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곽승재를 보며 물었다.“무슨 일 있나요?”“지금 입고 있는 정장, 신상 아닌 것 같은데요?”곽승재가 담담하게 물었다.이젠 주인혁뿐만 아니라 고은서도 약간 어리둥절했다.‘갑자기 사람을 불러세운 이유가 정장에 관해 평가하기 위해서야?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주인혁은 자신의 정장을 아래 우로 훑어보면서 사실대로 말했다.“네, 몇 개월 전에 산 거예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인혁이가 의미 있는 정장이라고 고집부리면서 입고 왔는데 혹시 어디 문제라도 있나요? 저희가 다음부터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매니저가 옆에서 대신 입을 열었다.많은 걸 겪어온 매니저는 곽승재가 어떤 사람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주최 측에서도 신중히 대하는 사람을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법. 곽승재가 무슨 의미로 그런 물음을 제기했든 사과부터 하고 보는 게 우선이었다.그러나 곽승재가 피식 웃으면서 물었다.“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죠?”“죄송하지만 개인적인 일이라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주인혁이 주눅 들지 않고 대답했다.“곽 대표님한테 무슨 태도야?”매니저가 주인혁을 꾸짖고는 이내 곽승재한테 다시 설명했다.“친구분이 선물한 정장이어서 오늘 같은 중요한 자리에 참석할 때 입은 겁니다.”곽승재는 눈빛이 약간 차가워졌다. 그러나 끝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매니저는 곽승재의 속을 정확히 알 수가 없었지만 그가 자신이 책임진 아티스트한테 별로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만 확신할 수 있었다.더 오래 남았다가 모순이 점점 더 격화될 것 같아 보이자 매니저는 이내 빨리 공연 준비하러 가야 한다면서 주인혁을 끌고 자리를 떴다.“곽승재, 뭐 하자는 거야? 왜 갑자기 주인혁한테 시비 걸고 난리야?”고은서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주인혁 편드는 거야?”곽승재가 고은서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대체 갑자기 왜 그러는 건데? 주인혁이 당신 심기라도 건드렸어?”고은서는 화를 억누르고 있는 곽승재를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고은서, 주
“이혼하지 않았다고 다른 사람한테 선물도 못 준단 법이 어디 있어?”고은서가 헛웃음을 치면서 말했다.“그럼 당신은 백유미한테 선물 주기 전에 내 허락받았어?”“내가 백유미한테 무슨 선물을 줬다고 그래?”“생일 꽃다발, 풍부한 이윤을 거두어드릴 수 있는 프로젝트 계약서, 다이아몬드 귀걸이. 설마 다 잊은 건 아니지?”고은서가 냉소를 흘리며 말을 이어갔다.“심지어 내가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많은데 나 몰래 준 선물은 더 많겠지?”“프로젝트 계약서는 네가 백유미 목을 조른 보상으로 주민기한테 보상으로 전해주라고 한 거야. 그리고 꽃다발과 다이아몬드 귀걸이는 나도 모르는 일이야.”곽승재가 이를 악물고 해명했다.“모른다고? 곽승재, 과거를 부인한다고 그 과거가 사라지는 건 아니야.”고은서는 그의 말이 너무도 우스웠다.“우리 오 주년 기념일 때 백유미 생일 축하해주러 가면서 꽃다발 선물했잖아. 그리고 백유미가 샹들리에에 깔려서 병원으로 이송되었을 때 밤중에 백유미 보러 가며 다이아몬드 귀걸이 두 세트 사서 백유미한테 하나 주고 나머지 하나를 나한테 줬잖아.”“그날 승엽 아저씨가 불러서 간 거야. 나도 처음엔 백유미 생일인 줄 몰랐다고. 그런데 내가 왜 꽃다발을 선물하겠어.”곽승재도 어이가 없었다.“그리고 그 다이아몬드 귀걸이는 산 적도 없어. 다 백유미가 준 거라고. 백유미가 준 물건을 받은 내 탓이라고 해. 그런데 그날 네가 꿀꿀해 하기에 선물이라도 받으면 좋아하지 않을까 하고 너한테 준 거야.”고은서는 억울하다는 듯 화내면서 말하는 곽승재를 보면서 약간 어리둥절해졌다.‘그러니까 내가 인스타에서 본 그 꽃다발 사진이 다 백유미가 날 자극하려고 일부러 올린 거란 말이야? 그럼 그 귀걸이도 나를 자극하려고 작정하고 두 세트를 사서 그중 한 세트를 곽승재한테 줬단 말이야? 그때 분명 마음에 내키지 않아 하면서도 이천만 원을 계좌 이체해주며 곽승재한테 연락하지 못하게 한 게 다 이유가 있어서였어. 왜냐면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산 사람이 애초부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고은서는 곽승재의 일에 끼어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이미 이혼한 마당에 같이 앉는다는 게 말이 돼?’고은서는 혼자 속으로 생각하면서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곧장 화장실로 갔다.한참 화장실 안에서 꾸물거리다가 밖으로 다시 나가려고 할 때 여자들의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곽 대표님 봤어? 진짜 너무 잘생기지 않았어? 몸매랑 기품도 완전 매력적이지 않아?”“그러니까. 오늘 현장에 온 연예인들보다도 더 멋있다니까.”‘진짜 어디 가나 여자들한테는 인기짱이네.’고은서가 속으로 감탄했다.“파티장에 들어오면서 여씨 가문 아가씨랑 얘기 나누는 거 봤는데 꽤 친해 보이던데? 심지어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저녁 식사하던데 혹시 가문끼리 협력관계라도 맺으면서 결혼이라도 하려는 건가?”고은서가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할 때 다른 여자가 또 입을 열었다.“나도 그 생각 했는데. 그런데 이미 결혼했다고 하지 않았어? 얼마 전에 제삼자에 관한 소문도 났었잖아.”“이혼한 지 오라거든. 내가 얼핏 들었는데 곽 대표님 전처 조건 엄청 별로라던데. 곽 대표님한테 빌붙어 살다가 쫓겨난 거라잖아.”“소식이 정확하지 않은 것 같네요.”고은서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서 말했다.화장실에 다른 사람이 있을 거라고 전혀 생각지 못한 두 여자는 깜짝 놀라 하며 고개를 돌렸다.반면 고은서는 덤덤하게 손을 씻으면서 말했다.“그쪽들이 말하는 전처가 곽 대표가 싫어서 이혼을 먼저 제기한 거예요.”“지금 무슨 헛소리에요. 어디서 들은 가짜 소식을 가지고 입을 함부로 놀리는 거예요!”여자는 이내 비꼬는 듯한 말투로 반박했다.“제가 그 조건이 별로인 전처거든요.”고은서는 손을 닦으면서 말했다.두 여자는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경악한 기색을 드러냈다.그러나 고은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미친 거 아니야? 어디서 함부로 전처라고 나대는 거야?”“내 말이. 아무리 이쁘장하게 생겨도 곽 대표님 눈에 들지도 못할 사람이 왜 저러는 거야?”두 여자가 서로
경매 가격이 이억에 달한 이상 그녀와 겨룰 사람은 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고은서도 브로치가 이억에 낙찰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곽승재가 갑자기 팻말을 들면서 경매에 참여하려고 했다.“사억.”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의 경매 가격을 듣자마자 입을 쩍 벌리며 서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대부분 경매 가격을 이천만씩 올리는 게 보편적이었는데 곽승재처럼 가격을 단번에 배로 늘리는 사람은 없었다.“여씨 가문 아가씨가 마음에 들어 한다는 걸 알면서도 경매에 참여하는 걸 봐서는 여시은 아가씨 환심을 사기 위해 그러는 게 분명해.”사람들의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고은서의 귀에도 들렸다.“요즘 여씨 가문에서 해성 있는 프로젝트 하나를 눈 여겨두면서 GS그룹이랑 협력하려고 한다던데. 브로치 하나로 환심 사는 게 마땅한 거 아니야?”‘여씨 가문이랑 GS그룹이 협력한다고? 전생에는 없던 일인데.’주인혁은 묵묵히 현장을 지켜보고만 있는 고은서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위안했다.“누나, 다 헛소리야. 내가 보건데는 곽승재 씨가 누나 주려고 경매에 참여한 거 같아.”“위안할 필요 없어. 누굴 주든 곽승재 마음이야. 나랑 상관없는 일이야.”주인혁도 두 사람이 이혼했다는 소문을 전해 듣긴 했으나 그는 곽승재가 아직도 고은서를 좋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여기까지 찾아와서 자신이 입고 있는 정장을 보며 비아냥거리지 않았을 것이다.“사억, 사억, 사억! 낙찰입니다!”땅 하는 소리와 함께 브로치는 곽승재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일반 경매와 다르게 이번 경매는 경매가 끝나자마자 경매품을 경매자한테 가져다주는 독특한 면이 있었다.곽승재는 브로치를 가져다준 웨이터를 보면서 그에게 무슨 말을 전달하는 것 같았다. 이어 웨이터는 트레이를 들고 고은서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고은서는 주변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면서 순간 불안해졌다.아니나 다를까, 웨이터가 브로치를 들고 고은서 앞에 멈춰 섰다.순간, 사람들의 부러운 눈길이 그녀한테로 쏠렸다.무대 위에
그들을 본 곽승재는 미간을 찌푸렸다.반면 육현석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아버님, 귀국하셨네요? 정말 오랜만에 뵙는데 전이랑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네요.”뻔히 보이는 육현석의 아첨에 곽현수는 고개만 살짝 끄덕이며 대충 답했다.“현석아, 넌 먼저 나가봐라. 승재랑 할 얘기가 있구나.”육현석은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진작 눈치챘다.“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시간 되시면 제가 환영회를 준비해 드리겠습니다.”육현석이 자리를 뜨자 곽현수가 사무실로 들어섰다.백유미는 문가에 서서 약간 두려운 표정으로 곽승재를 바라보고 있었다.“유미야, 들어와. 문 앞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곽현수가 말하자 백유미는 그제야 안으로 들어섰다.곽승재는 미간을 찌푸리며 곽현수에게 물었다.“어쩐 일로 귀국하셨어요?”곽현수가 진지하게 말했다.“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백씨 가문 산업을 그대로 고은서 손에 넘겨 걔 멋대로 하게 둘 것 같아서 들어왔어.”곽승재가 담담하게 답했다.“아버지, 말씀이 과하시네요. 저는 백씨 가문 산업에 손댄 적 없어요.”“방관이 돕는 거랑 뭐가 달라.”곽현수가 차갑게 쏘아붙였다.“고은서의 환심을 사기 위해 너는 유미 아버지가 병원에 있어도 상관도 하지 않고 심지어 유미가 마음고생하게 만들었잖니!”“저는 아저씨한테 할 만큼 했습니다. 이 이상으로 신경 쓸 의무는 없습니다. 그리고 백유미는...”곽승재는 무심하게 곽현수를 바라보며 말했다.“보시는 대로 스스로의 능력으로 이렇게 나왔네요.”곽승재의 말에 백유미는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승재야, 나도 더 이상 어쩔 수 없어서 아저씨한테 도움을 청한 거야. 아버지는 치료 시기를 놓쳐서 이제 다시는 걷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더라. 너무 속상해하셔서 혹시 잘못된 선택이라도 하실까 두려워서 아저씨한테 부탁할 수밖에 없었어.”곽승재는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곽승재, 백승엽은 단지 고은서에게 진실을 요구한 것뿐인데 이렇게까지 매몰차게 굴
곽승재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할 말 있으면 빨리해.”백유미는 여전히 평소처럼 온화한 표정을 유지하며 곽승재의 냉랭한 태도에도 개의치 않고 소파에 앉았다.“승재야, 전에도 말했지만 나 혼자서 성씨 일가 일을 조사할 능력도 없고 고씨 가문 사업에 개입할 힘도 없어.”곽승재는 여전히 냉담한 표정으로 백유미를 바라봤고 백유미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승재야, 별로 놀라지 않는 것 같네. 이미 알고 있었어? 하긴... 고은서를 신경 쓰는 걸 보면 조사를 했겠지.”백유미가 말을 이었다.“그렇다면 내가 진심으로 그런 일을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는 걸 믿어줄 거로 생각해. 나도 아저씨 부탁을 받은 것뿐이야.”“왜 그 부탁을 들어줘야 했던 거지? 그리고 아버지는 왜 그런 일을 시킨 거야?”곽승재는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얼굴로 물었다.백유미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정말 몰라. 나도 몇 번이나 물었지만 아저씨는 그냥 참견하지 말라고 하셨어. 승재야, 아저씨는 나랑 아버지한테 은혜를 베푸신 분이야. 그런 분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어. 이미 다 알고 있었으면서 나랑 아저씨한테 밝히지 않은 건 아저씨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그런 거지?”백유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내가 네 숨겨둔 패가 되어 널 도와줄게.”곽승재는 냉랭한 태도로 말했다.“백유미, 지금 상황에서 내가 널 믿을 거로 생각해?”백유미가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승재야, 네 마음속에서 나는 정말 그렇게 하찮은 존재야? 곰곰이 생각해 봐.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너에게 해를 끼칠만한 일한 적 있어? 아저씨를 도와 너와 고은서 사이를 갈라놓으려 했던 적은 있어도 너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았어. 물론 나도 아무런 조건 없이 돕겠다는 건 아니야.”백유미는 자신의 요구를 분명히 했다.“아버지에게 좋은 의사를 구해주고 다리를 고쳐줘. 그리고 아저씨가 백씨 가문에 화풀이하더라도 우리 가족이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돈을 줘.”그 말에 곽승재는 미간을 찌푸렸다.
백유미의 질문에 곽승재는 더는 인내심을 보이지 않았다.“네가 어떤 이유로 그런 행동을 했든 간에 결론적으로 그 일은 네가 벌인 거야. 단지 어쩔 수 없었다는 이유로 모든 걸 덮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해?”곽승재의 냉정한 얼굴을 바라보던 백유미는 눈시울을 붉힌 채 쓴웃음을 지었다.“그래. 맞아. 내가 한 일이야. 하지만 네가 고은서를 좋아했다면 어떻게 남의 몇 말로 미워할 수 있었겠어? 너희 사이가 굳건했다면 내가 깨뜨릴 수 있었을까?”백유미는 조소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나는 단지 성아연한테 나를 몇 번 모욕하라고 한 것뿐이었어. 하지만 넌 그걸 고은서의 계획이라고 믿었지. 내가 다쳐서 입원했을 때도 네 선택으로 내 곁에 있었던 거였어. 승재야, 고은서를 미워한 건 너고 고은서에게 냉정하게 대했던 것도 너야. 그게 왜 내 탓이야? 내가 한 일은 고은서를 다치게 하지 못했어. 모든 책임과 잘못을 나한테 떠넘긴다고 정말 이 일이 전부 내 탓이라고 생각하는 거야?”백유미의 날카로운 비판에 곽승재는 심장이 순간 얼어붙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그의 가슴속은 답답함과 불안으로 가득 찼다.곽승재는 저도 모르게 서운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그는 고은서를 다시 찾겠다고 말하며 앞으로는 더 이상 그녀를 아프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했었다.그때 고은서가 그에게 물었다.“정말 내가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알아?”그는 망설임 없이 안다고 답하며 그녀에게 진실을 밝히겠다고 약속했다.하지만 고은서는 비웃으며 냉소적으로 웃을 뿐이었다.그는 그 당시 고은서의 상처가 전부 백유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백유미가 저지른 일을 밝혀내고 그녀가 대가를 치르게 만들면 그것이 고은서에 대한 속죄라고 생각했고 또한 고은서의 상처도 치유될 거로 생각했다.하지만 백유미의 질책과 비아냥을 들은 지금, 곽승재는 자신이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크나큰 착각이었고 뼈아픈 실수였다.‘은서에게 상처를 준 건 백유미가 아닌 나였어.’“승재야, 너에 대한 내 마음은 단 한
“누나, 백승엽 병문안 왔는데 다리 상황이 좋지 않아 보였지만 정신은 멀쩡하더라고요. 심지어 곽승재의 아버지가 돌아와서 이제 아무도 백씨 가문을 건드릴 수 없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더라고요.”원지훈이 걱정스럽게 물었다.“백씨 가문이 이 기회를 타서 다시 세력을 되찾지 않을까요?”고은서는 그의 말에서 그가 당장이라도 백씨 일가를 무너뜨리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아챘다.이제 곧 소원을 성취할 차례인데 갑자기 곽현수라는 변수가 나타난 것이다.고은서가 그를 달래며 물었다.“해외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도입했어?”“최근 백승엽이 사고를 당하고 백유미도 조사 때문에 구치소에 들어가 있어서 프로젝트 책임자가 위험 부담을 감수하지 않으려 하고 있어요. 그래서 아직 공식적인 승인은 받지 못했어요.”“상황이 안정되었으니 적극적으로 추진해 봐.”백유미가 고씨 가문을 무너뜨렸던 것처럼 고은서도 같은 방법으로 백가를 무너뜨릴 계획이었다.원지훈과 통화를 끝낸 고은서가 체육관으로 향했다.단순 친선 경기일 뿐이었지만 관중은 생각보다 많았다.관람석은 이미 절반 이상 차 있었고 각 병원의 대표 선수들은 경기 준비로 분주했다.응원단이 구호를 연습하는 모습도 보여서 분위기가 꽤 떠들썩했다.고은서는 좋은 자리를 찾아 박지연과 그녀의 팀원들을 응원하려 했다. 주위를 둘러보던 중 그녀는 한쪽 구석에서 온승준을 닮은 남자를 발견했다.구석진 곳에 서 있고 주변에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던 탓에 그녀는 온승준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그러나 고은서는 그가 온승준이든 아니든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박지연과 온승준이 이혼했으니 그녀에게는 낯선 사람이나 다름없었고 고은서는 굳이 시간을 낭비해 가며 그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온승준은 확실히 현장에 있었다.원래 그는 이런 경기가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전날 구내식당에서 동료들이 어느 병원 팀이 우승 가능성이 높은지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온승준은 그런 얘기에 관심이 없어 식판을 들고 자리를 뜨려고
고서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말씀하세요.”“승연이 상황에 관해서 너도 전해 들었을 거라 믿어. 지금 승연이가 꺼려하지 않으면서도 정서 조절에 도움이 되는 향을 찾아야 하는데 승재 할머니 말씀으로는 네가 퍼퓸 제작에 능하다고 하던데 혹시 너한테 부탁해도 될까 해서.”서연정은 국내외에도 많은 퍼퓨머가 있긴 하나 곽승연이 낯선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는 걸 싫어해서 다른 사람의 물음에 대답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설명을 보태면서 부득이하게 고은서에게 부탁하는 거라고 했다.전에 곽씨 가문 본가에 갔을 때 곽승연 상태와 퍼퓸 제작에 관한 일을 곽승재한테서 전해 들은 적이 있었다.그러나 그때 당시는 곽승연을 직접 만나보지도 못했던지라 그녀가 무얼 좋아하는지도 알 수가 없어 거절했었다.“어머니, 제가 한번 해볼게요.”“은서야, 고마워.”서연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고은서는 그녀를 보며 갑자기 자신의 어머니가 생각나면서 가슴이 찡해났다.“하지만 너무 큰 희망은 품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저도 꼭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장할 수가 없어요.”희망이 클수록 실망도 큰 법.고은서는 그녀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괜찮아, 은서야. 내 부탁을 들어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운 걸. 승연이 상태는 나도 잘 알고 있어. 결과가 어떻든지를 막론하고 정말 고마워.”서연정이 진심 어린 말투로 말했다.“알겠어요. 그럼 내일부터 시간 내서 승연이가 무얼 좋아하는지부터 알아보도록 할게요.”고은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원래도 까다로운 퍼퓸 제작이 이번엔 더 힘들 것 같았다.‘천천히 해야지.’“은서야, 잘 부탁해. 기사님한테 언제든지 출발할 수 있게 기다리라고 할게.”“괜찮아요.”고은서가 말을 계속 이어가려고 할 때 서연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넌 승연이를 도와주는 것 외에 일도 해야잖니. 기사님이 데려다주고 하면 너도 차에서 조금이나마 편히 쉴 수 있잖아.”그녀의 말에 고은서는 더는 거절하지 않았다.운전하는 게 확실히 쉬운 일은
육현석이 혼자 추측하기 시작했다.“혹시 뭐 발견한 거라도 있어서 백유미를 이용하려고 놓아준 거야?”“너랑 상관없는 일은 모르고 있는 게 나아. 쓸데없는 추측은 그만하는 게 좋을 거야.”곽승재가 차가운 얼굴빛을 한 채 서류 하나를 들면서 말했다.“...”육현석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고은서와 서연정은 전에 약속한 찻집에서 만났다.웨이터를 따라 위로 올라가 보니 은은한 차향이 코끝을 간지럽혔고 여러 향초도 켜져 있었고 내부는 여러 가지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송민준을 만날 때 갔던 찻집보다 더 마음에 와닿았는데 아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을 것 같았다.“은서야, 왔어?”서연정이 그녀를 보며 인사했다.“어머니.”고은서는 인사하면서 곽승연도 있다는 걸 발견했다.그녀는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에도 고개를 들지 않고 열심히 아이패드를 보고 있었다.“승연이가 요즘 많이 나아졌어. 너한테 주고 싶은 물건이 있다고 했는데 직접 전해주는 게 더 예의인 것 같아서 데리고 왔어.”서연정이 앞서 설명했다.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곽승연은 다도 전문가들이 차를 올려줄 때도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신만의 세계 속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미안, 은서야. 승연이 아직 다른 여자애들처럼 너랑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진 못해.”서연정이 웃으면서 사과했다.“상태가 좋았다가 나빴다 하는데 대부분 사람은 그저 환자로만 보거든. 승연이는 또 그걸 싫어하고. 그래서 애가 점점 더 내성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 지금은 주동적으로 인사하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면 돼.”아이패드를 들고 조용하게 앉아있는 곽승연은 나긋한 미소를 띠고 있었는데 가녀린 몸매와 창백한 얼굴빛을 외에는 전혀 자폐증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괜찮아요, 어머니. 저는 승연이가 그저 평범한 여자애처럼 보여요. 조용하고 귀엽잖아요.”“고마워, 은서야.”서연정이 진심 어린 말투로 말했다.“승연아, 언니한테 줄 물건이 있다며? 언니 지금 여기 왔어
육현석은 곽승재의 살기가 가득한 눈빛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예상 밖으로 곽승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큰 타격을 받은 모양이다.육현석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달랬다.“형, 형수님이 실망한 것도 사실 당연한 일이잖아. 전에 백유미를 감방에 보내겠다는 약속을 어긴 사람이 형이 맞잖아. 심지어 지연이도 화를 내면서 또다시 형이랑 형수님이 재혼하는 걸 도와주면 나랑 절교하겠다고 했단 말이야.”육현석은 무척 난감해했다.한쪽은 제일 친한 형이고 다른 한쪽은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였기에 그에게 있어서 누굴 도와줄지 선택 내리기 너무 어려웠다.“형수님 형한테 정말 아무런 감정도 남지 않은 것 같은데 이쯤에서 그냥 내려놓는 건 어때?”육현석이 조심스럽게 입을 다시 열었다.곽승재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그를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너도 민시후가 고은서한테 더 잘 어울린다는 소리 하려고 그러는 거야?”“그럴 리가! 형수님처럼 훌륭한 사람한테 민시후가 뭐야.”육현석이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그런데 왜 백유미를 이대로 놓아주는 거야? 혹시 아버님이랑 백승엽이 백유미를 놔주라고 형을 협박한 거야?”육현석이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현석아, 전에 은서가 임신했던 아이가 내 아이래.”곽승재는 그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화제를 바꾸었다.육현석은 곽승재가 왜 갑자기 이 말을 꺼내는 건지 약간 의문스럽긴 했지만 티 내지 않고 그의 말에 답했다.“내가 전에도 형수님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민시후랑 두 사람 사이에 오해가 있을 거라고 몇 번이고 말했잖아.”“나한테 사실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는데 난 그저 민시후를 지키기 위해 거짓말하는 거라고만 생각하면서 믿지 않았어.”곽승재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주민기한테 조사하라고 맡기고도 그 결과를 확인해 보지 않았어. 고은서 말이 맞아. 난 근거 없는 자신감만 넘치는 사람이야. 증거 있는 일만 믿으면서 단 한 번도 고은서를 믿어준 적이 없어. 그래서 고은서도 내가 자신을 위해 변할
“누가 얌생이라는 거야?”“T국에 있을 때 분명히 나도 고은서를 찾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한테 소식을 숨겼잖아. 이게 얌생이가 아니고 할 짓이야?”민시후가 차가운 목소리로 반박했다.“내 아내에 관한 소식을 왜 너한테 알려줘야 하는데?”곽승재가 화를 내며 말했다.“두 사람이 이혼한 지 언젠데 아직도 아내 타령이야. 곽승재, 아내라는 호칭 적당하게 부르는 게 좋을 거야. 내가 너 대신 창피해지려고 하니까.”민시후가 비아냥거리며 반박했다.“너!”곽승재의 얼굴빛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민시후, 네가 환자라고 내가 널 못 팰 것 같아?”“당신이 뭔데 민시후를 패?”바로 이때, 고은서가 엘리베이터에서 뛰어나오며 소리쳤다.그녀는 민시후 앞에 막아서며 한기가 서린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곽승재, 여기 블랙박스 있는 거 안 보여? 함부로 행동하지 마.”고은서의 말이 비수가 되어 곽승재의 마음을 찔렀다.그는 순간 가슴이 찢기는 듯했다.옆에 보고 있던 주민기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사모님, 대표님께서...”“사모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그러나 고은서가 단호하게 그의 말을 끊었다.“주민기 씨, 건망증이세요? 뇌 건강에 신경 좀 쓰시는 게 좋겠네요. 곽승재한테서 돈 받으면서 편드는 건 이해하겠지만 저도 스스로 볼 줄 알거든요. 그러니까 대신 설명해줄 필요 없어요.”주민기는 억울해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그냥 사무실에 계시면 될 걸 왜 굳이 나와서 사모님을 기다리려는 거야. 난 부득이하게 따라 나온 것뿐인데. 게다가 사모님한테 잘 보이기는커녕 민시후 때문에 도리어 화내는 모습만 보이게 되었잖아.’그에게 있어 더 절망적인 건 고은서가 민시후의 편을 들어준다는 것이었다.주민기는 미래의 속상해하는 곽승재의 모습과 힘든 자신의 앞날이 벌써부터 무서워 났다.‘대표님이 기분 나빠하면 내 일상도 함께 힘들어지는데. 난 그저 평범한 직장인일 뿐인데 왜 하늘은 계속 나한테 이런 시련을 주는 거야. 벌써부터 힘이 빠져.’주민기가 한창 생각
민시후가 고개를 끄덕였다.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 건지 아니면 아버지에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려고 했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는 해외에서 혼자 지내며 꽤 많은 기술을 익혔다고 말했다.고은서는 민시후를 다시 보게 되었다.비록 지난 생에서 앞으로 그가 이루어낼 성과가 작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평소 그의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정말 믿음이 가지 않았다.미래를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 고은서도 다른 사람들처럼 그를 그냥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쯤으로 여겼을 것이다.“고은서, 나는 단 한 번도 내 약점을 다른 사람에게 얘기한 적이 없어. 이제 알게 되었으니 날 책임 져야 해.”민시후는 진지하면서도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다.고은서는 그에게 눈을 흘기며 답했다.“져야 할 책임이 너무 커서 감당 안 되겠는데?”“그럼 내가 너 책임질까?”민시후의 눈빛에는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고은서는 민시후가 자신을 어머니의 묘비 앞에 데려간 이유를 알았다.그는 자신의 과거를 공유하며 자신에게 진지함을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고은서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구애받았지만 그녀는 곽승재에게만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그녀는 최선을 다해 곽승재의 마음을 돌리려 했지만 자신도 사랑받을 자격이 넘치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잊고 살았었다.잠시 생각하던 고은서가 민시후에게 말했다.“다음 주 우리 삼촌 생일인데 부상이 다 나으면 나랑 같이 갈래?”그 말에 민시후는 얼굴이 밝아지며 말했다.“지금이라도 갈 수 있어. 믿지 못하겠으면 두 바퀴 뛰어서 보여줄까?”말을 마친 민시후가 날뛰려 했지만 고은서가 얼른 제지했다.“됐어. 얼른 앉아.”고은서는 어이가 없었다.“민시후, 여기서 몇 바퀴 돌다가는 구급차 불러야 할 거야.”민시후는 고은서의 핀잔을 들으면서도 기분이 좋았다.“그래. 알았어. 얌전히 앉아 있을게.”병동으로 돌아와 엘리베이터에 오른 고은서는 핸드폰을 차에 두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그녀는 민시후에게 먼저 올라가라고 하고
다급한 민시후의 모습에 고은서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농담이야.”그 말을 들은 민시후의 잘생긴 얼굴에 매혹적인 미소가 떠올랐다.“고은서, 너는 진짜 예쁘면서 마음도 착해.”“야... 그러지 마.”고은서가 팔을 문지르며 말했다.“민 도련님, 정상적으로 돌아올 순 없을까? 그렇게 웃지도 말고 닭살 돋는 말 하지도 마. 아니면 뭔가 나쁜 의도가 있는 것 같잖아.”민시후는 말문이 막혔다.‘역시 장난은 그만 쳐야겠어. 전에 방탕하게 행동했더니 이제 이미지 회복은 글렀네.’고은서는 민시후가 자신을 재밌는 곳이나 특별히 경치가 좋은 곳에 데려갈 것으로 생각했다.그런데 민시후는 그녀를 묘지로 데려왔다.고은서는 민시후의 지시에 따라 한 묘비 앞에 섰다.묘비 사진에는 온화하고 단정한 표정의 중년 여성이 웃고 있었다.“우리 어머니야.”민시후가 말을 이었다.“여긴 외가 쪽 집안 묘지야. 비록 어머니가 북성으로 시집갔지만 외로울까 봐 여기에서 묘비를 세웠어.”고은서는 아무 말 없이 그 모습을 지켜봤다.평소 민시후는 세상만사에 무심한 듯한 태도를 보였지만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드물게 부드럽고 슬픈 표정을 지었다.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그의 심정이 여실히 느껴졌다.민시후는 휠체어에서 내려 준비한 꽃을 조심스럽게 묘비 앞에 놓고 묘비 위로 떨어진 나뭇잎을 정성껏 정리했다.“왜 곽승재를 그렇게 미워하냐고 물었었지?”고은서는 그 이유가 궁금해서 여러 번 물었었지만 지난번 서운에서 조금 얘기해줬을 뿐 전부는 얘기해 주지 않았다.묘비 앞에 앉아 어머니의 사진을 바라보는 민시후의 표정을 보며 고은서는 조심스레 짐작했다.“설마 경찰서에 끌려갔던 그날 밤 어머니께서 사고를 당하신 거야?”민시후의 눈에 슬픈 감정이 서렸다.그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그날 밤 내 소식을 들은 어머니께서 급하게 해성으로 오시다가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했어. 이튿날 북성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어. 난 어머니 마지막 모습도 보지 못
곽승재는 사복을 입고 있었는데 단순히 바람 쐬러 나온 건지 아니면 볼일이 있어 나가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고은서가 민시후를 휠체어에 태운 모습을 보고 곽승재는 평소처럼 냉담하고 무표정한 눈빛을 보였지만 그 안에는 아픔도 서려 있었다.“아이고, 곽 대표. 여기서 입원 중이었어? 우연이네.”민시후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곽승재는 그에게 답하지 않고 고은서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눈빛을 보였다.고은서가 물었다.“할 말이라도 있어?”곽승재는 입술을 짓씹으며 답했다.“몇 분이면 되는데 병실에서 얘기할 수 있을까?”고은서는 차분하게 답했다.“여기서 얘기해.”곽승재는 민시후를 한번 보고 다시 고은서를 보며 말했다.“사적인 일이라서 다른 사람이 듣는 건 곤란해.”“그럼 미안하지만 시간이 안 되겠네. 저녁에 시간 되면 다시 얘기해.”고은서가 그렇게 말하자 곽승재의 가슴 속에서 무거운 통증이 밀려왔다.이제 고은서는 몇 분이라도 자신에게 할애하지 않으려는 듯했다.“지나가게 좀 비켜줄래?”고은서가 곽승재에게 길을 비키라고 재촉했다.곽승재는 고은서가 나중에 시간을 낸다는 말을 핑계로 그저 대화를 피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결국 입을 열었다.“어제 승연이가 네가 준 캔들을 사용했더니 밤새 잠을 설치지 않고 잤다고 어머니가 말씀하시더라. 승연이가 그림 한 장 그렸는데 너한테 주고 싶대.”고은서는 약간 놀랐다.‘승연이랑은 한번 마주친 게 다인데? 날 쳐다보지도 않았으면서 나한테 그림을 선물로 준다고?’“외할아버지 댁에 아직 오일이 조금 남아 있어. 만약 승연이가 필요하면 사람을 보내 가져다줄게.”고은서가 여전히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을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에 곽승재는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 풀렸다.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은서야, 어머니가 직접 승연이 그림을 너한테 전달하고 싶대. 언제 시간 되는지 알려주면 내가 장소를 정해서 알려줄게.”고은서가 차분한 표정으로 답했다.“그럴 필요 없어. 나도 어머니 연락처 있으니 나중
고은서가 민시후의 병실에 도착했을 때 민시후는 통화를 하고 있었다.그녀가 들어서려 하자 민시후는 전화를 끊고 백유미에게 정신 진단서를 발급한 병원에 관해 이야기하며 그 병원은 곽현수가 개인적으로 지분을 했다는 사실을 전했다.“관련 증거는 경찰서에 보내놨고 백유미가 돌아오면 재검사 신청할 거야. 원지훈의 사망 원인은 T 국 쪽 부검 보고서에서 군도로 목을 그었다고 나와.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한 건지 실수로 찔린 건지는 알 수 없어. 상식적으로 백유미가 그 상태에서 성인 남성을 죽일 힘이 남아있을 리는 없지만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서 초인적인 힘이 나타날 수도 있지. 하지만 이 부분은 증거로 삼을 수 없어. 폐기된 창고에는 CCTV가 없고 모든 사람의 시선이 너에게 향해 있었으니 그 누구도 안쪽 상황은 신경 쓰지 않았어. 새로운 증거가 없으면 사건 재조사는 힘들 거야.”민시후의 설명을 듣자 고은서는 마음이 따뜻해졌다.민시후는 대충 넘기지 않고 진지하게 T 국 사건을 조사하고 있었다.“고마워.”고은서는 진심으로 말했다.민시후는 고은서의 감사한 마음을 알아채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정말 고마우면 행동으로 표현해 줘.”고은서는 경계하며 한 발짝 물러섰다.“뭐 하려는 거야?”그 모습을 본 민시후가 불쾌하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고은서, 지금 누구랑 벽을 세우는 거야? 밥 챙겨왔다며? 어디 있어? 배고파 죽겠어!”고은서는 그제야 도시락을 열어 보여줬다.“특별히 찾아온 맛집이야. 얼른 드세요, 민 도련님.”민시후는 젓가락으로 몇 입 맛보고선 불만을 표했다.“특색이 하나도 안 살았잖아. 다음엔 내가 직접 요리해서 진짜 맛있는 음식이 뭔지 보여줄게.”고은서가 놀라며 물었다.“요리할 줄 알아?”민시후가 고은서를 쳐다보며 말했다.“그게 무슨 반응이야? 내가 요리할 줄 아는 게 이상해?”‘이상하고말고. 부잣집 도련님이 의식주에 대해 까다롭게 굴면서 사람들이 신경 써주는 생활이 익숙할 텐데 왜 스스로 요리를 배운 거지?’“혹시 어떤 여자
고은서가 여시은의 제안을 완곡히 거절하며 미소를 지었다.“시은 씨 혼자서도 충분할 것 같네요.”여시은은 다소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하지만 곽 대표님은 저보다 은서 씨를 더 보고 싶어 할 걸요? 같이 가면 제가 좀 더 편할 것 같은데 어때요?”여시은은 고은서의 팔을 붙잡고 병실로 이끌었다.여시은의 비서는 문을 두드리고 병실 문을 열었다.고은서는 여시은과 함께 예기치 않게 곽승재의 병실에 들어섰다.곽승재는 VIP 스위트룸에 입원해 있었는데 거실과 오픈형 주방 작은 재활실이 있었으며 병상도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곽승재는 소파에 앉아 주민기에게 업무 보고를 듣고 있었다.소리를 들은 곽승재가 고개를 들어 고은서를 바라보고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고은서의 방문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사모님, 시은 씨.”주민기는 예의 있게 인사를 건네고 한쪽으로 물러났다.고은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여시은은 상냥하게 말했다.“주 비서님께서도 계셨네요.”여시은은 곧장 곽승재에게 말을 건넸다.“곽 대표님, 다치셨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 대신 제가 왔어요. 마침 은서 씨를 마주쳐서 같이 왔지 뭐예요?”여시은의 목소리는 달콤하고 귀여웠다.“곽 대표님, 너무 감사하죠?”곽승재는 그녀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예의를 갖춰 말했다.“감사합니다. 여시은 씨. 아저씨한테도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그럼요.”여시은은 눈빛으로 비서에게 과일 바구니를 내려놓으라고 지시했다.“뭘 준비해야 할지 몰라서 과일 좀 준비했어요. 성의 없어 보인다고 하진 말아주세요.”곽승재는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했지만 눈길은 여전히 고은서에게 가 있었다. 그는 그녀의 수중에 들린 도시락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고은서도 곽승재의 시선을 느꼈지만 그에게 말하는 대신 여시은에게 말을 건넸다.“시은 씨. 얘기 나눠요. 저는 다른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그녀를 보내고 싶지 않았떤 여시은이 작은 목소리로 고은서에게 부탁했다.“은서 씨, 저도 대표님이랑 친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