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요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늦은 저녁에 의원들과 함께 그의 방을 찾았다.노옥도는 아직도 혼이 덜 났는지 침대에 누워서도 패악을 멈추지 않았다.의원이 다친 곳에 약을 바르려고 하자 그는 이를 갈며 소리쳤다.“아파! 좀 살살해!”“당장 꺼져! 소백지 불러! 소백지한테 시중을 들라고 시킬 거야! 다른 사람들은 다 나가!”의원은 노옥도의 의도를 알아차렸지만 그를 막을 용기는 없었다.“예, 나리.”문밖에서 그들의 대화를 들은 낙요는 그때 당시 저놈의 손목을 분질러 버리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의원들이 떠나자 낙요도 신속히 현장을 떠났다.하지만 소백지가 다시 노옥도의 방을 찾는 것은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의도가 너무도 뻔한데 소백지가 지금 그의 방을 찾으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그녀는 차라리 소백지를 대신해서 들어가고 싶었다.낙요는 한참을 돌고 돌아서야 구석진 안뜰에서 주방에 숨어 있는 소백지를 찾아냈다.이미 어둠이 깊어져서 주변이 캄캄했다.사람들이 평소에 오지 않는 주방에 희미한 불빛과 함께 소백지의 모습이 보였다.그녀는 다가가서 부르려고 했지만 그 순간 소백지가 품에서 뭔가를 꺼내 탕약에 약을 붓는 것을 보았다.모든 것을 마친 소백지는 숟가락으로 탕약을 휘저었다.나욕도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안에 뭘 넣은 거지?대체 누구에게 가져가는 약일까?소백지가 탕약을 들고나올 때, 낙요는 재빨리 구석진 곳으로 몸을 숨겼다.소백지는 불을 끈 뒤에 탕약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낙요는 조용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소백지는 약을 들고 노옥도의 방으로 들어갔다.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낙요는 창가로 가서 몸을 웅크리고 안쪽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장원 나리, 약 가져왔어요.”노옥도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급할 거 없어. 약은 좀 식혀두고 어서 와서 상처에 약이나 발라줘. 아파 죽겠다고.”소백지가 말했다.“약이 식으면 약효가 떨어져요, 나리. 따뜻할 때 어서 드세요.”“그래, 어쩔 수 없지.”노옥도는
코 고는 소리로 보아 노옥도는 깊게 잠든 것 같았다.소백지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녀는 품에서 비수를 꺼내더니 노옥도의 목을 노리고 힘껏 휘둘렀다.낙요는 흠칫 놀라며 안으로 달려가서 소백지의 손을 잡았다.놀란 소백지는 암살이 실패한 것을 눈치채자마자 낙요의 손길을 뿌리치려고 손목을 비틀었다.어렵게 잡은 기회를 절대 이렇게 놓치고 싶지 않았다.낙요는 그녀의 양손을 꽉 잡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이러지 말아요. 지금 이 인간을 죽이면 낭자도 죽어요!”소백지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낙요를 노려보며 소리쳤다.“이거 놔!”“살고 싶은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어! 내가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이 짐승 같은 놈이랑 같이 지옥에 떨어질 거라고! 이상한 일에 연루되고 싶지 않으면 당장 나가!”소백지는 쉽게 뜻을 굽히려 하지 않았다.하지만 노옥도는 낙요에게 있어 아직 이용 가치가 있었기에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태의원 장원이 태의원에서 죽으면 분명 철저한 조사가 내려올 것이고 소백지도 결국 책임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낭자, 내 말 좀 들어봐요. 노옥도를 처벌할 방법은 많아요. 이런 식은 아니에요. 이런 짐승 같은 인간은 쉽게 죽이면 안 돼요. 이 인간이 명성을 잃고 가진 모든 것을 잃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나요?”그 말을 들었을 때 소백지는 잠깐 고민했다.낙요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녀의 손에서 비수를 빼앗고는 소백지를 끌고 방을 나왔다.밖으로 나온 낙요는 코 고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확인하고 소백지가 그에게 수면제를 먹였다는 사실을 눈치챘다.아마 깊게 잠들었으니 그들의 대화를 듣지는 못했을 것이다.그녀는 소백지를 끌고 자신의 방으로 왔다.그리고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관찰하고 방문을 잠갔다. 낙요는 소백지를 위해 찻잔에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일단 이거 마시고 진정해요.”의자에 앉은 소백지는 지금도 손을 떨고 있었다.“왜 말렸나요? 설마 낭자도 저 인간을 죽이고 싶었나요? 둘 사이에 원한이 나보
소백지의 얼굴에 깊은 두려움이 떠올랐다.“언니가 죽기 전 나랑 언니는 매일 밤중에 놀라서 잠에서 깼어요. 눈을 뜨면 노옥도가 침대 앞에 서 있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너무 무서워서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한번은 그 자식이 우리가 먹는 음식에 약을 넣었어요. 밤중에 자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몸을 더듬는 느낌이 들어서 눈을 뜨고 싶은데 눈이 안 떠지더라고요.”“마치 귀신에게 쫓기는 기분이었어요. 대낮에도 놈은 우리가 뭘 하는지 감시했어요. 쳐다보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면 노옥도의 역겨운 면상이 보이더라고요.”소백지의 목소리가 두려움에 떨리고 있었다.그 기억들은 그녀의 마음속에 깊은 음영을 남겼다.“언니는 어떻게든 저를 지킨다고 노옥도가 제 몸에 손을 댈 때마다 제 앞을 막아섰어요.”“난 나약해서 반항조차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어요. 내가 조금만 강했어도 언니가 그 인간 때문에 죽음을 택하는 일은 없었을 거예요. 지금까지 꾹 참고 있었던 건 언젠가는 그 인간을 죽이기 위해서였어요.”낙요는 조용히 이야기를 들으며 서서히 치미는 분노를 느꼈다.“노옥도가 귀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건 아니에요. 다만 낭자가 귀신분장을 했다는 걸 알아서 놀라지 않은 거예요.”낙요는 그날 괜한 짓을 하지 말라던 노옥도의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그 전날에 호숫가에 이미 갔었다는 것을 설명했다.노옥도는 처음부터 밤에 통곡하는 사람이 소백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두려울 이유가 없었다.소백지는 흠칫하더니 진지한 얼굴로 낙요를 바라보며 물었다.“다른 방법이 있을까요?”낙요가 말했다.“우는 대상이 소운령 낭자라는 것을 믿게 해야지요.”노옥도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방법은 그가 본 것이 진짜 귀신이라는 것을 믿게 하는 방법뿐이었다.“이 일은 나한테 맡기고 다시는 경거망동하지 말아요. 최대한 노옥도가 이상한 짓 하지 못하게 내가 옆에서 지킬게요. 노옥도가 다가오면 나한테 맡기고 도망가세요.”소백지는 낙운의 실력을 이미 확인했기에 순순히 고개를
모든 일을 마친 그녀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노옥도의 마당을 떠났다.다음 날 다시 노옥도를 만났을 때 얼굴이 퀭하고 눈 밑이 시커먼 것이 잠을 설친 것처럼 보였다.소백지는 그 얼굴을 보고 움찔 놀라며 낙요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낙요는 그런 그녀에게 담담한 미소를 지어보였다.이것은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보아하니 어젯밤 망령에게 적지 않게 시달린 모양이었다.그런 와중에도 노옥도는 소백지를 향해 손짓했다.“이리 와서 날 좀 부축해다오.”소백지는 순간 당황했다.낙요는 생긋 웃으며 그녀의 옆을 지나쳐 노옥도에게 다가가서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장원 나리, 안색이 어찌 이리 안 좋으십니까?”“혹시 어제 잠을 편히 못 주무신 겁니까? 안 그래도 어제 여인이 우는소리를 들었사온데 너무 무서웠습니다. 태의원에 귀신이 드나든다는 소문이 있더니 사실인가 봅니다.”“대체 어느 낭자가 이리도 깊은 원한을 가지고 이승을 떠도는 건지….”그 말을 들은 노옥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노옥도의 두 눈에서 공포를 확인한 소백지는 눈시울을 붉히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드디어 두려움을 느낀 건가? 드디어! 언니를 기억해 낸 걸까?’하지만 두려움은 잠시뿐이고 노옥도는 분노한 목소리로 호통쳤다.“그게 무슨 헛소리냐!”“감히 태의원에서 귀신 얘기를 꺼낸 자에게는 곤장을 내리겠다! 당장 그 입 다물지 못할까!”말할수록 노옥도는 분노에 치를 떨었다.“비켜! 소백지한테 오라고 했지 너한테 오라고 했어?”하지만 차가운 호통에도 낙요는 길을 비키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백지 낭자는 어제 귀신 소리에 놀라서 잠을 설쳤사옵니다. 아마 나리를 부축하기에는 힘에 부칠 테니 제가 하지요!”“어제 제가 해드린 안마가 효과는 있사옵니까?”“안색이 안 좋으신 걸 보니 오늘 한 번 더 주물러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그 말에 노옥도가 펄쩍 뛰었다.“귀신 얘기 꺼내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지금 내 말이 말 같지 않은 게야!”“진 태위가 보낸 사람이라고 해서 내가 널 어쩌지
분노에 이성을 잃은 노옥도는 성백천까지 같이 곤장을 치려고 들었다.소란이 커지자 의원들을 비롯하여 태의들까지 모여들기 시작했다.호위대가 성백천을 바닥에 꿇리려 하자 사람들이 너도나도 나서서 노옥도를 말렸다.하지만 노옥도의 태도는 강경했다.“같이 곤장을 맞고 싶지 않으면 다들 조용히 해! 올해 봉록 다 몰수당하고 싶어?”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사람들은 불만에 찬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태의원 장원의 권력은 딱히 크다고 볼 수 없지만 하필 노옥도는 황후의 사람이었다.황제가 병들어 누워 있는 마당에 이 황궁에서 황후의 말이 곧 법이니 노옥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성백천과 낙요가 억지로 바닥에 무릎이 꿇리고 곤장이 내려지는 순간 낙요는 식지 손가락을 살짝 튕겼다.그러자 노옥도의 옷섶에 갑자기 불이 붙더니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이게 다 뭐냐! 악!”불꽃을 본 노옥도가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주변에서 지켜보던 사람들도 당황하여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멍하니 지켜만 보고 있었다.노옥도 몸에 붙은 불이 점점 커지자 그제야 그들은 이러다가 이대로 타죽는 게 아닐까 걱정하며 다급히 옷가지를 들고 달려와서 불을 끄려고 시도했다.하지만 한번 붙은 불은 꺼지지 않고 점점 거세게 타올랐다.노옥도는 울음 섞인 비명을 질렀다.“빨리 와서 불 좀 꺼! 악!”한 태의가 다급히 소리쳤다.“장원 나리, 그렇게 뛰어다니지 마시고 옷부터 벗으세요. 빨리요!”노옥도는 그제야 다급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하지만 너무 당황해서 그런지 저고리 고름이 아무리 잡아당겨도 풀리지 않았다.옷에 불을 달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노옥도를 보며 낙요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 참았다.소백지도 그 모습을 보며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하지만 이 정도로 노옥도를 죽일 수는 없었다.낙요는 바닥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장원 나리, 저기 호수 쪽으로 뛰세요. 빨리요!”노옥도는 다급한 마음에 누구 목소리인지 확인하지도 않고 호수가 있는 방향으로 미친 듯이 뛰었다.다른 사람들
하지만 건져올린 건 사람 시체가 아닌 신발이었다.“여인의 신발 같은데요?”“대체 누구의 것일까요?”그것은 어제 낙요가 호수에 던진 신발이었다.태의원 내에서는 의복이 다 동일했기 때문에 의녀들은 다 같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신발을 본 소백지는 그 순간 언니를 떠올렸다.낙요와 시선을 교환한 그녀는 다급히 그쪽으로 달려갔다.“이건… 언니 신발이에요!”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뭐?”“소운령?”“소운령은 죽었지 않았느냐?”대낮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노옥도는 그 신발을 보자마자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머리털이 곤두섰다.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그가 차갑게 소리쳤다.“무슨 헛소리야? 다시 귀신 얘기를 꺼내면 곤장을 친다고 했지!”“볼일 없으니 그만 해산해!”사람들을 전부 쫓아버린 노옥도는 다급히 옷을 갈아입으러 방으로 향했다.하마터면 불에 타죽을 뻔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손발이 떨렸다.그런데 젖은 옷을 벗고 목욕까지 했는데도 간지럼증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목덜미에 묻어 있던 머리카락을 생각하니 그는 다시 가슴이 철렁하며 다급히 욕탕에 뛰어들었다.호숫가.사람들이 다 떠나고 낙요와 소백지, 성백천만 자리에 남았다.낙요는 부드럽게 소백지의 어깨를 다독였다.소백지는 가까스로 감정을 추스르고 신발을 쥐고는 낙요와 함께 방으로 돌아갔다.성백천도 그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는 물었다.“조금 전 그 불, 누가 한 것이오?”낙요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담담히 말했다.“어제 노옥도의 옷에 손을 좀 써두었소.”성백천은 미간을 찌푸리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하지만 낭자, 오늘 한 행위는 너무 눈에 띄었소.”“노옥도도 곧 낭자가 한 짓이라는 것을 눈치챌 것이오.”낙요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네.”성백천은 순간 움찔하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낙요는 천천히 숨을 고르고 말했다.“노옥도의 표적이 내가 되면 다른 사람을 괴롭힐
그 말을 들은 낙요는 의문이 들었다."장서각이면, 설마 의서라도 보러 갔단 말이오?"성백천이 고개를 끄덕였다."그 부분이 나도 이상했소. 노옥도가 의술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이쪽에 큰 흥미가 없는 사람이오. 그의 방만 보아도 의술에 관한 서책이 없소. 그런데도 불구하고 계속 장서각에 드나들다니, 아무리 봐도 수상하오."낙요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설마 노옥도가 그곳에 뭔가 비밀을 숨겼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오?"성백천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볼일도 없는 장서각을 그리 자주 드나들었을 것 같지 않소. 하지만 서재에 들어가려면 허락이 필요해서, 정확히 무엇인지 아직 파악하지는 못했소."낙요는 생각에 잠겼다."그대라면 충분히 허락받을 수 있지 않소?"성백천이 대답했다."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워낙 내부가 방대하여 노옥도가 숨긴 것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오. 다 살펴보려면 최소 몇 달은 소요될 텐데, 찾는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리란 보장도 없지 않소?”이 말을 들은 낙요가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그렇다면 다른 방안을 모색해봅시다. 기다리면 반드시 기회는 올 것이오."상백천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옆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소백지는 크게 동요했다. 그녀는 단번에 성백천과 낙요가 심상치 않은 일을 벌이려 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황후에게 맞선다니, 그녀로서는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대화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세 사람은 각자 자신의 일을 하러 자리를 떠났다.한편, 태의원은 큰 혼란에 휩싸인 듯, 삼삼오오 모여 뭔가 토론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낙요는 왠지 모를 호기심이 들어 조용히 그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자세히 들어보니, 노옥도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는 얘기였다.그녀는 곧바로 노옥도의 집으로 향했다. 가보니 이미 그곳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에 시종들은 물론 의녀들도 왔다 갔다 드나드는 것이 보였다. 이때, 안에서 노옥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좀 살살하거라! 아
낙요의 발에 새 신발이 신겨져 있었다. 아주 흠잡을 데 하나 없는 깨끗한 신발이었다. 태의원에 온 뒤로 줄곤 험한 일만 시켜 신발이 가득 더러워져 있어야 정상이었는데, 노옥도는 순간 뇌리에 번쩍하고 무언가가 지나갔다. ‘분명 욕탕에서 신발 한쪽을 발견하지 않았던가? 설마….’노옥도는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됐습니다. 전 이만 쉴 테니, 어서 가보십시오!”“네.”낙요가 빈 그릇을 들고 물러났다. 노옥도는 그녀가 떠나고 한참이 지나서도 좀 전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당일, 그는 낙요가 다른 일로 바쁜 틈을 타 그녀의 방에 몰래 침입해 서랍장을 뒤졌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의 눈에 익숙한 신발 한쪽이 들어왔다. 그가 욕탕에서 발견했던 그 신발과 똑같은 모양의 반대쪽이었다. “역시 네가 꾸민 짓이구나!”모든 상황을 파악한 노옥도는 분노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살기를 뿜은 채, 곧바로 방을 떠났다.그날 밤, 서늘한 바람이 창틀을 타고 흘러 들어왔다. 잠에서 깨어난 소백지는 살짝 열린 창문 밖으로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을 느꼈다. 깜짝 놀란 그녀가 벌떡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공포가 서서히 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그런데 이때, 익숙한 노옥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지야, 얼른 문을 열거라.”그 목소리를 들은 소백지는 전신에 떨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비명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막으며 닫혀 있던 방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노옥도가 다급히 들어오며 다시 문을 잠그는 모습이 보였다. 소백지는 경계하며 침대 쪽으로 향했다. 머리맡에 만에 하나를 위해 숨겨놓은 비수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노옥도가 그녀의 뒤를 따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불길한 기분을 느낀 소백지가 베개 밑에 있는 단도에 손을 가져다 댔다. 여차하면 이곳에서 목숨을 걸고 반격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때, 노옥도가 갑자기 진지한 분위기를 잡으며 말을 꺼냈다.“백지야, 하나만 대답하거라. 혹시 너, 낙운이랑 합작해 날 골탕먹이려 했느냐? 그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