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은수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졌다. 차수현이 이곳에 남아있도록 허락한 것은 절대 그녀를 정식 아내로 인정했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는 차수현이 자신한테 삐질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온은수는 윤찬한테 전화를 걸어 차수현의 위치를 알려달라고 했다.윤찬은 빠르게 보고를 했다."위치 추적을 해본 결과 차수현 씨는 처가로 돌아간 다음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습니다."차수현이 처가로 돌아갔다는 소리를 들은 온 회장은 온은수를 노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네 자식이 또 무슨 짓을 했길래 우리 며느리가 기분이 상한 거야? 얼른 찾아가서 달래 와야 할 것 아니냐."온은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뭐라고 말하려고 할 때 온 회장이 책상을 내리치며 이어서 말했다."너희 둘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수현이는 내가 고른 며느리야. 지금 당장 집으로 데려오지 않는다면 네가 나를 아버지로 여기지 않는다고 생각하마."이렇게 말한 온 회장은 화가 잔뜩 난 채로 서재에서 나갔다.온은수는 어두운 안색으로 온 회장의 화난 뒷모습을 보다가는 결국은 타협을 선택했다.차에 올라탄 온은수는 안색이 극도로 어두웠다.차수현이 요즘 조용히 지내는 것을 보고 그는 쫓아내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 온 회장은 그녀를 지나칠 정도로 아꼈다. 귀찮은 존재는 하루빨리 처리하는 게 이득이었다.온은수는 이렇게 생각하며 엑셀을 밟았다. 차는 쏜 살 같이 앞으로 나아갔다.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차씨 저택에 도착했다.온은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차에서 내려와 초인종을 눌렀다.차씨 집안의 도우미가 문을 열러 나왔다. 도우미는 온은수와 만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비범한 기품을 통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실례지만 누구세요?""차수현을 불러줘요."온은수는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상대가 차수현을 찾는 것을 보고 도우미는 잠깐 멈칫하다가 바로 돌아가서 안수지와 수다를 떨고 있는 차예진한테 알렸다."젊은 남자가 차수현을 찾고
차예진은 자신이 온은수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며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온은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당연히 차예진의 꿍꿍이를 알아차렸다. 밖으로는 착한 척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녀의 말 사이사이에 차수현에 대한 불만이 담겨있었다."그래요? 그런 사람이라는 건 또 무슨 뜻이죠?"온은수가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것을 보고 차예진은 기쁜 마음으로 이렇게 말했다."그게…… 제가 동생으로서 언니의 나쁜 말을 하면 안 되기는 하지만..."안 그래도 옆에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안수지는 차예진이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다."예진아, 네가 못 말하겠으면 내가 대신 말할게. 사실 차수현은 보이는 것처럼 착한 사람이 아니에요. 걔는 고등학교 때부터 연애를 하고 일진들이랑 같이 놀았어요. 성적이 나쁜 건 둘째 치고 건전하지 못한 일 때문에 유산을 한 적도 있대요... 지금이야 운 좋게 온씨 집안에 시집가기는 했지만 그쪽한테 사기를 치면서 온씨 집안의 셋째 도련님을 욕 보일 줄은 몰랐네요."안수지는 득의 양양하게 말을 했다. 하지만 남자는 그녀의 예상처럼 화를 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비웃는 표정을 지었다."저한테 사기를 치고 셋째 도련님을... 욕 보였다고요?"온은수는 차갑게 웃으면서 말했다."제가 온은수에요. 즉 당신들이 말하고 있는 온씨 집안의 셋째 도련님이죠."온은수는 더 이상 그들과 시간 낭비를 하지 않고 도우미 한 명을 잡아 세우며 이렇게 말했다."지금 당장 차수현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줘."온은수의 기세에 겁을 먹은 도우미는 반항도 하지 못하고 바로 그를 데리고 지하실로 내려갔다.온은수는 머리도 돌리지 않고 떠나갔다. 두 젊은 여인은 넋이 나간 채로 제자리에 멈춰 섰다.정신을 차린 차예진은 온은수의 뒷모습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차수현이 자신을 대신해 식물인간한테 시집을 가자 차예진은 속으로 내심 통쾌했다. 하지만 온은수가 깨어났다는 것을 알고 나자 그녀는 모든 여자가 부러워할 만한 자리를 차수
아무리 가짜 계약으로 만들어진 집이라고 해도 차수현은 오래간만에 따듯함이라는 것을 느꼈다.온은수는 차수현을 반쯤 안은 채로 지하실에서 나왔다. 그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차수현의 하얀 이마에 생긴 커다란 상처를 발견했다.비록 피가 멎기는 했지만 상처에 남은 붉은 핏자국은 아주 선명했다.온은수는 눈살을 약간 찌푸리며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이때 소란을 들은 차한명과 이미애가 빠르게 달려왔다.사람이 대충 모인 것을 보고 온은수는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이 상처는 누가 낸 겁니까?"그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온은수의 시선은 안수지를 향했다."그쪽이 수현이한테 불만이 꽤 많아 보이던데 혹시 그쪽이 한 짓인가요?"온은수의 살기를 느낀 안수지는 깜짝 놀랐다. 다리가 떨리면서 힘이 풀려버린 그녀는 자칫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아니에요! 이건 차씨 집안의 일이에요. 저는 제3자일 뿐이라고요!"안수지는 바로 이렇게 대답했다. 온은수의 눈빛은 마치 야수와 같아서 잠깐만 방심하면 갈기갈기 찢길 것만 같았다. 이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안수지의 말을 들은 온은수는 차한명을 바라봤다."차씨 집안의 일이라면 가장인 당신이 책임져야겠죠?"차한명은 온은수와 처음 만났다. 비록 무섭기는 했지만 체면을 구길 수 없었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그래, 내가 한 일일세. 어찌 됐든 차수현도 차씨 집안사람인데 아버지로서 훈육을 하는 게 뭐가 잘못됐다고 그러는가?""차수현은 제 아내이자 온씨 집안사람이에요. 설사 잘못을 했다고 하더라도 당연히 남편인 제가 해결해야지 출가외인 수현이에게개입할 필요가 없죠. 아니면 혹시 저희 온씨 집안이 이 정도로 무시할 정도로 눈에 차지 않았던 건가요?"이 말을 들은 차한명은 몸을 흠칫 떨었다.차씨 집안은 온씨 집안의 도움을 받은 덕분에 고비에서 벗어났다. 만약 온은수가 책임을 따지기 시작한다면 아주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그건... 오해일세. 수현아, 아빠가 오해를 해서
차수현은 온은수가 말로만 차씨 집안사람들에게 겁을 주는 줄 알았다. 그녀는 온은수가 차한명을 이 지경으로 만들 줄은 몰랐다.놀라운 건 놀라운 거고 차수현은 속이 아주 통쾌했다.어머니가 병에 걸린 후 그녀는 차한명의 눈칫밥을 아주 오랫동안 먹어왔다. 지금의 차한명은 응당 받아야 하는 벌을 마땅히 받은 것일 뿐이었다.‘이번에 확실하게 몸에 새겨 두세요!'"이건 작은 경고에 불과해요. 만약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온은수는 차가운 눈빛으로 차씨 집안사람들을 경고하고는 차수현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기력을 회복한 차수현은 방금 전처럼 무기력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온은수를 밀어내며 혼자서도 걸을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하지만 온은수는 손을 놓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 꽉 끌어안기까지 했다.그가 고집을 부리는 것을 보고 차수현은 더 이상 버둥거리지 않았다. 다친 것 때문에 서러워서 그런지 그녀는 온은수의 온기가 전혀 싫지 않았다. 오히려 안심이 되기도 했다.두 사람은 차씨 저택에서 나와 차에 올라탔다.안전벨트를 맨 차수현은 약간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말했다."고마워요."온은수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확실히 차수현한테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온은수는 머리를 돌려 차수현을 힐끔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너는 어떻게 된 애가 머리를 맞고 지하실에 갇힐 정도로 멍청해? 평소에는 꽤나 똑똑한 척했잖아."차수현은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방금 전의 다정함은 온데간데 없이 역시 다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처럼 오만한 모습이야말로 그의 진정한 본성이었다."저희가 썼던 계약서 생각 안 나요? 은수 씨가 깨어났다는 사실을 말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제가 집안사람들 앞에서 입을 함부로 놀리다가 은수 씨 계획을 망쳐버리면 어떡해요? 하지만 오늘 이렇게 나타났으니 이미 들킨 것과 마찬가지인데... 앞으로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건 아니에요?"차수현은 걱정 가득한 표
차씨 집안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떠올리며 온은수의 눈빛은 점점 차가워졌다."다음에 또 너를 때리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배로 복수해 줄게, 알았어?"이 말을 들은 차수현은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온은수를 바라봤다.‘이건 내 편이 되어주겠다는 뜻인가?'비록 온은수의 말투는 따듯하다고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차수현은 코끝이 찡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 변화를 들키지 않기 위해 짧게 대답만 하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얼마 후 상처 처치는 금방 끝이 났다.온은수는 허리 숙여 처치를 끝낸 상처를 살펴봤다. 문제가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자세한 신체검사를 예약했다.원래는 거절하려고 했던 차수현은 온은수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그냥 묵인했다.차수현이 검사를 하러 가면 온은수는 밖에 앉아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는 차수현의 가녀린 뒷모습을 보며 비밀을 지키기 위해 맞기를 선택한 그녀의 고집스러운 모습을 떠올렸다. 그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온은수는 차수현이 자신이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쓸모가없지는 않은 것 같았다.……병원의 검사 속도는 아주 빨랐다. 차수현의 검사 결과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나왔다."축하합니다, 도련님. 차수현 씨가 임신을 하셨네요."의사는 검사 결과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온은수의 안색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 여자가 임신을 했다고?'그는 차수현을 품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그녀가 임신한 아이는 다른 남자의 아이일 수밖에 없었다.온은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겨우 생겨난 차수현에 대한 동정이 지금 이 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며 우스워지고 말았다.그는 검사 결과를 꽉 쥐며 이렇게 물었다."차수현 본인은요?""금방 나올 겁니다."온은수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의사는 약간 넋이 나갔다. 온은수가 한밤중에 차수현을 데리고 신체검사를 하는 것을 보고 그는 둘 사이가 아주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임신 소식도 차수현이 아닌 온은수한테 먼저 알려줬다.하지만 온은수의 반응은 그의 예상과 달리 아
온은수는 가슴 앞에 팔짱을 낀 자세로 차수현의 변명을 듣고 있었는데, 변명을 듣는 내내 그의 입가에서는 비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차수현은 그의 이런 모습을 보고, 지금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차수현은 깊은 숨을 들이쉰 후, 혼란스러운 생각을 정리하며 냉정하게 말했다."죄송해요. 은수씨가 제 말을 다시 믿기에는 힘드실 거라는 거 잘 알고 있어요. 저에게 시간을 좀 주시면, 은수씨가 만족하실 수 있도록 이 일을 처리할께요.”"당신 생각에는 내가 당신 같이 앙큼한 여자를 온 씨 집안에 그냥 남아 있도록 할 것 같아?” 차수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온 씨 집안을 떠나기 싫은 것이 아니다. 그녀는 엄마의 일을 처리할 시간이 좀 필요하다.적어도 지금 쫓겨날 수는 없다. 만일 쫓겨난다면, 차한명 성격에 오늘 일을 빌미로 그들 모녀에게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다. "대표님, 사실 제가 임신을 했든 안 했든, 우리는 이혼할 거잖아요. 제 약점을 쥐고 계시니, 저를 쫓아 내실 때 뒤탈을 걱정하실 필요도 없어요. 게다가 이 일이 시끄러워지면, 온 씨 집안의 이름에도 먹칠을 하게 될 텐데, 아버님이 힘들어하시지 않겠어요? 대표님도 그걸 바라지는 않으실 거라 생각합니다.”말을 마친 차수현의 손바닥이 식은땀으로 흥건했다.그녀는 온은수가 자신의 말을 들어줄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단지 그가 온 회장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걸어볼 수밖에 없었다. 숨 막히는 침묵이 이어졌다. "좋아, 내가 당신에게 3일의 시간을 주지. 가서 아이를 처리해. 만약 3일 후에도 당신이 나에게 만족스러운 대답을 주지 않는다면, 온 씨 집안에 더 이상 당신이 있을 곳은 없어.”말을 마친 온은수는 바로 몸을 돌리더니, 차수현을 남겨두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의 단호한 뒷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본 차수현은 그제야 팽팽하게 긴장했던 몸에 힘이 풀려 하마터면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차수현은 손을 아직 부풀어 오르지않은 아랫배
"하지만 선생님, 저는 정말 이 아이를 낳을 수 없어요. 저는 반드시 수술을 해야 돼요."차수현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의사에게 애원했다.그녀의 표정에 드러난 애원을 보고, 의사는 측은지심을 느꼈다. 여자에 대한 안타까운 생각에 의사가 입을 열었다. "굳이 수술을 해야 한다면, 적어도 수술을 감당할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들어 오셔야 합니다. 대략 보름은 걸릴 겁니다."보름?보름이라는 말에 차수현 마음속의 절망이 더욱 짙어졌다.온은수가 그녀에게 준 3일은 이미 그녀가 필사적으로 쟁취한 시간이었다. 만약 3일이 지난 후에도 그녀가 여전히 이 아이를 처리하지 못한다면, 그 남자가 그녀에게 어떻게 할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차수현은 의사에게 즉시 수술 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애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의사의 태도는 매우 단호했다. 의사로서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가지고 모험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차수현은 결국 병원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병원을 나선 차수현은 멍하니 길을 걸었다. 그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심지어 하소연할 사람도 찾지 못했다. 차 씨 집안 가족이 알게 된다면 바로 그녀를 죽이려 들지도 모른다. 엄마? 엄마의 병세는 이제 겨우 조금 호전되었는데, 만약 그녀가 이런 일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절대로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아이 아버지? 그녀 자신도 그 남자가 누군지 모르는데, 어디로 가서 그를 찾을 수 있겠는가?산송장처럼 한참을 걷던 차수현은 얼마나 걸었는지도 모른 채 문득 멈춰 섰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아무 생각 없이 한 지저분한 골목 앞에 서있는 것을 발견했다. 몸을 돌려 나가려던 차수현은 문득 벽에 무통 낙태 수술이라고 써서 붙인 광고 전단지를 보았다. 전단지 위에 전화번호와 주소가 있었다.차수현은 마치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그 전화번호에 전화를 걸었는데, 바로 멀지 않은 위치에 있는 작은 병원이었다.차수현은 귀신에라도 홀린 듯 그 병원을 찾았는데, 허름한 작은 병원은 고약한 곰팡이
한참을 그곳에 앉아 있다가 차수현은 비로소 생각을 정리하고 일어섰다.그리고 그녀의 눈빛은 확고해졌다. 그녀는 이 아이를 낳을 것이다. 목숨을 걸고 수술을 할 수는 없다. 엄마가 될 자격도 잃고 싶지 않다.차수현은 마음을 정하고 온 씨 집안 저택으로 돌아왔다.그녀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소파에 앉아 있는 온은수를 발견했다. 그의 차가운 시선이 그녀의 몸 위에 떨어졌다. 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마주쳤다. 차수현은 마음이 당황스러워 재빨리 눈동자를 돌렸다.온은수의 눈빛은 너무 예리해서 마치 그녀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만약 그가 정말 그녀의 진실한 생각을 알게 된다면, 틀림없이 노발대발할 것이다. 불안한 마음에 차수현은 서둘러 화장실에 들어가 얼굴을 씻고 진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거기 서." 온은수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차수현의 발걸음이 멈추었고, 순간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처리했어?" 온은수의 손가락이 가볍게 책상을 두드렸다. 그 가벼운 소리가 마치 목숨을 재촉하는 주문처럼 느껴져 차수현은 온몸을 긴장한 채 호흡을 억눌렀다."수술 예약했어요."차수현의 말을 들은 온은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쳐다보았다."무슨 속임수 쓸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아. 결과를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위협하는 듯한 남자의 말투에 차수현은 온은수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손가락을 꼰 채 깊이 숨을 들이쉰 다음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감히 은수씨 말을 거스를 만큼 그렇게 큰 담력은 저한테 없으니까요.”말을 마친 차수현은 더 이상 온은수와 마주 보지 않도록 재빨리 문을 열고 욕실로 들어갔다.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욕실 문 닫는 소리가 난 후 온은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차수현의 행동은 마치 소리 없는 반항과 같았다. 그녀가 무슨 자격으로?뱃속에 다른 놈의 아이를 품고 있는 주제에......차수현이 다른 남자가 있었다는 사실과, 또 그 남자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을 생각한 온은수의 안색이 급격히 나빠졌다. 그는 그대로 몸을 돌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