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살면서 남한테 위협받는 걸 제일 싫어했다.강주승이 그의 약점을 결정적인 순간에 터뜨리겠다고?그런 강주승에게 기회를 줄 박시준인가?강주승이 이를 써먹지 않으면 이대로 상자와 함께 사라져 줘야지!오늘 밤의 화재로 죽지 않아도 저택은 활활 타오르는 불에 재가 됐을 게 분명했다.고요한 밤은 금세 요란한 앰뷸런스 소리로 시끄러워졌다.스타팰리스 별장, 자고 있던 한이도 바깥의 소리에 깨어났다.그는 저 멀리 보이는 붉은 불빛에 놀라급히 침대에서 일어나 어둠 속을 헤매며 주춤주춤 마이크의 방으로 걸어갔다.방금 잠이 든 마이크는 피곤한지 바깥의 소동에 깨지 않았다."밖에 하늘이 빨개요." 한이는 창문 쪽을 가리키며 마이크를 깨워 보여줬다.이에 마이크는 눈을 비비며 창밖의 상황을 보더니 바로 휴대폰을 꺼내 뉴스를 확인했다."도심의 주택가에 불이 났네. 왜 폭발했는지 아직 모르는 상황이고 화재가 어마어마하게 난 모양이야." 마이크는 뉴스를 보여주며 하품을 했다.한이는 그의 말을 듣자 떠나지 않고 제자리에 꼿꼿이 서 있었다.마이크는 심각한 그의 표정에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한이 형, 엄마 보고 싶지? 며칠만 지나면 너와 라엘이를 데리고 B국으로 갈게. 시간도 많이 늦었는데 일단 빨리 자자!""그리고 밖에 화재가 일어나 무섭겠지만 우리 동네까지 번지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마음 놓고 가서 자!" 마이크는 그가 걱정할까 봐 말을 덧붙였다.마이크가 진아연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면 한이도 어머니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다.그는 지금 귓가에 들리는 앰뷸런스 소리와 어두운 밤의 훤히 밝히는 불빛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이번 화재로 누군가는 죽게 된다는 생각에 못내 마음이 무거워졌다.감성적인 아이가 아니었던 한이는 아마 시은이의 떠나면서 어린 마음속에 트라우마가 남았을지도 몰랐다.다음 날 아침, 도심 주택의 화재 사건이 뉴스 헤드라인에 올라 화제가 되었다.화재는 고급 주택 단지에서 발생했고사고가 발생한 집뿐만 아니라 위층, 아래층 모든 주민에
마이크는 이번 화재를 간결하게 메시지로 편집해 진아연에게 보냈고 박시준의 사진도 몰래 찍어 같이 보냈다.같은 시각, B국은 밤 10시가 되었고진아연은 침대에 누워 잠을 이루지 못했다.마이크의 소식을 확인한 그녀는 박시준의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이해하려 했지만, 상상력이 부족한 탓인지 그가 왜 갑자기 강씨 가문 형제를 죽이려는지에 대해 전혀 알 수 없었다.지성이의 조산 때문에 강진을 끝장내려 했다 해도 왜 강주승의 집을 선택한 거지? 그리고 왜 이런 시기를 선택한 거지?아무래도 그와 강씨 가문 형제 사이에 다른 일이 있던 것 같았다.전과 같았으면 이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겠지만, 지금은 그럴만한 기력이 없었다.그녀는 약 80%의 정력을 세 아이한테 쏟아야 했고.남은 힘도 최운석의 치료에 집중해야 했다.그리고 진아연은 최운석의 가족들과 약속했다. 구정을 보낸 후 바로 최운석의 첫 수술을 진행하고1차 수술 마친 후 치료 효과에 따라 2차 수술의 진행 여부를 확인할 거라 알렸다.마이크는 진아연의 답장이 없자 아이들의 사진을 그녀한테 보냈다.이에 진아연은 참지 못해 답장했다. 라엘의 눈이 너무 빨갛네? 혹시 운 거야?마이크: 응. 영당에 시은 씨의 영정 사진을 세워놨는데 보자마자 울었어.진아연은 그의 답장에 마음이 더욱 복잡해졌다.만약 그녀가 같은 자리에 있어도 참지 못해 울었을 거였다.잠깐의 침묵 끝에 그녀는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그 사람은 어때?마이크: 그 사람이라니? 한이를 말하는 거야? 아니면 박시준 씨?진아연은 마이크의 답장을 보더니 어색한 듯 숨을 내쉬었다.마이크도 일부러 그녀를 놀리고 싶었던 거지, 화나게 할 생각은 없었다. 한이는 울지는 않았는데, 계속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어. 박시준 씨도 마찬가지야. 역시 부자는 부자인가 봐. 두 사람 진짜 똑같다니까.진아연은 그의 답장을 보면서 피곤함이 몰려와 서서히 잠이 들었다.이제 시은이도 편히 쉴 수 있고 모든 아픔도 치유될 거다.A국, 병원.왕은지는 소식을 듣
강주승은 왕은지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더니 눈 속에 눈물이 고여있었고 증오로 가득 찼다.아직 목숨도 붙어있건만! 감히 왕은지 따위가 그를 무시다니!박시준이 그를 무시한다 쳐도 왕은지는 뭔데 그를 무시하는 거지?추도회 현장.의식이 끝난 후, 시은이의 개인 물품은 차에 실렸고그녀의 유물은 박 부인의 무덤 옆에 묻힐 계획이다.장례식에 참가한 손님들은 점심 식사 때문에 호텔로 향했고마이크도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갈 생각이었지만 라엘과 한이는 박시준의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봤다.박시준은 시은이의 유물을 직접 묘지로 보낼 생각이었다.마이크: "박시준 씨는 묘지에 가려는 거 같은데 너희들도 갈 거야?"이에 한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곁에 있던 라엘이도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그러면 같이 가자." 마이크는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공동묘지로 향했다.묘지가 산 근처에 위치해서 그런지 한기가 몸서리치게 만들었다.시은이의 유품이 하관한 후 위에 묘비가 세워졌고박시준은 묘비에 시은이의 웃는 사진을 보며 천천히 몸을 숙여 하얀 백합 한 송이를 앞에 놓아줬다."시은아,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절대 이런 바보 같은 행동하면 안 돼."라엘이는 그의 말을 듣더니 바로 중얼거렸다. "시은 언니는 바보 아니에요! 바보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시은이 언니는 모르는 게 없단 말이에요."마이크는 급히 라엘이에게 말하지 말라고 눈치를 줬다."시은이 언니는 엄마가 언니의 수술을 해줬다는 걸 알고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엄마를 좋아하고 저와 오빠, 그리고 동생도 좋아해 주는 거예요..." 지금 말하지 않으면 더는 말할 기회가 없다고 생각한 라엘이는 슬픈 마음에 계속 말을 이었다. "만약 저한테 타임머신이 있다면 어떻게든 시은 언니가 헌혈하지 못하게 막았을 거예요. 동생도 좋지만, 시은 언니를 잃는 건 싫으니까요."박시준은 라엘의 말을 듣더니 갑자기 몸이 굳어버렸다.진아연이 시은이에게 수술을 해줬다고?수술해 준 사람이 진아연이다니!그는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기분이
심윤은 사람 자체가 거짓말이었다!하지만 지금 박시준은 심윤보다 더 우스웠다.적어도 심윤은 거짓인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박시준은, 여태까지 모든 것을 진짜로 믿고 있었다."진아연, 너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박시준은 낮은 목소리로 울음이 섞인 듯 토로했다. "왜?"하지만 돌아오는 건 쓸쓸한 바람 소리뿐이었다.돌아가는 길에 라엘은 물었다. "아빠는 왜 엄마가 수술를 한 걸 알고 기분이 안 좋아졌죠?""라엘아, 만약에 오빠가 라엘이한테 거짓말을 했다면 라엘이는 화가 나 안 나?" 마이크는 아주 적절하게 예를 들어 이야기해 줬다. "아빠는 시은이 수술을 한 사람이 엄마라는 걸 미리 알았으면 화나지 않았을 거야.""그럼 엄마는 왜 아빠한테 말 안 했어요?""그건 너희 엄마가 그때는 아빠랑 엮기고 싶지 않아서 그랬어. 괜히 아빠랑 그때 엮기면 너랑 오빠 양육권을 아빠가 가져가려고 할 수도 있었으니까. 나중에 엄마랑 아빠가 사이가 좋아지고 했고 이 일도 엄청 오래돼서 굳이 얘기하려고 하지 않았지."마이크의 설명은 들은 라엘이는 알듯 모르는 듯했다."어른들의 세계, 참 복잡하네요.""그렇지! 그래서 어쩌면 시은이 같은 사람이 더 행복했을 수도 있어." 마이크는 말하며 라엘이를 슬쩍 쳐다보았다. "너 지금 눈이 퉁퉁 부어 있어, 오늘 저녁에 리허설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리허설은 진짜 방송이 아니에요." 라엘은 부은 눈을 문질렀다. 조금 아팠다. "녹화가 다 끝나면 엄마한테 갈래요.""그래."저녁쯤, 진아연에게서 영상통화가 걸려왔다.이 시각 B국은 아침 7시었다. 진아연은 보통 이 시간에 아이들이랑 영상통화를 하곤 했다."시은이 장례식 다 끝났어. 라엘이는 공연 리허설하러 갔어." 마이크와 한이는 카메라 앞에 서서 진아연과 영상통화를 했다. "라엘이가 박시준한테 시은이한테 수술을 해준 사람이 너라는 사실을 말해 버렸어. 박시준이 라엘이의 말을 듣고 많이 흥분하더라고, 아마 큰 충격을 받았을 거야."반대편에서 진아연은 침묵했다.
라엘이는 이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라엘이는 곁눈으로 자기를 따라 들어온 이 여자를 몰래 훑어보았다.전혀 모르는 사람이 웬일로 자기한테 물어볼 게 있다고 하는 걸까?라엘이는 일을 보고 재빨리 바지를 올려 입었다."라엘아, 이모가 나쁜 사람이 아니니까 너무 긴장하지 마." 여자는 라엘이가 옷 정리를 다 한 걸 보고 바로 입을 열었다. "박시준 씨가 보내서 온 거야."'박시준' 세 글자를 들은 라엘이는 바로 경계심이 사라졌다.비록 아직 박시준을 아빠로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평소 박시준이 라엘이한테는 잘해 주었었다.적어도 박시준이 라엘이를 해칠 리는 없었다. 라엘이는 한시름 놓고 물었다. "방금 너무 놀랐어요! 근데 박시준 씨가 왜요? 무슨 일인데 직접 찾아오지 않아요? 바로 어제도 만났었는데!"여자는 약간 제 발이 저렸다. "그건 이 일이 좀 많이 중요하고 특별해서 그래. 박시준 씨가 직접 너한테 말하면 네가 놀랄까 봐 나한테 너랑 얘기 좀 해 달라고 부탁했어."여자의 말을 듣고 방금 안심했던 라엘이의 마음은 또다시 초조해졌다."중요하고 특별한 일인데 왜 어린아이한테 말하는 거예요?" 라엘이는 평소에 어른인 척 자주 하지만 그렇다고 자기가 아직 아이라는 걸 잊고 그러는 건 아니었다. "엄마가 B국에 가 있긴 하지만 전화는 할 수 있잖아요! 그것도 안되면 저희 오빠한테 말하면 되잖아요!"오빠도 라엘이랑 같은 나이였지만 라엘이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성숙한 아이였다.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이 일은 너희 엄마도 몰라. 짙은 빨간색 박스에 관한 거야."여자의 이 말에 라엘이의 표정은 굳어 버렸다.짙은 빨간색 박스?라엘이는 명절 때마다 수많은 선물을 받는다. 이 선물들은 모두 여러 가지 색깔 박스로 포장되어 있었다.때문에 라엘이는 여자가 말하는 짙은 빨간색 박스가 뭔 뜻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라엘아, 조급해 하지마. 내가 말한 이 짙은 빨간색 박스, 박시준 거야. 혹시 너랑 오빠가 박시준 집에서 짙은 빨간색 박스 하나 가져간
박시준은 어떻게 라엘이가 박스를 가져간 걸 알았을까?라엘이는 몹시 불안했다. 지금 옆에 의지할 아무도 없었다. 라엘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저... 몰라요... 이모, 저 집에 가고 싶어요." 라엘이는 눈을 내리뜨고 화장실을 벗아나고 싶었다.하지만 여자는 나가지 못하게 문 앞을 가로 막아섰다."라엘아, 네가 지금 좀 무서울 거라는 걸 이모도 알아. 왜냐면 나도 마찬가지거든." 여자는 목소리를 낮췄다. "만약에 네가 박스가 어디에 있는지 안 알려주면 박시준 씨가 나뿐만 아니라 너를 데리고 온 경호원 아저씨도 죽일 거야. 박시준 씨가 어떤 사람인지 너도 들었을 거잖아."라엘이는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고개를 저었다. "제가 말하지 않으면 절 죽인다고요?! 아니에요! 절대 그러지 않을 거예요.""당연히 너는 안 죽이겠지, 딸인데, 그런데 너를 데리고 온 저 경호원 아저씨 죽는 걸 보고 싶어?" 여자는 차분히 말하는 듯했지만 말에는 위협이 가득했다.라엘이는 순간 눈시울이 붉어지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아니요... 아저씨 죽으면 안 돼요...""라엘아, 그 박스 박시준 씨 거야, 네가 지금이라도 박스를 돌려주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여자는 차근차근 라엘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박스를 주인인 박시준 씨한테 돌려주자, 어때?"라엘의 최후의 방어막은 끝내 무너져 내렸다. "그게... 오빠한테 말하고...""오빠한테 왜 얘기해? 오빠가 그러지 말라고 하면? 그러면 나랑 경호원 아저씨가 박시준 씨 손에 죽을 텐데." 여자는 말을 하며 눈물을 짜냈다. "일단 오빠 몰래 박스를 돌려주고 나중에 오빠가 알아채면 그때 얘기하면 돼, 오빠가 절대 너한테 뭐라고 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어쩌면 오빠가 모를 수도 있잖아."라엘이는 눈물을 닦아 내긴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고민됐다.라엘이는 난생처음 이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아직 6살 밖에 안되는 아이가 뭘 알겠는가, 또 뭘 결정할 수 있을까?"라엘아, 그 박스 너희 집에 있어? 내가 집에 데려다줄까?
"방금 그 이모, 박시준이 보내서 온 사람이에요." 라엘이는 경호원에게 진지하게 알려줬다. "박시준이 나쁜 사람이에요! 박스를 안 내놓으면 아저씨를 죽인다고 했대요. 아저씨가 매일 저를 보호하기 위해 옆에서 지켜주는데 제가 어떻게 박시준이 아저씨를 죽인다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어요?"경호원은 라엘이의 말에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박시준 씨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리고 개도 주인을 가려서 때린다고 난 너희 엄마가 고용한 경호원이야, 나를 죽이면 너희 엄마한테 어떻게 얘기할 건데?"라엘이는 눈을 깜박이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박시준이 엄마를 감히 못 건드린다 그 말이에요?""그럼! 박시준 씨가 가족을 괴롭히는 걸 본 적이 있어? 너도 그렇고 네 오빠도, 그리고 마이크 아저씨도 언제나 예의를 갖추지 않아?" 경호원은 차근차근 라엘에게 말했다. "내가 박시준 씨한테 뭔 짓 한 것도 아닌데 나를 왜 죽이겠어?""하지만 제가 박시준 물건을 훔쳤어요." 라엘이는 경호원의 옷자락을 잡고 중얼거렸다. "그 박스는 제가 그 집에서 몰래 가지고 온 거예요, 안에 아저주 중요한 물건이 들어있단 말이에요. 이제라도 돌려주면 화 안 내겠죠?"경호원은 뭔가 모를 불안감이 몰려왔다.하지만 라엘이가 물건을 돌려준다는 거니까, 크게 걱정할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이때, 박스를 손에 쥔 여자는 스타팰리스 별장 앞 큰 도로에서 의기양양하게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알리려고 했다.여자는 일이 이렇게 일사천리로 진행될 줄 몰랐다.역시나 라엘이는 아직 어리석은 한 아이일 뿐이었다. 몇 마디 협박에 당하고 말았다.그리고 일이 이렇게 잘 풀린 건 천운, 땅운 그리고 사람운이 모두 따랐기 때문이었다.때마침 라엘이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라엘이는 상의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덕분에 박스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전화가 걸리자 전화 반대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어때? 물건 찾았어?""그럼요! 아주 쉽게 성공했어요!" 여자는 조수석에 앉아 방금 얻은 빨간색 박
이 점을 확인한 왕은지는 재빨리 회사에서 나와 직접 운전을 해 스타팰리스 별장으로 향했다.왕은지는 가장 빠른 속도로 스타팰리스 별장에 도착했다.별장 앞 큰길에 들어서자 교통사고 현장이 한눈에 보였다.왕은지는 차에서 내려 수많은 구경꾼들을 향해 걸어갔다.검은색 차 한 대와 흰색 차 한 대가 완전히 변형이 되어 있었고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땅바닥에는 많은 피가 흩어져 있었다.핏자국 외에 가장 눈에 띄는 건 바닥에 누운 채로 하얀 천에 덮여 있는 사람이었다...'사람' 이라고 하기보다, 이젠 '시체' 라고 하는 게 더 정확했다.왕은지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쪽에 어울려 하얀색 천에 덮인 사람의 의상을 보았다... 의상으로 봐서는 자기가 보낸 그 여자가 맞았다.왕은지의 가슴은 덜컹 내려앉았다!사람은 죽은 건 그렇다 치고! 그런데 빨간색 박스는?! 박스는 어디에 있지?왕은지는 바로 뛰어가 차에서 찾고 싶었다. 하지만 현장에는 카메라를 들고 실시간으로 촬영을 하며 조사를 하고 있는 경찰들이 있었다. 왕은지는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박시준이 자기가 사고 현장에 왔었다는 걸 알면 박스를 찾으러 온 게 아니었어도 자기를 쉽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왕은지는 어쩔 수 없이 초조함을 참고 멀리서 경찰들이 차에서 꺼내는 물건 하나, 하나를 주시하고 있었다.핏자국으로 얼룩진 짙은 빨간색 박스가 나오자 왕은지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바로 저 박스! 저 박스가 틀림없다! 저 박스 안에 왕은지가 그렇게 원하는 물건이 들어있다!왕은지는 반사적으로 몸을 앞으로 밀었다...이때, 경찰이 박스를 열어 박스 안을 확인했다.왕은지는 숨을 멈추고 눈을 튀어나올 정도로 동그랗게 뜨고 박스 쪽을 바라보았다!하지만 경찰은 박스 안을 확인하더니 박스를 닫아 옆으로 던져 버렸다!마치 쓰레기를 버리듯이 옆에 버렸다!왕은지는 땅에 버려진 빨간색 박스를 바라보며, 한껏 들끌어 올렀던 온몸의 피가 순간 가라앉았다.설마... 박스 안에 아무것도 없는 건가?!그렇지 않으면 경찰이 박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