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진지하게 진예은을 바라보았다.“이건 플랫폼의 문제야. 절대 그들이 이렇게 멋대로 하게 내버려 둬선 안 돼. 이참에 본때를 보여줘야겠어. 우리가 무서워할 줄 아나보지?”진예은은 그만 실소를 터뜨렸다.“고마워 유이야. 근데 난 싸우지 않을래.”강유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그들은 널 이용했어...”그녀는 오히려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그들이 나를 이용한 건 맞지만 동시에 창작할 기회도 준 거야.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여기를 떠나면 돼.”그녀를 이용하는 것도 모자라 그녀에게 빨때를 꽂고 단물까지 빼 먹으려 하고 있다. 이건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다.저녁, 빈해별장.샤워를 마친 진예은은 편집자의 전화를 받았다.“예은 씨, 이건 무슨 뜻인가요? 계약을 해지하시겠단 말씀이세요?”진예은은 머리를 말리며 담담하게 대답했다.“네. 계약을 해지할 거예요. 이미 결정을 내렸어요.”“미쳤어요? 우리가 홍보해 줘서 이렇게 인기를 끌고 있고 좋은 기회까지 마련해줬는데 해지하고 싶다고 해서 해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그녀의 눈썹이 희한한 곡선을 그렸다.“저 몰래 당신들은 나의 저작권까지 팔아넘겼어요. 내가 여기서 얼마나 더 당해야 하나요?”편집자도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애써 아닌 척하며 대꾸했다.“소설 몇 개를 썼다고 해서 본인이 유능한 작가라고 착각하나 본데요. 우리가 당신에게 기회를 준 거에요. 계약이 끝나지 않았는데 해지한다는 게 무얼 의미하는지 알기나 해요? 이 책의 저작권은 우리 회사에 귀속될 거예요. 그리고 몇 달간의 원고료도 받지 못할----”상대방의 말은 길어졌다. 듣다 못 한 진예은은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렇게 잠시 그대로 있던 그녀는 침대에 몸을 던졌다.그때 하나의 실루엣이 문밖에 오래전부터 서 있었다. 그러다 점차 가까이 다가 오기 시작했다.진예은은 땅바닥에 드리운 낯선 그림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고개를 돌려본 그녀의 눈에 빛을 등지고 서 있는 남자가 보였고 그것이 반재신이란 걸 알고 나서야 놀란 가슴을 진정시
그들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그가 몸을 일으키며 헛기침했다.“드디어 그럴듯한 말을 하네.”진예은이 싱긋 웃었다.“넌 침묵할 때 제일 멋있어.”반재신, “...”평소같으면 핀잔을 주기 바빴을 것인데 그녀가 기분이 좋아 보이니 그는 참기로 했다. 그렇게 그는 한참 아무 말이 없었다.참다못한 진예은은 그의 옷을 잡아당기며 물었다.“계속 벙어리처럼 말하지 않을 거야?”그는 팔짱을 끼며 고개를 돌렸다.“그저 말하고 싶지 않을 뿐이야.”“그래?”진예은은 조용히 터져 나오는 웃음을 삼켰다.오만한 건 알았지만 그 속에 이런 귀여움이 있을 줄은 몰랐다. 침묵할 때가 더 멋있다는 말에 진심으로 이입하는 그가 그녀는 웃겼다.반재신이 그녀를 힐끔 쳐다보았다.“이제 기분이 많이 나아졌어?”그녀의 웃고 있던 얼굴이 순간 경직되었다.혹시 편집자와의 통화 내용을 들은 것은 아니겠지?진예은은 시선을 내리깔며 고개를 끄덕였다.“응. 많이 나아졌어.”“그럼, 먼저 자. 난 손님방에 가 있을 거야.”반재신이 떠나려는데 진예은이 그의 옷을 잡았다.“네가 없어서 내 기분이 또 안 좋아지면 어떡해?”반재신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그녀가 애교를 부리는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다.생각에 잠긴 그는 피식 웃고는 그녀에게 다가갔다.그리고 몸을 내려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내가 필요하다고 그냥 말해.”진예은은 그의 옷을 홱 잡아당기고 순식간에 그의 위에 올라탔다. 그녀의 행동에 놀란 반재신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너...”진예은이 그의 입술을 막으며 말했다.“내가 리드할께.”아침 6시, 날씨는 조금 쌀쌀했다.반재신은 차를 반씨가문의 정원에 세워두고 핸들을 잡고 엎드려 있었다. 그의 귀는 아직도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여태까지 그는 리드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어젯밤에는 주도권을 잃은 채 당하고 있었고 심지어 옴짝달싹도 못 했다.진예은의 능수능란한 테크닉에 그는 정신을 못 차렸다.그는 몸을 일으키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임 매니저님, 혹시 미스터리 장르를 계획 중인 감독님 아세요?"강유이가 갑자기 임석진에게 물었다."그건 왜 갑자기 묻는 거예요?""저한테 작가 친구 하나가 있는데 미스터리 극을 잘 쓰거든요.""잠깐."강유이의 말을 듣던 임석진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유이 씨, 유명한 감독들은 인기가 많은 웹소설을 각색한 대본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물론 투자자들의 입맛에도 맞아야 하고 후기의 이익, 원가, 촬영 효과 다 고려해야 하고요. 유이 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찍고 싶다고 해서 찍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 어느 감독도 자기가 수많은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 결국 망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으니까요.""이거 어떤지 한번 보실래요?"임석진의 말을 들은 강유이가 대본 하나를 그에게 건네며 물었다.강유이에게서 대본을 받은 임석진은 대충 내용을 훑어보다 갑자기 집중했다. 그렇게 그는 30여 분을 들여 대본을 다 읽었다."스토리 탄탄하네요, 배경도 좋고 반전도 있고.""사실 저 이 작품 하고 싶어요, 그런데 작품 작가가 제 친구인데 회사에서 친구 몰래 저작권을 팔았거든요. 그래서 다른 사람이 인물이랑 배경을 바꿔서 출판한 거예요. 저작권은 나중에 구매한 작가의 것이지만 그 사람도 결국 제 친구 덕분에 그렇게 된 거예요.""그래서 지금 친구를 위해 기회를 찾고 있는 거예요?""친구 재능이 묻히는 건 원하지 않거든요.""유이 씨 어느 친구분을 말하는 거예요?""아, 매니저님도 알고 있을 거예요. 저를 도와주고 있는 그 조수 친구."임석진은 그 대답을 듣곤 멈칫했다.강유이가 작업실로 돌아오니 한태군이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꼰 채 잡지를 보고 있었다.하얀색의 와이셔츠를 입은 그는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오빠, 여기는 왜 온 거야?"강유이가 웃으며 한태군에게 다가갔다."유이 보러 왔지."한태군이 잡지를 접어 옆에 두더니 강유이를 자신 쪽으로 끌고 와 그녀를 자신의 다리 위에 앉혔다."다른 사람한테 들킨 거 아니지?"자연스럽게 한태군의
AM그룹양우빈이 해외소설 플랫폼 작품의 저작권 계약서를 반재신에게 건네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대표님, 이 책들의 저작권은 왜 사라고 하신 거예요?""양 비서님은 알 필요 없어요, 그리고 제가 저작권을 샀으니 다시는 그 어떠한 명의로 작품의 작가에게 돈을 요구하지 말라고 플랫폼에 전하세요."반재신이 단호하게 말하자 양우빈은 더 이상 묻지 못했다.그리고 그는 사무실을 나서자마자 하서함을 만나게 되었다."하서함 씨, 안녕하세요."양우빈에게 고갯짓하는 것으로 인사를 한 하서함의 손에는 자료들이 들려있었다."재신 씨 안에 있죠?""네, 자료를 제출하시려고 하는 건가요? 재무팀에서 지정된 인원이 자료를 제출하고 있으니,모든 일을 하서함 씨가 직접 할 필요는 없습니다."하서함은 재무팀의 파트장 자리에서 실습하고 있었기에 서류 전달 같은 일은 그녀가 할 필요가 없었다."괜찮아요, 배우러 온 사람이니 모든 일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수는 없잖아요."하서함이 웃으며 말하자 양우빈이 자리를 떴다.하서함이 유리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니 반재신이 무언가를 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네."하서함이 노크하자 반재신은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반재신의 대답을 들은 하서함은 사무실로 들어와서 서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때 그녀의 눈에는 저작권 계약서와 작품을 든 반재신의 손이 들어왔다."재신 씨도 소설 좋아해요?"소설의 저작권까지 살 정도라니.하서함의 말을 들은 반재신이 계약서를 한쪽으로 치우고 하서함이 가지고 온 서류를 가져왔다."그렇다고 할 수도 있죠. 재무 쪽 일에 이미 익숙해진 것 같은데 언제 운경그룹으로 돌아갈 생각인 겁니까?""재신 씨 지금 저 쫓아내는 거예요?"하서함이 약간 굳은 얼굴로 억지웃음을 지어내며 물었다. "운경그룹으로 가서 배우는 게 여기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적합할 겁니다."담담하게 이어지는 반재신의 말을 들은 하서함은 할 말을 잃었다.그녀는 자기 아버지의 소개로 반재신을 안 뒤로부터 쭉 그와 친해지
"괜찮아, 나 아직 젊잖아, 글을 못 쓰는 것도 아니고."진예은이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강유이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나잖아, 이건 완전 강도 짓이야."계약을 해지한 뒤, 저작권이 회사로 넘어간 것도 그런데 진예은이 돈도 가질 수 없다고 하니 강유이는 무척 화가 났다. 그녀는 이런 강도 같은 플랫폼은 망해버려도 시원찮다고 생각했다."유이야, 너 그 대본 좋아했잖아, 그거 너 해."진예은이 강유이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하지만…"강유이가 그 작품을 하지 않은 이유는 원래 진예은의 것이어야 했을 작품이 저작권 문제 때문에 다른 이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었다.그래서 강유이는 자신이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그 작품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진예은은 강유이가 자신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저작권 이제 내 것도 아니라서 나랑 크게 상관없어, 하지만 기본 베이스는 내가 쓴 거잖아, 그래서 나는 네가 그 작품 했으면 좋겠어."그 말을 들은 강유이는 결국 그 작품을 하기로 하고 한월생의 역할을 맡기로 했다.한월생은 진예은의 원래 작품 속의 리타 아가씨였다. 귀족의 아가씨로서 연쇄살인 사건과 얽히고 얽힌 아름답고도 신비스러운 여자였다. 작품 속에서 그녀는 경찰의 용의선상에 올라 작품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인물이었다.하지만 작품은 하반기에 정식적으로 촬영을 앞두고 있었기에 강유이에게는 기나긴 준비시간이 주어졌다.그리고 그때, 그녀는 낯선 이에게서 온 메시지를 받게 되었다.강유이는 그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얼어버렸다.한편, 진예은은 TY 엔터에서 강유이를 기다리며 새 작품을 계획 중이었다.그때, 직원 한명이 노크했다."예은 씨, 누가 예은 씨를 찾아왔어요.""저를요?"진예은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려왔을 때, 소파 위에 앉아있던 여자를 보게 되었다.그녀는 바로 하서함이었다."하서함 씨?"진예은이 미간을 찌푸린 채 하서함에게
하서함이 진예은과 반재신의 사이를 알고 그녀를 찾아온 것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예은 씨는 왜 공개 안 하는 거예요?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 거죠?"하서함이 탐문하듯 진예은에게 물었다.두 사람이 정말 진심으로 서로를 좋아하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공개했을 것이다.하지만 두 사람이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건 그 관계가 정당하지 않다거나 혹은 두 사람의 배경이 너무 많은 차이가 난다는 걸 의미했다."그 이유에 대해서 왜 반재신에게 물어보지 않은 거죠? 반재신이 기꺼이 알려줬다면 저를 찾아와서 이렇게 물을 필요도 없었을 텐데, 그렇죠?"담담하게 대답하는 진예은을 본 하서함은 의외라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하서함은 진예은이 반재신과의 신분 차이 때문에 감히 공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재신은 반 씨 집안의 도련님이었고 AM 그룹의 후계자였기에 그의 아내도 그를 도울 수 있는 재벌 집 아가씨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하서함은 궁금하기도 했지만 진예은에게 압박을 가하기 위해 일부러 그녀를 찾아왔던 것이었다.진예은은 하서함의 신분도 알고 있었고 반 씨 집안과 하씨 집안의 사이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기에 똑똑한 사람이라면 알아서 물러날 것이라고 생각했다.진예은이 주동적으로 물러나는 것, 그것이 바로 하서함이 원하던 결과였다.하지만 하서함은 진예은을 너무 얕잡아보고 있었다.하서함 같은 연적을 앞에 두고도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침착하게 행동할 수 있다는 건 집안 배경을 숨겼다거나 반재신이 그녀를 무척 아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예은 씨 어느 집 아가씨예요?"하서함이 웃으며 물었다."아가씨랑은 거리가 멀어요."진예은의 대답을 들은 하서함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반재신이 진예은을 무척이나 아껴주고 있다는 것일까?그렇다면 왜 진예은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걸까?"제가 알기로 반 씨 집안의 요구가 굉장히 엄격해요. 연애는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결혼은 집안의 뜻에 따라서 해야 해요. 예은 씨 반 씨 집안 도련님의
하지만 두 사람은 바로 뒤에 앉은 여자가 자신들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뭐야, 네 아들 몰래 연애하고 있었던 거였어?"송아영이 자신의 입을 막고 있던 강성연의 손을 치우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사실 나 진작에 알고 있었어."강성연이 대답했다.그녀는 진작에 반재신과 진예은의 사이가 단순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이었다니."그래서 너는 재신이가 좋아하는 저 아가씨 편이야? 방금 들어보니까 말도 잘하던데, 나 너희 아들 와이프 자리에 관심 없다는 여자 처음 본다."송아영이 강성연의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반재신이 돌아와 AM 그룹을 인수받은 뒤로 서울의 긴다 난다고 하는 집안의 아가씨들은 모두 그를 일등 남편감으로 뽑았다.하지만 반재신은 그동안 여자를 만날 틈도 없이 바빴다. 강성연은 그가 그런 생각이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공개하지도 않고 몰래 만나고 있었던 거였다니."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러고 사냐?"강성연이 송아영의 머리를 밀치며 말했다."여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얘기가 이런 얘기 아니야? 김아린 불러서 같이 얘기하고 싶은 지경인데."강성연은 어이없다는 듯 그런 송아영을 보다 텅 비어버린 테이블을 바라봤다.진예은…역시 영국인답게 생각도 대범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자신감도 넘쳤다, 그 자신감은 집안 배경과는 연관이 없었다. 이렇게 자유롭고 독립적인 독특한 성격을 가진 여자였으니 반재신이 관심을 가진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고 강성연은 생각했다.저녁, 해빈 별장 구역.밥하기가 귀찮았던 진예은은 돌아가는 길에 저녁을 포장해서 별장으로 돌아갔다.오후에 강유이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강유이는 아직 대답이 없었다.그리고 현관으로 들어서자마자 소파 위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던 반재신을 보게 되었다. 그를 본 진예은은 잠깐 멈칫하더니 다시 침착하게 신을 바꿔 신었다."밥할 줄 몰라?"진예은의 손에 들린 음식을 본 반재신이 미간을 찌푸리곤 물었다."알아, 귀찮아서."진예은이 음식을 테이블 위에
그때, 갑자기 울린 벨 소리에 그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전화를 건 이는 한태군이었다."무슨 일이야?""유이,은이랑 같이 있어?""유이,원에 없어?""아니, 집에도 없고 회사에도 없어. 연락도 안 되고, 무슨 일이 난 것 같아."한태군이 침착하게 말했다.그 말을 들은 반재신이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한태군이 경고했었던 말이 생각났다. 하지만 반재신은 방심하고 있었다."지금 사람 보낼게."진예은은 반재신의 통화 내용을 듣곤 상대방이 한태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설마 유이가…"유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야?""응, 내가 한번 가봐야겠어."반재신은 외투를 챙겨 현관으로 빠르게 다가갔다.진예은은 멍청하게 서있었다 강유이에게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 여전히 강유이에게서 온 답장이 없었다.전화를 걸어봤지만 받는 이도 없었다.한편, 한태군은 차 앞에서 전유준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전유준은 데이비 렌지가 아직 서울에 나타나지 않았기에 그일 가능성은 배제할 수 있다고 했다.설사 데이비 렌지가 서울에 있다고 해도 그의 신분이 드러나기 전에 데이비 렌지가 이렇게 빠르게 그와 강유이의 일을 조사해 낼 리가 없었다.하지만 강유이에게 사고가 난 지금, 가장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이는 누구일까?한태군은 고민하다 갑자기 두 사람의 이름을 떠올렸다.서자천과 호민."지금 당장 서자천이랑 호민 위치 알아내세요."한태군이 차가운 눈빛으로 전유준에게 말했다.…교외 지역 한 아파트 안의 복도는 좁고 불빛도 다 꺼져갈 듯 어두웠다. 낡은 외곽에 페인트칠만 한 덕분에 집안은 어둡고 추웠다.강유이가 천천히 눈을 뜨자 눈앞의 이가 점점 선명해졌다. 그 사람은 바로 호민이었다.호민도 강유이처럼 손발이 묶여 있었지만,아직 깨어나지는 않았다.그 모습을 본 강유이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자신을 만나주지 않으면 한태군의 신분을 폭로하겠다던 상대방이 보내온 메시지가 기억났다.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마자 누군가에게 습격당했다.호민도 함께 있는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