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물건이라는데, 내가 안 보는 건 오빠 체면을 안 세워주는 거 아니겠어? 한 번 봐보지 뭐.”차설아는 포도 스무디 밀크티를 한 모금 빨며 말했다."그럼 마음의 준비 잘해, 이건 좀 보기 버거울 수 있으니까.”차성철은 신비로운 표정으로 뜸을 들였다.차설아는 참지 못하고 눈을 희번덕거렸다.“얼른, 보고 나면 가서 잘 거야.”"이 게으름뱅이, 잠이 너무 많은 거 아니야? 네가 본 후에 잠을 못 잘 거라고 장담하는데...”차성철은 차설아의 휴대전화에 동영상을 보내며 말했다.차설아은 처음에는 나른한 표정으로 켜보았는데 점차 표정이 굳어졌고 손가락은 살짝 조여졌다.몇 분 뒤 차성철이 물었다."어때, 다 봤어?”"다 봤어.”"정말 다 봤어?”남자는 얄밉게 물었다.“그럼 어떤 기분이야?”"아무 느낌 안 들어.”차설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낮게 대답했다."그럴 리 없어. 감정이 없는 나도 보고 감개무량했는데 너는 정이 깊었으니 더 감회가 더 많지 않겠어?”차성철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의외였어, 성도윤은 정말 대단해. 서 씨네 아가씨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심장을 기증하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것과 같잖아. 보아하니 그는 서 씨네 아가씨를 정말 사랑하는 것 같아. 이건 완전 순애보가 다름없잖아? 내가 그 집 사람이라면 그를 때려죽일 거야!”"설마 정말 그 사람 심장을 건드린 건 아니겠지?”차설아는 문득 무언가를 깨닫고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긴장된 표정으로 물었다."그럴 리가, 이 오빠가 그의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약속했으니 단지 그를 놀라게 했을 뿐이야. 그저 이 녀석의 마음속에 도대체 누가 있는지 테스트했을 뿐이고 결과는 이렇게 나왔네!”차성철은 이를 악물었고 지금 생각해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자식이 사랑하는 것은 역시 서씨 집안의 아가씨였어, 쓰레기가 따로 없다고. 네가 그를 보호하지 않았다면 나는 벌써 그 자식을 물고기에게 먹였을 거야.”"중요하지 않아.”푸른 바다를 바라보는 차설아는 괜찮다는 듯 어깨를 으
"엄마, 빨리 봐. 오늘 아저씨가 우리를 데리고 보물창고에 갔어. 물고기도 많이 잡았고 불가사리도 잡았어. 엄청 예쁘지 않아!”작은 통을 들고 있는 달이의 작은 얼굴은 태양 아래 붉게 물들어 마치 빨간 사과처럼 귀여웠다."엄마, 봐...칠색 불가사리, 예쁘지?”녀석이 불가사리의 두 뿔을 잡고 차설아를 향해 전리품을 뽐냈다."어어, 예쁘네.”차설아는 애써 싱긋이 웃어 보였는데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엄마, 왜 그래, 기분 나빠? 누가 괴롭혔어?”달이는 칠색 불가사리를 내려놓고 차설아를 안으며 작은 얼굴을 쳐들고 긴장하여 물었다."아니야, 엄마 너무 괜찮아. 우리 달이가 최고인데, 이렇게나 많이 잡은 거야?”차설아는 애써 정신을 차리고 아이들의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함께했다.아쉽게도 그녀의 우울한 기분은 먹구름이 낀 하늘과 같이 너무 선명한 나머지 원이와 사도현, 배경윤 모두 느꼈다."설아야, 왜 그래?”배경윤이 생선이 가득 담긴 통을 내려놓고 차설아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또 그 자식이 그 못된 년이랑 꽁냥대는 거야? 너 핸드폰 줘, 내가 바로 전화해서 혼내줄게!”얼마 전, 성도윤이 서은아가 그의 현 여자친구라고 세상에 알렸다는 소식이 곳곳에 떠돌았는데 그들은 세상과 단절된 해바라기 섬에서도 제일 먼저 알게 되었다.차설아가 얼마나 실망하고 고통스러웠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사도현이 막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벌써 해안으로 돌아가서 그 쓰레기를 호되게 때렸을 것이다!"그 사람 때문 아니야, 나 기분 안 나빠.”차설아는 억지로 웃어 보였는데 우는 것보다 더 보기 안 좋았다."괜찮기는! 분명 그 자식일 거야, 그 자식이 자꾸 너를 마음 아프게 하는 건 네 존엄을 땅에 깔고 밟는 거나 마찬가지야. 네가 만만하다고 생각하는 거라고!”배경윤은 괜찮기는커녕 화가 폭발할 것 같아 아예 차설아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성도윤을 혼내주려 했다.사도현은 보다 못해 말려 나섰다."다른 이유일 수도 있으니 함부로 추측하지 마, 우리 도윤이는 정도 있고
차설아는 농담이 아니었다. 그녀는 오빠 말이 옳으니 다시 해안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렇게 차설아 일행은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해안으로 돌아갔다.차성철이 일찍 마중 나왔다.그는 오늘 학식이 해박한 학자처럼 점잖게 꾸몄는데 모습만 보면 누구도 그가 눈 깜빡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자정 살인마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동생, 여기야!”차성철은 검은색 대형 지프에 기대어 줄곧 출구를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었다.차설아와 두 녀석을 한눈에 알아보고 감격에 겨워 손을 흔들었다."동생?"배경윤과 사도현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은 뒤 차설아를 끌어당기며 물었다."이 사람은 누구야? 왜 대낮에 가면을 쓰고 이렇게 신비한 모습인 거야?”"내 오빠.”차설아는 미소를 지으며 솔직하게 대답했다.그동안 차성철과 자주 통화했지만 배경윤과 사도현은 차성철의 존재를 몰랐다."오빠? 그냥 아는 오빠?”사도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이런 촌스러운 방식으로 여자를 꼬셔?”"땡, 친오빠!”"넌 모든 사람이 너랑 같다고 생각하는구나, 머릿속에 여자 꼬시는 것밖에 없지!”"친오빠? 설마!”배경윤은 충격에 잠겼다."설아야, 너 외동딸 아니었어? 왜 갑자기 친오빠가 생겼지? 이 사람이 너 속이는 거 아니야?”"정말 내 친 오빠야, 너와 배경수처럼!”차설아는 턱을 치켜들며 거만하게 말했다.이런 교만은 가족이 있다는 든든함과 사랑받는다는 안전감에서 온다.“오빠!”그녀는 멀리서 차성철을 부르더니 어리광을 부리는 어린 소녀처럼 남자의 품에 안겼다.오빠의 품은 회화나무 아래 나른하게 누울 수 있는 소파처럼 따뜻하고 든든했다.행복이란 무엇일까?행복이란 비행기에서 내린 후 가족이 당신이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한동안 못 봤더니 왜 이렇게 살이 빠진 것 같지? 매일 밥 잘 안 먹은 거야?”차성철은 차설아를 굳게 안고는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말했잖아, 아무리 기분이 나쁘더라도 자신의 배를 곯아서는 안 돼.
두 남매의 대화에 배경윤이 부러워하며 눈물을 훔치더니 사도현을 팔꿈치로 툭툭 치며 말했다."봐, 얼마나 감동적인 남매의 정이야? 우리 설아가 이렇게 누군가한테 의지하는 게 드문데 오빠가 정말 좋은가 봐, 부럽다.”외동인 사도현은 형제애를 이해하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너도 오빠 있잖아, 네 오빠는 안 그래?”"나는 오빠랑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싸웠어. 내 성격이 너무 이상하다느니, 나를 원하는 남자가 없다느니, 평생 시집갈 수 없다느니 매일 헐뜯기만 하지...”"어릴 적에 나에게 용돈을 자기한테 맡기라고 하면서 내가 돌려달라고 하니 보관비를 내라고 하더라. 용돈 만 원에 보관비 5천 원을 줘야 한대, 그러다 내가 오빠한테 되려 빚지게 생겼다? 이런 오빠를 본 적이 있어?”“푸!”사도현은 이를 듣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네가 멍청한 건 아니고?”"야, 내가 어릴 때 오빠한테 어떤 착취를 당했는지 알아!”"하하, 괜찮아. 앞으론 내가 있으니 오빠가 어떻게 하지 못할 거야.”사도현이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었다.“...”배경윤의 볼이 확 붉어지며 애틋한 감정이 두 사람 사이에 맴돌았다.해바라기 섬에서 함께 하는 동안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각별한 애정을 느낀 듯했지만 누구도 그 관계를 더 진일보 발전시키지 않았다.사도현은 애매하게 행동은 했지만 제대로 고백한 적은 없었고 배경윤도 끊임없이 자신에게 성도윤이 쓰레기 같은 놈이니 성도윤의 친구도 당연히 좋은 놈이 아니라고 절대 마음을 움직여서는 안 된다고 자신을 최면시켰다."둘이 우물쭈물 뭐 하는 거야? 이리 와, 내가 소개해 줄게!”차설아는 배경윤과 사도현을 향해 손짓했다."우리 오빠야, 친오빠. 앞으로 너희도 오빠, 형이라고 부르면 돼.”"오빠, 이쪽은 내 유일한 절친 배경윤이야.”"이쪽은...”차설아는 사도현을 보면서 그의 신분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몰랐다.어쨌든 사도현은 성도윤의 친구인데 만약 차성철이 알게 된다면 사도현은 아마 위험할 것이다!"
공기는 순식간에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사도현은 표정이 굳어 한참 후에야 다시 킥킥거리며 차성철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 알고 보니 인연이 깊었네요. 오래전부터 명성은 잘 들었습니다!”“확실히 인연이 깊네요...”차성철은 미소를 지었지만 눈동자는 차갑게 말했다.“저도 도현 도련님을 바다에 던져 버리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거든요.”“하하하, 형님 농담이 심하시네요!”“나는 그때 우리 도윤이때문에 형님이 우울증에 걸려 숨어서 감히 나와 다니지 못하는 줄 알았잖아요.”“도현 도련님도 농담이 심하시네, 우울증에 걸렸는지 안 걸렸는지는 보면 알지 않겠어요.”“그럼요, 보다가 목숨이 날아가겠죠.”둘은 싱글벙글 웃었지만 말에는 가시가 있었다.차설아와 배경윤은 저절로 한쪽으로 물러났다.“자, 두 사람도 그만해. 여기서 길 막지 말고.”차설아는 원이와 달이를 끌어당기며 말을 이었다.“얘들아, 이분은 엄마가 너희한테 말했던 외삼촌이야. 얼른 외삼촌이라고 불러.”“외삼촌!”“응, 원이 달이, 삼촌이 엄청 보고 싶었어. 우리가 드디어 만났네? 삼촌이 안아보자!”차성철은 원래 사도현과 계속 기 싸움을 하고 싶었지만 두 아이를 보자마자 마음속에 큰 화가 이내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고 주저앉아 한 손에 하나씩 아이들을 안았다.“외삼촌도 Q 아빠처럼 가면을 쓰고 다니세요? 혹시 Q 아빠를 아세요?”호기심 많은 원이가 물으며 작은 손으로 차성철의 가면을 벗기려 했다.“어, 원이야, 가면 만지면 안 돼요!”차성철은 심각한 표정으로 제지했다.“왜요?”“외삼촌이 나쁜 놈에 의해 얼굴이 망가져서 큰 흉터가 났는데 너희들을 놀라게 할까 봐 걱정돼서 그래.”차성철이 솔직하게 말했다.그러자 달이가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아요, 우리 삼촌이니까 두렵지 않아요. 흉터는 삼촌만의 시그니처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없는걸요!”“어...”녀석의 말에 차성철의 돌 같이 굳었던 마음이 저절로 부드러워지는 기분이었다.그는 이미 오랫동안 이런 느낌을 받지 못했
“아, 괴물이야!”“깜짝이야, 얼굴이 반 갈린 거야? 너무 무서워!”차성철의 존엄이 짓밟혔고 그는 재빨리 가면을 다시 쓰고는 비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놀라게 해서 미안하네...”“아니, 아니야...”차설아는 매우 마음이 아팠는데 차성철을 위로에 나섰다.“나는 오빠는 매우 잘생겼다고 생각해. 특히 눈, 엄마의 눈을 많이 닮았어. 부드럽고 확고한걸? 그리고 입은 아버지를 많이 닮았어. 입술 모양은 특히 아름다워. 우리가 혈연관계가 아니었다면 나는 분명히 오빠한테 첫눈에 반했을 거야!”“정말이야?”차성철의 어두운 눈동자가 금세 밝아졌다.친엄마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수없이 그려봤지만 항상 뚜렷하지 못했는데 차설아의 말을 들으니 금세 모습이 상상되었고 마음도 부드러워졌다.“물론이지, 경윤이한테 물어봐. 전에 우리 집에 자주 놀러왔어서 엄마 아빠의 모습도 잘 알고 있어... 그렇지, 경윤아?”“맞아, 맞아!”배경윤은 방금 차성철의 얼굴에 난 상처에 놀랐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남자는 성도윤, 사도현 그들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잘생긴 듯했는데 심지어 성도윤, 사도현 그들보다 더 잘 생겼다고 할 수 있었다.차성철의 눈은 특이하고 많은 사연이 담긴 느낌이었는데 그 특별한 눈은 바로 그의 어머니를 물려받았다.차설아의 어머니는 소영금과 함께 해주시 제일의 미인으로 손꼽혔었다.“오빠의 눈은 정말 엄마랑 똑같아요, 아까 하마터면 엄마를 본 줄 알았다니까요...”배경윤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그럼 다행이네.”차성철의 상처받은 마음은 차설아와 배경윤의 말에서 점차 치유되었고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어올랐다.바로 이 미소가 그를 존귀하고 우아한 왕자처럼 보이게 하고 온몸에서 빛이 나게 했다.그러자 사도현은 갑자기 찬물을 끼얹었다.“쯧쯧, 우리 도윤이도 그땐 너무 지독했어. 단칼에 얼굴을 두 동강 내다니... 이렇게 괴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니 누가 보고 악몽을 꾸지 않겠어?”차설아: “...”배경윤: “...”사도현: “두 사람 왜 날 노려보고 그래
“제가 거짓말을 해서 뭐 해요!”사도현은 직접 차성철의 어깨에 손을 얹고 가슴을 두드리며 맹세했다.“걱정하지 마세요, 형님. 설아 오빠니 제 형님이나 다름없습니다. 제가 어떻게 당신을 속일 수 있겠어요? 저도 형님이 잘되기를 바라는걸요!”“하지만 넌 성도윤과 한패잖아, 네가 좋은 사람일 리가 있겠어?”차성철은 눈살을 찌푸리며 남자가 자신의 어깨에 걸친 손을 보고 한칼에 베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요 몇 년 동안 그는 사람들을 매우 경계했는데 사람들과 이렇게 가까이 지내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이젠 아니에요. 지금부터 전 성정엽의 그 야박하고 냉혈한 놈과 선을 그을 겁니다!”사도현은 과장된 손짓을 하며 말했다“저는 지금부터 형님과 같은 편입니다.”“방금 한 말 농담 아니에요. 형님이 괜찮으면 나중에 그 성형외과 의사 소개해줄게요. 얼굴 잘 고칠 수 있는지 평가나 하라고 하죠.”“그러지 그럼.”차성철은 고개를 끄덕였고 눈빛의 경계는 아까처럼 그리 깊지 않았다.두 사람은 차에 앉아 수다를 늘어놓기 시작했는데 차성철은 심지어 열정적으로 사도현을 성심 전당포에 초대하여 그와 술 한잔하자고 하였다.차설아와 배경윤은 뒷줄에 앉아 의문을 품고 서로를 바라보았다.차설아: “뭐야, 두 사람이 어떻게 호형호제하기 시작했지? 내가 뭘 놓친 거야?”배경윤: “희한할 게 뭐가 있어. 완전 핵인싸가 바로 사도현 같은 사람을 말하는 거야!”차설아: “하지만 너무 빨리 변한 거 아니야? 우리 오빠랑 성도윤은 완전 원수인데?”배경윤: “하긴, 너무 빨리 변하긴 했어, 뭘 하려는 거지?”차설아: “음모가 있어!”배경윤: “어, 분명 음모가 있을 거야!”네 사람은 기분 좋게 성심 전당포로 돌아왔다.차성철은 직접 요리해서 그들을 잘 대접하겠다고 큰소리쳤다.사도현은 그를 졸졸 따라다니며 말했다.“형님, 제가 같이 갈게요. 요리 좀 가르쳐 주세요.”그러다 두 남자는 주방에서 수다를 떨기 시작했는데 마치 커플 같아 너무 이상했다.차설아와 배경윤은 소파에
“아, 이거? 오빠 취향인데 전시장에 수십 개가 더 있던데. 마음에 들면 몇 개 선물해 달라고 해.”“와.. 대박! 완전 부자잖아!”배경윤은 눈물을 훔치며 말을 이었다.“설아야, 너는 정말 완벽한 인생을 살고 있잖아? 부잣집 출신에 능력까지 다 출중해 KCL 대표로 자리 잡고 있지, 어디 그뿐이야? 이쁘고 똑똑한 아들딸에, 갑자기 튀어나온 오빠까지 이 정도라니... 나 같은 평범한 여자들은 어떻게 살라는 거야?”“아, 깜빡했네. 그 쓰레기가 좀 흠이지... 그래도 괜찮아, 어차피 너도 지금은 그 쓰레기랑 인연을 끊었으니까 앞으로는 혼자 잘 먹고 잘살면 돼...”“우리 귀여운 배경윤 여사님, 넌 부잣집 출신이 아니세요? 오빠가 없나요? 가장 대단한 건 넌 든든한 남자가 있잖아. 내가 널 부러워해야 맞지.”“남자?”배경윤은 얼굴을 찡그리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무슨 남자? 난 모르겠는데?”“웃기시네, 저기 있잖아!”차설아는 부엌 쪽을 한 번 보고는 배경윤을 덥석 껴안으며 능청스레 물었다. “솔직히 말해! 사도현이랑 어디까지 갔어? 언제 결혼할 건데?”“뭐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배경윤은 뺨을 붉히며 소녀의 수줍음을 드러냈다.“우리 둘은 그냥 같이 아이들을 돌봤을 뿐이야, 애초에 같은 세계의 사람이 아니라고... 친구도 아닐걸?”“아까 그러면 왜 쟤는 자기가 네 서방님이라고 하는 건데?”“원래 그런 사람이야, 여자라면 꼬시는... 썸에 중독된 바람둥이라고!”배경윤은 그동안의 두 사람의 만남을 떠올리며 왠지 짜증이 났고 이가 갈렸다.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며 처음부터 그녀가 스스로 김칫국을 마신 거기에 심지어 화를 낼 자격조차 없었다...“알아.”차설아는 굳은 표정으로 배경윤의 어깨를 툭툭 치며 "이건 네 문제가 아니야. 사도현 잘못이지. 그러니까 넌 크게 자책하지 마.”라고 위로했다.“설아야, 내가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 때때로 난 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져. 사도현 때문에 내
“그, 그래. 그러는 게 두 사람한테 좋은 거겠지...”소영금은 머뭇거리다가 결국 진무열의 말을 따랐다. 원이는 혼자 큰 병실에 들어갔고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는 성도윤을 발견했다.성도윤은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얼굴이 창백했다. 살짝 밀어놓으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상태가 좋지 않았고 몸이 허약해 보였다.성도윤의 두 눈은 초점 없이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카리스마 있고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을 내뿜던 눈은 영혼이 빠져나가기라도 한 듯 빛을 잃었다.성도윤을 탐탁지 않아 하던 원이마저 그 모습을 보고 마음 아파했다.‘이 찌질한 아빠를 어쩌면 좋아? 너무 불쌍해 보이잖아. 이러면 뭐라고 할 수도 없어.’혀를 끌끌 차면서 성도윤을 혼내고 싶었지만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원이는 우물쭈물하더니 조심스럽게 성도윤을 불렀다.“저기요.”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성도윤은 원이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고개를 돌렸고 눈에 생기가 돌았다.“원, 원이야?”성도윤의 머릿속에 세 식구가 해바라기섬의 바닷가에서 뛰어놀던 화면이 번뜩 떠올랐다.“이제는 제가 누군지 아시나 봐요?”원이는 무뚝뚝하게 대답하려고 했지만 자신을 알아봐 준 성도윤한테 그러고 싶지 않았다.“당연하지. 너는 내 아들이잖아. 원이야, 이리 와.”성도윤은 감격스러운 어조로 말하면서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했다. 원이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과 달리,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성도윤은 밀려오는 통증에 상처 자국을 움켜쥐고 인상을 찌푸렸다. 원이는 재빨리 침대맡으로 다가가서 말했다.“수술받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침대에서 내려와요? 얼른 누우세요. 일단 하고 싶은 말만 하시고요.”어린 원이는 어른처럼 사뭇 진지하고 엄숙한 어투로 당부했다. 그러고는 작은 손으로 성도윤의 손등을 살며시 어루만졌다.“그래. 먼저 너랑 얘기를 나누는 게 좋겠어.”성도윤은 원이의 말대로 자리에 누우면서 미소를 지었다. 원이의 작은 손이 성도윤의 손등에 닿을 때, 따뜻한 기운이 스며들면서 성도윤에게 살아갈 희망을 주
소영금은 보디가드를 뒤로하고 원이와 함께 성도윤이 있는 병실로 향했다. 병실의 문을 열려던 소영금은 다시 손을 거두었다.“할머니, 왜 그러세요? 어서 들어가요.”원이는 큰 눈을 깜빡이면서 소영금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네 아빠가 수술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어. 의식이 돌아오긴 했지만 아직도 회복 중이야. 도윤이가 너를 보고 더 충격받으면 안 되는데...”소영금은 성도윤이 늘 걱정되었다.뇌수술이 순리롭게 끝났지만 의식을 되찾은 성도윤은 슬픔에 잠겨 창밖을 종종 내다보곤 했다. 작은 곳에 자신을 가두어 놓고 외부와 접촉하려고 하지 않았다.그래서 소영금은 성도윤이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다시 기억해 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원이와 만나게 했다가 자칫 상태가 악화하면 자극받은 성도윤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할머니는 아들을 그렇게 못 믿으세요? 생각보다 강한 사람일 거예요. 그리고 제가 괴물도 아닌데 왜 저를 보고 충격을 받겠어요? 만약 이번 만남으로 인해 충격받고 쓰러질 나약한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도움을 청하러 찾아오지도 않았을 거예요.”원이는 어린아이답지 않게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성도윤이 나쁜 남자인 건 맞지만 능력 있는 든든한 어른이었다.그렇지 않으면 차설아의 마음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엄마를 사랑한다면서 엄마를 지키지 못한다면... 남자로서 실패한 인생이라고 해야겠지.’“네 말을 들어보니 또 그런 것 같구나.”소영금은 원이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성대 그룹의 대표가 나약한 인간이었다면 진작에 회사를 날렸을 것이다. 소영금이 머뭇거릴 때, 병실 안에서 성도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밖에 누구 있어요?”“보스, 제가 나가볼게요.”병실의 문을 열고 나온 진무열은 소영금과 원이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누가 왔나 했더니, 원이 도련님이셨군요! 두 분이 같이 오신 건가요?”“아니. 이 어린아이가 글쎄 여기까지 혼자 왔다지 뭐야? 원이는 너무 똑똑해.”소영금은 말하면서 병실 안쪽을 들여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꼬마야, 이곳은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부모님은 어디에 계셔? 당장 돌아가.”키가 훤칠한 보디가드는 무기를 들고 인상을 찌푸린 채 원이를 노려보았다. 소영금은 병실과 엘리베이터 앞, 병원 내부 곳곳에 보디가드를 배정해 두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많은 인력을 투입한 것이다. 원이는 순리롭게 병원 내부로 들어갔지만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멈춰 섰다.“성도윤이 저의 보호자예요. 얼른 만나게 해주세요. 믿지 못하겠으면 저를 데리고 가주세요.”원이는 덩치가 몇십 배 더 큰 보디가드 앞에서 주눅이 들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네 장난에 내가 속을 줄 알아? 감히 성대 그룹의 성도윤 대표님을 만나려고 해? 꼬마야, 장난칠 거면 집으로 돌아가.”보디가드는 원이를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경계하더니 말을 이었다.“이제는 어린아이까지 동원해서 대표님을 해치려고 하는구나.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을 거야. 누구의 지시를 받고 여기까지 온 거지? 말하지 않으면 내가 직접 죽여줄게.”보디가드는 어느 가문에서 성씨 가문에 복수하기 위해 어린아이를 보낸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고는 원이의 어깨를 꽉 붙잡고 허공에 들어 올렸다.“어떤 무기를 갖고 왔는지 당장 말해! 내놓으란 말이야! 이번에는 독약인가?”“이것 좀 놓으세요. 나를 괴롭힌 걸 엄마가 알게 되면 당신들은 무사하지 못할 거예요! 이 손 놓으라고요.”원이는 허공에서 발버둥 치면서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이 생겨도 늘 침착하던 원이는 일을 크게 벌이기 위해 일부러 소란을 피웠다.성도윤이 원이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만날 수 있을 것이다.“조용히 하지 못해? 이 자리에서 당장 죽여줄 수도 있어. 그 입 당장 다물어! 어린놈이 목소리는 왜 이렇게 큰 거야?”보디가드는 다른 환자들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원이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뚝뚝 떨어졌고 심장이 벌렁거렸다.‘보디가드 경력만 10년이 넘는데 꼬맹이 때문에 벌벌 떠는 꼴이라니... 우스운 모습을 보였어. 이러면 내 체면이 뭐가
하지만 이미 늦가을로 접어든 시기라 쌀쌀해진 날씨와 빨리 지는 해 때문에 이 시간에는 산책로에 사람도 거의 없었다.그런 길을 원이를 데리고 걷던 서은아는 자연스레 발걸음을 늦추며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꼬맹이, 넌 왜 혼자 온 거야? 엄마는? 너 혼자 나가는 데 걱정도 안 해?”“엄마가 사라져서 엄마 좀 찾아달라고 유전학적 아빠 찾아온 거예요.”성도윤이 병원에 입원해있다는 것도 차설아가 성진의 별장에 있다는 걸 알아낸 원이는 어린아이의 몸으로 그 먼 산까지 가서 엄마를 데려오는 건 비현실적일 것 같아 자신의 지원군을 얻기 위해 성도윤이 입원해있는 병원으로 온 것이다.“그런데 네 엄마 아빠는 이미 헤어진 사이잖아. 네 아빠가 엄마를 찾아줄 이유는 없는데 자꾸 이런 일로 아빠 귀찮게 하면...”“당신이 뭔데 의무가 있다 없다 에요, 우리 아빠도 아니면서. 그쪽이랑은 상관없는 사람이잖아요?”“내가 네 아빠랑 무슨 사인지 너도 잘 알잖아.”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서서 원이를 내려다보던 서은아의 눈빛이 점점 더 차가워져 갔다.“난 네 아빠랑 곧 결혼할 사람이야. 네 아빠는 네 엄마를 버리고 나랑 결혼하기로 했다고. 그런데도 내가 상관없는 사람이야?”“내연녀라는 말을 뭐 그렇게 거창하게 해요? 아줌마 입으로도 직접 말했잖아요, 곧 결혼할 사이라고. 그럼 아직은 상관없는 사람 맞네요.”어른들보다 더 분명한 사리로 서은아를 상대한 원이는 여전히 표정을 굳히고 있었다.물론 원이도 제 엄마를 버린 아빠를 뼛속 깊이 원망하고 있지만 그래도 내연녀 앞에서만은 밀릴 수가 없었다.아빠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은 이상, 엄마에 관한 일을 책임질 사람은 여전히 아빠였다.“넌 이렇게 똑똑하고 용감한데... 네 엄마는 너무 바보 같아. 이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 이렇게 널 혼자 내보냈으니 말이야. 가장 복잡한 게 인간의 마음인데, 오늘 날 만난 걸 다행으로 여겨. 내가 친절히 가르쳐줄게.”말을 마친 서은아는 순간 눈을 번뜩이더니 원이의 어깨를 잡고 그를
잘생긴 원이의 얼굴을 한참 뜯어보던 간호사는 성도윤과 묘하게 닮은듯한 이목구비에 가십거리를 알아낸 듯 익살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아, 너 대표님 아들이지?! 엄청 똑같게 생겼다!”성도윤의 아들이라는 말을 아주 싫어했던 원이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애어른 같은 말투로 말했다.“저는 그분 아들이 아니에요. 그분도 제 아빠가 아니시고요. 그냥 유전자로 엮여있는 것뿐이에요. 자기 아들도 못 알아보는 아빠는 세상에 없잖아요?”“어...”원이의 말에 간호사가 어쩔 줄 몰라 할 때 서씨 집안에서 보내온 영양제를 잔뜩 챙겨 들고 성도윤을 보러 온 서은아가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성도윤이 깨어났다는 소식만 들었지 그가 차설아를 기억해냈는지에 대해서는 들은 게 전혀 없었기에 서은아는 당장이라도 병실로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소영금이 앞뒤로 경호원만 열댓 명을 붙여놓은 탓에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몰라 답답해하고 있던 와중에 간호사와 얘기 중이던 원이가 그녀의 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그제야 방법이 떠오른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아이에게로 다가가 물었다.“꼬마야, 너 나 알아?”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서은아를 힐끗 본 원이는 표정을 찌푸리며 말했다.“알죠, 내 유전학적 아빠한테 들러붙는 여우 아줌마잖아요!”그 말에 화가 치밀어올랐지만 차마 화를 낼 수는 없었던 서은아는 주먹만 꼭 쥐며 말했다.“날 안다니 다행이네, 그럼 잘됐다. 너 아빠 보러 가고 싶은 거지? 아줌마랑 같이 가자.”“싫어요.”똑똑한 원이는 서은아가 이상한 일을 꾸미고 있다는 걸 바로 눈치채고는 단칼에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여우 아줌마는 나 갖다 팔 수도 있는 사람이잖아요. 나한테서 떨어져요!”그 말에 서은아는 당장이라도 아이의 뺨을 때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공공장소라 안간힘을 쓰며 참아냈다.“간호사 누나, 나 빨리 유전학적 아빠한테 데려다주세요.”서은아에게 한마디 하고 난 원이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고개를 들고 간호사를 보며 말했다.“그래, 나 따라와 아가야.”그런데
드디어 한시름 놓은 차설아가 묻자 달이는 천진한 표정으로 답했다.“그야 오빠가 괜히 어른들 걱정시킨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으니까요.”“걱정할 걸 알았으면 혼자 나가질 말았어야지.”차설아는 화낼 새도 없이 김정민을 향해 말했다.“이모, 얼른 원이한테 연락해서 어딨는지 물어봐 줘요.”“전화하고 있는데... 안 받아요.”“위치추적은 돼요?”“워치가 꺼져있어서 그것도 안 돼요.”“괜찮아요, 저한테 방법이 있으니까 노트북 좀 줘보세요.”달이랑 원이를 잃어버렸을 때를 대비해 차설아는 전에 아이들의 워치에 위치추적 어플을 깔아둔 적이 있었다. 그건 핸드폰이 꺼졌거나 배터리가 없을 때도 위치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어플이었기에 차설아는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리며 마지막 로딩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화면에 원이 위치가 뜰 텐데, 보여요?”“내, 보여요!”눈을 감고도 키보드를 치는 차설아에 놀란 것도 잠시,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녀에 김정민은 다급히 화면으로 시선을 돌리며 답했다.“지금... 재원 병원에 있다고 나오는데요?”“병원이요?”원이의 코딩기술 정도라면 자신의 위치를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기에 지금쯤 성진의 별장에 있을 거라 예상했던 차설아는 뜬금없는 위치에 미간을 찌푸렸다.어쩌다가... 재원 병원까지 간 거지?---한편 재원 병원 앞에 서서 몇 번이나 병원 이름을 읽어보던 원이는 틀림없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작지만 당찬 아이가 씩씩하게 걸어들어오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지나치던 간호사 하나가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말을 걸어왔다.“아가야, 너 혼자 온 거야? 부모님은 어디 계셔?”“사람 좀 찾으러 왔는데요.”원이는 어른스러운 표정으로 간호사를 보며 말했다.“예쁜 누나, 혹시 성도윤이라는 환자분 어느 병실에 입원해있는지 아세요?”“성 대표님 찾아온 거야?”간호사는 아이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웃으며 알려주었다.“그럼 사람 잘 찾았네. 대표님 며칠 전에 뇌수술 마치고 입원해계신 데 내가 담당
“오빠는 볼일 있다고 나갔는데 민이 이모가 오빠 걱정된다고 아까 찾으러 나갔어요.”제 오빠가 집 밖을 나가는 건 자주 있는 일이라 달이는 차분하게 엄마의 질문에 답했다.달이한테 오빠는 자신이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는 천재였기에 그녀는 오빠가 매일 같이 나가도 한 번도 걱정한 적이 없었다.“뭐? 또 어디 간 거야?”하지만 엄마인 차설아는 잠깐이라도 한눈만 팔면 그 틈을 타 밖으로 나가버리는 원이 때문에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하지만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이 상황에 나가서 아이를 찾을 수도 없었기에 초조해하고 있는데 그때 김정민이 집으로 들어왔다.“아가씨, 오셨어요? 원이 도련님이 또 집을 나가셨어요! 어떡해요? 동네를 한 바퀴 다 돌았는데 어딨는지도 모르겠고...”밥을 하는 사이에 나가버린 원이 때문에 김정민은 아직도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원이가 나가기 전에 무슨 이상한 말을 했다거나 요즘 이상한 행동을 했다거나 한 적은 없었어요?”“별말은 하지 않고 그냥 몰래 나간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 아가씨가 영상통화 안 해준다고 아가씨한테 무슨 일이 난 것 같다면서 구하러 가겠다는 말을 한 적은 있어요. 저는 그냥 애니메이션 보고하는 말인 줄 알고 별로 신경을 안 썼었고요.”미간을 찌푸리며 묻는 차설아 김정민은 한숨을 앞세우며 답했다.“다 제 불찰이에요. 원이 도련님은 지능이 남달라서 보통 아이처럼 대하면 안 됐던 건데... 구하러 간다는 말이 장난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아마 그때부터 계획하고 있었을지도 몰라요...”손을 휘적이며 김정민에게로 다가간 차설아는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이모 잘못 아니니까 자책하지 마세요. 따지면 제 잘못이죠. 제가 제대로 설명을 안 해서 모두를 걱정시켰어요.”차설아의 반응이 자신의 예상과 달라 이상하다고 느낀 김정민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자세히 보며 물었다.“아가씨, 이 밤에... 왜 선글라스를 끼고 계세요?”“그냥 산 타다가 눈을 좀 다쳐서 시력이 안 좋아졌어요. 병원 가봤는데
“어릴 때부터 지내던 곳이라 이곳 구조는 이미 몸에 익었어요. 눈 감고도 갈 수 있는 길이니까 걱정 마요.”자신이 정말 갈 수 있는 길이기도 했고 또 현이를 걱정시키고 싶지도 않았기에 차설아는 웃으며 말했다.“그, 그럼 조심하세요.”“네, 이제 그만 가봐요.”현이를 향해 손을 저어주던 차설아는 그녀가 떠났음을 확인하고서야 난간을 더듬으며 현관문을 찾아 비밀번호를 입력했다.전부터 감지력과 관찰력이 뛰어났던 차설아는 현이에게 한 말대로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집안으로 정확히 걸어가 문을 열고 오랜만에 익숙한 아이들의 이름을 소리높이 외쳐봤다.“원아, 달아!”“엄마!”차설아의 부름에 2층에 있던 달이는 서둘러 1층으로 뛰어가 그녀의 품에 폭 안겼다.“엄마! 왜 이제야 왔어요! 너무 보고 싶었다고요.”자신에게 애교를 부려오는 예쁜 딸의 머리를 쓰다듬던 차설아는 웃으며 물었다.“엄마 없을 때 떼 안 쓰고 잘 있었어?”“당연하죠. 나 이제 은하수 어떻게 그리는지도 아는데, 얼른 가요! 내가 보여줄게요!”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인 달이는 엄마의 이상함도 눈치채지 못하고 신나서 방방 뛰며 차설아의 팔을 잡고 계단을 올랐다.차설아는 몇 번이나 턱에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서도 달이를 놀래키지 않으려 힘겹게 아이의 방까지 걸어갔다.발 빠르게 며칠 전에 그렸던 그림들을 꺼내온 달이는 칭찬을 바라는듯한 얼굴로 환히 웃어 보였다.“엄마, 이거 내가 그린 은하수예요. 반고흐 할아버지 거랑 비슷하죠? 오빠는 내가 그린 게 더 예쁘다고도 했어요!”“예쁘지, 너무 예쁘다. 우리 달이는 진짜 그림 천잰가 봐.”아무것도 볼 수 없던 차설아는 선글라스를 낀 채로 맞장구를 쳐주고 있었지만 앞으로는 이렇게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도, 아이들이 그린 거, 만든 거 그 어느 것 하나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가슴이 점차 저릿해졌다.“엄마는 저녁에 왜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요? 내가 여기에 색깔도 여러 개 섞어놨는데, 선글라스 끼고 있으면 잘 안 보이지 않아요?”천진난만
박서영의 말에 별 의심 없이 약을 받아 마신 성진은 눈이 아픔에도 박서영이 전화를 거는 모습을 보려고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그렇게 점차 의식이 흐려져 가던 성진이 쓰러질 때, 박서영은 수화기 너머의 현이를 향해 다급하게 외쳤다.“현아, 빨리 차설아 씨 모셔와!”의사가 처방해준 약은 눈을 푹 쉬게 하라는 의미에서 수면제의 효과도 같이 내는 약이었는데 그래서 잠시 기절한 것뿐이었다.떠나기 전 성진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싶다던 차설아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박서영이 때마침 성진에게 약을 건넨 것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현이와 함께 방으로 들어온 차설아가 박서영을 향해 물었다.“어때요? 시력은 회복한 거예요? 배척반응은 없고요?”상처가 아직 다 아물지 않아 선글라스를 낀 탓인지 차설아는 전보다도 더 도도해 보여 전혀 실명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그녀가 강인해 보이려고 애쓸수록 현이와 박서영은 점점 더 마음이 아팠고 그들의 죄책감도 깊어져 갔다.“회복은 잘 됐는데 오랜만에 눈을 뜨는 거라 눈이 아플 수는 있대요...”침대에 기절한 채 누워있는 성진을 보던 박서영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문제가 하나 생기긴 했는데... 도련님이 워낙 똑똑하셔서 눈만 보고도 차설아 씨 눈이란 걸 알아차리신 것 같아요. 저한테 당장 대학생 찾아오라고 하셔서 급한 대로 일단 약부터 먹인 거예요. 이 약 아니었으면 오늘 진짜 경을 쳤을 거예요.”“그건 내가 미리 대처하라고 했었잖아요. 나랑 눈 비슷한 대학생 찾아두라고. 아직 못 찾은 거예요?”“아니요, 찾긴 찾았는데... 그러면 또 수많은 거짓말을 해야 하니까... 그럴 거면 아예...”박서영은 자신이 내뱉는 말이 터무니없다는 걸 알면서도 입술을 깨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도련님한테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앞으로 도련님더러 차설아 씨를 보살피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절대 안 돼요!”차설아는 역시나 그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진이 성격은 서영 씨가 나보다도 더 잘 알잖아요. 내가 눈을 준 걸 알게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