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206화

작가: 류한나
고은서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일도 걱정할 필요 없어. 아버님 앞에선 절대 이혼 얘기를 하지 않을 거야. 이혼 증서가 있어도 되도록 남들 모르게 숨기고 있을게.”

곽승재는 고은서의 배려에 전혀 기쁘지 않았다.

“지금 저택으로 가.”

곽승재는 명령하듯이 말했다.

“뭐라는 거야? 내가 안 가겠다고 했잖아.”

고은서는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아직 이혼한 건 아니니까 내 아내의 의무는 다해야 하지 않겠어?”

그가 대답했다.

고은서가 아무렇지 않게 민시후를 만나러 오면서도 자신과 함께 저택으로 가는 걸 싫다고 하는 점이 정말 그를 빡치게 했다.

고은서는 그의 강경한 태도를 보고 더 이상 그와 따지고 싶지 않았다.

호원 저택은 이 구역 황금 지대에 위치한 규모가 꽤 큰 3층 고딕 스타일의 건물로 무려 앞뒤로 정원과 잔디 마당이 있었다.

고은서는 곽승재의 아내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엔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곽승재는 대학 졸업 후 이곳을 떠나 자기 집에서 혼자 살았고, 결혼 후에는 예원 별장을 사들여 자기 새 거처로 정했다.

지금 그의 부모님도 저택에 계시지 않고 할머니도 본가에 살고 있어 고은서는 이곳에 올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부모님의 거처가 너무 궁금해 곽승재에게 한번 부탁한 적이 있다.

“오빠, 나랑 함께 저택으로 가지 않을래? 오빠의 아내로서 부모님 댁에 한 번쯤은 인사하러 가봐야 하지 않겠어?”

곽승재는 그녀의 말을 듣더니 차갑게 대답했다.

“내 부모님은 국내에 안 계셔. 갈 필요 없어.”

고은서는 매우 실망했지만 괜히 그를 불쾌하게 한 것 같아 그 후부터 이 일을 다시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이혼을 앞두고 곽승재가 직접 그녀를 데리고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운전사가 차를 대자 대문 앞에 있던 하인이 공손하게 마중했다.

“오셨습니까, 도련님.”

하지만 그의 뒤에 서 있는 금시 초면인 고은서를 보고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그러자 곽승재는 자연스럽게 고은서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고은서야.”

이 이름을 듣자 하인은 곧바로 인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어게인, 비긴   제207화

    곽승재는 고은서의 갑자기 변한 태도를 이해하지 못했다.그녀의 눈엔 눈물이 고여 있었고 차가운 표정으로 그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곽승재는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노력해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걸 막을 수 없었다.“고은서, 꼭 이렇게 피곤하게 굴어야 해?”고은서는 그를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피곤하게 구는 사람은 너겠지? 예전에는 내가 부탁해도 저택에 데려가려고 하지 않았잖아. 이제는 내가 싫다는 데 왜 이렇게 집착해서 나를 데려오려고 해?”“최근 내가 너에게 관심을 덜 가지니까 소유욕 때문에 이런 짓을 하는 거야?”“내가 너에게 대한 감정이 소유욕뿐이라고 생각해?”곽승재가 되물었다.“그게 아니면 뭔데?”고은서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만약 내가 예전처럼 매일 네 곁에 붙어있고 너밖에 없었으면 너는 꼭 나의 존재와 감정을 전부 무시했을 거야. 그런 네가 나를 이런 데 데려오겠어?”곽승재는 순간 대답을 잃었다.예전의 고은서는 집착이 너무 심했고 언제나 그의 곁에서 그를 지켜보려 했다.그에게 주목받으려는 수단도 다양했다. 예쁜 화장과 섹시한 옷차림으로 그의 회사에 우유를 주러 오는 것 등은 전부 소소한 것들이었다.백유미가 회사에 들어오면서부터 그녀는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그에게 쉼 없이 고자질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백유미를 협박하고 괴롭혔다. 그래서 백유미는 원 없이 많은 고초를 겪게 되었다. 고은서의 끈질긴 고문과 유치한 행동들을 떠올릴 때마다 곽승재는 머리가 아파 났다. 그래서 그녀를 저택으로 데려오는 것은 물론 집에 함께 돌아가는 것조차 꺼려졌다.“절대 안 그럴 거라는 걸 알아.”고은서는 곽승재의 대답을 대신해서 말해주었다.“넌 나를 멀리하고 싶어 하잖아. 하지만 이제 내가 네 바람대로 멀어지니까 또 그 웃긴 자존심 때문에 기분이 상한 거지?”“난 널 진심으로 사랑했어. 하지만 난 네가 갖고 노는 부속품이 아니야. 나도 감정이 있고 나도 아프다고!”고은서는 눈에 눈물이 가득한 채로 말을 마치고 곧바로 계단을 내

  • 어게인, 비긴   제208화

    “그럼 다행이네요.” 고은서는 이미숙이 준 국을 한 입 마셨다. 그러자 이미숙이 그녀에게 물었다.“사모님, 도련님과 싸우셨나요?” 고은서는 국을 한 모금 더 마시며 대답했다.“괜찮아요, 싸운 게 아니에요.” 그저 그녀가 일방적으로 화풀이했을 뿐 곽승재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모님, 저는 도련님이 지금 사모님에게 신경을 엄청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이 보양국도 도련님께서 특별히 저더러 끓이게 하신 거거든요. 사모님이 오시면 드시라고 하셨어요.”이미숙이 말했다.말을 들은 고은서는 갑자기 입맛이 떨어졌다. 곽승재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분명 속셈이 전부 자신에게 까발렸는데도 왜 이런 일에 신경을 써주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식사 후, 고은서는 방으로 돌아갔고 민시후가 보낸 문자를 읽었다. “은서 씨, 오늘 너무했네요. 아직 저에게 밥 한 끼 사줘야 하는 거 기억하고 있죠?” ‘이 사람, 오히려 탓하고 있네?’“민 도련님, 할 말 다 했어요? 한 번도 아니고 계속 저를 방패막이로 이용하면서, 나중에 밥까지 얻어먹으려고요?”민시후가 문자를 읽고 바로 전화를 걸어왔다. “왜요? 싸우려고요?”고은서가 무뚝뚝하게 물었다. “아니, 왜 이렇게 화를 내요? 목소리에 깜짝 놀랐네.”민시후가 귀를 만지면서 말했다.“혹시 평소에 승재 씨 전화를 받을 때도 이러나요? 그래서 버림받은 거 맞죠?” 고은서는 어이가 없었지만 답장하지 않기로 했다.“민 도련님, 대체 무슨 일인데요? 혹시 저와 승재 씨 사이가 궁금해서 그런 건 아니죠? 만약 진짜라면 그쪽이 승재 씨를 비밀리에 좋아하는 게 아닐까 의심스럽네요.” “우엑!”민시후가 매우 불쾌해하며 말했다.“나는 너처럼 사람 보는 눈이 구리지 않아!” 두 사람은 티격태격 몇 마디를 주고받다가 고은서가 짜증에 전화를 끊으려고 하자, 민시후는 비로소 본론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제인의 약품을 홍보하고 싶다면서요, 내가 초기 계획서를 작성해 놨으니 한 번 확인해 보세요.

  • 어게인, 비긴   제209화

    그녀의 질문을 듣고 곽승재는 무언가가 생각난 듯 표정이 더 굳어졌다. “이렇게 약 바르는 시간을 질질 끄는 이유는 할머니께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시게 하려는 거야?” 고은서는 말이 없었다. 더 이상 거절하는 것은 오히려 그녀의 몸에 무리가 되었다. 곽승재에게서도 약 냄새가 났고 아마 약을 발랐던 것으로 봐서 그의 경험이 확실히 이미숙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측되었다. 생각을 마친 고은서는 다시 의자에 앉으면서 잠옷을 조금 뒤로 당겼다.“앉아서 바르면 돼.” 그가 아무리 자신의 몸에 관심 없어 보일지라도 갑자기 생각이 바뀔 수도 있으니 지금 이 자세가 제일 안전할 것으로 생각했다. 곽승재는 순순히 그녀의 뒤로 가서 약 오일을 손바닥으로 문질러 덥힌 후 그녀의 어깨에 대었다. 따뜻한 손이 상처에 닿자, 고은서는 약간 따끔하면서도 따스한 느낌을 받았고 자연스레 눈을 질끈 감았다. 곽승재는 그녀의 반응을 보고도 여전히 같은 힘으로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조금 아프긴 했지만 오일의 시원함과 그의 손바닥 온도가 피부에 닿으니 미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곽승재는 대략 30분 정도 문질러 주었다. 고은서는 코끝에 땀이 나기 시작했고 곽승재는 그녀보다 더할 것으로 추측되었다. 이미숙이 했더라면 곽승재만큼 잘 해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고은서는 잠시 곽승재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기로 했다. 마사지가 끝난 후 곽승재는 더 머물지 않고 말도 없이 바로 방을 나갔다. 고은서는 오히려 그의 행동에 놀랐다. ‘뭐야, 그렇게 손해 볼 줄 모르던 사람이 아무 조건도 없이 그냥 가버렸다고?’ 밤이 되어 고은서가 흐릿하게 잠들었을 때 침대 옆에서 약간의 움직임을 느껴졌다. 곽승재가 침대에 올라왔다. 아마도 이혼 날짜와 며칠밖에 남지 않았으니 잠자리 이동도 귀찮아했을 것이다. 고은서는 그리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잠을 잤다. 다음 날은 토요일이었다. 고은서가 일어나 보니 곽승재의 모습은 이미 사라졌었다. 그녀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아침을

  • 어게인, 비긴   제210화

    고은서는 곽승재가 지난번에 한 말이 떠올랐다.서인수가 사람을 파견하여 그녀를 협박한 일은 우선 아무런 증거가 없고, 설사 그와 관련된 것이 밝혀지더라도 그가 스스로 한 행동이 아니기 때문에 소용이 없었다.이 일로 경찰에게 체포된 거라면 기록 몇 장과 몇 마디 경고로 끝날 가능성이 컸다.그래서 주민기는 서인수의 배경을 조사하여 그가 비정상적인 수단을 사용한 이유로 개업 당일에 조사를 받도록 했다.‘몇 년 동안 감옥에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나오다니...’“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는 약한 사람에게는 강하게 나오고 강한 사람에게는 겁을 내는 타입이에요. 이번에 대표님이 은서 씨를 위해 그를 처리한 걸 알았으니 다시는 함부로 행동하지 않을걸요.” 도아름은 그녀를 안심시켜 주었다.“그가 나올 때 내가 직접 가서 경고할 거예요. 다시 은서 씨를 괴롭히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요.” 고은서는 웃으면서 대답했다.“알겠어요. 요즘은 그래도 법이 최고니까 그가 함부로 행동할 수는 없겠죠.” 이 일에 대해 조금 더 얘기를 나눈 후 도아름이 말했다.“지연 씨도 해외에서 돌아온 지 며칠 됐죠? 우리끼리 점심시간에 함께 식사하러 가지 않을래요?” “좋아요. 지금 지연 씨에게 연락해 볼게요.” 고은서가 핸드폰을 꺼내려던 찰나, 마침 박지연의 번호가 화면에 떴다. “어머, 통했네? 방금 너에게 전화하려던 참이었어.”고은서가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다.“잠깐만, 나 먼저 얘기할래!”박지연이 말했다.“우리 팀원들이 단체워크숍을 가기로 했는데 가족도 함께 갈 수 있대. 온 닥터는 시간이 안 되어서 네가 나랑 함께 가줘!” 고은서가 물었다.“어제는 왜 얘기 안 했어? 이렇게 갑자기?” “어제는 너를 데려갈 계획이 없었어. 오늘 온 닥터가 마침 시간이 안 되니까 네가 대신 가달라고 부탁하는 거야.”박지연이 대답했다.“우리 정말 오랜만에 함께 놀러 가는 거잖아. 지금 어디야? 내가 데리러 갈게.” “아참, 네가 전화한 이유는 뭐야?”박지

  • 어게인, 비긴   제211화

    곽승재가 그녀에게 회사 사람들이 토요일에 운호 산장에서 단체워크숍을 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우연히 맞아떨어질 수는 없잖아. 박지연도 이곳을 선택했다고?’고은서는 박지연을 옆으로 끌어당기며 물었다.“솔직히 말해봐, 곽승재와 짜고 온 거야?”박지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뭘 짜?”“모르는 척하지 마.”고은서는 박지연을 노려보며 말했다.“너 언제 곽승재에게 매수된 거야?”며칠 전 병원에서 만났을 때 박지연은 워크숍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는데 오늘 갑자기 결정하고 이곳에 왔다. 게다가 고은서에게 구체적인 장소도 알려주지 않았던 것은 그녀의 의심을 피하려고 했던 것이다.고은서를 더 이상 속일 수 없다는 것을 보자 박지연은 그냥 헤헤 웃었다.“매수라고 하긴 그렇고, 우리 부서 몇 명끼리 정말로 놀러 오려고 했어. 마침 승재 씨가 이곳에 온다고 했거든. 또 워크숍 하는 김에 함께 하자고 초대해서 그냥 거절하지 않은 것뿐이야.”고은서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박지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너 원래 이런 작은 이득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었어?”“작은 이득이 아니지, 운호 산장은 소비가 엄청나. 게다가 최상급의 천연 온천이라 미네랄 성분이 풍부해서 피부 요양과 회복에도 좋대. 너에게 딱 맞잖아! 내 전 재산을 걸고 말할게. 진심으로 너를 생각해서 그런 거야.”박지연이 대답했다.“전 재산까지 건다고? 전 재산 안 아까워?”고은서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뭐가 아까워.”박지연은 고은서를 안으로 밀며 말했다.“승재 씨도 그렇게 무서운 사람은 아니야. 네가 예전에 가장 사랑했던 남편이잖아!”고은서는 한 대 치고 싶은 생각을 겨우겨우 참았다.“박지연, 네가 말한 대로 그건 예전의 일이고, 지금 나는 그와 아무런 관계도 없어. 네가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뭐야?”“이혼하더라도 완전히 연락 끊고 지낼 필요는 없잖아?”박지연은 그녀의 팔을 감싸며 말했다.“게다가 너희는 아직 부부잖아. 어차피 여기서 그를 안 만나도 집에 가서 만날

  • 어게인, 비긴   제212화

    이곳 객실의 인테이러는 한옥의 독특한 분위기를 창출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전통과 현대적인 요소를 혼합한 한옥 스타일로, 가구와 소품들이 현대적임에도 원목으로 나름의 톤을 맞추어 잘 어울렸다.고은서의 방은 박지연과 같은 층이 아니었다.그녀가 방문을 열어보니 넓고 큰 침대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정갈하고 흰 이불 위에 붉은 장미꽃이 놓여 있었고, 꽃잎도 많이 뿌려져 있어 분위기를 한 층 더 살려 주었다. 또 여러 가지 쌍으로 된 장식품들이 분위기를 은근히 애매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작은 여행 가방이 옷장 옆에 놓여 있었고 고은서는 가방을 열어보았다. 안에는 그녀의 수영복, 잠옷, 기타 갈아입을 옷들 등이 있었고, 스킨케어 제품과 화장품도 있었다. 확실히 이미숙의 손길이 느껴졌다. ‘다들 내 일정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모르는 건가?’고은서는 수영복을 꺼내 입었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며 약간 어색하게 느꼈다. 가슴 부분이 너무 많이 드러나지 않나 싶어서였다. 이 수영복은 원래 곽승재와 함께 온천에 가려고 사왔던 것이다. 곽승재가 냉정하게 거절한 뒤 그녀는 수영복을 넣어두었고 단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었다. 그냥 보기엔 꽤 평범한 스타일이었지만 막상 입어보니 너무 섹시한 핏이었다. 그때 외부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고은서는 박지연이라고 생각되어 문을 열며 물었다.“지연아, 이 수영복 좀 너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고은서는 멈췄다.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박지연이 아니라 훤칠하고 잘생긴 곽승재였다. 그는 오늘 캐주얼하게 흰색 폴로 셔츠와 검은색 슬랙스 바지를 입고 있어서 평소의 딱딱함은 사라지고 한결 느긋하고 편해진 느낌이었다. ‘이 시간에 GS그룹 직원들과 온천에 가거나 차를 마시고 있어야 하는데 왜 여기에 있는 거지?’곽승재의 검은 눈동자는 고은서를 응시하고 있었다. 몸에 타이트하게 달라붙는 수영복 디자인이 그녀의 허리를 한 손으로 잡을 수 있을 만큼 감싸고 있었다. 검은 천 아래 그녀의 가는

  • 어게인, 비긴   제213화

    전처럼 다시 차가워진 곽승재의 목소리가 들렸다.“이곳 웨이터분더러 다른 수영복을 가져오라고 했어. 지금 문 열고 가져갈래? 아니면 그냥 문 옆에 놔줘?” “그냥 문 옆에 두고 넌 나가!”고은서가 대답했다.곽승재가 떠나려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복도에서 기다릴게.”그는 이렇게 말한 후 수영복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내려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문 닫는 소리가 들렸다.고은서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새 수영복을 꺼내 갈아입었다. 이번 수영복은 비교적 보수적인 디자인이었고, 어깨가 별로 드러나지 않은 상의에 하의는 반 길이 스커트였다. 입어보니 훨씬 자연스럽고 편했다. 그녀는 가운을 걸치고 휴대폰을 들고 방을 나섰다. 곽승재는 복도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나오는 것을 보고 곽승재의 검은 눈동자는 그녀의 몸에 잠깐 머물렀다. 가운 밑으로 드러난 길고 흰 다리를 보며 그는 입술을 살짝 움직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자, 박지연 씨도 지금 온천 구역에 있어.”고은서는 여전히 말 못 할 어색함을 느끼며 대답했다.“내가 혼자 내려갈 테니 데려다 줄 필요는 없어.”“오늘 여기는 우리들만 이용할 수 있게 예약된 곳이야. 대부분이 GS그룹 회사 사람들인데 넌 내 아내로서 내가 신경을 안 쓸 수는 없지.”곽승재가 말했다.‘나에게 언제 신경 써준 적이 있다고 그래?’고은서는 속으로 불평했다.곽승재는 그녀의 속마음을 읽은 듯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예전엔 내가 소홀했어. 그때 못 해준 것들 지금 보충해 줄께.”“...”그의 상냥한 말투와 태도는 마치 어제 저택에서 싸웠던 일이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고은서는 더 신경 쓰지 않았고, 어차피 이 며칠만 참으면 끝날 것으로 생각했다.그의 말대로 이 산장에는 GS그룹 사람들로 가득했다. 온천 구역으로 가는 길에 그녀는 이미 여러 사람을 만나 인사를 나눴다. 그녀와 곽승재를 보며 그들은 매우 예의 바르게 불렀다.“대표님, 사모님.”또 많은 여성

  • 어게인, 비긴   제214화

    그의 몸이 반응을 일으킨 것 같았다.두 사람은 아직도 안고 있었고 아래의 온천탕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보고 있었다.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휴대폰을 꺼내 몰래 찍고 있었다. 아주 그냥 개망신 현장이었다.곽승재가 무슨 짓을 할까 봐 두려워서 고은서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 있지?’고은서는 곽승재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화난 표정을 보면서 곽승재는 팔에 살짝 더 힘주어 그녀를 높이 안아 올렸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그녀의 엉덩이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는 허리를 감싸며 가장 가까운 온천탕으로 걸어갔다. 걸으면서 두 사람의 몸은 매우 밀착되어 있었다. ‘오늘 이곳에 오지 말아야 했어. 왔어도 바로 가야 했어...’ 곽승재를 없는 사람으로 여기고 그냥 즐기라고 했던 박지연의 말을 들은 자신의 실수였다. 그건 다 헛소리였다. 곽승재는 절대 없을 수 없었고 그녀는 단 한 순간도 마음 놓고 즐길 수 없었다. 지금 그녀가 가장 원하는 건 쥐구멍에 숨는 것이었다. 고은서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의 머리카락 향기가 코에 스며들며 곽승재는 자신이 곧 못 참을 것 같다고 느꼈다. “너 또...”품에 있던 고은서는 그곳의 변화를 느끼고 바로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잔뜩 붉어진 얼굴과 분노가 들끓는 눈길로 그를 노려보았다. 부끄러움과 화가 뒤섞여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곽승재는 온몸이 근질근질 해났고 그는 가까스로 참으며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조금만 참아, 온천탕까지 몇 걸음 안 남았어.” 이 말이 지금 이 상황에서 너무 어색하게 들려왔다. “이 나쁜 XX...”고은서는 살기 어린 눈빛으로 그를 째려보았고 당장이라도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너 자꾸 이런 표정을 지으면, 우리 다시 방으로 돌아갈까?”곽승재의 낮은 목소리에는 위협뿐만 아니라 욕망으로 가득했다. 고은서는 지금 더 이상 그를 자극하면 그때는 말로만 위협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실행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부끄럽고 화가 나면서

최신 챕터

  • 어게인, 비긴   제712화

    “아니요, 은서 정말 능력 있어요.”“할아버지.”곽승재는 더 이상 듣지 않고 고준석을 부르며 고국성 부부에게 인사를 건넸다.“삼촌, 생신 축하합니다. 제가 준비한 작은 선물인데 받아 ㅜ세요.”곽승재는 고국성에게 자수정 상자를 건넸다.단은숙이 고국성을 대신해 선물을 받아 열어보았고 그것은 고국성이 좋아하는 고급 담배통이었다.고국성도 선물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고맙다. 승재야. 마음 많이 써주었구나.”“삼촌이 좋아하실 것 같아 지난번 경매에서 보고 괜찮은 것 같아 바로 사 왔어요.”곽승재도 담담히 웃으며 답했다.“은서야, 너는 무슨 선물 준비했어?”곽승재가 자연스럽게 고은서에게 물었다.고은서는 그를 째려보았다.‘일부러 이러는 거야!’그녀가 준비한 선물도 담배통이었는데 백화점에서 산 것이어서 곽승재의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곽승재가 먼저 선수를 친 상황에서 그녀는 준비한 선물을 자신 있게 꺼내 보일 수 없었다.“저희가 준비한 선물은 너무 커서 들고 다니기 어려워요.”민시후가 고은서의 기분을 눈치채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었다.민시후가 눈빛을 보내자 운전기사가 선물을 들고 들어왔다.고급 영양제뿐만 아니라 술, 담배 그리고 유명한 화가의 그림도 들어 있었다.고국성은 예술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우아함을 자랑하고 싶어 했고 특히 이런 고급스럽고 보기 드문 그림을 좋아했다.“시후, 안목이 좋네. 이 그림 정말 마음에 들어.”고국성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호칭마저 바꾸며 기쁜 마음을 가감 없이 표현했다.고국성이 고은서를 바라보며 말했다.“좋은 선물이구나. 이제 외삼촌한테 효도할 줄도 아네.”고은서는 민시후의 도움에 감사했다.하지만 곽승재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그는 고은서가 이런 자리에 민시후를 데려올 줄도 몰랐고 민시후가 이렇게까지 철저히 준비할 줄도 몰랐다.선물 경쟁에서 민시후는 완벽히 승리한 셈이었다.민시후는 고국성에게 그림을 선물했을 뿐만 아니라 단은숙에게 피부에 좋은 영양제를 고준석에게는 고급 옥돌

  • 어게인, 비긴   제711화

    갑작스러운 힘에 고은서는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그녀는 갑작스럽게 넓은 품에 안기게 되었다.익숙한 향기가 풍겨오자 고개를 돌린 고은서는 곽승재임을 확인했다.엘리베이터에서 막 내린 것인지 곽승재는 어두운 표정을 한 채 싸늘한 눈빛으로 민시후를 응시하고 있었다.“누구 허락받고 만지는 거야?”곽승재가 낮은 목소리로 묻자 민시후도 싸늘한 표정으로 답했다.“무슨 상관인데? 너는 왜 고은서를 당기는데.”그 상황을 본 고은서는 곽승재의 품에서 벗어나 민시후 옆으로 서서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여기 있어?”고은서의 물음에 곽승재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세심하게 꾸민 고은서는 평소보다 더 빛났다.심플하면서도 정교한 디자인에 몸에 맞는 흰색 드레스는 그녀를 완벽하게 감쌌다.드레스는 무릎까지 내려왔고 그녀의 가냘프고 흰 작은 다리가 드러났다. 그런 고은서의 모습은 마치 요정 같았다.흰색 정장을 입은 민시후와 함께 서 있으니 두 사람은 잘 어울리며 보기 좋았다.하지만 곽승재는 가슴 한편에서 묘한 답답함과 불편함을 느꼈다.“삼촌 생일이라 초대받아서 왔는데 내가 못 올 곳이라도 왔어?”곽승재가 차갑게 말하자 고은서는 콧방귀를 뀌었다.작년에 아직 이혼하지 않았을 때 그녀는 곽승재와 함께 외삼촌 생일 파티에 참석하려 했으나 곽승재는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했었다.그런데 이혼하고 나서 곽승재는 이제 더 이상 오지 않아도 되는 곳에 와있었다.정말 한심하고 우스꽝스러웠다.“고은서, 왔으면서 왜 들어오지 않고 여기 서 있어?”그때 고은혜가 연회장에서 나와 고은서에게 인사를 건넸다.동시에 고은혜는 민시후와 곽승재를 발견했다.민시후는 흰색 정장을 입고 굉장히 잘생기고 매혹적인 모습이었고 곽승재는 전형적인 검은색 고급 정장을 입고 차가우면서도 잘 생겼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았다.고은혜는 두 사람을 보고 상황을 짐작하고는 조심스럽게 고은서에게 물었다.“둘이 어떻게 같이 온 거야? 싸우기라도 할까 봐 걱정되네.”고은서는 고은혜를 흘깃 쳐다

  • 어게인, 비긴   제710화

    민시후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고은서, 함정 파려고 하지 마. 내가 사기꾼도 아니고 어떻게 널 가르쳐?”두 사람이 말다툼하는 동안 한 직원이 부러워하며 말했다.“대표님, 여자 친구분과 사이가 정말 좋아 보이네요.”“저는...”“말 잘하네. 전부 다 살게.”기분 좋아진 민시후가 큰손다운 기질을 발휘했다. 그 말에 직원들은 하나같이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은서는 해명하려 했지만 끼어들 수 없어서 그냥 포기했다.민시후는 그런 고은서를 보며 더욱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옷을 갈아입고 액세서리와 메이크업을 하자 두세 시간이 지나갔다.고은서는 거울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전문적인 손길이 그녀의 모든 장점을 부각해 놓았다.민시후는 흰색 정장을 입고 머리를 뒤로 빗어 올린 채 나타났다.다른 사람이 입는다면 소화하기 힘든 스타일을 민시후가 입으니 타고난 고급스러움과 매혹적인 느낌을 발산했다.두 사람은 출발 시간이 되어갈 즘 준비를 끝마쳤다.민시후의 비서는 여러 개의 선물을 들고 그들을 따라 주차장으로 향했다.고국성의 생일 파티는 오성급 호텔에서 열릴 예정이었다.운전기사가 호텔 정문에 차를 세우자 곧 호텔 직원들이 다가와서 차 문을 열어줬다.차에서 내린 민시후가 고은서를 향해 팔을 내밀며 팔짱을 끼라는 신호를 보냈다.비록 파티에 걸맞은 행동일 뿐이지만 오늘 파티는 고씨 집안 모든 사람과 친분이 있는 친구들과 고객들이 모이는 자리였다.고은서가 민시후와 팔짱을 끼고 들어가면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될 것은 뻔했다.“민시후, 오늘 외삼촌 생일이니 그분이 주인공이야. 우리가 주목받는 건 좀 아닌 것 같아.”고은서는 어제 박지연이 흥분하며 했던 말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그리고 말조심해 줘.”자신이 한 말들이 민시후의 기분을 상하게 할 것이라는 걸 안 고은서가 덧붙였다.“오해하지 마. 네가 예의를 모른다고 강조하는 게 아니라 그저 어색한 상황이 되는 걸 원하지 않아서 그래. 너를 향한 내 마음에 확신이 생긴다면

  • 어게인, 비긴   제709화

    고은서가 담담하게 말했다.“설령 곽승재가 직접 이 프로젝트를 담당한다고 해도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야. 난 이미 아무 감정도 없거든.”민시후는 여전히 불안해하며 말했다.“우리 다른 프로젝트로 바꾸자. 신재생에너지 쪽도 괜찮아 보이잖아.”“신재생에너지도 좋지. 하지만 왜 제인 제약을 포기해야 해?”고은서가 말을 이었다.“네 말대로 곽승재가 나 때문에 이 프로젝트에 끼어든 거라면 내가 신재생에너지를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끼어들지 않을까? 그럼 우린 매번 다 된 프로젝트를 포기하게?”민시후가 태연하게 답했다.“너를 양보하는 것만 아니라면 프로젝트는 상관없어.”고은서가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세상에 소문난 난봉꾼인 민 도련님이 이런 순진한 연애 바보였다니.”민시후가 고은서에게 다가가 중점만 잡아내며 말했다.“고은서, 네 말은 우리 사이가 연인 관계라는 거지?”고은서는 말문이 막혔다.“장난하지 말고 인제 제약 프로젝트는 포기할 수 없어.”고은서가 결정을 내리며 말했다.“송민아한테 계약서와 계획서를 수정하게 하고 내일 투자부 직원들을 모아 회의를 열 거야.”판주 투자은행과 공동투자를 하더라도 제인 제약은 매우 좋은 프로젝트였다. 고은서는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민시후는 고은서를 바라보며 다소 아쉬운 듯 말했다.“그렇다면 내일 회의는 내가 주재할게. 나도 직접 참여해야겠어.”고은서가 어이없다는 듯 답했다.“민시후, 최근에 다쳐서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을 텐데 이건 신경 쓰지 않아도 돼.”“그건 안 돼. 곽승재는 교활한 사람이야. 방심하고 있을 수는 없지.”민시후는 단호히 거절했다.그 말을 들은 고은서는 웃기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좋아. 네 말대로 하자. 그럼 난 먼저 사무실로 돌아갈게.”고은서가 돌아가려고 하자 민시후가 그녀를 불러세웠다.“잠깐만.”“왜?”고은서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이따 네 외삼촌 생일 파티에 가야 하잖아. 옷 좀 골라줘.”민시후는 말을 마치고 전화를 걸

  • 어게인, 비긴   제708화

    “비록 이혼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지연이뿐이야.”온승준이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유혜린도 자존심이 있었기에 온승준에게 여러 차례 거절당하자 입을 틀어막으며 자리를 떴다.온승준은 그녀를 쫓지도 않고 신경 쓰지도 않은 채 피곤한 모습으로 복도에 앉았다....고은서는 박지연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그녀에게 이후의 상황을 물었다.육현석이 박지연에게 고백했다는 말을 듣고 고은서는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내가 뭐랬어! 너를 좋아하는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요즘 아무것도 안 하고 일에만 집중했을까?”박지연은 육현석이 했던 말을 고은서에게 전했다.고은서도 육현석의 행동에 감동하며 말했다.“정말 대단하다. 모든 걸 다 생각해 놓았잖아. 지연아, 너도 받아들여. 비록 곽승재의 친구이긴 하지만 곽승재보다 훨씬 믿음직스러워. 나는 두 사람이 잘되길 응원해.”박지연이 소파에 누우며 답했다.“나는 육현석과 이어질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어. 오늘 그 사람 말 듣고 정말 놀랐어. 바로 결정 내리기는 힘들 것 같아.”“왜? 아직 온 선생님께 미련이라도 남았어?”고은서가 묻자 박지연은 고개를 저으며 오늘 온승준과 있었던 일들도 고은서에게 얘기해 주었다.“생각해 보니 참 슬프더라. 결혼해서 2년 넘게 살았는데 내 억울함을 전혀 몰랐다는 게 말이야. 애먼 사람한테 괜한 기대를 했어.”“지연아, 지금까지 너무 힘들고 고된 시간을 보냈잖아. 이제 놓아버리고 새 삶을 맞이해.”고은서가 안타까워하며 격려했다.박지연도 미소 지으며 말했다.“응. 노력할게.”“맞다. 외삼촌 선물은 뭐 샀어? 내일 민시후랑 같이 집에 갈 거라며? 어떻게 소개하려고?”박지연이 고은서에게 묻자 고은서가 답했다.“친구라고 평범하게 소개하려고.”“집안 모임에 데려가는데 친구라도 해도 평범한 친구는 아니지 않아?”박지연이 갑자기 기대에 찬 듯 말했다.“민시후가 이 기회에 또 고백하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시간 좀 달라고 했으니 함부로 행동하지는 않을 거야.”...다음날은

  • 어게인, 비긴   제707화

    조수연의 불쾌한 표정을 마주하고도 온승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혜린이 적절한 타이밍에 작별을 고하며 말했다.“어머님, 시간이 꽤 늦었네요. 내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내일은 굳이 오지 않아도 돼. 어머니를 위해 간병인 구할 거야.”온승준이 바로 말했다.유혜린은 잠시 멈칫했지만 아무 말 없이 가방을 들고 병실을 나섰다.조수연은 몹시 불쾌해하며 말했다.“승준아, 너 도대체 뭐 하는 거니! 혜린이 또 뭘 잘못했다고 그래!”온승준이 싸늘하게 답했다.“예전에 지연이가 밤낮으로 어머니를 돌봤을 때는 한 번도 고맙다는 말 하지 않으셨잖아요.”“뭘 고마워해야 해? 아픈 시어머니를 돌보는 건 당연한 일 아니야?”조수연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손에 든 건 뭐야? 어디서 났어?”말을 마친 조수연은 온승준 손에 들려있는 선물 상자를 보고 불현듯 깨달았다.“박지연이 다녀갔니? 뭐야, 겨우 볼품없는 물건 가져와 놓고 오늘 일은 없었던 일로 하겠다는 거야? 얼굴 한 번 비추지 않고 가버린 건 양심에 찔려서 그런 거 아니야?”“제가 들어오지 말라고 했어요.”“왜? 내가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 너 정말 그 애를 지나치게 감싸고 도는구나.”조수연이 화를 냈다.온승준은 조수연과 다투지 않고 화장실에서 나오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단호히 말했다.“아버지, 어머니. 오늘 밤 일은 이대로 끝낼 거예요. 저는 누구의 책임도 묻지 않을 거고 경찰서에 가서 사건을 철회할 생각이에요.”온승준은 두 사람에게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그리고 다시는 집 비밀번호 타인에게 알려주는 일 없도록 하세요. 집 비밀번호 교체하겠습니다. 제 허락 없이는 누구도 함부로 드나들 수 없을 겁니다.”“너... 너... 지금 내가 혜린이에게 비밀번호 알려준 거에 불만을 품고 이러는 거야?”화가 난 조수연은 상처가 아파졌다.“박지연 때문에 정신 못 차릴 정도로 술을 마신 너를 혜린이가 착하게도 집에 데려다준 건데 비밀번호도 알려주지 않으면 집은 어떻게 들어가? 그리고 혜린

  • 어게인, 비긴   제706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던 박지연이 말했다.“더 할 말 없으면 먼저 가볼게.”“아직 할 말 있어!”온승준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그날 내가 술에 취했던 날 밤, 차 안에서 잠들어 버렸어. 유 닥터가 운전기사에게 날 부축해 집으로 올려보내라고 했어. 나는 유 닥터가 돌아가지 않은 줄도 몰랐어. 그저 침대 옆에 앉아 밤을 보냈을 뿐 우린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온승준이 드물게 상황을 설명했다.박지연은 지금 이 상황이 우스웠다.“왜 나한테 설명하는 거야? 우리 지금 아무 사이도 아니야.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나랑 무슨 상관이야?”온승준은 박지연의 말에 잠시 말문이 막혔지만 끝까지 하고 싶던 말을 이어갔다.“지연아, 네가 우리 관계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거 알아. 혹시라도 널 찾으러 가면 폐를 끼칠까 봐 요즘 너를 찾지 않았어. 하지만 이 일은 꼭 말해주고 싶었어.”온승준은 평소 잘 하지 않던 긴말을 이어가며 다소 급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려 애쓰는 것이 눈에 보였다.박지연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온승준, 이미 이혼한 사이에 무슨 해명이야? 이혼 하기 전에는 이런 얘기 하지도 않았잖아. 그때는 내가 오해할지 걱정도 하지 않았지?”온승준이 솔직히 답했다.“내가 그런 부분에 소홀했어. 난 우리가 꽤 잘 지낸다고 생각했어. 네가 그렇게 많은 걸 참고 있었는지는 몰랐어.”“몰랐다고?”박지연은 결국 참지 못하고 따지듯 말했다.“당신 어머니가 유혜린을 집에 부르고 날 불러 요리시켰던 날 내가 손을 데었을 때 당신은 날 병원에 데려다주지도 않고 내 상태를 물어보지도 않았어. 그런데 우리 사이가 원만했다고? 내가 정말 서운하지 않았을 거로 생각한 거야? 온승준, 모든 걸 둔감했던 탓이라고 돌리지 마. 넌 내가 알아서 나을 거로 생각했겠지. 그래서 나에게 시간 쓰는 걸 낭비라고 여긴 거야.”온승준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지연아, 그런 게 아니라 그때 내가 병원에 같이 가겠다고 고집

  • 어게인, 비긴   제705화

    박지연과 육현석은 병원에서 먼저 의사로부터 조수연의 상태를 확인했다.조수연은 이마에 타박상을 입었고 팔꿈치와 몸 여러 곳에 찰과상이 있었다. 가장 심각한 것은 허리와 다리로 다양한 정도의 골절을 입어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아야 했다.다행히 에스컬레이터 높이가 높지 않았고 조수연이 머리부터 떨어지지 않아 내상을 입지 않았다.상태를 확인한 후 병실로 병문안 가려던 박지연은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온승준을 발견했다.캐주얼한 옷을 입은 온승준은 큰 키에 곧은 체형을 가지고 있었다. 늘 무표정하던 잘생긴 얼굴에는 약간의 피곤함마저 느껴졌다.육현석이 먼저 앞으로 나서며 부하가 준비한 선물 상자를 온승준에게 건넸다.“온승준 씨, 오늘 밤 일은 정말 죄송합니다. 어머님의 치료비와 관련 비용은 백화점에서 책임지겠습니다. 혹시 어머님께서 다른 요구가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세요.”“너무 무리한 요구는 하지 말아야지.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니 백화점 측에서도 즉각 대처하지 못한 것도 당연한 일이야.”박지연이 덧붙였다.조수연은 자신을 귀부인으로 여기는 사람이어서 돈을 뜯어낼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화풀이 삼아 끝까지 물고 늘어질 가능성은 있었다.박지연의 말을 듣고도 온승준의 표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육현석의 선물도 받지 않고 입을 열었다.“육현석 씨, 경찰을 통해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했습니다. 오늘 밤은 저희 어머니가 잘못한 일이니 여러분과는 무관합니다. 이 얘기를 하려고 나온 거예요. 그러니 그 어떤 배상도 책임도 필요 없습니다.”“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져야 할 책임은 반드시 지겠습니다. 경찰 쪽은 제 변호사가 처리 중이고 이후 문제도 변호사를 통해 협의하도록 하시죠. 저희는 여사님을 방문하여 직접 사과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왔습니다.”온승준이 완곡히 거절했다.“괜찮습니다. 어머니는 주무시고 계십니다. 깨어나시면 다녀가셨다고 전해 드리겠습니다.”온승준의 말을 듣고 박지연은 조수연이 사실 잠들지 않았음을 바로 알아차렸다.‘오

  • 어게인, 비긴   제704화

    그러나 박지연은 실패했다.그 후로 박지연은 더 이상 사랑을 믿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조차 두려워졌다.하지만 지금 육현석은 그녀의 옆에 앉아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고백하고 있었다.그는 그녀의 모든 걱정을 고려하고 해결책까지 내놓았다.심지어 그녀가 성공한 남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해 자신을 그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하기까지 했다.이런 진심 어린 마음에 어떤 여자가 감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박지연은 드물게 약간 쉰 목소리로 말했다.“육현석, 나는 네가 이렇게까지 좋아해 줄 만한 사람이 아니야. 네가 실망할까 봐 두려워.”육현석이 낮게 웃으며 답했다.“그게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널 좋아한 건 내 선택이야. 넌 그 무엇도 두려워할 필요 없고 다른 사람이랑 널 비교할 필요도 없어. 지연아, 너는 이미 그 자체로도 훌륭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야.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 한 번의 실패한 결혼 때문에 너 자신을 의심하지 마.”육현석의 말에 박지연은 다시 마음이 따뜻해졌다.그녀는 지금껏 자신을 이렇게 감동하게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육현석이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아니면 여자를 많이 만나본 사람답게 능숙한 말솜씨로 현혹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박지연은 그저 그에게 감사했다.박지연도 진심을 담아 입을 열었다.“육현석, 고마워. 네 말처럼 나는 방금 실패한 결혼에서 벗어난 상태라 이렇게 빨리 새로운 감정을 시작할 용기가 없어. 네가 한 말들은 정말 고맙게 생각해. 하지만 나 때문에 너를 바꾸지는 마. 사업하기 싫으면 굳이 억지로 하지 않아도 돼. 성공적인 사업가라는 이미지가 남자의 매력을 더해주는 건 맞지만 내가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이 단지 그것만은 아니야. 네가 무리하면 오히려 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육현석이 웃으며 답했다.“사실 꼭 너 때문에 변하려는 건 아니야. 우리 아버지도 이제 곧 환갑이잖아. 이미 오래전부터 내가 가업을 물려받길 바라셨어. 그동안은 좀 더 놀고 싶어서 미뤘던 건데 이제는 놀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