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는 진아연을 힐끗 쳐다보면서 물었다. "가서 얘기해 볼 거야?"진아연은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멍하니 창밖에 있는 남자한테 홀려 넋을 잃었다.이때 마이크는 차를 멈추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연아, 내려가서 얘기해 봐."진아연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문을 열어 차에서 내렸다.차 안의 에어컨 때문에 날씨의 무더움을 느끼지 못했던 그녀는차에서 내리자마자 덮쳐오는 열기에 금세 식은땀을 흘렸다.그녀는 햇빛에 붉어진 박시준의 얼굴을 보자 할 말을 잃었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고 셔츠는 이미 땀으로 젖어 달라붙어 있었다.이 무더운 날씨에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상상할 수 없었다."진 아가씨,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이대로 계속 기다렸다면 대표님도 더는 버틸 수 없었을 겁니다. 저희 아침 8시부터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요." 박시준의 경호원은 불만 가득한 말투로 원망했다.이에 진아연은 벙어리라도 된 듯 아무 말 없이 몸만 떨고 있었다!이 무더위 속에서 바보처럼 온종일 기다린 것만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졌다. "박시준 씨, 제가 집에 없다는 걸 몰랐어요?!""그럼 내 연락받지 않는 건 보지 못해서였어? 혹시라도 집에 있는데 날 만나고 싶지 않아서 일 수도 있잖아?!" 종일 물도 마시지 않고 기다려서인지 그의 목소리는 이미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쉬었다.진아연은 그의 말에 눈시울이 붉어졌다.전날 밤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어도 오늘 다시 연락하면 받았을 수도 있었잖는가?"무슨 일로 저를 찾아온 거예요? 라엘의 촬영 스케줄 때문에 찾아온 거예요? 그럼 아이도 돌아왔으니 가서 물어보세요!" 그녀는 눈물을 꾹 참고 울먹이며 말했다.말이 쉽지. 진아연의 아이들이 언제 자기 말을 들었던가?"라엘이는 아직 어린데 왜 돈을 벌고 싶어 하는 거지? 혹시 네가 나한테 빚진 걸 알고 있어? 왜 아이한테 괜한 부담을 주는 건대? 그러고도 엄마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 박시준은 차가운 말투로 밀어붙였다.진아연은 순간 그의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확실
그녀는 말을 마치고 위층으로 올라갔다.하루 종일 밖에서 돌아다녔더니 몸도 마음도 피곤한 상태였다.마이크는 그녀가 위층으로 올라가자 라엘을 안고 은행으로 향했다.마이크는 라엘과 함께 ATM 앞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카드를 꽂았다.비밀번호는 카드 뒷면에 적혀있었고 진아연의 생일이므로 기억하기 매우 쉬웠다.마이크는 비밀번호를 입력한 후 확인 버튼을 클릭했다.화면에는 갑자기 수많은 0이 나타났고마이크는 화면을 보자 할 말을 잃었다. "..."곁에 있던 라엘도 따라 외쳤다. "마이크 삼촌! 이게 얼마예요?! 0이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어요! 우와!"이는 아마 라엘의 지식 범위를 벗어났을 것이다.마이크는 당황한 듯 헛기침을 하더니 화면의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때 라엘이 갑자기 화면의 첫 번째 숫자를 가리키며 외쳤다. "이건 7이에요."마이크: "라엘아, 갑자기 소리 지르면 삼촌이 까먹어! 내가 어디까지 셌지? 어디지!""마이크 삼촌, 바보! 사진을 찍어서 엄마한테 물어봐요! 엄마라면 단번에 얼마인지 알 수 있을걸요! 삼촌처럼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아니면 남자친구분한테 물어봐요! 삼촌보다 똑똑해 보이던데요!" 라엘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라엘의 말에 얼굴이 붉어진 마이크는 바로 말했다. "라엘아, 삼촌도 얼마인지 알고 있어. 세지 않아도 알거든. 카드 안에 총 14,000억 있어."진아연이 박시준한테 빚진 돈이 마침 14,000억이었다.어리둥절한 라엘은 동그란 두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마이크 삼촌, 14,000억이면 얼마예요? 장난감과 아름다운 옷을 얼마나 살 수 있어요?"마이크는 어떻게 말해야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지 몰랐다."예를 들자면 이번에 나흘 동안 촬영하면서 1,400만 원을 벌었잖아. 그럼 하루에 350만 원을 번 건데. 매일 이렇게 번다면 127억쯤 벌 수 있단 말이지. 그리고 매년 이 정도 번다면 지금부터 약 110년 정도 일해야 하는데... 지금 5살이면 115세까지 살아야 14,000억을 벌 수 있어." 마
그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휴대폰 화면을 몇 초 동안 보더니 자기도 모르게 전화를 받았다.전화가 통하자 영상 화면이 보이면서한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진아연은 한이의 모습에 흥분했는지 바로 물었다. "한이야! 너 왜 갑자기 엄마한테 영상통화로 연락한 거야?""엄마, 저 캠프의 네트워크를 공략해 가상 계좌로 연락드린 거예요. 엄마, 라엘은요?" 한이는 환한 얼굴로 그녀한테 물었다."집에 돌아왔는데 방금 네 마이크 삼촌과 함께 나가고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 한이야, 잘 지내고 있는 거지? 선생님이 며칠 전에 연락 왔는데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면서?" 진아연은 자상한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엄마, 저 이제 다 컸어요. 더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어린 한이는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엄마가 어떻게 걱정하지 않겠니? 네가 아무리 컸어도 엄마는 항상 너를 걱정해. 이제 열흘만 지나면 면회 갈 수 있네!" 진아연은 아들의 얼굴을 보면서 그리움이 가득했다."엄마, 그럼 저 밤마다 영상 통화로 연락드릴까요?""규정을 위반하면 어떡해? 혹시 선생님께 발견되면 혼날걸?" 진아연은 못내 걱정이었다."괜찮아요. 선생님도 제가 엄마한테 연락하는 걸 알고 있어요. 그리고 저는 제 실력으로 연락하는 건데 뭐라 할 수 없어요." 한이는 자랑스럽게 말을 이었다.그런 아들을 본 진아연도 내심 한이가 자랑스러웠다. "맞다. 한이야, 나중에 마이크 삼촌한테 연락해 라엘이한테 연예계에 발을 딛지 말라고 말려줘. 이제 엄마도 돈이 있고 박시준 씨한테 진 빚도 엄마 스스로 갚을 수 있으니 너희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지금 너희한테 제일 중요한 건 공부와 건강히 커가는 거야."한이: "네. 그럼 나중에 라엘이한테 말할게요."진아연: "그래. 엄마도 라엘이랑 말해보겠지만 그래도 오빠인 네 말을 더 잘 들어줄 것 같아서 말한 거야."한이: "알겠어요. 그럼 지금 마이크 삼촌한테 연락할게요."한이는 진아연이 말을 꺼내지 않아도 마이크한테 연락해 볼 참이었다.진
한이는 바로 전화를 끊었고곁에서 듣고 있던 마이크는 웃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지만 라엘의 어리둥절한 표정에 웃음을 꾹 참았다.집에 돌아온 후, 진아연은 라엘이의 손을 꼭 잡고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라엘이 먼저 입을 열었다."엄마, 저 귀엽게 생기지 않았어요?""당연히 귀엽지! 우리 라엘이 세상에서 제일 귀여워.""그럼 저 나중에 스타 될래요. 그리고 번 돈을 모두 엄마한테 드릴게요! 오빠한테 절반 주겠다고 했는데 오빠가 싫대요." 라엘은 반짝이는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진아연은 딸의 말에 머릿속이 하얘졌다.아무래도 딸과 대화가 통하지 않을 듯해 김세연과 연락해 얘기하려 했다.그녀는 바로 김세연에게 라엘이의 연예계 진출 반대 의사를 알렸다.30분 후, 김세연은 그녀에게 답장했다. 라엘은 아직 어리지만 그래도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예계는 아연 씨가 생각한 것처럼 무서운 세계가 아니에요. 제가 그 어떤 상처도 받지 않게 잘 지켜줄게요. 저를 믿어주세요.진아연은 협상 실패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라엘의 선택을 존중하고 계속 연예계에 발을 딛게 한다면 박시준은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고진아연은 더는 그와 다투고 싶지 않지만, 그 사람 때문에 딸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슬슬 잠을 이루었다.일주일 후.진명그룹의 고급 드론은 A국의 드론 영역에서 대체 불가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 여러 서장의 시찰을 받게 되었다.진아연은 3일 전에 시찰 통지를 받았고배 속의 아이 때문에 움직이기 불편해 부대표에게 시찰의 동반을 부탁했다. 하지만 부대표가 너무 긴장한 탓인지 고열이 나어쩔 수 없이 그녀가 직접 나서야 했다.그녀는 간단하게 화장을 마치고 긴 머리를 틀어 올린 후 하늘색의 롱 스커트를 갖춰 입었다. 심플하면서도 절대 우아함을 잃지 않았다.아침 10시에 서장이 오기 때문에 9시 30분에 1층으로 내려와 대기하고 있었다.10분 후, 웬 빨간색 BMW가 회사 앞에 멈춰 서더니
심윤이 박우진을 언급하지 않았다면 진아연은 그의 존재마저 잊고 있었을 거다!6년 전, 두 사람이 헤어진 후, 그녀는 박우진에게 완전히 실망했고박시준을 사랑하게 되면서 더는 다른 남자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그런데 심윤이 갑자기 그녀가 박우진을 뺏으려고 했다니!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멀지 않은 곳에서 지켜보던 경호원들도 심윤의 행동에 바로 달려가 그녀의 허리를 걷어찼다!심윤은 너무 아픈 나머지 진아연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뒤로 넘어졌다."나 임신했어! 감히 나를 발로 차! 아이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너도 죽여버릴 거야!" 심윤은 바닥에 쓰러져 통곡했다.주위의 경비원들과 비서도 바로 달려왔고비서는 지저분해진 진아연의 머리를 보더니 바로 부축했다. "대표님, 괜찮으세요? 일단 안으로 들어가셔서 정리해 드릴게요."진아연은 점점 빨개진 눈동자로 바닥에 쓰러진 심윤을 노려봤다."대표님, 이 여자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이때 경비원이 물었다.이에 진아연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일단 이 사람과 그녀의 차를 옮겨주세요. 그리고 어디 가지 못하게 지켜보시고요. 제가 일을 마치고 얘기해 볼게요!"경비원은 그녀의 말에 심윤을 일으켜 세웠고 다른 한 명은 그녀의 가방에서 차 키를 찾아냈다.곧 빨간 BMW와 심윤은 함께 눈앞에서 사라졌다.비서는 진아연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빗어줬지만 두피가 따가워 너무 아픈 나머지 눈시울이 붉어졌다.심윤이 얼마나 화났으면 이렇게 달려든 걸까?아무 이유 없이 일어나는 사고는 절대 없는 법이다. 심윤도 그녀가 박우진과 함께 있는 걸 봤기 때문에 그녀를 찾아 소란을 떨었겠지만그녀는 진짜 박우진과 만난 적이 없었다.진아연은 심윤이 뭔가 오해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대표님, 두피를 다치셨는데 머리를 빗지 말고 차라리 푸세요!" 비서는 너무 아파 눈시울이 붉어진 그녀를 보고 급히 말렸다."제가 직접 빗을게요. 그리고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은 누구한테도 말하지 마세요." 그녀는 말하면서 비서의 손에서 빗을 받고 포니
"심윤 아가씨, 제가 박우진을 유혹했다고 하시는데 제가 그와 함께 있는 걸 보셨어요? 그럼 지금 박우진을 이곳에 불러 확인하면 되겠네요!" 진아연은 차 옆에 서서 그녀에게 물었다."안돼! 너를 찾아왔다는 걸 알게 되면 무조건 헤어지자고 할 거야! 난 너희들이 클럽에서 찍은 사진을 봤어! 그리고 박우진도 인정했는데 이제 와서 발뺌하는 거야?!" 심윤은 매우 괴로운 듯 말을 이었다."클럽이요? 전 그런 곳에 가본 적이 없어요! 그럼 박우진이 거짓말을 했거나, 사람을 잘못 봤겠죠! 저와 엄청 비슷하게 생긴 나나라는 여자가 있거든요. 믿기지 않으시면 그날 클럽에서 같이 사진 찍은 여자가 나나인지 조사해 보면 되겠네요!" 진아연은 진지하게 분석해 줬다."박우진이 너라고 말했단 말이야!" 진아연의 예상대로 심윤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아무래도 두 사람은 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 쉽게 믿을 리가 없었다."그럼 계속 저를 미워하시든지요! 다만 아가씨와 박우진의 일 때문에 저를 찾아오지 말았으면 하네요. 그렇지 않다면 다음에는 경호원에게 내쫓으라고 할 겁니다." 진아연은 냉랭하게 답했다.심윤은 점점 아파지는 허리를 붙잡고 쉰 목소리로 외쳤다. "혹시 배 속의 아이가 문제라도 생기면 네 아이도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진아연: "그건 아가씨가 그런 능력이 있는지부터 먼저 생각하셔야죠."진아연은 더는 말하기 귀찮아 바로 자리를 떠났다.ST그룹. 회장실.컴퓨터 화면에는 모 서장이 진명그룹을 시찰했다는 주제의 뉴스가 떠올랐다.박시준은 제목 아래 작은 사진의 하늘색 옷차림의 모습에 시선이 끌려뉴스를 클릭해 사진을 확대했다.진아연은 하늘색 롱 스커트를 입고 우아한 미소를 보였고 배가 부풀어 올라왔지만 투박한 느낌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이때 성빈이 문을 밀고 들어오면서 점심 식사를 함게 하자고 불렀다."저녁에 약속 있어?" 성빈은 대답없는 박시준을 보며 그의 책상을 두드렸다. "뭘 그렇게 집중해서 보는 거야!"이에 박시준은 페이지를 닫고 의자에서 일어났
진아연은 여소정과 담소를 나누고 있어 박시준이 다가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아연아, 이제 곧 출산하는데 긴장되지 않아?" 여소정은 빨대로 주스를 저으면서 물었다."긴장은 무슨. 그냥 빨리 낳고 싶어. 배가 너무 커서 좀 힘들어. 넌 어때?" 진아연은 케이크를 한 조각 입에 넣고 물었다."난 시부모님한테 내년에 생각해 보자고 말했어. 일단 내년까지 미루려고! 아직 더 놀고 싶어!""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네가 놀지 않을 사람은 아니잖아.""그래도 영향이 있을걸. 아이가 좋긴 좋은데 혹시 낳으면 아이를 버리고 놀 수도 없는 일이잖아.""그럼 아이들과 함께 놀아. 아이가 있으면 즐거운 일도 많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글쎄! 널 보면서 용기를 많이 얻긴 했어. 아이를 낳든 일을 하든 두려운 거 하나 없이 척척 잘 해내잖아. 내가 남자라도 너에게 빠져버릴걸." 여소정은 부러운 듯 그녀에게 말했다.이에 진아연은 웃었다. "네가 남자라면 난 너 같은 남자한테 시집 갈래! 하하!"여소정은 그녀와 희희낙락거리면서 다가오는 박시준을 보게 되었다.순간 얼굴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진아연에게 물었다.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온 거지?"진아연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돌렸고 눈앞에 나타난 박시준에 미소가 사라졌다."설마 네가 초대한 거 아니지?" 여소정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초대하지 않았어." 진아연도 목소리를 낮춰 답했다."그래? 그럼 내가 자리를 피해줘?" 여소정은 불안한지 속삭이며 물었다.진아연: "괜찮아."이때, 그녀들의 곁으로 다가간 박시준은 이들의 대화를 똑똑히 들었다.그는 아무 말 없이 냉랭하고 그윽한 눈길로 진아연의 머리를 바라봤다.무엇 때문인지 짐작이 간 진아연은 바로 일어나 그를 끌고 나갔다."오늘 아침에 널 괴롭힌 사람 누구야? 내가 얼떨결에 듣지 않았다면 나한테 알려 줄 생각도 없었지?" 그는 연회장에서 나온 후 담담하게 물었다."괜찮아요. 사소한 일일뿐이에요." 진아연은 그를 바라보며 얼렁뚱땅 넘어가려 했
진아연은 팩이 담긴 봉투를 강제로 그에게 쥐여주며 말했다. "박시준 씨, 방금 아이가 뱃속에서 움직였는데 지금 하는 말들을 듣고 있을지도 몰라요."박시준은 그녀의 말에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 멍하니 그녀의 배만 바라봤다."배를 잠깐 만져봐도 될까?" 그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지금은 움직이지 않아요. 아직 너무 어려서 자꾸 움직이지 않네요."두 번째 임신을 맞이한 진아연은 처음과 전혀 다른 느낌을 느꼈다.처음 임신했을 때 혹시라도 그가 알게 될까 봐 그 어떤 불편함도 그저 묵묵히 견뎌냈고엄마가 되는 기쁨보다 그가 알게 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더욱 컸었다.그러나 지금은 임신의 모든 과정을 즐길 수 있었다.그는 손바닥으로 그녀의 부풀어 오른 배에 댔고 진아연은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온도에 순간 긴장했다.배 속의 아기도 엄마의 초조함을 느꼈는지 갑자기 작은 발로 배를 차기 시작했다!"방금 또 움직였어요!" 진아연은 아기의 갑작스러운 발차기에 놀라 소리를 높였다."나도 느꼈어!" 지금의 박시준은 처음 겪는 기분에 어찌할 바를 몰랐고 이는 마치 어두움이 사라지고 한 줄기의 빛에 비친 듯 따뜻했다. "아파?""아프지 않아요. 아직은 힘이 그렇게 세지 않아요.""그래. 배고프지? 같이 밥 먹으러 가자." 아기로 인해 점점 뜨거워지는 마음 때문에 그녀와의 모든 갈등을 제쳐버릴 수 있었고 이 순간만큼은 오로지 그녀한테 잘 대해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전 배고프지 않아요. 배고프면 호텔로 돌아가죠!" 진아연은 부끄러운 듯 말을 이었다."그래." 박시준은 그녀를 부축하고 호텔로 돌아갔다.진아연은 생각도 못 했다. 두 사람이 아이의 태동 때문에 다툼을 멈출 줄이야.마치 이들의 다툼은 항상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시작되는 것처럼 말이다.한편.박씨 본가.심윤은 박우진을 방으로 부르고 문을 닫았다."박우진, 진아연과의 사이가 좋아졌다고 말하면서, 설마 저를 바보로 생각하는 거예요? 삼촌이 그렇게 두렵다면서 진짜 그 여자와 만날 생각이에요? 그리고
3년 후.A국, 공항.현이는 둘째 오빠와 함께 공항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3년이야 3년! 남자친구라는 사람 드디어 너 찾으러 오는 거야!" 박지성은 현이를 놀리며 얘기했다. "설마 너랑 헤어지러 오는 건 아니겠지? 어쨌든 3년 동안 못 만났는데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현이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둘째 오빠, 저 지금 저주하시는 거예요? 비록 3년 동안 못 만났지만 매일매일 영상통화 하면서 서로 얼굴 봤거든요!"박지성은 툴툴거리며 말했다. "사이버 연애하는 거랑 뭐가 다르냐?"현이: "어쨌든 이번에 A국에 와서 정착하기로 약속했으니까 이제부터 다시는 떨어져 지내는 일 없을 거예요."박지성: "네 남자친구도 자존심이 너무 강해. 이따 아버지 만나고 얘기 얼마 나누지도 않고 다시 티켓 사고 도망치는 거 아니야?"현이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아!"현이는 곧바로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바라보았다——서은준이 캐리어를 끌며 출구에서 나오고 있었다.현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은준을 향해 달려가 서은준의 품에 안겼다.이때 박지성은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진아연이 물었다. "아직 못 만났어? 설마 안 오는 건 아니지?"박지성: "엄마, 제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에요. 금방 나왔어요, 지금 현이랑 껴안고 있어요! 우리 이제 곧 집에 갈 거니까 엄마랑 아빠도 마음의 준비 잘 하고 계세요."박 씨 저택.진아연은 통화를 마친 후 박시준에게 전달했다.박시준은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자신의 용모를 검사했다.진아연은 화장실 문 앞에서 지켜보며 소리내어 웃었다. "거울 그만 비춰요, 충분히 멋있어요!"박시준: "여보, 좀이따 은준이한테 좀 엄격해야 할까?"진아연: "현이가 그렇게 좋다는데, 은준이도 현이 위해서 A국에 있겠다고 한데다 엄격하게 해서 뭐하려구요? 굳이 두 아이의 기분을 망쳐야겠어요? 은준이도 지금 어엿한
서 어르신은 진지한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얘기를 꺼낼 줄 예상치 못했기에 차마 어찌할 바를 몰랐다.왜냐하면 진지한에게 돈을 달라고 할 계획이긴 했지만 얼마나 달라고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어쨌든 진지한은 엄청난 부자였고, 적게 달라고 하니 왠지 손해를 보는 기분이였고 많이 달라고 하자니 거절 당할까 봐 걱정되었다.서 어르신은 한동안 망설인 후 진지한에게 말했다. "진 대표님 집이 A국에서 엄청난 부자라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가 적당한지는 대표님께서 정하시죠! 저와 우리 아들에게 푸대접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진지한은 눈살을 찌푸렸다.배유정은 그것을 보고 바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께서 금액을 정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저희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얼마가 적당할지 가늠이 안 가네요. 굳이 저희더러 정하라면 돌아가서 저희 시아버님과 상의해 봐야 할 것 같네요."서 어르신: "혹시 박시준 씨 말하는 겁니까?"배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저희 시아버님 저희 남편보다 더 까다로울 겁니다. 입장 바꿔서 아버님이라도 따님을 평범한 남자한테 시집 보내진 않을 거잖아요?"서 어르신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긴 해요. 그럼 그냥 우리끼리 얘기하죠!"배유정: "지금부터 고민해 보셔도 괜찮아요. 저희 요 이틀 동안은 여기 있을 거거든요."서 어르신: "알겠어요! 그럼 우선 연락처 먼저 교환하죠! 나중에 일이 있을 때도 서로 연락하기 편하잖아요."배유정은 진지한을 흘끗 보았고 그제서야 진지한은 휴대폰을 꺼내들고 서 어르신과 연락처를 교환했다.병원.현이는 서은준의 곁에서 어머니의 뒷일을 처리했다.서은준은 장례식장에 전화를 걸어 어머니의 시신을 옮겨달라고 했다.현이가 서은준에게 물었다. "장례식 간단하게 치를 생각이에요?"서은준: "엄마 켠에도 친척들이 별로 없어."현이: "네. 그럼 어머니 계실 묘지부터 골라야죠?"서은준: "엄마가 전에 유골을 엄마 고향 연못에 뿌려달라고 했어."현이: "..."서은준: "엄마는 내
진지한: "그래요 그럼! 근처에 가까운 카페라도 갈까요."서 어르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좋아요! 사실 우리 집이 바로 병원 근처에 있는데 한 번 가보실래요? 현이도 우리 집에서 꽤 오랫동안 지냈었고 우리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랑 사이가 아주 좋았거든요."진지한은 배유정을 보며 말했다. "그럼 한 번 가볼래?"배유정: "좋아요!"서 어르신은 즉시 진지한과 배유정을 자신의 차로 안내하며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서 어르신의 집에 도착한 후 서 어르신은 즉시 하인들을 분부하여 과일과 디저트를 올리라고 했다.서 어르신은 집사를 가리키며 진지한에게 말했다. "이 사람이 바로 우리 집 집사입니다. 예전에 현이 할머니도 집사가 뽑고 집에 들였죠."진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서 어르신은 집사에게 말했다. "이 분은 수수 친 오빠야, 유명한 대기업의 대표 진지한 씨."집사: "진 대표님, 안녕하세요! 수수 정말 괜찮은 아이였어요, 그때 우리 모두 수수를 많이 좋아했답니다. 전에 수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리를 듣고 많이 속상했는데 사실이 아니라니 참 다행이에요! 수수는 정말 철도 들고 씩씩한 아이였어요, 제가 봤던 아이들 중 가장 씩씩한 아이에요. 수수가 잘 지내고 있다니 정말 기쁘네요."진지한: "전에 우리 동생 잘 챙겨줘서 고마웠어요."집사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대표님, 별 말씀을요! 수수는 정말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어요. 매번 적극적으로 맡아서 일도 잘하고 정말 괜찮은 아이에요. 우리는 그때부터 수수가 나중에 대학 졸업하고나면 꼭 잘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진지한은 집사의 말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서 어르신이 집사에게 말했다. "귀한 손님과 할 얘기가 있으니 먼저 내려가."집사는 즉시 물러났다.서 어르신은 진지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현이가 우리 은준이랑 사이가 좋았다는 거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제가 현이를 은준이 곁에 안배했거든요, 그때 두 아이 나이가 비슷했기도 했고 서로 얘기도 잘 통할 거
현이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오빠, 은준 씨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저 요 며칠 동안 언니 오빠랑 놀러다닐 수 없을 것 같아요."진지한: "괜찮아. 은준이 집에 이런 일이 생겼는데 우리도 놀 기분 아니야. 은준이 어머님 장례식 참석하고 돌아갈게."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여긴 장례식을 어떻게 치르지?" 진지한을 물었다.서은준은 현이의 남자친구자 현이 또래기도 하니 현이의 오빠로서 왠지 모르게 서은준을 도와 어머니의 뒷일을 처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현이: "국내랑 비슷해요. 돈 많은 사람들은 거창하게 치르고 보통 사람들은 그냥 간단하게 치르곤 해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장례식은 따로 안 치르고 직접 무덤에 묻기도 하구요."진지한: "좀 거하게 치르려면 어떻게 해야 해?"현이: "오빠, 은준 씨 어머님 장례식 치르는 거 도와줄려고요? 은준 씨 친척들도 별로 없으니까 그렇게 거하게 안 치러도 돼요."진지한: "그래. 그럼 은준이랑 어떻게 할 건지 상의해 봐.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줄게."현이: "고마워요, 오빠. 근데 안 도와줘도 괜찮을 것 같아요. 장례식 치르는데 돈 많이 들진 않을 거예요. 은준 씨도 저희가 자기 어머님 장례식 도와주겠다고 하면 받지 않을 거예요."진지한: "그래 그럼! 가서 은준이 옆에 있어줘!"현이: "오빠, 그럼 오빠랑 새언니는...""우리 걱정은 안해도 되. 나 너희 새언니랑 밖에 나가서 좀 걸을게,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고.""알았어요, 오빠."현이는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진지한과 배유정은 병동을 나섰다.서 어르신은 병원 건물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진지한과 배유정이 나오는 것을 보고 바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진 대표님, 저희 아들이 저한테 깊은 오해가 있어 현이까지 절 싫어하나 보네요. 사실 저 예전에 현이한테 정말 잘해줬어요." 서 어르신은 솔직하게 얘기했다. "사실 현이가 아주 오래 전부터 저희 집에서 일했었거든요. 그때는 현이를 키우던 할머니와 같이 우리 집 주방에
전화를 끊은 후 서은준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현이는 서은준의 곁에 서서 물었다. "은준 씨, 왜 그래요?"서은준: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대. 미안하지만 당신 혼자 형님이랑 시간 보내야 될 것 같아! 난 병원으로 가야 될 것 같아."현이: "같이 가요! 어머님 방금까지 멀쩡하셨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두 사람은 진지한과 배유정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차를 잡으러 길가로 향했다.진지한과 배유정은 두 사람이 급하게 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바라보며 조금 당황스러웠다.배유정: "여보, 우리도 병원에 가봐요! 은준 씨 어머님이 돌아가셨나봐요."진지한: "그래."두 사람은 택시 한 대를 세우고 서은준이 탄 차를 쫓았다.병원.빠른 속도로 병원에 도착한 서은준은 함께 서있는 의사 선생님과 서 어르신을 보았다.서 어르신은 아첨하는 말투로 말했다. "은준아, 원래는 너희 엄마 보러 병원에 온 건데 내가 왔을 때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어. 너무 안타깝구나!"서은준: "당신이 오기 전에 사망한 거 확실해요? 저도 오늘 왔었어요, 제가 왔을 땐 분명 아주 멀쩡했다고요!"서 어르신: "물론 다 사실이지! 못 믿겠으면 의사한테 물어봐!""의사한테 물어볼 필요 없어요!" 서은준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간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주머니, 우리 엄마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신 거예요? 저 사람 오기 전에 돌아가신 거예요, 아니면 오고 나서 돌아가신 거예요?"겁에 질려 있는 간호인들 부들부들 떨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서 어르신은 분노에 가득 찬 어조로 간호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우리 아들이 묻고 있잖아요. 말해 보세요! 제가 여기 왔을 때 당신 어디 있는지 그림자도 못 봤는데 혹시 밖에서 놀고 있던 거 아니에요?"간호인은 곧바로 대답했다. "아버님께서 오셨을 때 물 받으러 잠깐 병실에 없었어요. 아버님께서 언제 오셨는지 어머님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정말 미안해요! 이번 달 비용은 받지 않을게요!"간호인은 말
서 어르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당신 나 지금 무시하는 거야? 우리 서씨 집안이 지금 좀 상황이 안 좋긴 해도 T국에서 여전히 명망있는 가족 기업이라고! 은준이가 철이 없다고 당신까지 이렇게 무식해서 어떡하려고 그래? 은준이 뒤에 내가 없었다면 박씨 집안에서 우리 은준이 거들떠 보기나 할 것 같아?"서은준의 어머니: "그 입 다무세요! 박씨 집안에는 당신처럼 속좁은 사람 없어요! 현이 가족들은 우리 은준이를 무시하지 않는다고요! 그니까 괜히 쓸데없이 그분들 귀찮게 하지 마세요!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괜한 짓 하지 말라고요!"서 어르신: "정말이야? 박씨 집안에서 정말 은준이를 반대 안 해? 어떻게 반대 안 할 수가 있지? 설마 은준이더러 A국에 가서 데릴사위라도 하라는 건가?"서은준의 어머니: "그러든 말든 당신이랑 아무 상관 없어요! 당신 여태껏 은준이 돌본 적 없잖아요. 이젠 은준이도 독립했으니 당신 도움 더 필요 없어요! 만약에 은준이 여자친구가 현이가 아니었다면, 현이가 박씨 집안 딸이 아니었다면 당신 이렇게 부지런히 저 찾아오지 않았을 거잖아요... 당신이 어떤 마음 품고 있는지 제가 모를 것 같아서 그래요?"서 어르신: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릴 지껄이고 있는 거야? 은준이 18살 때 당신이 내 곁으로 보냈잖아? 당신은 못 키우겠다고 나더러 키우라고 했잖아? 내 도움이 없었다면 은준이 저렇게 유학 다녀올 수 있었을 것 같아? 만약에 유학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능력있을 것 같아? 지금 저렇게 사업할 수 있는 것도 다 내 덕분이라고!"서은준의 어머니는 화가 치밀어올라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다. "은준이더러 대학 등록금 다 갚아주라고 할게요!"서 어르신: "이건 대학 등록금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은준이 내 아들이야, 엄연한 내 피가 흐르고 있는 내 아들이라고! 이건 변할 수 없는 사실이야! 은준이가 나중에 잘 지내던 못 지내던, 이 애비 떨쳐낼 생각은 꿈도 꾸지
현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저 지금은 안 가요. 저 신경쓰지 말고 당신 할 거 하면 되요."서은준: "여기 있어봤자 너한테 시간낭비일 뿐이야."현이: "저 그동안 진짜 열심히 공부하고 회사생활도 열심히 했다고요, 잠깐 쉬겠다는데 뭐가 어때서요."잠시 후 진지한과 배유정은 호텔로 돌아왔고 네 사람은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서은준의 어머니는 현이의 오빠와 새언니가 오는 것을 몰랐기에 그들이 온 것을 보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서은준의 어머니는 몸을 일으켜 앉으려 했으나 더 이상 힘을 줄 수 없었다.현이는 전동으로 서은준 어머니의 병실 침대머리를 올려 주었다. "어머님, 저희 오빠랑 새언니 신혼여행 겸 여기 놀러 왔다 어머님이랑 은준 씨 보러 여기 들른 거예요."서은준의 어머니: "아이고, 여기까지 오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현이를 알게 된 건 정말 우리 아들의 행운이에요..."배유정: "어머님,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은준 씨도 얼마나 훌륭한데요. 그렇지 않으면 현이도 은준이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요."서은준의 어머니: "듣기론 현이 집이 엄청난 부자라던데... 혹시 우리 은준이 반대하는 건 아니죠?"배유정: "어머님, 저희도 사람 됨됨이와 인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은준이랑 현이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두 아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거라면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을 거예요."서은준은 어머니: "네... 정말 고마워요! 유일하게 걱정되고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게 바로 제 아들이에요. 현이네 집에서 우리 아들 너무 얕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우리 아들이 자존심이 강하거든요..."진지한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서은준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를 포함한 우리 가족 그 누구도 어머님 아들 무시하는 일 없을 겁니다."현이는 오빠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깊은 감동을 받은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서은준의 손을 꼭 잡았다.진지한은 병실에서 잠시 머물다 나갔다.현
현이는 긴장감에 밥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모를 정도로 아무 맛도 느끼지 못했다.서은준과 큰 오빠의 대화는 기본적으로 중요한 얘기들을 다 꺼냈고 생각보다 훨씬 순조로웠다.큰 오빠도 화를 내지 않았고 서은준 역시 화나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사실상 이미 그녀의 걱정과 기대를 뛰어넘는 결과였다.하지만 현이는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다."은준 씨, 좀이따 저희 남편이랑 병원에 가서 어머님 한 번 찾아뵙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식사를 마친 후 배유정이 서은준에게 물었다.서은준: "좋아요."현이: "어머님께 미리 말씀 드릴까요?"서은준: "괜찮아. 이따 가서 직접 소개해 드리면 돼."서은준 어머니의 상태는 나날이 악화되고 있었고 휴대폰을 안쓴지 이미 오래 되었다.보통 간호인이 매일매일 서은준에게 어머니의 상태에 대해 보고하곤 하였다.배유정: "사업도 하느라 어머님도 챙기느라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보통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무너졌을 텐데."서은준: "현이의 예전 생활은 저보다 더 어렵고 힘들었어요. 현이도 무너지지 않고 씩씩하게 잘 버텼는데 저도 잘 이겨낼 겁니다."배유정: "하하! 둘 다 씩씩한 사람이라 좋네요. 지금이든 나중이든 어떠한 곤난도 두 사람을 무너뜨리지 못할 거예요."현이: "언니 정말 너무 좋아요! 언니는 정말 제가 봤던 사람들 중 저희 엄마 제외한 가장 부드러운 사람이에요."배유정은 현이의 칭찬에 얼굴이 빨개졌다.진지한: "너희 언니가 이 말 들으면 서운했을 거야."현이: "언니는 당연히 다르죠! 제 마음속 언니는 부드러운 성격이 아닌 용감하고 씩씩한 슈퍼 히어로같은 존재니까요."배유정: "라엘이 성격에 슈퍼 히어로가 되는 걸 더 좋아할 거예요."현이: "아무튼 언니는 절대 저와 이런 걸로 다투지 않을 거예요."배유정: "당연하지. 다들 배 부르게 먹었어? 다 먹었으면 오빠한테 계산하라고 할게."이 말을 들은 진지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때 서은준도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계산할게요."현이는 애원하듯
현이가 말을 마친 후 서은준도 입을 열었다. "우선 열심히 일하고 제가 어느 정도 능력이 될 때 다시 책임지고 싶습니다."진지한은 차갑게 비웃으며 말했다. "사업이 그렇게 쉬울 것 같아? 그럼 사업이 실패하면 어떡하려고? 혹은 계속 미지근하게 아무런 진전도 없으면?"서은준: "형님이 말하신 것처럼 사업에 실패하거나 아무런 성과도 이뤄내지 못한다면 현이 고생시킬 생각은 없습니다."진지한: "자기 분수는 잘 알고있네."현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큰 오빠, 은준 씨 사업이 실패하거나 아무 성과를 이뤄내지 못한다고 해도 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적어도 돈 때문에 은준 씨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배유정은 다시 한 번 진지한의 손을 잡으며 진지한의 말이 심했다고 일깨워 주었다.다른 사람에게 차갑고 날카롭게 공격적일 순 있어도 현이에게 이렇게 공격적이진 못했다.현이 역시 자신의 말이 다소 부적절하다고 느꼈는지 말투를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큰 오빠, 전 그냥 돈이 한 사람을 판단하는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뿐이에요. 그리고 저희 집 이미 충분히 돈 많잖아요. 아무리 돈 많은 상대를 찾는다고 해도 저희 집보다 돈이 많은 사람은 찾기 어려울 거예요. 어차피 우리 집보다 돈이 많은 게 아니라면 돈이 많은 사람을 찾든 좀 적은 사람을 찾든 다 똑같잖아요."배유정: "현이 말이 맞아요. 가장 중요한 건 사람 됨됨이고 두 사람의 감정이에요. 만약에 상대방이 서은준 씨보다 돈이 더 많지만 현이한테 잘하지 않는다면 그런 남자에게 현이를 억지로 시집 보내는 건 아무 의미 없잖아요."진지한: "우리 집 조건만 봐도 현이한테 잘해주지 않을 남자는 없어."배유정은 할 말을 잃었다.진지한이 말한 것 역시 사실이였기 때문이다.현이가 누구에게 시집을 가든 함부로 현이를 건들지 못 할 것이다.이것이 바로 친정이 재력가인 힘이었다.현이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얘기했다. "다른 사람들이 제게 잘해주는 이유가 저희 집안 때문이라면 서은준 씨는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