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예진은 피아노를 치며 맞은 켠에 앉아있는 온은수를 보고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매력을 과시하기 위해 차예진은 특별히 화이트 원피스를 입었고 미용실에 가서 머리도 정성스럽게 관리를 받고 왔다, 그녀는 현란한 손 놀림으로 자신이 제일 잘하는 곡을 연주했는데 누가 봐도 우아하고 기품있는 공주님의 모습이였다.차한명은 자신이 곱게 키운 딸이 이렇듯 대견한 모습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내 딸이 저렇게 아름다운데 남자라면 당연히 반하지 않겠는가?옆에서 연주를 듣던 온은수는 이내 듣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고 자기도 모르게 차수현이 생각났다. 차씨 집 딸이 둘인데 자매가 누구는 공주님인양 폼 나게 피아노 연주나 하고 있고 누구는 주방에서 음식이나 준비해야 하는 처지라니, 참 우습다.비록 여태 직접 음식을 해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주방의 기름 냄새가 얼마나 견디기 힘든지 온은수는 알고 있다, 게다가 홀몸도 아닌 차수현이 주방에서 음식 준비로 바삐 돌아다니며 온 가족이 먹을 식사를 챙겨야 한다는게 참 어이가 없다.온은수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고 그는 언짢은 듯 코웃음을 쳤다.마침 피아노 연주를 마친 차예진이 온은수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씨익 웃었다, 이 남자 볼수록 매력적인데? 안 그래도 잘생긴 외모가 더 빛이 나다니, 차예진은 자기도 모르게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온 대표님, 별 볼 것 없는 피아노 연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조언 해주실 말이께 있으시다면 기쁘게 듣겠습니다.”수줍게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차예진을 보고 그제서야 그녀의 연주가 끝났음을 알게 된 온은수는 그녀를 위 아래로 쭉 스캔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예진씨는 피아노도 잘 치시네요, 부모님께서 참 잘 키우신 것 같네요.”온은수의 말에 차예진은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둘 째 따님께서 우아하고 기품있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동안 다른 따님은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주방에서 음식 준비하느라 정신없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차예진의 장끼 자랑에 온은수가 홀딱
얼떨결에 벌어진 상황에 어안이 벙벙해진 차수현, 온은수가 화가 난 이유가 이것 때문이였다니 전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다.최근 몇 년간 차씨 집안에서 차예진과 자신에 대한 차별 대우가 그녀에겐 이미 익숙해졌고 아무렇지 않았는데, 그녀 본인 역시 이에 대해 한 번도 불평을 한 적이 없었고 말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이 모든걸 목격한 온은수가 이 일로 화를 내다니…차수현은 순간 왼 쪽 가슴이 뭔가에 심하게 쿵 부딪힌 듯 저려왔고 씁쓸한 마음과 함께 약간의 알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어쨌든 고마워요.”아주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다시피 한 말이지만 온은수는 그녀가 뭐라고 하는지 정확히 들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봉투를 품에 안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잘못을 한 어린 아이 같았다. 온은수는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듯 싶더니 이내 뭔가 깨달은 듯 이성을 되찾고 재빠르게 그녀한테서 시선을 피했다. “집에 가.”차수현은 고개를 끄덕였고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온은수의 눈치만 살필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순순히 조수석에 탔다. 달리는 차 안은 너무나 평온했고 차수현은 너무 졸린 나머지 고개를 이따금씩 떨구다가 결국엔 잠이 들었다.온은수는 잠이 든 그녀를 보자 에어콘을 끄고 속도를 줄이며 평소 그의 운전 속도 보다 천천히 운전을 했다.어느새 그들은 온씨 집 문 앞에 도착해고 온은수는 차수현을 깨우려다가 잠에 든 그녀에 모습을 바라보니 이미 깊은 잠에 든 듯 했다. 마침 따스한 햇살이 차창을 뚫고 비추어 들어오면서 그녀의 우유빛갈 피부를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뽀얀 살결과 얼굴의 솜털까지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유독 빛이났고 과즙미 팡팡 인간 복숭아를 방불케 했다. 살짝 벌린 그녀의 입술, 선분홍 빛 속살이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숨을 쉴 때마다 심지어 그녀만의 은은한 향기가 풍기는 것 같다.한 동안 넋이 나간 듯 그녀의 미모를 지켜보고 있는 온은수, 마치 뭔가에 홀린 듯 그의 입술은 어느새 그녀한테 바짝 다가가
유예린은 버벅거리며 겨우 입을 열었다. “저기 혹시 잘못 찾아오신 거 아닌가요? 처음 뵙는 얼굴인데 사람을 잘못 보신 것 같네요.”온은수는 곧바로 윤찬에게 눈 길을 돌렸고 윤찬은 얼른 사진 한 장을 꺼내 유예린에게 보여주었다. “아가씨, 이 시계 보신 적 있으시죠?”이런 저런 생각을 떠올리며 대략 추측은 했으나 윤찬이 건넨 사진 속 시계를 보더니 화들짝 놀란 유예린은 두 다리가 덜덜 떨리며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녀가 제일 두려워하던 일이 결국엔 터지고 만 것이다.안 그래도 요새 길에서 그 시계를 줏은 뒤로 불안에 떨려 입 맛도 없고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힘들었던 그녀, 행여나 누가 찾아올 까봐 매일과 같이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는데 안 좋던 예감이 전부 현실이 되어버렸다.딱 봐도 1억은 될만한 고가의 명품 시계인데 만에 하나 절도죄로 신고를 당하기라도 하는 날엔 정말 콩 밥을 먹는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유예린은 너무 놀라고 무서운 나머지 눈물을 줄줄 흘렸다. “저기… 제가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 전 그저 일개 호텔 알바생이에요, 그러니까 제발 용서해주세요!”갑자기 눈물을 보인 유예린을 보며 온은수는 당황한 얼굴이였고 당장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날 밤 자신의 행동이 너무 거칠고 난폭해서 그녀가 겁을 먹은 걸까?그날 밤, 온은수는 그녀의 신분을 오해했지만 그저 자신의 약성을 해소하기에만 급했던 나머지 그녀에 대해 추호의 동정과 연민도 없었다.여자들은 첫 경험이 무척 아프다고 하던데, 그녀가 이렇게까지 겁을 먹는것도 어찌보면 정상이였다. 온은수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 싶더니 이내 그녀의 등을 다독여 주었다. “당신한테 책임을 물을 생각 없습니다, 그 날은 제가 너무 섣불리 행동을 했고 당신은 아무 잘 못이 없습니다.”살면서 여자를 달래본 적이라곤 없는 온은수였는데, 그런 그가 어색한 표현으로 유예린을 달래고 있다.안 그래도 겁에 질려 반 넋이 나간 상태였던 유예린은 온은수의 부드러운 말투에서 그가 자신의 죄를 물을 의도가 전혀 없음을 알았고
그 시각 유예린은 어떻게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사칭한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으려면 가능한 많은 정보를 캐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유예린은 옆에 있는 윤찬을 슬쩍 쳐다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방금 전 카드랑 이 집, 이거 다 저한테 주시는 거 맞죠? 그런데 뭘 한 것도 없는 제가 이런걸 덥석 받기엔 너무 부끄럽네요.”그녀의 말에 윤찬은 연한 미소를 지었다. “한게 왜 없어요? 당신은 대표님을 살렸잖아요, 대표님은 본인의 여자한테 절대 인색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이 모든걸 충분히 받을 자격이 된단 말씀입니다.”그를 살렸다고?유예린은 대충 이 상황이 짐작이 갔지만 여전히 질문을 이어갔다. “그, 그럼 그 시계는 뭔데요?윤찬은 자꾸만 질문을 하는 그녀가 귀찮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계는 대표님이 그녀한테 선물로 준 물건인데 굳이 왜 또 묻는 거지?윤찬이 약간 의심하는 눈치를 보이자 유예린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난 당신들이 정말 사기꾼일 까봐, 혹시라도 마음이 변해서 날 감방에 처 넣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물어본거에요.”“그럴리 없습니다, 그 시계는 대표님이 당신에게 준 증표이고 우린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습니다.”“알겠어요, 다만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 제가 좀 상황 파악이 안 돼서요, 시간이 필요하니까 좀 혼자 있게 해줘요.”사건의 대략적인 실마리를 파악한 유예린은 얼른 윤찬을 쫓다싶이 내보냈다. 그런 그녀를 보며서도 윤찬은 별 의심을 하지 않았다, 오늘 처음 발견한 그녀이고 이 상황을 전부 받아들이기엔 감당이 안됀다는 것을 윤찬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럼 무슨 일이 있으면 저에게 연락 주세요."윤천은 공손하게 말하고는 곧 떠났다.유예린은 윤찬을 보내고 곧바로 설레는 마음으로 안방에 있는 킹 사이즈의 커다란 침대에 털석 드러누웠다.윤찬이 모든 상황을 디테일하게 설명하진 않았지만 유예린은 대략 어떤 일인지 짐작이 갔다. 아마 그날 밤, 다
온은수는 검은 눈동자로 차수현을 보며 되물었다. “그래서 뭐?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이혼하기 싫다고?”차수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요, 다만 그게 사실이라면 저한테 직접 말하셔도 돼요, 이혼 도장 바로 찍어드릴테니까, 절대 당신을 잡고 늘어질 생각 없거든요.”“그리고 이혼하면 저한테 위자료 챙겨준다던 약속이요.”“왜? 그 정도로 부족해? 금액을 더 오려달라고?” 온은수는 실처럼 가늘게 눈을 뜨고 조롱하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역시 이 여자는 예나 지금이나 돈 밖에 모르는 속물이였어.“아니요.” 차수현은 약간 난감한 듯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대체 온은수는 그녀를 얼마나 속물로 보였길래 이런 말을 하는 걸까?돈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돈에 눈이 멀어 양심을 버릴 정도까진 아닌데.“요 며칠 저 많이 도와주셨잖아요, 이번엔 제 목숨까지 구해주고, 그래서 저도 보답을 할 겸 위자료 없이 맨 몸으로 나갈게요.”차수여현은 또박또박 진지하게 말했다.그동안 그녀가 차씨네 집에서 야금야금 뜯어낸 돈만 해도 이미 어머니의 병을 치료하기에 충분했기에 더 이상 온은수한테서 돈을 받고 싶지 않았다. 계약 결혼 기간동안 그녀 본인도 계약 조건에 어긋나는 일을 여러번 했으니까, 심지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니 마지막까지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단지 깔끔하게 이 도시를 떠나 평온한 생활을 하고 싶었을 뿐이였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조롱섞인 눈으로 그녀를 보던 온은수의 표정에 웃음기가 곧 사라졌다. “진심이야?"“그럼요.” 차수현은 담담하면서도 확고하게 대답했다.무척이나 차분한 얼굴로 이런 말을 하는 그녀를 보며 온은수는 믿겨지지 않았다, 한 때 어떻게든 자신한테서 돈을 뜯어내려던 모습과 지금의 그녀는 사뭇 다른 모습이였다.그가 약속한 위자료는 그녀가 평생 호의호식하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기에 충분했지만 그걸 과감히 포기하다니?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일까?“그래, 지금 당장 변호사를 불러서 이혼 서류를 작성할게." 의아함도
온은수의 약속을 받아낸 유예린은 곧바로 운전 기사에게 S시에서 최로고 비싼 쇼핑몰로 자신을 태워다 달라고 했다.카드에 무려 1억이라는 돈, 그것도 마음껏 써도 되는 돈이라는 사실에 유예린은 불 타오르는 구매 욕구를 더 이상 주체할 수 없었고 마음에 드는 물건을 보이는 대로 무작정 카드를 긁었다.사치스러운 쇼핑을 마음껏 즐기며 유예린은 살면서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VVIP 대접을 받았고 마치 상류 사회에 입성이라도 한 듯한 그 느낌이 너무 짜릿하고 좋았다.결국 유예린은 그동안 상상도 못 해봤던 최고급 명품들을 잔뜩 쓸어담고 크고 작은 쇼핑백을 한 가득 품에 안고 집에 돌아갔다.집에 도착한 그녀는 고급진 명품 박스를 어루만지며 하늘을 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자기도 모르게 불안감이 밀려오고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돈의 맛을 제대로 본 사람은 한 번 그 속에 빠지면 절대 헤어나올 수 없게된다.하지만 그녀는 결국엔 누군가를 사칭한 가짜이기에 시간이 갈 수록 변수는 생기기 마련인데 그때가서 들통이라도 나면 어떡하지? 이런저런 생각이 든 그녀는 덜컥 겁이 났다.그 날 거기 있었던 여자는 대체 누구였을까? 자신이 온은수라는 거물급 인물과 잤다는 사실을 그녀는 과연 알고 있을까? 어느날 갑자기 그녀가 덜컥 찾아오면 어떻게 되는 거지?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부귀영화를 다 뺏겨야 한단 말인가?생각할 수록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던 유예린은 더 이상 명품들을 보며 좋아할 겨를이 없었다.한참 생각을 하던 유예린은 얼른 차를 불러 호텔로 향했다. 그날 밤 온은수랑 같이 있었던 여자가 대체 누구인지 확실히 알아봐야 했다.호텔에 도착한 유예린은 괜히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평소대로 태연하게 작업복을 갈아입었다.그리고 남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서 호텔 시스템을 관리하는 컴퓨터를 켜고 그 날의 투숙객 기록을 찾아봤다.하지만 하루 종일 봤음에도 불구하고 그날 자신과 비슷한 연령대의 여
차수현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섰다. “미안해요, 실수로 물을 쏟아서, 저 화장실 가서 좀 닦고 올게요.”유예진이 반응도 채 하기 전에 차수현은 부랴부랴 화장실로 향했고 그녀에겐 옷이 젖고 말고가 중요한게 아니였다. 너무 놀란 나머지 두 손은 덜덜 떨렸고 얼굴은 백지장처럼 순간 창백해졌다.유예진의 말을 들어보면 누군가 그날의 일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는게 분명했다.심지어 디테일한 부분까지 다 찾아낸 것 같은데, 대체 누구일까? 온은수? 아니면 그날 그 남자?설마 그 남자,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걸까? 이렇게 집요하게 자신을 찾아내려는 이유가 대체 뭘까?이미 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차수현은 덜컥 겁부터났고 불안감이 몰려왔다. 고급 호텔 스위트룸에 묵을 수 있는 남자라면 분명 돈과 권력을 다 가진 사람일텐데 만에 하나 그 사람이 차수현 뱃속의 아이를 인정하지 않거나 혹은 아이를 뺏어가려 한다면 그에 맞서 싸울 힘조차 없는 차수현은 그저 순순히 당할 수밖에 없다.생각할 수록 초조하고 무서운 생각만 더해지는 그녀, 지금 이 상황에 유예진과 차분히 마주 앉아 얘기를 할 기분이 전혀 아니였던 그녀는 휴지를 대충 감아 젖은 옷을 대충 닦고 나가서 유예진에게 회사에 급한 일이 있는 핑계로 가방을 챙겨 커피숍을 나왔다.차수현한테서 더 많은 걸 캐내려고 했지만 전혀 기회를 주지 않는 그녀, 심지어 대답조차 제대로 안 하고 이대로 가버렸다.도망치듯 자리를 뜨는 차수현의 뒷모습을 보며 유예진은 뭔가 께름칙한 생각이 들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회사에 그렇게까지 급한 일이 있다고?무엇보다 지나치게 격한 반응을 보이는 차수현이 수상하게 느껴진 유예진. 하지만 유예진도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이내 휴대폰을 꺼내 같이 호텔에서 일했던 다른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그날 다른 층 알바생들 중에 차수현 말고 누가 또 있었는지 알아봐줘요.”“어제 이미 확인했잖아요, 그 층에서 일했던 사람은 차수현 한 명 뿐이라고... 아 참, 그러고보니 차수현 인적사
병원에서 나와 회사로 복귀한 차수현은 뱃속의 아이가 건강하다는 사실에 착잡하고 불안했던 마음이 잠시 가라앉는 듯 싶었다.어떤 일이든 너무 조급해한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니니까, 억지로 밀어 붙일 경우 오히려 자신과 뱃속의 아이한테 안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온은수를 본 차수현, 겨우 차분해졌던 그녀의 마음이 또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얼른 구석에 위치한 자신의 자리로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안 그래도 요 며칠 차수현은 감히 온은수에게 말을 걸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설령 말 실수를 해서 그의 심기를 건드릴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흐린 날씨의 먹구름처럼 도통 종잡을 수 없는 온은수의 까다로운 성격, 그 시각 온은수는 잔뜩 긴장해있는 차수현의 모습을 그저 지켜보며 사인펜을 잡은 손에 힘을 꽉 주었다.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자신만 보면 부랴부랴 피하는 그녀, 괜히 기분이 잡친 온은수는 손에 들고 있던 펜을 한 쪽으로 툭 던졌고 그 소리에 차수현은 조심스레 눈치를 살피며 온은수를 쳐다보았다.분명 온은수 눈에 안 띄려고 갖은 노력을 다 하고 있는데 차라리 도망이라도 가야 하나? 여기서 뭘 더 어떻게 해야 저 남자가 만족할까?계속 이렇게 잘난 온대표의 심기를 건드릴 바에 차라리 여기서 나가는게 낫겠다 싶었던 차수현은 체념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때 마침 그때 남자의 냉철하고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거기서.”차수현은 흠칫하며 제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피곤하니까 가서 커피나 타 와.” 소름돋게 차분한 중저음 목소리엔 아무 감정도 없는듯 했다. 커피를 타는 건 어렵지 않지만 그녀는 온은수가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을거라 믿어의심치 않았다.“제가 회사의 커피 머신을 다룰 줄 몰라서 그러는데 혹시...”“내가 당신한테 월급을 주면서 이런 작은 일도 시키지 못 해? 당장 가서 타 와.”잔뜩 화가 난 듯 심하게 찌푸려진 그의 미간, 우물쭈물하는 차수현의 모습이 많이 거슬리는 눈치였다.어느새 고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