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황에서 젓가락 하나만 더 보태면 될 일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육성현밖에 없을 거야.’ “그럼 그녀는 무슨 신분으로 여기에 앉아서 식사를 하는 거야?”염정은이 물었다.“당신의 애인? 성현 씨, 이건 너무 모욕적인 거 아니야?”“당신들이 이 여자를 데리고 오지 말라고 한 적이 없지 않습니까?”육성현은 식사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물었다.모든 사람들은 육성현의 논리에 말문이 막혀 뭐라고 하지 못하고 속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조영순은 바로 진정하고 말했다.“기왕 왔으니 다 털어놓고 얘기하자. 성현 씨, 당신이 염가와 혼인을 취소한 게 이 여자 때문이야?” 육성현은 귀찮아서 대답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답은 이미 뻔했다.그러자 조영순이 말했다.“당신 웃기려고 그런 거지? 빈민가의 여자를 위해 염가랑 맞서겠다? 당신이 정말로 육가의 후계자가 될 자격이 있는지 의심되네.”육성현은 손에 유리잔을 들고 천천히 돌리면서 매섭고 차가운 눈으로 조영순을 바라보며 물었다.“혜정 씨가 수술대에 올랐을 때 당신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이 일부터 설명해 주시겠어요?”조영순은 엄혜정을 바라보았다.사실 그녀는 그날 밤 폭로될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육성현이 고작 애인 하나 때문에 염가와 적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지금 보니 육성현이 보통 흐리멍덩한 게 아니었다. ‘공공연히 엄혜정을 데리고 와 염가를 도발하다니.’하지만 조영순은 눈 깜박할 사이에 전략을 바꿨다.“이 일은 확실히 우리가 잘못했어. 그래서 사과하는 의미로 엄혜정을 의녀로 삶고 싶은데…….”이 말이 나오자 눈동자만 조금 흔들린 육성현을 제외하고는 모두 놀란 표정이었다.“숙모, 그게 무슨 뜻이에요?” 염정은은 첫 번째로 나서 싫은 말투로 물었다.‘장난해?’‘엄혜정을 염가의 의녀로 삼다니. 그렇게 되면 빈민가의 여자가 나와 대등하게 되는 거잖아?’조영순은 그녀에게 조급해하지 말라는 눈빛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은혜를 베푸는 눈빛으로 엄혜정을 바라
그녀가 거절하기도 전에 염정은의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러게요, 다른 사람은 몇 생을 구걸해도 이런 좋은 일이 있을까 말까 한데, 당신이 이런 복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우리 숙모의 의녀가 됐으니 당신도 눈치가 좀 있어야죠. 얼른 숙모에게 차를 따르고 권하세요.”하지만 엄혜정은 움직이지 않았다.그러자 육성현이 입을 열었다.“가서 차 따라드려요.”이 건 엄혜정이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잘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말이었다.그녀는 감정을 참으며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나는 염가와 아무런 관계도 맺고 싶지 않습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조영순이 그녀를 의녀로 삼겠다고 한 말이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만 그녀의 대답은 그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엄혜정이 거절하다니?’염정은은 화가 나서 책상을 칠 번했다.“엄혜정 씨, 정말 그쪽이 뭐라도 된 줄 아세요? 뻔뻔스럽게 굴지 마세요.”그러자 엄혜정이 반박했다.“나는 이런 요구를 한 적이 없습니다.”“아, 이제야 알겠네요. 혜정 씨는 성현 씨한테 빌붙어 떨어지지 않으려는 거죠?”염정은은 단호하게 말했다.“하지만 지금 아이도 없어졌는데 뭘 가지고 빌붙으려고요?”설상가상이라고 아이를 언급하니 갑자기 이상하고 위압적인 분위기로 변했다.갑자기 옆에서 컵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와 모든 사람들이 놀라 육성현을 바라보았다.육성현이 들고 있던 수정컵이 그의 손에서 깨졌다. 컵 안의 물이 사방으로 튀었고 그의 손은 조각에 베어 피를 흘리고 있었다.정말 보기만 해도 아파 보였다.“성현 씨, 괜찮아?”염정은은 관심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병원에 갈까?”육성현은 듣지 못한 것처럼 얼굴을 돌려 무서운 눈빛으로 말했다.“차를 권해요!”엄혜정은 마음속의 공포를 참고 떨리는 목시리로 말했다.“…… 왜 나를 핍박하는 거예요? 내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육성현의 목소리는 끔찍할 정도로 차가웠다.“혜정 씨, 내 인내심이 별로 남지 않았어요.”엄혜정은 이를 악물고 일어나 조영순의 앞
그리고 찻잔을 받아서 한 모금 마셨다.엄혜정이 손을 내렸을 때 시큰해서 떨릴 정도였다.그녀는 조영순이 자기한테 잘 대해 줄 것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건 누가 들어도 반말이었기 때문이다.조영순은 컵을 내려놓고 말했다.“됐어, 너도 이제 일어나. 방금 유산했는데 병근이 남지 않도록 몸조리 잘 해지.”그녀는 일부러 엄혜정을 난처하게 하려고 말한 것 같았다.엄혜정보고 염군에게 차를 권하게 할 뜻도 전혀 없었다.단지 그녀가 의녀를 삼는 거지 염가와는 무관한 일 같았다.엄혜정이 일어날 때 무릎이 뻣뻣해져 하마터면 똑바로 서지 못할 뻔했다.육성현의 옆자리에 돌아와 앉은 그녀의 얼굴은 아픈 듯이 창백했다.조영순이 자연스럽게 수술얘기를 넘기자 육원산이 기회를 봐서 말했다.“차도 마시고, 엄혜정을 의녀로 받아들였으니 오늘은 참 좋은 날이네요. 언론의 일은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이 건 모든 사람을 곤경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한 말이었다.그러나 육성현은 웃으며 신사적인 말투로 말했다.“나보고 한 입으로 두 말하라고요? 그러면 앞으로 누가 내 말을 믿겠어요?”‘맞는 말이지만,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 구분이 안되나?’“안돼, 혼인 약속은…….”육원산은 계속 말하려고 했다.하지만 육성현이 말을 끊었다.“천천히 드세요. 나는 일이 있어 먼저 일어날게요.”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반박할 기회를 주지 않고 떠났다.남아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엄혜정은 따라나갔다.그들이 떠나자 육원산과 염가의 얼굴색이 말이 아니었다.육성현은 이미 염가와의 혼인을 취소하기로 마음먹었다.“나 진짜 파혼당하는 거야?”염정은은 분노를 참지 못하며 말했다. 그녀는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그러자 육원산이 그녀를 위로했다.“정은아, 조급해하지 마. 아저씨가 성현이보고 말을 거두라고 할게. 넌 우리 육가의 며느리야. 이 일은 누구도 개변할 수 없어.”“그땐 성현 씨보고 공개적으로 저한테 사과하라고 하세요.”염정은이 요구했다.“당연히 그래야지!”육원산은 염
선홍색의 혈흔은 마치 대동맥을 피부에 찍은 것 같았다. “이틀 후에 내가 널 염씨 저택에 데려다줄게.” 엄혜정은 눈을 부릅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눈에 눈물이 가득 차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육성현, 네가 어떻게…….” “조영순의 수양딸이 되었으니 아무래도 정을 쌓아야겠지. 며칠만 거기 있으면 내가 다시 데리러 갈게. 응?” 육성현의 목소리는 화가 난 아이를 달래는 것 같이 부드러웠다. 엄혜정은 이를 악물고 증오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육성현, 너 가서 죽어! 죽으라고!!” “걱정 마, 죽어도 널 끌고 함께 지옥에 갈 거니까!” 육성현은 말하면서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물어뜯었다. “윽!” 엄혜정은 머리가 저리도록 아파와 힘껏 발버둥 쳤다. 하지만 육성현은 사냥물의 치명적인 부위를 물어서 평온해지게 만드는 실성한 짐승 같았다. 엄혜정은 욕실에 서서 거울 속의 자신을 보았다. 화려하고 정교한 옷차림. 하지만 입술은 부어있었고 얼굴부터 목까지 온통 핏자국으로 뒤틀려 지옥에서 기어 나온 귀신처럼 보였다. 엄혜정은 마치 경기를 일으킨 것처럼 당황해서 물로 자신의 얼굴, 목, 손을 씻고 또 씻었다. 하지만 아무리 씻어도 피비린내가 나는 것 같았다. “아아아아악!!” 엄혜정은 자신의 목이 다치든 말든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작은 거울 뒤의 감시 카메라를 뜯었다. 그것도 모자라 침실로 달려가 카메라를 찾다가 선이 이어진 곳은 모두 뜯었다. 카메라를 세 개밖에 뜯지 않았을 뿐인데 엄혜정은 온몸의 힘이 다 소모된 것 같아 옆의 카펫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감시카메라를 뜯은 걸 육성현이 알아도 상관없어. 난 남은 게 이 천한 목숨뿐이라 무서울 게 없으니까…….’ 감시카메라가 파괴되었는데 육성현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틀 후, 육성현의 수하가 차를 몰고 와서 말했다. “육 대표님이 염씨 저택에 데려주라고 합니다.” 엄혜정은 그들의 힘에 못 이겨 차에 올라탔다. 차는 별장
“누가 왔어요?” 방금 일어난 염정은은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그러자 채 아주머니가 말했다. “모르겠어요. 잘못 찾아온 건지.” 염정은은 엄혜정을 보더니 자신이 엄혜정보다 지위가 높은 듯이 그녀를 바라보며 지적하듯 말했다. “엄혜정? 그런데 오면 왔지, 우리 집 거실을 이렇게 더럽히면 어떡해?” “둘째 부인께서 집안이 어지러워지는 걸 가장 싫어하는데, 이걸 보시면 화내실 거예요.” 채 아주머니가 말했다. “엄혜정, 만회할 기회를 줄 테니. 바닥을 깨끗하게 닦아.” 염정은은 가정부에게 명령하듯 엄혜정에게 말했다. 그는 엄혜정이 대답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 것을 보고 물었다. “왜? 하기 싫어? 너 염씨 가문의 사람이 되겠다며? 우리 숙모가 널 그렇게 좋아하는데 이것도 못해? 네가 안 하면 내가 사람 시켜서 널 꾹 눌러서 하라고 할 거야.” 염정은은 말을 마치고 허리를 비틀며 갔다. 채아주머니는 손에 들고 있던 대야와 걸레를 바닥에 놓고 말했다. “얼른 해! 너 설마 호강하려고 여기 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엄혜정은 육성현 때문에 모욕당하러 온 거지 복을 누리러 온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녀가 모욕을 당하지 않는다면 육성현이 만족스러워하지 않을 거니까……. 그녀는 머릿속으로 생각한 후 몸을 웅크려 걸레로 바닥의 물을 닦기 시작했다. “깨끗이 닦아, 깨끗하지 않으면 내가 만족할 때까지 계속 닦아.” 채아주머니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감히 우리 아가씨를 괴롭히다니, 거울을 봐, 네까짓게 그럴 자격이나 있다고 생각해?” 엄혜정은 채아주머니라는 사람이 염씨 저택에서 지위가 높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오늘 여기 온다는 걸 염씨 저택의 사람들이 모를 리 없어. 일부러 내 앞에서 연기해서 위세를 떨치려는 것뿐이야.’ “여기에도 있잖아! 눈이 머리 위에 달렸니?” 채아주머니는 발로 바닥을 찍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발로 엄혜정의 손가락을 밟았다. “아…….” 엄혜정은 아파서 얼굴색이 변했다. 그녀가 손가락을 빼내
염군은 밖에서 접대가 있기 때문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그래서 식탁의 주인은 조영순과 염정은뿐이었다. 조영순이 말했다. “음식이 다 나왔으니 앉아서 먹자!” 자기한테 말한다는 걸 알아챈 엄혜정은 다소 의외였지만 거절했다. “감사합니다. 저는 좀 늦게 먹을게요.” 그녀는 진작부터 가정부노릇하러 온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로 손님대접받을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앉으라면 앉아, 우리 숙모의 말을 무시하는 거야?” 염정은이 그녀를 무시하며 말했다. 그녀는 육성현이 대체 엄혜정의 어디를 좋아하는지 알 수 없었다. 엄혜정은 의자에 앉았다. 다른 가정부들이 그녀에게 그릇과 젓가락을 가져다주었다. “감사합니다.” 염정은은 엄혜정이 고맙다고 하자 얼굴에 경멸의 기색을 드러냈다. ‘가정부에게 고맙다니, 누가 천하다는 걸 모를까 봐 그러나.’ 엄혜정이 음식을 한 젓가락 먹자마자 조영순이 말했다. “내일부터 하루 세 끼는 모두 네가 책임져.” 엄혜정은 멍해졌다. “나 혼자요?” “그럼 뭐 밥 먹이려고 데리고 온 줄 알아?” 조영순이 되물었다. 엄혜정은 침묵했다. ‘당분간은 참자. 때가 되면 바로 여기에서 나가 세인시를 떠나면 되니까.’ 그리고 식사할 때 엄혜정은 조영순과 염정은의 대화를 통해 염민우가 본업에 집중하지 않고 미녀와 데이트하러 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쩐지 안 보이더라니. 하긴, 염민우가 내가 여기서 가정부노릇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서로가 난처해지겠지? 그러니까 안 나타나는 게 더 나은 것일 수도 있어. 그리고 육성현이 날 계속 여기 있게 하지 않을 거야. 굴욕을 다 받고 나면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가 자유를 박탈당해야 하거든.’엄혜정은 다음 날부터 하루 세끼를 책임졌다. 아침에 염군은 엄혜정이 가정부의 일을 하는 걸 보고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결국 말을 하지 않았다. 엄혜정은 염씨 저택에서 하루 세끼만 책임지는 게 아니라 다른 잡다한 일도 해야 했다. 그래서 하루가 끝나면 엄혜정은 지쳐 쓰러
“감히 말대꾸를 하다니, 넌 네가 아가씨 대접받으러 왔다고 생각하니?” 채아주머니는 가늘고 긴 줄로 엄혜정의 등을 향해 힘껏 때렸다. “아! 윽!” 엄혜정은 참지 못하고 그 가늘고 긴 줄을 잡고 빼앗았다. 채아주머니는 그녀가 감히 반항할 줄은 생각지도 못해 말하면서 앞으로 나가 빼앗으려 했다. “내놔!” 그러자 엄혜정은 그를 힘껏 밀쳤다. “아이고!” 채아주머니는 뒤로 넘어져 하늘을 찌르는 소리로 고함지르기 시작했다. “얘들아, 이 계집애가 감히 나에게 손찌검을 하다니, 본때를 보여줘!” 소리가 커지니, 다른 가정부들이 바로 달려왔다. 누군가가 채아주머니를 일으켜 세웠다. “저 년을 묶어서 방에 가두어놓고 밥 주지 마!” 채아주머니는 엄혜정을 가리키며 마귀할멈같이 이를 갈며 소리쳤다. 사람을 죽여야만 화가 풀릴 것 같았다. 엄혜정은 그녀에게 다가오는 두 가정부를 보고 손에 가늘고 긴 줄을 꽉 쥐었다. ‘만약 그들이 감히 날 건드린다면 이걸로 때리고 여기를 떠날 거야.’ “무슨 일인데 이렇게 시끄러워?” 주방 입구에서 듣기 좋은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온 염민우가 주방으로 들어왔다. 가정부들은 소리를 듣고 누군지 알아채고 황급히 한쪽으로 물러섰다. 염민우는 엄혜정을 보고 멍해졌다. “엄혜정? 네가 왜 여기 있어?” 엄혜정은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그녀는 오히려 염민우가 와서 위기를 전환시켜 반격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소란 피워서 조영순과 염정은 귀에 들어가면 그녀는 좋은 결과가 없을 테니까. 염민우는 주방에 있는 가정부들의 자세를 보자마자 소란을 피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문제는 엄혜정이 왜 여기에 있느냐는 것이었다. 엄혜정이 말하기도 전에 채아주머니가 먼저 고발했다. “도련님, 엄혜정이 날 밀쳐서 바닥에 넘어졌어요. 정말 허리가 나갈 것 같아요!” “네가 먼저 이거로 날 때렸잖아.” 엄혜정은 손을 들어 가늘고 긴 줄을 보여 주었다.“네가 그릇을 깨뜨리고 말대꾸를 했으니 맞아야
엄혜정은 샤워를 한 후 잠이 오지 않아 밖으로 산책하러 나갔다. 샤워할 때 그녀는 등 위의 상처를 발견했다. 채아주머니가 여성이긴 하지만 오랫동안 일해서 그런지 손 힘이 엄청 셌다. 상처가 부어올라 피부가 다 까여 옷이 위에 닿기만 해도 쓰리고 아팠다. 그녀가 어깨 부분의 옷깃을 아래로 당겨 상처가 심한지 보려고 할 때 염민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쳤어요? 엄중해요?” 엄혜정은 염민우라는 것을 보고 일어섰다. “별일 없어요.” 염민우는 걸어가서 그녀의 옷깃을 아래로 당겼다. “내가 좀 볼게요.” “잠깐만…….” 엄혜정은 놀라서 말했다. ‘얘 왜 직접 손을 대고 그래? 남녀사이에 이러면 안 되는데!’ 엄혜정이 헐렁한 상의를 입어서 염민우가 손으로 당기자 옷이 어깨뼈까지 내려갔다. “아…….” 엄혜정은 앞의 옷깃이 목을 조여와 입을 벌렸다. 엄혜정의 어깨뼈는 살아있는 나비처럼 아름다웠다. 깨끗한 피부에 가늘고 긴 상처 네 줄이 벌겋게 나 있었다. “약을 발라야 해요.” 염민우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잘생긴 얼굴에 불쾌함이 스쳐 지나갔다. ‘채아주머니가 너무 했잖아.’ 그가 손을 떼려고 할 때 어깨뼈의 붉은 모반이 그의 눈빛을 변하게 했다. 그것은 상처보다 더 진하고 핏빛을 띠고 있는 손톱만 한 초승달 모반이었다. 다 봤냐고 물어보려고 할 때 염민우가 손가락으로 만지는 것을 느낀 엄혜정은 깜짝 놀라 자신의 옷을 앞으로 잡아당겼다. 엄혜정은 염민우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약간 이상해서 물었다. “왜 그래요?” 염민우는 바로 표정을 거두었다. “아니에요, 내가 연고를 가져다 발라줄게요.” 염민우는 말한 후 하인에게 소염약을 가져오라고 분부했다. “고마워요.” 엄혜정이 말했다. 염민우는 복도에 서서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무심한 듯 물었다. “혜정 씨가 빈민가에서 자란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엄혜정은 자신이 빈민가에서 자랐다고 해서 열등감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네 맞아요.”그리고 다른 사
육성현은 흠칫 놀랐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그래? 혜정아, 다 오해야. 나 지금 다 고쳤어. 진짜야, 어서 내려와. 물만두가 식겠다.”“오지 마!”엄혜정은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쳤다.“다가오면 뛰어내릴 거라고 얘기했어!”“그래, 안 갈게.”육성현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혜정아, 진짜야.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우선 먼저 내려와. 내려오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다 오해야.”“사실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냥 유희의 말이 날 깨닫게 했을 뿐이야.”엄혜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육성현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근데 나 지금 다 알게 됐어. 증거는 없지만 넌 김하준이잖아. 난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 네가 달라질 거라 기대했어. 근데, 넌 어떻게 네 아이의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어? 김하준,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세상에 어떻게 너 같은 괴물이 다 존재해?”“혜정아, 내려와서 천천히 얘기하자, 응? 거긴 너무 위험해.”“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기분을 모르지? 너도 한번 느껴봐야 해.”엄혜정은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안돼!”육성현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하지만 엄혜정의 옷자락도 미처 잡지 못했다.그는 엄혜정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밑에 서 있던 하인 중 그 누구도 엄혜정을 받아내지 못했다.“다 죽일 거야!”육성현은 미친 듯이 달려갔고, 눈에 거슬리는 하인들을 모조리 걷어차 버렸다. 그는 엄혜정 옆으로 기어가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혜정아, 혜정아. 병원에 데려다줄게. 아무 일도 없을 거야!”엄혜정은 눈을 떴다. 그녀의 머리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초점이 점차 사라지는 눈으로 육성현을 바라보았다.“김하준, 다음 생이 있다면, 난 다시는 널 만나지 않을 거야…….”이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엄혜정은 숨을 끊게 되었다.“그래, 만나지 마,
퇴원한 후, 엄혜정은 방에 혼자 남았을 때 원유희에게 연락했다.“유희야, 괜찮아? 김명화가 널 납치했다고 들었는데, 구출됐다고?”“응, 괜찮아. 지금은 집에 도착했어.”“다행이다.”원유희는 그녀의 정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부모님이 돌아가신 일 말이야. 나 다 알게 됐어.”원유희는 순간 멈칫했다.‘다 알았다고?’“미안해 혜정아, 숨기는 게 아니었는데.”“괜찮아, 나랑 아이를 생각해서 숨긴 거잖아.”엄혜정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네가 김명화를 죽였어?”“아니. 그날에 크루즈에서 김명화가 도망쳤거든. 우리가 김명화를 찾았을 땐 이미 주검으로 됐어. 그 주검도 바다에서 건져낸 거야.”“육성현도 있었지?”“응, 얘기해줬어?”엄혜정은 덤덤하게 물었다.“육성현을 의심해 보지 않았어?”원유희는 흠칫했고 아무런 얘기도 할 수가 없었다.“김명화를 죽인 사람,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죽인 사람 말이야…….”“그럴 리가?”원유희는 당황했다. 그녀는 엄혜정이 왜 육성현을 의심하게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무슨 단서라도 발견한 거야? 아니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유희야, 저 사람 진짜 육성현이 아니잖아. 김하준이라고. 나 그 사람 잘 알아.”엄혜정은 목이 메였지만 울먹이면서 끝까지 말했다.“난 그 사람 고칠 줄 알았어,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혜정아, 아직 조사하고 있어.”“그럼 너희들도 육성현을 의심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맞지?”“오해일 수도 있어.”“오해일 리가 없어.”엄혜정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자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그리고 시체처럼 무기력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엄혜정은 서재에서 나온 육성현을 보면서 얘기했다.“나 물만두 먹고 싶은데, 사다 줄래? 예전에 빈민가에서 자주 사주던 물만두 말이야.”“그래.”육성현은 엄혜정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먼저 우유 좀 마시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육성현은 엄혜정을 끌어안았다.“김명화가 죽었대. 복수한 셈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네가 무사히 지내야 장인어른 장모님이 안심하시지 않겠어? 침착해.”엄혜정은 울면서 그의 품에 쓰러졌다.그러고는 배가 간간이 쑤시자, 엄혜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렀다.육성현은 그녀의 상황을 바로 눈치채고 기사에게 소리쳤다.“얼른 병원으로 가!”“얼른!”염민우도 재촉했다. 그는 얼른 엄혜정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의 손이 얼음처럼 차갑다는 것을 발견했다.“누나, 아직 나도 있잖아. 그러니까 아무 일도 생기면 안 돼. 누나, 꼭 버텨줘.”엄혜정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그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난 부모님을 가질 자격이 없는 걸까……?’엄혜정이 깨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병원에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만졌다.육성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금 안정을 취해야 한대.”엄혜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민우는?”“밖에 있어. 너무 걱정되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엄혜정은 육성현의 손에서 자기 손을 뺐다.“두 사람 너무해. 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나한테 숨길 수가 있어? 평생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육성현, 우리 부모님의 목소리를 합성해서 나랑 통화하게 했어? 네 아이디어지? 넌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혜정아,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너한테 알려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네 옆에는 나랑 아이가 있고, 민우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너밖에 없어. 너한테도 무슨 일이 생기면, 민우는 더 고통스러워질 거야.”엄혜정은 말을 하지 않았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엄혜정도 염민우가 더 고통스러워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엄혜정은 염민우가 갑자기 엄청나게 말라갔던 것이 생각이났다. 엄혜정은 염민우의 일이 바쁜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염민우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울지 마. 의사가 지금은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
“알았어요…….”염민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입구에 서 있는 엄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누…… 누나. 여긴 어쩐 일이야?”엄혜정은 멍하니 거기에 서서 염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얘기하고 있던 사람을 봤다.“하늘나라라뇨? 저희 부모님이 왜 하늘나라에 계셔요?”“아니야,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고 있었어.”엄혜정은 두 사람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엄혜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핸드폰을 못 찾자 바로 차로 뛰어갔다.“누나!”염민우는 엄혜정을 쫓아갔다.“뭐 하려고 그래?”“엄마 아빠한테 전화할 거야.”“지금 여행 중이시니까, 방해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엄혜정은 그를 보면서 물었다.“사실대로 얘기해줘. 엄마 아빠 왜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거야? 거짓말하지 마! 사실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임신했는데 엄마랑 아빠가 계속 안 오시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두 분 무슨 일이 생긴 거 맞지?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염민우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 참고 말했다.“더 이상 묻지 마…….”“염민우! 계속 우물쭈물 얘기 안 하면, 나 이젠 널 안 봐!”염민우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집에 오는 게 아니었어, 그나저나 아저씨는 왜 또 그런 허튼소리를 해서 참…….’“맞아, 누나 임신 3개월쯤 되었을 때,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셨어.”엄혜정은 몸이 휘청거렸다. 염민우는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침착해요! 엄마랑 아빠는 누나가 무사하기를 원하셨을 거야. 난 누나가 못 받아들일 것 같아서 장례식 때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어.”엄혜정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염민우를 바라보았다.“너 이러고도 내 친동생이 맞아? 어떻게 안 알려줄 수가 있어! 아기만 중요하고 부모님은 안 중요할 것 같아? 너…….”너무 충격 받은 엄혜정은 눈앞이 점점 캄캄해지더니 기절을 하고 말았다.“누나!”
육성현이 다가와 물었다.“유희야, 괜찮아?”원유희는 고개를 저었다.“너 안색이 안 좋은데, 왜 그래?”“김명화가 죽었어요.”김신걸이 얘기했다.“해독제는 찾았어요?”원유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쉽네. 그럼 감염된 사람들은 우선 좀 참아야겠어.”원유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나 바로 김신걸을 밀쳤다.“날 만지지 마!”육성현은 그제야 원유희의 볼 아래의 병변 부위를 발견했다.“유희야, 김명화가 너한테도 독을 썼어?”김신걸은 미간을 찌푸렸다.“상관없어.”“안돼. 우리 둘다 아이들하고 접촉하지 않으려 한다면 애들이 걱정할 거야.”원유희는 거절했다.김신걸은 줄곧 원유희와 스킨쉽이 있었다. 원유희는 그도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방금도 널 안았는데, 감염되면 진작에 감염됐어.”김신걸이 말했다.원유희는 그래도 싫었다.“아니, 그래도 만지지 마.”해독제도 못 가진 상황에 김명화는 의문스럽게 죽었다. ‘여기 김명화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지?’김신걸은 김명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바다에 던질 일은 더더욱 없었다.그럼 분명 다른 사람이 한 짓이었다.‘무슨 목적으로? 김신걸도 감염되면 배후의 사람을 어떻게 잡아내지?’‘다른 조직의 사람도 이곳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원유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내려가자.”김신걸은 원유희의 말대로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원유희가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떠날까 봐서 걱정이었다. 김신걸은 더 이상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원유희는 김신걸을 따라 떠났다.육성현은 먼 곳에 있는 김명화의 시체를 봤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이제 아무도 김명화를 죽인 사람이 육성현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엄혜정은 이미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지금 어떠한 사고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육성현은 잠깐 해독제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후 다시 생각하려 했다.엄혜정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배는 이미 많이 나
김명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진선우는 킬러들과 격투하고 있었고, 매번 그들의 치명적인 곳을 공격했다.진선우가 실력이 없었다면, 킬러들은 진작에 그를 해결했을 것이다.김명화는 무엇을 깨닫고 손을 돌려 원유희를 잡으려 했다.원유희는 후퇴하는 동시에 다른 힘에 의해 품에 안겼다.“이거 놔!”원유희는 낯선 남자인 줄 알고 발버둥 치려 했다.“유희야.”원유희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고, 익숙한 얼굴을 보자 아주 기뻤다.“김신걸?”“나야.”김명화는 서로 애틋한 두 사람을 보자 화가 더 났다.“원유희, 역시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긴 사람, 너였어.”김명화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쪽이 너무 방심한 탓이죠.”‘내가 예전에 김신걸의 곁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일이 김명화에게 착각을 준 거야?’“왜, 날 죽이려고? 네까짓 게?”김명화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다른 출구로 달려갔다.하지만 경호원들은 이미 그곳에 서서 그를 막았다.김명화는 총을 꺼내 쏘자, 한 경호원은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경호원은 얼른 옆으로 비켜 숨었다.일반인들은 그 출구를 포기했을 것이다. 김신걸의 사람들이 숨어있었기에, 그 출구는 아주 위험했다.하지만 김명화는 기어코 사격을 하면서 길을 텄다.안에 숨어 있던 경호원들은 피하면서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경호원들의 반격에 김명화는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그러다가 몇발 더 쏘고는 바로 달렸다.김명화는 크루즈에 오래 있었다. 하여 갓 크루즈에 올라온 김신걸의 사람들보다 이곳을 훨씬 더 잘 알았다.몇 개의 모퉁이를 돌면 은폐하기 적합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김명화는 다시 부하들에게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제야 김명화는 김신걸의 사람들이 진작에 올라왔고, 자기 쪽 부하들은 아마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도망치지 못한다면 김신걸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김명화는 죽어도 김신걸에게 잡히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갑자기 한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김명화는 본능적으로 총을 들었다
원유희는 지금 약 때문에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크루즈 곳곳에는 CCTV가 있었다. 방에 들어올 때, 그 윗부분에 CCTV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몰래 뭔가를 찾아보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김명화는 일찌감치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원유희는 떠나기 전에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겨주었기에 그가 곧 이곳을 찾아올 거라 믿었다.다만 김신걸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날이 밝는 무렵, 원유희는 헬리콥터 소리를 들었다.이어 문이 펑 하고 열렸고, 원유희는 반응하기도 전에 멱살이 잡혔다.“연락을 어떻게 한 거야?”말을 마치고 원유희의 몸을 수색하려 했다.“아! 미쳤어요? 나 핸드폰 없어요!”“김신걸이 왔다고 널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가더라도 널 끌고 갈 거야. 가자!”“아니…….”원유희는 힘 없이 밖으로 끌려 나갔다.김명화는 원유희를 다른 방으로 보냈다.“우린 여기서 김신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원유희는 고개를 들어봤다. 입구에는 많은 폭탄이 놓여있었다.그걸로 부족한지 김명화는 원유희의 몸에 폭탄을 묶었다.“미쳤어요?”김명화는 원유희의 얼굴을 꽉 쥐었다.“김신걸이 널 어떻게 구할지 구경이나 하려고 그런다.”원유희는 마음이 매우 불안했다.‘김신걸이 왜 이렇게 왔을까? 너무 눈에 띄잖아.’다시 들어보니 이미 헬리콥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밖에는 다른 인기척도 없었다.한 남자가 와서 말했다.“헬리콥터가 지나갔어요. 그냥 순찰하다가 지난 것 같아요.”김명화는 멍하니 서 있었다.원유희는 그를 비웃었다.“저 소리에 이렇게까지 놀랐단 말이에요?”“닥쳐!”김명화의 표정은 엄청나게 나빴다.“난 신걸이랑 아이들이 감염되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연락하지 않을 거고요. 배고픈데 이 폭탄들이나 좀 뜯어줄래요?”김명화가 경각심을 낮추었을 때, 크루즈 밑에서 잠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10명 좌우로 보이는 사람들은 갈고리를 가드레일에 던지고 밧
원유희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김명화가 갑자기 뒤에서 무슨 짓을 할까 봐, 원유희는 그를 등지고 누울 수가 없었다.“너 기억나? 어릴 때 김신걸이 널 괴롭히면 넌 우리 집에 달려와서 내 침대에서 잤잖아.”“기억 안 나요.”“기억하는 거 다 알아. 난 그때 정말 널 도와주고 싶었어.”원유희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반박하지 않았다.그녀는 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이전의 김명화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요.”김명화의 표정은 어두워졌다.“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죠? 죽어서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원유희는 지금의 김명화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아무리 유년 시절이 불행해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낙으로 삼으면 안 되죠!”“정말 고상한 척하네. 김신걸은 사람은 죽인 적이 없대? 육성현은 없대? 왜 걔네들이 사람을 죽인건 용서하면서, 난 용서하지 못하는 건데? 그 사람은 네 남편이고 네 가족이니까? 비겁하고 이기적인 건 너도 마찬가지야.”“참, 너도 사람을 죽였잖아. 네가 죽인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누군가의 아들이야.”원유희는 기분이 착잡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명화는 원유희의 반응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그러니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쉽게, 편하게 살자.”“이렇게 예전의 저질렀던 일을 합리화하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명분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요?”원유희는 김명화를 바라보면서 물었다.“당신을 용서하기 싫은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까지 자기의 잘못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요? 차라리 해독제를 그냥 줘요. 시장에 유통하지 말고요. 그러면 예전에 있었던 일은 없던 거로 할게요.”“정말?”김명화는 원유희를 보면서 물었다.“물론이죠.”원유희는 김명화의 말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그래. 해독제를 줄 수 있어. 근데 대신 넌 나랑 평생 같이
“밥 안 먹으면 너만 손해야.”김명화는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맞네,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무슨 힘으로 김명화를 상대하겠어?’잠시 후, 납득이 간 원유희는 젓가락을 들고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김명화는 그녀가 고기를 입에 넣는 것을 보고 물었다.“어때?”“설마 그쪽이 한 거예요?”원유희는 귀찮다는 듯이 그를 한번 힐끗 쳐다봤다.“맞아, 내가 직접 했어.”‘이게 뭐 자랑할 일인가?’“수고했네요,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니.”“내가 힘들 것 같으면 같이 할까?”“할 줄 모르는데요.”“정말 상전 팔자구먼.”김명화는 원유희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원유희는 김명화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원유희는 김명화가 자신을 괴롭히고, 김신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줄로 알았다.근데 직접 밥도 해줄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설마 요리에 무슨 수작을 부린 거 아니죠?”원유희는 젓가락을 멈추었다.김명화는 손에 있는 젓가락을 흔들었다.“나도 먹고 있잖아.”“먼저 해독제를 먹었겠죠.”“그런 거 아니야.”“그럼 내가 묻힌 진물은? 그건 어떻게 해결한 거죠?”원유희가 물었다.“해독제가 있으니까 괜찮은 거잖아요.”“해독제 가지고 싶어?”“줄 생각은 있고요?”“착하면 줄게.”원유희는 의심스러웠지만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금방 왔으니 당장 해독제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여 원유희는 일단 참고 해독제를 발견하면 김명화를 바로 제압하는 것을 선택했다.밥을 다 먹고 나머지는 부하가 다 치웠다.“같이 샤워할까?”김명화가 물었다.원유희는 그를 차갑게 보며 말했다.“아니요. 먼저 씻어요.”원유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원유희는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침착하자고 했다. ‘근데 자는 건 어떡하지? 정말로 같이 자야 해?’원유희는 침대를 봤다. 두 사람이 자고도 넉넉한 침대였고, 중간에 뭘 놓을 수도 있었다.김명화가 만약 자기 몸에 손을 대면 원유희는 같이 죽을 각오도 했다.10여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