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의 웃음소리는 강훈의 심장을 아프게 찔렀다.강훈도 자신이 강도평의 바둑알일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리고 이 바둑알은 별 쓸모없는 바둑알이었다.강도평은 그에 대한 불만을 한 번도 숨긴 적이 없다.강도평은 그의 모든 것을 자신이 준 것이라 생각하며언제든지 내키지 않으면 도로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는 목줄에 묶인 것 같았고 이 목줄 한끝은 강도평의 손에 들려 있다고 생각했다."싫으면 말아요.” 강훈은 그녀의 말에 화를 내지 않고 덤덤한 어투로 말했다."거절한 거 아니에요.” 웃음을 멈춘 강민은 마음을 다잡고 이 일에 관한 가능성에 대해 빠르게 생각해보았다. “만약 내가 실수해서 강도평이 내가 죽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면, 강도평은 날 죽이려 할 뿐만 아니라 당신이 자신을 속였다는 것도 알게 될 거예요.”"당신은 죽었다가 부활하는 건데 왜 내 탓이에요? 예전에 박시준도 죽었다가 부활했잖아요.” 강훈이 말했다. ”그리고, 100% 확신이 없이 당신에게 이런 일을 시키지 않을 거예요. 만약 당신이 죽는 거로 끝날 일이었다면 내가 끼어들 필요 없겠죠. 강도평의 의심병은 이미 절정에 이르러 조금만 방심해도 의심을 살 수 있어요.”“알면 됐어요. 강도평은 우리의 공동의 적이에요. 적의 적은 친구라고 볼 수 있죠.” 강민은 지금 누군가 같은 편이 돼 주길 바라고 있었고, 강훈은 좋은 선택이었다.강훈이 그녀를 보호할 순 없지만 강도평에게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한 사람이었다."우린 친구가 아니고 앞으로도 친구가 될 수 없을 거예요. 일이 끝나고 나면 각자 제 갈 길 가야 해요.” 강훈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좋아요. 나중에 오리발이나 내놓지 말아요. 미리 얘기해 드리지만 전 강씨 가문의 재산에 관심이 없어요.”"네, 지금 어디예요? 당신을 가짜로 죽이기로 했으니 당신은 앞으로 내 감시하에 움직여야 해요. 당신이 살아있다는 걸 강도평이 알게 되면 나한테 불리하거든요.” 강훈은 자신의 걱정을 그녀에게 말했다.강민은 그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
그녀는 경직된 채 멍하니 그 자리에 서서 주먹을 꼭 쥐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오늘의 비참함을 그녀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앞으로 좋은 날이 온다고 해도 오늘 받았던 수모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주룩주룩 내렸고 강민은 미움과 고통 속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그녀의 머리 위로 빗물이 빠르게 떨어졌다. 이 집은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고 너무 낡아서 비가 새고 있었다.그리고 비가 새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그녀는 희미한 불빛을 빌어 방안을 둘러보았다. 적어도 열 군데가 비가 새고 있었다.그녀는 황급히 대야와 양동이를 찾아와 물이 새는 곳에 놓았다.그때 침대에 있던 그녀의 휴대폰 화면이 밝아지더니 문자가 왔다.같은 시각, 도심의 한 쇼핑몰 앞."와, 비가 엄청 많이 와요, 오빠. 우리 우산이 없지 않아요?” 라엘은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오빠의 겉옷을 잡았다.경호원: "차에 우산이 있긴 한데 하나밖에 없어. 내가 먼저 지성이를 차에 데려다 놓고 다시 너희들 데리러 올게.”경호원은 말을 마치고 나서 겉옷을 벗어 지성이를 감쌌다.꼬맹이는 겉옷에 꽁꽁 싸인 채 까맣고 큰 눈동자만 밖으로 드러났다.아이가 반항하기도 전에 경호원은 빠른 속도로 주차장을 향해 달렸다,"오빠, 우리도 뛰어가자.” 라엘은 비를 맞는 느낌을 아주 궁금했다.오빠가 옆에 있어서 기분이 좋은 라엘은 오빠와 함께 즐기고 싶었다.그렇게 되면 옷이 젖어도 엄마가 자신만 탓하지 않을 것이다.한이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동안 라엘은 이미 그의 손을 잡고 빗속으로 달려들었다."오빠! 기분 너무 좋아. 비 맞는 기분 진짜 좋아. 오빠와 함께 비를 맞으니 더 좋아!” 라엘은 빗속에서 행복해하며 소리 질렀다.한이는 화가 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했다: “내일 감기 걸리고 울지나 마.”"감기 걸리고 왜 울어? 감기 걸리면 약 먹으면 되잖아. 아직도 내가 어린 애인 줄 알아? 난 다 컸다고!” 라엘이 태연하게 말했다.주차장, 지성이를 차에 내
"어떻게 해. 큰일났어! 엄마가 집에 있어!" 라엘이 소리쳤다.경호원은 라엘이 두려워하는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뭐가 두려워, 오빠탓해.”"싫어요!" 라엘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게다가 오빠가 날 데리고 비를 맞았다고 말하면 엄마가 믿을 것 같아요?”"그럼 너 혼날 거야.” 경호원은 조금 고소해하는 것 같았지만 너무 티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 나도 같이 혼나야 하니깐.”라엘은 한숨을 크게 들이쉬고 차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비가 덜 내리고 있었다.진아연과 이모님은 함께 우산을 쓰고 그들을 데리러 나왔다.지성이는 엄마와 이모님을 보고는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엄마, 나 더워요... 더워 죽겠어요. 흑흑!"진아연은 아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곧 차 앞에 다가갔다.한이는 동생의 카시트를 풀고 안아서 엄마한테 건넸다.경호원이 갑자기 머리를 ‘탁’ 쳤다.방금 한이와 지성이가 추울까 봐 히트를 최고치로 켰는데지성이의 외투를 벗긴다는 것을 깜박했다.꼬맹이가 두꺼운 패딩을 입은 채 뜨거운 차 안에 있었으니 덥지 않을 리 없다.아들을 품에 안은 진아연은 불덩이를 안은 줄 알았다.그녀는 한이와 라엘을 살펴볼 겨를도 없이 지성이를 안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아가야, 왜 이렇게 뜨거워?” 진아연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지 못했다. “열이 나는 거 아니야?”진아연은 지성이를 안고 방 안에 들어가서 곧 외투를 벗겼다.아이의 내복이 흠뻑 젖어 있었다.진아연은 잔뜩 긴장한 채 아이의 내복을 벗기고 소파에 있는 담요로 아들을 감쌌다."차 안이 더워요... 너무 더워요! 흑흑!" 지성이가 서럽게 울었다.이때 경호원과 한이, 라엘이 들어왔다.라엘과 한이의 외투가 젖어 있는걸 본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했다."진아연 씨, 제가 설명할게요.” 경호원이 진아연에게 사건 경과를 설명하려 했다.라엘은 빠른 걸음으로 엄마 옆에 다가가더니 조그마한 손을 내밀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성아, 울지 마. 우리가 일
진아연: "라엘아, 목소리 낮춰. 아빤 아무 일 없어. 하지만 지금은 몸이 조금 허약해, 그래서 오늘 밤 너희들을 데리고 아빠 보러 병원에 갈 수 없어. 내일 보러 가자.”"하지만 난 지금 보고 싶은데.” 라엘은 황급히 엄마를 이끌고 자기 방으로 달려갔다. “나 빨리 샤워할래요...”"라엘아, 아빠 지금 주무셔, 오늘 밤 못 가.”"그럼 내일 아침에 아빠 보러 가도 돼요?” 라엘은 아빠가 너무 보고 싶었다."그래. 그럼 일찍 자.” 진아연은 딸아이를 데리고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렇게 비 맞고 다니면 안 돼. 여름에 비를 맞았다면 걱정하지 않겠는데 겨울에는 감기 걸려.”"엄마, 나 안 추워요. 옷 다 말랐어요.” 라엘은 몸에 얇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차 안에서 이미 다 말랐다."너랑 오빠는 감기 안 걸리겠네, 하지만 지성이는 너무 더워서 울어 버렸잖아.” 진아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동생이 차 안에서 덥다는 말 안 했어?”"덥다는 말을 못 들었어요, 덥다고 말했으면 내가 모른 척하지 않았을 거예요.”"너희들 다 젖어 있는 걸 보고 말 안 했나 보다.” 진아연이 짐작했다.라엘은 생각이 달랐다."동생이 차에서 졸다가 잠들어서 집에 와서야 너무 덥다는 걸 느꼈을 거예요.”라엘의 말을 들은 진아연은 지성이가 더 걱정되었다.하지만 라엘과 한이가 일부러 지성이를 덥게 한 게 아니기에 그들을 탓할 수도 없었다.라엘이 머리 감는 것을 도와주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린 후 진아연은 지성이 보러 갔다.지성이는 이미 목욕을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는데 컨디션도 정상으로 회복한 후였다.목에 땀띠가 난 것을 볼 수 있었다."엄마, 이거 봐요!" 지성이는 조금 전 너무 더워서 울었던 것을 이미 잊은 듯했다.그는 차에서 잤기에 지금 컨디션이 좋았다. 그는 손에 형이 그에게 사준 로봇 장난감을 들고 엄마에게 보여줬다."이건 형이 사준 거예요. 로봇이 변신도 하는 데 아주 멋져요.” 지성이가 말하며 리모컨으로 로봇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진아연은 갑자기 한이와 라엘도 지성이처럼 어릴 때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유치원과 아이들을 싫어했던 것이 떠올랐다.그때 그녀는 아이들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많이 걱정했었다. 특히 한이는 말도 별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이모님은 진아연의 걱정을 눈치채고 웃으면서 위로했다. "지성이 나이 때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정상이에요. 지성이가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놀지 않는 것도 아니에요. 유치원에 친한 친구도 있는걸요. 다만 집에 있는 걸 더 좋아하는 것 뿐이죠. 가끔 지성이를 데리고 동네에서 놀고 있을 때 다른 아이들 부모님들이랑 이야기를 나눠보니 지성이보다 학교 가는 걸 더 거부하는 애들이 많더라고요.""제가 쓸데없는 생각이 많았나 봐요. 지성이는 사실 어디로 보나 활기차고 건강해요.""맞아요!" 이모님은 대답하다가 박시준이 떠올랐다. "대표님은 위험에서 벗어났어요? 앞으로 별일 없겠죠?""별일 없을 거예요." 진아연은 감히 단정 지을 수 없었다. "며칠 더 회복하고 자세한 검사를 다시 받을 거예요.""그래요. 아연 씨, 앞으로 다시는 사고 나지 말아요. 애들이 그 충격을 견딜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저 또한 두 사람 때문에 마음을 졸이느라 심장병이 걸릴 뻔했다니까요." 이모님이 말했다."앞으로 좀 더 신경 쓸 거예요. 이제 많은 경험을 얻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좀 주의해야죠.""그래요, 어서 가서 샤워하고 쉬세요. 제가 좀 있다 지성이를 데리고 잘게요." 이모님이 말했다."네."다음 날 아침. 진아연은 세 아이와 함께 박시준 보러 병원에 찾아갔다.예기치 않게 성빈과 조지운이 병실에 있었다."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진아연이 두 사람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이제 겨우 7시인데요.""성빈이 형이 어젯밤에 와서 밤새 병실을 지켰어요." 조지운이 말했다. "전 방금 왔고요.""그렇군요." 진아연은 침대에 누워 있는 박시준을 힐끗 보았다."저기... 성빈이 형, 아연 씨 왔으니 내가 바래다줄게." 조지운이 성빈이를 이끌고 황급히
"애 앞에서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우리 일은 나중에 따로 얘기해요." 진아연은 조금 있다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서 그와 단둘이 얘기하려 했다.박시준은 이렇게 그냥 넘어갈 줄 알았는데 그녀의 이런 태도를 보니 좀 있다가 또 혼나야 할 것 같았다."한이야. 너 이번에는 며칠 더 놀다가 가." 박시준은 자상한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한이는 초췌한 박시준의 모습을 바라보며 계속 그와 싸우기 싫었다."내 걱정은 하지 말고 본인이나 잘 챙기세요." 한이는 아빠에게 다정하게 말을 할 수 없었다.퉁명스럽게 뱉은 말이지만 어투가 예전처럼 차갑거나 공격적이지는 않았다."그래, 아빠가 앞으로 자신을 잘 챙길게. 너희들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되지." 박시준이 자책하며 말했다."한이는 당신을 탓하는 게 아니에요." 진아연은 그가 아들을 오해할까 걱정했다. "당신을 보러 돌아왔으니 예전처럼 당신이 싫지 않다는 거예요."진아연의 말을 들은 지성이는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고 형을 바라보며 물었다. "형, 형은 왜 그렇게 아빠를 싫어해요?"한이: "..."진아연은 난감한 표정을 지은 채 지성이를 안고 설명했다. "형은 아빠를 싫어하지 않아.""엄마가 방금 그랬잖아요. 형이 아빠를 싫어한다고요." 지성이가 눈빛을 반짝이며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님을 주장했다."형이 예전에 아주 조금 아빠를 싫어하긴 했지만 그건 다 지나간 일이란다."진아연의 설명을 지성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지성이는 눈에 힘을 주고 형을 노려보았다."그만해. 아빠를 봤으니 이젠 학교 가야지. 형이 널 유치원에 데려다줄게." 한이가 지성이를 엄마 품에서 안고 병실을 나섰다.지성이가 울어대자걱정된 진아연은 따라 나가려 했다."엄마는 여기서 아빠를 돌봐주세요. 제가 동생을 달랠게요. 동생을 달래고 나서 학교 갈 거에요." 말을 마친 라엘이가 아빠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빠, 엄마 말을 잘 들어요. 저녁에 학교 끝나면 다시 올게요.""그래." 박시준은 딸이 병실을 나서는 걸 보며 마음
물론 박시준도 이걸 알고 있었지만진아연처럼 긴장하진 않았다.현이도 그의 친자식이었기에 현이를 찾는 도중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다만 이런 말을 입 밖으로 뱉을 수 없었다. 말하고 나면 진아연이 화를 낼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안타깝군." 그는 마른침을 삼키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공들였는데 현이 소식을 못 찾았어.""예전에는 안 믿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소식이 없으니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아요."박시준은 조용히 듣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시준 씨, 이젠 내려놓아요, 우리도 계속 살아가야 하잖아요." 진아연은 그를 힐끗 보고 나서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렸다.그는 항상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해냈었다.한 번도 어려움에 굴복한 적이 없는 사람이기에 현이를 찾는 일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그래." 그는 빠르게 대답했다. 그녀가 걱정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현이의 일로 계속 고통받게 하기 싫었기 때문이었다."뭐 먹을래요?" 진아연은 아침밥을 갖고 왔다.이모님은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죽을 끓였는데 진아연이 아침에 병원에 갈 때 갖고 가서 박시준에게 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이모님도 함께 오려고 했는데 죽을 끓이느라 밤새 자지 못해서 못 왔어요. 약불에 끓여야 맛있다고 밤새워 끓였거든요. 너무 힘들어 보여서 쉬라고 했어요." 그녀가 보온 통을 열자 맛있는 냄새가 풍겨와박시준의 식욕을 자극했다.그녀는 침대 높이를 조절하고 그가 기대어 앉도록 했다.2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최은서와 여소정, 하준기가 박시준을 찾아왔다.그들은 병실 밖에 서 있는 조지운을 보고 어리둥절해졌다."아연 씨가 안에 있어요." 조지운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방해하기 미안해서요.""하지만 오빠가 깨어난 후 아직 못 봤어요." 최은서는 말을 뱉고 나서 병실 문을 열었다.박시준이 병상에 기대어 앉아 있고 진아연은 손에 면도기를 든 채 박시준에게 면도해 주고 있었다.최은서는 호
"사람의 생사는 하늘에 달린 거야. 걱정하지 마." 박시준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박시준 씨는 마음이 참 속편하시네요. 아연이가 박시준 씨 목숨을 구하느라 얼마나 마음고생했는지도 모르고." 여소정이 말했다. "애들보다 훨씬 속 썩이는 것 같네요. 라엘이도 착하고 지성이도 말을 잘 듣고, 한이는 말할 나위없죠. 한 번도 걱정시킨 적 없으니.""소정아, 그만해." 하준기가 아내에게 눈짓했다. "시준이 형이 계략에 당해서 그런 거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잖아. 지나간 일은 다시 언급하지 말자."진아연은 화장실에서 나와 보온 통을 열고 숟가락으로 죽 한 그릇을 담았다.그녀는 죽그릇을 들고 침대 옆에 앉아 박시준에게 떠먹여 주려 했다."사실 처음에 나 몰래 머릿속 장치를 꺼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화가 나 미칠 것 같았어. 만나면 어떤 욕을 할까 고민까지 했다니까? 욕만으로 화가 안 풀릴 것 같으니 흠씬 두들겨 팰 생각까지 했었어." 진아연은 잔잔한 어투로 독한 말을 내뱉었다.박시준은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그는 방금 그녀가 그들의 앞에서 그를 한바탕 욕하고 때릴 줄 알았다."살아만 있다면 다른 건 다 사소한 일에 불과한 거지." 그녀는 죽 한 숟가락을 떠서 그의 입가에 갖다 댔다.그는 황급히 입을 벌리고 그녀가 건네오는 죽을 받아먹었다.죽은 간이 잘 돼 있어서 느끼하지 않고 아주 맛있었다."아연 씨 말이 맞아요, 시준이 형이 죽었다면 미워하고 욕해도 돼요. 그땐 나도 같이 욕할 거예요. 하지만 시준이 형은 안 죽었어요.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있는 것만으로 좋은 일이잖아요. 그러니 화낼 필요 없어요." 하준기가 대답했다."준기 씨, 시준 씨가 죽으면 누구 들으라고 욕을 해요?" 진아연은 어이없었다."아연아, 너 지금 욕 안하다가 퇴원하고 나면 마음이 바뀔걸?" 여소정이 말을 보탰다. "지금은 너무 허약해 보여, 나였어도 불쌍해서 훈계하지 못했을 거야."하준기는 입꼬리를 씰룩이며 아내가 말을 너무 가리지 않고 한다고 생각했다."소정아, 오늘 출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