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귀여운 딸! 벌써 일어났어? 배고프지 않아? 아빠가 우유 타서 줄까? 손에 들고 있는 건 뭐야? 아빠한테 보여줄 수 있어?"하준기는 딸아이가 들고 있는 종이를 조심스럽게 꺼냈다.종이는 아이의 손에서 많이 구겨진 상태였지만, 위의 내용을 확인하는데 문제없었다.방금 전까지 자상한 미소를 보이던 하준기는 위의 내용을 보자 순간 표정이 어두워졌고다시 방안을 둘러봤다.침대 옆 탁자에 놓인 검은색 머리띠에 시선이 사로잡힌 그는그제야 마이크의 방이 아니라는 걸 의식했다.하준기는 자기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옷장으로 다가갔고옷장 문을 열어보니 그의 예상대로 옷장 안은 전부 여장이었고 이에 놀라 하준기는 숨을 들이쉬며바로 침대에 누워있는 딸을 안고 방에서 나왔다.진아연의 방일 줄 알았다면 절대 딸을 방 안에서 재우지 않았을 거였다.딸을 안고 객실로 돌아와 아이에게 우유를 먹여주고 있는 그의 마음은 매우 복잡했다.종이에는 간단한 도표가 표시되었다.첫 줄은 여러 회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각 회사의 이름 뒤에 간단한 회사 소개와 일련의 숫자가 적혀 있었지만충격적인 건 바로 윗줄에 ‘입찰 가격’이라고 적혀 있었다.이를 본 하준기는 진아연이 설마 앤 테크놀로지를 매각할 생각인지 의심하게 되었다.그렇지 않다면 왜 견적 가격표를 베개 밑에 숨은 거지?오후 4시, 쇼핑을 마친 진아연과 여소정은 집으로 돌아왔고전투력이 여전한 여소정은 쇼핑백만으로 차 트렁크를 채웠다.뒷좌석은 이미 온갖 종류의 간식과 장난감이 산처럼 쌓인 상태였다. 누가 보면 그녀가 진아연의 집에서 오래 지낼 거라 착각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아연 씨, 점심때 소염이가 피곤해서 아연 씨의 방에 잠깐 재웠어요. 저는 아연 씨의 방이 아니라 마이크 씨의 방인 줄 알았어요! 그리고 객실을 정리할 때 소염이가 깨어나 베개 밑에서 종이 한 장을 꾸겼어요. 진짜 죄송해요!" 하준기는 진아연을 보자 머리를 긁적거리며 솔직하게 알렸고말하면서 진아연의 표정을 자세히 살펴봤다.하지만 진아연은 아무렇
"그런 뜻이 아니에요! 저는 그냥 당신의 딸 때문에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한 것뿐이에요. 저와 같이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당신 딸 때문에 아무 데도 갈 수 없잖아요.""장모님과 가정부가 아이를 챙기고 있잖아. 놀고 싶으면 가도 돼." 하준기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고이에 여소정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했다. "그런데 제가 딸이 옆에 없으면 불안해요! 아이를 낳고 나서야 엄마의 위대함을 깨달았죠. 마치 제가 알아볼 수 없는 자신으로 변한 것 같은 느낌이에요.""그게 바로 모성애죠."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진아연은 하준기에게 말했다. "사실 저희가 쇼핑할 때 소염이가 보고 싶었는지, 소정이가 빨리 돌아가자고 얘기했거든요. 맞다. 소정아, 택배로 부칠 물건들은 어딨어? 지금 바로 상자 찾아서 정리하고 택배 기사님 불러올게.""일단 쉬고 있어! 물건들은 나중에 정리하면 돼." 여소정은 물을 마시며 방금 하준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연이의 방에 들어갈 때 누구 방인지 몰랐어요?""진짜 몰랐어. 정 믿기지 않으면 너도 한번 볼래?" 하준기는 웃으며 그녀한테 물었다.진아연은 몇 달간 눈의 이상으로 방안의 의자와 책상을 전부 밖에 내놓았고방안은 침대와 옷장 외에 쓸데없는 장식품 하나 없었다."어느 방이에요?" 여소정은 하준기의 말에 못내 궁금했고하준기는 진아연의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아연 씨한테 봐도 되는지 물어봐."진아연: "저와 소정이 사이에 그런 것까지 물어보지 않아도 돼요. 내가 알려줄게."여소정은 진아연과 함께 1층 안방으로 향했고심플한 방안의 배치에 여소정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듯했다 “하준기 씨가 네 방인 줄 몰랐다는 말이 인제 믿어지네. 책상과 의자가 없는 건 이해하지만, 화장대 하나 없다는 게 말이 돼? 국내에 있을 때 이 정도는 아니었잖아.”"지난 몇 달 동안 굳이 화장할 필요도 없는데 화장대를 놓을 필요 있을까? 그리고 요즘 심플한 배치가 유행이잖아. 그래서 방 안의 물건들을 밖에 내놓았지."여소정은 그녀의 방
"아직도 시준이 형이라고 불러요?! 그리고 인제 왕래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여소정은 하준기의 말에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이에 하준기는 당황했는지 빨개진 얼굴로 급히 설명했다. "실은 시준이 형이 답장이 없어서 왕래하지 못한 거야.""참 나, 당신을 무시하는데 굳이 연락하고 싶나 봐요!""소정아, 그런 말 하지 마. 옛말에 모든 일에 있어서 여지를 남겨둬야 나중에 어색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어. 두 사람이 이혼했다고 시준이 형과 절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만약 나중에 두 사람이 화해하면? 진짜 화해하면 우리만 어색한 거야! 그리고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잖아." 하준기는 자기 생각을 그녀한테 알렸고이에 여소정은 어이가 없는지 웃으며 말했다. "아직도 두 사람이 화해했으면 해요? 진짜 잘도 그런 생각 하네요! 박시준 씨가 아연이를 죽이지 못해서 망정이지..."하준기는 그녀의 말을 듣더니 조용히 반박했다. “전에 진아연 씨가 시준이 형을 찔러 중환자실로 보낸 적이 있잖아. 그런데 두 사람 결국 화해했잖아.”여소정은 그의 말에 눈을 깜빡이며 기억을 더듬었다."혹시 '서유기'를 읽어 봤어? " 하준기는 여유로운 목소리로 장난삼아 말을 이었다. "현장이 제자와 갖은 고난을 겪으면서 몇 번이나 다투고 헤어졌지만, 결국 마지막까 함께 했잖아?"여소정은 그의 말에 경악했다. "지금 두 사람 중 누가 현장이고 누가 손오공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그런 부분까지 생각하지 못했지만, 왠지 비슷한 느낌일 뿐이야.""저는 박시준 씨가 손오공이고 아연이가 현장인 것 같아요." 여소정은 그의 말에 본의 아니게 상상했다. "아니지. 손오공은 매번 옳은 선택만 했고 현장이 손오공을 오해했으니까... 아연이가 손오공이고 박시준 씨가 현장인가? 아니지! 박시준 씨 같은 쓰레기가 대자대비한 현장이라니? 현장이 그에 비하면 백배 천배 좋은 사람이죠!""알았으니까 화내지 마. 나도 그냥 해본 소리야. 우리 일단 뭘 사야 하는지 생각하자!" 하준기는 그녀의 말에 급히
바로 박시준이 그녀에게 답장했다!여소정은 박시준의 답장을 보더니 바로 휴대폰을 하준기에게 보여줬다."박시준 씨가 당신을 무시했지만, 저는 무시할 수 없나 봐요. 진짜 너무 오냐오냐해주면 안 된다니까요!" 여소정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그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박시준은 방금 그녀의 메시지에 달랑 물음표 두 개만 답장했다.음성 메시지를 확인하고 답장도 했으니 영상 통화는 받겠지?하준기는 여소정의 행동에 겁에 질려 만약 박시준이 연락을 받으면 바로 휴대폰을 뺏어서 사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하지만 여소정은 그보다 훨씬 빨랐고박시준이 연락을 받자 바로 차 문을 열고 내렸다.하준기는 도저히 그녀를 막을 수 없으니 차에서 가만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너무 답답한 그는 담배 생각에 뒷주머니를 만졌지만, 딸 때문에 강제로 금연하게 된 사실을 깜빡했다.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여소정은 다시 차에 탔고하준기는 그녀가 이리 빨리 돌아올 줄 몰랐다. "너무 담담한 거 아니야? 다투지 않았어?""다퉜죠! 그리 치사하고 비열한 짓을 하지 말라고 했어요. 아연이가 네 조상 무덤을 판 것도 아닌데 왜 아연이를 힘들게 하냐고 했죠." 여소정은 가방에 담겨있는 휴대용 보온병을 꺼내 물 한 모금 마시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뭐라고 했어?""진아연이 불만이 있으면 직접 찾아서 얘기하라고 하더군요. 하하! 그래서 아연이는 당신 같은 배은망덕한 쓰레기를 이미 잊었다고 알렸죠!"하준기는 그녀의 말에 등골이 오싹했다. "그럼 이걸로 분이 풀렸지? 그럼 우리 인제 장 보러 갈까?""사실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인데 전화를 바로 끊었어요. 아마 저뿐만 아니라 당신까지 차단할 것 같아요. 앞으로 먼저 연락하지 마요." 여소정은 아쉬운지 안전벨트를 매면서 하준기한테 당부했고하준기는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더는 박시준을 찾아갈 용기가 없었다.저녁.이들은 식탁에 둘러앉아 샤부샤부를 즐겼다.오늘따라 일찍 들어온 한이는 여소정 일가족을 보더니 매우 기뻤다."한이
"네 엄마한테는 너밖에 없어. 이모는 네 아빠가 앞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네가 따라갈 수 있도록 유혹할까 봐 걱정이야." 여소정은 사실 진아연의 곁에 아무도 남지 않을까 봐 걱정이었고만약 그녀가 진아연이라면 절대 그런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저는 진 씨지. 박 씨가 아니에요. 그리고 그를 인정할 생각이 절대 없어요. 만약 엄마가 회사를 매각할 생각이라면 제가 돈을 벌어먹여 살리면 돼요.""그래도 네가 엄마 곁을 떠나지 않을 거라 말하니 마음이 놓이네. 그리고 동생들과 자주 연락해. 아직 어린 나이라 너처럼 엄마를 아직 이해할 수 없을 거야." 여소정은 한이의 말에 마음이 놓여 한숨을 내쉬었다."라엘은 이틀에 한 번씩 엄마와 영상 통화해요." 한이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그렇다면 이모가 안심할 수 있겠어! 그래도 엄마가 너희들을 아낀 보람이 있네."식당에서 기다리고 있던 하준기는 여소정과 한이가 나오지 않자 이들을 불렀다. "소정아! 네가 배고프지 않아도 한이가 배고플 거야! 두 사람 무슨 얘기를 그리 오래 하는 거야!"이에 여소정과 한이는 방에서 나왔다."방금 한이한테 소염이가 귀여운지, 라엘이 귀여운지 물어봤어요. 그런데 한이가 어찌할 바를 몰라서 말이에요. 하하." 여소정은 하준기의 곁에 앉아 말을 이었다. "맞다. 한이와 라엘도 인제 10살 생일 파티를 준비해야 하지 않아?""아직 아이들이 9살이야.""그래도 생일 파티는 미리 준비해야지." 여소정은 그래도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원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이들 함께 생일 파티를 보낼 수 없겠지? 아연아, 그러면 B국에서 한이를 위한 생일 파티를 준비해. 난 무조건 참석이야."이에 진아연은 한이를 바라봤다.아이와 관련된 일에는 아무래도 아이의 의견을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저는 싫어요." 매년 동생과 함께 생일을 보내왔는데, 갑자기 올해부터 함께 생일을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한이는 차라리 생일에 관심이 사라졌다.물론 진아연도 아들의
"당분간 귀국할 생각 없어." 진아연은 말하면서 양고기 한 점을 한이의 접시에 올렸다."아... 그럼 겨울 방학 때 라엘한테 B국에 놀러 오라고 해." 여소정은 진아연이 왜 귀국하고 싶지 않은지 알고 있어 충분히 이해했다."박시준 씨가 안 된다고 할까 봐 그래." 이제 박시준이라는 이름도 그녀한테는 어색해지기 시작했다.아마 그와의 관계가 끝나면서 매번 그를 떠올릴 때마다 서로 진짜 사랑했는지 의심하게 되었지만지금은 아주 가끔 그가 떠올랐고전처럼 그와 헤어지고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플 정도는 아니었다.그리고 이제 가끔 생각 나도 그리 슬프지 않았다.한이만 곁에 있고 가끔 라엘과 지성와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 그녀였다.물론 이 모든 건 그녀가 노력해서 얻은 전부이기 때문이다."엄마, 나중에 겨울 방학 때 제가 라엘을 데리고 올게요." 진아연의 생각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한이는 바로 그녀한테 알렸다.박시준이 진아연과 라엘의 만남은 동의할 수 없겠지만, 설마 한이까지 막을까?다만 진아연은 그래도 걱정인 부분이 있었다.솔직히 그녀는 한이가 귀국하지 않기를 바랐다.만약 박시준이 비열한 수단으로 한이를 뺏어가면 어떡하지?"라엘은 나중에 네 세연 삼촌한테 부탁하면 돼. 넌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엄마 옆에 있어야 해." 진아연은 한이가 갑자기 사라지기라도 할까 봐 걱정인 듯 신신당부했다."네." 이에 한이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A국.오늘은 주말이지만, 박시준은 학교에 가야 했었다.전날 라엘의 선생님이 라엘의 학업 관련 문제 때문에 얘기해야 한다고 연락이왔다.다만 선생님은 그한테 우선 라엘이한테 알리지 말라고 했다.아직 어린 라엘이지만, 자존심이 매우 강한 여자아이이기 때문이다.박시준은 라엘을 학원에 보내고 바로 학교로 향했다.전날 선생님은 그한테 라엘의 공부 현황에 대해 자세히 얘기하지 않았고 라엘도 평소 그와 성적에 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아박시준은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만약 라엘이 좋은 성
라엘의 담임선생님은 국어 담당 선생님이었고라엘의 작문에 그녀는 점수조차 주기 난감했다.이대로 높은 점수라도 주면 박시준의 체면은 어떡하지?이 때문에 라엘은 처음으로 불합격을 받아봤다."라엘의 시험지를 보여주세요." 박시준은 선생님의 말에 혈압이 올라갔지만, 딸이 쓴 문장이 궁금하기도 했다."그럼 저 따라오세요." 담임선생님은 박시준을 교무실로 모시면서 말을 이었다. "사실 국어 외의 다른 과목들도 성적이 많이 떨어졌어요.""제가 우선 시험지부터 확인할게요.""네."교무실로 들어선 담임 선생님은 시험지를 꺼내 박시준에게 건넸다."시험지에 적힌 문제들은 대부분 수업 시간 때 가르친 문제고 뒷부분의 문제들이 어려운 부분은 있지만 작성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에요." 담임 선생님은 수학 시험지도 박시준에게 건네며 설명했다. "그리고 간단한 문제들도 많이 틀렸어요.""제일 기가 막힌 건 바로 외국어예요. 아무래도 B국에서 자란 아이여서 기초도 좋아 전에는 항상 만점 가까지 받았는데, 이번에는 아주 힘들게 합격을 받았어요."담임 선생님은 말하면서 라엘의 외국어 시험지도 박시준에게 건넸다.위의 문제들은 대부분 비어있지 않았지만, 틀린 문제가 얼핏 봐도 절반 정도 되었다.박시준은 시험지를 확인하고 바로 단정 지었다. “저는 라엘이 일부러 그런 거라 생각합니다. 아이 엄마와 이혼하고 엄마가 오빠와 외국에서 생활하게 되었어요. 저한테 불만이 많아 시험 점수로 저를 화나게 하려는 겁니다.”이에 담임 선생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저와 다른 선생님들도 같은 생각입니다. 우선 원인을 알았으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대로 방치하고 앞으로 이런 마인드로 시험을 본다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담임 선생님의 말을 들은 박시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는 라엘한테 앞으로 진지한 태도로 시험에 임해야 한다고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왜냐면 라엘은 자존심이 강한 아이일 뿐만 아니라 고집 또한진아연에게도 밀리지 않는 아이이기 때문이다.물론 라엘
그는 말을 마치자 바로 먼저 일어서 식당에서 나왔고라엘은 그의 심각한 표정에 놀라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갑자기 진지한 그의 표정에 라엘은 적응할 수가 없었다."라엘아, 대표님이 아마 엄마 얘기로 찾는 거 같아." 이모님은 멍해 서 있는 라엘을 보자 다가가 타일렀다.이에 라엘은 입을 삐죽거리며 중얼거렸다. "아니에요!"아이는 박시준의 표정을 보자 성적에 관한 얘기를 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물론 라엘도 결정할 때부터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만약 박시준이 때리거나 욕하면 바로 가출해 B국에 가서 엄마와 오빠를 찾을 생각이었다.서재.박시준은 라엘이 들어오자 바로 문을 닫았다."왜 문을 닫아요? 문 열어요." 라엘은 문 쪽을 보며 소리 높였다.이에 박시준은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줬다.남한테는 높은 지위를 갖춘 ST그룹의 대표고 그 누구도 앞에서 함부로 행동할 수 없겠지만, 집에서는 그냥 딸의 눈치를 보는 딸바보였다."라엘아, 평범한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운명을 바꾸는지 알아?" 박시준은 딸한테 바로 학업 얘기를 꺼내지 않은 이유는 충분히 화나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그의 질문에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평범한 사람들한테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건 공부밖에 없어." 박시준은 그윽한 눈빛으로 진아연과 빼닮은 딸아이의 얼굴을 바라봤다. "A국에서 가난한 집안 환경 때문에 공부할 기회가 없는 아이들은 아직도 많아. 공부할 조건이 있으면 아낄 줄 알아야지. 공부를 장난처럼 여기면 안 돼.""제가 성적이 불합격이라는 걸 알았어요?" 라엘은 당당한 모습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 “전에는 엄마가 공부를 도와줬어요. 지금은 엄마가 가르쳐 주지 않아 성적이 떨어진 거예요.”박시준은 딸이 이런 이유를 핑계로 내세울 줄 몰랐다."그럼 아빠가 과외공부를 해줄게." 박시준은 바로 대책을 세웠다."싫어요." 라엘은 단칼에 거절했다. "엄마는 천재예요. 천재세요? 제가 더 멍청해질까 봐 걱정이에요."박시준은 딸의 말에 머리부터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