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누워있는 남자는 창백한 얼굴에 두 눈을 꼭 감고 있었지만 잘생긴 외모엔 전혀 지장이 없었다.그는 정신을 잃은 게 아니라 동화 속 왕자님이 깊은 잠에 빠진 것만 같았다.차수현은 비록 잘생긴 얼굴에 쉽게 빠져들지 않지만 그런 그녀도 온은수를 몇 번 이고 몰래 훔쳐봤다. 그러던 중 온은수의 창백한 손등에 수많은 바늘 자국이 남아있는 것을 발견했다.이 상처들을 보며 그녀는 문득 수년간 고통에 시달려온 엄마가 생각났다.온은수처럼 완벽한 남자는 사고만 아니였다면 모든 여자의 로망이자 가질 수 없는 존재였을 것이다. 그가 이렇게 되지만 않았다면집에서 내쫓긴 차수현에게 좋은 혼사가 이뤄질 리 없었다.두 사람은 동병상련의 가여운 처지였다.이렇게 생각한 차수현은 온은수가 가엽게 느껴져 점차 부드러운 표정으로 변했다.온회장은 그녀의 표정 변화를 물끄러미 지켜봤다. 그녀를 이곳에 데려온 이유도 진실된 표정을 보기 위해서였다.그녀가 만약 온은수를 귀찮게 여겼다면 그 순간 표정도 절대 숨겨질 리가 없다.온회장은 차수현을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우리 은수에 관한 일은 너도 이미 들었을 거야. 이 결혼을 원치 않으면 지금이라도 얘기해. 널 강요하진 않을 테니까. 다만 결혼하겠다고 결심한 이상 나중에 후회 해서는 않됀다.”차수현은 고개 돌려 온회장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저는 이미 결정했어요, 온회장님. 후회 같은 거 절대 안 해요. 앞으로 은수 씨의 아내로서 열심히 보살필 거예요.”그날 갑작스럽게 첫 경험을 빼앗긴 후 차수현은 사랑에 대한 로망이 없어졌다. 하여 그럴 바엔 이곳에 남아 온은수를 보살피기로 했다.적어도 이렇게 하면 엄마가 최상의 치료를 받을 테니까.온회장은 그녀를 자세히 훑어보았다. 진심 어린 그녀의 눈빛에 온회장도 드디어 경계심을 풀었다.“네가 원한다면 됐어. 이제부터 넌 은수의 아내로서 일상생활을 모두 책임져야 해. 이따가 상세하게 가르쳐줄 사람이 올 거야.”말을 마친 온회장은 자리를 떠났다.곧이어 온회장의 분부대로 두
말을 마친 도우미는 자리를 떠났다.차수현은 침대에 누운 온은수를 바라보며 한참 망설이다가 결국 쑥스러운 마음을 뒤로한 채 그의 옷을 천천히 벗겼다.온은수는 비록 혼수상태에 빠져있지만 그의 몸매는 여전히 완벽했다. 교통사고 때 남은 상처 외엔 근육 라인도 완벽하고 몸매도 늘씬하여 거의 조각상 갔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차수현은 수건을 적시고 그의 피부를 구석구석 닦아주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속옷을 벗기려 하니 차마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그녀의 머릿속엔 좀 전에 도우미가 했던 말만 맴돌았다. 만약 온은수가 끝까지 깨어나지 못하면 그녀는 온씨 일가를 상속받을 후계자를 낳아야 한다.“그런데... 어떻게 낳으란 거지? 아니 비록 다부진 몸매에 근육도 완벽하다 지만...”차수현은 나지막이 중얼거리다가 마치 어린 소녀라도 된것 것처럼 부끄러워 줄행랑을 쳤다.그녀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온은수가 주먹을 꽉 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화장실로 달려간 차수현은 찬물로 세수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다만 얼굴을 씻으면서도 좀 전의 이상했던 그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방으로 돌아온 후 그녀는 아까 못다한 일을 도저히 마무리할 수 없어 얼른 온은수의 옷을 입혔다.곧 밤이 깊어졌다.종일 바삐 보낸 차수현도 피곤함이 몰려와 몸을 움츠린 채 침대에 누웠다.그녀는 새벽에 조금 추워 온은수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따뜻한 온기를 느낀 그녀는 서서히 잠이 들었다.……온은수는 마치 꿈을 꾼 것만 같았다. 꿈속에서 그는 또다시 불타올랐던 그 날 밤으로 돌아갔다.품에 안긴 여자는 여전히 수줍음이 많았고 아름다운 모습이 그를 미치게 했다...차수현은 새벽에 숨이 막혀 잠에서 깼다. 눈을 뜨고 보니 한 남자의 품에 꼭 안겨 있었고 언제부터인지 옷도 풀어 헤쳐져 가슴이 훤히 드러났다.차수현은 소스라치게 깜짝 놀랐다..설마 누군가 온은수가 식물인간이 된 걸 알고 몰래 들어와 그녀를 겁탈한 걸까?그날 밤 괴로웠던 기억이 또다시 그녀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차수현은 그
목소리를 들은 온회장도 흠칫 놀라며 온은수의 방을 쳐다봤다. 그는 자신의 두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고개를 돌린 차수현은 온은수가 떡하니 서 있는 걸 발견했다. 그는 심지어 직접 밖으로 걸어 나왔다.아까 그녀에게 몹쓸 짓을 한 사람이 온은수였다는 말인가?차수현은 그 자리에서 넋을 놓고 말았다. 온은수가 이렇게 빨리 깨어날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온은수는 그녀를 힐긋 바라보다가 어안이 벙벙해진 아버지께 시선을 돌리며 자상하게 말했다.“저 깨어났어요, 아빠. 그 동안 많이 걱정하셨죠?”온회장은 그제야 꿈에서 깬 듯 휘청이며 달려와 온은수의 몸을 어루만졌다. 아들이 무탈하게 깨어난 걸 확인한 그는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드디어 깼네! 드디어 깼어!”온은수는 얼른 온회장을 부축했다.“아빠, 너무 흥분하시면 안 돼요.”말을 마친 그는 옆에서 어쩔 바를 모르는 차수현을 힐긋 쳐다봤다.“이 여잔 누구예요? 왜 내 방에 들어온 거죠?”그는 낯선 사람을 절대 방에 들이지 않는다. 여자는 더욱 금기 대상이다.온은수는 좀 전에 일이 썩 기분이 내키지 않은 듯싶었다. 하여 그의 말투도 유난히 냉정했다.온회장은 차수현을 보면서 조금 전 그녀의 말을 오해했다는 걸 알았다.“말하자면 길어. 서재로 가서 이야기 해주마. 수현이는 먼저 방에 가 있어.”온회장이 차수현에게 친절하게 말하자 온은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그의 따가운 시선에 차수현은 왠지 싸늘함을 느꼈다. 온은수는 그녀를 향한 적의가 매우 커 보였다.하지만 일이 이 지경으로 된 이상 그녀도 더는 좌지우지할 수 없었다. 차수현은 결국 온은수의 차가운 눈빛을 감당하며 방으로 쪼르르 달려갔다.온은수는 그녀의 가녀린 그림자가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야 온회장을 따라 서재로 들어갔다.온회장은 요 며칠 일어났던 일들을 간략하게 말하며 맨 마지막에 차수현을 언급했다.“은수야, 수현이는 내가 널 위해 맞이한 네 아내란다.”온은수의 담담했던 표정이 이 한마디로 변화를 일으켰다.그는
온회장은 온은수의 진지한 모습에 끝내 그의 제안을 허락했다.“그래, 약속할게. 만약 네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난다면 그땐 이혼하겠다고 해도 말리지 않을게.”얘기를 마친 후 온은수는 곧장 방으로 돌아갔다. 온회장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이를 본 집사가 가까이 다가오며 그를 위로했다.“온회장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수현 씨는 마음씨가 착해서 한동안 지내다 보면 도련님도 꼭 좋아하시게 될 겁니다. 감정이란 것은 원래 천천히 키워나가는 거잖아요.”온회장도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였다.‘그랬으면 좋겠구나.’……온은수가 온회장과 함께 서재로 들어간 후 차수현은 이제 막 하룻밤도 채 지나지 않은 ‘신혼 방’으로 돌아왔다.그녀는 좀 전의 마냥 차가웠던 온은수의 눈빛을 떠올리자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날 이토록 싫어하는 걸 보니 설마 이 결혼 무르는 거 아니야?’이렇게 생각한 차수현은 마음이 초조했다. 온은수가 아쉬워서가 아니라 시집온 지 하루만에 온씨 일가에서 쫓겨나면 그녀의 가족들은 절대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엄마가 큰 병원으로 옮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오는 것은 차마 지켜볼 수가 없었다.하지만 이런 재벌 가문에 남아있으려면 분명 여자의 순결을 신경 쓸 텐데 만에 하나 그녀의 과거가 폭로된다면 도리어 온씨 일가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걱정이었다.차수현은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 옷깃을 꽉 잡은 채 이마에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그녀가 좌불안석일 때 굳게 닫혔던 문이 벌컥 열렸다.온은수가 성큼성큼 들어와 한쪽 옆에 움츠리고 앉아있는 차수현을 보더니 짜증 섞인 얼굴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여기 앉아있을 여유가 있긴 해?”그의 말에 차수현은 숨이 턱턱 막혔지만 이럴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은수 씨…….”온은수는 하찮은 듯 웃으며 쏘아붙였다.“웃어? 내가 깨어나니까 좋아? 이젠 드디어 우
온은수는 그녀를 벽에 확 밀어붙이고는 턱을 잡아 올렸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온은수와 눈을 마주쳤다.“아빠가 대체 어떤 여자를 데려왔는지 궁금했는데 고작 돈이나 밝히는 인간이었어.”그는 비난 조로 말하며 손에 힘을 더 주자. 차수현에 턱은 부서질 것만 같았다.밀려오는 고통에 자신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졌지만 그녀는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맞아요, 난 돈밖에 모르는 여자예요. 돈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돈만 주면 은수 씨에게 역겹게 굴지 않고 당장 꺼질게요.”온은수는 그녀의 대답에 살짝 당황 했다. 그의 앞에서 이토록 돈을 밝히는 여자는 여태껏 단 한 명도 없었다.진짜 원한다고 해도 대부분 내숭을 떠는 편이었다.하지만 차수현은 조금 특별했다. 당당하게 요구했으며 뻔뻔했다.온은수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꼬리를 올리고 빈정대며 놀리 말투로쏘아붙였다.“그래? 그렇게 돈이 갖고 싶다면 좀 전에 네가 한 말도 지켜야겠지?”차수현은 실의에 빠졌다. 이때 온은수가 그녀의 두 손을 덥석 잡고 침대에 내던졌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차수현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온은수는 그녀의 발목을 꽉 잡고 물러나지 못하게 했다.“아까 네가 말했잖아 나와 결혼하자마자 이혼하게 되면 미혼에서 갑자기 이혼녀가 되는거라고. 보상을 원한다면 나도 네 뜻대로 하게 해줘야 하지 않겠어?”그는 차수현을 짓누르고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그는 빈정거리는 얼굴로 차수현의 하얀 목덜미에 다가갔지만 상상했던 증오감이 밀려온 게 아니라 오히려 말하지 못할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담담하고 고요한 느낌이 마치 그날 그 여자를 방불케 했다...온은수는 제멋대로인 그녀를 잠시 겁주려던 것도 잊은 채 자신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갔다.차수현은 그에게 짓눌려 꼼짝하지 못했다. 그녀는 마지못해 눈을 감고 그를 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몸이 점점 굳어져 끝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돈 필요 없으니까 제발 좀 가게 해주세요!”그녀는 결국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좀 전에 아빠한테 얘기 다 들었어. 너 대체 아빠를 어떻게 속인 거야? 너 같은 며느리는 없다면서 절대 이혼하지 말라고 하셨어.”온은수의 말을 들은 차수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온회장님이 정말 이렇게 말씀하셨을까?’다만 그녀는 방금 일어난 일들을 되새기며 더 이상 이토록 감정 기복이 심한 남자와 함께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하루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그럼 내가 가서 말씀 드릴게요. 걱정하지 말아요. 은수 씨가 이혼 얘기를 꺼냈다고 하지 않을게요.”차수현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몸을 돌려 차분히 얘기했다.온은수는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왔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녀의 속내를 읽어낼 수 없었다.그를 길들이려고 하는 수작일까 아니면 본인이 원하던 계획이 무너져 자포자기한 걸까?말을 마친 차수현은 온회장을 찾아가 솔직하게 말씀 드리려 했다. 그녀가 진짜 방을 나서려 하자 온은수는 뒤늦게 일어나 팔을 덥석 잡아당겼다.“거기 서. 나랑 거래 하나 해. 네가 허락만 한다면 돈은 전혀 문제 될 게 없어.”온은수가 갑작스럽게 팔을 붙잡자 그녀는 좀 전의 잔혹했던 행동들이 떠올랐다. 차수현은 온몸이 불편하여 피하려 했지만 좀처럼 벗어나질 못했다.“뭔데요?”온은수는 그녀의 팔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이에 그녀도 온회장을 찾아갈 생각은 잠시 뒤로 한 채 무슨 거래인지 들어보기로 했다.“아버지는 연세가 드실수록 하루빨리 내가 결혼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길 바라셔. 나도 줄곧 이 일로 아빠한테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아. 네가 여기 남아준다면 원하는 모든 것을 내가 부담할게. 내 요구는 단 하나야. 만약 내가 진짜 결혼 상대를 만나는 날엔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 바로 내 곁에서 떠나. 그땐 네 청춘을 내게 바친 대가로 한꺼번에 100억 원을 보상해줄게.”차수현은 거만하고 무례한 온은수의 행동에 거부감이 들었지만 10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액수를 듣는 순간 선뜻 거절할 수 없었다.차씨 집안 사람들의 행실을 그녀는
차수현은 맑은 눈빛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비록 이 계약서가 마음이 들지않지만 온은수가 자신의 몸을 함부로 대하는게 싫었다..온은수는 말문이 턱 막혔다. 그는 한참 동안 침묵한 후 눈을 가늘게 뜨고 대답했다.“그건 걱정 마. 너 같은 여자는 나한테 애원해도 만지고 싶지 않으니까.”차수현은 그의 거친 표현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꼭 그러길 바랄게요.”그녀는 방금 한 말을 열심히 계약서에 적고 사인을 마친 후 온은수에게 건넸다.온은수는 그녀의 서명을 힐긋 쳐다봤는데 돈만 밝히는 이미지와는 달리 글씨체가 생각보다 단정했다.수려하고 깔끔한 필체에서 열심히 글씨 연습을 한 흔적이 묻어났다.온은수는 정신을 가다듬고 그녀의 서명 옆에 사인을 마친 후 계약서를 내려놨다.그는 블랙카드 한 장 그녀에게 건넸다.“이 카드 사용해. 한도 제한 없어.”차수현은 이내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담담하게 카드를 건네 받았다.“걱정 말아요. 돈만 들어오면 은수 씨 요구대로 전부 다 맞춰드릴게요.”온은수는 코웃음 치고 더는 그녀를 쳐다 보지 않았다.그는 팔을 들어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새벽에 깨어나 한바탕 소란을 피웠는데 날이 밝아오기까지 아직 몇 시간 더 있었다.줄곧 병상에 누워있다가 이제 막 정신이 든 온은수는 피곤함이 몰려와 그녀에게 말했다.“난 이만 쉬어야겠어. 어디서 잘지는 알아서 결정해. 가족들의 의심만 안 사면 돼.”말을 마친 그는 서슴없이 방안의 큰 침대를 차지하고 털썩 누웠다.차수현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돈을 받는 처지라 그가 갑이라는 걸 인정한 그녀였다.방안에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불이 꺼지고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그녀가 잠잘 곳을 구해달라고 부탁할 줄 알았는데 아무 말도 없었다. 온은수는 살며시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차수현은 어디서 이부자리를 찾아냈는지 그새 바닥에 깔았다.그녀는 자리를 아주 조금 차지한 채 가녀린 몸을 움츠리고 누웠다. 너무 조용해 있는듯 없는듯 방안은 고요했다.
온은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책장을 펼치는 소리에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그는 여자에게 넋이 나간 자신을 생각하며 한심하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돈만 밝히는 여자가 아침 일찍 일어나 독서를 해? 이렇게 하면 내 마음이 조금은 바뀔 줄 알고? 천만에, 무의미한 일이야.’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이불을 젖히고 곧 바로 샤워하러 욕실로 향했다.차수현은 인기척을 듣더니 그제야 온은수가 깨어난 걸 알아챘다.‘설마 내가 책상을 좀 빌려 썼다고 불쾌한 걸까?’그녀는 더 생각할 새도 없이 서둘러 책상 위의 물건을 정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온은수한테서 받은 돈으로 엄마의 병을 치료해야 했으니까.잠시 후 욕실에서 나온 온은수는 그녀가 물건을 싹 다 정리한 걸 보더니 천천히 말했다.“나가서 밥 먹어.”차수현은 그를 따라 주방으로 걸어갔다. 온회장은 풍성한 차려진 아침식탁 앞에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온은수와 차수현이 나란히 방에서 나와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걸어오는 걸 보더니 온회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수현아, 어젯밤엔 잘 잤어? 은수가 널 괴롭히진 않았지?”온은수는 그녀를 힐긋 째려봤다. 이에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내저었다.“그럴 리가요. 푹 잘 잤어요.”어젯밤 바닥에서 자느라 그녀는 허리가 쑤시고 온몸이 뻐근했다. 하지만 돈을 받았으니 곧이곧대로 말할 수 없었다.“다행이네. 앞으로 은수가 괴롭히면 나한테 말 하거라. 너 대신 따끔하게 혼내줄게.”차수현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다들 무사히 아침을 먹었다.식사를 마친 후 온은수는 온회장과 상의할 일이 있다면서 서재로 들어갔다.“아빠, 내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걸 우리 가족 말곤 아무도 몰랐으면 해요.”“왜? 너한테 무슨 계획이라도 있는게냐?”“그게 아니라 왠지 이번 교통사고가 우연치고는 이상한 것들이 많은 것 같아서요. 동태를 잘 살피고 그들을 기다리다 보면 느슨해진 그들의 꼬리가 드러날 거예요.”온은수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수년간 재벌가에서 지내다 보니 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