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무진은 어깨를 쭉 펴고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 “이봐요, 아가씨, 얼굴도 모르는 사이면 말은 함부로 하지 맙시다, 내가 온은수의 친구인 건 맞지만 그보다 어제 수술을 한 의사의 가족이라 우리 엄마가 환자 상태가 어떤지 알아보라고 해서 엄마를 안심시킬 겸 확인하러 온 거거든요?”이 남자가 온은수인 줄로만 알고 속으로 불만이 가득했던 한가연은 육무진의 설명을 듣고서 너무 어색하고 머쓱해졌다.“그, 그렇다면 제가 결례를 범했군요, 죄송합니다, 수현이 안에 있으니까 들어가 보세요.”매우 난감해진 한가연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급기야 육무진을 차수현의 병실로 안내했다. 아침을 먹고있던 차수현은 안 그래도 몸도 성치 않은데 방금 전 온은수랑 한바탕 싸웠더니 기분이 다운된 채 입맛이 전혀 없었지만 뱃속의 아이를 생각해서 억지로 꾸역꾸역 음식을 입에 넣고 있었다병실로 들어온 육무진을 보며 차수현은 약간 놀란 눈치였다. “그 쪽은...?”한가연은 차수현에게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고 육무진이 어제 자신을 수술해준 의사 선생님의 아들이라는 말에 매우 감격했다. “전 이제 많이 좋아졌습니다, 어머님께서 뛰어난 수술로 절 살려준 덕분에 제가 이렇게 잘 살아있네요, 감사한 마음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육무진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별 말씀을요, 환자를 살리는 건 의사의 의무 아닙니까, 무엇보다 은수가 특별히 어머니께 부탁한 일이라서요, 온씨랑 육씨 가문은 세기의 우정을 나눈 사이인데 어찌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방금 전 한가연이 한 말에서 육무진은 어젯밤 온은수가 병원에 입원한 자신의 곁을 지켜주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음을 눈치챘고 친구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오해를 풀고 차수현에게 사실대로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아니면 분명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며 이것저것 신경을 많이 써놓고 결국엔 양심없는 놈이라는 불명예로 욕을 바가지로 먹어야하는 온은수가 너무 불쌍하니까!육무진의 말을 듣고 차수현은 놀라움을 금치 못 했다.“그
간신히 생각 정리를 마친 한가연은 다시 병실로 돌아갔고 차수현은 얼른 출근하러 가라며 그녀를 독촉했다. “가연아, 얼른 가, 출근해야지, 여긴 의사 선생님이랑 간호사분들도 다 계시니까 난 괜찮아, 나 때문에 네 일이 방해를 받으면 안 되잖아.”한가연은 오늘 하루 연차를 내고 차수현 옆에 같이 있어줄 생각이였지만 이렇게까지 확고한 차수현을 보며 출근하러 가기로 했다. 한가연이 떠난 후 병실에 혼자 남게 된 차수현은 새하얀 병원 천장을 쳐다보며 한참 동안 멍을 때렸다.방금 전 육무진이 했던 말이 너무 의외라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온은수가 자신과 뱃속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 이렇게까지 많은 일을 했을 줄은 정말 생각도 못했다. 차수현을 죽도록 싫어하고 심지어 뱃속의 아이한테도 잡종이라며 하찮게 대하던 온은수가 아니였던가? 그런 아이가 없어진다면 차라리 기뻐서 춤이라도 춰야 정상일 텐데.지금 생각해보면 차수현은 단 한 번도 온은수라는 사람을 제대로 파악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그러나 온은수는 좋고 싫은 건 늘 명확한 사람인 건 확실하고 이제 사실을 알게 된 이상 그녀도 결코 모른척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얼른 휴대폰을 꺼내 온은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죄송해요, 제가 오해를 했어요. 그날 의사 선생님을 찾아줘서 고마워요.”잔뜩 저기압이 된 얼굴로 회사에 복귀한 온은수는 오자마자 업무 보고를 하러 온 경리와 총감을 된 통 혼냈고 불같이 화를 내는 온은수 앞에서 직원들은 숨쉬는 것 조차 눈치가 보일 정도였다. 다른 직원들도 잔뜩 날이 서있는 대표의 모습을 보며 하나같이 바른 자세로 자리에 앉아있었으며 행여나 성난 사자의 코털을 건드려 자신한테 불똥이 튈까 조바심에 긴장한 분위기였다. 모두가 겁에 질려 숨을 죽이고 있을 때 온은수의 휴대폰이 울렸다.문자 메시지를 스윽 확인하던 온은수의 얼굴이 조금전 울그락 불그락하던 기색과는 달리 조금 진정이 되는듯 싶었다. 차수현 이 여자, 그래도 양심은 있나 보지먹구름이 잔뜩 꼈던 온은수의 얼굴색이 약간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든 온은수, 평소 냉철하기로 유명한 온은수도 그 순간만큼은 당황한 나머지 귀까지 빨개졌다.온은수는 유예린에게 일이 있어서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을 한 뒤 전화를 끊고 얼른 돌아서 방으로 들어갔다.멘탈 붕괴 직전의 차수현도 갑작스레 훅 들어온 온은수와 이 난감한 상황 앞에서 더무 놀란 나머지 몸을 가려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한 채 알몸 그 상태를 적나라하게 온은수 앞에서 노출을 했다.방금 전 상황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치자 차수현은 창피한 나머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쥐 구멍이라도 있으면 무작정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바로 이런 기분이였다니, 지지리 운도 없지, 하필이면 그런 상황을 겪다니.그러나 잠시 후 차수현은 재빨리 깨끗한 잠옷으로 갈아입었고 그곳에서 한참이나 멍 하니 서있었다, 이 상황에 누가 또 들어온다면 그녀는 정말 창피해서 죽을 것 같았다.옷을 챙겨입은 차수현은 잠옷의 마지막 단추 하나까지 꽁꽁 채워서야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밖에 서 있던 온은수도 방금 전 장면이 떠오르자 머쓱한듯 침을 꿀꺽 삼켰고 눈동자에는 알 수 없는 아리송한 분위기가 맴돌았다.차수현 이 여자, 시퍼런 대낮에 실오리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방에서 뭘 하자는 거지? 설마 나를 꼬시려는 속셈인 걸까? 한참이 지나서야 온은수는 방에 온 목적이 물건을 챙기기 위함이였음을 인지하고 방문을 열었다.들어가보니 차수현은 이미 옷을 입었고 단정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표정은 태연한 듯 무척이나 담담했지만 빨갛게 달아오른 귓볼과 목을 보니 여전히 충격이 덜 가신 듯 하다.그 모습을 본 온은수는 갑자기 그녀를 놀리고 싶은 생각이 들어 그녀한테 천천히 다가가 책을 집어들며 말했다. “대낮에 옷을 다 벗고 알몸으로 다니는 취향이 있는 줄은 생각도 못했네.”가까스로 마음의 안정을 찾았던 차수현은 온은수의 말에 또 다시 심장이 빠르게 뛰기시작했고 그녀는 촉촉하게 젖어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또박또박 말했다. “온은수 씨, 방에 들어올 때는 노크를 먼저 하는
차수현은 요동치는 긴장감을 억지로 누르며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그 시각 샤워를 금방 마치고 수건으로 머리를 닦고 있던 온은수는 이제야 방에 들어오는 차수현을 보며 익살스레 눈썹을 치켜들었다.조바심과 창피함에 오늘 하루 종일 자신을 피해다닌 그녀임을 잘 아는 온은수는 갑자기 장난끼가 발동했다, 누구 좋으라고? 절대 네 뜻대로 될 수 없지.“와서 나 머리 좀 닦아줘.”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걸어오는 온은수를 보며 차수현은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머리를 닦아달라고? 누가 보면 손이 부러진 줄? 혼자 닦으면 되는 걸 굳이 그녀한테 시키는 걸 보아하니 딱 봐도 일부러 골탕 먹이려는 속셈이다.그녀의 표정에서 황당함을 감지한 온은수는 가늘게 실눈을 뜨며 계속해서 말했다, “왜? 겨우 이 정도 시킨 거 가지고 불만이야?”매우 당당한 온은수를 보며 차수현은 갑자기 주눅이 들었다.생각해보니 온은수는 수술이 급했던 제일 위험한 상황에서 무작정 그녀를 도와줬던 사람인지라 그녀는 이참에 은혜에 보답하는 셈 치고 도와주기로 결심하고 그의 옆으로 다가가 침대에 올라갔다.온은수의 키가 차수현에 비해 머리 하나는 더 컸던 탓에 차수현은 어쩔 수 없이 침대에 무릎을 꿇은 자세로 온은수의 머리를 닦아주었다.행여나 다혈질인 온은수의 심기를 건드릴까 두려웠던 차수현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살살 그의 젖은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러나 그녀는 지금의 자세가 너무 불편하고 힘들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온은수의 등에 닿을 수도 있으니까.만약 그런 상황이 실제로 발생한다면 안 그래도 말빨이 센 온은수한테 된통 놀림을 당할 것이 뻔했다, 그런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차수현은 이를 악물고 가까스로 몸의 균형을 유지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차수현은 이미 기진맥진해졌고 급기야 땀까지 흘렸다.온은수도 그녀의 힘이 점점 약해지는 것을 감지하고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한 소리 하려고 하던 참이였는데 몸이 마침 차수현의 몸과 닿았다.등뒤로 느껴지는 짜릿한 촉감에 온은수는 자기도 모르게 오후에
하인은 공손하게 쪽지를 온은수에게 넘겼고 쪽지를 펴 보니 짤막하게 남겨진 메모가 눈에 들어왔다.“은수 씨, 오늘 오후 당신 옆에서 나는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저는 은수씨한테 참 부끄러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돈도 빽도 뭐하나 볼것 없는 제가 감히 당신을 욕심내면 안된다는 걸 잘 알지만 그렇다고 당당히 나설 수도 없는 숨겨진 여자가 되긴 싫어요, 그래서 전 당신을 떠나려 해요, 행복하세요.”온은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쪽지를 홱 구겼다, 분명 오후에 차수현의 목소리가 들려 그녀가 오해를 한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전담 기사한테 말도 하지 않고 혼자 걸어서 나갔단 말인가?유예린에게 미안한 생각이 드는 온은수, 어찌 됐든 자신의 목숨을 살린 여자인데 그래서 그녀에게 명분을 주겠다고 약속까지 했는데 이대로 가버리다니.“애들 풀어서 주변을 샅샅이 뒤져.”온은수는 고용인에게 당부한 뒤 곧 윤찬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당장 유예린의 위치를 추적하라고 지시했다.온은수도 더 이상 손 놓고 기다릴 수 없다는 생각에 별장 근처의 골목들을 다니며 유예린의 행방을 찾기에 급급했다.온은수는 천천히 운전을 했고 거의 포기해야하나 생각할 때 쯤 바로 앞 골목에서 어렴풋이 한 여자의 실루엣이 보였다.온은수는 즉시 차를 세워 그쪽으로 향했고 그제서야 유예린이 발을 절뚝거리며 바깥 쪽으로 걸어가는 걸 보았다.“예린 씨, 왜 혼자 여기까지 왔어요? 발은 또 언제 다친건데요?”그 자리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던 유예린은 온은수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안심했고 그녀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무작정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온은수 씨,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쪽지에 다 남겼으니 충분히 알아들었을 거라 믿어요, 그러니까 저 그냥 가게 내버려두세요.”온은수는 미간을 찌푸린 채 달려가 그녀를 품에 안았다. 유예린은 괜히 애쓰는 척 연기를 하다 급기야 얼굴을 온은수의 품에 파묻었다. “은수 씨, 솔직히 말해줘요, 당신한테 다른 여자 생겼죠? 그런데 왜 또 절
잠시 후 고용인은 온은수의 정장을 가지고 들어왔다, 유예린은 머릿카락 하나를 뽑아 그의 정장 주머니에 넣고 셔츠 옷깃의 위치에 립스틱 자국까지 남긴 뒤 고용인에게 옷을 돌려보냈다.......다음날유예린과 함께 아침을 먹은 뒤 온은수는 운전을 하고 회사로 갔다.회사에 도착했을 때 차수현은 이미 업무를 시작했고 그녀를 본 온은수의 마음이 이상하게 착잡해진다.마치 바람을 피고 들어와서 아내랑 마주한 껄끄러운 기분이였지만 온은수는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차수현과 찐 부부도 아닌데 게다가 다른 남자의 아이까지 임신한 여자한테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는 1도 없었다.그렇게 오전 시간이 지나갔고 점심이 되자 윤찬이 온은수에게 오후 미팅 일정에 대해 안내했다, 시계를 보던 온은수는 차수현에게 책상 정리를 맡긴 뒤 자리를 떠났다.차수현은 사무실에 들어가 책상에 널려있는 서류들을 정리하다가 문득 의자에 걸려있는 온은수의 정장에 눈이 갔다.그녀는 약간 난감한 표정이었다, 온은수의 옷은 거의 다 고가의 명품들인데 이렇게 함부러 널부러져 있는 모습을 디자이너가 봤으면 분명 화가 나 피를 토할 지경일 것이다.차수현은 옷걸이에 걸어두려고 옷을 집어들었고 문득 정장 주머니쪽에 기다란 여자의 머릿카락이 있음을 확인했다.차수현은 곱슬머리에 염색을 한 적이 없는 검은색 머릿카락인데 그의 옷에 묻은 머릿카락은 와인색의 곶은 머리였다, 순간 그녀는 이것이 어젯밤 온은수와 같이 있었던 여자의 머릿카락이라는 확신이 들었다.허탈한 웃음을 짓는 차수현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급 가빠진 숨소리에는 답답한 정서가 다분하다, 정장 여기저기를 뒤져보니 역시나 옷깃에 이미 말라버린 연한 립스틱 자국까지 남아있었다.속으론 부들부들 떨렸지만 겉으론 부자연스럽게 허탈한 웃음만 짓는 차수현, 역시 온은수는 그 여자랑 갈데까지 갔구나.온은수의 옷에 남겨진 흔적들이 뜨겁고 끈적했던 그들의 지난 밤 광경을 고스란히 전달해주고 있다.한 손으론 온은수를 꽉 부여잡은 채 놔주지도 않
온은수은 오후 내내 회사에 돌아오지 않았고 차수현은 칼퇴를 했다.집에 돌아와 씻고 저녁을 다 먹었을 때 즈음 온은수가 집에 돌아왔고 차수현은 한 쪽에 앉아 어제 입었던 옷을 내려놓는 그를 보며 괜히 긴장해서 옷깃을 꽉 쥐었다.그는 분명 나한테 할 말이 있을 꺼야!어젯 밤 그 여자가 가출까지 감행하면서 시위를 했으니 분명 온은수에게 제대로 된 명분을 요구했을 것이며 차수현은 온은수도 더 이상 지체할 필요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온은수는 자신을 주시하는 그녀의 시선을 느꼈는지 약간 일그러진 표정으로 고개를 들더니 뭐하자는 거냐는 눈빛으로 차수현을 쳐다보았다.둘은 1초 간 서로의 눈만 바라보았고 온은수가 먼저 시선을 피했다. “왜 그렇게 빤히 쳐다봐?” 영혼이라곤 1도 없는 딱딱한 그의 목소리. “아니, 저한테 무슨 할 말이 있을 것 같아서요.”이상하리만큼 차분한 온은수의 태도에 차수현은 더 어리둥절해졌고 괜히 지고 싶지 않은 오기가 발동해 똑같이 담담한 태도로 대답했다.“할말 없는데.”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차수현의 모습에 온은수는 설마 그녀가 뭔가를 눈치챈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기가 불편해진 온은수는 넥타이를 풀고 곧바로 욕실로 향했다.욕실 문이 닫히자 차수현은 미간만 찌푸릴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어차피 온은수를 닥달해서 당장 결판을 낼 용기도 능력도 없었고 그래봤자 요 며칠 사이에 해결 될 일이라 그녀도 더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차수현은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책을 보며 시간을 보냈고 그때 방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차수현은 방 구석구석 다 둘러보다가 결국 온은수의 옷 주머니 속에 있던 휴대폰임을 발견했다.그냥 무시하고 넘기려 했지만 전화를 건 사람은 온은수가 받지 않자 끈질기게 계속 전화를 걸어왔고 계속해서 울리는 벨소리에 차수현은 약간 짜증이 났다. 하지만 혹시나 회사에서 온 급한 전화인데 받지 못해서 괜히 일을 그르치면 더 골치 아파질 것 같았다. 차수현은 휴대폰을 들고 욕실 문을 두드렸다. “아까부터
세상 참 좁다는 생각에 허탈감이 밀려온 차수현, 어찌 이런 우연이 다 있지?한 편으로는 수상한 낌새도 보이는 듯 했다,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운 이 상황이지만 딱히 뭐가 문제인지 콕 집어 말하기도 어렵다.그래, 혼자 골머리를 앓는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니지, 차수현은 곧바로 유예린에게 전화를 해 약속을 잡았다.마침 방에서 뾰로통해있던 유예린은 어제 일로 온은수가 분명 차수현을 내쫓고 그녀를 아내로 맞이할 거라 생각했는데 오늘 상황을 보니 온은수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섣불리 행동했다가 괜히 일만 더 복잡하게 만들 것 같아서 유예린은 차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혼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전화 벨소리에 그녀는 온은수한테서 온 전화인줄 알고 재빨리 받았지만 상대는 차수현이였다. 유예린은 심장이 두근두근 거려 가까스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수현 씨, 무슨 일로 전화했죠?”“별 건 아니고요, 할말이 있는데 우리 잠시 만날까요?”유예린은 차수현이 이미 눈치를 챈게 아닐까라는 생각에 매우 불안해졌고 대처할 시간이 필요했던 그녀 역시 차수현과 커피숍에서 약속을 잡았다.차수현이 전화를 끊고 곧 커피숍에 도착했고 유예린은 먼저 와 있었다. 차수현은 그녀 앞에 가서 말했다. “미안해요, 제가 좀 늦었죠.”그녀의 말에 유예린은 억지 웃음을 지어보였다, 차수현이 몰고 온 차는 멀리 주차했지만 한 눈에 봐도 엄청 비싸보이는 고급 외제차였다.어쩌면 차수현을 향한 온은수의 태도가 생각보다 좋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차수현한테 물질적인 지원을 팍팍 해주는 걸 보면.유예린은 생각할 수록 조바심이 났다, 특히 차수현이 굽 없는 편한 신발을 신고 메이크업도 하지 않은 생얼로 나온 건 분명 자신을 향한 시위라고 생각했다.마치 온은수의 여자는 바로 나라는 걸 강조함과 동시에 심지어 뱃속의 아이까지 온씨 집안 핏줄임을 과시하는 것만 같았다.차수현은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고 문득 유예린의 차갑고 살기어린 시선이 느껴져 약간 섬뜩 했다.한 때는 둘 다 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