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212화

Author: 류한나
이곳 객실의 인테이러는 한옥의 독특한 분위기를 창출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전통과 현대적인 요소를 혼합한 한옥 스타일로, 가구와 소품들이 현대적임에도 원목으로 나름의 톤을 맞추어 잘 어울렸다.

고은서의 방은 박지연과 같은 층이 아니었다.

그녀가 방문을 열어보니 넓고 큰 침대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정갈하고 흰 이불 위에 붉은 장미꽃이 놓여 있었고, 꽃잎도 많이 뿌려져 있어 분위기를 한 층 더 살려 주었다. 또 여러 가지 쌍으로 된 장식품들이 분위기를 은근히 애매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작은 여행 가방이 옷장 옆에 놓여 있었고 고은서는 가방을 열어보았다.

안에는 그녀의 수영복, 잠옷, 기타 갈아입을 옷들 등이 있었고, 스킨케어 제품과 화장품도 있었다.

확실히 이미숙의 손길이 느껴졌다.

‘다들 내 일정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모르는 건가?’

고은서는 수영복을 꺼내 입었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며 약간 어색하게 느꼈다.

가슴 부분이 너무 많이 드러나지 않나 싶어서였다.

이 수영복은 원래 곽승재와 함께 온천에 가려고 사왔던 것이다.

곽승재가 냉정하게 거절한 뒤 그녀는 수영복을 넣어두었고 단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었다.

그냥 보기엔 꽤 평범한 스타일이었지만 막상 입어보니 너무 섹시한 핏이었다.

그때 외부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고은서는 박지연이라고 생각되어 문을 열며 물었다.

“지연아, 이 수영복 좀 너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고은서는 멈췄다.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박지연이 아니라 훤칠하고 잘생긴 곽승재였다.

그는 오늘 캐주얼하게 흰색 폴로 셔츠와 검은색 슬랙스 바지를 입고 있어서 평소의 딱딱함은 사라지고 한결 느긋하고 편해진 느낌이었다.

‘이 시간에 GS그룹 직원들과 온천에 가거나 차를 마시고 있어야 하는데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곽승재의 검은 눈동자는 고은서를 응시하고 있었다.

몸에 타이트하게 달라붙는 수영복 디자인이 그녀의 허리를 한 손으로 잡을 수 있을 만큼 감싸고 있었다.

검은 천 아래 그녀의 가는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어게인, 비긴   제213화

    전처럼 다시 차가워진 곽승재의 목소리가 들렸다.“이곳 웨이터분더러 다른 수영복을 가져오라고 했어. 지금 문 열고 가져갈래? 아니면 그냥 문 옆에 놔줘?” “그냥 문 옆에 두고 넌 나가!”고은서가 대답했다.곽승재가 떠나려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복도에서 기다릴게.”그는 이렇게 말한 후 수영복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내려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문 닫는 소리가 들렸다.고은서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새 수영복을 꺼내 갈아입었다. 이번 수영복은 비교적 보수적인 디자인이었고, 어깨가 별로 드러나지 않은 상의에 하의는 반 길이 스커트였다. 입어보니 훨씬 자연스럽고 편했다. 그녀는 가운을 걸치고 휴대폰을 들고 방을 나섰다. 곽승재는 복도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나오는 것을 보고 곽승재의 검은 눈동자는 그녀의 몸에 잠깐 머물렀다. 가운 밑으로 드러난 길고 흰 다리를 보며 그는 입술을 살짝 움직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자, 박지연 씨도 지금 온천 구역에 있어.”고은서는 여전히 말 못 할 어색함을 느끼며 대답했다.“내가 혼자 내려갈 테니 데려다 줄 필요는 없어.”“오늘 여기는 우리들만 이용할 수 있게 예약된 곳이야. 대부분이 GS그룹 회사 사람들인데 넌 내 아내로서 내가 신경을 안 쓸 수는 없지.”곽승재가 말했다.‘나에게 언제 신경 써준 적이 있다고 그래?’고은서는 속으로 불평했다.곽승재는 그녀의 속마음을 읽은 듯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예전엔 내가 소홀했어. 그때 못 해준 것들 지금 보충해 줄께.”“...”그의 상냥한 말투와 태도는 마치 어제 저택에서 싸웠던 일이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고은서는 더 신경 쓰지 않았고, 어차피 이 며칠만 참으면 끝날 것으로 생각했다.그의 말대로 이 산장에는 GS그룹 사람들로 가득했다. 온천 구역으로 가는 길에 그녀는 이미 여러 사람을 만나 인사를 나눴다. 그녀와 곽승재를 보며 그들은 매우 예의 바르게 불렀다.“대표님, 사모님.”또 많은 여성

  • 어게인, 비긴   제214화

    그의 몸이 반응을 일으킨 것 같았다.두 사람은 아직도 안고 있었고 아래의 온천탕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보고 있었다.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휴대폰을 꺼내 몰래 찍고 있었다. 아주 그냥 개망신 현장이었다.곽승재가 무슨 짓을 할까 봐 두려워서 고은서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 있지?’고은서는 곽승재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화난 표정을 보면서 곽승재는 팔에 살짝 더 힘주어 그녀를 높이 안아 올렸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그녀의 엉덩이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는 허리를 감싸며 가장 가까운 온천탕으로 걸어갔다. 걸으면서 두 사람의 몸은 매우 밀착되어 있었다. ‘오늘 이곳에 오지 말아야 했어. 왔어도 바로 가야 했어...’ 곽승재를 없는 사람으로 여기고 그냥 즐기라고 했던 박지연의 말을 들은 자신의 실수였다. 그건 다 헛소리였다. 곽승재는 절대 없을 수 없었고 그녀는 단 한 순간도 마음 놓고 즐길 수 없었다. 지금 그녀가 가장 원하는 건 쥐구멍에 숨는 것이었다. 고은서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의 머리카락 향기가 코에 스며들며 곽승재는 자신이 곧 못 참을 것 같다고 느꼈다. “너 또...”품에 있던 고은서는 그곳의 변화를 느끼고 바로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잔뜩 붉어진 얼굴과 분노가 들끓는 눈길로 그를 노려보았다. 부끄러움과 화가 뒤섞여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곽승재는 온몸이 근질근질 해났고 그는 가까스로 참으며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조금만 참아, 온천탕까지 몇 걸음 안 남았어.” 이 말이 지금 이 상황에서 너무 어색하게 들려왔다. “이 나쁜 XX...”고은서는 살기 어린 눈빛으로 그를 째려보았고 당장이라도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너 자꾸 이런 표정을 지으면, 우리 다시 방으로 돌아갈까?”곽승재의 낮은 목소리에는 위협뿐만 아니라 욕망으로 가득했다. 고은서는 지금 더 이상 그를 자극하면 그때는 말로만 위협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실행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부끄럽고 화가 나면서

  • 어게인, 비긴   제215화

    고은서의 분노와 발버둥을 느낀 곽승재는 결국 그녀를 놓아주었다.수건이 곳곳에 걸려 있었고 고은서는 화가 난 것도 잊고 수건 하나를 던져주었다. 그리고 자신도 수건을 둘러매고는 수영장 주변의 작은 길을 따라 박지연을 찾으러 도망치듯 떠났다.곽승재는 물에 흠뻑 젖은 고은서를 지켜보았다. 보수적인 수영복은 여전히 그녀의 가는 다리와 곡선미를 가릴 수 없었고 그는 그녀를 놓아준 것이 조금 후회되었다.“형, 듣고 있어?”육현석이 또 한 번 부르며 말했다.곽승재는 그제야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었고 목소리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무슨 일이야?”“왜 이렇게 화가 났어? 욕구불만이야?”육현석이 장난치며 말했다.육현석은 자신이 무심코 한 농담이 마침 곽승재의 신경을 건드렸다는 것을 몰랐다.“앞으로는 일이 있으면 주민기에게 직접 전화해. 나한테 전화하지 말고!” 상황 파악이 안 된 육현석을 혼자 남겨둔 채 곽승재는 버럭 화를 내며 전화를 끊어 버렸다.육현석은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고 왜 갑자기 연락도 못 하는 처지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은서는 박지연을 찾아왔다.박지연은 그녀가 올 거라고 미리 알고 있었는지 동료들더러 다 나가보라고 했다. 그리고 손에 휴대폰을 들고 로즈꽃 온천에 앉아 그녀에게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웃어? 지금 너 때문에 내 인생이 망할 뻔했다고!”고은서는 온천에 들어가며 화를 냈다.“내가 뭘 했는데? 그냥 너를 온천에 데려온 것뿐이야. 난 너와 승재 씨가 달콤하게 안고 있으라고 시키진 않았어.” 박지연은 장난스럽게 말했다.“그냥 딱 한 번 가볍게 안을 줄 알았는데 떨어지기 아쉬웠나 봐? 네 주변 사람들은 곧 이혼할 거라는 걸 알고 있겠지만, 모르는 사람은 아직 신혼부부인 줄 알겠네.”방금 일어난 일을 생각하며 고은서의 얼굴이 다시 뜨거워 났다.사실은 박지연이 생각하는 로맨틱한 것과는 달랐다. 하지만 그녀는 곽승재의 몸이 반응을 일으켜 그에게 맞춰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차마 말할 수 없었다.

  • 어게인, 비긴   제216화

    “이건 GS 그룹의 내부 직원 단톡방 아니야? 네가 왜 거기 있어?”고은서가 박지연을 바라보며 물었다.박지연은 떳떳하게 휴대폰을 돌려받고 댓글을 계속 읽으며 말했다.“이건 업무 단톡방이 아니고 그들이 따로 만든 뒷담화용 단톡방이야. 현석 씨가 나를 초대했어.”고은서는 그녀의 말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너 인맥 꽤 넓어졌다? 현석 씨와 친해진 것도 모자라 이렇게 빨리 GS 그룹 내부에까지 들어갔어?”박지연이 말했다.“그냥 그들의 뒷담화가 궁금해서 들어간 거야. 걱정하지 마, 우리 둘 사이는 아무도 몰라. 그래서 여기 사람들은 다 진심으로 얘기하는 거야.”고은서는 말이 없었다.산장의 객실에서, 백유미는 문서들을 검토하고 있었고 단톡방의 메시지 소음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그녀는 상처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물을 다칠 수 없었다. 습식 사우나도 당연히 금지되어 있어 그녀는 놀이에 참여하지 않고 원지훈에게 줄 프로젝트를 연구하고 있었다.단톡방에서 이렇게 시끄럽길래 백유미는 휴대폰을 들고 무슨 재밌는 가십거리가 있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사진을 보자 그녀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사진은 여러 장이었고 모든 사진 속 곽승재와 고은서는 친밀하게 안고 있었으며, 곽승재의 눈빛에는 고은서를 향한 무의식적인 부드러움이 묻어 있었다.백유미는 휴대폰을 꽉 쥐며 부수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오기 전에 그녀는 분명히 비서에게 확인했었고 곽승재가 혼자라고 했다. 그런데 왜 고은서가 이곳에 나타나 곽승재와 공개적으로 애정 표현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백유미는 자신을 진정시키며 성아연에게 문자를 보냈다.“아연 씨, 고은서랑 관계를 어떻게 좀 해보라고 했잖아요, 왜 아직도 소식이 없죠?”아무도 그녀에게 소식을 전해주지 않아 그녀는 항상 일을 수동적으로 해야 했다.성아연은 바로 전화를 걸어왔다.“백유미씨, 고은서는 저를 매우 경계하고 있어서 제가 뭐라고 해도 듣지 않아요. 그래서 서두를 수 없어요.”“그럼 계속 이렇게 기다리고만 있을 건가요?”

  • 어게인, 비긴   제217화

    “할 말 다 했어? 그럼 가도 돼.”곽승재가 사람을 쫓아내며 말했다.그러자 육현석은 당당하게 대답했다.“형, 아직 시간도 남았고 이미 여기까지 왔는데 이 최상급 천연 온천에 안 들어가면 좀 아깝잖아, 그치?”곽승재는 그의 말을 예상했지만 전혀 신경 쓸 에너지가 없어서 그냥 명령했다.“나에게서 떨어져 있어.”그가 너무 눈에 띄어서 창피했다.“형, 형수님은 어디에 있어?”육현석은 곽승재의 태도에 신경 쓰지 않고 장난스럽게 물었다.“방금 형과 형수님이 공개적으로 애정 표현을 했다는 소문이 진짜야?”“너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형, 어떻게 사람 마음이 이렇게 쉽게 바뀔 수 있어? 형수님이 있으면 나는 버리는 거야?”육현석은 서운하고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먼저 박지연 씨를 설득해 형수님을 데려오게 했는데 형은 벌써 은혜를 잊었어? 이렇게 기쁜 일도 나와 공유하지 않으려 하면 어떡해!”“좀 조용히 해.”곽승재는 육현석이 시끄럽다고 느끼며 앞을 바라보았다.고은서와 박지연은 온천에서 나와 식사 구역으로 가고 있었다. 곽승재의 시선은 고은서의 모습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의 머리는 약간 젖어 있었고 매끈한 몸매에 우유처럼 흰 피부는 햇볕에 더욱 투명하게 빛났다.마치 물에서 막 나온 인어처럼 보였다.이전에 곽승재는 고은서가 이렇게 놀라운 미모인 줄 몰랐는데 왜 지금은 훨씬 더 예뻐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다른 남자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머물 때도 곽승재는 매우 불쾌했다.육현석도 곽승재의 시선을 따라 고은서와 박지연을 보았다.두 사람은 가운을 두르고 무언가를 이야기하며 밝게 웃고 있었다.“형, 아직도 앉아서 뭐 해? 배 안 고파? 뭐라도 먹고 싶은 거 없어?”육현석이 일부러 묻자 곽승재는 검은 눈을 들며 되물었다.“너 배고프냐?”육현석은 형이 자존심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고개를 끄덕였다.“배고파, 형. 나 아직 형이 아끼는 동생 맞지? 같이 식사 좀 해줘.”곽승재는 마지못해 일어났다.“가자.”“...”육현

  • 어게인, 비긴   제218화

    고은서는 고개를 숙여 살펴보니 곽승재의 옆구리 부분에 깊은 멍이 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이것은 술집에서 그녀를 안고 나올 때 테이블 모서리에 부딪혀서 생긴 것 같았다.이전에 육현석에게서 들었을 때는 별 감정을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 곽승재의 흰 피부에 비치는 검푸른 멍을 보니 그때 얼마나 아프고 심하게 부딪혔을지 상상이 갔다.“혹시 미안하면 저녁에 직접 약 발라줄래?”곽승재가 일부러 말했다.방금까지 분명히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던 고은서는 대놓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웃기지 마.”“...”뷔페 코너는 셀프였고 고은서는 곽승재의 고집에 못 이겨 그가 접시를 들고 음식을 골라 담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두 사람의 애정 넘치는 행동은 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오늘 하루가 지나면 모두가 대표님과 사모님의 찐득한 부부애에 대해 알게 될 것 같았다.고은서와 곽승재가 음식을 다 챙겨서 식탁에 앉았을 때 박지연과 육현석도 마침 많은 양의 구운 해산물들을 가지고 돌아왔다.“저 지금 배고파 죽을 것 같아요. 물에 오래 있을수록 특히 배가 고프더라고요!”박지연이 말하며 고은서에게 두 손 크기의 구운 랍스터를 건넸다.“이건 네가 제일 좋아하는 거라서 특별히 가져왔어. 어때? 나 착하지?”고은서는 박지연이 방금 친 사고를 만회하려고 의도적으로 이러는 것을 알고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그래, 고마워. 어쩜 이렇게 배려가 깊을까?”“헤헤, 아니야. 빨리 먹어!”박지연은 신경 쓰지 않고 닭 다리 살을 입으로 쑤셔 넣기 시작했다.랍스터는 껍질을 벗겨야 하는 게 좀 귀찮았다. 그러자 고은서도 군침이 돌면서 껍질을 벗길 필요 없는 맛있는 닭 다리 살을 한입 베어 물었다.“형수님, 박지연 씨가 구운 랍스터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는데, 왜 안 먹어요?”육현석이 물었다.고은서는 닭 다리 한 입을 베어 물면서 오물오물 씹으며 대답했다.“껍질 벗기기 귀찮아서요.”박지연은 웃으며 말했다.“스스로는 귀찮다고 하지만, 어떤 사람을 위

  • 어게인, 비긴   제219화

    겉보기에는 아무렇지 않은 행동 같지만 분명히 그만의 배려가 담겨 있었다.마음속의 감정을 억누르며 백유미는 장난치며 웃고 있는 사람들 앞에 다가갔다.“승재 오빠, 은서 씨, 현석 씨, 모두 계시네요. 제가 여기 앉아도 괜찮으신가요?”고은서는 얇은 옷과 연한 화장으로 꼬리치는 백유미를 보며 표정이 확연히 어두워졌고 그녀에게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그러자 육현석이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이사님, 정말 죄송한데 사모님의 친구분도 여기 계셔서 합석은 좀...”백유미는 그제야 박지연을 보며 말했다.“이분이 은서 씨의 친구군요. 업무 처리하느라 바빠서 아까 인사를 못 드렸네요. 진심으로 사과드려요.”박지연은 전에 백유미를 만난 적이 없었지만 그녀의 여우 같은 행동과 고은서의 반응을 보고 그녀의 정체를 알아차렸다.“이사님? 그렇다면 그쪽은 대표님의 아래 사람이군요. 그런데 방금 대표님을 뭐라고 불렀어요? 고은서는 은서 씨라고 부르면서 대표님의 이름은 직접 불러요?”고은서는 박지연의 말이 곽승재를 불쾌하게 만들 것임을 알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고 박지연을 말리려 하지도 않았다. “지연 씨가 모를 수도 있는데 이사님과 승재 형은 십 대 초반부터 아는 사이여서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부르는 게 습관이죠.”육현석이 나서서 설명했다.백유미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고 여전히 온화한 모습이었다.“박지연 씨, 조언 감사해요. 제 실수였어요. 다음에는 주의하도록 할게요.”“대표님, 지금 괜찮으신가요? 급한 공사가 있어서 보고 드려야 할 텐데요.”백유미가 평온하게 앉아 있는 곽승재를 향해 물었다.백유미의 얼굴에 피로감이 엿보이자 곽승재는 그녀가 최근에 힘들어했던 이유를 알았고 그녀를 쫓아내지 않았다.“앉아, 먹으면서 얘기하자.”백유미는 무표정한 고은서를 한 눈 보고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서서 얘기할게요. 다들 식사하는데 방해되지 않게 이것만 말씀만 드리고 나갈게요.”“다른 사람에게 방해될 걸 알고 있다면 차라리 오지 마시던가요.”

  • 어게인, 비긴   제220화

    “내가 힘들게 줄 서서 가져온 걸 왜 걔가 공짜로 먹어야 해!”박지연이 말하며 그쪽으로 가서 음식을 가져오려 했다.그러자 고은서가 그녀를 막았다.“그만해, 그런 유치한 짓 하지 마.”“뭐가 유치해? 당연한 거 아니야? 배고프면 스스로 가지러 가던지, 다른 사람이 가져다준 걸 저렇게 앉아서 편하게 먹고 있는 게 말이 돼?”고은서는 박지연의 말에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앉아서 편하게 먹다’라는 표현이 백유미에게 정말 딱 맞았다. 지난 생에서 백유미는 그녀와 직접 싸운 적이 없었지만 곽승재와의 감정만으로 그녀를 쉽게 밀어내고 예비 곽 씨 사모님이 되었으니, 정말 앉아서 편하게 먹은 셈이다.“지연 씨, 방금 것들이 더 먹고 싶으세요? 제가 가져다줄게요!” 육현석이 자진해서 말했다.박지연은 저쪽 테이블의 음식을 뺏으려던 행동을 포기했다.“고마워요, 그럼 부탁할게요.”“별말씀을요. 어차피 별로 힘들지 않았으니.”육현석이 자리를 떠난 후 박지연이 말했다.“은서야, 그래서 네가 전에 백유미를 그렇게 싫어했던 거구나. 정말 보기만 해도 기분 나쁜 인물이야.”“넌 이게 첫 만남 아냐? 벌써 이렇게 싫어해도 돼?”고은서가 웃으며 묻자 박지연이 대답했다. “제일 짜증 나는 건, 걔가 분명히 여우짓을 하고 있는데 남자들은 그녀가 억울한 처지에서도 여전히 착한 줄로 알잖아.”고은서는 그 말에 두 손 들고 찬성했다. 백유미는 항상 자신의 진실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모두에게 점잖고 온화한 모습만 보이도록 한다.“너 오늘 웬일이야? 백유미가 승재 씨와 함께 앉아 있는 걸 보고도 무감각하게 넘어가고, 내가 가서 시비 걸려는 것도 하지 말라고 하고.”박지연이 농담하며 말했다.“예전이라면 백유미와 승재 씨가 함께 밥 먹는 것만 보고도 테이블을 뒤엎었겠지?”고은서는 생각했다. 아니, 밥을 먹기도 전, 백유미가 나타나자마자 그녀는 이미 참지 못하고 사람을 내쫓았을 것이다.“됐어, 이 말 그만하자. 그녀가 어떻게 하든 나와는 상관없어. 어제 온 닥터가

Latest chapter

  • 어게인, 비긴   제1080화

    “당시 시은이가 부상당한 쿠아를 쫓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일에 대한 기억이 전부 시은이가 쿠아를 구해 준 그 따뜻한 장면으로만 남아있어. 시은이가 왜 거기에 있었을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고은서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곽승재는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고은서의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었다.“두려워하지 마, 자책하지도 마. 아무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할 거야.”곽승재가 부드럽게 위로했다. “내가 민기 씨에게 송민준과 시은 씨사이의 관계를 조사해 보라고 시켰어.”고은서는 살며시 손을 빼냈다. “그럼 부탁할게.”곽승재는 살짝 실망한 표정을 애써 숨기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시은이가 당신과 결혼을 하려 하기에 날 싫어하는 건 어느 정도 이해가 가. 하지만 송민준은 왜 나를 미워할까?” 고은서가 의문을 제기했다.비록 그녀가 예전에 민시후와 가까웠다고 해도 고씨 가문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었다.게다가 유미 씨의 말에 따르면 그녀가 귀국한 것은 곽 회장님의 뜻뿐만 아니라 이 C 선생의 지시도 있었다고 했다. 그 시절 자신은 민시후와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었다.‘고씨 가문이 송민준에게 크게 잘못한 거라도 있나?’고은서는 머리가 터질 정도로 생각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곽승재도 이 일의 전후 관계를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 우리의 추측일 뿐이야. 증거 없이는 섣부른 판단을 내릴 수 없으니 서두르지 마.”고은서는 급할 수밖에 없었다. 뒤에 숨은 검은 손을 잡아내지 못하면 그녀와 고씨 가문은 영원히 불안에 떨어야 했다.전생의 비극적 결말이 떠오를 때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범인을 색출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곽승재는 고은서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MQ에 관련된 일은 내가 사람을 시켜 주의 깊게 보고 있어. 무슨 움직임이 생기면 바로 나에게 보고할 거야.”고은서는 곽승재가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했다는 사실에 놀랐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곽승재를 바라보았다.거실의 하얀 색 조명 아래서 그의 각진

  • 어게인, 비긴   제1079화

    곽승재의 물음에 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갔어. 우연히 마주치기까지 했지.”여시은이 그들이 있는 곳을 알고 일부러 찾아왔을 것이라는 의심이 확 들었다.곽승재는 여시은이 WOR 게임 회사에 협력 제의를 했으나 주 개발자에게 거절당했다고 알려주었다.여시은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유혹을 던지는 걸 보면, 고은서가 이 일을 알게 만들어 화나게 하려는 의도임이 분명했다.고은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은서야, 무슨 얘기 하려고 했어?” 곽승재가 물었다.고은서는 일단 여시은의 이 문제를 접어두고, 오늘 송민준의 사무실에서 그의 컴퓨터에 있는 농장 영상을 발견한 일을 설명했다.곽승재는 표정이 복잡해지며 말했다.“송민준이 그렇게 방심할 사람이야? 아니면... 당신을 그만큼 신뢰한다는 뜻이야?”스스로 질문한 자격이 없음을 알면서도 그는 씁쓸하게 물어왔다.고은서는 곽승재의 말뜻을 알면서도 더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송민아가 비밀번호를 알아낸 과정을 설명했다.그녀와 송민준의 관계가 생각처럼 그리 가깝지 않음을 확인한 곽승재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송민준이 어떤 반응을 보였어?”고은서는 들은 대로 전했다.“그 말을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고은서는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잘 모르겠어. 만약 그 이유가 아니라면, 송민준이 왜 농장 사건을 조사했을까?”송민준이 C 선생이라 해도 농장과는 무관한 일, 조사 동기가 불분명했다.곽승재는 입술을 깨물며 분석을 이어갔다. “우리가 농장 사건을 파헤친 건 시은 씨가 너를 모함해 여 대표님마저 널 의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잖아.”“내 사람들이 샅샅이 조사했지만 결정적 증거는 나오지 않았어. 전에도 말했지만, 시은 씨가 미리 손쓴 거 같아.”“만약 송민준이 너를 위해 조사한 게 아니라... 이미 그 영상을 확보한 상태였다면?”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맞부딪쳤다.고은서가 뭔가 깨달은 듯 소리쳤다. “설마 민준 오빠가 시은이 혐의를 숨겨준 장본인이라는 뜻이야?”곽승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

  • 어게인, 비긴   제1078화

    고은서는 송민준의 반듯한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민준 오빠가 정말 뒤에서 나를 죽이려는 사람일까?’통화를 마친 송민아가 들어오면서 둘의 대화는 자연스레 끊겼다. 송민아가 애교 부리며 조른 끝에 송민준의 손에서 의향서를 가질 수 있었다.점심이 거의 끝날 무렵, 고은서가 먼저 계산을 했다.송민준이 한 끼 식사값 정도 낸다고 문제 될 건 없겠지만, 의향서까지 받은 마당에 식사까지 대접받는 건 좀 민망했다.송민준은 고은서가 계산을 한 걸 알고도 기분 상해하지 않고, 오히려 기분 좋게 받아쳤다. “은서야, 그럼 다음번엔 내가 살 기회를 줘.”...의향서는 손에 넣었다지만 그래도 처리할 일은 여전히 많았다.고은서가 일을 마치고 라이트 문 아파트에 돌아온 건 밤 10시가 다 되어서었다.쑤신 팔을 주무르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고은서가 집 앞에 다다르기도 전에, 검은 쓰레기봉투를 든 곽승재가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진한 색 셔츠를 입은 곽승재의 옷자락은 허리에 대충 걸쳐져 있었는데 정장 바지와 긴 다리, 쭉 뻗은 체격에서 귀공자의 기품이 풍겨왔다.하지만 그에 비해 낯색은 별로였다. 살짝 찌푸린 미간과 손에 꽉 움켜쥔 검은 쓰레기봉투가 불조화를 이루었다.고은서의 시선을 느낀 곽승재가 고개를 들었다.이 시간에 마주칠 줄 몰랐던 그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모르는 척 지나가기가 더 어색하다고 느낀 고은서가 말을 건넸다.“쓰레기 버리러?”곽승재는 슬그머니 검은 봉투를 뒤로 숨기며 대답했다.“청소 아주머니가 교체하는 걸 깜빡해서 직접 내다 버리려고.”순간 송민준에게서 받은 영상이 생각난 고은서가 물었다.“지금 별일 없지? 너랑 할 이야기가 좀 있어.”말을 마친 고은서가 곽승재 방으로 가려 하자 곽승재가 막아서며 말했다.“너한테로 가자. 내 방이 좀 지저분해서 그래.”청소 아주머니가 다녀갔다면서 방이 지저분하다는 말에 고은서는 의문스러웠지만 더 묻지 않았다.고은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재빨리 쓰레기 버리러 계단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

  • 어게인, 비긴   제1077화

    송민아의 말투에 묻어난 야유를 고은서가 못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송민아는 송민준이 고은서에 대한 호감 때문에 몰래 조사를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고은서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고 여겼다. 송민준과는 특별한 접점이 없을뿐더러 호감이라 하기엔 애매했다. 게다가 송민준은 묵묵히 베푸는 스타일도 아니었다.‘그렇다면 왜 농장 사건을 조사한 걸까?’“그날 은서가 당한 사고가 항상 마음에 걸렸었어.”송민준이 송민아의 질문에 답했다.“그날 내가 늦지 않고 계속 함께 있었다면 은서가 물에 빠지는 일은 없었을 거야. 게다가 여 대표가 은서가 시은 씨를 밀었다고 의심했다는 말에 내가 더 미안해서...”송민준이 사과의 뜻을 전했다.“다만 몇 분이라도 빨리 도착했더라면, 적어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봤을 텐데 말이야.”이 설명에도 송민아는 만족스럽지 못한 뉘앙스를 풍겼다.“단지 죄책감 때문이야?”고은서는 송민아가 더 엉뚱한 소리를 해댈까 봐 서둘러 말을 끊었다.“민준 오빠, 그날 일은 어떤 각도로 봐도 오빠 잘못이 아니야. 전혀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어쨌든 진상을 밝혀줘서 고마워. 이 영상 나한테 보내주실 수 있어?”고은서가 조심스레 물었다.“물론이지. 원래도 너 주려고 했었어.”송민준이 웃으며 말했다.“은서야, 이걸 바로 여 대표님께 보여줄 거야?”송민아가 물었다.송민준의 의도가 불분명한 시점에 고은서는 완전히 경계심을 풀 수가 없었다.“아마 재훈 씨는 최근 시은이 회사 설립으로 바쁘실 거야. 이 관건적인 시기에 드리면 내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서 아무래도 개업 축하 파티가 끝나고 나서 다시 얘기하는 게 좋을 거 같아.”“분명 시은 씨가 널 물에 빠뜨리고, 여 대표님의 오해까지 받았는데 넌 뭐 하러 그 사람들을 배려해!”송민아가 화내며 말했다.“내가 봤을 땐 그냥 영상을 보여주고 너를 오해했다는 걸 인지시켜야 해! 오빠, 어떻게 생각해?”송민준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은서도 자기 생각이 있을 거야. 은서의 판단

  • 어게인, 비긴   제1076화

    고은서가 입을 열기도 전에, 멀지 않은 곳에서 송민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송민아와 고은서는 깜짝 놀라며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송민준이 사무실 문 앞에 서서 감정을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고은서는 순간 어색함이 밀려왔다. 남의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함부로 만진 데다 지어는 내용까지 훔쳐보다가 주인에게 딱 걸렸으니 말이다.얼굴이 확 붉어진 고은서가 입을 열려는 순간, 송민아가 먼저 물었다.“오빠, 오빠 컴퓨터에 왜 지난번 은서와 여시은 씨가 물에 빠진 영상이 있는 거야?”송민준에게 사과하려는 고은서의 말을 끊은 채 송민아는 재차 추궁했다.“누구한테서 받은 거야? 왜 나한테는 말도 안 해줬어?”고은서 역시 궁금했기에 민망함을 뒤로 한 채 조용히 답을 기다렸다.송민준은 차분히 걸어와 영상을 끈 뒤 담담히 물었다.“민아야, 누가 내 컴퓨터를 함부로 만져도 된다고 허락했어?”송민아도 민망하긴 마찬가지였던지라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그냥 비밀번호가 맞나 확인해보려다가... 미안해. 이 일은 나중에 사과할게. 우선 이 영상 어디서 난 건지부터 말해봐.”송민준은 고은서를 보며 입을 열었다.“은서야, 지난번 곽 대표가 농장 사고를 수사한다는 말을 듣고 나도 사람을 시켜 조사해 봤어. 마침 그날 농장에 있던 관광객이 풍경 촬영 중 우연히 사고 장면을 찍어두었더라고.”송민준은 그 관광객이 급한 일로 고향에 내려갔다가 최근에서야 해성시로 돌아와 그날의 사고 수사 소식을 듣게 되었다고 설명했다.“그럼 왜 나한테는 안 알려줬어?”송민아가 불만스럽게 묻자, 송민준은 오늘 아침에야 받은 결과라고 답했다.“안 그래도 은서에게 연락하려던 참이었는데, 너희가 먼저 발견해 버렸네.”이 말을 들은 고은서는 이내 사과했다.“정말 미안해. 민준 오빠....”“비밀번호 푼 것도, 영상 연 것도 나야. 뭐라 할 거면 나한테 해.”송민아가 의리 있게 나서자, 송민준은 의자에 앉아있는 여동생을 흘깃 보며 받아쳤다.“요즘 부모님께 칭찬만 듣다 보니

  • 어게인, 비긴   제1075화

    고은서는 아무리 두 사람이 남매라고 해도 상대방의 사무실에 들어와서 컴퓨터를 다치는 게 무례한 행위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송민아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말했다.“그냥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뭘?”고은서는 약간 어리둥절해 났다.“오빠가 하도 경각심이 높은 사람이라 폰이랑 컴퓨터에 다 비밀번호가 걸려있거든. 그리고 평소엔 손도 못 대게 한다니까. 그런데 내가 전에 몰래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걸 훔쳐보고 있었다는 것까진 모를걸. 그래서 혹시 사무실 컴퓨터도 같은 비밀번호인지 확인해 보려고.”‘이건 또 뭔 호기심이래?’“민아야, 그냥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개인 프라이버시와 연관된 일이잖아.”고은서가 그녀에게 주의를 주었다.그러나 송민아는 그녀의 말을 별로 개의치 않았다.“괜찮아. 내가 기밀문서를 찾아보는 것도 아닌데. 그냥 비밀번호만 확인해 보는 거잖아. 우리 둘 다 비밀로 하면 오빠도 영원히 모를 거야.”“...”고은서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송민아는 이내 비밀번호를 입력하기 시작했다.한 글자, 두 글자, 세 글자...“열렸어!”송민아는 흥분해 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칭찬하기 시작했다.“이러고 보면 내 시력하고 기억력이 다 어마어마하네.”“네네네. 세상 제일로 가는 시력과 기억력을 가지셨어요.”고은서는 이 상황이 어이없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오빠가 조금 이따 곧 올 건데 얼른 다시 잠가. 발각되어서 욕먹지 말고.”“알겠어.”송민아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마우스로 이리저리 눌러 보았다.그러나 마우스가 손에 익지 않은 탓에 실수로 동영상 파일 하나를 클릭하게 되었다.갑작스레 재생된 동영상에 깜짝 놀란 송민아는 인츰 꺼버리려고 했다.그러나 그녀는 저도 모르게 동영상 내용을 보게 되었고 이내 황급히 고은서를 불렀다.“고은서, 얼른 와서 봐봐. 이거 우리가 갔던 농장 아니야?”‘송민준의 컴퓨터에 농장 동영상이 저장되어 있다고?’조금 전까지만 해도 예의를 따지던 고은서는 모든 걸

  • 어게인, 비긴   제1074화

    “좋은 소식 기다릴게요.”고은서가 담담하게 웃어 보이며 답했다.송민아는 WOR에서 나오자마자 여시은에 관해 투덜거리기 시작했다.“입으로만 계속 아버지 도움을 받지 않는다고 하면서 좋은 아버지를 뒀다는 핑계로 다른 사람을 괴롭히려 드는 사람이 누군데. 우리가 WOR을 투자했다는 걸 분명히 알면서 찾아오는 이유가 뻔하잖아. 우린 안중에도 없다는 거겠지.”“네 말처럼 능력 있는 아버지를 배후에 두고 있는데 우리가 뭘 어쩌겠어. 게다가 그냥 알아보러 온 거라고 말한 사람을 내쫓을 수도 없잖아.”고은서가 웃으면서 그녀를 달랬다.“다 우리 아빠 탓이야. 여시은한테 지다니 너무 분해.”송민아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고은서는 그녀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었다.“우리가 굳이 아버지한테 의지해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 자아 발전에 중심을 두면 되지. 게다가 넌 훌륭한 오빠를 뒀잖아. 북성에서 ST그룹 송민준이라면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송민아는 그 말을 듣자마자 이내 기분이 풀리는 것 같았다.“하긴. 오빠가 능력이 뛰어나긴 하지. 그보다 고은서, 우리 오빠 찾으러 가자. 오빠가 전에 꽤 괜찮은 프로젝트가 있다고 해서 내가 며칠 동안 떼쓰며 빌었는데 어제 겨우 나한테 넘기겠다고 했거든. 오빠가 마음 바꾸기 전에 얼른 가자.”“이미 약속한 일인데 괜찮지 않을까?“그럴 리가. 오빠가 이런 면에서는 엄청 까다로운 사람이거든. 높은 이익만 거두어들일 수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사인한다니까. 나중에 핑계 대며 모른다고 하면 나만 손해잖아. 그러니까 잔말 말고 얼른 가자. 지금쯤 사무실에 있을 거야.”송민아는 재촉하면서 고은서를 끌고 차에 탔다. 그리고 이내 기사한테 ST그룹 해성 지사로 가달라고 부탁했다.“미리 전화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고은서가 물었다.“아니. 그냥 쳐들어갈 거야. 그리고 가는 김에 밥도 한 끼 얻어먹어야지.”“...”고은서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날 백유미가 송민준을 의심하고 있다고 했는데 곽승재도 확실한 증거

  • 어게인, 비긴   제1073화

    고은서는 소식을 듣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어제 금방 곽승재한테서 여시은도 게임 회사에 관심 있어 한다고 주의하라는 소릴 들었는데 오늘 바로 찾아온다고?’“여긴 무슨 일로 온 거래?”고은서의 물음에 송민아는 고개를 저었다.“잘 모르겠어. 비서랑 같이 온 것 같던데 보자마자 너한테 전하러 달려왔어.”“한번 나가 보자.”고은서는 송민아랑 책임자와 함께 여시은을 만나러 갔다.WOR 게임 회사 직원은 이미 그녀를 또 다른 접대실로 데려갔다.고은서가 들어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여시은과 비서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평소의 귀여운 옷차림 대신 여시은은 맞춤 정장을 입고 있었다.그러나 원래도 귀엽게 생긴 데다가 항상 천진하고 무구한 눈빛으로 사람을 대해서인지 정장이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어머, 은서 씨 아니에요. 여기에서 은서 씨를 보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여시은은 고은서를 보자마자 의외라는 듯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내가 여기에 있다는 걸 몰랐을 리가.’“여시은 씨는 여기에 무슨 일로 오신 거죠?”고은서가 직설적으로 물었다.그러자 여시은이 눈을 깜빡이면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요즘 WOR 게임 회사에서 개발하고 있는 게임에 흥취가 생겨서 더 자세히 알아보려고 찾아왔어요. 기회가 된다면 저도 사업 파트너 관계를 맺고 싶어서요.”여시은은 숨김없이 그대로 말했다.“WOR이 우리 유일에서 투자한 프로젝트라는 걸 알고 계실 텐데요.”옆에 있던 송민아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알고 있어요. 괜찮으시다면 유일과도 합작하면 되죠.”여시은이 미소를 유지하며 답했다.송민아는 화가 나긴 했지만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드러내고 반박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죄송하지만 우린 WOR 프로젝트에 관해서 아직 다른 회사와 합작할 생각이 없습니다.”고은서가 담담하게 말했다.WOR 책임자도 유일 투자 은행과 단독 계약을 체결한 터라 다른 회사와 합작할 의향이 없다고 솔직하게 말했다.그러나 예상 밖으로 여시은은 전

  • 어게인, 비긴   제1072화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고은서가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아니.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아.”곽승재가 고개를 저으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고은서는 도리어 자기 아이디어가 인정받았다는 거에 내심 기뻐했다.곽승재는 GS그룹을 물려받을 때부터 엘리트라고 불리면서 많은 기사에 떴었는데 그의 인정을 받았다는 건 꽤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은서는 이어 곽승재와 여시은에 관해 더 자세히 토론한 후 시간이 늦어지자 먼저 가보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먼저 갈게. 나중에라도 일이 있으면 다시 연락해.”“은서야.”그러나 곽승재가 갑자기 그녀를 불러세웠다.“왜?”고은서가 머리를 갸우뚱하며 물었다.곽승재는 멈칫하더니 이내 말을 이어갔다.“배는 괜찮아?”“다 나았어. 전에 나한테 문자로 물어봤었잖아.”곽승재는 그녀가 조금 더 머물 수 있게끔 새로운 화젯거리를 찾고 싶었지만 차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달싹였다.“잘 자.”“응.”‘이상하게 왜 저러는 거야?’고은서는 약간 의문이 들긴 했지만 더 머무르지 않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이튿날.고은서는 먼저 회사에서 긴급한 서류들을 처리한 후 송민아와 함께 WOR 게임 회사로 갔다.게임 회사는 전보다 더 밝고 넓은 곳으로 이사하였고 규모도 훨씬 더 커졌다.그러나 분위기만은 변함없이 활력이 넘쳤다.아무래도 젊은이끼리 자체로 팀을 묶어 제작한 게임이라 그들에게 있어서는 거의 자기 친자식과 다름없었는 존재였다.책임자는 고은서와 송민아를 보자마자 아주 열정적으로 맞이해 주면서 프로젝트가 잘 진행되고 있다면서 곧 테스팅을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테스팅이 순리롭게 진행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출시도 가능했다.듣기만 해도 격동되는 순간이었다.책임자는 두 사람한테 얘기하면서 매우 흥분해 했다.송민아는 여러 가지 절차를 확인하러 가고 고은서는 책임자와 함께 접대실에 앉아 어제저녁 곽승재가 말했던 일에 관해 의논했다.“정말 이런 밑지는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