가씨, 괜찮으세요?”“아가씨, 정신 차리세요. 아가씨.” 옆에서 수하들이 쉬지 않고 허신미의 귀에 대고
수하 하나가 옆에 있던 다른 수하에게 눈짓을 했다.옆에 있던 수하들이 성연을 겹겹이 에워쌌다.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바로 움직였다.모두 4명. 허신미의 수하들은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자신들의 수가 성연 쪽 인원의 두 배가 넘으니까.저 4명의 실력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자기들을 이길 수는 없으리라.저들을 굴복시키면 송성연은 원하지 않더라도 자신들의 아가씨 허신미를 다시 원상태로 되돌릴 수밖에 없으리 생각했다.그런 계산 끝에 허신미의 수하들이 돌진해 올 때, 성연 옆에 서 있던 수하 4 명도 같이 움직였다.성연 옆을 지키고 있는 4명 모두 서한기가 뽑은 이들이다.모두 성연의 조직 아수라문 안에서 막강한 전투력을 자랑하는 이들이다.성연이 이곳에 4명만 데리고 온다는 점을 생각해서 모든 것을 주도면밀하게 고려했다.이 4명이 뭉쳐 싸운다면 한 번에 수십 명이 덤벼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그만큼 성연을 지키기 위한 최적의 수하들이었다.곧 양 측의 인원들이 서로 뒤엉켰다.모두 프로인 성연의 수하들은 술집의 건달들이 비빌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그러나 허신미 쪽의 인원이 훨씬 많다 보니 좁은 공간에서 싸우기가 좀 까다로웠다.성연의 수하 4 인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바로 싸우기 시작했다. 거의 한 주먹에 한 명이 쓰러졌다.처음 시작할 때는 수에 밀렸으나 금세 뒤집었다.그리고 허신미의 수하들이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성연의 수하들은 정말 잘 싸웠다.내지르는 팔 다리의 동작들이 무척 멋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본다면 무슨 액션 영화를 찍고 있는 줄 착각할 정도로.양측의 싸움이 꽤나 격렬한 가운데, 성연은 그 중간에 조용히 서 있었다.수하 4명이 성연을 둘러싸고 철저히 보호하는 가운데 손끝, 발끝 하나 성연의 몸에 닿지 않았다.성연이 이 싸움의 발단이 분명한데도 성연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주연정만 걱정되지 않았다면, 성연은 늘 그랬듯이 의자 하나 갖다 놓고 옆에 앉아서 팝콘을 먹으며 구경했을 터였다.성연은 자신이 기른 수하들
방미정은 내내 룸 구석에서 숨어서 보고 있었다.허신미가 송성연을 해치우면 나올 생각이었다.그런데 일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그래서 방미정은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다.바닥에 누워 있는 허신미는 아직도 발작 중이었다. 두 눈을 꼭 감은 채 아무것도 못 느끼는 듯했다.그 곁에는 성연의 수하들에게 맞은 수하들 몇 명이 쓰러져 있었다.방미정은 허신미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도대체 왜 이런 지경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이 모든 게 송성연 때문이라는 건 분명했다.성연 앞에 선 방미정이 날카로운 음성으로 따져 물었다.“송성연,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신미가 왜 이렇게 된 거냐고?”성연이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주연정을 풀어줘. 안 그러면 너도 이 여자처럼 만들어 줄 테니까.”자신의 소행임이 이미 알려진 이상 더 이상 꺼릴 것도 없었다.‘반드시 자신의 실력을 방미정이 알게 해야 해.’‘안 그러면 방미정은 날 만만하게 보고 번번이 못되게 손을 쓰려 할 거야.’성연의 차가운 얼굴을 본 방미정은 성연의 말이 진짜라는 것을 알았다.허신미의 볼썽 사나운 모습을 다시 본 방미정은 속으로 당혹스러웠다.정말이지 지금 허신미 같은 모습이 되고 싶지 않았다. 너무 보기 흉했다.그리고 지금 허신미의 수하들 모두 바닥에 널브러진 상태였다. 송성연 쪽 사람들만 남아서 서 있을 뿐이다.송성연의 수하들 실력이 너무 대단했다. 송성연이 자신을 강제로 허신미처럼 만들기라도 한다면, 자신은 도저히 반항할 수 없을 것이다.결국, 엄청난 압박감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방미정이 안으로 들어가 주연정을 데리고 나왔다.송성연이 이렇게 만만치 않은 상대일 줄이야, 정말 상상도 못했다.‘누구에게도 손을 쓸 수 있다니.’성연 앞에 왔을 때 주연정은 이미 정신을 차린 상태였다.하지만 발그레 부어오른 볼에 생채기가 나 있는 게 딱 봐도 얻어 맞은 모습이었다.성연이 방미정을 노려보자, 방미정은 서릿발 같은 성연의 눈빛에 놀라 무의식적으로 한 걸
떠날 때 성연은 허신미에게 침을 한 대 더 놓았다.그러자 바로 혼수상태에 빠진 허신미는 더 이상 경련을 일으키지 않았다.이제 좀 멀쩡해 보이는 듯하다.사람들이 보지 않는 사이 성연이 아주 빨리 움직인 탓에 방미정은 성연의 동작을 볼 수 없었다.그저 성연이 가볍게 툭툭 치자 허신미가 정신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도대체 무슨 마술도 아니고.’자신이 송성연과 싸움이 되지 않는 게 당연하다.송성연 뒤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이런 비열한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그때 내가 오줌을 지리게 된 것도 송성연 때문이었지?’‘송성연은 도대체 무슨 괴물이야? 잠시라도 주의하지 않으면 송성연의 손에 끝장나고 말거야.’허신미처럼 대단한 여자도 송성연을 당해낼 수 없는데, 자신은 말할 것도 없었다.방미정은 생각할수록 더 괴이쩍은 생각이 들었다. 성연을 바라보는 방미정의 두 눈이 공포로 가득 찼다.방미정의 시선을 느낀 성연은 곧장 차가운 시선으로 노려보았다.“너 이래도 감히 나에게 덤빌 생각이야?”성연은 방미정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주연정을 부축해서 돌아갔다.오늘 성연은 방미정에게 경악스러움을 안겨주었다.방미정이 스스로 현실을 깨닫길 바랬다. 앞으로는 함부로 자신의 한계점을 건드리지 않도록.명문가 귀한 아가씨인 자신은 제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방미정. 하지만 자신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다.앞으로 방미정이 감히 또다시 자신을 도발해 온다면 오늘처럼 곱게 두지는 않을 것이다.차에 올라탄 후 성연이 주연정에게 얼음을 건네주었다.“얼음찜질이라도 좀 하자.”차에 타자 많이 차분해진 주연정이 팔다리를 팔랑거리며 말했다.“성연아, 조금 전에 너 정말 멋있었어. 네 말에 그 여자가 감히 고개도 못 들더라.”주연정이 아직까지 이 일을 생각하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러나 성연이 신경 쓰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성연이 주연정의 손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연정아, 미안해. 이번에 나 때문에 너까지 힘들게 해서. 나만 아니었으면 그 사람들
소지한은 늘 스케줄을 뛰고 촬영하느라 개인 시간이 거의 없었다.마침 이번에 새 영화 홍보 차 북성에 왔다.밤 늦은 시간에 성연에게 전화를 걸었다.한참 정신없이 잠을 자던 성연은 옆에 놓인 핸드폰 벨 소리에 깼다. 평소 얕은 잠을 자다 보니 금세 깨어났다.하지만 졸음이 가시지 않아 발신자 표시를 본 성연이 하품을 하며 물었다.“무슨 일인데?”성연의 졸린 음성을 들은 소지한은 웃음이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나와서 야식을 먹자. 방금 일이 끝났어.”소지한이 매우 바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조직원들 모두 자주 모이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성연은 너무 졸려서 나가고 싶지 않아 거절했다.“됐어, 다음에 시간 잡자. 나 지금 너무 피곤해.”소지한이 헛웃음을 지으며 놀렸다.“약혼자 생기더니, 약혼자가 못 나가게 하는 거야?”무진과 합작한 적이 있는 소진한은 강무진이 얼마나 소유욕이 강한 남자인지 잘 알았다.아니면 당시 강무진은 자신과 합작하면서 그렇게 후한 조건을 내걸지 않았을 것이다.물론 자신을 감시하기 위해서 말이다.그러나 강무진은 정직한 사람이었다. 자신을 방해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그렇게 후한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에 소지한 역시 프로의식으로 강무진이 원하는 대로 촬영을 했다.두 사람의 합작은 그런대로 기분 좋게 진행되었다.그러나 강무진이 자신과 성연 사이의 관계에 대해 아주 많이 신경 쓴다는 걸 눈치챘다.그저 성연의 마음을 생각해서 묻지 않았을 뿐이다.어릴 때부터 자신들이 애정으로 키운 성연이기에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해서는 안 된다.강무진이 아직 자신들 사이의 관계를 잘 모르는 게 분명했다.“있지도 않는 일 가지고 무슨 헛소리야?” 지금 완전히 정신을 차린 성연이 소지한의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자신과 강무진은 서로 존중했다. 누가 누구를 구속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자신은 무진을 믿고, 무진은 자신을 믿는다. 소지한이 말한 그런 상황은 전혀 없다.만약 무진이 그런 사람이었다면 자신은 진즉 무
사실, 그 시각, 무진은 자고 있지 않았다.최근 회사에서 새로운 사업을 진행 중인데, 일이 너무 많았다. 강명재와 강명기는 선을 지키지 않고 매일 어떻게 하면 자신을 방해할 지만 생각하고 있었다.중요한 사업들을 무진이 직접 챙기지 않으면 분명 실수가 생겨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터.강명재 형제도 회사의 중대한 사업에는 손을 대지 못할 터. 안 그러면 주주들의 반발이 클 테니까.만일에 대비해야 한다. 둘째, 셋째 일가 사람들은 모두 미쳤다.저들이 어떤 미친 짓을 할지 누가 짐작할 수 있겠는가.그래서 무진은 직접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황들까지 모두 미리 차단할 수밖에 없다.무진이 미간을 좁힌 채 성연이 어떻게 자는지 보러 가려던 참이었다.이불을 걷어차고 있으면 다시 잘 덮어주고.그런데 무진이 막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무진이 창가로 가서 보니 마침 승용차 한 대가 저택을 쏜살같이 달려나갔다.성연의 차다.이 저택에서 자신을 제외하고 마음대로 차고를 드나들 수 있는 이는 성연뿐이다.무진이 미간을 찌푸렸다.성연이 자신에게 미안한 일은 하지 않으리라 마음으로 믿었다.‘성연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지.’그러나 잠시 고민하던 무진은 결국 참지 못하고 직접 차를 몰고 성연의 차를 쫓았다.무진은 내심 좀 불편한 마음이다. 최근 성연은 행선지를 말하지 않고 외출하는 경우가 많았다.그럴 때마다 무진은 아주 낭패스러운 기분이 들었다.마치 성연이 자기 방어 본능으로 자신에게 말하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다.무진은 두 사람이 서로 신뢰하는 관계를 원했다.성연이 자신에게 좀 더 기대주기를 바랬다.그러나 성연이에게 전혀 그럴 마음이 없는 듯 보이니 그로서도 방법이 없었다.예전에는 몰랐었다. 감정 방면에서 무진 자신이 무척 소심하다는 사실을.무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생각해 보니, 이전에는 그저 성연을 만나지 못해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운전 실력이 뛰어난 무진은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성연의
얼마 지나지 않아 성연은 소지한이 말한 목적지에 도착했다.길에 흔히 보이는 아주 평범한 식당이다.소지한은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온통 가린 모습이다.어쨌든 대중들에게 너무 잘 알려진 소지한이다 보니 팬들이 알아볼까 최대한 가린 터였다.모처럼 나온 터라 소지한은 성연과 함께 있는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일부 팬들은 이성이란 게 없었다. 그래서 지난번에는 성연을 많이 귀찮게 했다.소지한은 연예계의 일을 좋아하지 성연을 생각했다.대중의 시선에서 자신과 어떠한 관계도 맺어서는 안된다.성연이 풍랑에 휩쓸리지 않도록 말이다. 그녀에게 좋지 않으니까.소지한의 옷차림에 성연은 이미 익숙했다.이런 좁은 곳은 왕래하는 사람이 언제든지 있을 수 있다.소지한이 이렇게 하는 것도 두 사람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이다.이 점에 대해 성연은 별 상관없었다.소지한은 샤브샤브를 주문했다.전골 냄비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오래동안 샤브를 먹지 못해서 그러지 성연의 입에 침이 고였다.성연의 입맛을 잘 아는 소지한은성연이 오기 전에 성연이 좋아하는 꼬치와 고기를 미리 많이 주문해 두었다. 아주 세심하게 성연을 챙겼다.그래서 식당에 도착한 성연은 잠시도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먹을 수 있었다.야채와 고기가 익는 동안 소지한은 성연에게 한바탕 하소연을 했다.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앉은 채 세상 불쌍한 모습을 연출했다.“성연아, 너 영화 찍는 게 얼마나 힘든 지 모르지? 최근 회사에서 낸 스캔들이 좀 많아. 그 여자들 얼굴을 뭐처럼 하고 있어. 정말 그 여자들과 연결되고 싶지 않아.”하기 싫은 일을 소지한에게 억지로 강요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하지만 소지한 역시 회사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데뷔 후 지금까지 회사에서는 그에게 무엇도 강요하지 않았다.대부분 그의 배경이기도 했다.그러나 소지한도 제멋대로인 사람이 아니다. 이 지위와 나이가 되니, 자신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게 아니라면 모두와 제대로 의논할 수 있었다.성연은 바로 대꾸
무진은 가까이 다가가지 않은 채 차 안에서 멀찌감치 바라보기만 했다.성연과 소지한이 함께 있는 모습이 보였다.둘이 야식 먹으러 나온 것을 보며 마음이 좀 답답해 왔다.한밤중에 성연을 불러낼 수 있단 말은 보통 친구가 아니란 의미.성연이 나왔을 때 신기했다. 도대체 그 남자가 누구일까, 성연이와는 어떤 관계일까 생각했다.무진은 쓸데없는 생각들을 멈출 수가 없었다. 성연이 보여주는 모습은 단지 자신의 착각은 아닐까?어쨌든 성연에 관한 많은 것들을 자신은 모르고 있다.그는 심지어 성연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자신의 곁에 와서 자신을 서운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다.성연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무진은 믿을 수 없었다.지금 성연이 보여주는 모습을 무진은 더 납득할 수 없었다.성연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무진은 일그러진 표정을 지은 채 속으로 이해득실을 생각했다.결국 무진은 자존심에 바로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갔다.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서.성연을 믿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성연의 성품이 어떻다는 것도 알고 있다.그러나 무진은 자신을 통제할 수 없다.그 자리에 계속 남아 있으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짓을 할까 걱정스러웠다.성연을 사랑하지만 무진 또한 자존감이 높았기에 무슨 일이든 무조건적일 수는 없었다.이럴 때 성연이 서로 체면을 세워주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더 좋을지도 모른다.식당에서 소지한과 샤브샤브를 먹던 성연은 무진이 왔다 갔는 줄은 전혀 몰랐다.자신이 무심코 저지른 실수에 무진이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더 몰랐다.그렇지 않았으면 절대 여기에 앉아서 대놓고 음식을 먹지 않았을 것이다.성연은 평소 좀 제멋대로 굴기는 하지만 비교적 섬세한 감성으로 무진의 생각을 짐작했었다.그러나 무진은 결국 성연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성연은 단지 친구와의 만남일뿐,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그래서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게다가 성연의 기억에 무진은 이미 잠든 상태였다.만약 다시
식사를 마치자 종업원이 디저트를 가지고 왔다.네 사람은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래함은 줄곧 유채연의 손을 꽉 잡은 채 놓으려 하지 않았다.유채연은 처음에는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사랑을 과시하는 것이 정말 쑥스러워서 손을 빼려고 했다.그러나 나중에는 정말 그래함을 말릴 수가 없어서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사형,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외국으로 나갈 거예요?” 성연은 그래함의 기초가 해외에 있으니까 결국 출국할 거라고 생각했다.‘다만 채연 언니가 좀 걱정이야.’‘지금 국내에서의 차이에도 아직 적응하지 못했는데, 만약 외국에 간다면 틀림없이 더 힘들 거야.’해외라는 말을 듣자 유채연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래함, 우리 해외로 가야 해?”유채연은 시종 열등감에 빠져 있었다.그래함이 하는 일에 대해서 자신은 조금도 알지 못했다.그래함이 외국에서 유학했다는 것만 알고 있어서, 이제는 돌아왔으니 다시 해외로 나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유채연이 눈썹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 그래함은 유채연이 내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그래함도 유채연이 즉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채연아, 해외로 한 번은 나가야 해.” 해외야말로 그래함이 있어야 할 곳으로 더욱 편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하지만 나는 영어도 할 줄 모르는데, 해외로 나가면 나는 어떻게 해?” 유채연의 눈에는 곧 출국하게 될 긴장과 당황스러움이 담겨 있었다.‘국내에서는 그래도 다른 사람과 교류라도 할 수 있지만, 출국한다면 비행기 티켓도 못 살 거야.’“채연아, 아직 얘기 안 끝났어. 내가 너하고 여행을 갈 거야. 우리 먼저 국내부터 시작하는 게 어때?” 그래함이 유채연을 보고 말했다.유채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행하는 거라면 가도 괜찮겠지.’‘그런데...’“일은 안 해도 돼? 일이 바쁘지는 않아?”유채연은 자신 때문에 그래함이 지체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괜찮아. 내가 귀국했을 때 챙겨놓고 왔어. 다른 사람이 처리하니
무진과 성연은 잠시 낮잠에 빠져들었다.저녁이 되자 무진이 예약한 곳으로 가서 그래함과 유채연과 함께 밥을 먹었다.유채연을 본 무진은 정말 미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예쁜 여자들도 많지만.’‘세상 물정을 모르는 그런 단순함은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지.’‘그래서 그래함이 좋아했구나.’무진은 유채연이 수줍게 그래함의 뒤에 숨어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이 먼저 유채연에게 인사를 했다.“유채연 씨, 안녕하세요, 저는 성연이 약혼자인 강무진입니다.”유채연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안녕하세요.”요리가 곧 나오자 무진이 말했다.“채연 언니, 사양하지 마시고 드시고 싶은 대로 드세요. 모두 친구인데 너무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지요.”성연도 웃으면서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언니. 이 집의 생선 요리는 정말 잘 해요. 비린내도 하나도 없는 데다가 아주 신선해요. 빨리 먹어봐요.”말을 하면서 유채연의 접시에 듬뿍 집어 주었다.유채연은 약간 머뭇거렸다.이제야 자신과 그래함과의 차이를 실감한 것이다.이전에 자신은 넘볼 수 없었던 곳을 그래함은 마음대로 도달할 수 있었다.게다가 유채연은 이런 고급 식당에서 밥을 먹은 적이 없어서 다소 불편했다.거의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집어주는 대로 먹었다.‘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뜨기처럼 행동하면 그래함이 망신을 당하겠지.’그래함은 유채연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스테이크를 썰어 유채연의 앞에 주면서 말했다.“당신이 낯선 음식을 잘 먹지 못할까 봐 완전히 익힌 걸로 시켰어. 입맛에 맞는지 먹어봐.”유채연은 다 익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예전엔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다 먹었는데, 이렇게 비싼 음식은 말할 것도 없어.’고개를 숙이고 먹으려고 할 때, 그래함이 휴지로 유채연의 입을 닦아주면서 낮은 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만약 먹기 싫으면, 먹지 말고 그냥 놔두고 다른 걸 먹어.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어. 나는 단지 당신이 즐겁게 식사하길 바랄 뿐이야.”그래함이
‘그래함과 무진 씨 사이는 썩 괜찮은 것 같아.’성연은 두 사람이 언제 번호를 교환했는지도 몰랐다.‘그런데 사형이 전화를 받는 속도가 꽤 빨랐어.’성연은 궁금해하며 물었다.“사형하고 채연 언니는 뭐하고 있대요?”‘채연 언니가 멀미를 했으니까, 사형도 당연히 언니하고 같이 쉬고 있었을 텐데.’‘전화를 그렇게 빨리 받을 수가 없어.’그래서 성연은 약간 궁금해졌다.“두 사람이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맞혀 봐?” “뭐 먹고 있었나...?” 성연이 머뭇거리며 답을 말했다.“두 사람은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도 서둘러야 하지 않겠어?”성연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면서 얼굴을 가렸다.‘사형하고 언니는 대낮인데도...’‘하필이면 무진 씨가 들었어.’‘하지만 두 사람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 호텔에는 방해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바로 불이 붙은 거야.’‘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것도 정상일 거야.’말을 하던 무진이 성연에게 바로 키스를 했다.무진의 키스를 받은 성연은 숨을 헐떡이며 무진의 품에 안겨 있을 수밖에 없었다.무진의 동작은 갈수록 대담해졌다.성연의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너무 조급하게 그러지 말아요.”‘여긴 집무실이라서 언제든지 사람들이 들어올 거야.’‘문을 잠그더라도 누군가 보고하러 문을 두드릴 거야.’성연은 아직 이런 정도로 개방적이지는 않았다.그리고 아이를 만드는 것도 조급해하지 않았다.‘적어도 결혼식 후에 생각해야지.’‘나는 아직 그렇게 젊은데, 아이가 생기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해.’‘생각만 해도 정말 귀찮아.’“안 돼,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성연이 사무실에서 그러는 걸 원하지 않는 이상, 무진도 개의치 않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그곳이라면 조용하고 공간도 넓어서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거야.’“무진 씨, 좀 진정해요...”성연은 얼굴을 붉히며 무진의 가슴을 밀어냈다.‘무진 씨는 정말 갈수록 대담해져.’‘누가 강무진을 금욕주의자라고 했어?’‘나를 잡아먹으려고 눈이 벌개져 있는데, 그런
무진은 전례 없이 빠른 발걸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섰다.문을 열고 성연의 뒷모습이 보이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곧장 달려가서 성연을 백허그로 안았다.고개를 돌린 성연이 무진을 향해 미소를 지으면서 키스를 날렸다.무진은 키스를 잠시 중단하고 대표실 문을 잠궜다.이어서 성연에게는 숨막히고 공격적인 키스가 기다리고 있었다.무진의 손도 슬슬 위험 수위를 넘나들기 시작했다.점점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성연도 빨갛게 뺨이 달아올랐지만 무진의 손을 잡고 막았다.“지금은 회사라서 안 돼요.”성연이 불편한 듯한 모습을 보이자, 계속해서 진도를 나가려던 무진은 마음속의 욕망을 억지로 눌러야 했다.그리고 성연을 품에 꼭 안았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무진의 마음이 비로소 진정되었다.성연을 껴안은 채 소파에 앉았다.그리고 나서야 성연에게 그래함의 일에 대해 물었다.“어떻게 됐어?”성연은 그래함과 유채연의 일을 간단하게 말해주었다.그전의 우여곡절들은 많이 생략했지만, 그래도 핵심적인 내용들은 거의 다 말했다.이야기를 듣고 난 무진은 큰 충격을 받았다.‘그래함이 그렇게 다정한 남자인 줄 몰랐네.’‘그래함의 권력과 지위라면 어떤 여자인들 얻지 못하겠어?’‘줄곧 고향의 연인만을 애타게 기다렸다니.’무진의 생각이 지나치다고 탓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그러나 내가 성연과 함께 있을 때 성연의 신분도 그리 대단하지 않았어.’‘감정이란 건 아무것도 보지 않고 오로지 느낌만 따라야 해.’무진은 유채연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좀 궁금해졌다.‘그래함 같은 대단한 남자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라니.’“무진 씨도 믿기지 않지요?” 성연이 고개를 들면서 물었다.“그래.” 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좀 믿기 힘든 일이야.’“이전에 사형이 채연 언니를 찾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더 믿을 수가 없었어요. 나중에 사형이 예전에 채연 언니가 자신에게 준 증표를 여전히 가지고 있었고, 채연 언니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걸
북성에 도착하자 그래함은 유채연을 데리고 최고급 호텔을 체크인했다.뒤에서 그들의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고 있던 성연은 자기도 모르게 무진이 생각났다.‘나도도 약혼녀가 있는 사람이야. 뭐.’‘요 며칠 사형과 채연 언니가 애정을 과시하는 것만 바라보았지.’유채연과 그래함도 성연을 잊지 않았다.유채연이 물었다.“성연아, 너 우선 우리 호텔로 가서 쉬지 않을래? 차를 그렇게 오래 탔는데 힘들었잖아.”유채연은 멀미가 나서 창백한 표정으로 그래함의 품에 기대고 있었다.“됐어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두 사람의 세계를 방해할 수 있겠어요? 저는 먼저 갈게요.” 성연은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며 혼자 차를 타고 떠났다.유채연은 성연이 떠나는 방향을 보면서 걱정했다.“성연이 걔가 갈 곳이 있어? 시간도 늦었는데 여자가 밖에 있으면 얼마나 위험해.”“특히 이런 대도시에서는.”그래함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채연아, 성연이는 이곳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너 잊었어? 전에 내가 너한테 말했잖아. 성연이에게는 아주 대단한 약혼자가 있다는 거 말이야.”유채연은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성연에 대해서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그래서 약혼자를 찾아간 거야?”“그래, 걱정하지 마. 지금 멀미하지? 힘들면 내가 밖에 나가서 약 좀 사올까?” 그래함은 유채연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유채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좀 자면 돼.”“그럼 그렇게 해.” 그래함도 마음 놓고 유채연을 혼자 둘 수 없었다.‘처음 이곳에 왔는데, 내가 채연이 곁에 없다면 채연이가 불안해할 가능성이 높아.’한편 성연은 바로 무진을 찾아갔다.그러나 자신이 돌아온 걸로 무진에게 서프라이즈 선물을 주려고 무진에게는 말하지 않았다.성연은 예전에 지문을 입력해 놓아서, 보고 없이 바로 최고층까지 갈 수 있었다.요 며칠 동안 무진을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이제 곧 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설레는 듯했다.성연이 집무실 입구에 도
외삼촌은 다가가서 무릎을 꿇은 두 사람을 부축했다.여전히 울고 있던 유채연이 일어나자, 그래함이 어깨를 감싸고 위로했다.“얼른 가거라.” 외삼촌도 울먹이는 목소리였고, 두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그래함은 외삼촌을 한 번 본 뒤 유채연이 차에 타도록 부축해 주었다.유채연은 외삼촌을 애틋하게 바라보았다.성연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외삼촌이 몸을 돌릴 때 눈물이 땅에 떨어지는 걸 봤지만, 유채연이 걱정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성연이 옆에서 따라서 소리쳤다.“외삼촌, 제가 채연 언니하고 자주 돌아올 게요. 저는 외삼촌 가게 하드가 좋아요.”그제야 서둘러 눈물을 닦은 외삼촌이 몸을 돌려서 말했다. “그래, 너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마.”차가 천천히 시동을 걸자, 창밖의 장면도 빠르게 바뀌었다.차에 앉아서도 유채연은 여전히 훌쩍거렸다.그래함은 유채연을 꼭 안고 자신의 품에 기대게 했다.“채연아, 외삼촌이 보고싶으면 앞으로 자주 돌아와서 볼 수 있어. 내가 같이 올게.”“정말?” 그래함을 바라보는 유채연의 눈은 마치 토끼의 눈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물론이지, 네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내가 다 해 줄게.” 예전에는 그래함도 뭘 해도 혼자였다.하지만 이제 유채연이 있으니 모두 달라졌다.그래함은 틀림없이 유채연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이다.어쩌면 유채연을 위해 정말 국내로 이주할 수도.“그런데 내가 없는데 외삼촌은 어떡하지? 자기 몸을 잘 추스릴까?” ‘예전에는 집안의 모든 일을 내가 책임졌지.’‘지금 내가 떠났으니 외삼촌은 잘 수습할 수 있을지 몰라.’성연은 조수석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성연은 일부러 그 자리에 앉아서 유채연과 그래함에게 공간을 내주었다.그 말을 듣고 성연이 웃으며 말했다.“채연 언니, 외삼촌은 마음이 그렇게 섬세한 분이니까 잘 지낼 수 있을 거예요.”떠날 때 그래함은 외삼촌에게 체크카드를 남겨 두었다. 비밀번호도 쪽지에 써 두었다. 그 돈이면 외삼촌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평생 편안하게
이런 유채연의 모습을 보고 외삼촌은 또 한바탕 잔소리를 했다.“정말 재수 없게 징징거리고 있지. 꼴이 그게 뭐야? 나는 상관하지 말고 빨리 가. 나한테 돈도 있고 차도 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는 말할 것도 없어. 너는 나한테 짐만 될 뿐이야!”유채연은 외삼촌이 어떤 마음인지 알고 있었다.대부분 외삼촌은 그저 입으로만 모질게 굴었을 뿐이다.사실 자신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애초에 집에 그렇게 많은 일이 생기자 친척들마다 모두 양보하면서 피했다.외삼촌만 자신을 받아들이기를 원했다.모두들 유채연이 흉악한 외삼촌을 따라가면 틀림없이 좋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그러나 그동안 삶의 질이 좀 떨어진 걸 제외하면, 외삼촌은 진심으로 자신을 보호해 주었다.가게에 온 손님 중에 간혹 유채연의 예쁜 모습을 보고 희롱하려고 했지만, 모두 외삼촌에게 두들겨 맞고 쫓겨났다.이전의 여러 일들을 생각하자, 유채연은 외삼촌이 자신에게 그렇게 잘해 준 걸 알게 되었다.유채연이 갑자기 털썩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외삼촌, 그동안 거둬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옆에서 그 모습을 본 그래함도 유채연을 따라 무릎을 꿇었다.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외숙부님, 채연이의 부모님이 안 계시니 외숙부님이 채연이 아버님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무릎을 꿇고 맹세하겠습니다.”“저희는 곧 결혼하게 되면 반드시 읍내에서 잔치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채연이를 보고 비웃지 못하게 할 테니, 채연이를 제게 주시면서 안심하셔도 됩니다. 제가 채연이에게 정말 잘 하겠습니다.”남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존엄성이다.그러나 그래함은 유채연을 위해 외삼촌 앞에 무릎을 꿇었다.이 역시 그래함의 성의를 충분히 드러낸 것이다.두 사람의 감정을 외삼촌은 더욱 눈에 새겨 두었다.‘채연이가 그래함과 함께 있으면서 미소도 눈에 많이 많아졌어.’“너희들 빨리 일어나!” 외삼촌은 유채연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게 아니었다.입으로는 듣기 싫은 말을 하지면, 개를 길러도 이
이전에 유채연이 입었던 옷은 전부 그래함과 성연이 함께 골라준 옷으로 교체되었다.유채연은 트렁크를 사서 물건을 다 넣었다.곧 떠나야 할 때, 유채연이 외삼촌과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내가 같이 갈게.” 유채연을 도와 트렁크를 닫고서 그래함이 일어났다.“그래도 나 혼자 갈래...” 유채연은 망설였다.“채연아, 이제는 우리 둘이 같이 있잖아. 외삼촌은 우리 관계의 증인이자 네 유일한 가족이야. 내가 널 데리고 갔다가, 내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야?” 그래함이 유채연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했다.요 며칠간 함께 지내면서, 유채연은 자연스럽게 그래함과 더 가까워졌다.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그래함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만약 외삼촌이 그래함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 마음이 더 괴로울 거야.’“그래, 같이 가자.” 유채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두 사람이 함께 문을 나섰다.나오다가 마침 두 사람을 찾으려던 성연과 마주쳤다.“성연아, 우리 외삼촌 보러 갈 건데, 너도 갈래?” 유채연은 요 며칠 성연과 계속 붙어 있어서, 성연에 대한 감정도 이미 예전처럼 좋았다.어디를 가든지 성연을 데리고 가야 해서, 그래함이 한바탕 질투하기도 했다.“출발하기 전에 외삼촌과 작별인사 하러 가는 거예요?”성연이 물었다.“그래.” 유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나도 함께 갈게요.” 눈치 빠른 성연은 유채연의 손을 잡지 않고 뒤에서 따라갔다.‘채연 언니하고 그래함 사형이 나란히 다정하게 가는 모습을 보면, 외삼촌이 좀 안심할 수 있겠지.’유채연과 그래함은 앞에서 함께 걸어갔다.유채연의 마음은 여전히 좀 불안했다.‘예전에 외삼촌이 못마땅했을 때는 여기를 탈출하겠다는 생각도 했지.’그러나 정말로 외삼촌과 작별을 고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유채연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비록 그다지 내 생각대로 지내지는 못했지만.’‘하지만 예전에는 이곳이 내 유일한 피난처였지.’“걱정 마, 외삼촌은 좋은 분이니까 이해해 주실 거야.”
그 말을 듣자, 유채연은 코가 시큰거리면서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꽉 쥐었지만 뜬금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 지금처럼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은 없었다.유채연의 얼굴에 눈물이 가득한 걸 보자, 가볍게 한숨을 쉰 그래함이 휴지로 부드럽게 눈물을 닦아주었다.“왜 그렇게 울기를 좋아해? 앞으로 나하고 있으면서 내가 잘 해줄 테니까 이렇게 울면 안 돼. 네가 눈물을 흘리는 게 안타까워.”그래함의 부드러운 말을 들으면서 유채연의 감정도 점차 가라앉았다.감정이 진정되자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맛보았다.아주 달았다. 이 달콤함이 유채연의 마음속에 스며들면서 마음을 천천히 따뜻하게 했다.“고마워, 그래함.” 유채연은 코를 훌쩍이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내가 너에게 고마워해야지. 그렇게 오래 되었는데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잖아. 내가 좀 일찍 너를 찾아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래함의 말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우리는 지금이 좋아.” 유채연은 그래함의 이런 의기소침한 모습을 그냥 지켜볼 수 없었다.“그래, 이제 네가 있으니까 앞으로 우리는 더 좋아질 거야.”그래함이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비록 성연은 어느새 감정이 없는 도구로 전락해버렸다.그러나 계속 뒤를 따라 가면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성연은 정말 기뻤다.자신도 그런 분위기가 달콤하게 느껴졌다.예전에는 그저 단순하게 그래함 사형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그러나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자, 정말 두터운 그래함의 깊은 정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성연은 두 사람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처음에 굳어 있던 두 사람이 점차 풀어질 때까지 이미 정말 잘 지나왔어.’“두 분, 연애하면서 여동생도 잊어버렸지요? 나 너무 배가 고파요. 밥 먹으러 가고 싶어요.” 성연도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게에서 별로 먹지 않고 이렇게 오래 걸었더니 벌써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그 말을 들은 유채연이 바로 뒤돌아서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