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수현은 백화점에서 나온 후 온은수의 차가 밖에 세워진 걸 발견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초라한 자신의 몰골을 보더니 가슴이 움찔거렸다.비록 싸움에서 진 건 아니지만 온씨 일가의 명성을 망친 것만 같아 죄책감이 몰려왔다. 온은수가 만약 그녀가 밖에서 몸싸움이나 하고 다니는 걸 안다면 끝까지 추궁할 것이다.다만 피하는 것도 답이 아니기에 차수현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차에 올라탔다.다행히 온은수는 한창 노트북을 보느라 그녀의 움직임에 관심이 없었다.차수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움츠린 채 창 밖을 내다봤다. 그녀는 최대한 온은수의 시선을 피하려 했다.차는 일정한 속도로 달렸고 차수현도 이 일이 이렇게 지나갈 거로 여겼다. 온은수가 차분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봤다.헝클어진 머리와 몸을 할퀸 몇 개의 빨간 흉터까지 보자 온은수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어떻게 된 거야?”차수현은 순간 선생님께 혼나는 기분이 들었다.“죄송해요, 앞으로 더 조심할게요.”“넌 온씨 집안 사람이야. 일거수일투족이 전부 우리 집안을 대표한다고! 고작 옷 사러 가서 이 사달을 내, 이왕 이렇게 된 거 앞으론 얌전히 집에만 있어. 내 허락 없인 외출금지야!”차수현은 그에게 혼날 준비가 다 되었지만 외출금지라는 말에 덜컥 겁이 났다.“은수 씨, 이번 일은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인정해요. 하지만 절대 먼저 소란을 피운 게 아니에요. 상대가 먼저…….”“변명 같은 거 하지 마.”온은수는 가차 없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차수현은 입술을 꼭 깨물더니 한참 후에야 말을 이어갔다.“은수 씨, 이번 일은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온씨 집안의 명성을 어지럽혔어요. 죄송해요, 어떤 처벌이든 달갑게 받을 테니 제발 외출금지만은 풀어줘요.”엄마가 큰 병원으로 옮긴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또 곧 있으면 수술이 다가오는데 유일한 가족인 차수현이 없으면 누가 옆에서 챙겨준단 말인가?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온은수가 노트북을 접고 언짢은 눈빛으로 그녀를 째려봤다.“지금 나랑 흥정이라
차수현은 한숨을 내쉬곤 지금 있는 위치를 확인했다. 어딘지 정확히 모르지만 아주 외딴 곳이라 지나가는 차가 한 대도 없었다.그녀는 마지못해 앞으로 걸어가며 차를 기다렸다. 마침 지나가는 차가 있으면 자신을 태워주길 바랐다.……온은수가 그녀를 버리고 간 후 윤찬은 백미러에 비치는 길을 넌지시 바라봤다. 너무 외딴곳이라 지나가는 차가 없으면 차수현은 아마 정말 돌아오기 힘들 듯싶었다.“도련님, 은수 씨 혼자서…….”“너도 내리고 싶어?”온은수의 싸늘한 대답에 윤찬은 입을 꾹 다물었다.온은수는 서류를 펼쳤지만 아무리 해도 들여다볼 기분이 아니었다.그는 차수현이 방금 한 말을 떠올리며 낯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한참 후, 온은수가 문득 입을 열었다.“저 여자 예전에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지냈는지 알아봐봐.”온은수는 차수현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그녀는 돈을 엄청 밝히고 항상 엄마의 병을 입에 달고 살며 그의 동정심을 유발했다.지시를 받은 윤찬이 곧바로 사람을 시켜 조사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온은수의 메일함에 메일이 하나가 도착했다.메일함을 열어보니 차수현은 정말 열몇 살 때부터 차씨 집안에서 내쫓겨 엄마와 함께 지내면서 아르바이트 수입으로 간신히 생계를 유지했다. 그의 눈가에 놀라움이 살짝 스쳤다.온은수는 사실 그녀가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요구대로 해주면 그것대로 만족이었다. 그런데 막상 조사하고 보니 그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차수현은 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아무런 능력도 없는 여자가 결코 아니었다.온은수는 손가락으로 차 창문을 두드리며 음침한 하늘을 바라봤다.“차 돌려.”……차수현은 길을 따라 쉴 새 없이 걷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빗줄기에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느덧 먹구름이 끼고 큰비가 내릴 것 같았다.차수현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운이 없는지 자기자신을 원망했다. 그녀는 걷다가 지쳐 자포자기한 채로 길옆에 앉아 멍하니 넋 놓고 있었다.그녀는 오늘 온은수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린 것 같았다. 만
온은수는 잠깐 넋을 잃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마른 기침을 했다."내 마음을 후회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면 입 좀 다물어."차수현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아부의 역효과를 맛보고 싶지는 않았다.그렇게 둘은 조용히 집으로 향했다.온 회장과 함께 저녁밥을 먹고 난 둘은 제각기 휴식을 취했다.……이튿날 아침, 온은수는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차수현은 오늘 오래간만에 일찍 깨지 않고 조용히 바닥에서 자고 있었다. 그녀는 아주 깊게 잠들었다. 어제 너무 피곤했던 탓에 전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가녀린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자고 있는 차수현을 보고 온은수는 자기도 모르게 어제 봤던 자료들이 떠올랐다. 그는 10대의 어린 소녀가 자신과 아픈 어머니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일하는 모습을 상상해 봤다.온은수는 차수현이 약간 짠하게 느껴졌다. 그녀한테 못되게 대한 게 약간 후회되기도 하고 말이다.이렇게 생각하며 온은수는 차수현을 깨워서 침대로 올라가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차수현의 옆에 가자마자 잠결에 몸을 돌린 그녀의 긴 다리에 발이 걸리고 말았다.온은수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차수현의 위로 넘어졌다.한창 잘 자고 있다가 무거운 무언가에 깔린 차수현은 순식간에 깨버렸다. 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코앞으로 다가온 온은수의 얼굴부터 보였다.차수현은 잠깐 로그아웃 되었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본능적으로 소리를 질렀다."꺄악…… 웁!"당황한 온은수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차수현의 입을 막았다. 바로 자신의 입술로 말이다.안 그래도 머릿속이 복잡했던 차수현은 완전히 로그아웃 되었다. 그녀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며, 마치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거렸다.차수현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손을 올려 온은수를 힘껏 밀어냈다.차수현한테 밀려난 순간, 온은수가 평소 그렇게 자랑스럽게 여기던 이성이 드디어 돌아왔고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내가 무슨 짓을 했지?'온은수한테 접근하려는 여자는 항상 아주 많았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마
출근한 차수현은 왠지 모르게 제정신을 못 차리고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한창 자신이 왜 이러는지 생각하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옛 직장동료였다.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관계로 차수현은 약간 의아한 기분으로 전화를 받았다."수현 씨, 잘 지냈어요 다름이 아니라 예전에 당직을 끝내고 제가 수현 씨 대신 방 하나 청소해 준 적 있잖아요. 요즘에 그때 누가 당직을 섰는지 조사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러는데 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요?"유예린은 그날 아침에 차수현의 업무를 이어받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날 방 안에서 시계 하나를 발견했다. 일시적인 탐욕에 눈이 먼 유예린은 시계를 자신의 집으로 가지고 갔다.그리고 그 시계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그 시계는 세계적으로도 몇 없는 한정판이었고 대단한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시계를 바로 팔아버리려고 했던 유예린은 함부로 팔 수가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라 그녀는 시계를 다시 돌려줄 용기도 없었다. 혹시라도 도둑으로 몰려 잡혀갈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녀는 시계를 집에 숨겨놓은 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할 수밖에 없었다.갑자기 그날 일을 조사하는 사람이 생기자 유예린은 아주 무서웠다. 만약 시계를 훔친 일을 들키게 된다면 그녀는 어떻게 변명해도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이번 일과 관련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 차수현이었기에 그녀는 이렇게 전화를 해서 상황을 물었다.하지만 유예린은 몰랐다. 그녀의 얘기를 들은 차수현은 머리 속엔 텅 비워진 것처럼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날 일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절대 열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차수현은 다시는 이 일을 언급하는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유예린의 말 한마디에 다시 절망적인 그날 밤으로 돌아가고 말았다.차수현은 잠깐 멈칫하다가 애써 진정하며 이렇게 말했다."저…… 저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제가 갔을 때는 그 방이 계속 잠겨 있었거든요. 물론 청소도 할 수 없었어요
차수현은 온은수가 무조건 무언가를 알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다행히도 유예린이 전화를 준 덕분에 그녀는 미리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 안 그랬다면 무조건 꼬리를 밟혔을 것이다.차수현은 명단을 훑어보면서 이렇게 말했다."이건 제가 아니에요. 저는 낮에는 출근을 하고 밤에는 엄마를 보러 병원으로 가야 해서 호텔에서 일할 시간이 없었어요. 제가 무슨 분실 술을 할 줄 아는 것도 아니고.""그래서 이 사람은 네가 아니다? 그냥 우연히 너랑 같은 이름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이거야?""S시에는 수천만명의 사람이 있어요. 같은 이름은 갖고 쓰는 게 무슨 대수라고 그래요? 만약 못 믿겠으면 이 사람에 대해 더 조사해 보면 될 거 아니에요."차수현은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 온은수는 그녀를 한참 쳐다봤지만 아무런 빈틈도 찾지 못하고 윤찬한테 전화를 걸었다. ‘차수현'이라는 여자에 대해 더 깊이 조사를 하도록 말이다.차수현은 옆에 서서 무표정한 얼굴로 결과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의 등은 이미 식은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윤찬의 속도는 늘 그랬듯이 빨랐다. 그는 순식간에 자세한 자료를 찾아서 보내왔다.자료를 확인한 온은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자료 위에는 차수현이 40대 중년 부인이라고 나왔다. 그녀는 확실히 서재에 있는 차수현과 동일 인물이 아니었다.‘내가 잘못 생각한 건가?'온은수는 말 못 할 찝찝함을 느꼈다. 하지만 명확한 증거까지 있으니 그는 포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네가 아니라면 됐어. 앞으로는 언행에 조심하도록 해.""알겠어요, 은수 씨. 그럼 저는 이만 가봐도 되죠? 방금 퇴근을 하고 나니 온몸이 찐득거려서 빨리 샤워하고 싶어요."차수현의 말을 들은 온은수는 손을 휘적대며 나가라고 했다.겨우 빠져 나온 차수현은 서재에서 나오고 나서야 꼭 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그녀의 손바닥에는 손톱자국이 깊게 패어있었다.상처를 보아하니 엄청 아팠을 것 같기는 하지만 너무 긴장한 나머지 전혀 느끼지 못했다.차수현은 굳게 닫
한바탕 추궁을 당한 차수현은 슬슬 두렵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운이 좋아서 그냥 넘어갔지만 다음에도 운이 좋을 거라는 확신은 없었다.그녀는 두려운 마음로 계속 온씨 집안에 남아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빨리 돈을 모아 어머니랑 함께 이 도시를 떠나고 싶었다."수현아, 요즘 회사 사정이 좋지 못해서 나도 돈이 별로 없어..."차수현이 돈 얘기를 꺼내자 차한명은 바로 불쌍한 척 연기를 했다.하지만 그를 잘 알고 있는 차수현은 바로 말을 끊으며 이렇게 말했다."잘 좀 생각해 보시는 게 좋을 거예요. 제가 온씨 집안이랑 사이좋게 지내서 얻은 이익이랑 댁 모녀가 사치품을 사면서 얻는 이익 중에서요."차수현의 말을 들은 차한명은 주저하기 시작했다.차수현을 시집보낸 후, 온씨 집안은 차씨 집안에 아주 잘 해줬다. 벌써 여러 프로젝트에 투자까지 하고 말이다.만약 차수현이 예쁨을 받지 못한다면 많은 손실을 볼게 뻔했다.이렇게 생각하며 차한명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좋아. 그럼 내가 돈을 보내줄게. 아껴서 써. 그리고 그 돈은 대표님이랑 회장님한테 써야 하는 돈이라는 걸 잊지 마!"차수현은 콧방귀를 뀌며 전화를 끊었다. 곧 돈이 들어온다는 생각을 하자 그녀의 답답한 마음도 훨씬 편해졌다.……통화를 마친 차한명은 한창 차예진과 쇼핑을 하고 있을 이미애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바로 차수현에게 돈을 보내줘.차수현에게 돈을 줘야 한다는 말을 들은 이미애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차한명이 강하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반발을 할 수가 없었던 그녀는 마지못해 승낙을 했다."엄마, 왜 그래요? 아빠가 뭐라고 했어요? 왜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졌어요?""아주머니, 무슨 일 있었어요? 빨리 말씀해 보세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안수지도 옆에서 적극적으로 말했다. 그녀는 오늘 차수현의 소식을 듣기 위해 특별히 차예진 모녀를 함께 불러냈다.이미애가 기분이 나빠진 것을 보고 그녀는 이때다 싶어서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별거 아니야. 그냥 차수현 그
샤워를 하고 나온 차수현은 기분이 훨씬 진정되었다. 그녀는 욕실 밖으로 나왔다.이때 차현명이 또 전화를 걸어왔다. 차수현은 휴대폰을 힐끔 보고 바로 전화를 받았다."돈은 보냈어요?"차한명은 차가운 말투으로 이렇게 말했다."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와. 돈은 수표로 줄 테니까."차수현은 약간 의아했다. 하지만 곧 차한명이 돈이 아까워서 또 설득 시키려고 그러나 보다 하고 대답했다."네, 지금 바로 출발할게요."차수현은 돈을 봐서라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전화를 끊고는 도우미에게 집에서 저녁을 먹지 않는다고 말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얼마 지나지 않아 차수현은 금방 차씨 저택에 도착했다.익숙하고도 낯 선 건물을 보고 차수현은 크게 숨을 돌리면서 초인종을 눌렀다.도우미가 와서 문을 열자 차수현은 안으로 들어갔다. 차한명이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곧장 걸어갔다."저 왔어요. 수표는요?""이 미친년이 감히 내 앞에서 수표 얘기를 꺼내? 네가 한 미친 짓은 이미 전부 들통났어!"차수현은 차한명이 갑자기 화를 낼 줄은 몰랐다. 크리스털로 만든 재떨이는 빠르게 날아와 그녀의 이마에 부딪쳤다. 차수현의 하얀 이마에는 커다란 상처가 났고 피가 얼굴을 따라 주르륵 흘러내렸다.차수현은 손을 들어 얼굴을 슥 닦았다. 그러자 손에는 새빨간 피가 묻어났다."이건 또 무슨 짓이에요? 돈을 주기 싫어 물건까지 던져서 피를 볼 것까지없지 않나요? 온씨 집안에서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 몰라요?""네가 무슨 염치로 온씨 집안을 언급해? 우리가 네가 한 짓을 아직도 모를 것 같아? 만약 온씨 집안에서도 알게 된다면 너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려 할 거야!"영문도 모른 채 맞고 나서 화가 잔뜩 나있던 차수현은 차한명의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듣고서는 미간을 찌푸렸다.‘내가 요즘 온씨 집안에서 얼마나 얌전히 있었는데... 도대체 무슨 짓을 했다고 이러는 거야?'차수현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차예진 모녀와 안수지가 걸어 나왔다.안수지는 차수현의 처참
이 말을 들은 차수현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안수지가 본 남자는 다름 아닌 온은수 본인이었다. 그녀의 말 대로라면 차수현은 온은수와 바람을 피운 것이다."그 사람을 말하는 거였어? 내가 그냥 알려줄게, 그 사람은..."차수현이 온은수의 정체를 밝히려고 할 때 그와 계약이 문뜩 떠올랐다.온은수가 깨어난 사실을 아직 외부에 알려서는 안 된다. 만약 말해버린 다면 그의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이고 또 여러 나비효과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이렇게 생각하며 차수현은 원래 하려고 했던 말을 다시 삼켜버렸다.이 모습을 본 안수지는 바로 비아냥거리면서 말했다."말해, 그 사람이 누군데?"차수현은 이를 악물면서 말했다."아직은 말할 수 없지만 그 사람도 온씨 집안사람이에요.""온씨 집안사람이라면 왜 말을 못 하는 거야?"차한명은 취조하는 말투로 물었다. 차수현은 말을 할 수도 없었고, 안 할 수도 없어서아주 난감했다. 그저 침묵만을 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차수현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차한명은 분명히 속이 찔려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차수현이 한 짓에 차씨 집안도 연루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아직도 그 외간 남자의 이름을 말하지 않을 속셈인 거냐? 네가 말을 하기 전까지는 이 집안에서 꼼짝도 하지 못할 줄 알아."차한명은 이렇게 말하며 손을 휘휘 저었다."차수현이 말을 할 때까지 지하실에 가둬두고 있어!"이 말을 들은 차수현은 바로 몸을 돌려 도망가려고 했다. 하지만 머리를 강하게 맞은 그녀는 어질어질한 상태로 쉽게 잡혀버리고 말았다. 차수현은 병아리처럼 맥없이 들려 지하실로 보내졌다.쾅 소리와 함께 차수현은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떨어졌다. 지하실 문이 밖에서 잠겼다.어두컴컴 한 데다가 찬바람까지 불고 있는 지하실에서 차수현은 몸이 떨리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문을 두드리면서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이 미친놈들아! 당장 나를 풀어줘요. 당신들 이거 감금죄야!"문밖에는 점점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만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