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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4화

Penulis: 류한나
“누나, 백승엽 병문안 왔는데 다리 상황이 좋지 않아 보였지만 정신은 멀쩡하더라고요. 심지어 곽승재의 아버지가 돌아와서 이제 아무도 백씨 가문을 건드릴 수 없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더라고요.”

원지훈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백씨 가문이 이 기회를 타서 다시 세력을 되찾지 않을까요?”

고은서는 그의 말에서 그가 당장이라도 백씨 일가를 무너뜨리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제 곧 소원을 성취할 차례인데 갑자기 곽현수라는 변수가 나타난 것이다.

고은서가 그를 달래며 물었다.

“해외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도입했어?”

“최근 백승엽이 사고를 당하고 백유미도 조사 때문에 구치소에 들어가 있어서 프로젝트 책임자가 위험 부담을 감수하지 않으려 하고 있어요. 그래서 아직 공식적인 승인은 받지 못했어요.”

“상황이 안정되었으니 적극적으로 추진해 봐.”

백유미가 고씨 가문을 무너뜨렸던 것처럼 고은서도 같은 방법으로 백가를 무너뜨릴 계획이었다.

원지훈과 통화를 끝낸 고은서가 체육관으로 향했다.

단순 친선 경기일 뿐이었지만 관중은 생각보다 많았다.

관람석은 이미 절반 이상 차 있었고 각 병원의 대표 선수들은 경기 준비로 분주했다.

응원단이 구호를 연습하는 모습도 보여서 분위기가 꽤 떠들썩했다.

고은서는 좋은 자리를 찾아 박지연과 그녀의 팀원들을 응원하려 했다. 주위를 둘러보던 중 그녀는 한쪽 구석에서 온승준을 닮은 남자를 발견했다.

구석진 곳에 서 있고 주변에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던 탓에 그녀는 온승준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고은서는 그가 온승준이든 아니든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박지연과 온승준이 이혼했으니 그녀에게는 낯선 사람이나 다름없었고 고은서는 굳이 시간을 낭비해 가며 그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온승준은 확실히 현장에 있었다.

원래 그는 이런 경기가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전날 구내식당에서 동료들이 어느 병원 팀이 우승 가능성이 높은지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온승준은 그런 얘기에 관심이 없어 식판을 들고 자리를 뜨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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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615화

    온승준은 어머니의 강압적인 태도에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유 선생도 말했잖아요. 저희는 그저 동료일 뿐입니다. 게다가 이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재혼할 계획 없습니다.”조수연은 불만스러운 기색이 역력했지만 유혜린이 있는 자리에서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는 않았다.식사가 끝나고 유혜린이 떠나자 조수연은 온승준은 잡고 물었다.“승준아, 왜 그렇게 말한 거야?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평생 혼자 살 생각이야? 너 정말 혜린이가 널 좋아하고 다시 같이 있고 싶어 하는 마음을 모르는 거야?”온승준이 차분히 답했다.“몰랐어요. 그리고 저랑 유 선생은 단순한 동료지 그 이상으로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너 정말 나 속 터지는 거 보려고 그래? 혜린이랑 헤어지고 나서 제대로 된 연애도 해본 적 없잖아. 혜린이 기다리는 거 아니었어? 이제 혜린이가 너 때문에 일부러 병원까지 옮겨 왔는데 대체 왜 그리 무심하게 구는 거야!”온승준은 여전히 평정심을 유지하며 말했다.“저는 한 번도 혜린이를 기다린 적 없어요. 학업과 미래를 위해 헤어졌고 그 이후 연애를 하지 않았던 건 단지 시간이 없었거나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그럼 왜 혜린이가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되자마자 지연이랑 갑작스럽게 결혼한 거야!”온승준은 조수연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제가 지연이랑 결혼한 게 유혜린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기 때문이라고요? 어디서 들으신 거예요?”조수연도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그때 혜린이가 인스타에 글 올렸다고 내가 말했잖아. 너 그 이야기를 듣고 며칠 뒤에 바로 지연이랑 혼인신고 했어.”온승준은 조수연의 말이 황당했다.조수연은 늘 집안일이나 주변 이야기를 떠들기 좋아했다.그는 대부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생각에 몰두하곤 했다.그로 인해 조수연이 이런 오해를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그동안 내가 너한테 소개팅도 몇 번이나 주선했지만 다 마음에 안 든다고 했잖아. 박지연은 집안도 별로고 직장도 별로고 학력도 평범하잖아.

  • 어게인, 비긴   제616화

    이혼이라는 사건조차 온승준의 일상을 어지럽히지 못했다. 그는 이혼 이후에도 평온한 일상을 유지해 왔다.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 출근하고 퇴근 후에는 정해진 시간에 휴식을 취했다하지만 전날 조수연과의 말다툼에서 박지연을 좋아해서 결혼했다고 소리쳤을 때부터 그의 내면은 흔들리기 시작했다.마치 무언가가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와 거세게 외치는 것 같았다.추첨 결과 박지연이 속한 병원이 첫 번째 경기에서 상대적으로 강한 병원 팀과 맞붙게 되었다.경기장에서 박지연은 땀을 흘리며 팀원들과 완벽한 호흡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한 잘생긴 남성과의 호흡은 남다른 수준이었다.득점할 때마다 두 사람은 환호하며 하이 파이브로 서로를 격려했다.온승준은 처음으로 이렇게 자신감 넘치고 빛나는 박지연의 모습을 보았다.그에게 박지연은 경기장에서 제일 빛나는 존재였고 어쩌면 유일한 존재였을 지도 몰랐다.30분 후 박지연이 속한 팀은 근소한 점수 차로 첫 경기를 승리로 마쳤다.고은서가 환호하며 박지연에게 달려갔다.“지연이 최고! 지연이가 제일 멋있어!”박지연이 땀에 젖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활짝 웃었다.“그럼! 내가 누군데!”“지연아, 땀 닦아.”이때 육현석이 다가와 깨끗한 수건을 건네주었다.박지연이 땀을 닦을 때 육현석이 또 물 한 병을 따 그녀에게 건네주었다.“목마르지? 좀 마셔. 금방 운동했으니 너무 급하게 마시지는 말고.”“고마워. 하지만 내가 간호사라는 건 잊지 마. 그런 상식 정도는 있다고.”박지연이 웃으며 답했다.육현석도 미소를 지으며 장난스럽게 답했다.“죄송합니다. 수간호사님. 괜히 아는 척했네요.”“음, 태도가 좋네요. 이번만은 봐 드릴게요.”박지연은 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그런 그녀를 보며 고은서는 문득 육현석에게 약간의 고마움을 느꼈다.그가 이렇게 박지연을 챙기는 모습은 너무도 진실되어 보였다.“지연아.”바로 그때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뒤를 돌아본 박지연은 뜻밖의 인물을 발견했다.그곳에는 온승

  • 어게인, 비긴   제617화

    박지연이 고개를 들어 온승준을 바라보았다“아직 용건 있나?”박지연의 표정은 마치 낯선 사람을 대하듯이 담담했다.예전 그를 볼 때의 설렘과 기대의 빛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온승준은 가슴이 답답했다.“며칠 전에 손을 다쳐서 휴가 중인데 시간 괜찮으면 같이 도성에 있는 극장에 가서 오페라 볼래?”박지연은 다친 이유는 묻지도 않고 곧장 답했다.“바빠서 안 될 것 같아.”온승준은 평소라면 이런 상황에서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박지연이 그냥 가버리는 걸 두고 볼 수 없어 말을 덧붙였다.“네가 좋아하는 라 트라비아타인데. 배우도 유명한 국가급 아티스트고...”“온 선생님.”박지연이 그의 말을 끊었다.“사실 난 오페라를 좋아하지 않아. 같이 오페라를 보며 관심 있는 척했던 건 당신에게 맞춰주기 위해서였어. 극장에서 몇 시간 앉아 있는 것보다 등산을 가거나 맛있는 걸 먹으러 가는 게 더 좋아. 그러니 당신 어머님이 하신 말씀도 맞아. 나는 취미도 거칠고 천박한 사람이니 당신은 당신과 격이 잘 맞는 공주님을 찾아서 함께 오페라를 즐겨.”말을 마친 박지연은 더 이상 온승준을 신경 쓰지 않고 육현석과 함께 병원 배구팀 쪽으로 걸어갔다.온승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녀가 떠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은서는 멍하니 서 있는 온승준의 모습을 보고 속이 다 시원했다.‘평소면 관심도 없을 배구 경기를 보러 온 걸 보니 이혼을 후회하기 시작했나 보네. 흥! 쭉 후회하라지! 전에 지연이 얼마나 아껴주고 잘해줬는데. 자기가 화나도 먼저 온승준을 생각해 줬던 사람인데 있을 때 잘했어야지. 이제 지연이의 가치를 깨닫다니 늦었어! 근데 남자들은 다 그런가? 잃고 나서야 소중한 걸 알지. 곽승재도, 온승준도 다 똑같아.’친선 경기는 반나절이나 이어졌고 박지연이 속한 팀이 우승을 차지했다.병원은 명예와 상을 받았고 박지연과 다른 참가자들을 병원에서부터 상금을 받았다.그날 저녁 고은서는 박지연과 육현석 등과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치고 라

  • 어게인, 비긴   제618화

    박지연이 답했다.“그런 셈이지. 부장님이 무심코 흘린 말이긴 한데 특별한 일 없으면 승진할 것 같아.”“정말 축하해! 이혼도 하고 승진도 하고 겹경사네! 정말 부러워.”박지연이 장난스럽게 말했다.“부러워할 필요 없어. 너도 원하기만 하면 누구보다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잖아. 미래 투자은행 대표 사모님으로 말이야.”고은서는 말문이 막혔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라이트문 아파트에 도착했다.주차한 고은서는 아파트 아래에 서 있는 곽승재를 발견했다.그는 현관 입구 쪽 가로등 아래 서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가로등 불빛이 그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의심할 필요도 없이 곽승재 절친한 친구 육현석이 우리 일정을 알려줬을 거야.”박지연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아까 나한테 온승준을 마주친 소감을 물었지? 이제는 네 소감을 얘기해줄 차례네.”고은서는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나도 너랑 같아. 다시 진흙탕에 내 발로 들어가는 일은 없을 거야.”“그럼 난 먼저 올라갈게. 얘기하고 와.”박지연은 곽승재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대신하고 집으로 향했다.곽승재를 전화를 끊고 긴 다리로 고은서를 향해 걸어갔다.“무슨 일이야?”고은서가 물었다.“아버지가 귀국하시고 백유미도 경찰서에서 나왔어.”고은서가 무심한 목소리로 답했다.“그래.”곽승재는 고은서의 평온한 얼굴을 보며 그녀가 화가 난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웠다.그녀를 만나러 오기 전 곽승재는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그는 고은서에게 지금까지 그녀가 겪어왔던 슬픔과 아픔을 알게 되었다고 그에 응하는 보상을 하겠다고 말하려고 했다.또한 백승엽에게 의사를 붙여준 건 백유미에게 진 은혜 때문이라고 해명하고 싶었다.하지만 아무런 동요도 없는 고은서를 바라보자 곽승재는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몰랐다.결국 그는 간신히 한 마디를 뱉었다.“은서야, 미안해.”고은서는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말했다.“백유미를 다시 그룹에 돌아오게 하고 백승엽에게 의사를 붙여준

  • 어게인, 비긴   제619화

    고은서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려고 했지만 곽승재의 낮은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10살 때 원한을 품은 도우미가 내게 약을 먹인 후 물속에 밀어 넣은 일이 있었어. 그때 백유미가 나를 구해줬어.”“알아. 널 이렇게 오래 좋아했는데 그런 일도 몰랐겠어?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무슨 일이든 이유와 근거가 확실하니까 굳이 상관없는 사람한테 해명할 필요가 없다고.”고은서가 비웃듯 말했다.“넌 상관없는 사람이 아니잖아.”“그만해. 곽승재. 네가 이러는 거 정말 역겨워.”고은서는 다시 한번 그의 말을 끊었다.고은서의 입에서 역겹다는 말이 나오자 곽승재는 상처받은 듯 해 보였고 잘생긴 그의 얼굴에는 은근한 분노가 드러났다.고은서는 곽승재가 늘 우월한 위치에서 칭송받는 데 익숙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 누구도 대놓고 역겹다는 말을 한 적은 없을 것이다.하지만 고은서는 곽승재의 이런 행동이 너무나 싫었다.곽승재는 모든 일을 자신에게 맡기라고 하며 자신이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되찾아주겠다고 장담했다.하지만 뒤에서 그는 백승엽에게 의사를 찾아주고 백유미가 판주 투자은행으로 복귀하는 것을 용인했다.모든 과정에 곽현수가 개입했다는 걸 알지만 곽승재가 묵인한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었다.고은서는 곽승재의 표정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그의 손을 피하며 단호히 걸음을 옮겼다....월요일 아침 고은서가 미래 투자은행에 도착했다.송민아는 그녀에게 두 집안 부모님에게 약혼을 깨겠다고 알린 일을 전했다.“부모님들도 동의하신대?”“우리 부모님은 처음에 반대하셨지. 그런데 내가 울고 떼쓰며 애교부리니까 어쩔 수 없이 허락하셨어. 하지만 아저씨는 반대하시며 오빠를 불러 혼내셨어. 심하게 꾸짖으며 나한테 다시는 속상하게 만들지 않겠다고 사과하라고 하셨지. 하지만 오빠는 굴하지 않고 처음부터 약혼을 받아들인 적도 없고 지금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고.”말하며 씁쓸함을 드러낸 송민아는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나도 아저씨한테 더 이상 오빠

  • 어게인, 비긴   제620화

    고은서는 단호히 거절했다.“됐어. 듣고 싶지 않은 것 같아.”“고은서, 이번에는 가야 할 걸?”민시후가 말을 이었다.“송민아가 얘기했을 텐데, 지금 아버지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믿지 않아. 그래서 형을 보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확인해 보라고 했어.”“내가 안 가면?”“민씨 가문 남자는 고집이 세다는 단점이 있지.”민시후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너한테 집착하는 것처럼 네가 가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널 만나러 오겠지.”고은서는 말문이 막혔다.“걱정하지 마. 내가 있는 이상 널 곤란하게 하는 일은 없을 거야.”민시후가 위로했지만 고은서는 그에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네 연극에 어울려줄 생각 없어. 네 형이 물어보면 나는 너한테 관심 없다고 바로 얘기할 거야.”민시후가 웃으며 답했다.“네가 원하는 대로 해.”“그럼 먼저 임철원 쪽에서 알아낸 정보를 얘기해 봐.”민시후가 혀를 차며 답했다.“듣고 싶지 않다며?”고은서가 화를 내며 말했다.“그럼 밥 먹는 거 포기해! 네 가족이 오든 말든 상관하지 않을 거야!”“농담 한 번 못 하겠네.”민시후가 다시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임철원이 해외로 도망칠 수 있었던 게 누구 도움인지 알아?”고은서가 고개를 저었다.“맞혀 봐.”민시후는 다리를 탁자 위에 올리고 일부러 뜸을 들였다.고은서는 참다못해 그의 다리를 발로 찼다.“말할 거면 한 번에 제대로 말해.”“고은서, 애정이 있어야 욕하고 화낸다던데 혹시 나 좋아해? 곽현수야.”고은서가 다시 차기 전에 민시후가 먼저 말했다.그 말을 듣고 고은서는 미간을 찌푸렸다.“곽현수가 왜 임철원이랑 엮인 거지? 왜 도와준 거야?”고은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민시후가 답했다.“이 일에서 백유미를 빼놓을 수는 없지. 백유미를 해성으로 돌려보낸 사람도 곽현수야.”고은서는 그 말을 듣고 순간 멍해졌다.‘백유미의 배후가 곽현수라고? 그때 민시후와의 스캔들도 곽현수가 백유미를 도와 퍼뜨렸던 거네! 임

  • 어게인, 비긴   제621화

    민시후는 다시 등을 기대고 다리를 꼰 자세로 앉으며 말했다.“십중팔구 알고 있을 거야. 알면 어때. 자기 눈이 삐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지. 투자자라는 사람이 그렇게 큰 실수를 한 건 본인이 알아서 책임져야지.”고은서는 잠시 침묵했다.“네가 백씨 가문에 보낸 그 원지훈이라는 사람, 최근에 큰 거래를 성사했던데 네 계획이야?”민시후가 태연히 물었다.고은서는 굳이 숨기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나는 받은 대로 돌려주는 것뿐이야.”“받은 대로 돌려주는 고은서라니. 정말 내 맘에 쏙 들어.”민시후가 장난스럽게 말을 이었다.“걱정하지 마. 내가 확실히 도와줄 테니까.”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온 고은서는 원지훈에게 전화를 걸어 최근 백씨 가문 산업에 이상이 없는지 물었다.백유미가 민시후까지 조사했다면 분명 고은서가 이 사건에 연관되어 있음을 알았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원지훈까지 의심할 가능성도 있었다.이전에 원지훈과 가깝게 지내고 거래 내역까지 있으니 백유미의 눈에 띌 가능성이 높았다.백유미와 원지훈이 서로 물고 뜯는 상황을 고은서는 즐기고 있었다.어차피 원지훈과의 협력은 이미 목적을 달성했다.백유미가 원지훈의 배신을 알게 된다면 반드시 그를 처단하려 할 것이고 원지훈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할 것이다.여기에 아들 바보인 원지훈의 어머니 범가온까지 가세하면 백유미의 상황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그들끼리 내분이 일어나면 고은서는 그 틈을 타서 그들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세 사람 중 좋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이전 고은서가 원지훈에게 약속했던 건 단지 그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미끼였을 뿐 그녀는 원지훈과 범가온을 그냥 둘 생각이 없었다.그녀의 질문에 원지훈의 목소리는 다소 떨리고 있었다.“특별한 움직임은 없었어요. 새로운 거라도 발견한 거예요?”‘전생의 원지훈은 냉혹하고 잔인한 인물이었는데 왜 갑자기 겁먹은 듯한 반응을 보이는 거지? 뭘 두려워하고 있지?’고은서는 의아했지만 민시후가 알아낸 사실은 말하

  • 어게인, 비긴   제622화

    다행히 이 사건이 폭로된 후 보복이 두려웠던 그 여자는 남자 친구와 함께 해성을 떠났기에 백유미는 그들에게 닿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그 여자가 퇴사하고 해성을 떠났다고 해서 내가 못 찾을 거로 생각하지 마. 네가 이 일과 연관된 걸 내가 알게 되면 너랑 네 엄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백유미는 협박을 마치고는 원지훈의 가슴을 걷어차고 그제야 사무실 의자에 앉았다.이미 심하게 맞아 정신이 없던 원지훈은 백유미의 이어진 발길질에 피를 토하고 말았다.범가온은 계속 몸부림치며 신음하다 백유미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구했다.백유미는 물티슈로 손가락을 닦으며 일말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원지훈은 피를 토하고 나서 애원하기 시작했다.“누나, 제가 잠시 돈에 눈이 멀었어요. 돈 없는 가난한 삶을 더는 살고 싶지 않아서 고은서 말을 들었던 거예요. 앞으로는 다시는 이런 짓 안 할게요. 누나한테 충성하며 살 테니 제발 한 번만 살려주세요.”범가온도 원지훈과 함께 울며 애원했다.백유미는 그들 모자가 피가 날 정도로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빌도록 내버려뒀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백유미는 사무실에 있던 덩치 큰 남자들에게 나가라고 했다.“고은서와 손잡고 있었다면 고은혜 일도 거짓이었던 거야?”백유미가 물었다.원지훈은 더 이상 숨길 생각을 하지도 못하고 피눈물을 흘리며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그녀에게 건넨 사진과 동영상은 모두 합성된 것이었으며 고은서가 그날 밤 모든 영상을 갖고 있다고 했다.만약 고은혜의 부적절한 영상이 유출되면 고은서는 이를 증거로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백유미의 얼굴은 분노로 차갑게 굳어졌다.그녀는 자신이 길들인 개가 고은서가 던진 유혹에 넘어가 자신을 물어뜯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은서 대단하네. 원지훈을 이용해서 나를 함정에 빠트리다니.’며칠 전 그녀는 전자 프로젝트가 민시후의 함정이었음을 알아냈다.민시후와 고은서의 관계를 떠올리자 백유미는 이 모든 것이 고은서가 자신을 위해 꾸민 함정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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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928화

    고은서는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남자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혹시 누군가 들어왔던 것은 아닐까 싶어 호텔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확인했지만 직원은 그녀의 객실 문은 밤새 열리지 않았다고 확답했다.‘곽승재는 취한 상태에서 약까지 먹었으니 이 방에 올 리가 없지. 그럼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물에다 약을 너무 많이 타서 약효가 강해서 그런 꿈을 꾼 건가? 목에 남은 자국은 병 자국에 눌린 흔적일까? 사지의 뻐근함은 단순한 숙취의 후유증?’충분히 말이 되는 설명이긴 했지만 고은서는 여전히 기분이 찝찝했다.고은서는 기억하지 못하는 경험이 한 번 있었지만 그때도 몸의 감각은 확실했다.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정말 꿈이라고? 아니면... 그 남자는 곽승재였을까? 어떻게 이 방에 들어온 거지? 갈 때는 어떻게 나가고? 줄곧 날 잡고 싶다고 말했으니 우리 사이에 관계가 있었다면 계속 남아있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나?’머리가 복잡해진 고은서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그때 갑자기 방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순간적으로 자신의 계획을 떠올린 고은서는 재빨리 옷을 걸쳐 입고 문 쪽으로 다가가 밖의 상황을 살폈다.아니나 다를까 복도에는 수많은 연예부 기자가 곽승재의 객실 앞을 둘러싸고 있었다.그들은 사진을 찍고 질문을 퍼부으며 발 디딜 틈 없이 몰려들고 있었다.주민기가 경호원들과 함께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끈질긴 기자들은 계속해서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었다.그 혼란 속에서 어두운 표정을 한 곽승재가 고은서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그가 안쪽을 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곽승재는 이미 어젯밤 일이 그녀의 계획이었음을 눈치챘을 것이다.그가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고은서는 마음을 다잡으며 방으로 돌아와 핸드폰을 꺼내 곽현수에게 문자를 보냈다.[원하시는 대로 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다른 사람은 끌어들이지 마세요.]답장은 오지 않았다.핸드폰을 내려놓으며 어떻게 곽승재를 상대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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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은서는 지금까지 극도의 긴장 속에 있었기에 자신의 상태를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긴장이 풀리고 나니 머리가 어지럽고 입안이 바짝 마르며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는 감각이 몰려왔다.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고은서는 휘청거리며 냉장고로 다가가 차가운 물 한 병을 꺼낸 뒤 그대로 침대 위로 쓰러지듯 몸을 던졌다.‘자자. 자면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 없고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모든 폭풍은 내일 다시 맞서면 돼.’자신을 그렇게 세뇌하듯 다독인 고은서는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하지만 꿈속에서도 그녀는 더위에 시달렸다.그 뜨거움은 단순한 체온 상승이 아닌 몸속 혈액에서부터 느껴지는 타오르는 듯한 열기였다.에어컨을 가장 낮은 온도로 설정하고 심지어 차가운 물병을 목에 대어 보아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피부의 모든 세포가 시원한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그렇게 혼란스러운 열기 속에서 고은서는 갑자기 무언가 뜨겁고 묵직한 존재가 자신의 몸을 덮치는 것을 느꼈다.무게감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가왔고 순간적으로 그녀의 호흡을 앗아갔다.남자의 낮고 거친 숨소리가 술 냄새와 뒤섞여 코끝을 스쳤다.그리고 익숙한 남성의 향기가 그녀를 감쌌다.그 향기는 고은서의 경계를 조금씩 허물기 시작했다.호흡이 교차하고 서로의 몸이 닿자 고은서는 더 뜨거워졌고 마음속에서부터 강렬한 욕망이 치솟았다.그녀는 지금 꿈속인지 현실인지 분별할 여유도 정력도 없었다.약과 술의 작용하에 고은서는 몸이 반응하는 대로 손을 뻗었다.객실 안 에어컨 바람이 천천히 방안을 맴돌았다.낮은 온도로 설정된 냉기 속에서도 방 안의 온도는 전혀 내려가지 않았다.은은한 조명이 커다란 침대 위에서 단단히 엉켜 있는 두 개의 실루엣을 비췄다.남자는 여자의 손을 잡아 머리 위로 올리고 열기에 가득 찬 입맞춤을 그녀의 입술에서부터 목으로 옮겨갔다.방 안은 거친 숨소리와 함께 은은한 향기로 가득 찼다.그 향기는 마치 봄의 미풍에 섞인 향처럼 감각을 부드럽게 자극했다.밤은

  • 어게인, 비긴   제926화

    고은서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곽승재를 한 번 힐끔 바라본 뒤 재빨리 가방에서 숨겨둔 약을 꺼내어 물에 녹였다.긴장감 속에서 약은 빠르게 물속에 녹아들었고 고은서는 조심스럽게 그 물을 침대 옆으로 가져갔다.큰 키를 가진 곽승재가 침대에 평평히 누워 있었다.그의 검은 눈동자는 굳게 감겨 있었고 술기운이 올라 붉어진 얼굴은 방 안의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평소의 날카로운 인상과는 다르게 한층 부드러워 보였다.고은서가 조심스럽게 곽승재의 뺨을 건드리자 곽승재는 비몽사몽 눈을 뜨며 붉어진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은서야...”낮고 거친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그 울림은 그대로 고은서의 귓속을 파고들었다.고은서는 애써 침착한 척하며 말했다.“술 많이 마셔서 목마르지? 물 좀 마셔.”곽승재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은서야, 지금 나 걱정해 주는 거야?”고은서는 술에 취한 곽승재가 얼마나 고집스러워질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괜히 반박하는 것보다는 빨리 물을 마시게 하고 자리를 뜨는 것이 최선이었다.“안 마실 거야?”“마실 거야.”곽승재는 요구를 덧붙였다.“근데 네가 직접 먹여 줘.”고은서는 긴장하며 최대한 빨리 물을 마시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그녀는 곽승재를 반쯤 일으켜 세운 뒤 조심스레 컵을 그의 입가로 가져갔다.하지만 곽승재는 한 모금 마시더니 뜨겁다며 굳이 고은서도 마셔보라고 했다.술에 취한 채 그녀가 안 마시면 자신도 안 마시겠다는 완강한 태도에 고은서는 순간 물을 그대로 그의 얼굴에 부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그녀는 꾹 참고 단순히 상황을 빨리 정리하기 위해서 대충 물을 두 모금 마신 뒤 컵을 다시 그에게 건넸다.“이제 됐지?”곽승재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의 손을 감싸며 남은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그리고 그는 이전의 차가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커다란 늑대처럼 그녀의 팔에 머리를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은서야, 나 등 아파. 약 좀 발라줘.”고은서는 빨리 방을 나가고 싶었지만 이렇게 계

  • 어게인, 비긴   제925화

    고국성은 이내 다가가 그와 악수하면서 인사했고 단은숙도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는데 유독 고은혜만은 입을 꾹 다문 채 예의 바르게 웃어 보이기만 했다.곽승재는 그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눈 후 눈길을 고은서 쪽으로 돌렸다.그는 무언갈 억누르고 있는 듯한 복잡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승재야, 네 자리 남겨뒀으니까 얼른 앉아.”고국성은 고은서의 옆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8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여서 앉을 수 있는 곳이 남아돌았는데 고국성은 하 곽승재를 고은서 옆에 앉히려고 했는데 두 사람이 관계를 회복했으면 하는 속셈이 너무 선명했다.아무튼 고은서가 먼저 밥 먹자고 말을 꺼낸 거였기에 그가 어디에 앉든 그녀는 별 관심이 없었다.곽승재는 덤덤한 표정을 한 채 고은서 옆에 앉았다.너무 가까운 탓인지 그의 특유한 설송향이 그녀의 코끝을 간지럽혔다.이어 차를 따라주는 웨이터가 두 사람을 향해 걸어왔다.고은서는 이 기회에 찻잔을 대신 들어주면서 슬쩍 옆으로 옮겨갈 생각이었다.그러나 그녀가 손을 뻗는 순간 곽승재도 손을 뻗으면서 그녀의 손을 꽉 쥐었다.그의 체온이 피부결을 통해 뜨겁게 느껴지면서 고은서는 손을 확 거두어들였다.반면 곽승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찻잔을 웨이터에게 건네주었다.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고은혜는 두 사람이 행여나 어색해할까 봐 다급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음식이 다 오른 후 고국성은 자신이 소장해 둔 진귀한 술을 가져오라고 웨이터를 시켰다.고은서는 레스토랑에 오기 전부터 고국성한테 밥만 먹으면 어색할 수도 있으니 술이라도 권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암시했었다.아니나 다를까 고국성은 별 의심 없이 그녀의 말대로 행동했다.“승재야, 평소에 너무 바빠서 별로 모일 시간도 없었는데 이 좋은 기회에 우리 실컷 마셔보자고.”고국성은 웨이터를 다시 내보내고 직접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기쁜 날인데 다 같이 마셔야죠.”곽승재가 제안했다.고국성도 그의 말을 반박하지 않았다.“그래. 가족끼리 떠들썩하게 재밌게 보내

  • 어게인, 비긴   제924화

    레스토랑을 예약한 후 고은서는 고국성 집에 들렀다.고국성은 소파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고은혜는 상을 찌푸리고 폰을 놀고 있었다.집안 분위기는 여전히 싸했다.고은혜는 고은서를 보자마자 그녀 옆으로 다급히 걸어오며 말했다.“언니, 엄마가 방문을 잠그고 계속 나오지 않으면서 아빠랑 이혼한다고 변호사까지 찾았어.”기자 회견 일로 많은 사람들이 고국성이 오미나와 부정당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의 명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동시에 단은숙은 오미나 배 속에 있는 아이 때문에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아이가 생겼다는 건 두 사람이 정말 관계를 맺었다는 걸 의미했고 이런 일은 그 누구도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고은서는 고은혜의 어깨를 토닥여 주고는 고국성 앞으로 다가가 일은 자신이 해결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오미나가 아이를 없애겠대?”고국성이 고개를 번쩍 쳐들며 물었다.“동의할 거예요.”고은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정말이야? 엄마한테 이 소식을 알려줘야지.”그녀의 말을 들은 고은혜는 펄쩍 뛰면서 좋아했다.그러나 고국성은 낙관적인 고은혜와 달리 고은서를 빤히 바라보면서 물었다.“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아직 동의하지 않았단 얘기야?”고은서는 고국성 옆에 앉으면서 차근차근 설명했다.“삼촌, MQ를 관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저도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MQ를 더 크게 이끌고 나가려거든 다른 사람한테 너무 의지해서도 안 좋아요. 그러니까 이후부터 곽승재한테 민폐 끼치는 일은 그만 하세요. 이 또한 제가 이번 일을 처리해주는 대신 삼촌이 들어줘야 할 조건이기도 해요.”고은서가 엄숙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말했다.고국성은 약간 어리둥절했다.‘내가 곽승재를 찾아간 건 어떻게 안 거지? 분명히 유승준도 모르게 몰래 찾아갔는데.’그는 결연한 태도의 고은서를 보면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사업계에서 곽승재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우리를 도와주는 게 도리어 좋은 일이 아니

  • 어게인, 비긴   제923화

    발신자가 곽승재라는 걸 확인한 고은서는 받을지 말지 약간 망설여졌다.‘전에 다툰데다가 삼촌 일 때문에 연루까지 받았고 심지어 그날 날 구하다가 다치기까지 했는데 하필 난 또 곽현수가 요구한 일을 완성해야 하고. 대체 이후로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거지?’“은서야, 누구 전화야? 왜 안 받는 거야?”옆에 있던 육현석이 말했다.고은서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잠시 나가 전화 받고 올게요.”그녀는 조용한 곳에 가서야 곽승재의 전화를 받았다.“곽승재.”“무슨 일이야?”곽승재의 목소리에서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육현석이 며칠 동안 당신한테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하던데 무슨 일 있어?”“지금 내가 걱정되어서 날 찾은 거야?”곽승재가 덤덤하게 되물었다.고은서는 멈칫하다가 화제를 바꾸었다.“민기 씨한테 당신이 등을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지금은 다 나았어?”“낫든 안 낫든 넌 아무런 관심이 없잖아.”“...”고은서는 서로 동문서답하는 대화 모드가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날 은혜가 당신한테 연락해 도움을 청한 걸 모르고 있었어. 오해하고 듣기 싫은 소리 해서 미안해. 이후로 당신한테 민페를 끼치는 일은 삼가라고 가족들한테 말해 둘게.”전화너머에서 곽승재가 콧방귀를 끼는 소리가 들려왔다.“할 말 다했어?”고은서는 곽승재가 아직도 그날 일로 화가 풀리지 않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평소 같으면 화를 내건 말건 전화를 뚝 끊어버렸을 텐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은혜가 그날 일로 자책하면서 삼촌이랑 얘기 해봤는데 당신한테 사과할 겸 같이 밥 한 끼 먹자고 하는데 언제 시간 돼?”고은서가 고민끝에 말했다.“또 누가 있는데?”‘누가 더 있겠어. 알면서 묻기는.’“나랑 삼촌 가족만 있어.”곽승재는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덤덤하게 답했다.“주민기랑 스케줄 확인해. 시간나는 대로 갈 테니까.”‘이 남자가 정말. 어디서 꼰대 짓이야.’“조금이따 민기 씨한테 얘기해볼게.”고은서가 전화를 끊으려고 할 때 곽승재가 갑자기 입을

  • 어게인, 비긴   제922화

    한 비서는 그제서야 승진하게 된 이유가 자신 능력 덕분이 아니라 누군가가 일부러 안배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그러나 계약까지 체결한 탓에 거액의 보상금을 내지 않고는 사직을 할 수가 없었다.위약금보다 더 중요한 건 이렇게 GS그룹을 떠나게 되면 외부 사람들이 그녀가 곽승재를 건드렸다고 오해하면서 해성에서 일자리 하나도 못 찾게 된다는 것이었다.“육 도련님, 고은서 씨, 백유미가 현재 매우 폭력적이고 불안정하다고 하는데 저 그곳에 갔다가 죽을지도 몰라요. 다가가는 것조차 두렵다고요.”한 비서가 울부짖었다.육현석은 곽승재 T국에서 있었던 일로 백유미를 샅샅이 조사해보았다는 걸 깨달았다.‘아마 백유미랑 한 비서 사이가 범상치 않다는 걸 발견하고 이런 방식으로 벌을 주려는 거겠지.’“사직하려거든 GS그룹 내부 문제야. 내가 함부로 끼어들 수 있는 일이 아니야.”육현석이 단호하게 거절했다.한 비서는 이내 고은서의 다리를 잡고 빌었다.“고은서 씨,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저는 그저 정보를 몇 번 전달했을 뿐이에요. 다른 사람을 해칠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요. 전에 백유미를 돌보던 사람이 죽었다고 들었는데 저는 죽기 싫어요...”고은서는 덜덜 떨고 한 비서를 보면서 그제야 그녀가 겁에 질려하는 이유를 깨달았다.그러나 그녀는 GS그룹의 일에 참여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하지만 마침 백유미가 진짜 정신병을 앓고 있는 건지 궁금하기도 했고 한 비서를 보내면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도 있었다.“이익을 위해 우리를 해치려는 사람을 돕는 것도 모자라 피해자 코스플레이를 하면서 도와달라고 비는게 우습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저는 저를 해치려한 사람을 쉽게 용서해줄 만큼 아량이 넓은 사람이 아니에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저에게 더 절실하게 와닿거든요. 그러니 제 도움을 받으려거든 제 요구부터 들어줘야 해요.”고은서는 희망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한 비서에게 자신의 부탁을 말했다.육현석도 현장에 있었지만 그녀는 그를 피

  • 어게인, 비긴   제921화

    육현석의 말을 들은 고은서도 어리둥절해졌다.만약 간단한 스케줄만 알려줬다면 이정도로 겁에 질려 있을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더 큰 일과 엮여 있는 건가?’아니나 다를까 육현석의 엄숙한 모습을 본 한 비서는 얼굴이 방금전보다 더 창백해졌다.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한 번 커피 가져다 드릴 때 곽 대표님한테 고은서 씨 친구분과 백유미 사이의 조사해보겠다고 얘기하는 걸 듣고 그걸 백유미한테 알렸어요...”육현석은 그제야 곽승재가 자신더러 성아연과 백유미 사이에 관해 조사해보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는 걸 떠올렸다.그러나 당시 아무리 조사해 보아도 두 사람은 몇 번 만나고 연락한 것 외에는 경제적 래왕이라곤 존재하지 않았다.그 일로 백유미가 산장에서 곽승재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약을 잘못 복용한 거라고 의심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곽승재로부터 백유미가 자발적으로 나서서 고은서의 혐의를 씻어줬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육현석은 백유미가 고은서를 해치려거든 왜 고은서를 대신해 진상을 밝힌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그러니까 백유미가 한 비서를 통해 내가 자신을 조사하고 있다는 걸 미리 알고 그런 대책을 세웠다는 거야?’고은서도 문뜩 곽승재가 육현석한테 백유미와 성아연 두 사람 사이에 관해 조사하라고 시켰다면서 자신도 백유미를 찾아가 따졌다고 했던 게 떠올랐다.그런데 그녀는 당시 곽승재가 이 일을 얼버무리고 넘어가기 위해 그러는 것이라고 오해하면서 그를 향해 비아냥거렸었다.‘지금 다시 돌이켜보면 나랑 곽승재 사이의 모순이 거의 다 백유미 때문에 생긴 거네.’백유미가 현재 정신병원에 갇혀있다고 한들 고은서는 아직도 생각하면 할 수록 공포감이 더 짙어지는 것 같았다.‘정말 악독한 여자야.’한 비서는 계속 자신이 했던 행위를 후회한다면서 사과하며 용서를 빌었다.육현석은 이마가 빨개진 한 비서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이익을 탐내는 동시에 그 대가도 따르는 법이야. 백유미한테 몰래 소식을 전달한 건 괘씸하지만 그렇다고 죽

  • 어게인, 비긴   제920화

    육현석이 입을 열기도 전에 여자가 털썩하고 두 사람 앞에 무릎을 꿇었다.“육 도련님, 저예요. 제발 경호우너을 부르지 말아 주세요.”“한 비서?”고은서가 아직도 겁에 질려 있을 때 육현석은 그 여자를 알아 보았다.삼십 대 좌우로 보였는데 GS그룹의 검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비서들처럼 자랑스럽고 우월한 면을 뽐내는 대신 공포에 질린 듯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대체 무슨 일인데 주차장에 숨어 있는 거야?”육현석이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하다는 듯 물었다.그의 말을 들은 한 비서는 본능적으로 몸서리를 치면서 갑자기 그를 향해 절을 하기 시작했다.“육 도련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죄를 지었는데 용서를 빌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어요...”주차한 곳 뒤에는 나무들이 주지어 있었고 차들이 빼곡히 들어선 탓에 사람이 숨어있는 걸 발견하기 쉽지 않았다.한 비서는 무릎을 꿇은 채 끊임없이 육현석을 향해 사과했다.그녀는 육현석의 차를 알고 있었고 또 그가 이곳으로 오는 걸 알고 일부러 차 뒤에 숨어 그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다.“이러지 말고 일어나서 말해.”“아니요. 그냥 꿇고 말하겠습니다.”한 비서는 눈물 범벅이 된 얼굴을 들고 말했다.그녀는 방금전에 머리를 땅에 박으며 절을 한 탓에 이마가 빨갛게 부어올랐고 공포 질린 듯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사람들이 오가는 곳인데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아니면 일부러 보여주기 식으로 연기하려는 거야?”육현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아니요. 저는 그저 사과하고 용서를 빌고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한 비서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사과하려거든 조용한 곳에 가서 무슨 일인지 똑바로 말해.”육현석이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한 비서는 더는 거절하지 않고 전전긍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이를 본 고은서가 입을 열었다.“현석 씨, 일 봐요. 저는 혼자 차 불러서 가면 돼요.”“안 돼요. 고은서 씨 용서도 받아야 하니까 같이 가요.”육현석이 말을 꺼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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