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142화

작가: 류한나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백유미 씨, 커피 한잔할까요?”

서인수의 두 눈에 떠오른 조급함과 절박함을 본 백유미는 마음으로 싫증이 났지만 얼굴에는 직업적인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좋아요.”

두 사람은 병원 옆 카페로 향했다.

서인수는 먼저 지난번에 백유미가 나서 도와준 일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나서 판주가 그의 새 와이너리에 투자하기를 희망한다는 것을 제기했다.

백유미는 조금의 희망도 남겨주지 않고 그를 향해 말했다.

“서인수 씨, 지금 이런 상황에서 투자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서인수는 이내 표정이 어두워진 채 자신의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그 더러운 년이 내 명성을 더럽혔어요. 나를 차버리고, 또 나를 이용해 불쌍한 척해서 지금 이렇게 잘나가는 거예요. 나는 투자 하나 유치하지 못하니 업계 사람들도 공공연하게 나를 업신여겨요.”

이에 백유미가 대답했다.

“도 대표님은 능력도 좋고 운도 좋아요. 경제가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사람도 있고 매출이 안 되면 인지도도 높여주고, 투자 유치에도 도움을 주기도 하죠.”

서인수는 당연히 백유미가 말한 것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그가 오늘 그녀를 찾아온 것도 염탐하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곽 대표님의 아내인데 어떻게 그렇게 나쁜 사람을 도울 수 있단 말인가요? 설마 이것은 곽 대표님의 뜻인가요?”

백유미는 웃으며 대답했다.

“곽 대표님의 뜻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사람을 시켜 그날에 대한 보도의 진실성과 곽 대표님과 부인의 관계가 도대체 어떤지를 물어볼 수 있어요. 그러면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백유미는 비록 이 말을 공개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서인수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다. 곽 대표님은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아 명운를 돕는데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는 백유미의 말뜻을 대뜸 알아챘다.

마음속에 답이 생긴 서인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백 이사님, 커피 같이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공장을 더 크게 만들고 더 잘되면 우리가 협력할 그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나도 그날을 기다릴게요. 하지만 그 전에서 대표님께서
잠긴 챕터
앱에서 이 책을 계속 읽으세요.

관련 챕터

  • 어게인, 비긴   제143화

    마침, 이틀 전 고은서가 반값으로 중고 사이트에 내다 판 것과 같은 제품이었다.아마도 가격이 낮아서인지 당일날에 이미 주문을 넣고 사 간 사람이 있었다.‘지금 그 귀걸이가 어떻게 은혜한테 나타난 거지?’“너 이 귀걸이 참 괜찮아 보이네. 어디서 산 거야?”고은서는 직접적으로 물었다.고은혜는 등의 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뭘 좀 아는구나. 이건 G사에서 출시한 신상 귀걸이야. 구하기 엄청 힘든 건데 지훈 씨가 친구한테 부탁해서 어렵게 사서 나한테 선물해 준 거야.”“은혜 씨의 화를 풀 수만 있다면야 더한 것도 다 해줄 수 있어요.”원지훈은 입만 열면 애매한 멘트를 해댔다.고은혜는 그를 한 번 노려보더니 다시 눈길을 고은서에게 돌리고는 도발적으로 물었다.“왜 내 귀걸이를 자꾸 뚫어지게 쳐다보는데? 왜? 부러워? 형부가 설마 너에게 귀걸이도 선물 안 해줘?”‘선물해 줬지. 근데 내가 버린 것이 지금 네 귀에 걸려있네.’고은서는 당연히 이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이틀 전에 중고 사이트에서 비슷한 제품을 봐서 혹여나 네가 걸고 있는 게 짝퉁일까 봐 몇 번 더 쳐다본 것뿐이야.”고은서의 말에 원지훈의 얼굴에는 부자연스러운 낌새가 스쳐 지나갔다. 그는 연신 둘러댔다.“누나, 내가 산 게 짝퉁일 리가 없어요. 비록 친구가 증서를 잃어버리긴 했지만, 매장에 가서 진품 검진을 받아봤어요. 절대로 문제없어요!”고은서는 살짝 위로의 말을 했다.“난 그저 비슷한 걸 봤다는 거지 네가 선물한 게 가짜라는 말은 아니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게다가 넌 딱 봐도 중고 사이트에서 선물을 사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는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고은서는 말을 보충했다.원지훈은 큰 소리로 말했다.“저는 절대로 그럴 리 없어요! 저는 은혜 씨가 오해할까 봐 그런 거죠. 은혜 씨가 좋아하는 게 있으면 나중에는 저랑 같이 고르러 가요!”“상대하지 마세요. 얘는 그저 내가 선물을 받았는데 자기는 없어서 그게 아니

  • 어게인, 비긴   제144화

    주요하게 평상시 외숙모가 고은혜에게 주는 영향이 너무 컸다.그래서 고은혜가 이렇게 원념이 깊게 쌓인 것이었다.고은서는 고은혜랑 이런 일로 싸우고 싶지 않아서 대답했다.“잠시 후에 보내줄게.”“아, 참. 지난번에 봤을 때 네가 지훈 씨한테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던데 어떻게 짧은 며칠 사이에 두 사람 관계가 그렇게 좋아졌어?”고은서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관심 꺼!”고은혜는 전화를 끊어버렸다.“...”고은서는 중고 사이트 사진을 캡처해서 고은혜에게 보내준 뒤 복싱 관을 나섰다.차에 올라탔을 때, 그녀는 뒤에서 누군가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느꼈다.하지만 뒤돌아보았을 때 이상한 사람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헛것을 봤나?’고은서는 액셀을 밟고 예원 별장으로 돌아왔다.이미숙은 얼른 달려와 말을 건넸다.“사모님, 도련님은 이미 돌아와 계십니다. 지금은 위층 서재에서 업무 처리 중입니다. 제가 방금 차를 내렸는데 위층에 가져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도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손목이 아직 아프시다고 하셔서 연고도 같이 올리려던 참이었습니다. 이것도 같이 부탁드리겠습니다.”“아, 그리고 사모님 언제 돌아오시는지도 물었습니다.”이미숙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면 계속 중얼중얼할까 봐 고은서는 얼른 차와 연고를 건네받았다.“네. 제가 할게요.”차를 들고 위층 서재로 걸어간 뒤 고은서는 문을 똑똑 두드렸다. 안에서 곽승재의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들어오세요.”고은서는 문을 비스듬히 열었다. 곽승재는 커다란 책상 앞에 앉아 있었으며 그의 앞에는 노트북이 놓여있었고 손에는 서류들이 들려있었다.그의 표정은 엄숙하고 진지했으며 미간은 저도 모르게 찡그려져 있었다. 그는 몸에서 업무적인 근엄함과 엄숙함을 내뿜고 있었다.들어온 사람이 이미숙인 줄 알고 곽승재는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물건은 내려놓아 주시면 됩니다.”고은서는 그의 말대로 차와 연고를 옆에 두었다. 아마도 다가온 사람의 기운이 틀려서인지 곽승재는 고개를 들었다.고은서를 보더니

  • 어게인, 비긴   제145화

    고은서는 곽승재를 한 눈 보고는 말했다.“당신 핸드폰 좀 빌려 쓸 수 있어?”“당신 핸드폰은? 배터리가 다 되었어?”“아니. 당신 핸드폰으로 인스타 좀 보려고. 걱정하지 마. 절대로 당신 사생활을 엿볼 생각은 없어.”고은서는 사실대로 말했다.“내 계정으로는 은혜 인스타를 볼 수가 없어. 당신 핸드폰으로 좀 보려고.”곽승재는 입술을 오므리더니 핸드폰 잠금을 풀어서 고은서에게 건네주었다.“고마워.”핸드폰을 건네받은 고은서는 먼저 인스타를 열어 바로 고은혜의 계정을 검색하였다.안에는 고은혜가 곽승재에게 보낸 DM 안부 메시지도 있었다.하지만 곽승재는 그녀를 대꾸할 여념이 없었으며 한 번도 답장한 적이 없었다.고은혜의 인스타를 열어보니 역시나 곽승재는 차단하지 않았다.곽승재의 계정으로는 그녀의 모든 게시물을 다 볼 수 있었다!이런 차별 대우에 고은서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고은혜가 외할아버지의 친 외손녀인 것을 생각해서지, 아니면 고은서는 정말 고은혜의 일에 전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고은혜는 정말 인스타를 올리기 좋아했다. 거의 매일 올리다시피 했으며 아침에 먹은 것부터 해서 저녁에 잠자는 것까지 여러 가지로 다양하게 올렸다.하루 전의 게시물이 고은서의 눈길을 끌었다.[별똥별이 참 이쁘네요. 이런 일을 겪은 것도 참 아슬아슬했네요. 그래도 위험에서 벗어났으니 정말 다행이네요. 세상에는 참말로 내가 언뜻 한 말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네요. (귀엽)]밤하늘 사진을 몇 장 올렸으며 그중 한 장에는 은은하게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외숙모라면 아마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지만 고은서는 뒷모습으로 그 사람이 원지훈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래서 전날 밤에 은혜가 지훈 씨랑 같이 별 보러 갔었고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거지?’고은서는 고은혜가 인스타에 올린 아슬아슬했다는 일이 사실은 원지훈이 계획한 일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지난번 그 일이 파괴되었으니 지훈 씨가 이번에 또 이런 일을 새로 벌인 거네. 그러니 은혜가 지훈 씨의

  • 어게인, 비긴   제146화

    박스 크기를 봐서 액세서리 같아 보이지는 않았고 오히려 무슨 장식품 같았다.고은서는 걸어가서 박스를 열어보니 아주 특별하고 정교하고 아름다운 토끼 모양의 스탠드였다.토끼는 크리스털로 만들어졌고 두 눈은 빨간 보석으로 장식되었다. 스위치를 누르니 토끼의 몸에서 온화하고 부드러운 흰색 광을 내뿜었으며 눈 주변에는 연한 빨간색을 띠고 있었다. 참으로 아름답고 정교했다.그날 저녁 레스토랑에서 고은서가 토끼 모양을 한 램프를 만지는 것을 보고 곽승재는 그녀가 토끼를 좋아하는 줄로 추측해서 그녀에게 데리고 온 것 같았다.비록 고은서는 곽승재의 물건을 받고 싶지 않았지만, 토끼가 너무 귀여운 걸 봐서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은서는 결국 토끼 스탠드를 침대 머리맡에 두었다.오후의 훈련이 너무 힘들었기에 고은서는 시원하게 반신욕을 하였다.욕실에서 나오자, 저녁 밥상이 준비 되었다고 이미숙이 말했다.고은서는 머리에 머릿수건을 두른 채 편안한 실내복을 입고 층계를 내려가려고 했다.마침, 서재에서 나오는 곽승재와 마주쳤으며 그는 고은서의 차림새를 보더니 그녀의 얼굴을 몇 번 흘겨보았다.고은서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곽승재를 한 눈 째려보고는 말했다.“보긴 뭘 봐. 여자 생얼을 처음 보나!”말을 마친 뒤, 그녀는 슬리퍼를 끌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고은서는 요즘 외출할 때 빼고는 집에서 거의 맨얼굴로 있었다. 차림새도 예전처럼 정교하고 완벽하게 꾸미진 않았다.곽승재도 당연히 그녀의 맨얼굴을 보았었다. 하지만 샤워를 마치고 나온 모습은 처음이었다.피부는 불그스름하고 촉촉했으며 분홍색 머릿수건을 두르고 있으니, 어딘가 모르게 장난기 있고 천진난만해 보였다.곽승재는 방금 왠지 모르게 고은서의 볼을 꼬집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아래층에서 고은서는 참지 못하고 먼저 수저를 들었다. 그녀는 오른손에 숟가락을 들고 국을 마시고 있었고 왼손에 닭 다리를 쥐고 아주 신나게 먹고 있었다.게다가 입에는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아줌마, 어떻게 된

  • 어게인, 비긴   제147화

    곽승재의 이유는 꽤 정당했다.고은서가 피식 웃더니 말했다.“사인하면 끝나는 일인데 뭐가 번거로워? 그리고 당신 조건이라면 마누라가 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설 텐데.”고은서는 일부러 백유미를 언급하지 않았다. 곽승재가 또 백유미를 빌미로 말한다고 생각할까 봐서였다.“당신 새 아내는 분명 나보다 할머니에게 잘할 거야. 그럼 할머니 기분 나쁠 일도 없겠지.”전미자가 그녀를 아꼈지만 그건 모두 손자며느리라는 신분 때문이라는 걸 고은서는 알고 있었다.곽승재는 그녀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고은서, 우리 결혼생활에 뭐가 갑자기 그렇게 불만이라서 서둘러 끝내지 못해 안달이야?”5주년 기념일에 함께 하지 못해서 그녀에게 혼자 선물을 사라고 했고, 곽승재가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해서 요즘은 최대한 많이 돌아오려고 노력하고 있고, 옷도 옷방에 옮겨 입고, 잠도 안방에서 자고 있다.이 모든 것은 전부 고은서의 요구사항이었고 그가 지금 다 해내고 있는데 왜 그녀는 여전히 불만일까?남자가 따져 묻자 고은서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내 불만을 당신이 모르는 게 가장 큰 불만이야.”곽승재는 할 말을 잃었다.더 이상 고은서와 입씨름하지 않고 젓가락을 들어 밥을 먹기 시작했다.그야말로 싱거운 한 끼 식사였지만 물론 그건 곽승재의 일방적인 생각이었다.고은서는 그래도 맛있게 잘 먹었다. 고기도 많이 먹고 국물도 많이 마시고 죽도 한 그릇 싹 비웠다.배불리 먹고 나서 그녀는 동그란 아랫배를 토닥이며 말했다.“아주머니, 나 산책하러 가요!”말을 마친 그녀는 긴 외투를 아무렇게나 걸치고 문을 나섰다.날이 이미 어두워져 사방의 불빛이 밝아졌다.별장 구역의 녹화가 잘 되어 있어 곳곳에 잔디와 나무가 있었고 멀지 않은 곳에 작은 호수도 있었다.고은서는 풍경을 감상하면서 천천히 소화를 시켰다.그녀가 호숫가의 한적한 곳을 걷고 있을 때, 검은 캡을 쓴 두 남자가 갑자기 그녀의 길을 막았다.“당신들 뭐야?”고은서가 경계하며 뒤로 물러섰다.갑자기 훈련관 밖에서 누군

  • 어게인, 비긴   제148화

    그러자 남자는 뭐라고 적힌 종이 한 장을 고은서 앞에 내밀었다.고은서는 물론 함부로 서명할 엄두가 나지 않아 동의하며 종이를 받아 그들이 긴장을 풀게 한 뒤 휴대전화로 경찰에 신고하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휴대전화에 손을 대는 순간 등 뒤에서 갑자기 누군가 손을 내밀어 그녀를 뒤로 밀었다.“악!”고은서는 놀라서 비명을 지르고 주먹을 휘두르고 다리를 허우적대며 상대와 싸우려 했다.“잘 봐. 나야!”익숙한 곽승재의 목소리에 고은서는 그제야 몸부림을 멈췄다.그녀가 고개를 들자 과연 곽승재의 얼굴이 보였다.하지만 여기는 좀 외지고 가로등 불빛도 어두워 고은서는 곽승재의 표정이 잘 안 보였다.“당신이 여긴 어쩐 일이야? 방금 그 사람들은?”고은서가 겁이 나서 고개를 돌려 보니 그림자도 없었다.“도망갔어.”곽승재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산책한다더니 왜 여기까지 왔어?”방금 날카롭게 세웠던 긴장감이 갑자기 풀리고 나니 고은서는 다리가 나른해져서 아예 옆에 있는 돌에 털썩 주저앉았다.“그냥 생각 없이 걷다가 여기까지 왔어. 그런데 저런 사람들을 마주칠 줄 어떻게 알았겠어. 신고해! 얼른 경찰에 신고해.”고은서가 휴대전화를 꺼내자 곽승재가 엄숙하게 말했다.“됐어. 경찰이 와도 이미 아무런 증거도 없어. 내가 사람 시켜서 조사할게.”“증거가 왜 없어?”고은서는 그 종이를 들어 올리려고 보니 손이 텅 비어 있었다.곽승재는 그녀의 생각을 알아채고 차근차근 설명했다.“딱 봐도 베테랑이야. 눈치 채고 종이를 뺏어 도망쳤는데 무슨 증거를 남겼겠어?”고은서는 휴대전화를 꺼내 경찰에 신고하는 데 여념이 없어 곽승재의 접근도 눈치채지 못했다.“일단 가자.”곽승재가 재촉하자 고은서가 고개를 저었다.“잠깐. 다리에 힘이 풀려서 좀 더 쉬어야겠어.”곽승재가 무슨 표정으로 그녀를 흘겨보았는지 모르지만 뜻밖에도 그녀 앞에 반쯤 쪼그려 앉았다.고은서는 그의 이 동작의 뜻이 좀 믿기지 않았다.“빨리 안 올라와?”곽승재가 인내심을 잃고 재촉하자 고은

  • 어게인, 비긴   제149화

    고은서는 지금 그와 말다툼할 기분이 아니었다.그가 자신을 엎고 싶어 하든 아니든 어쨌든 힘든 건 그녀가 아니었다.오랫동안 그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으니 이번에는 그녀가 누리는 복리후생이라 생각하기로 했다.그러자 고은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곽승재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몸을 뒤로 젖혀 그를 노동자로 여기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곽승재는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잠시 화를 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몰랐다.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다정해 보이면서도 왠지 모르게 거리감 있는 자세로 집에 도착했다.고은서가 내려가 신발을 갈아 신으려는데 곽승재가 여전히 그녀를 업고 있다.“나 업고 위층에 올라가려고?”“어차피 여기까지 업고 왔는데 뭐.”말하면서 그는 그녀를 업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인기척을 듣고 나온 이미숙이 부부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 활짝 웃더니 급히 부엌으로 숨었다.그녀의 행동을 전부 지켜본 고은서는 할 말을 잃었다.방에 돌아와서야 곽승재는 고은서를 내려놓았다.오랫동안 여자를 업은 그는 팔이 좀 시큰거려서 손을 뻗어 주물렀다.이렇게 명백한 암시 동작, 고은서는 당연히 무슨 뜻인지 알아챘다.예전의 고은서였으면 마음 아파하며 주물러주며 많이 힘들었냐고 수줍게 물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의 고은서는 덤덤하게 그를 밀쳐내고 말했다.“비켜줄래? 나 화장실 갈래.”곽승재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고은서, 내가 너 업고 여기까지 왔는데 기본적인 예의도 없어?”큰 공을 세운 건 아니어도 노고를 치렀는데 고은서가 대충 넘어가는 건 좀 아니었다.고은서가 씩 웃더니 말했다.“고생했어. 근데 나 업어달라고 강요한 적 없어. 혼자 걷겠다는데 당신이 고집한 거야. 그러니까 팔이 아픈 건 당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지 내가 주물러 줄 의무는 없어.”마치 이전의 그녀가 곽승재를 위해 차를 날라주고 관심과 안부를 전했던 것처럼 곽승재는 그녀에게 그렇게 하도록 강요한 적이 없었다.그녀 스스로 그렇게 하면 그를 감동시킬 수 있다고 여겼을 뿐

  • 어게인, 비긴   제150화

    도아름이 괜찮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고은서는 아까의 일을 그녀에게 말했다.“서인수가 보낸 사람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만약을 대비해 언니도 오늘은 외출하지 마세요.”“그 인간이 감히 은서 씨한테 손을 대요? 반드시 사람을 보내 혼내야겠어요!”도아름은 고은서가 협박받았다는 말을 듣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은서가 황급히 말렸다.“언니가 물어도 어차피 인정하지 않을 거니까 오히려 꼬투리 잡힐지도 몰라요. 난 그저 언니가 서인수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하라고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에요.”“그 인간 감히 나 못 건드려요!”“내 손에 그 인간 약점이 한두 개가 아니거든요. 그래도 한때 부부였고 우리 애 아빠이니 살살 다룬 건데. 만약 정말 은서 씨한테 그런 짓을 했다면 나 그 인간이랑 끝까지 싸울 거예요!”고은서는 마음이 조금 따뜻해졌다.도아름과 나이 차이는 있지만 그녀는 사랑한 만큼 미워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으니 사귈 만 한 친구였다.“아름 언니, 화내지 마세요. 곽승재가 이 일을 조사하겠다고 했으니 소식 있으면 알려줄게요.”두 사람은 몇 마디 더 한 후에야 전화를 끊었다.그날 밤 고은서가 잠들 때까지 곽승재는 침실로 돌아가지 않았다.아마 그녀에게 화가 났을 것이다.줄곧 그를 쫓아다니며, 그의 희로를 자신의 희로로 여겼던 사람이 갑자기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누구나 속으로 불편할 것이다.외할아버지가 말씀한 곽승재의 변화는 대개 그런 불편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그가 불편하든 아니든 그녀만 기쁘면 된다.다음날, 고은서는 일어나도 곽승재를 만나지 못했는데 어젯밤 그 두 남자에 관한 단서를 찾았는지 모르겠다.시간을 보고 고은서는 외삼촌과 외숙모랑 식사하기로 했다.그들을 통해 고은혜가 출국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려는 것도 있고 그들과 이혼에 대해 결단을 내고 싶은 것도 있었다. 그녀는 결코 힘 있는 곽씨 가문의 사모님이 아니었으니 이혼하는 일은 그들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그녀의 요청에 외삼촌 내외는 거절하지 않았다.외숙모에

최신 챕터

  • 어게인, 비긴   제453화

    투약한 간호사도 전에 이미 곽승재에 의해 경찰서로 넘겨졌는데 그녀의 증언에도 진희숙만 언급되었다.고은서는 이 모든 결과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그녀는 속으로 백유미의 신중함을 탄복했다. 그녀가 경각심을 낮추지 않고 제때 녹음하면서 증거를 남겼더라면 지금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당사자로서 고은서는 경찰 조사에 협조한 후 나머지 일을 변호사에게 맡겼다.“걱정하지 마세요. 증거가 확실하니까 상응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겁니다.”송민준이 말했다.고은서는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진정으로 대가를 치르길 바라는 사람은 백유미이지 대신 누명을 쓴 진희숙과 간호사가 아니었다.“우리 민아도 잘못한 곳이 있으니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원하는 보상이라도 있으시면 얼마든지 말하세요. 제가 최선을 다해서 보상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송민준이 말을 이어갔다.“보상은 필요 없어요. 괜찮다면 제 부탁 하나 들어주시죠.”고은서가 말했다.“무슨 부탁이요?”“백씨 집안에서 요즘 여러 프로젝트를 도맡아 하고 있다던데, 그 프로젝트들을 저 대신 산통 깨주세요.”고은서도 민시후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곽수혁이 GS그룹 일에 끼어들면서 백씨 집안에 큰 도움을 줬다고 한다.그녀의 말을 들은 송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송민아 보고 나한테도 그만 집적거리고 해. 나도 스트레스 그만 받고 싶어.”옆에 있던 민시후가 갑자기 말을 보태었다.송민준은 민시후를 보면서 덤덤하게 말했다.“시후야, 민아가 어릴 적부터 널 좋아한 걸 너도 알고 있잖아. 민아가 포기하지 않는 이상 우리도 곁에서 어쩔 수 없어.”그의 말을 들은 민시후는 성가시다는 듯 직설적으로 말했다.“난 어릴 적부터 송민아가 싫었다고.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데는 진짜 짝이 없다니까.”송민준은 그의 말에 답하지 않고 시선을 고은서에게로 돌리며 물었다.“이혼했다고 들었는데 혹시 시후랑 함께 있을 생각이신가요?”‘소식이 빠르네.’이혼한 지 며칠 되지도 않

  • 어게인, 비긴   제452화

    “걱정하지 않아도 돼. 민아 데리고 오지 않았으니까.”송민준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어갔다.“혹시나 또 고집부리면서 기분 나쁘게 할까 봐 오늘 너희랑 만난다는고 얘기하지 않았어.”민시후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제발 좀 북제로 데려가. 해성에 계속 있게 하지 말고.”송민준은 나긋한 미소를 보이면서 답했다.“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게다가 이미 ZY 그룹으로 출근하기로 했다던데.”그의 말을 들은 민시후는 눈살을 더 세게 찌푸렸다.“우리 아버지가 송민아를 강제로 ZY 그룹에 밀어 넣은 건 나도 별다른 방법이 없는데 나중에 또 고은서를 해치려 하거든 가만두지 않을 거야! 또다시 너랑 우리 아버지 때문에 봐주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고은서는 민시후를 쏘아보았다.‘나랑 송민준을 원수 사이로 만들 생각인 거야?’“뭘 쏘아봐? 내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민시후는 점점 더 흥분해 하며 말했다.“전에도 몇 번이고 널 협박했잖아. 심지어 간호사를 교사하여 우리 아이까지 잃게 한 사람이야. 네가 날 막지만 않았으면 내가 송민아를 가만둘 거 같아?”“...”고은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전에 유산한 경과를 민시후에게 간단히 알려주면서 송민아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그걸 이렇게 이용할 줄은 미처 생각 못했다.씩씩거리는 민시후를 보면서 고은서는 그가 배우를 하지 않은 게 너무 아쉽다고 속으로 감탄했다.송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도 전문가에게 나가보라 하고 직접 민시후에게 차를 따라줬다.“전에 병원에서 있었던 일은 정말 미안해. 오늘 만나자고 한 것도 그 일 때문이야.”송민준이 말하기를 진희숙은 송민아를 친딸로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돌봐온 사람으로서 그녀가 두 사람 일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그런 모험을 했다고 한다.그리고 송민아가 간호사랑 만난 모습이 포착된 사진은 진희숙이 그녀를 불러내 우연하게 찍힌 사진이라고 한다.“민아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

  • 어게인, 비긴   제451화

    “형, 형수님이 민시후한테 별다른 마음은 없어 보이는데 걱정하지마.”“내가 무슨 걱정을 한다고 그래?”곽승재가 약간 어색해하며 말했다.“이미 이혼한 사이인데 고은서가 누구한테 마음이 가든 누구랑 있든 나랑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야.”“아까 썩은 표정을 하고 경적을 울린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네.”육현석이 작은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그러나 갑자기 차가운 시선이 느껴지면서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는 애써 웃으면서 변명거리를 찾았다.“맞아, 맞아. 형 말이 맞아. 형수님이 누구랑 있든 형이랑 이젠 아무 상관없는 일이지. 역시 이혼 같은 작은 일 때문에 속상해하는 일은 전혀 없는 우리 형, 상남자답다니까.”곽승재의 얼굴빛이 점점 더 어두워지는 걸 발견한 육현석은 이내 입을 화제를 돌렸다.“형, 형수님이 형을 보기 싫어하는 것도 화나서 그러는 거잖아. 계속 이렇게 자존심 때문에 고집부려서는 안 된다니까. 형수님한테 문자도 하고 전화도 하면서 존재감을 나타내야 할 거 아니야.”그의 말을 들은 곽승재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네가 말했다시피 날 싫어하잖아. 그런데 무슨 존재감을 나타내라는 거야?”“지금 상대방을 잊지 못하고 놓아주기 싫은 사람은 형이잖아.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고 형수님이 스스로 돌아올 것 같아? 형, 자존심 따위 버리지 않으면 형수님 영원히 돌아오지 않아.”육현석의 말을 들은 곽승재는 전에 낯선 사람 사이로 지내도 되냐고 물었을 때 아주 흔쾌히 된다고 답하던 고은서의 모습이 떠올랐다.어제 점심, 그가 스케줄을 바꾸면서까지 병원으로 찾아갔을 때 그는 고은서가 이혼해서 무척 기쁘다고 하면서 자신의 뒤담화를 하는 걸 들었다.그러나 방금전 민시후와 다정하게 장난치면서 자신을 보고서도 모르는 척하는 그녀를 생각하면 이건 자존심을 내려놓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고은서가 이젠 진짜 그에게 아무런 감정도 남지 않았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다.곽승재는 눈살을 질끈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언제 고은서랑 다시 화해하고 싶다고 했어? 인제

  • 어게인, 비긴   제450화

    민시후는 그가 입을 열길 기다리고 있는 고은서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고개를 홱 돌렸다.“오글거려 죽겠네.”고은서는 끝내 참지 못하고 방금전 손을 닦던 물티슈를 그를 향해 던졌다.“누가 오글거린다는 거야! 사람 호기심 불러일으켜 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 짜증 나는 자식아!”“고은서!”물티슈에 얼굴을 맞은 민시후가 물티슈를 다시 주어 그녀를 향해 던지려고 할 때 뒤에서 갑자기 빵빵하는 자동차 경적소리가 들려왔다.고은서와 민시후가 동시에 고개를 돌려보니 고급 SUV 한 대가 뒤에 세워져 있었는데 그 운전석에는 육현석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조수석에 앉은 사람은 다름 아닌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는 곽승재였다.육현석은 조심스레 그녀를 향해 손을 저으며 옆에 있는 곽승재를 힐끔힐끔 보았다. 방금 경적 소리를 낸 게 그가 아니라 곽승재인 것이 분명했다.SUV 차량 높이가 꽤 있었기에 아마 방금전에 그녀와 민시후가 장난치는 걸 본 모양이다.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가운 얼굴빛을 한 채 앉아있는 곽승재를 보며 고은서는 성가시다는 듯 몸을 홱 돌리면서 민시후에게 말했다.“초록불이야. 안 가고 뭐 해?”민시후도 차 안에 앉아있는 육현석과 곽승재를 보았다. 그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하고 액셀을 밟기는커녕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백미러를 쳐다보았다.“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여기에서 볼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그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전에 두 사람이 운전하면서 맞부딪친 일이 떠올랐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안전벨트를 꼭 쥐고 말했다.“민시후, 우리 약속 있는 거 잊은 거 아니지? 이상한 짓 하지마.”민시후는 불쾌하다는 듯 그녀를 보며 말했다.“이상한 짓이라니. 전에 내 차를 먼저 박은 사람은 곽승재거든.”‘네가 곽승재 차 앞에 막아서서 시비 걸지 않았으면 곽승재가 널 박을 리도 없었거든.’고은서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민시후가 조용히 넘어갈 생각이 없어 보이자 그녀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그러면 나 먼저 차에서 내려도 돼?”“너 언제부터

  • 어게인, 비긴   제449화

    민시후는 송민준과 찻집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다.맑은 하늘에 눈 부신 햇살, 날씨가 참 좋았다.민시후는 기사 대신 직접 하늘색 스포츠카를 운전했다.고은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눈에 띄는 스포츠카를 보며 말했다.“민 도련님, 패션 워크 보러 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레스토랑 가는 것뿐인데 굳이 이렇게 눈에 띄는 차를 운전해야 할까요?”“그냥 평범한 스포츠카일 뿐인데 어디가 눈에 띈다는 거야? 잔말 말고 얼른 타. 내가 직접 운전한다는데 영광으로 생각하라고.”민시후가 성가시다는 듯 말했다.“...”고은서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에 탔다.스포츠카가 유독 눈에 띄기는 했지만 길에 차들이 적었던 탓에 다행히도 너무 큰 이목을 끌지는 않았다.두 사람은 레스토랑으로 가는 도중에 ZY 그룹 근황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곽승재가 ZY 그룹을 타깃으로 삶고 짓누르려고 할 때 민시후가 제때 빠르게 대응을 하긴 했지만 여전히 소홀히 넘길 수 없는 영향을 받았다.“허 교수님 쪽에 의약 프로젝트가 아주 순리롭게 진행되고 있어. 후기도 꽤 괜찮고. 연구소에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민시후는 회사 일을 얘기할 때만은 진지했다.“대리권도 네가 쟁취해 온 거니까 융자에 관한 일도 네가 책임지고 잘 해봐.”고은서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나 그녀는 전에 박지연한테서 곽승재가 융자에 관한 일을 백유미에게 맡길 예정이라고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가 왜 갑자기 생각을 바꾸었는지 의문스러웠다.그녀는 궁금증을 덜기 위해 민시후에게 물었다.“곽승재 아버지가 얼마 전에 귀국하셨는데 회사 일에 참여하려 했다가 곽승재한테 거절당했다고 하더라고. 아마 이번 일도 곽승재가 아버지 건의를 거절하고 직접 내린 결정일 거야.”‘그렇구나. 그런데 회장님이신 자기 아버지랑 맞붙는 거 보아서는 아마 두 사람도 사이가 별로인가 보네.’고은서는 이내 민시후 아버지가 전에 편찮다고 했던 일이 떠올랐다.“아버지는 괜찮으셔?”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민시후는 피곤하다는

  • 어게인, 비긴   제448화

    백유미는 자신이 누군가의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사람 시켜 조사중이니 곧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다.“너도 말했다시피 이미 일은 발생했고 손실도 점점 더 커지고 있어. 이 말인즉슨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야. 프로젝트가 대박 나면 넌 명예랑 돈을 얻고 망하면 너랑 아무 상관이 없다? 일이 그렇게 쉬울 것 같아?”백유미가 차가운 눈빛으로 원지훈을 바라보며 말했다.“프로젝트 서류에 사인한 사람은 너야. 그리고 회사 최고 결책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너고. 어떤 일이 발생하든 네가 다 책임을 져야 한단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네 인생은 여기서 끝이야. 너랑 네 엄마 감방으로 보내서 죽을 때까지 나오지 못하게 만들 거야.”원지훈은 백유미가 화난 김에 하는 소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그녀가 그를 하늘 정상으로 보낼 능력이 있는 만큼 다시 그를 나락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 능력도 충분히 있었다.“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는데요?”원지훈이 물었다.백유미는 독사처럼 살기 가득한 눈길로 그를 보며 말했다.“돈은 당연히 감당하지 못할 테고. 그런데 그 대신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어.”방금전까지 덤덤하던 원지훈도 점점 섬뜩해졌다.“무슨 일인데요?”“당연히 이 손해를 메꿀만한 일이지.”원지훈은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이 일을 별 탈 없이 해주면 이번 손해는 그냥 넘어가 줄게. 혹은 네 엄마랑 함께 죽을 때까지 감방에 들어가 있든가. 한 가지만 선택해. 삼 일 줄게. 사흘 후에 확답을 주지 않으면 너도 어떤 후과가 있을지 알고 있을 거야.”백유미는 말하고 이내 떠났다.그녀가 떠난 후, 범가온이 부랴부랴 룸으로 들어오면서 물었다.“지훈아, 괜찮아? 유미가 또 너에게 무슨 일을 시키려고 날 나가 있으라고 한 거지?”그러나 원지훈은 대답 대신 젓가락을 들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지금 음식이 넘어가?”범가온은 호통치고는 슬쩍 문 쪽을 바라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물었다.“네가 계약 체결할 때 따로 돈 받

  • 어게인, 비긴   제447화

    “고은서 눈에 네가 들어오기나 하겠어?”백유미는 곽승재도 사랑하지 않은 고은서가 원지훈을 사랑하게 될 거라는 걸 전혀 믿지 않았다.“내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니요? 제가 다른 사람보다 못한 곳이 어디가 있다고 그런 소릴 하는 거예요? 게다가 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왜 저를 위해 음식까지 주문해주면서 저를 먼저 찾아오겠어요?”“그래, 유미야. 지훈이가 옛날부터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많았어. 지방에서 살 때도 여러 여자애들이 얘가 좋다고 쫓아다녔는데 창업한 이후로 더 많은 여자들이 지훈이를 가지지 못해 안달이나 한다니까.”범가온은 자랑스러워하며 말했다.백유미는 그녀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눈살을 찌푸리고 원지훈에게 캐물었다.“고은서가 오늘 널 만나자고 한 이유는 뭔데?”원지훈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별일 아니었어요. 너무 오래 못 봤다고 밥 사준다고 만나자 했는데 시간 없다고 했어요.”백유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예전의 그녀였다면 지금 원지훈이 하는 말을 전혀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고은서가 알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변해버렸다. 전에는 툭 건들기만 하면 펄쩍 뛰면서 화내는 사람이었는데 요즘 따라 곽승재가 무슨 일을 해도 전혀 관심 없는 태도를 보였다.심지어 민시후와 무척 가까이 지냈는데 아이가 곽승재의 아이라고 해도 두 사람이 호텔로 간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현재 원지훈과 연락을 맺고 있다는 게 너무도 수상했다.‘곽승재의 이목을 끌고 그에게 새로운 인상을 남기려는 수단인 건가?’“설마 이미 고은서에게 들킨 건 아니지?”백유미가 의심스럽다는 눈길로 원지훈을 바라보며 물었다.원지훈은 약간 당황하긴 했으나 티를 내지 않고 성가시다는 듯 답했다.“뭐가 들켰다는 거예요? 처음부터 누나랑 친한 사이도 아니었잖아요. 내가 심심해서 고은서 앞에서 누나 얘기를 꺼내겠어요? 게다가 사람 뒷조사하는 거에 능하잖아요. 의심되면 조사해보면 될 거 아니에요.”나중에 조사는 해볼 것이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 어게인, 비긴   제446화

    갑자기 들려오는 차가운 목소리에 비서는 선 자리에 그댈 얼어붙었다.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니 곽승재가 어두운 얼굴빛을 하고 서 있었다.“대... 대표님, 제가 그 뜻이 아니라...”“그럼 무슨 뜻인데?”곽승재의 목소리에서 한기가 느껴졌다.“내가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해 보이는데 알고 보니 쓰레기라는 뜻이 아닌가?”‘갑자기 쓰레기라는 소리가 왜 나오는 거지? 내가 하는 얘기랑 완전 다른 얘기잖아.’비서는 말문이 막혔다.“대표님, 인혜 씨는 그 뜻이 아니라...”옆에서 보고 있던 주민기가 마지못해 대신 설명하려고 할 때 곽승재가 그를 쏘아보았다.“너도 이번 달 보너스 취소야!”‘내가 뭘 잘못했다고 내 보너스까지 취소하는 거야?’주민기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레스토랑 룸.원지훈이 룸으로 들어갔을 때, 룸 안에는 차가운 표정을 한 백유미와 범가온이 앉아있었다.테이블에는 여러 음식들이 놓여 있었는데 그 누구도 입을 대지 않은 듯했다.“유미야, 우리 지훈이 화내지 마. 이 사이에 오해가 있는 게 분명해. 지훈이가 널 배신할 리가 없어.”범가온은 백유미에게 끊임없이 사과했다.반면 백유미는 걸어들어오는 원지훈을 혐오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지훈아, 왜 이제야 왔어. 얼른 유미한테 설명해. 요즘 회사 일로 바삐 보낼 뿐, 유미를 배신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고.”원지훈은 성큼성큼 테이블로 다가가 앉으면서 말했다.“누나, 또 왜 그러는 거예요? 밥 먹자고 부른 거 아니었어요?”“밥 같은 소릴 하고 있네. 너 지금 네가 무슨 일을 했는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백유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사진 한 뭉치와 여러 서류들을 원지훈을 향해 던지면서 말했다.“너 대체 고은서랑 무슨 사이야? 고은서랑 개인적으로 연락한 이유는 또 뭐고?”원지훈이 서류와 사진을 들고 확인해 보니 그중에는 오늘 그가 고은서 사무실을 찾아간 모습과 전에 고은서와 복싱관에서 만난 모습이 찍혀있었다.이외에도 그가 고은서에게 연락했던 통화기록과 그녀가 그를 위

  • 어게인, 비긴   제445화

    곽승재는 무표정한 얼굴에 차가운 시선을 하고 있었다.고은서는 어젯밤 곽승재가 앞으로는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자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고은서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고개를 돌려버렸다.‘어차피 모르는 사람인데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겠지. 내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잖아. 곽승재는 계속 백유미에게 여지를 주면서도 나랑 이혼하기 싫다는 모습을 비췄잖아. 그렇게 보면 쓰레기 같은 본성을 지녔다는 건 사실이잖아.’“대표님, 조리실 구경해 보실 건가요?”누군가가 곽승재에게 물었다.고은서는 곽승재의 답변을 듣지 못했지만 등 뒤에서 느껴지던 서늘한 기운이 사라진거로 봐서는 일행이 자리를 떴다고 생각했다.“주인공이 들을 수 있는 곳에서 험담하는 건 어떤 기분이야?”박지연이 물었다.고은서는 박지연을 향해 눈을 흘기며 답했다.“들으면 듣는 거지 뭐. 난 험담한 게 아니라 사실을 얘기한 거야.”“GS 그룹에서 시찰 나오는 게 오늘일 줄은 몰랐네. 그것도 곽승재가 직접. 은서야, 혹시 네가 병원에 있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온 거 아닐까?”고은서는 바로 부정했다.“아니야.”박지연이 말했다.“그래도 인연인가 보네.”“그런 인연은 필요 없어.”곽승재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깨진 상황에서 고은서는 더 이상 박지연을 설득하지 않았다.박지연은 언제나 자신의 주관이 뚜렷했다.또한 사람이라는 게, 남을 설득하는 것은 쉬워도 정작 자신이 같은 상황에 놓여있을 때 그런 결정을 내리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법이었다.마치 전생의 고은서와 곽승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GS 그룹 대표실에서 주민기는 곽승재에게서 풍기는 차가운 기운을 감지했다.요즘 곽승재의 기분은 썩 좋지 않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는 화를 누르며 가엾은 직원들에게 화풀이하지 않았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던 곽승재는 갑자기 병원 실사를 진행하겠다고 일정을 변경했다.실사를 마치고 돌아온 곽승재의 표정은 이전보다 더 어두워져 있었다.대표실 전체에 한파가 닥친 듯했다.비서가 서류를 챙겨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