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회장은 온은수의 진지한 모습에 끝내 그의 제안을 허락했다.“그래, 약속할게. 만약 네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난다면 그땐 이혼하겠다고 해도 말리지 않을게.”얘기를 마친 후 온은수는 곧장 방으로 돌아갔다. 온회장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이를 본 집사가 가까이 다가오며 그를 위로했다.“온회장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수현 씨는 마음씨가 착해서 한동안 지내다 보면 도련님도 꼭 좋아하시게 될 겁니다. 감정이란 것은 원래 천천히 키워나가는 거잖아요.”온회장도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였다.‘그랬으면 좋겠구나.’……온은수가 온회장과 함께 서재로 들어간 후 차수현은 이제 막 하룻밤도 채 지나지 않은 ‘신혼 방’으로 돌아왔다.그녀는 좀 전의 마냥 차가웠던 온은수의 눈빛을 떠올리자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날 이토록 싫어하는 걸 보니 설마 이 결혼 무르는 거 아니야?’이렇게 생각한 차수현은 마음이 초조했다. 온은수가 아쉬워서가 아니라 시집온 지 하루만에 온씨 일가에서 쫓겨나면 그녀의 가족들은 절대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엄마가 큰 병원으로 옮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오는 것은 차마 지켜볼 수가 없었다.하지만 이런 재벌 가문에 남아있으려면 분명 여자의 순결을 신경 쓸 텐데 만에 하나 그녀의 과거가 폭로된다면 도리어 온씨 일가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걱정이었다.차수현은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 옷깃을 꽉 잡은 채 이마에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그녀가 좌불안석일 때 굳게 닫혔던 문이 벌컥 열렸다.온은수가 성큼성큼 들어와 한쪽 옆에 움츠리고 앉아있는 차수현을 보더니 짜증 섞인 얼굴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여기 앉아있을 여유가 있긴 해?”그의 말에 차수현은 숨이 턱턱 막혔지만 이럴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은수 씨…….”온은수는 하찮은 듯 웃으며 쏘아붙였다.“웃어? 내가 깨어나니까 좋아? 이젠 드디어 우
온은수는 그녀를 벽에 확 밀어붙이고는 턱을 잡아 올렸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온은수와 눈을 마주쳤다.“아빠가 대체 어떤 여자를 데려왔는지 궁금했는데 고작 돈이나 밝히는 인간이었어.”그는 비난 조로 말하며 손에 힘을 더 주자. 차수현에 턱은 부서질 것만 같았다.밀려오는 고통에 자신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졌지만 그녀는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맞아요, 난 돈밖에 모르는 여자예요. 돈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돈만 주면 은수 씨에게 역겹게 굴지 않고 당장 꺼질게요.”온은수는 그녀의 대답에 살짝 당황 했다. 그의 앞에서 이토록 돈을 밝히는 여자는 여태껏 단 한 명도 없었다.진짜 원한다고 해도 대부분 내숭을 떠는 편이었다.하지만 차수현은 조금 특별했다. 당당하게 요구했으며 뻔뻔했다.온은수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꼬리를 올리고 빈정대며 놀리 말투로쏘아붙였다.“그래? 그렇게 돈이 갖고 싶다면 좀 전에 네가 한 말도 지켜야겠지?”차수현은 실의에 빠졌다. 이때 온은수가 그녀의 두 손을 덥석 잡고 침대에 내던졌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차수현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온은수는 그녀의 발목을 꽉 잡고 물러나지 못하게 했다.“아까 네가 말했잖아 나와 결혼하자마자 이혼하게 되면 미혼에서 갑자기 이혼녀가 되는거라고. 보상을 원한다면 나도 네 뜻대로 하게 해줘야 하지 않겠어?”그는 차수현을 짓누르고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그는 빈정거리는 얼굴로 차수현의 하얀 목덜미에 다가갔지만 상상했던 증오감이 밀려온 게 아니라 오히려 말하지 못할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담담하고 고요한 느낌이 마치 그날 그 여자를 방불케 했다...온은수는 제멋대로인 그녀를 잠시 겁주려던 것도 잊은 채 자신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갔다.차수현은 그에게 짓눌려 꼼짝하지 못했다. 그녀는 마지못해 눈을 감고 그를 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몸이 점점 굳어져 끝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돈 필요 없으니까 제발 좀 가게 해주세요!”그녀는 결국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좀 전에 아빠한테 얘기 다 들었어. 너 대체 아빠를 어떻게 속인 거야? 너 같은 며느리는 없다면서 절대 이혼하지 말라고 하셨어.”온은수의 말을 들은 차수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온회장님이 정말 이렇게 말씀하셨을까?’다만 그녀는 방금 일어난 일들을 되새기며 더 이상 이토록 감정 기복이 심한 남자와 함께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하루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그럼 내가 가서 말씀 드릴게요. 걱정하지 말아요. 은수 씨가 이혼 얘기를 꺼냈다고 하지 않을게요.”차수현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몸을 돌려 차분히 얘기했다.온은수는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왔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녀의 속내를 읽어낼 수 없었다.그를 길들이려고 하는 수작일까 아니면 본인이 원하던 계획이 무너져 자포자기한 걸까?말을 마친 차수현은 온회장을 찾아가 솔직하게 말씀 드리려 했다. 그녀가 진짜 방을 나서려 하자 온은수는 뒤늦게 일어나 팔을 덥석 잡아당겼다.“거기 서. 나랑 거래 하나 해. 네가 허락만 한다면 돈은 전혀 문제 될 게 없어.”온은수가 갑작스럽게 팔을 붙잡자 그녀는 좀 전의 잔혹했던 행동들이 떠올랐다. 차수현은 온몸이 불편하여 피하려 했지만 좀처럼 벗어나질 못했다.“뭔데요?”온은수는 그녀의 팔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이에 그녀도 온회장을 찾아갈 생각은 잠시 뒤로 한 채 무슨 거래인지 들어보기로 했다.“아버지는 연세가 드실수록 하루빨리 내가 결혼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길 바라셔. 나도 줄곧 이 일로 아빠한테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아. 네가 여기 남아준다면 원하는 모든 것을 내가 부담할게. 내 요구는 단 하나야. 만약 내가 진짜 결혼 상대를 만나는 날엔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 바로 내 곁에서 떠나. 그땐 네 청춘을 내게 바친 대가로 한꺼번에 100억 원을 보상해줄게.”차수현은 거만하고 무례한 온은수의 행동에 거부감이 들었지만 10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액수를 듣는 순간 선뜻 거절할 수 없었다.차씨 집안 사람들의 행실을 그녀는
차수현은 맑은 눈빛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비록 이 계약서가 마음이 들지않지만 온은수가 자신의 몸을 함부로 대하는게 싫었다..온은수는 말문이 턱 막혔다. 그는 한참 동안 침묵한 후 눈을 가늘게 뜨고 대답했다.“그건 걱정 마. 너 같은 여자는 나한테 애원해도 만지고 싶지 않으니까.”차수현은 그의 거친 표현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꼭 그러길 바랄게요.”그녀는 방금 한 말을 열심히 계약서에 적고 사인을 마친 후 온은수에게 건넸다.온은수는 그녀의 서명을 힐긋 쳐다봤는데 돈만 밝히는 이미지와는 달리 글씨체가 생각보다 단정했다.수려하고 깔끔한 필체에서 열심히 글씨 연습을 한 흔적이 묻어났다.온은수는 정신을 가다듬고 그녀의 서명 옆에 사인을 마친 후 계약서를 내려놨다.그는 블랙카드 한 장 그녀에게 건넸다.“이 카드 사용해. 한도 제한 없어.”차수현은 이내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담담하게 카드를 건네 받았다.“걱정 말아요. 돈만 들어오면 은수 씨 요구대로 전부 다 맞춰드릴게요.”온은수는 코웃음 치고 더는 그녀를 쳐다 보지 않았다.그는 팔을 들어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새벽에 깨어나 한바탕 소란을 피웠는데 날이 밝아오기까지 아직 몇 시간 더 있었다.줄곧 병상에 누워있다가 이제 막 정신이 든 온은수는 피곤함이 몰려와 그녀에게 말했다.“난 이만 쉬어야겠어. 어디서 잘지는 알아서 결정해. 가족들의 의심만 안 사면 돼.”말을 마친 그는 서슴없이 방안의 큰 침대를 차지하고 털썩 누웠다.차수현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돈을 받는 처지라 그가 갑이라는 걸 인정한 그녀였다.방안에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불이 꺼지고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그녀가 잠잘 곳을 구해달라고 부탁할 줄 알았는데 아무 말도 없었다. 온은수는 살며시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차수현은 어디서 이부자리를 찾아냈는지 그새 바닥에 깔았다.그녀는 자리를 아주 조금 차지한 채 가녀린 몸을 움츠리고 누웠다. 너무 조용해 있는듯 없는듯 방안은 고요했다.
온은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책장을 펼치는 소리에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그는 여자에게 넋이 나간 자신을 생각하며 한심하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돈만 밝히는 여자가 아침 일찍 일어나 독서를 해? 이렇게 하면 내 마음이 조금은 바뀔 줄 알고? 천만에, 무의미한 일이야.’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이불을 젖히고 곧 바로 샤워하러 욕실로 향했다.차수현은 인기척을 듣더니 그제야 온은수가 깨어난 걸 알아챘다.‘설마 내가 책상을 좀 빌려 썼다고 불쾌한 걸까?’그녀는 더 생각할 새도 없이 서둘러 책상 위의 물건을 정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온은수한테서 받은 돈으로 엄마의 병을 치료해야 했으니까.잠시 후 욕실에서 나온 온은수는 그녀가 물건을 싹 다 정리한 걸 보더니 천천히 말했다.“나가서 밥 먹어.”차수현은 그를 따라 주방으로 걸어갔다. 온회장은 풍성한 차려진 아침식탁 앞에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온은수와 차수현이 나란히 방에서 나와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걸어오는 걸 보더니 온회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수현아, 어젯밤엔 잘 잤어? 은수가 널 괴롭히진 않았지?”온은수는 그녀를 힐긋 째려봤다. 이에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내저었다.“그럴 리가요. 푹 잘 잤어요.”어젯밤 바닥에서 자느라 그녀는 허리가 쑤시고 온몸이 뻐근했다. 하지만 돈을 받았으니 곧이곧대로 말할 수 없었다.“다행이네. 앞으로 은수가 괴롭히면 나한테 말 하거라. 너 대신 따끔하게 혼내줄게.”차수현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다들 무사히 아침을 먹었다.식사를 마친 후 온은수는 온회장과 상의할 일이 있다면서 서재로 들어갔다.“아빠, 내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걸 우리 가족 말곤 아무도 몰랐으면 해요.”“왜? 너한테 무슨 계획이라도 있는게냐?”“그게 아니라 왠지 이번 교통사고가 우연치고는 이상한 것들이 많은 것 같아서요. 동태를 잘 살피고 그들을 기다리다 보면 느슨해진 그들의 꼬리가 드러날 거예요.”온은수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수년간 재벌가에서 지내다 보니 절
“네, 알았어요.”차수현은 얌전히 대답한 후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온씨 집안에서 나와 아무도 자신을 보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후 그녀는 비로소 긴 한숨을 내쉬었다.온은수는 감정 기복이 심하여 상대하기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엄마를 위해서라도 끝까지 버텨내야 했다.……차수현은 버스를 타고 병원에 갔다. 병실에 도착하자 단짝 친구 한가연이 한참 엄마를 보살펴주고 있었다. 한편 엄마의 안색이 전보다 훨씬 좋아진 걸 발견한 그녀는 걱정했던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온혜정은 딸을 보자 반가워 하며 그녀에게 새로운 직업이 어떤 일인지 물어보았다.차수현은 미리 준비했던 대로 대답하며 엄마를 안심시키며 이야기 해주었다.세 사람이 한참 얘기를 나눈 후 온혜정이 차수현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아 참, 은서는 잘 지낸대? 지금도 해외에 있어? 언제쯤 귀국한대? 걔가 돌아오면 우리 수현이도 이렇게 고생하진 않을 텐데 말이야.”차수현은 미소를 짓고 있다가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 낯빛이 살짝 어두워졌다.그녀는 오랫동안 온은서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다.대학교 때 차수현은 엄마를 보살피면서 학교에 다니느라 그 모습은 초라했었다.. 그녀가 가장 힘들 때 온은서가 그녀를 도와줬었다.그렇게 은서는 착하고 해맑은 모습이 그녀의 마음을 서서히 열게하였다. 그 뒤로 병원에도 자주 찾아와 온혜정을 돌봐주며 그녀에게 사위로 인정받았다.두 사람은 대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결혼하려 했지만 온은서가 해외 의학연구소로부터 파격적인 오퍼를 받았다. 그에게 첨단의학연구를 위해 출국해달라는 초대장이 왔었다.온은서는 학업을 마치고 귀국하면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처음 두 사람은 자주 연락하며 지냈지만 갑자기 반년 전부터 연락이 뚝 끊겨였다.차수현도 차츰차츰 눈치를 챘다. 온은서가 어쩌면 날 이제 짐 처럼 느껴져서싫증 났거나 해외에서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 그녀를 깨끗이 잊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그녀는 침울한 마음을 뒤로한 채 애써 웃으며 엄마에게 말했다.“엄마도 알다
“이미 사람을 시켜 CCTV를 확보했는데... 한 달 전 영상이라 호텔 쪽에서 싹 다 지웠대요.”온은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사실 그날은 그가 직접 돌아가 사람을 찾으려 했는데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요 며칠 윤찬이 믿고 있는 몇몇 사람들도 회사 주가를 유지하며 딴 사람들이 빈틈을 노리고 공격하는 걸 막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여 그날 일을 조사할 겨를이 전혀 없었다. 온은수도 그런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계속 조사해. 일말의 단서도 놓쳐서는 안 돼.”온은수의 지시에 윤찬은 알겠다며 대답을 하곤 곧장 자리를 떠났다.온은수는 업무를 다 처리한 후 서재에서 나오다가 마침 병원에서 돌아온 차수현과 마주쳤다.차수현은 어젯밤에 잠을 설쳤고 또 아까 길에서 흐느끼며 우느라 몸이 엄청 피곤했다. 그녀는 얼른 조용한 곳을 찾아가 마음을 달래고 싶었지만 문을 열자마자 온은수와 시선이 마주치고 말았다.온은수는 빨개진 그녀의 눈동자를 보더니 생각에 잠겼다.‘이 여자 엄마 보러 간다더니 딴 사람한테 하소연하러 간 거야 뭐야?’어젯밤에 그의 요구를 들어준 것도 전부 연기한 거였나?. 그녀는 결국 돈이나 밝히는 여자에 불과한 건가?온은수는 싸늘한 표정으로 쏘아붙였다.“왜? 아침까지 집에서 뻔뻔스럽게 연기하더니 너무 빨리 본성이 드러난 거 아니야? 그새를 못 참고 누굴 찾아가 하소연 이라도 한 거야?”차수현은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시킨 일은 전부 최선을 다해 맞춰준 그녀였다. 단지 슬픈 일이 생각나 마음이 속상한 것뿐인데 이렇게까지 그녀의 마음을 후벼 팔 필요가 있을까?그녀는 자기 처지를 생각하며 서운한 마음을 꾹 참았다.“미안해요, 은수 씨. 엄마를 만나서 조금 감격했을 뿐 은수 씨가 말한 그런 거 아니…….”“네가 뭘 했는지 궁금하지 않아.”온은수는 귀찮다는 듯 그녀의 말을 잘랐다.“이 말만 기억해. 나와 결혼한게 속상하고 억울해도 꾹 참아. 여기저기에 소문내고 다니지 마. 그리고 집에서 울상을 짓고 있는 얼굴 보고 싶지 않아.
그냥 교통 버스만 탔다고?온은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차씨 집안이 어마어마한 재벌가는 아니더라도 그 집안의 귀한 딸이 가난해서 버스나 탈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그는 차수현이란 여자가 점점 더 난해해졌다.온은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돌아갔다.방문을 열자 차수현이 굳은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그녀는 쪽지를 온은수에게 준 이후로 후회가 밀려왔다.만에 하나 이 남자가 속이 좁아서 이 점만 물고 늘어지며 돈을 다시 가져가면 그녀는 어떡하란 말인가?차수현은 괴로움에 푹 빠졌다. 요즘 일어난 일들이 너무 많고 몸도 지쳐 있어 머리가 잠시 잘못된 듯싶었다.온은수는 분노와 괴로움이 뒤섞인 그녀의 표정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마른기침을 했다.차수현은 바로 정신을 가다듬고 마음이 찔리듯 그를 힐긋 쳐다봤다.“저기 그게 말이에요, 은수 씨. 기분 상하게 할 의도는 전혀 없었어요. 단지 제가 정말 우리의 계약을 어기는 행동을 한 적이 없으니 불필요한 의심은 자제해달라는 뜻이었어요.”온은수는 한참 침묵했다. 그녀가 사과를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온은수는 비로소 알겠다며 짤막하게 대답했다.그는 차수현을 신경 쓰지 않은 채 책 한 권 가져와 읽기 시작했다.차수현은 그의 속내를 파악할 수 없었지만 그가 화를 낼 의향이 없는 걸 보니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을 들고 밖에 나가 잠시 피해있으려 했다. 이때 온은수가 머리를 들고 그녀를 바라봤다.그는 차수현이 입은 옷이 살짝 낡았다는 걸 발견했다. 소매와 칼라 부분은 색까지 바랬다.온은수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 그는 색이 바래질 때까지 한 옷만 입는 사람을 전혀 본 적이 없었다.“잠깐.”그의 차분한 목소리에 차수현은 걸음을 멈추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이럴 줄 알았어. 날 쉽게 놓아줄 리가 없지.’차수현은 혼 날 준비를 했는데 온은수가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우리 온씨 집안에 당신이 입을 옷이 그렇게 없어?”차수현은 흠칫 놀라며 고개를 숙이고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