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은은 겁에 질려 그녀가 알고 있는 것들을 털어 놓았다.그 기괴한 목소리는 계속 물어왔다.“넌 어떻게 진실을 안 거지? 설도엽은 지금 어디에 있어? 그에게 연락할 방법을 말해!”“그…… 설도엽, 그 변태가…… 나와…… 자면서 실수로 말한 거야…… 그는 매우 은밀하게 행동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이 필요할 때마다 연락해. 그래서 내가……먼저 연락을 할 수는 없어…… 나도 그가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어…… 이제 나를 풀어줘…… 제발 나를…….”영은은 공포에 질려 얼굴이 온통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임영은은 사실, 설도엽을 극도로 증오했다.그 남자는 자신을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괴롭히고 있는 악몽 같은 존재였다. 만약 원아의 손을 빌려 그를 없앨 수 있다면,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원아는 어쩌면 문소남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막상 영은의 입에서 그의 죽음에 대해 듣고 나니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영은의 옷깃을 붙잡고 독살스럽게 물었다.“설도엽이 소남 씨를 해친 이유가 뭐야? 정말 너와는 상관이 없어?”소남의 죽음과 관련한 일에서는 원아는 이성을 잃었다.원아의 다급한 모습에 그녀는 목적을 달
로즈 부인은 자기 쪽 세력이 많은 것을 믿고, 부상당한 문소남 일행을 그다지 안중에 두지 않았다.그녀는 문소남이 감히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인질로 잡을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아르툠, 로즈 부인을 놓아줘요. 그렇지 않으면 다 죽게 될 거예요!” 카시안은 권총을 들어 그의 이마를 겨누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떨리고 있었고, 눈동자에는 복잡한 감정으로 넘쳐흘렀다.그녀는 로즈 부인의 수법이 얼마나 잔인하고 악랄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모두 중상을 입은 상태여서 결국은 이 섬을 벗어나지
원아는 갑작스런 통증에 가슴을 움켜잡았다. 마치 칼로 찌르는 것 같은 찌릿찌릿한 통증이었다.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통증이 겨우 잦아들었다.‘무슨 일이지?’원아는 문소남에게 사고가 났던 날에도 이런 비슷한 통증을 느꼈던 것이 생각났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왜냐하면, 임문정과 주희진이 원아에게 손을 흔들며 음식 맛을 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원아야, 아빠가 너를 위해 끓인 국이야. 엄마가 네 입맛이 담백하다고 해서 아빠가 소금을 조금만 넣었다는데, 간이 맞는지 한 번 맛 좀 볼래?” 임문정이 친
송씨 저택.송현욱은 식탁 옆에 앉아 원아가 헨리에게 음식을 먹이는 것을 보고 있었다.원아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었는데, 그녀의 청초한 얼굴이 한층 더 깨끗하고 얌전해 보였다.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모성애 때문인지는 몰라도 원아는 점점 더 매력의 깊이가 더해지는 것 같았다.그는 그녀에게 자꾸 시선이 갔다.송현욱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형수님, 오늘 형수님을 식사에 초대한 이유는 송별의 의미도 있고, 한편으로는 러시아에 가서 주의할 사항에 대해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지난번, 소남 형님의 일은 정말
하필이면 그가 주는 음식도 엄마처럼 자기가 싫어하는 것들 뿐이었다.하지만 헨리는 송현욱이 무서워 주는대로 순순히 먹을 수밖에 없었다. 원아는 아들이 송현욱의 품에서 아무 소리 못 하는 것을 보며 우습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가슴이 찡했다. 자신이 평소에 아이들을 너무 사랑하고 친절하게 대했기 때문에 헨리는 응석받이로 자랐다. 만약 소남이 있었다면, 분명 헨리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송현욱은 가시를 발라낸 신선한 생선 한 점을 헨리의 입에 넣어주고는 할 말이 있는 듯 잠시 망설였다. “형수님, 오늘 초대에는 사실
조개마을.차가운 바닷바람이 허름한 작은 어선으로 불어 들어와 정신을 잃고 있던 남자를 깨웠다. 문소남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파도가 해안을 씻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그는 놀란 눈으로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고는 자신이 어선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비록 내부는 낡았지만, 상당히 깨끗했다. 소남은 2인용 판자 침대 위에 얇은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그는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가슴과 왼팔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문소남은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그제야 가슴과 팔에 두꺼운 붕대가 감겨 있다
원아는 모스크바는 처음이었다.이곳의 풍토와 건축양식은 아시아나 유럽과 확연히 달랐다. 비늘처럼 늘어선 점포와 고급 호텔 그리고 부자 주택 역시 모두 각자의 특색을 가지고 있었다.만약, 전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건축설계사인 원아는 틀림없이 흥분해서 카메라를 잡고 여기저기 사진을 찍어 댔을 것이다.그러나 지금 그녀는 그 특색 있는 건물들을 바라보면서도 아무런 감동이나 느낌이 없었다. 단지 가능한 한 빨리 이 도시에서 그를 찾고 싶을 뿐이었다.……남궁산은 원아를 데리고 5성급 호화로운 호텔에 도착했고, 레이가 직접 원아 일행을 접
소남의 앞에서 원아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없었다.“출근하기 싫은 거예요?”소남은 그녀의 말을 겉으로는 믿는 척하며 물었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원아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전날부터 출근 준비를 했던 그녀가, 단순히 출근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지을 리 없었다.‘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아. 하지만 아침부터 무슨 일이 생긴 거지?’소남은 속으로 궁금해하면서도 원아를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원아는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굳이 진실을 캐
“이건 장기적인 투자예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거고, 게다가 당신이 진행 중인 연구도 이제 상용화될 때가 됐어요.” 소남은 원아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살짝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원아가 진행한 연구는 몇 차례의 임상 실험을 통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었다. 그 후 회사의 마케팅팀이 시장 조사를 했고, 적절한 가격 조건만 맞으면 대부분의 의료 기관이 그 약품을 대량으로 구입하여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시장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원아는 소남의 가까운 존재감에 살짝 혼란스러워하며 나지막이
소남은 설계 도면을 디스크에 저장한 후, 모든 자료를 서류 봉투에 넣었다. 모든 작업을 마친 그는 원아도 샤워를 끝냈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그는 문을 열고 들어갔고, 원아는 이미 샤워를 마치고 화장대 앞에서 꼼꼼하게 스킨케어를 하고 있었다.원아가 고개를 돌려 소남을 보며 말했다. “다 출력했어요?”“다 출력했어요.” 소남이 대답하며 다가 갔고 원아가 일어서자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아까 에런한테서 전화가 왔어요.”“무슨 일이죠...” 원아는 갑작스러운 불안감을 느꼈다. 이런 시간에 에런이 전화를
원아는 설계도를 꼼꼼히 살펴보았다.ML그룹의 입찰 이후, 소남이 이렇게 공들여 건축 설계도를 완성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설계도의 세부 사항 하나하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대표님, 이 설계도 정말 멋져요!” 원아는 감탄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을 하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원아는 생물제약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지금은 소남의 건축 설계도에 감탄하고 있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소남 씨가 방금 내가 한 말을 듣고, 내가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텐데. 안 그러면
눈이 녹으면서 날씨는 평소보다 더 쌀쌀해졌지만, 이연의 마음은 따뜻했다.예전에는 이연이 감히 송씨 가문 사람들을 마주할 용기도 없었고, 이런 일들을 처리할 결심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욱의 사랑이 이연의 결심을 굳건하게 해주었다. 즉,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현욱 씨...” 이연이 나지막이 말했다.“난 항상 여기 있어.” 현욱은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혹시 내가 도울 일이 생기면 꼭 말해줘요.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똑똑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당신을 도울 거예요.” 이연은 결심하
현욱이 그런 표정을 짓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원아는 그가 무언가 중요한 일에 직면해 있음을 직감했다.“그렇겠죠.” 비비안도 원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2층.현욱은 소남을 찾아가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소남은 현욱의 계획을 듣고 나서 얼굴이 굳어졌다.“알겠어. 앞으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이번에는 형님의 도움이 정말 필요해요. 저도 이번만큼은 절대로 사양하지 않을 거예요. 형님은 제 편에 단단히 서주기만 하면 돼요.” 현욱은 말했다.소남의 지지가 있다면, SJ그룹은 쉽게 무너지지 않
막 앉았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는 윤수정에게서 온 것이었다. 재훈은 전화를 받지 않고, 대신 윤수정에게 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형이 확실히 모든 개인 서류들을 전부 다시 발급한 것 같아요. 그 시기가 꽤 이른 편이었는데, 그때는 우리가 이연을 경계하지 않았을 때였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가 이 문제를 잘 처리하실 거예요.]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재훈은 핸드폰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송현욱과 이연... 너희 둘이 결혼을 했다고 해도, 내가 너희들을 행복하게 내버려 둘 것 같아!’‘
“할아버지, 지금 금고에 있는 형의 모든 개인 서류를 가지고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아마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서류들뿐일 거예요. 할아버지께서 형한테 정략결혼을 추진하실 때, 형은 이미 그때 모든 개인 서류를 다시 재발급 신청을 해서 새롭게 발급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재훈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최대한 차분하게 송상철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송상철의 얼굴은 화가 난 나머지 핏발이 부풀어 올랐고, 유 집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현욱이 이 녀석 당장 데려와.”“예, 어르신.” 유 집사는 이번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재훈이 지난번 T그룹의 입찰사업계획서를 훔치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고, 그는 그 책임을 부하에게 돌렸지만, 송상철은 여전히 그 일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재훈은 지금 자신이 직접 모든 것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네 엄마는 깨어나긴 한 거야?” 송상철이 다시 물었다.“예, 깨어나셨어요.” 재훈은 거실에서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서 있었다. 송상철이 모든 질문을 끝내야만 재훈이 서재로 가서 금고를 열 수 있기 때문이었다.송재훈은 송상철의 모든 질문이 끝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며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