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멈칫하며 답했다."그냥 화난다는 뜻이에요."남자를 집으로 데려다주고 수민 아파트로 돌아오자 시간은 어느덧 저녁 11시가 되었다. 아직도 몸에서 남예솜의 향수 냄새가 나는 것 같아 강현은 욕실로 들어가 비누칠을 두 번이나 했다.씻고 나온 강현은 침대에 누웠다. 창밖의 가로등이 커튼 사이로 들어와 천장에 비쳤다. 강현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말고 무언가 생각난 듯 피식 웃었다.이튿날. 집 밖으로 나온 이율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것을 보고 부랴부랴 달려갔다."잠깐만요!"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간 이율은 강현을 발견하고 약간 멈칫했다. 며칠 전 일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 선뜻 인사하기가 어색했다. 그래도 그녀는 강현의 곁으로 오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아, 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이율은 강현을 힐끗힐끗 훔쳐봤다. 그는 캐주얼한 정장에 약간 달콤한 동시에 씁쓸한 느낌도 드는 나무 향 향수를 뿌렸는데 정적이고 차분한 인상을 줬다.이율이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을 보고 강현은 피식 웃으며 물었다."왜 그렇게 봐요?"코끝이 곧 강현의 어깨에 닿는 거리에서 훔쳐보다가 걸린 이율은 심호흡하며 자세를 바로 하고는 애써 차분한 척했다."강현 씨 무슨 세제 써요? 냄새가 너무 좋아요."강현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아마 세제가 아니라 향초 냄새일 거예요."그는 잠깐 멈칫하다가 이어서 말했다."마음에 들면 하나 선물로 줄까요?"이율은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가 미소를 지었다. 이는 커플 아이템이 생긴다는 뜻이 아닌가!곧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곽 부인이 나타난 것을 보고 이율의 미소는 그대로 굳어버렸다.이율은 강현과 함께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오며 물었다."엄마, 여기는 어떻게 왔어요?"곽 부인은 이율의 곁에 함께 서 있는 강현을 바라보며 물었다."엄마는 의정이 만나러 왔지. 이 사람은 네 친구야?"강현은 짧게 목례하며 인사했다."안녕하세요."곽 부인은 강현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생김새가 반반한 데다가 나이도 이율과 비슷
강현은 회사로 왔다. 남예솜의 사건은 확실히 꽤 크게 번졌다. 회사의 모든 직원이 수군수군 의논하는 것을 듣고 강현은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이때 남자 직원이 강현을 향해 걸어오더니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강현 씨."강현은 머리를 돌리며 인사했다."좋은 아침이에요, 세성 선배님."방세성은 강현을 복도로 불러 내오더니 근처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말했다."너 조심해. 내가 방금 들었는데 부사장님은 역시 예솜 씨 편이야. 예솜 씨한테 자초지종을 듣고 나면 너를 찾아갈지도 몰라."강현은 여전히 태연하게 말했다."알겠어요.""넌 걱정도 안 돼?"방세성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남예솜이 이 정도로 사고를 쳤으니 회사 임원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부정적인 기사를 막으려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죄를 뒤집어쓸 사람이 필요했다.남예솜은 무조건 강현과 만난 일을 말할 것이고, 때가 되면 그는 소송을 피하기 어려웠다.강현은 방세성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선배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다 계획이 있으니 협조만 해주시면 돼요.""강현 씨, 부사장님이 부르십니다."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행정부 직원이 찾아와서 말했다.강현은 방세성에게 안심하라는 눈빛을 보내고는 행정부 직원과 함께 멀어져 갔다.부사장 사무실에는 부사장 외의 남자가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강현도 알고 있는 금목걸이를 한 남자이고, 다른 한 남자는 그의 사장이었다."강현 씨, 담도 크게. 회사에 이렇게 큰 해를 끼치고 무사할 거라고 생각해? 우리 회사에 온 목적이 도대체 뭐야?"부사장은 테이블을 내리치며 눈앞의 사람들을 바라봤다.강현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목적이라고 할 건 없어요.""변명은 필요 없어!"부사장은 서류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하지만 강현의 표정은 여전히 차분했다.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는 담배 연기를 뿜으며 입꼬리를 올렸다."강현이라고 했나? 익숙한 이름이군."강현은 그를 바라봤다. 남자는 금반지를 낀 손가락으로 소파 손잡이를
남자 연예인들이 강제적으로 관계를 맺는 과정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패닉까지 왔는지 강현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부사장이 남예솜을 멋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방세성은 그래도 남예솜이 회사에 돈을 벌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사장의 인맥 덕분에 일을 하고 있는 대표작 하나 없는 여자가 어떻게 돈을 벌어준다는 말인가?오늘 신 사장과 만나고 나니 강현은 약간 답이 생겼다. 그리고 어쩌면 그들이 불법적으로 찍는 영상과 관련 있지는 않을까 싶었다.부사장은 어두운 안색으로 말했다."그게 무슨 말이냐?""당신들 다 한편이죠? 안 그러면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겠어요?"강현은 어두운 안색의 금목걸이를 한 남자를 향해 말했다."마침 죄를 뒤집어쓸 사람이 필요한 참에 유성의 신입인 내가 눈에 띄었지? 내가 만약 약속대로 무명 여배우를 소개한다면 미래에 일어난 모든 문제에 책임져야 했겠네. 유성은 모르는 척 나를 해고하기만 하면 되고."강현은 피식 웃더니 부사장을 바라보며 말했다."부사장님은 남예솜 씨가 저를 마음에 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약점을 잡을 생각이었겠네요. 남예솜 씨와 관계를 맺은 자체가 약점이니까요. 맞죠?"부사장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확실히 똑똑한 녀석이군. 누가 보면 다른 회사의 스파이인 줄 알겠어. 하지만 네가 무엇을 알아냈든 쓸모없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어. 나는 네가 유성을 망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거든."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보디가드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강현을 에워쌌다.강현은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들었다."반항하지 않고 따라갈게요."신 사장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그래야 할 거야."강현은 말없이 보디가드들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유성 엔터 밖으로 나온 순간 기자들이 나타나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기자들은 남예솜에 관해 물었고, 이상함을 눈치챈 신 사장은 금목걸이를 한 남자에게 뒤처리를 맡겼다.금목걸이를 한 남자가 앞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강현은 그들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유성과
기자들은 현장에서 생방송하고 있었기에 이 장면은 모든 사람에게 보여졌다. 점점 더 크게 번지는 사건에 신 사장은 강현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부랴부랴 도망갔고 경찰은 금방 현장으로 출동했다.「유성 엔터의 어두운 진실」「유성 엔터 직원 집단 시위」「매장당한 남자 연예인들의 진실」기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일이 너무 크게 번진 탓에 서울 경찰도 유성 엔테에 관한 조사 소식을 발표했다."유성 엔터가 이런 곳이었어?""어쩐지 연예인이 점점 적어진다고 했더니, 이러다 망하는 거 아니야?""심훈이 유성에서 나왔대! 기사들이 다 진짠가 봐!"심훈은 SNS에서 유성 엔터와 계약을 해지했다는 소식을 올렸다. 그리고 '단결의 힘'이라는 의미심장한 멘트도 남겼다. 이는 명백히 유성 엔터에 흑막이 있다는 뜻이었다.심훈을 시작으로 여러 연예인이 계약을 해지했다. 유성 엔터의 임원들은 난리가 났고 사장은 부사장의 얼굴을 향해 서류를 던지며 말했다."내가 선심을 써서 너한테 회사를 맡겼더니 감히 내 회사를 말아먹어? 일할 줄 모르면 가만히라도 있던가!""형, 저 진짜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이게 다 강현 그 자식 때문이에요. 그 자식 때문에 기사가 났잖아요!"부사장은 황급히 설명하려 했다.사장은 홧김에 의자를 차버리고는 부사장의 앞으로 와서 손가락질하며 말했다."그러게 평소 조심하라고 했잖아. 남예솜 따위가 뭐라고 그렇게 감싸고 돌아? 오죽하면 직원들이 시위하겠냐고!"부사장은 이를 악물고 아무 말도 못 했다. 사장은 그의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강현이라는 자식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깔끔하게 처리해."강현과 방세성은 근처의 호프집으로 와서 밥을 먹고 있었다. 방세성은 그와 서로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강현 씨는 기적이야. 만약 강현 씨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절대 시위할 생각을 못했을 거야."'나'의 힘은 적지만 '우리'의 힘은 강하다. 강대한 자본가를 상대로도 마찬가지였다.기자를 불러 모은 것도 강현의 계획 중 하나였다. 게다가 생방송도 하고 있어서
방세성은 강현을 힘껏 밀쳤고, 강현은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귀를 찌르는 브레이크 소리와 무언가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세성이 방금 전까지 서 있던 곳에는 신발 한 쪽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지나가던 행인은 비명을 질렀고 사고 차량은 빠르게 도망갔다. 강현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피바다에 쓰러진 사람을 바라봤다....경찰서.강성연은 반지훈의 전화를 받고 재빨리 달려왔다. 강현은 힘이 빠진 채로 한쪽의 의자에 앉아있었다.경찰은 물잔을 내려놓다 말고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반 대표님!"반지훈은 경찰 앞으로 가서 상황을 물었다. 경찰은 그에게 사건의 자초지종을 말하기 시작했다.강성연은 강현의 곁으로 걸어가서 물었다."너 괜찮아?"강현은 덤덤한 듯 가만히 앉아있었지만 감정을 참고 있는 듯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강성연은 강현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현아...""그 자식들이 죽이려던 사람은 나야."강현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말했다."근데 왜 억울한 사람을..."강현은 방세성이 왜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구해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강성연은 강현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중한 사람을 눈앞에서 잃은 아픔을 위로할 만한 말은 없었으니까.반지훈은 설명을 듣고 나서 두 사람을 향해 걸어왔다."이제는 그 사람을 위해 복수해야지."강현은 멈칫하다가 머리를 들어 반지훈을 바라봤다. 반지훈은 강현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뭐든 해도 돼."강현은 늦은 시간에 홀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베란다로 나갔다.강현은 기분이 아주 복잡했다. 비록 그는 방세성과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도움을 받은 사람이었기에 고마운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맞는 일을 했을 뿐인 방세성이 이런 최후를 맞은 것은 자신의 탓인 것 같았다.'기억해, 우리는 앞으로 용감하고 당당한 사람으로 살아가자고.''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뭐
이율의 미소는 모든 것을 치유할 수 있었다."이율 씨."이율은 강현을 바라보며 물었다."왜요?"강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이율 씨는 진짜 이상한 여자예요.""제가요?"강현은 소리내서 웃었다.자신은 분명 진지하게 말했는데 갑자기 웃기 시작한 강현을 보고 이율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 우연히 머리를 돌려서 하늘을 봤다가 유성을 발견하고는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유성! 유성이 있어요!"강현은 이율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봤다.밤하늘 아래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베란다에 서 있었지만 마음의 거리만큼은 아주 가까웠다.며칠 후, 유성 엔터.방세성의 자리에는 하얀 국화꽃이 잔뜩 놓여있었다. 요즘 대부분 직원이 검은 옷을 입고 진지한 표정으로 출근했다.임원들의 패악과 방세성의 사고는 직원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줬다. 유성이 조사를 받는 와중에도 임원들은 오만한 태도를 일관했고, 성의 없는 사과를 입에 달고 책임 미룰 생각만 할 뿐이었다. 이유 없이 매장당한 남자 연예인과 사고로 죽은 방세성에게도 한 마디의 사과도 안 했다. 덕분에 직원들의 불만은 전례 없이 높아졌다.팍!한 직원이 사원증을 바닥에 내치며 말했다."저 못 해요! 저 사직할 거예요!"잠깐의 정적이 맴돌다가 다른 직원들도 연이어 사원증을 내쳤다."우리도 안 할래요! 유성은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직원들이 떠나려고 할 때, 부서 문을 지키고 있던 보디가드들이 길을 막아섰다. 부사장은 경직된 표정으로 걸어왔다."다들 뭐 하는 거지?""왜 나가지도 못하게 하는 거예요?""그러니까요! 진짜 너무 한 거 아니에요? 이건 불법이라고요."부사장을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정 가겠다면 막지는 않을게. 하지만 계약대로 사직하려면 회사에 15%의 위약금을 지급해야 하는 걸 잊지 않았겠지?"직원들은 수군수군 의논하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는 겁을 먹은 직원도 있었다. 이때 한 직원이 나서서 언성을 높였다."이건 사기예요! 저는 계약서에 사인할 때 위약금에 관한 조항을 못
부서의 한 여직원은 작은 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다른 직원도 희망을 잃은 듯 참담한 눈빛으로 가만히 있었다.같은 시각, 차 몇 대가 유성 엔터 아래로 와서 멈춰 섰고 수십 명의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내려와서 두 줄로 섰다.연희승이 뒷좌석 문을 열고 강현이 내려왔다. 그는 머리를 들어 유성 엔터를 바라봤다.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방세성의 마지막 모습이 재생되고 있었다."들어가요, 강현 씨. 반 대표님이 말씀하신 대로 무엇이든 다 해도 괜찮아요."연희승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강현은 심호흡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연희승은 법무팀과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과 함께 뒤따라갔다.그들은 바로 행정팀에 있는 사장실로 향했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보디가드는 순식간에 제압당했고 강현은 주저 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임원들은 마침 회의하느라 한데 모여있었다. 사장의 곁에 앉아있던 부사장은 강현을 보자마자 안색이 어두워졌다."너 이 자식이 어디서 감히..."부사장이 말을 채 하기도 전에 연희승이 법무팀을 데리고 나타났다.유성 엔터의 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미소 지었다."아이고, AM그룹의 연 비서님 아니십니까! 여기까지는 무슨 일이세요?"연희승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반 대표님께서 유성 엔터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하셔서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사장은 안색이 약간 변하며 말했다."그게 무슨 뜻이죠? 우리 유성은 AM그룹과 아무런 접점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마시죠.""지금 반 대표님이 쓸데없는 일에 참견한다는 뜻인가요?"연희승은 강현을 바라보며 말했다."강현 씨는 반 대표님의 처남입니다. 강현 씨의 일이 즉 반 대표님의 일이라는 뜻이죠."사장과 부사장의 안색은 확 어두워졌다. 누가 새로 온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반지훈의 처남일 줄 알았겠는가?연희승은 소파로 가서 앉더니 법무팀에서 준비한 자료를 꺼내 놓았다."여러분의 만행은 이미 조사를 끝냈습니다. 이 자료를 법원으로 가져간다면 아주 재미있는
임원들은 전부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강현은 외투까지 벗어 던지더니 한쪽에 있는 꽃병을 들고 부사장을 향해 걸어갔다. 부사장은 안색이 창백해서 뒷걸음질 쳤다."뭐... 뭐 하는 거야? 너 이거 명백한 폭행이라고!"강현이 꽃병을 쳐들 때, 사장이 큰 소리로 외쳤다."그만!"쨍그랑.유리로 만든 꽃병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꽃병은 부사장이 아닌 그의 뒤에 있는 벽에 부딪혔다. 하지만 부사장은 명중이라도 당한 것처럼 소리를 질렀고 바닥은 금세 흥건해졌다.부사장의 바지가 젖어가는 것을 보고 강현은 피식 웃었다."부사장님도 보이는 것처럼 배짱 있는 사람은 아니었네요."연희승은 어두운 안색의 사장에게 말했다."여러분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그는 양도서를 사장의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유성 엔터를 AM그룹에 양도한다는 양도서입니다. 물론 여러분의 만행은 법원에서 처벌할 겁니다. 만약 양도를 거절한다면 법원에서 다른 방식으로 강제집행 하겠죠."사장은 부사장을 죽어라 노려봤다. 일이 이렇게까지 된 이상 그는 타협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유성 엔터를 양도하면 후에라도 다시 회사를 차릴 수 있었지만, 법원에서 강제집행 당하면 다시는 회사를 차릴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되었으니, 기록이라도 덜 남기는 게 상책이었다.사장은 펜을 들어 양도서에 사인하고 도장까지 찍었다. 그러고는 임원들을 데리고 회사를 떠났다, 물론 아직도 정신 못 차린 부사장도 함께 데리고 말이다.고요한 사무실에서 난잡한 흔적만이 조금 전 일어난 일이 꿈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연희승은 강현의 곁으로 와서 양도서를 건넸다."유성 엔터는 앞으로 강현 씨 회사예요."강현은 양도서를 힐끗 바라보기만 할 뿐 받지는 않았다."이게 끝이에요? 한 짓에 비해 처벌이 너무 작지 않나요?"연희승이 웃으며 말했다."욱한 감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있어요. 반 대표님이 일 처리를 이렇게 한데는 다 이유가 있을 거라는 말이죠. 이런 일에서 용기는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