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약간 황홀하여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심장을 만졌다. 아직 '펑펑' 뛰고 있어...“빌어먹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남자는 머리도 아프고 실명 때문에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전혀 몰랐다.그러다 소영금이 펑펑 우는 소리를 들었다."도윤이야, 정말 도윤이가 돌아왔어. 정말 다행이야!”소영금은 그를 으스러지게 껴안았다."어머니?"성도윤은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떠보는 듯 물었다."아들, 엄마 여기 있어. 정말 고생했어, 엄마 여기 있어!”소영금은 감격에 겨워 대답했다.성도윤이 실종된 요 며칠 동안 그녀는 밤낮으로 울어서 눈이 지금 매우 빨갛게 부어올라 하룻밤 사이에 열 살이나 늙은 것 같았다."아들, 도대체 어디에 갔던 거야? 우리는 온 해안을 다 뒤질 뻔했어. 감히 너에게 손을 대다니, 우리 성가가 반드시 복수할 거야, 우리...”성도윤은 별다른 감정 없이 물었다."나 지금 어디예요?”"바보야, 지금 우리 집 대문이잖아. 네가 직접 운전해서 온 것도 몰라?”"내가 운전하고 온 게 아니에요.”"무슨 소리야, 네가 운전한 게 아니라면 왜 운전석에 앉아 있었겠어? 게다가 어떻게 자기 집도 몰라? 아무리 밤이라도 잘 안 보일 정도는 아닌데,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던 거야?”"걱정 끼쳐서 죄송해요.”성도윤은 담담하게 말했다.보아하니 차성철이 그래도 사정을 봐주어 목숨을 살려준 모양이다.근데 이건 그 스타일 같지 않은데?설마..."핸드폰이 있어요? 얼른 은아한테 전화해서 잘 들어갔는지 물어봐 줘요.”"좋아, 내가 바로 칠게. 그 애가 너의 행방을 알아냈으니 반드시 너를 무사히 데려올 것이라고 맹세하더니 역시 무사하게 데리고 왔네...”소영금은 말을 하며 서은아에게 전화를 걸었다.마침 서은아가 비틀거리며 택시에서 내려 성가로 뛰어가려던 참이었다."은아야, 여기, 도윤이가 돌아왔어!”소영금은 감격에 겨워 손을 흔들었다."아주머니!"서은아는 소영금을 보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린 채 주저앉아 거의 무너져 내렸다."왜, 너희 두
성도윤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속상하게 해서 죄송해요.”소영금은 자신이 한때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던 훌륭한 아들이 갑자기 우울해지고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마치 살아있는 시체처럼 빛을 잃은 것 같았다.그녀의 마음은 마치 칼로 긁고 있는 것처럼 아파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아들, 내 아들 도대체 무슨 일을 겪은 거야?”그녀는 성도윤을 끌어안고 충격을 받아 마음이 아팠다.남자가 사라진 시간 동안 어떤 비인간적인 괴롭힘을 겪어서 이렇게 됐는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이미 지나간 일이니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아요.”성도윤의 목소리는 담담했고 알리고 싶지 않아 했다.그에게 있어 오늘 그가 당한 모든 것은 그가 차설아에 대한 빚을 갚고 있는 것이며 모두 그의 자업자득일 뿐이다.빚은 이미 다 갚았고 서로 빚지지 않으니 더 이상 매달릴 필요가 없었다."그래, 돌아오면 되었어, 그래...”소영금은 묵묵히 눈물을 흘리며 손으로 부드럽게 성도윤의 등을 두드렸는데 마치 어린 시절의 그를 껴안고 재워주는 것 같았다."걱정하지 마, 엄마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치료해 줄게!”성도윤은 피곤했는지 집에 들어오자마자 잠이 들었다.하지만 소영금은 누가 그녀의 아들을 이렇게 해쳤는지 반드시 알아야만 했다.그녀는 객실 문을 두드렸다.”은아야, 자니?”"아니요, 누구세요?”서은아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이미 세수를 마치고 잠옷을 입은 그녀는 새우처럼 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고 있었다."얘야, 겁먹지 마, 나야.”"아주머니, 들어오세요.”서은아가 일어나 방의 불을 켰다.소영금이 들어와 침실 문을 닫은 뒤 침대 옆에 앉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얘야, 이렇게 늦었으니 너도 쉬어야 한다만...”"괜찮아요, 아주머니. 그런 일을 겪었는데 제가 어떻게 잠이 오겠어요. 마침 오셨으니 저랑 얘기 좀 해요.”"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만...”소영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까 도윤이 상태가 좋지 않아 그런 슬픈 일을 언급하기
"나도 차설아 씨가 이렇게 모질게 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도윤이는 그녀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남자였는데 아무리 큰 원한이라도 이런 독수를 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안타깝네요... 확실히 차설아 씨가 해친 것이에요. 사랑이라는 것은 매우 아름답기도 하지만 무섭기도 하죠!”서은아는 일부러 차설아에게 모든 잘못을 덮어씌웠다.어차피 사람을 해친 건 차설아의 오빠이니 차설아가 해친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차설아 씨가 저지른 일이니 도윤이는 옛정을 생각해서 가족들께 알리지 않으려 합니다. 충동적으로 그녀에게 복수하지 않도록 말이에요.”서은아는 소영금의 표정을 살피며 계속 기름을 부었다."그뿐만 아니라 제가 도윤이를 구하러 갔을 때도 수모를 겪었어요...”여자는 여기까지 말하고는 금세 눈물이 비 오듯 쏟아지며 무너질 듯이 울었다."슬퍼하지 마. 설아가 어떻게 했는지 나한테 말해봐...”"남자들을 구해서 저한테 그런 짓을 했는데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요!”서은아는 여기까지 말하고 잠옷의 치맛자락을 위로 들어 올렸는데 파릇파릇한 다리의 아찔한 상처가 드러났다."하늘이시여, 이...이거 너무 끔찍하잖니!”소영금은 서은아의 허벅지에 난 흔적들을 보고 여러 사람에게 짓밟힌 뒤에야 생긴 것이라는 것을 알아챘는데 너무 놀라 몸을 떨었다."아주머니, 도윤이의 눈을 멀게 한 게 차설아의 짓이라는 것을 믿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제가 당한 것들은 차설아가 사람을 시켜서 한 짓이에요. 저는 그녀가 저를 그렇게 미워할 줄은 몰랐어요. 저는...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더는 도윤이랑 어울리지 않아요!”"그렇게 말하지 마, 넌 그냥 몸이 더러워졌을 뿐이야. 하지만 어떤 사람은 심장이 더럽지. 그게 정말 더러운 거야!”소영금은 서은아를 껴안고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너와 도윤이 너무 고생했어. 내가 너희들의 고생이 헛되지 않게 할게. 차설아... 가만두지 않을 거야!”원래 그녀는 서은아의 말에 의심을 하며 차설아의 인품을 믿었다.하지만 서은아의
"좋은 물건이라는데, 내가 안 보는 건 오빠 체면을 안 세워주는 거 아니겠어? 한 번 봐보지 뭐.”차설아는 포도 스무디 밀크티를 한 모금 빨며 말했다."그럼 마음의 준비 잘해, 이건 좀 보기 버거울 수 있으니까.”차성철은 신비로운 표정으로 뜸을 들였다.차설아는 참지 못하고 눈을 희번덕거렸다.“얼른, 보고 나면 가서 잘 거야.”"이 게으름뱅이, 잠이 너무 많은 거 아니야? 네가 본 후에 잠을 못 잘 거라고 장담하는데...”차성철은 차설아의 휴대전화에 동영상을 보내며 말했다.차설아은 처음에는 나른한 표정으로 켜보았는데 점차 표정이 굳어졌고 손가락은 살짝 조여졌다.몇 분 뒤 차성철이 물었다."어때, 다 봤어?”"다 봤어.”"정말 다 봤어?”남자는 얄밉게 물었다.“그럼 어떤 기분이야?”"아무 느낌 안 들어.”차설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낮게 대답했다."그럴 리 없어. 감정이 없는 나도 보고 감개무량했는데 너는 정이 깊었으니 더 감회가 더 많지 않겠어?”차성철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의외였어, 성도윤은 정말 대단해. 서 씨네 아가씨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심장을 기증하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것과 같잖아. 보아하니 그는 서 씨네 아가씨를 정말 사랑하는 것 같아. 이건 완전 순애보가 다름없잖아? 내가 그 집 사람이라면 그를 때려죽일 거야!”"설마 정말 그 사람 심장을 건드린 건 아니겠지?”차설아는 문득 무언가를 깨닫고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긴장된 표정으로 물었다."그럴 리가, 이 오빠가 그의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약속했으니 단지 그를 놀라게 했을 뿐이야. 그저 이 녀석의 마음속에 도대체 누가 있는지 테스트했을 뿐이고 결과는 이렇게 나왔네!”차성철은 이를 악물었고 지금 생각해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자식이 사랑하는 것은 역시 서씨 집안의 아가씨였어, 쓰레기가 따로 없다고. 네가 그를 보호하지 않았다면 나는 벌써 그 자식을 물고기에게 먹였을 거야.”"중요하지 않아.”푸른 바다를 바라보는 차설아는 괜찮다는 듯 어깨를 으
"엄마, 빨리 봐. 오늘 아저씨가 우리를 데리고 보물창고에 갔어. 물고기도 많이 잡았고 불가사리도 잡았어. 엄청 예쁘지 않아!”작은 통을 들고 있는 달이의 작은 얼굴은 태양 아래 붉게 물들어 마치 빨간 사과처럼 귀여웠다."엄마, 봐...칠색 불가사리, 예쁘지?”녀석이 불가사리의 두 뿔을 잡고 차설아를 향해 전리품을 뽐냈다."어어, 예쁘네.”차설아는 애써 싱긋이 웃어 보였는데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엄마, 왜 그래, 기분 나빠? 누가 괴롭혔어?”달이는 칠색 불가사리를 내려놓고 차설아를 안으며 작은 얼굴을 쳐들고 긴장하여 물었다."아니야, 엄마 너무 괜찮아. 우리 달이가 최고인데, 이렇게나 많이 잡은 거야?”차설아는 애써 정신을 차리고 아이들의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함께했다.아쉽게도 그녀의 우울한 기분은 먹구름이 낀 하늘과 같이 너무 선명한 나머지 원이와 사도현, 배경윤 모두 느꼈다."설아야, 왜 그래?”배경윤이 생선이 가득 담긴 통을 내려놓고 차설아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또 그 자식이 그 못된 년이랑 꽁냥대는 거야? 너 핸드폰 줘, 내가 바로 전화해서 혼내줄게!”얼마 전, 성도윤이 서은아가 그의 현 여자친구라고 세상에 알렸다는 소식이 곳곳에 떠돌았는데 그들은 세상과 단절된 해바라기 섬에서도 제일 먼저 알게 되었다.차설아가 얼마나 실망하고 고통스러웠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사도현이 막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벌써 해안으로 돌아가서 그 쓰레기를 호되게 때렸을 것이다!"그 사람 때문 아니야, 나 기분 안 나빠.”차설아는 억지로 웃어 보였는데 우는 것보다 더 보기 안 좋았다."괜찮기는! 분명 그 자식일 거야, 그 자식이 자꾸 너를 마음 아프게 하는 건 네 존엄을 땅에 깔고 밟는 거나 마찬가지야. 네가 만만하다고 생각하는 거라고!”배경윤은 괜찮기는커녕 화가 폭발할 것 같아 아예 차설아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성도윤을 혼내주려 했다.사도현은 보다 못해 말려 나섰다."다른 이유일 수도 있으니 함부로 추측하지 마, 우리 도윤이는 정도 있고
차설아는 농담이 아니었다. 그녀는 오빠 말이 옳으니 다시 해안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렇게 차설아 일행은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해안으로 돌아갔다.차성철이 일찍 마중 나왔다.그는 오늘 학식이 해박한 학자처럼 점잖게 꾸몄는데 모습만 보면 누구도 그가 눈 깜빡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자정 살인마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동생, 여기야!”차성철은 검은색 대형 지프에 기대어 줄곧 출구를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었다.차설아와 두 녀석을 한눈에 알아보고 감격에 겨워 손을 흔들었다."동생?"배경윤과 사도현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은 뒤 차설아를 끌어당기며 물었다."이 사람은 누구야? 왜 대낮에 가면을 쓰고 이렇게 신비한 모습인 거야?”"내 오빠.”차설아는 미소를 지으며 솔직하게 대답했다.그동안 차성철과 자주 통화했지만 배경윤과 사도현은 차성철의 존재를 몰랐다."오빠? 그냥 아는 오빠?”사도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이런 촌스러운 방식으로 여자를 꼬셔?”"땡, 친오빠!”"넌 모든 사람이 너랑 같다고 생각하는구나, 머릿속에 여자 꼬시는 것밖에 없지!”"친오빠? 설마!”배경윤은 충격에 잠겼다."설아야, 너 외동딸 아니었어? 왜 갑자기 친오빠가 생겼지? 이 사람이 너 속이는 거 아니야?”"정말 내 친 오빠야, 너와 배경수처럼!”차설아는 턱을 치켜들며 거만하게 말했다.이런 교만은 가족이 있다는 든든함과 사랑받는다는 안전감에서 온다.“오빠!”그녀는 멀리서 차성철을 부르더니 어리광을 부리는 어린 소녀처럼 남자의 품에 안겼다.오빠의 품은 회화나무 아래 나른하게 누울 수 있는 소파처럼 따뜻하고 든든했다.행복이란 무엇일까?행복이란 비행기에서 내린 후 가족이 당신이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한동안 못 봤더니 왜 이렇게 살이 빠진 것 같지? 매일 밥 잘 안 먹은 거야?”차성철은 차설아를 굳게 안고는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말했잖아, 아무리 기분이 나쁘더라도 자신의 배를 곯아서는 안 돼.
두 남매의 대화에 배경윤이 부러워하며 눈물을 훔치더니 사도현을 팔꿈치로 툭툭 치며 말했다."봐, 얼마나 감동적인 남매의 정이야? 우리 설아가 이렇게 누군가한테 의지하는 게 드문데 오빠가 정말 좋은가 봐, 부럽다.”외동인 사도현은 형제애를 이해하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너도 오빠 있잖아, 네 오빠는 안 그래?”"나는 오빠랑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싸웠어. 내 성격이 너무 이상하다느니, 나를 원하는 남자가 없다느니, 평생 시집갈 수 없다느니 매일 헐뜯기만 하지...”"어릴 적에 나에게 용돈을 자기한테 맡기라고 하면서 내가 돌려달라고 하니 보관비를 내라고 하더라. 용돈 만 원에 보관비 5천 원을 줘야 한대, 그러다 내가 오빠한테 되려 빚지게 생겼다? 이런 오빠를 본 적이 있어?”“푸!”사도현은 이를 듣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네가 멍청한 건 아니고?”"야, 내가 어릴 때 오빠한테 어떤 착취를 당했는지 알아!”"하하, 괜찮아. 앞으론 내가 있으니 오빠가 어떻게 하지 못할 거야.”사도현이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었다.“...”배경윤의 볼이 확 붉어지며 애틋한 감정이 두 사람 사이에 맴돌았다.해바라기 섬에서 함께 하는 동안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각별한 애정을 느낀 듯했지만 누구도 그 관계를 더 진일보 발전시키지 않았다.사도현은 애매하게 행동은 했지만 제대로 고백한 적은 없었고 배경윤도 끊임없이 자신에게 성도윤이 쓰레기 같은 놈이니 성도윤의 친구도 당연히 좋은 놈이 아니라고 절대 마음을 움직여서는 안 된다고 자신을 최면시켰다."둘이 우물쭈물 뭐 하는 거야? 이리 와, 내가 소개해 줄게!”차설아는 배경윤과 사도현을 향해 손짓했다."우리 오빠야, 친오빠. 앞으로 너희도 오빠, 형이라고 부르면 돼.”"오빠, 이쪽은 내 유일한 절친 배경윤이야.”"이쪽은...”차설아는 사도현을 보면서 그의 신분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몰랐다.어쨌든 사도현은 성도윤의 친구인데 만약 차성철이 알게 된다면 사도현은 아마 위험할 것이다!"
공기는 순식간에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사도현은 표정이 굳어 한참 후에야 다시 킥킥거리며 차성철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 알고 보니 인연이 깊었네요. 오래전부터 명성은 잘 들었습니다!”“확실히 인연이 깊네요...”차성철은 미소를 지었지만 눈동자는 차갑게 말했다.“저도 도현 도련님을 바다에 던져 버리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거든요.”“하하하, 형님 농담이 심하시네요!”“나는 그때 우리 도윤이때문에 형님이 우울증에 걸려 숨어서 감히 나와 다니지 못하는 줄 알았잖아요.”“도현 도련님도 농담이 심하시네, 우울증에 걸렸는지 안 걸렸는지는 보면 알지 않겠어요.”“그럼요, 보다가 목숨이 날아가겠죠.”둘은 싱글벙글 웃었지만 말에는 가시가 있었다.차설아와 배경윤은 저절로 한쪽으로 물러났다.“자, 두 사람도 그만해. 여기서 길 막지 말고.”차설아는 원이와 달이를 끌어당기며 말을 이었다.“얘들아, 이분은 엄마가 너희한테 말했던 외삼촌이야. 얼른 외삼촌이라고 불러.”“외삼촌!”“응, 원이 달이, 삼촌이 엄청 보고 싶었어. 우리가 드디어 만났네? 삼촌이 안아보자!”차성철은 원래 사도현과 계속 기 싸움을 하고 싶었지만 두 아이를 보자마자 마음속에 큰 화가 이내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고 주저앉아 한 손에 하나씩 아이들을 안았다.“외삼촌도 Q 아빠처럼 가면을 쓰고 다니세요? 혹시 Q 아빠를 아세요?”호기심 많은 원이가 물으며 작은 손으로 차성철의 가면을 벗기려 했다.“어, 원이야, 가면 만지면 안 돼요!”차성철은 심각한 표정으로 제지했다.“왜요?”“외삼촌이 나쁜 놈에 의해 얼굴이 망가져서 큰 흉터가 났는데 너희들을 놀라게 할까 봐 걱정돼서 그래.”차성철이 솔직하게 말했다.그러자 달이가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아요, 우리 삼촌이니까 두렵지 않아요. 흉터는 삼촌만의 시그니처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없는걸요!”“어...”녀석의 말에 차성철의 돌 같이 굳었던 마음이 저절로 부드러워지는 기분이었다.그는 이미 오랫동안 이런 느낌을 받지 못했
사도현은 배경윤이 적은 글을 보고 낮게 한숨을 쉬었다.“윤설 씨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렇게 하면 더 큰 사이버 폭력이 일어날 수도 있어. 난 그냥 소란을 일으킨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 연예인 본인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어.”[흠, 당연히 연예인 본인까지 끌어들이지 않길 바랄 거야. 그 사람들 도현 씨 팬들이잖아. 게다가 윤설 씨까지 얽혀서 그 여자가 곤란해질까 봐 그런 거지?]배경윤은 그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신경을 쓰는 모습을 처음 봤다. 윤설이 첫 번째이자 아마 유일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에 그녀는 눈앞의 이 남자를 더 용서할 수 없었다.‘이런 바람둥이!’“조금만 머리 쓰면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 알 텐데.”사도현은 배경윤의 ‘모함’을 듣고 이 오명을 씻을 수 없다는 생각에 더 이상 해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차갑게 말했다.“네가 뭐라고 생각하든, 나는 이 사건에 연예인 본인을 끌어들이는 걸 절대로 허용하지 않아.”그도 어쨌든 윈스 엔터테인먼트의 CEO였고 연예계의 돌아가는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때로는 하나의 루머가 칼날처럼 되어 사람을 죽음의 길로 몰아넣을 수 있다.연예계에서 온라인 폭력에 의해 처참하게 망가진 스타들이 많았고 배경윤과 차설아 같은 일반인은 그 악플의 고통을 더 견디기 힘들 것이다.[헐, 이제 나를 협박하겠다는 거야? 도현 씨가 그렇게 말할수록 난 더 윤설을 찾아갈 거야. 날 어떻게 할 건데?]배경윤은 분노를 담아 빠르게 타자를 했다. 소리 없이 치는 타자 소리만으로도 그녀의 분노가 느껴졌다.성도윤은 그들 옆에서 분위기를 살피며 처음으로 연애 문제가 이렇게 복잡하고 피곤할 수 있다는 걸 실감했다.이 두 사람은 분명 서로에게 감정이 있었지만 계속해서 상처가 되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망쳐가고 있었다.‘내가 보기엔 차설아와 내 관계가 훨씬 더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 같아. 내가 정말 운이 좋아.’차설아를 떠올리며 성도윤은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지금 2층으로
“오늘 소란을 일으킨 사람 중에 내 팬도 있었던 거 확실해?”사도현은 사실 명성과 노출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배경윤 때문이 아니라면 절대 미디어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을 것이고 그런 어색한 연애 프로그램 같은 것도 참가하지 않았을 것이다.그가 이렇게 많은 팬을 얻게 된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조용한 성격이라 팬들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팬들이... 오물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충격을 받았다.“믿을 수 없지?”배경윤이 오늘 자신과 차설아가 괴롭힘을 당한 영상 파일을 사도현에게 보여주었다.“봐봐, 그 팬이라는 여자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도현 씨가 잘생기고, 부유하고, 성격도 좋고, 완벽한 남자라며 윤설과 천생연분이라고 하더라. 도현 씨가 윤설의 왕자인데 내가 그 악녀가 되어 두 사람의 관계를 망쳤다고 하면서, 심지어 설아까지 모욕했어.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뭐, 우리 설아까지 욕했다고?”옆에서 무표정하게 싸움을 구경하던 성도윤은 배경윤의 말을 듣고 나서 차설아에게 더 한없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그는 사도현이 들고 있던 핸드폰을 빼앗 분노에 차서 영상을 확인한 뒤 싸늘하게 말했다.“이 사람들, 이런 짓을 할 용기가 있다면 그 자만과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어떻게 할 건데?”배경윤이 성도윤에게 물었다. 이전과 달리 이제는 거부하는 태도가 없었다.“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이 사람들 다 찾아낸 뒤, 두 사람 앞에서 머리 조아려 사과하게 해야지.”성도윤이 이를 갈며 한 글자씩 뱉어냈다.이 말은 결코 가벼운 말이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끝까지 추궁할 수 있는 말이었다.“그나마 다행이네...”배경윤이 사도현을 보며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저것 봐, 사랑하는 여자가 괴롭힘을 당했으면 정상적인 반응은 저런 건데, 도현 씨는... 아니지. 도현 씨한테는 사랑하는 여자가 괴롭힘을 당한 게 아니라 사랑하는 여자의 팬이 그냥 길 가던 사람을 괴롭힌 정도잖아. 이제야 왜 이렇게 무관심한지 알
[무슨 소리야, 그건 옛날얘기지. 지금은 완전히 아니라고! 나도 한때 도현 씨를 내 ‘남신’이라고 했었잖아? 그런데 그 결과가 어땠어?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속은 형편없더라!]배경윤이 가차 없이 쏘아붙였다.[두 사람, 완전 끼리끼리야. 나랑 설아는 이제 두 사람이랑 거리를 둬야 해. 안 그러면 우리도 불행해질 거야. 봐, 오늘 내가 이렇게 재수 없는 일을 겪은 것도 다 네 탓이야.]“아니, 이게 왜 또 내 탓이야?”사도현은 어이없다는 듯 두 손을 들었다.그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데 갑자기 죄인처럼 배경윤의 분노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당연히 도현 씨 탓이지! 오늘 나랑 설아에게 똥물을 뿌린 사람들이 누구인 줄 알아?]배경윤이 팔짱을 끼고 사도현을 노려봤다.“누군데?”사도현이 황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아무리 세상이 험악해졌다고 해도 앞을 못 보는 여자랑 말을 못 하는 여자를 상대로 그런 짓을 할 정도면 정말 제정신 아닌 인간들 아니야?’[한쪽은 도현 씨 팬들이고, 다른 한쪽은 윤설의 광적인 팬들이야.]“뭐?”사도현의 표정이 얼어붙었다.[내가 도현 씨를 알지 않았으면 윤설이랑 엮일 일도 없었을 거고, 그 여자의 팬들에게 이런 일을 당하지도 않았을 거야. 그리고 당신 팬들도 마찬가지야. 윤설 팬들이랑 다를 게 뭐야? 둘 다 극성맞고 정신 나간 사람들뿐이야. 그러니까 이 모든 게 도현 씨 탓이라고!]배경윤은 흥분해서 글을 계속해서 쳐냈다. 사도현은 그녀가 쓴 긴 글을 읽고 머리가 핑 돌 지경이었다. 글에는 온통 그에 대한 비난이 가득했다.사도현은 억울한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근데 말이야, 팬들이 한 행동을 내가 어떻게 책임져? 사람마다 다 성격이 다르고 수천, 수만 명의 팬을 내가 어떻게 다 통제해?”[핑계 대지 마!]배경윤은 여전히 흥분한 상태였다.[팬들의 행동은 결국 본인이 책임지는 거야. 팬덤 문화 몰라? ‘팬들의 행동은 본인이 책임진다.’ 이게 기본 원칙이야! 팬들이 왜 그렇게 극성인지 알아? 그건 본인이
성도윤은 묵묵히 참다가 결국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배경윤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너는 아무것도 몰라. 나랑 차설아의 관계는 너 같은 외부인이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우리는 지금 행복해. 네가 보기 불편하면 그냥 나가면 되잖아.”“...”배경윤이 성도윤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손목이 붙잡히자 이번엔 발을 들어 그를 걷어차려 했다.성도윤은 체격이 크고 힘도 센 편이었지만 배경윤의 저돌적인 공격에 살짝 밀리는 기분이 들어 결국 긴 팔을 뻗어 그녀의 목을 단단히 옭아맸다.“형, 지금 뭐 하는 거야?”바로 그 순간, 사도현이 들어와 이 장면을 목격하고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상황이라니,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성도윤과 배경윤도 순간 굳어버렸다.“오해하지 마.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성도윤이 가볍게 헛기침하며 배경윤을 놓아주었고 배경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성도윤의 발을 힘껏 밟았다.“너 진짜 끝까지 이럴 거야?!”성도윤은 발끝이 부러질 것 같은 고통에 이를 악물었지만 차설아를 떠올리며 꾹 참았다.차설아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강렬했는데 그녀의 절친인 배경윤까지 보니 정말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떠올랐다.그리고 슬쩍 사도현을 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너, 보험 많이 들어둬.”“무슨 뜻이야?”사도현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무슨 뜻이긴? 저 호랑이 같은 여자를 네가 감당할 수 있겠냐고.”성도윤이 배경윤에게 얻어맞은 부위를 문지르며 투덜댔다.그러자 사도현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지, 우리 경윤이는 원래 이렇게 폭력적인 애가 아니야. 분명 형이 선을 넘었으니까 그런 거겠지.”그는 중요한 순간에 배경윤 편을 들기로 했다.사실 예전에는 서로 의견이 다를 때마다 배경윤과 말다툼이 잦았다.배경윤은 성도윤을 두고 철저히 쓰레기라고 욕했고 사도현은 차설아가 너무 까다롭다고 반박하며 두 사람은 끝없는 논쟁을 벌이곤 했다.하지만 이
“그만 좀 해요, 너무 닭살 돋아요.”차설아는 예전 같았으면 이런 사랑 고백을 들으면 쑥스러웠지만, 이제는 쑥스럽기보다 오히려 닭살이 돋아 참을 수가 없었다.처음엔 성도윤이 차갑고 말수가 적은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보니 그건 전부 겉으로만 그럴듯하게 꾸민 모습이었고 실제로는 입만 열면 온갖 달콤한 말을 쏟아내는 사람이었다.성도윤이 손으로 물 온도를 확인한 뒤 말했다.“물 받아놨어. 들어가서 몸 좀 풀고 와.”“좋긴 한데... 좀 나가주겠어요?”차설아가 고개를 푹 숙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그건 안 되지. 당신이 미끄러지거나 수건이 필요하거나 옷을 입어야 할 때 누가 도와줘?”“괜찮아요, 나 혼자서도 잘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잠깐만 나가 있어 줘요. 도윤 씨가 여기 있으면 부담스러워서 못 하겠어요.”차설아는 아직 성도윤과 그렇게까지 오픈된 관계는 아니었다.게다가 자신만 벗고 그는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니. 상상만 해도 얼굴이 뜨거워졌다.“알겠어. 그럼 욕조까지만 데려 줄게. 다 끝나면 전화해.”성도윤이 한발 물러나며 휴대폰을 욕조 옆 선반에 올려놨다.“여기 핸드폰 놔뒀어. 손만 뻗으면 닿을 거야.”“알았어요. 그러니까 이제 제발 가요!”차설아가 손을 휘저으며 성도윤을 재촉했다.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 후, 차설아는 그가 정말 나갔다고 확신하고서야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다.차설아는 원래 몸매가 좋은 편이었다. 곡선이 부드럽게 이어졌고 피부는 우유처럼 부드럽고 하얬다. 실루엣만 봐도 누구든 넋을 놓을 정도였다.그런데, 옷을 벗다가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거칠고 낮은 숨소리가 문가에서 들려오자 차설아는 순간 얼굴이 새빨개졌다.“도윤 씨, 변태예요?!”“들켰네.”성도윤의 목소리가 낮고 거칠게 갈라져 있었다. 그는 아쉬운 듯 차설아를 바라보다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불만 지르고... 알겠어, 나 간다.”그는 투덜거리며 재빨리 문을 닫고 나갔다.더 있다가는 차설아가 진짜로 그를 때려눕힐지도 몰랐다.성도윤은 자
“와, 대박! 이런 주제에 감히 남자를 뺏으려고 했다고?”그 여자들은 비웃으며 휴대폰을 꺼내 차설아와 배경윤을 마구 찍어댔다. 조롱과 비아냥이 섞인 웃음소리가 이어졌다.“으...”배경윤은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 한편으로는 차설아를 보호해야 했고 동시에 그 여자들과 맞서야 해서 허둥지둥했다.“꺼져!”날카롭고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성도윤이 험상꿎은 얼굴로 난동을 부리던 여자 하나를 단숨에 잡아채 거침없이 밀쳐버렸다. “설아야!”그는 온몸에 더러운 물을 뒤집어쓴 채 힘없이 서 있는 차설아의 모습을 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주저 없이 배경윤을 밀어내고 차설아를 와락 끌어안았다.“도윤 씨?”차설아가 손을 더듬어 그의 손을 잡았다가 순간 움찔하며 한 발짝 물러났다.“가까이 오지 마요. 나 더러워요.”“상관없어.”성도윤은 단호하게 대답하며 그녀를 다시 품에 안아 두 손을 꼭 쥐고는 후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너무 늦게 왔지. 혼자 두지 말았어야 했는데... 정말 미안해.”그 모습을 본 여자들은 겁에 질려 황급히 도망쳤다.하지만 이 장면은 누군가에 의해 영상으로 찍혀 인터넷에 퍼졌고 각종 편집과 조롱으로 도배되었다.온라인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세상에 공평한 법은 있구나. 이게 바로 업보지!][아무리 그래도 팬들이 너무 폭력적이야.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그리고 바로 이 영상을 통해 차설아가 실명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한편, 성진의 차 안.성진은 무료한 듯 핸드폰을 스크롤내리며 영상을 보고 있었다.최근 권력 싸움에서 그는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허전했다. 승리를 코앞에 두고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그러다 우연히 영상 속 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선글라스를 낀 채, 온몸에 오물을 뒤집어쓰고 초라하게 서 있는 차설아.그 순간, 그의 심장이 조여들었다.“설아의 눈이...”모든 게 퍼즐처럼 맞춰졌다.그가 가지고 있는 이 눈은 바로 차설아가 준 것이었다.여러 감
“당연히 다르지!”차설아가 단호하게 말했다.“너랑 나의 가장 큰 차이는,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도윤 씨 한 사람만 좋아했다는 거야. 그러니까 선우시원이든, 성진 씨든, 내 선택은 항상 도윤 씨였어. 하지만 넌 다르잖아... 네 마음은 진찬영 씨한테도 가고 도현 씨한테도 끌리고 있잖아. 솔직히 말하면, 너 둘 다 갖고 싶어 하는 거 맞지?”[너 진짜 무섭다!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집어내냐!]배경윤은 차설아의 날카로운 분석을 듣고 반박도 못 하고 민망하게 웃었다.사실 그녀도 자신이 왜 이렇게 고민하는지 몰랐고 이제 보니 이유는 간단했다. 너무 욕심이 많았던 거였다.“그러니까, 이제 솔직해지자. 굳이 도망갈 필요 없어. 양쪽 다 품으면 되잖아? 왼쪽엔 한 명, 오른쪽엔 한 명. 얼마나 좋아? 만약 내가 두 사람을 좋아할 능력이 있었으면 진작에 후궁 3천은 거느렸을걸?”차설아가 반은 농담, 반은 진심으로 말했다.[야, 진짜 맞는 말이네! 네 말 듣고 나니까 머리가 확 맑아졌어!]배경윤은 갑자기 머릿속이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그러더니 핸드폰을 꺼내 신나게 글을 써 내려갔다.[가만 생각해 보니까, 역사적으로 연애에서 이득 본 건 전부 남자들이었어. 우리는 애 낳아야지, 생리해야지, 시댁 챙겨야지, 애 키워야지, 일도 해야지, 불륜까지 걱정해야지... 정작 이득은 다 남자들이 보고 있잖아. 그렇게 따지면, 우리가 남편을 두 명쯤 두는 것도 합리적인 거 아니야?]“그치? 나는 진찬영 씨랑 도현 씨 둘 다 괜찮다고 보는데? 한 명은 집에서 살림하고 나 챙겨주고 한 명은 데이트하고... 완벽한 조합 아니야?”[하하하, 그러네, 그러네! 생각만 해도 너무 좋다.]배경윤은 벌써 왼쪽엔 진찬영을, 오른쪽엔 사도현을 끼고 달콤한 나날을 보내는 상상을 하며 싱글벙글했다. 그런데 갑자기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잠깐만, 그런데 말이야… 너 아까 네가 오직 성도윤 한 사람만 좋아했다고 했잖아. 설마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한 거야?]“어... 그러니까..
불과 20분도 채 안 돼서 배경윤은 성도윤은 물론 그의 주변 사람까지 깡그리 욕해버렸다.차설아는 그녀의 분노를 고스란히 느꼈고 이런 분위기에서 성도윤과 다시 화해했다는 사실을 밝힐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아 얼른 화제를 돌렸다.“됐고, 너 얘기나 해 봐. 그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촬영은 잘 끝났어? 최종 선택은 누구야?”“이 타이밍에 왜 하필 이걸 묻냐, 이 친구야!”배경윤은 코를 킁킁대며 조금 민망한 표정을 짓더니 또 귤을 집어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나 몇 회 봤는데 사도현 씨도 그렇고 진찬영 씨도 그렇고, 둘 다 너한테 진심이더라. 지금 많이 고민되겠어, 맞지?”차설아도 친구의 선택이 궁금했다.“하... 너까지 이 얘기를 꺼내다니, 나 진짜 이 주제에서 벗어날 수가 없구나.”배경윤이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퇴원 후 팬들을 만나고 오빠를 만나고 그리고 차설아를 만나기까지, 늘 똑같은 질문을 받는 것 같았다.그러다 문득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그래, 사도현과 진찬영, 둘 다 진심이었어. 그런데 나는 도대체 누구를 더 좋아하는 걸까?’“설아야, 너라면... 내가 누구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해?”배경윤은 차설아의 말을 가장 신뢰했기에 모든 기대를 걸고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너만 말해 봐. 네가 고르라고 하면 난 그냥 그 사람 선택할게.”“장난치지 마. 이런 중요한 인생 결정을 남한테 맡기면 안 돼. 네가 직접 결정해야지.”“내가 모르겠으니까 묻는 거잖아!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찬영 씨가 더 맞는 것 같아. 여러 면에서 봤을 때 우리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거든. 그런데...”배경윤이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찬영 씨가 나한테 마취 깨고 난 뒤의 영상을 보여줬거든. 그걸 보고서야 알았어. 내 무의식은 사도현한테 더 끌리고 있더라. 거의 그를 한입에 집어삼킬 기세였어. 이유 없이 스킨십하고 싶고 안고 싶고 뽀뽀하고 싶고... 나 진짜 미쳤나 봐.”“음, 알겠다. 그러니까 네가 진찬영 씨를 좋아하는 감정은 ‘영혼의 동반자’
두 사람은 점점 지루해졌다.[우리 근처 공원 가볼까? 여기 많이 변했더라. 원래 화학 공장을 지으려던 곳인데 결국 보존돼서 주민 지역으로 바뀌었대. 습지 공원도 새로 조성돼서 꽤 예쁘더라고...]배경윤은 문장을 입력하다 문득 차설아가 더 이상 앞을 볼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 문장을 고쳐 적었다.[우리 근처 습지 공원 가볼래? 공기가 정말 좋더라.]“좋아!”차설아는 고민 없이 바로 대답했다. 그녀도 사실 집에만 계속 있다 보니 너무 답답해서 누군가가 데리고 나가 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참이었다.배경윤은 차설아의 손을 잡고 함께 근처 습지 공원으로 향했다.공원 안에는 커다란 인공 호수가 있었고 호숫가엔 무성한 갈대밭이 펼쳐져 있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인증사진을 찍고 있었지만 차설아와 배경윤은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해 비교적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그곳엔 커다란 바위 하나가 호수 중앙을 향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덕분에 신선한 공기와 은은한 물풀 향기가 물씬 느껴졌고 햇살이 호수 위로 내려앉아 반짝이며 일렁였다.[괜찮으면 눈이 어쩌다 그렇게 된 건지 말해줄 수 있어?]배경윤은 귤을 까면서도 궁금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타자한 문자를 음성으로 변환해 차설아에게 물었다.“빚을 갚았어.”차설아가 담담하게 말했다.[무슨 빚이길래 네 눈까지 내줘야 했어?]“마음의 빚.”[마음의 빚이라니, 누구한테?]배경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네가 무슨 빚을 졌다고 그래? 항상 손해 보는 쪽은 너였잖아.]“성진 씨...”차설아가 낮게 한숨을 쉬었다.“예전에, 그 사람은 나를 위해 자신의 눈을 도윤 씨에게 줬어. 그렇게 똑똑했던 사람이었는데 점점 나락으로 빠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 그 모습을 보면서 너무 괴로웠어. 그의 인생을 망쳐버린 게 결국 나였으니까. 이 은혜를 갚지 않으면 평생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았어.”[뭐라고? 네 말은, 네 눈을 성진한테 줬다는 거야?]배경윤은 화가 나서 귤을 손에 꽉 쥐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