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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Author: 군빛
송연희의 행동을 본 문경천은 그녀의 말에 느꼈던 당혹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는 의원이었고 그저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문경천은 경직된 동작으로 손난로를 집어 들어 책상 한쪽 구석에 놓고는 천천히 옷자락을 걷어 올리기 시작했다.

송연희가 흘끗 보며 물었다.

“많이 아프십니까? 도와드릴까요?”

“필요 없소.”

문경천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마의 핏줄이 분노로 솟아올랐다. 그는 옷을 벗는 속도를 높였다.

‘이 여자는 자신을 정상적인 남자로 보지 않는 것인가?’

이 정도 힘도 남아 있지 않다면, 설령 병이 나아도 그저 쓸모없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가 무엇인가 오해했음을 깨닫고 송연희가 설명했다.

“오늘 밤 비가 많이 오니 대감의 몇몇 혈 자리를 빨리 막아야만 통증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문경천은 잠시 침묵하더니 한마디 했다.

“알겠소.”

서재의 촛불이 흔들리며 두 사람의 그림자를 끝없이 길게 늘어뜨렸다.

멀리서 보면 두 사람의 그림자가 겹쳐 마치 원앙이 목을 교차하는 듯 다정해 보였다.

저 멀리 복도에서 한 손으로는 여동생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손난로를 안고 있던 소년의 얼굴이 순간 새빨개졌다.

여동생이 소리를 내기 전에 그는 재빨리 손난로를 던지고 그녀의 입을 막았다.

“읍 읍!”

총아가 눈을 깜빡이며 소리를 냈다.

소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녀를 데리고 돌아서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께 방해가 되면 안 돼.”

총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창문 너머로 비치는 그림자를 흘끗 보더니 무언가를 깨달은 듯했다.

그녀는 주먹을 꼭 쥐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

“대감, 오늘 통증이 예전보다 더 심한 것이 확실하십니까?”

송연희의 눈동자에 긴장감이 어렸다.

그녀의 기대에 찬 작은 얼굴을 보며 문경천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낮에 입궁할 때부터 몸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껴 일부러 진통제를 먹고 나섰다.

그러나 평소 효험이 좋던 약이 오늘따라 빨리 약효가 사라진 것이었다.

송연희는 설렘을 억누르고 몸을 굽혀 문경천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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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연희는 약을 섞던 손을 잠시 멈추고 담담하게 말했다.“저와 임정훈이 갈라서는 것은 시간문제이오나 지금 당장은 아직 때가 아닙니다.”문경천이 이런 일을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 그녀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애초에 이혼 후 그에게 의탁할 생각이었기에 굳이 숨길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문경천의 눈빛이 깊어졌다.“부인께서 원하신다면 이혼이든 무엇이든 내가 돕겠소.”송연희는 정중히 거절했다.“대감께 폐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괜찮소.”문경천의 진지한 말투에 송연희는 그를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대감의 호의는 감사하지만 저와 장군의 이혼 문제에는 당분간 관여하지 말아 주십시오. 때가 되면 제가 대감께 도움을 청하겠습니다.”그녀와 임정훈 사이에는 피맺힌 원한이 있었기에 과거의 모든 일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청산해야 했다. 하씨와 임정현 모녀 또한 마찬가지였다.전생과 이번 생의 원한을 몇 배로 되갚아 주지 않고서는 이 분을 풀 수 없었다.그러니 지금 이혼하면 그들에게 너무 쉽게 벗어날 길을 주는 꼴이었다.문경천은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듯 그녀의 눈을 잠시 응시했다.한참 후에야 그는 웃으며 말했다.“알겠소.”착각인지는 몰라도 송연희는 그의 말에서 진한 아쉬움과 함께 어른이 아이에게 말하듯 다정함이 느껴졌다.신분의 차이만 아니라면 그녀는 정말로 경천군한테 한마디 일깨워 주고 싶었다.촌수를 따지자면 그는 그녀를 고모님이라 불러야 마땅했기 때문이다....정국공 댁.정시현은 문에 비친 그림자를 보며 실망한 목소리로 말했다.“돌아가세요.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한 시진 동안 밖에서 기다리던 임정훈은 드디어 마음속 여인의 목소리를 듣고는 뛸 듯이 기뻤다.그는 문을 두드리며 다급하게 말했다.“시현아, 일단 문을 열고 나를 들여보내시오. 할 말이 있소.”“무슨 할 말이요? 우리 사이에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정시현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정훈 오라버님, 변방에 있을 때 저에게 무슨 약조를 했는지 잊으셨습니까?”임정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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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연희의 행동을 본 문경천은 그녀의 말에 느꼈던 당혹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그녀는 의원이었고 그저 할 일을 할 뿐이었다.문경천은 경직된 동작으로 손난로를 집어 들어 책상 한쪽 구석에 놓고는 천천히 옷자락을 걷어 올리기 시작했다.송연희가 흘끗 보며 물었다.“많이 아프십니까? 도와드릴까요?”“필요 없소.”문경천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마의 핏줄이 분노로 솟아올랐다. 그는 옷을 벗는 속도를 높였다.‘이 여자는 자신을 정상적인 남자로 보지 않는 것인가?’이 정도 힘도 남아 있지 않다면, 설령 병이 나아도 그저 쓸모없는 사람일 뿐이었다.그가 무엇인가 오해했음을 깨닫고 송연희가 설명했다.“오늘 밤 비가 많이 오니 대감의 몇몇 혈 자리를 빨리 막아야만 통증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문경천은 잠시 침묵하더니 한마디 했다.“알겠소.”서재의 촛불이 흔들리며 두 사람의 그림자를 끝없이 길게 늘어뜨렸다. 멀리서 보면 두 사람의 그림자가 겹쳐 마치 원앙이 목을 교차하는 듯 다정해 보였다.저 멀리 복도에서 한 손으로는 여동생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손난로를 안고 있던 소년의 얼굴이 순간 새빨개졌다.여동생이 소리를 내기 전에 그는 재빨리 손난로를 던지고 그녀의 입을 막았다.“읍 읍!”총아가 눈을 깜빡이며 소리를 냈다.소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녀를 데리고 돌아서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께 방해가 되면 안 돼.”총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창문 너머로 비치는 그림자를 흘끗 보더니 무언가를 깨달은 듯했다.그녀는 주먹을 꼭 쥐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대감, 오늘 통증이 예전보다 더 심한 것이 확실하십니까?”송연희의 눈동자에 긴장감이 어렸다.그녀의 기대에 찬 작은 얼굴을 보며 문경천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낮에 입궁할 때부터 몸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껴 일부러 진통제를 먹고 나섰다.그러나 평소 효험이 좋던 약이 오늘따라 빨리 약효가 사라진 것이었다.송연희는 설렘을 억누르고 몸을 굽혀 문경천의 다

  • 쓰레기 서방님, 관 속에 모셔드릴게요   제28화

    “모든 상을 다 내주고 두 번째 정실부인을 얻었다고?”임 씨 노부인은 눈빛이 멍해졌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그녀는 원래 이번에 임정훈이 큰 공을 세웠으니 적어도 공신 자리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금은보화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임 씨 노부인은 심지어 두 달 후의 마흔 살 생신을 얼마나 화려하고 성대하게 열어 그동안 자신들과 교류하기 꺼리던 관리들의 가족들에게 이제 자신들이 넘볼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 줄 계획이었다.그런데 지금 갑자기 사람이 와서 그 모든 부귀영화가 물거품이 되었다고 말하다니.임 씨 노부인은 눈앞이 캄캄해지고 다리가 후들거렸다.결국 친절한 지 내관이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녀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경천군 댁.한일은 전서구를 날려 보내고 몸을 돌려 공손히 아뢰었다.“대감의 예상대로 궁에서 이미 암위를 보내 임씨 집안을 감시하고 있사옵니다.”서안 뒤에서 붓글씨를 쓰던 문경천이 촛불 아래 비친 창백한 얼굴로 나지막이 대답했다.한일이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대감, 소인이 가서 장군댁 마님을 모셔 올까요?”“아니다.”문경천이 차갑게 거절했다.이 시각이면 그녀는 남편과 함께 있을 터였다.그런데 지금 사람을 보내 그녀를 찾는다면 오히려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빌미를 임 씨 모자에게 주는 꼴이었다.어차피 며칠 아픈 것뿐이었다. 그는 이미 익숙해진 고통이었다.“하지만 대감의 다리가...”한일은 바깥에서 들려오는 천둥소리에 말끝을 흐렸다.대감께서는 장군댁 마님을 돕기 위해 다리의 고통을 참으며 입궁했고 심지어 전하의 의심을 살 위험을 무릅쓰고 엄씨 가문을 위해 변호까지 했다.이토록 큰 은혜를 베풀었으니 장군댁 마님도 알아야 마땅했다.문경천은 한일을 바라보았다. 그의 깊은 눈빛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한일은 즉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번개가 치며 주변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혔다.문경천의 본래

  • 쓰레기 서방님, 관 속에 모셔드릴게요   제27화

    지 내관임을 보자 임정훈의 얼굴색이 더욱 어두워졌다.임정훈이 물었다.“내관께서 이리 행차하신 것은 전하께서 제 안사람한테 하실 분부라도 있으신 것입니까?”사실 그도 속으로 궁에서 사람을 보낸 것은 송연희를 꾸짖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폐하의 말은 천금과 같으니 상을 내린 직후에 질책하는 일은 없을 터였다.하지만 그는 그래도 선덕제가 송연희에게 상을 더 내리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지 내관은 비교적 공손한 말투로 답했다.“소인은 옹주마마께 상을 전하라는 명을 받고 왔습니다. 다만 장군께서는 며칠간 먼 길을 오가시느라 노고가 많으셨을 테니 굳이 알리지 않았습니다.”까놓고 말해 그에게 알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임정훈은 비록 무관이었으나 아버지를 닮아 눈치가 빨랐기에 이것이 빈말임을 모를 리 없었다.그는 분노를 억누르고 한 가닥 희망을 품으며 물었다.“내관께서 가져오신 것이 궁중 어느 마마의 하사품인지요?”지 내관은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직접적으로 물었다.“소인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사옵니다?”궁궐에는 각자 맡은 직분이 있어 중전마마라 할지라도 선덕제의 측근을 함부로 부릴 수 없었다. 이러한 사정을 임정훈은 당연히 알지 못했다.그가 살짝 창백해진 얼굴로 입술을 달싹이며 해명하려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어머니의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임 씨 노부인은 하녀의 부축을 받으며 한 손으로는 예복의 두툼한 치맛자락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이쪽을 향해 걸어오면서 소리치고 있었다.“귀하신 분께 죄송합니다. 저희 집 하녀가 어리석어 길을 잘못 안내했습니다.”그녀는 마음속 깊이 송연희를 멸시했기에 폐하께서 오늘 그녀에게 봉토를 내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전해지는 상이 그녀를 위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작 몰락한 집안에서 태어난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적녀 주제에, 아비와 오라비의 사랑도 받지 못하면서 제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아들이 엄 씨 그 영감탱이의 연줄이 필요하지 않았다면 송연희처럼 행실이 헤픈

  • 쓰레기 서방님, 관 속에 모셔드릴게요   제26화

    복수당.임 씨 노부인은 아들을 보자마자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임정훈은 본래 심란했던 터라 그 모습을 보자 얼굴색이 더욱 좋지 않았다.“우는 것이 소용이 있다면 차라리 어머니께서 저를 따라 입궐하시어 전하 앞에서 실컷 우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임 씨 노부인은 말문이 막혔고 감히 반박하지도 못한 채 그저 그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훈아, 이제 그 천한 것이 죽지 않았으니 시현 옹주 쪽은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임정훈이 비웃으며 되물었다.“어머니께서는 어찌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임정훈의 말 속에 담긴 원망의 뜻을 알아차리고 임 씨 노부인은 억울함을 느꼈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송연희의 소행을 자세히 그에게 이야기했다.“나쁜 년!”임정훈이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리쳤다.쩍 하는 소리와 함께 최상급의 홍목 탁자가 가운데를 중심으로 둘로 쪼개졌다.임 씨 노부인은 급히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며 걱정스레 말했다.“어디 다치지는 않았느냐? 손은 아프지 않고? 어서 이리 와서 어미에게 보여다오!”“괜찮습니다.”임정훈이 침울한 얼굴로 막 무슨 말을 꺼내려는데 문 쪽에서 하녀 하나가 숨을 헐떡이며 허둥지둥 들어오는 것이 얼핏 보였다.“임씨 노부인, 장군나리, 궁에서 또 사람이 왔습니다!”임 씨 노부인은 그 말을 듣고 얼굴에 화색이 돌며 서둘러 말했다.“분명 궁에서 내 아들에게 내리는 큰 상이 도착했을 것이다! 어서 내 임씨 노부인의 예복을 가져...”“그러실 필요 없습니다.”임정훈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어찌 필요 없다는 게냐? 이 녀석이... 조서를 받는 것은 하늘같이 큰일인데 어찌 소홀히 할 수 있겠느냐.”말하며 임 씨 노부인은 서둘러 하녀에게 명했다.“어서 향안을 준비하고 온 집안 사람들을 불러 모아 조서를 받들도록 하여라!”이렇게 가문을 빛내는 순간을 온 집안사람들이 모두 보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그래야 송연희 그 천한 것이 눈을 크게 뜨고 볼 것이고 경천군과 비교해도 그녀의 아들이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가능

  • 쓰레기 서방님, 관 속에 모셔드릴게요   제25화

    그 말을 듣고 문경천의 눈에는 숨김없는 감탄이 서려 있었다.그가 칭찬하며 말했다.“남서의 지형과 정세는 너무 복잡하여 수년간 전쟁을 치른 장군들조차 언급하기를 꺼리옵니다.”“그렇다면 임 장군은 실로 보기 드문 장수라 할 수 있군요.”선덕제의 눈빛이 미묘해졌다.“경천아, 짐이 잘못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면 네가 짐 앞에서 조정의 무장을 칭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로구나.”“아바마마께서 잘못 기억하신 것이옵니다.”문경천이 담담히 대답했다.“그러냐?”선덕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웃으며 추억에 잠긴 듯 말했다.“엄기찬 그 늙은이가 왕년에 붉은 술 달린 창 하나로 천하를 누볐다고 할 수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뒤 세대에는 그의 기술을 이을 자가 아무도 없구나.”그가 바둑돌 하나를 놓자 문경천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엄씨 가문의 사내들은 그해 절반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고 어르신의 장남과 차남은 시신조차 찾지 못했사옵니다.”“소자가 전에 듣기로 천하가 막 안정되었던 그해에 엄씨 노부인께서 목숨을 걸고어르신에게 독한 맹세를 하도록 강요하였는바, 삼대 안에 다시 군문에 나아가는 자가 있다면 엄씨는 대를 이을 수 없게 하겠다는 내용이옵니다.”그 맹세의 독함을 문경천은 말하는 지금조차 마음이 편치 않았다.만일 그 이야기를 며칠 전 송연희가 치료 중 직접 들려주지 않았더라면 그는 아마 끝내 믿지 않았을 터였다.큰 공을 세우고 황제의 목숨을 몇 차례나 구한 충장이라 일컬어진 이조차 그런 방식으로 충심을 증명해야 했다니.선덕제의 안색 역시 좋지 않았다.그가 나직이 중얼거렸다.“그런 일이 있었구나, 부인께서...”“아바마마께서 두실 차례십니다.”문경천이 바둑돌 하나를 놓으며 적시에 입을 열었다.선덕제는 정신을 차렸고 마음 한구석이 시큰해지는 동시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그는 처음에 엄기찬이 문경천과 송연희의 항렬 차이를 이유로 혼인을 거절했을 때 자신이 했던 약속을 떠올렸다.“짐이 살아있는 한, 장차 그 아이에게 좋은 부군을 찾

  • 쓰레기 서방님, 관 속에 모셔드릴게요   제24화

    “원치 않는 것이냐?”선덕제는 그녀의 미세한 반응을 놓치지 않고 눈빛에 뜻을 담았다.송연희는 평온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폐하께 아뢰옵니다.”“저는 그저 저택에 묻혀 지내는 여인일 뿐이고 나라와 백성에게 이로운 일을 한 적이 없사오니, 폐하의 후한 하사는 실로 감히 받을 수 없사옵니다.”이 한마디 말을 듣고 나니 선덕제는 그녀가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염려하여 감히 받지 못한다는 것을 더욱 명확히 깨달았다!누구를 염려하는지에 대한 답은 명확했다!선덕제의 얼굴에서 미소가 눈에 띄게 옅어졌는데 하필 이때 임정훈이 참지 못하고 또다시 강조했다.“폐하, 제 부인은 일개 여인에 불과하옵니다. 시야도 좁고 아는 바도 없어 폐하의 후한 은혜를 감당할 그릇이 못 되옵니다.”도성에 봉지를 가진 황족은 단 두 명뿐이었다.공주 중에서는 장신후에게 시집간 장공주만이 봉지를 누릴 뿐이었고 이미 출가한 나머지 공주들 중 가장 총애받는 이조차 식읍 만 호를 누리는 데 그쳤다.유주는 인구가 거의 삼만 호에 달하는데 송연희가 무슨 공덕으로 그런 큰 봉지를 감당한단 말인가.정시현이라는 보배 같은 여인이 눈앞에 있으니 임정훈은 속마음으로 어릴 때부터 규방에서 자란 자신의 부인을 깔보았고 말하는 사이에 저도 모르게 경멸감이 묻어났다.송연희 스스로의 입에서 나왔더라면 그저 겸손이라 둘러댈 여지도 있었겠지만 임정훈의 입에서 나온 말은 황제의 뜻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엿밟은 것이나 다름없었다.도대체 그 따위가 무엇이길래 감히 황제의 결정을 거스르는가?선덕제는 드물게 얼굴을 굳히고 담담하게 말했다.“짐이 연희에게 자격이 있다 하면 자격이 있는 것이오.”송연희는 더는 머뭇거림 없이 공손히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이윽고 두 사람이 물러나려 하자 선덕제는 임정훈에게 한 마디 일깨워주었다.“임 장군, 좌우로 미인을 감싸는 복은 그리 쉽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부디 소중하게 여겨 짐의 좋은 뜻을 저버리지 말게.”사람들이 떠나고 선덕제는 일어나 편전으로

  • 쓰레기 서방님, 관 속에 모셔드릴게요   제23화

    선덕제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임 장군이 혼례를 치르던 날 바로 출정길에 올았고, 이 2년간 너도 장군댁에서 지내는 것이 쉽지 않았을 터, 만약 네가 원치 않는다면 오늘은 짝을 갈라놓는 못된 임금이 되더라도 기꺼이 그리 하겠다.”이 말이 나오자 임정훈은 즉시 송연희를 돌아보았고 그의 눈빛에는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송연희는 그가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았는데 그는 그녀가 선덕제의 비호를 등에 업고 자신을 압박하여 정시현을 포기하게 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어다. 더 나아가, 지금 이 자리에서 황제 앞에 나서 이혼을 청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막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그가, 두 해 동안 궂은일을 도맡으며 안팎으로 명망을 얻은 부인과 곧장 결별한다고 하면 조정의 신료들과 백성들이 어찌 그를 보겠는가? 그가 아끼는 명성과 평판은 한순간에 무너지리라.하지만 그녀 또한 선덕제가 임정훈과 정시현의 일을 성사시켜 줄 뜻이 있음을 알아차렸다.하물며 애당초 송연희는 지금 이 자리에서 이혼을 청할 생각이 없었다. 설령 그러한 뜻이 있었더라도, 지금은 아니다.황제의 은혜는 쓸수록 줄어드는 법이기에 그녀가 분수를 모르고 행동할 수는 없었다.송연희의 안색이 창백해지며, 마치 무언가 사정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듯 보이자, 선덕제의 음성은 저도 모르게 차가워졌다. “연희야, 오늘 짐이 여기 있으니 다른 이의 시선은 신경 쓰지 말고 네 생각대로 말해 보거라.”만약 이 말을 다른 이의 입을 통해 들었다면 송연희는 필시 즉시 눈시울을 붉히며 자신의 억울함을 속 시원히 털어놓아 시비를 가려 달라고 했을 터.하지만 이 말을 꺼낸 사람은 나라의 임금이었다. 제왕의 술수에 능한 분이므로 이 말은 표면적으로는 무조건 그녀를 지지하는 듯했으나 실제로는 경고의 뜻도 내포하고 있었다.송연희가 무릎을 꿇고 황제를 향해 공손히 절을 올렸다.그녀의 목소리는 차갑고 맑았으나 힘이 있었다.“폐하, 시현 옹주께서는 신분이 존귀하시옵니다.”“저는 기꺼이 첩이 되어 두 분의

  • 쓰레기 서방님, 관 속에 모셔드릴게요   제22화

    “오?”“무슨 일로 짐을 속였는지 말해 보시오.”넌지시 물음을 던지는 선덕제의 시선에는 그윽하고 깊은 빛이 담겨 있었다.송연희 역시 임정훈이 무슨 속임수를 쓰려는 것인지 약간 궁금했지만, 매우 확신할 수 있는 부분은 그처럼 이기적인 자는 자신의 화려한 앞날을 걸고 황제 앞에서 정시현이 이미 자기 부인이라는 식의 망언을 할 리가 절대로 없다는 것이었다.임정훈은 과연 송연희를 실망하게 하지 않았다.그는 정시현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오직 이렇게만 말했다.“신은 장수로서 본디 군중 장병들과 변경의 안위를 우선해야 마땅하오나 잠시 판단이 흐려 적군의 본진까지 깊숙이 추격하고 말았사옵니다.”“비록 성공적으로 적장의 수급을 취하였으나 군의 장수들이 신이 이미 전사한 것으로 오인하여 잘못된 군보를 올리게 만들었으니 신은 죽어 마땅하옵니다!”선덕제는 고개를 끄덕였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주장으로서 공을 탐하여 경솔하게 나아가는 것은 병가의 큰 금기 사항이 아닐 수 없지.”단 한마디에 임정훈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그가 예상한 반응과는 전혀 딴판이었던 것이다.송연희는 고개를 숙인 채 그 뒤에 서 있었으나, 속으론 실소를 금치 못했다.그와 함께 적진 깊숙이 들어가 그가 적장의 목을 베는 것을 엄호하고 또 그를 호위하며 후퇴하다가 결국 한 사람도 살아 돌아오지 못한 삼백 명의 장병들에 대해서는 단 한 글자도 언급하지 않는구나!입으로는 자신이 죽어 마땅하다고 말하면서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자신의 공적을 드러내지 않는 구석이 없었다.과연 끼리끼리 만나는 법이라더니 그와 정시현 두 사람은 실로 천생연분이었다.임정훈이 두 다리를 벌벌 떨며 책임을 떠넘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고 있을 때 선덕제는 갑자기 웃었다. “우리 조정에 경과 같은 젊고도 패기 있는 무장이 있음은 실로 대안국의 복일세. 짐이 상을 내려야 마땅한 일인데 어찌 벌을 논하겠는가?”“과찬이시옵니다, 이번 전란이 평정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군중 각처가 협력하여 일치단결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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