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은 설씨 집안의 둘째 도련님 설도훈이에요. 겉모습은 신사 같지만, 실제로는 엄청 비열하고 파렴치한 인간입니다. 늘 다른 회사의 사업을 뺏는 걸 즐기죠. 최근 우리 T 그룹의 중요한 고객도 그 사람 때문에 다 떨어져 나가고 있는 실정이에요.”원아는 조금도 꺼리거나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마치 그에게 도발하는 것 같았다.그런데 설도훈은 원아를 보며 이상하게도 가슴이 설렜다.당연히 원아는 그런 설도훈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그녀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남편인 소남을 위해 그에게 빼
태평양.이곳은 지도에서도 찾을 수 없는 공포의 섬이었다. 자색빛 바다에 도사리고 있는 귀신 같은 섬은 일 년 내내 안개 속에 숨어 세상과 단절되어 있었다.섬 주변은 마귀의 송곳니처럼 뾰족한 암초로 뒤덮여 있어 자칫했다간 찢겨 죽기 십상이었다.새벽의 첫 서광이 해수면에서부터 서서히 일어났다.키가 크고 준수한 얼굴을 한 남자는 울퉁불퉁한 암초에 기대어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바다 한쪽 끝에는 거대한 철장이 있었다.그 속에는 여위고 허약한 두 남녀와 약을 주사한 야생 사자가 갇혀 있었다.그들은 미친 짐승과
원아가 말했다.“나 헨리와 함께 모스크바에 가서 얘 아빠를 찾을 거예요.”그 말을 들은 주소은은 깜짝 놀라 하마터면 무릎에 올려 두었던 헨리를 놓칠 뻔했다.그녀는 재빨리 헨리를 껴안고 원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헨리 이제 겨우 두 살이야. 그렇게 먼 길을 떠나는 건 아직 일러. 만약 문 대표님이 정말 살아 있다면, 그동안 충분히 돌아오고도 남았을 거야. 원아야, 언니가 듣기 싫은 말을 해서 정말 미안하지만, 대표님은 그곳에 없어.”“더군다나 문 대표님이 모스크바에서 암살당했다는 것은 그곳에 대표님의 원수가 있다는 뜻이잖아.
원아는 헨리를 꼭 껴안으며 설도훈을 노려보았다.“설 사장님께서 여긴 무슨 일이신 가요?”그는 준수하고 수려한 외모의 남자로 여장을 하면 남자들이 한 번쯤 은 뒤돌아볼 그런 외모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생김새와는 정반대로 그는 독한 성격이었다그는 대단한 집안의 자식으로 좋은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또 복잡한 관계로 얽혀 있는 집안사람들의 싸움 속에서 살아남은 승리자였다. 그가 할아버지인 설주한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출중한 외모 뿐 아니라, 그의 출중한 능력 때문이기도 했다. 음험하고 교활한 것으로 말하자면, 그는 절
문씨 고택.문 노인은 화원의 등나무 의자에 누워 있고, 옆의 낮은 탁자 위에는 차 한 잔이 놓여 있었다.문 노인은 차 마시는 것을 목숨만큼 좋아했다.그때, 고택에 들어서던 원아는 문 노인이 힘없이 등나무 의자에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그는 주름이 가득한 눈으로 한쪽에 놓인 화분을 바라보며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문소남이 살해당했다는 비보를 들은 후로, 그는 원래부터 건강하지 못했던 몸이 순식간에 나빠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저를 찾으셨어요?” 원아는 뒤로 다가가 두 손으로 할아버지의 어깨와 목을 마사지하기 시작했
임영은의 말은 마치 맑은 하늘에서 천둥이 치는 것처럼 원아의 귓가에 울렸다!원아는 달려가 그녀의 옷깃을 잡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뭐라고? 소남 씨가 어떻게 죽었는지 말해! 지금 당장!”그러자 영은은 정신이 들면서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고 속으로 깜짝 놀랐다. 하지만 원아를 보며 경멸이 담긴 미소를 지었다.“내가 왜 너에게 말해야 하지? 안 해! 절대 안 한다고!”영은은 여전히 임씨 집안의 친딸인 원아에 대해 뼛속까지 깊이 스민 질투를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원아가 아니었으면, 자신은 여전히 임씨 집안의 총애를
문소남은 석양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T그룹을 인수하기 전에 그는 많은 곳을 다녔고, 해가 지는 장면을 수없이 보았다. 우뚝 솟은 에베레스트, 끝없이 펼쳐진 초원, 모래로 가득한 타카라마칸 사막 등 그는 안 가본 곳이 없었다.그가 석양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해가 지고 나면 다시 아침 해가 뜨면서 밝은 희망을 가져다주기 때문이었다.이곳의 석양은 이전에 봤던 것보다는 못했다.그의 마음 상태 때문인지는 몰라도 죽음의 빛깔을 띠고 있었다.문소남이 넋을 놓고 석양을 보고 있을 때, 카시안이 나타났다.그녀는 파도가 넘실거리는
깊은 밤.임영은은 큰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 엎치락뒤치락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녀의 머릿속은 설도엽이 자신에게 했던 고문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그녀는 그 남자의 수법을 떠올리자 생각만해도 치가 떨렸다.큰 침대에 꼿꼿이 누워 있던 영은은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두 눈을 크게 뜨고 천장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미세한 향기가 방 안에 서서히 감돌았다.향기를 맡자 영은은 점점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너무 졸려 눈을 뜨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그러자 향기롭
소남의 앞에서 원아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없었다.“출근하기 싫은 거예요?”소남은 그녀의 말을 겉으로는 믿는 척하며 물었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원아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전날부터 출근 준비를 했던 그녀가, 단순히 출근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지을 리 없었다.‘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아. 하지만 아침부터 무슨 일이 생긴 거지?’소남은 속으로 궁금해하면서도 원아를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원아는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굳이 진실을 캐
“이건 장기적인 투자예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거고, 게다가 당신이 진행 중인 연구도 이제 상용화될 때가 됐어요.” 소남은 원아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살짝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원아가 진행한 연구는 몇 차례의 임상 실험을 통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었다. 그 후 회사의 마케팅팀이 시장 조사를 했고, 적절한 가격 조건만 맞으면 대부분의 의료 기관이 그 약품을 대량으로 구입하여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시장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원아는 소남의 가까운 존재감에 살짝 혼란스러워하며 나지막이
소남은 설계 도면을 디스크에 저장한 후, 모든 자료를 서류 봉투에 넣었다. 모든 작업을 마친 그는 원아도 샤워를 끝냈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그는 문을 열고 들어갔고, 원아는 이미 샤워를 마치고 화장대 앞에서 꼼꼼하게 스킨케어를 하고 있었다.원아가 고개를 돌려 소남을 보며 말했다. “다 출력했어요?”“다 출력했어요.” 소남이 대답하며 다가 갔고 원아가 일어서자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아까 에런한테서 전화가 왔어요.”“무슨 일이죠...” 원아는 갑작스러운 불안감을 느꼈다. 이런 시간에 에런이 전화를
원아는 설계도를 꼼꼼히 살펴보았다.ML그룹의 입찰 이후, 소남이 이렇게 공들여 건축 설계도를 완성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설계도의 세부 사항 하나하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대표님, 이 설계도 정말 멋져요!” 원아는 감탄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을 하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원아는 생물제약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지금은 소남의 건축 설계도에 감탄하고 있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소남 씨가 방금 내가 한 말을 듣고, 내가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텐데. 안 그러면
눈이 녹으면서 날씨는 평소보다 더 쌀쌀해졌지만, 이연의 마음은 따뜻했다.예전에는 이연이 감히 송씨 가문 사람들을 마주할 용기도 없었고, 이런 일들을 처리할 결심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욱의 사랑이 이연의 결심을 굳건하게 해주었다. 즉,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현욱 씨...” 이연이 나지막이 말했다.“난 항상 여기 있어.” 현욱은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혹시 내가 도울 일이 생기면 꼭 말해줘요.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똑똑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당신을 도울 거예요.” 이연은 결심하
현욱이 그런 표정을 짓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원아는 그가 무언가 중요한 일에 직면해 있음을 직감했다.“그렇겠죠.” 비비안도 원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2층.현욱은 소남을 찾아가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소남은 현욱의 계획을 듣고 나서 얼굴이 굳어졌다.“알겠어. 앞으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이번에는 형님의 도움이 정말 필요해요. 저도 이번만큼은 절대로 사양하지 않을 거예요. 형님은 제 편에 단단히 서주기만 하면 돼요.” 현욱은 말했다.소남의 지지가 있다면, SJ그룹은 쉽게 무너지지 않
막 앉았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는 윤수정에게서 온 것이었다. 재훈은 전화를 받지 않고, 대신 윤수정에게 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형이 확실히 모든 개인 서류들을 전부 다시 발급한 것 같아요. 그 시기가 꽤 이른 편이었는데, 그때는 우리가 이연을 경계하지 않았을 때였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가 이 문제를 잘 처리하실 거예요.]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재훈은 핸드폰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송현욱과 이연... 너희 둘이 결혼을 했다고 해도, 내가 너희들을 행복하게 내버려 둘 것 같아!’‘
“할아버지, 지금 금고에 있는 형의 모든 개인 서류를 가지고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아마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서류들뿐일 거예요. 할아버지께서 형한테 정략결혼을 추진하실 때, 형은 이미 그때 모든 개인 서류를 다시 재발급 신청을 해서 새롭게 발급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재훈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최대한 차분하게 송상철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송상철의 얼굴은 화가 난 나머지 핏발이 부풀어 올랐고, 유 집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현욱이 이 녀석 당장 데려와.”“예, 어르신.” 유 집사는 이번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재훈이 지난번 T그룹의 입찰사업계획서를 훔치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고, 그는 그 책임을 부하에게 돌렸지만, 송상철은 여전히 그 일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재훈은 지금 자신이 직접 모든 것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네 엄마는 깨어나긴 한 거야?” 송상철이 다시 물었다.“예, 깨어나셨어요.” 재훈은 거실에서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서 있었다. 송상철이 모든 질문을 끝내야만 재훈이 서재로 가서 금고를 열 수 있기 때문이었다.송재훈은 송상철의 모든 질문이 끝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며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