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요.” 원유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꽤 오랫동안 여기에 있어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김신걸 곁에만 아니라면 어디든지 다 좋으니까 괜찮아요. 그리고 여기 풍경이 좋아서 마음에 들어요. 그러니 표원식 씨, 내 걱정은 하지 마세요.” 그러자 표원식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말했다. “유희 씨, 그냥 계속 나를 교장이라고 불러요!” 그의 말을 들은 원유희는 망설였다. “괜찮아요, 이미 습관 됐어요.” 표원식은 그녀가 왜 망설이는지 알고 있었다. “네.” 표원식은 손을 들어 원유희의 얼굴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새하얗고 부드러운 피부가 손을 놓지 못하게 했다. 원유희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녀가 움직이진 않았지만 몸은 무의식적으로 긴장했다. 원유희가 표원식의 눈에 담긴 짙은 감정을 못 알아보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원유희를 부담스럽게 할 뿐이었다. ‘그렇게 많은 일을 겪었는데 어떻게 새로운 감정에 투입할 수 있겠어. 설령 표원식이 내 운명의 남자라고 해도 그렇게 할 수는 없어…….’ “교장선생님, 저…….” 원유희가 지금은 감정 따위 생각하기 싫다고 말하려고 하는데 다른 목소리가 들려와 이 애매한 분위기를 깼다. “여기는 내가 유희를 위해 마련한 곳이야. 네가 그녀를 보러 오는 건 괜찮은데 괴롭히는 건 절대로 안 돼.” 원유희는 얼굴을 돌려 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그녀는 김명화의 소리라는 걸 알아채고 그도 같이 온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위에 있어요.” 표원식이 말했다. 원유희가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 위에 날고 있는 드론을 보았다. 드론은 아무런 기척도 없이 빨간 불만 깜박이며 그들을 모두 화면에 담았다. 원유희는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그녀는 김명화가 드론을 조종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표원식, 손 놔라.” 김명화가 그에게 일깨워 주었다. 원유희는 다소 난감해하며 몸을 한걸음 물러서 표원식과 거리를 유지했다. 손을 놓은 표원식은 갑자기 나타난 김명화 때문에 화가
그는 사람들을 시켜 모든 출구를 지키고 있어 나오기만 하면 그들이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표원식이 몇 시간채 나오지 않고 있다. ‘설마 하루 종일 집에 있을 생각인가?’ 진선우는 직접 쳐들어가면 일을 망칠까 봐 핸드폰으로 김신걸에게 이 일을 보고했다. “쳐들어가” 김신걸이 음산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진선우는 즉시 다른 두 명의 경호원을 불러 정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담을 넘어 들어갔다. 평시에 싸움이 잦은 경호원들에게 이런 담장을 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담장에 뾰족한 유리조각이 붙어 있다고 해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표원식의 차는 아직 마당에 있었다. 경호원들은 차를 지나 집으로 들어갔다. 막 나오려던 나수빈 부부가 낯선 불청객을 보고 놀라서 소리쳤다. “누구세요? 여기는 개인저택입니다. 나가주세요.” “여기는 제성이 아니에요. 무단 침입하면 바로 사살할 수도 있다고요!” 표원식의 아버지가 가족사업이 망해서 충격을 받았지만 예전의 위엄은 그대로였다. 진선우는 표원식의 아버지가 경호원들을 막고 있는 걸 보고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우리는 김 대표님의 사람들이에요. 여기에 온 목적은 표원식을 만나 한 가지 확인할 게 있어서입니다. 그가 집에 있다는 것만 확인되면 저희도 아무도 건드리지 않고 떠날 거예요. 하지만 그가 집에 없다면 일이 복잡해질 겁니다.” 표씨 부부의 얼굴에는 갑자기 이상한 기색을 띠었다. 나수빈은 침착하게 말했다. “난 당신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원식이는 오늘 줄곧 집에서 쉬고 나가지 않았어요.” “여기에 와서 사업을 한다는 사람이 하루종일 집도 안 나가고 쉰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거 아닌가요?” 진선우는 경호원에게 눈치주며 말했다. “들어가서 찾아.” “당신들은 들어올 수 없어요!” 나수빈이 막았지만 아무래도 여자라서 그들을 막을 힘이 없었다. 진선우의 눈빛이 갑자기 매서운 빛을 띠더니 몸을 돌려 표원식의 아버지 곁에 가서 그의 총을 내렸
“그렇다면 우리 집에 무단 침입한 게 나 때문이라는 거야?” 표원식이 물었다. 그러자 진선우가 물었다. “멀쩡한데 왜 쉬어요? 이건 당신 스타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어젯밤에 잠을 잘 못 자서 정신 상태가 안 좋아서 그래.” 표원식은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그게 당신들이 여기로 쳐들어온 이유야? 김신걸의 사람이 여기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네. 끈질기기도 하지.” 표원식의 말속에 조롱이 섞여 있다. 진선우는 할 말을 잃었다. 왜냐하면 표원식이 집에 있으니 자기가 쳐들어온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김 사모님과 연락한다는 걸 들키지 마세요.” 진선우는 경고한 후 몸을 돌려 떠났다. 그러자 다른 경호원들도 따라 떠났다. 나수빈은 그제야 가슴을 움켜쥐고 다리가 나른해 소파에 앉았다. 표원식의 아버지는 매서운 눈빛으로 표원식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 원유희 만나러 갔어?” 그리고 나수빈을 보며 물었다. “당신도 알고 있고?” 나수빈이 말을 하지 않자 표원식의 아버지는 알아맞췄다는 걸 알아챘다. “당신 왜 그랬어?” 표원식의 아버지는 화를 냈다. 나수빈은 표원식을 바라보며 물었다. “넌 김신걸의 사람들이 널 감시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들은 발견하지 못할 거예요.” 표원식이 말했다. “그러니까 너도 안다는 거야? 알면서도 원유희를 만나러 가겠다는 거야?” 나수빈은 마음이 아팠다. 김신걸의 사람이 지키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그녀는 절대로 표원식이 그렇게 하지 못하게 했을 것이었다. “원유희 한 사람 때문에 집안 꼴이 어떻게 됐는지 좀 봐. 피노키오까지 없어졌는데, 너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온 식구가 다 죽어야 만족하겠니? 원식아, 너 언제부터 이렇게 후과를 고려하지 않고 일을 저질렀어? 원유희는 네가 건드릴 수 있는 여자가 아니야!” 표원식의 아버지는 분노했다. “여자 때문에 정신을 잃어 일의 경중을 구분하지 못하다니, 내가 널 그렇게 교육했냐?” “죽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어요.” 표원식
이때 원유희의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는 과도한 슬픔으로 인해 반응이 느려져서 벨소리가 거의 끝나려고 할 때 받았다. “왜 그게 김신걸의 수단이라고 하는 거예요? 명화오빠는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아이들은 분명히 어전원에 있어. 이건 모두 김신걸이 널 나타나게 하려고 부리는 수작이라고.” 김명화는 엄숙하게 말했다. “네가 나타나기만 하면 그의 함정에 걸려드는 거야.” 원유희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자기도 모르게 당황했다. “아이는 나한테 가장 중요한 존재예요. 내가 이런 결과를 보려고 도망친 것이 아니에요…….” 원유희는 울먹이며 말했다. “김신걸이 이런 수단을 쓴 이유가 바로 너의 이런 심리를 알기 때문이야.” 김명화는 정중히 원유희에게 당부했다. “유희야, 넌 절대로 나타나면 안 돼, 알았어? 반드시 침착해야 해. 겨우 도망쳐 나왔는데 지금 돌아가면 정말로 흑암에 빠져 아무도 널 도와줄 수 없을 거야.” “알아요…….” 원유희는 울어서 목소리가 쉬었다. “난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내 아이지만 그의 자식이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아. 아무리 독해도 자기 자식을 해치지는 않을 거니까 넌 안심하고 기다려.” 김명화에게 위로를 받은 후 원유희는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의 마음은 많이 가라앉았다. 그녀는 베란다로 걸어가 망연자실하게 먼 곳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맑은 눈동자에 눈물이 맺혔고 불빛에 비친 눈에는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김명화는 그녀에게 핸드폰을 보지 말라고 했다. 보지 않으면 영향받을 수 없으니까. 머릿속으로 이건 김신걸의 비열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원유희는 김명화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제성에 있는 아이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아직 그렇게 어린데, 어떻게 그런 상처를 받을 수 있겠어?’ 호랑이도 자기 자식은 해치지 않는다던데, 원유희는 김신걸의 이런 행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나타나게 하려고 온갖 수단을 다
“내가 항상 유희 씨 곁에 있을게요.” 표원식이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나한테 말해줘야 해요.” 원유희는 입술을 깨물며 눈을 떨구고 말을 하지 않았다. 전화를 끊은 후 원유희는 약간 멍해졌다. ‘표원식이 지금 내가 아이들의 일을 알고 있는지 떠보는 것 같아. 인터넷이 발달해서 소식을 아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야.’ 만약에 김명화가 원유희를 위로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틀림없이 참지 못하고 물어봤을 것이었다. 원유희는 서재로 돌아갔다. 서재의 책상 위에는 컴퓨터가 있었다. 그녀는 가지고 온 USB를 컴퓨터에 꽂고 안에 있는 동영상을 클릭하자 아이들의 부드럽고 작은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의 귀여운 소리를 들은 원유희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엄마 곁에 있을 때 그렇게 즐거워했는데, 난 그들을 포기하고 혼자 떠날 수밖에 없다니.’ 원유희의 마음은 칼로 찌르는 것같이 아팠다. 그녀는 어떻게 마음속의 아픔을 완화시켜야 하는지 몰라 그저 서재에 앉아 하염없이 동영상속의 세 아이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많이 저장해서 그녀는 보고 또 보았다. 원유희는 핸드폰을 멀리한 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미 한계에 도달한 것 같았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핸드폰 홈페이지에 들어가 제성의 뉴스를 검색했다. 아이들을 찾았다는 뉴스에 원유희가 기뻐하기도 전에 다음 뉴스가 그녀의 마음을 바닥으로 가라앉게 했다. ‘아이들을 찾았지만…… 중환자실에 들어가서 목숨이 위태롭다고?’ 원유희는 놀라서 손을 계속 떨었다. 얼굴색이 창백하고 혈색이 없어 입술색깔마저 옅어졌다. ‘이…… 이것도 김신걸의 음모일까? 그런데 아무리 음모라고 해도 어떻게 아이들을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어? 나라면 정말이 아니라고 해도 이렇게 말 못 할 텐데. 혹시…… 이게 정말 아닐까?’ 이때 드론이 베란다로 날아들어와 붉은 불이 반짝이며 방과 원유희를 비추었다. “유희야.”원유희가 얼굴을 들어 보니 드론 한 대가 방에 나타났다.
원유희는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눈물이 쏟아졌다. 그녀의 마음속엔 확실한 답이 생겼다. 그건 바로 무조건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네가 돌아간다고 해도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없어.” 김명화가 말했다. 원유희는 눈을 크게 뜨고 무언가가 생각난 듯 물었다. “그 말은…… 아이들이 정말로 사고가 났다는 말이에요?” “아직 확실하지 않은 일이니 더욱 진열이 흐트러져서는 안 돼.” 김명화의 목소리가 드론을 통해 차갑게 전해왔다. “김신걸이 너의 이런 심리를 아니까 그렇게 한 거야.” 원유희는 망연자실했다. “그…… 그럼 송욱을 찾아요! 그녀라면 알려줄 거예요. 이번에 도망갈 수 있었던 것도 다 그녀 덕분이에요.” “그건 좋은 생각인 것 같아.” “내가 전화할게요.” 원유희는 핸드폰을 들고 동작을 멈췄다. “내가 송욱의 전화번호를 기억 못 해서 교장선생님한테 물어봐야겠어요!” 원유희는 표원식에게 전화해서 전화번호를 물은 후 바로 송욱에게 전화를 했다. 송욱은 중환자실에서 세 쌍둥이에게 메스의 역할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세 쌍둥이는 작은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 열심히 듣고 있었다. 잠시 후, 조한이 물었다. “우리에게 공부시키려고 여기에 자라고 한 거예요?” 그러자 유담도 물었다. “아직도 오래 배워야 해요?” 상우도 따라 물었다. “우린 엄마가 보고 싶은데, 엄마는 어디에 갔어요?” 그들은 엄마가 왜 계속 사라지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송욱은 표정이 약간 변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아빠가 너희한테 말 안 해줬어?” “아빠가 엄마 출장 갔대요.” 유담이 말했다. “하지만 왠지 이상한 것 같아요.” 송욱은 세 아이가 너무 총명해서 속이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잘못 대답했다가는 세 아이의 의심을 살 것 같았다. “나는 단지 의사라서 사모님의 행방에 대해서는 몰라. 하지만 걱정하지 마, 사모님이 무슨 일이 있으면 내가 제일 먼저 알게 될 테니까. 내가 알게 되면 너희에게도 알려줄게.” 송욱은 아이들에게
지금 제성의 모든 언론에서 세 쌍둥이의 일을 보도하고 있어서 이미 국제뉴스로 변했다. 일이 커져갈수록 원유희를 도와줬던 송욱은 걱정되기 시작했다. ‘만약 김신걸에게 원유희를 도와줬다는 걸 들키게 된다면, 의료계에서 봉쇄당하는 건 둘째치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래서 송욱은 애초에 한 일을 후회하며 원유희가 나타나지 않기를 바랐다. 순간적으로 마음이 약해져서 김신걸을 배신했는데 일이 점점 커지니 송욱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이때 주머니 속의 핸드폰이 울렸다. 송욱은 낯선 번호를 보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송 선생님, 저예요.” 원유희의 다급한 목소리가 핸드폰으로 들려왔다. 송욱은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김신걸이 바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심지어 김신걸의 차가운 시선이 자기를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순간 송욱은 가슴이 무너질 것 같았다. “어느 환자야?” 송욱은 재빨리 반응해서 물었다. 원유희는 송욱의 말을 듣고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채고 손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고 감히 숨도 쉬지 못했다. 왠지 숨만 쉬어도 김신걸에게 들킬 것 같았다. “알았어, 지금 갈게.” 송욱은 몇 초 동안 멈췄다가 말했다. 그리고는 전화를 끊고 돌아서서 평온한 표정으로 김신걸에게 말했다. “김 대표님, 저는 환자를 보러 이만 가볼게요.” 밖으로 나간 송욱은 그제야 긴장이 풀려 길게 숨을 내쉬면서 병실로 갔다. 환자를 보러 간다고 했으니 일이 없어도 한 번 가야 했다. 환자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송욱은 화장실에 들어가서 핸드폰을 꺼내 방금 전화 왔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송선생님, 방금…….” 원유희는 그 남자의 이름을 부르기도 두려웠다. “방금 김신걸이 옆에 있었어요.” “그가 병원에 있어요? 그럼…… 아이들이 정말로 사고가 난 건가요?” 원유희는 그것을 확인하고 싶어서 전화한 것이었다. 김신걸도 병원에 있다는 말을 들은 원유희는 그 언론들이
‘김신걸은 왜 날 놓아주지 않는 걸까?’ “됐어요, 그만 얘기해요. 김 대표님이 아직 병원에 있어서 너무 오래 통화하면 의심받을 거예요.” “네.” 원유희는 서둘러 전화를 끊고 무기력하게 의자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 아이가 무사하다고 하니 그녀는 초조했던 마음을 놓았지만 송욱의 말이 그녀를 안절부절못하게 했다. ‘죽어도 포기하지 않는다니…….’ 그 말은 저주처럼 원유희의 마음을 조여와 숨이 막히게 했다. ‘왜 꼭 나여야만 하는 거야? 김신걸의 곁에는 윤설도 있잖아.’ 송욱이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누군가가 노크를 했다. 들어온 사람은 윤설이었다. 그녀는 처음 찾아온 게 아니었다. 윤설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송욱이 먼저 말했다. “윤설 씨, 아무리 찾아와도 난 당신을 중환자실에 데리고 갈 수가 없어요. 그러니 날 찾아와도 소용없어요.” 윤설은 사 온 물건을 송욱의 책상 위에 놓고 말했다. “송 선생님이 오해하셨어요. 나는 단지 아이들에게 물건을 전달해 주러 온 거예요. 그들이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송욱은 책상 위에 놓인 영양품과 아이들이 놀기에 적합한 여러 가지 장난감을 보고 말했다. “물건은 전달해 줄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윤설은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더 이상 귀찮게 굴지 않고 떠났다. 송욱이 중환자실로 갈 때 마침 김신걸이 나왔다. “김 대표님, 윤설 씨가 아이들의 선물을 가져왔는데 가지고 들어갈까요?” “버려.” 김신걸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바로 갔다. “네.” 윤설은 간다고 하고 주차장의 롤스로이스 옆에서 기다렸다. 김신걸의 그림자를 본 그녀는 슬픈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신걸 씨, 아이들은 괜찮아? 너무 걱정돼서 왔어. 하지만 중환자실은 병균을 데리고 들어갈까 봐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고 해서, 나한테 알려주면 안 돼? 알면 마음이라도 놓일 것 같은데.” “상태 안 좋아.” 김신걸은 차갑게 말했다.“아…….” 윤설이 놀라서 소리 지르더니 김신걸을 위로했다. “걱정
육성현은 흠칫 놀랐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그래? 혜정아, 다 오해야. 나 지금 다 고쳤어. 진짜야, 어서 내려와. 물만두가 식겠다.”“오지 마!”엄혜정은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쳤다.“다가오면 뛰어내릴 거라고 얘기했어!”“그래, 안 갈게.”육성현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혜정아, 진짜야.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우선 먼저 내려와. 내려오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다 오해야.”“사실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냥 유희의 말이 날 깨닫게 했을 뿐이야.”엄혜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육성현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근데 나 지금 다 알게 됐어. 증거는 없지만 넌 김하준이잖아. 난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 네가 달라질 거라 기대했어. 근데, 넌 어떻게 네 아이의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어? 김하준,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세상에 어떻게 너 같은 괴물이 다 존재해?”“혜정아, 내려와서 천천히 얘기하자, 응? 거긴 너무 위험해.”“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기분을 모르지? 너도 한번 느껴봐야 해.”엄혜정은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안돼!”육성현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하지만 엄혜정의 옷자락도 미처 잡지 못했다.그는 엄혜정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밑에 서 있던 하인 중 그 누구도 엄혜정을 받아내지 못했다.“다 죽일 거야!”육성현은 미친 듯이 달려갔고, 눈에 거슬리는 하인들을 모조리 걷어차 버렸다. 그는 엄혜정 옆으로 기어가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혜정아, 혜정아. 병원에 데려다줄게. 아무 일도 없을 거야!”엄혜정은 눈을 떴다. 그녀의 머리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초점이 점차 사라지는 눈으로 육성현을 바라보았다.“김하준, 다음 생이 있다면, 난 다시는 널 만나지 않을 거야…….”이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엄혜정은 숨을 끊게 되었다.“그래, 만나지 마,
퇴원한 후, 엄혜정은 방에 혼자 남았을 때 원유희에게 연락했다.“유희야, 괜찮아? 김명화가 널 납치했다고 들었는데, 구출됐다고?”“응, 괜찮아. 지금은 집에 도착했어.”“다행이다.”원유희는 그녀의 정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부모님이 돌아가신 일 말이야. 나 다 알게 됐어.”원유희는 순간 멈칫했다.‘다 알았다고?’“미안해 혜정아, 숨기는 게 아니었는데.”“괜찮아, 나랑 아이를 생각해서 숨긴 거잖아.”엄혜정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네가 김명화를 죽였어?”“아니. 그날에 크루즈에서 김명화가 도망쳤거든. 우리가 김명화를 찾았을 땐 이미 주검으로 됐어. 그 주검도 바다에서 건져낸 거야.”“육성현도 있었지?”“응, 얘기해줬어?”엄혜정은 덤덤하게 물었다.“육성현을 의심해 보지 않았어?”원유희는 흠칫했고 아무런 얘기도 할 수가 없었다.“김명화를 죽인 사람,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죽인 사람 말이야…….”“그럴 리가?”원유희는 당황했다. 그녀는 엄혜정이 왜 육성현을 의심하게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무슨 단서라도 발견한 거야? 아니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유희야, 저 사람 진짜 육성현이 아니잖아. 김하준이라고. 나 그 사람 잘 알아.”엄혜정은 목이 메였지만 울먹이면서 끝까지 말했다.“난 그 사람 고칠 줄 알았어,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혜정아, 아직 조사하고 있어.”“그럼 너희들도 육성현을 의심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맞지?”“오해일 수도 있어.”“오해일 리가 없어.”엄혜정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자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그리고 시체처럼 무기력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엄혜정은 서재에서 나온 육성현을 보면서 얘기했다.“나 물만두 먹고 싶은데, 사다 줄래? 예전에 빈민가에서 자주 사주던 물만두 말이야.”“그래.”육성현은 엄혜정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먼저 우유 좀 마시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육성현은 엄혜정을 끌어안았다.“김명화가 죽었대. 복수한 셈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네가 무사히 지내야 장인어른 장모님이 안심하시지 않겠어? 침착해.”엄혜정은 울면서 그의 품에 쓰러졌다.그러고는 배가 간간이 쑤시자, 엄혜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렀다.육성현은 그녀의 상황을 바로 눈치채고 기사에게 소리쳤다.“얼른 병원으로 가!”“얼른!”염민우도 재촉했다. 그는 얼른 엄혜정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의 손이 얼음처럼 차갑다는 것을 발견했다.“누나, 아직 나도 있잖아. 그러니까 아무 일도 생기면 안 돼. 누나, 꼭 버텨줘.”엄혜정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그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난 부모님을 가질 자격이 없는 걸까……?’엄혜정이 깨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병원에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만졌다.육성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금 안정을 취해야 한대.”엄혜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민우는?”“밖에 있어. 너무 걱정되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엄혜정은 육성현의 손에서 자기 손을 뺐다.“두 사람 너무해. 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나한테 숨길 수가 있어? 평생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육성현, 우리 부모님의 목소리를 합성해서 나랑 통화하게 했어? 네 아이디어지? 넌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혜정아,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너한테 알려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네 옆에는 나랑 아이가 있고, 민우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너밖에 없어. 너한테도 무슨 일이 생기면, 민우는 더 고통스러워질 거야.”엄혜정은 말을 하지 않았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엄혜정도 염민우가 더 고통스러워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엄혜정은 염민우가 갑자기 엄청나게 말라갔던 것이 생각이났다. 엄혜정은 염민우의 일이 바쁜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염민우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울지 마. 의사가 지금은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
“알았어요…….”염민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입구에 서 있는 엄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누…… 누나. 여긴 어쩐 일이야?”엄혜정은 멍하니 거기에 서서 염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얘기하고 있던 사람을 봤다.“하늘나라라뇨? 저희 부모님이 왜 하늘나라에 계셔요?”“아니야,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고 있었어.”엄혜정은 두 사람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엄혜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핸드폰을 못 찾자 바로 차로 뛰어갔다.“누나!”염민우는 엄혜정을 쫓아갔다.“뭐 하려고 그래?”“엄마 아빠한테 전화할 거야.”“지금 여행 중이시니까, 방해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엄혜정은 그를 보면서 물었다.“사실대로 얘기해줘. 엄마 아빠 왜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거야? 거짓말하지 마! 사실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임신했는데 엄마랑 아빠가 계속 안 오시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두 분 무슨 일이 생긴 거 맞지?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염민우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 참고 말했다.“더 이상 묻지 마…….”“염민우! 계속 우물쭈물 얘기 안 하면, 나 이젠 널 안 봐!”염민우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집에 오는 게 아니었어, 그나저나 아저씨는 왜 또 그런 허튼소리를 해서 참…….’“맞아, 누나 임신 3개월쯤 되었을 때,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셨어.”엄혜정은 몸이 휘청거렸다. 염민우는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침착해요! 엄마랑 아빠는 누나가 무사하기를 원하셨을 거야. 난 누나가 못 받아들일 것 같아서 장례식 때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어.”엄혜정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염민우를 바라보았다.“너 이러고도 내 친동생이 맞아? 어떻게 안 알려줄 수가 있어! 아기만 중요하고 부모님은 안 중요할 것 같아? 너…….”너무 충격 받은 엄혜정은 눈앞이 점점 캄캄해지더니 기절을 하고 말았다.“누나!”
육성현이 다가와 물었다.“유희야, 괜찮아?”원유희는 고개를 저었다.“너 안색이 안 좋은데, 왜 그래?”“김명화가 죽었어요.”김신걸이 얘기했다.“해독제는 찾았어요?”원유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쉽네. 그럼 감염된 사람들은 우선 좀 참아야겠어.”원유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나 바로 김신걸을 밀쳤다.“날 만지지 마!”육성현은 그제야 원유희의 볼 아래의 병변 부위를 발견했다.“유희야, 김명화가 너한테도 독을 썼어?”김신걸은 미간을 찌푸렸다.“상관없어.”“안돼. 우리 둘다 아이들하고 접촉하지 않으려 한다면 애들이 걱정할 거야.”원유희는 거절했다.김신걸은 줄곧 원유희와 스킨쉽이 있었다. 원유희는 그도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방금도 널 안았는데, 감염되면 진작에 감염됐어.”김신걸이 말했다.원유희는 그래도 싫었다.“아니, 그래도 만지지 마.”해독제도 못 가진 상황에 김명화는 의문스럽게 죽었다. ‘여기 김명화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지?’김신걸은 김명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바다에 던질 일은 더더욱 없었다.그럼 분명 다른 사람이 한 짓이었다.‘무슨 목적으로? 김신걸도 감염되면 배후의 사람을 어떻게 잡아내지?’‘다른 조직의 사람도 이곳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원유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내려가자.”김신걸은 원유희의 말대로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원유희가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떠날까 봐서 걱정이었다. 김신걸은 더 이상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원유희는 김신걸을 따라 떠났다.육성현은 먼 곳에 있는 김명화의 시체를 봤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이제 아무도 김명화를 죽인 사람이 육성현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엄혜정은 이미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지금 어떠한 사고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육성현은 잠깐 해독제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후 다시 생각하려 했다.엄혜정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배는 이미 많이 나
김명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진선우는 킬러들과 격투하고 있었고, 매번 그들의 치명적인 곳을 공격했다.진선우가 실력이 없었다면, 킬러들은 진작에 그를 해결했을 것이다.김명화는 무엇을 깨닫고 손을 돌려 원유희를 잡으려 했다.원유희는 후퇴하는 동시에 다른 힘에 의해 품에 안겼다.“이거 놔!”원유희는 낯선 남자인 줄 알고 발버둥 치려 했다.“유희야.”원유희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고, 익숙한 얼굴을 보자 아주 기뻤다.“김신걸?”“나야.”김명화는 서로 애틋한 두 사람을 보자 화가 더 났다.“원유희, 역시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긴 사람, 너였어.”김명화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쪽이 너무 방심한 탓이죠.”‘내가 예전에 김신걸의 곁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일이 김명화에게 착각을 준 거야?’“왜, 날 죽이려고? 네까짓 게?”김명화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다른 출구로 달려갔다.하지만 경호원들은 이미 그곳에 서서 그를 막았다.김명화는 총을 꺼내 쏘자, 한 경호원은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경호원은 얼른 옆으로 비켜 숨었다.일반인들은 그 출구를 포기했을 것이다. 김신걸의 사람들이 숨어있었기에, 그 출구는 아주 위험했다.하지만 김명화는 기어코 사격을 하면서 길을 텄다.안에 숨어 있던 경호원들은 피하면서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경호원들의 반격에 김명화는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그러다가 몇발 더 쏘고는 바로 달렸다.김명화는 크루즈에 오래 있었다. 하여 갓 크루즈에 올라온 김신걸의 사람들보다 이곳을 훨씬 더 잘 알았다.몇 개의 모퉁이를 돌면 은폐하기 적합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김명화는 다시 부하들에게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제야 김명화는 김신걸의 사람들이 진작에 올라왔고, 자기 쪽 부하들은 아마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도망치지 못한다면 김신걸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김명화는 죽어도 김신걸에게 잡히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갑자기 한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김명화는 본능적으로 총을 들었다
원유희는 지금 약 때문에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크루즈 곳곳에는 CCTV가 있었다. 방에 들어올 때, 그 윗부분에 CCTV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몰래 뭔가를 찾아보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김명화는 일찌감치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원유희는 떠나기 전에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겨주었기에 그가 곧 이곳을 찾아올 거라 믿었다.다만 김신걸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날이 밝는 무렵, 원유희는 헬리콥터 소리를 들었다.이어 문이 펑 하고 열렸고, 원유희는 반응하기도 전에 멱살이 잡혔다.“연락을 어떻게 한 거야?”말을 마치고 원유희의 몸을 수색하려 했다.“아! 미쳤어요? 나 핸드폰 없어요!”“김신걸이 왔다고 널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가더라도 널 끌고 갈 거야. 가자!”“아니…….”원유희는 힘 없이 밖으로 끌려 나갔다.김명화는 원유희를 다른 방으로 보냈다.“우린 여기서 김신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원유희는 고개를 들어봤다. 입구에는 많은 폭탄이 놓여있었다.그걸로 부족한지 김명화는 원유희의 몸에 폭탄을 묶었다.“미쳤어요?”김명화는 원유희의 얼굴을 꽉 쥐었다.“김신걸이 널 어떻게 구할지 구경이나 하려고 그런다.”원유희는 마음이 매우 불안했다.‘김신걸이 왜 이렇게 왔을까? 너무 눈에 띄잖아.’다시 들어보니 이미 헬리콥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밖에는 다른 인기척도 없었다.한 남자가 와서 말했다.“헬리콥터가 지나갔어요. 그냥 순찰하다가 지난 것 같아요.”김명화는 멍하니 서 있었다.원유희는 그를 비웃었다.“저 소리에 이렇게까지 놀랐단 말이에요?”“닥쳐!”김명화의 표정은 엄청나게 나빴다.“난 신걸이랑 아이들이 감염되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연락하지 않을 거고요. 배고픈데 이 폭탄들이나 좀 뜯어줄래요?”김명화가 경각심을 낮추었을 때, 크루즈 밑에서 잠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10명 좌우로 보이는 사람들은 갈고리를 가드레일에 던지고 밧
원유희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김명화가 갑자기 뒤에서 무슨 짓을 할까 봐, 원유희는 그를 등지고 누울 수가 없었다.“너 기억나? 어릴 때 김신걸이 널 괴롭히면 넌 우리 집에 달려와서 내 침대에서 잤잖아.”“기억 안 나요.”“기억하는 거 다 알아. 난 그때 정말 널 도와주고 싶었어.”원유희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반박하지 않았다.그녀는 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이전의 김명화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요.”김명화의 표정은 어두워졌다.“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죠? 죽어서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원유희는 지금의 김명화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아무리 유년 시절이 불행해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낙으로 삼으면 안 되죠!”“정말 고상한 척하네. 김신걸은 사람은 죽인 적이 없대? 육성현은 없대? 왜 걔네들이 사람을 죽인건 용서하면서, 난 용서하지 못하는 건데? 그 사람은 네 남편이고 네 가족이니까? 비겁하고 이기적인 건 너도 마찬가지야.”“참, 너도 사람을 죽였잖아. 네가 죽인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누군가의 아들이야.”원유희는 기분이 착잡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명화는 원유희의 반응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그러니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쉽게, 편하게 살자.”“이렇게 예전의 저질렀던 일을 합리화하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명분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요?”원유희는 김명화를 바라보면서 물었다.“당신을 용서하기 싫은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까지 자기의 잘못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요? 차라리 해독제를 그냥 줘요. 시장에 유통하지 말고요. 그러면 예전에 있었던 일은 없던 거로 할게요.”“정말?”김명화는 원유희를 보면서 물었다.“물론이죠.”원유희는 김명화의 말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그래. 해독제를 줄 수 있어. 근데 대신 넌 나랑 평생 같이
“밥 안 먹으면 너만 손해야.”김명화는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맞네,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무슨 힘으로 김명화를 상대하겠어?’잠시 후, 납득이 간 원유희는 젓가락을 들고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김명화는 그녀가 고기를 입에 넣는 것을 보고 물었다.“어때?”“설마 그쪽이 한 거예요?”원유희는 귀찮다는 듯이 그를 한번 힐끗 쳐다봤다.“맞아, 내가 직접 했어.”‘이게 뭐 자랑할 일인가?’“수고했네요,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니.”“내가 힘들 것 같으면 같이 할까?”“할 줄 모르는데요.”“정말 상전 팔자구먼.”김명화는 원유희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원유희는 김명화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원유희는 김명화가 자신을 괴롭히고, 김신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줄로 알았다.근데 직접 밥도 해줄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설마 요리에 무슨 수작을 부린 거 아니죠?”원유희는 젓가락을 멈추었다.김명화는 손에 있는 젓가락을 흔들었다.“나도 먹고 있잖아.”“먼저 해독제를 먹었겠죠.”“그런 거 아니야.”“그럼 내가 묻힌 진물은? 그건 어떻게 해결한 거죠?”원유희가 물었다.“해독제가 있으니까 괜찮은 거잖아요.”“해독제 가지고 싶어?”“줄 생각은 있고요?”“착하면 줄게.”원유희는 의심스러웠지만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금방 왔으니 당장 해독제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여 원유희는 일단 참고 해독제를 발견하면 김명화를 바로 제압하는 것을 선택했다.밥을 다 먹고 나머지는 부하가 다 치웠다.“같이 샤워할까?”김명화가 물었다.원유희는 그를 차갑게 보며 말했다.“아니요. 먼저 씻어요.”원유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원유희는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침착하자고 했다. ‘근데 자는 건 어떡하지? 정말로 같이 자야 해?’원유희는 침대를 봤다. 두 사람이 자고도 넉넉한 침대였고, 중간에 뭘 놓을 수도 있었다.김명화가 만약 자기 몸에 손을 대면 원유희는 같이 죽을 각오도 했다.10여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