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은은 경비실 벽에 기대어 소리 내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아저씨들! 저 사람 좀 보세요, 제가 자기 딸이라니요.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녜요? 빨리 저 사람을 쫓아내 주세요. 너무 무서워요.”미인, 특히 눈물을 머금은 미인은 남자의 마음을 쉽게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임영은 씨, 겁내지 마세요. 우리가 이 미친놈을 당장 쫓아낼게요!”두 경비원은 전기 막대기로 노숙자를 때리기 시작했다.“으악!”전류가 흐르는 막대기에 맞은 노숙자는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경련을 일으키며 천천히 쓰러졌다.임영은은 이런 상황을 보고서도 마
부드럽고 따뜻한 밤의 풍경은 무척이나 아름다워 사람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다.옆방은 한참 동안 격렬한 시간을 보낸 뒤 잠잠해졌다.문소남은 옆방의 사람들 때문에 이미 몸이 달아오른 상태였다. 소남이 부드럽게 원아의 몸을 씻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성적이던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손을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원아의 몸에서는 만개한 제비꽃 같은 은은한 향이 났다. 소남은 욕조 안의 수온과 함께 자신의 신체 온도도 상승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소남의 커다란 손이 원아의 몸 구석구석을 헤엄치듯 어루만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어젯밤 집에 돌아와 자리에 누운 영은은 밤새 뒤척이다 채 세 시간도 자지 못했다. 시선이 붕대가 감긴 왼손을 향했다. 영은의 머릿속은 원망과 다른 여러 가지 감정으로 복잡했다.어제는 정월 대보름으로 온 가족이 모이는 날이었다. 양부모는 고택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느라 바빠 영은이라는 딸이 있다는 것도 잊어버린 것 같았다.영은은 서운함과 함께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부모님도 실은 나를 예뻐하는 게 아니야!’‘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중요한 날에 전화 한 통도 하지 않을 수 있겠어?’무엇보다 영은을 가장 많이 화가
‘문소남이 뇌물을 줬다고?’그렇게 오만한 남자가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뇌물을 줄 수 있는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영은에게 이것은 충격적인 소식이었다.영은은 숨을 죽이고 서서 양아버지와 비서의 대화를 엿들었다.“지난달, 시 당 위원회의 사 위원장이 특대 횡령 혐의로 사건의 설명을 요구받았습니다. 자신의 죄를 줄이기 위해 그는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밝혔습니다. 몇 년 전에 그가 뇌물을 받고 또, 뇌물을 준 내막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 문소남이 있었습니다. A 시 상업계에서 떠오르고 있는 새로운 권력자인 데다,
아래층으로 내려가기 전에 영은은 임문정의 서재를 쓱 훑어보았다.임문정과 유 비서의 대화를 들은 후, 아직 영은의 마음에는 사나운 파도가 가시지 않았지만, 머릿속에는 대담하고 놀라운 생각이 떠올랐다.영은은 아침을 먹는 내내 정신이 딴 곳에 있었다. 식사를 마친 영은은 황급히 병원으로 달려갔다.병원의 고객은 대부분 귀부인이나 재벌 집안의 아가씨 또는, 유명 연예인이었다. 보안이 잘 이루어졌기 때문에 상류층이나 유명인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영은이 이 병원을 고집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영은은 곧바로 담당의사 진료실로 향했다.흰
용봉 마을.아침 7시가 넘은 시각, 문소남과 원아는 숙소에서 나와 A 시로 돌아갔다.옆방을 지나던 원아는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무심코 안을 들여다보았다.흰색 가운을 걸친 긴 머리 여자가 분홍색 쿠션 위에 멍하니 기대어 앉아 있었다.천장에 매달린 풍경이 그녀의 머리 위에서 낭랑한 소리를 냈다.예쁘장한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가득했고, 마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여자의 얼굴을 본 원아는 순간 어리둥절했다. 익숙한 얼굴의 그녀는 블루캐슬에서 만났던 직원인 진보라를 닮은 듯했다.원아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원아가 천천히 잠에서 깼다.게슴츠레한 눈을 비비며 일어난 원아는 완전히 젖혀진 의자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개를 돌리니 소남은 옆에서 집중한 채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원아는 민망한 듯 어색하게 머리를 쓸어넘겼다.“미안해요. 깜박 잠들었어요. 정말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괜찮아. 잘 쉬었어?” 소남이 웃으며 물었다.“진작 좀 깨워주지 그랬어요. 어머! 벌써 아홉 시 삼십 분이에요. 출근 시간이 삼십 분이나 지나버렸어요.” 원아가 휴대전화에 표시된 시각을
오후 3시 반이 되어서야 회의가 모두 끝났다.설계부서 직원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업무를 계속했다.원아는 컴퓨터를 켜자마자 고객 임 노인이 자신의 설계도에 관한 피드백을 메일로 보낸 것을 발견했다.이메일에서 임 노인은 원아처럼 재능이 넘치는 건축설계사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진심으로 원아를 임씨 고택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심지어 그는 어린아이의 난처한 표정이 잘 드러난 이모티콘까지 사용했다. 원아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그는 트집 잡기 일쑤인 깐깐한 노인이었지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