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두 사람이 정말 연인이 된다면 사도현은 그녀의 공격을 막게 호신술이라도 배워야 할 것 같다.“두 사람 그만해. 아이 두 명 돌보는 것도 머리 아파죽겠는데 더 이상 날 피곤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차설아는 관자놀이를 어루만지며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사도현은 그런 그녀 곁으로 다가가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걱정하지마. 형이라면 금방 일을 해결하고 이곳으로 올 테니까.”이에 차설아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하며 그를 향해 물었다.“뭘 알고 있나 봐요?”“글쎄,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고.”배경윤은 모호한 그 말에 사도현을 힘껏 노려보았다.“제대로 말 안 해?”“알았어. 얘기할 테니까 또 흥분하지 마.”사도현은 금세 꼬리를 내리며 말을 이어갔다.“형이 전화를 안 받아서 우리 집에 연락해 봤더니 성대 그룹에 문제가 생겼다 하더라고. 협력 업체였던 서씨 가문에서 갑자기 성대 그룹 경쟁사와 손을 잡고 성대 그룹을 상대하는 모양이야. 그래서 성대 그룹은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거고.”“서씨 가문이요?”차설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그녀도 성도윤과 재결합하게 되면 이런저런 문제가 터져 순조롭지 않을 건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그래. 나도 최근에서야 알게 된 건데 서씨 집안과 성씨 집안에서 줄곧 결혼 제의가 오갔던 모양이야. 서은아와 형을 맺어주려고 날짜까지 정한 것 같은데 너랑 형이 재결합하는 바람에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됐지. 그래서 그 집안 회장님이 화가 나 그 자리에서 수백억 가치가 되는 화병들을 수십 개나 깨트렸다 하더라고.”사도현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뱉었다.“서은아는 형이랑 친구처럼 지냈으니까 이 일로 형한테 불이익이 닥칠까 봐 무려 3일을 무릎 꿇고 빌었대. 그러니 회장님도 어쩌겠어. 이렇게까지 하니 넘어가려고 했지. 그런데 난데없이 회장님 애인이 울며불며 복수해달라고 난리를 친 거야. 그래서 서씨 가문은 옛정이고 뭐고 없이 성씨 가문과 지금 이 사태까지 오게 된 거고.”“그게 무슨 소리야?”배경윤이
배경윤 역시 두 팔을 벌려 그녀의 앞길을 막았다.“방금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 더더욱 너를 보낼 수는 없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 곳에 널 어떻게 보내.”차설아는 두 사람의 걱정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너무 걱정하지 마. 난 이 갈등을 해결하러 가는 거야. 그리고 무슨 일이 생겼다고 해도 그건 내가 아니라 그들일 거야. 내 실력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아는데, 그 사람들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 그래!”사도현도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이 해안시에서 형을 끌어내리려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서씨 가문은 그저 그중 하나일 뿐이라고.”“그래서요? 덤빌 테면 다 덤비라고 해요. 똑같이 갚아줄 자신 있으니까.”차설아는 굳게 주먹을 쥐었다. 그녀의 예쁜 얼굴에서는 절대적인 자신감이 묻어있었다.“말은 쉽지. 너 근 몇 년간 왜 사람들이 형을 끌어내지 못했는지 알아? 힘이 부족해서? 성씨 가문이 너무 강해서? 아니, 형한테는 그동안 약점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너와 아이들이 있어. 그 말인즉슨 약점도 그만큼 많아졌다는 거지. 이번에는 어떻게 될지 솔직히 나도 장담 못 해...”사도현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아마 형이 갑자기 해바라기 섬에서 나간 것도, 너한테 연락을 하지 못한 것도 다 너랑 아이들 안전을 보장해 주려고 그런 걸 거야. 그러니까 네가 지금 그쪽으로 가는 건 오히려 형의 짐이 될 뿐이라고.”“도현 씨 말도 일리가 있어요. 하지만 나는 이대로 그 사람이 만들어준 안전한 보호막 속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숨어있을 생각 없어요. 같이 싸워서 같이 이겨낼 거예요.”차이설은 단호한 얼굴로 대답했다.“안 돼. 너 지금 제정신 아니야. 거길 어디라고 가.”배경윤은 급기야 차설아의 허리를 감싸 안더니 붉어진 눈으로 사도현에게 도움을 청했다.“빨리 차설아 좀 말려 봐. 얘 한 번 고집 피우면 끝이 없으니까!”사도현은 차설아를 굳게 잡고 있던 배경윤의 손을 풀어준 후 침착하게 말했다.“만약 네가 정말 갈 생각이라면
배경윤은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사도현의 뒷말을 막았다.“뭐가 이렇게 야만적이야. 그렇다고 어떻게 사람 목숨을...”“이건 드라마라서 오히려 수위가 약한 거야. 현실은 이것보다 더한 것도 많으니까.”그 말을 하는 사도현의 표정은 조금 초연해 보였다.그 역시 해안시 8대 명문가 중 한 가문의 일원으로서 지금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일을 겪고 들었다. 현실은 언제나 드라마보다 더 잔인할 뿐 절대 덜하지는 않았다.“그러니까 도윤 씨가 로버트고 나는 잔인하게 배가 뚫려 죽는 그 사람 아내라는 건가요? 그래서 내가 지금 이곳을 떠나게 되면 똑같이 죽게 될 거고?”차설아가 사도현을 바라보며 물었다.“서씨 가문은 절대 만만하게 볼 게 아니야. 지금 그 자리까지 올라오게 된 건 그만큼 뒤가 구린 짓을 많이 했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만약 네가 지금 나서게 되면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꼴이 돼 버려.”“그래, 그러니까 지금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좋아. 나도 이번만큼은 사도현과 같은 생각이야.”배경윤은 맞장구를 치며 사도현에게 잘했다는 눈빛을 보냈다.플레이보이라서 그런지 역시 말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는 남자였다.“알겠어. 그럼 조금만 더 기다려 볼게.”차설아는 결국 그들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그래 잘 생각했어.”배경윤은 그제야 안심한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고는 사도현과 눈을 마주치며 활짝 웃었다. 아마 두 사람이 일심동체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그날 밤, 그들은 술을 마셨고 밤이 깊도록 얘기를 나눴다.아이들도 11시가 다 되도록 잠들 기미가 없어 보였고 엄마와 함께 자고 싶다며 졸랐다.별 모양으로 가득한 아이들 방 안에서 차설아는 결국 아이를 양옆에 끌어안고 침대 정중앙에 누웠다.아이들은 그녀의 팔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귀여운 아기 고양이들 같았다.“엄마, 아빠는 언제 와요? 달이는 아빠가 보고 싶어요.”달이가 입을 삐죽 내밀며 투정을 부렸다.원래부터 두 아이는 성도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
두 아이는 망설임 없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당연히 아빠랑 같이 싸워야죠!”특히 원이는 귀여운 얼굴에 그렇지 못한 성숙한 표정으로 어른 못지않게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아이는 손으로 턱을 괴더니 작전을 세우기 시작했다.“아니면 엄마는 달이랑 여기 있어요. 일단 내가 해안시로 가서 상황을 보고 올게요. 그래서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면 내가 해결할게요.”“엄마, 그럼 우리 오빠한테 맡겨요. 오빠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은 없으니까!”원이를 보는 달이의 눈이 반짝거리며 빛이 났다. 그러고는 성도윤을 깎아내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아빠는 겉모습만 번지르르하지 약해 빠졌어. 엄마 손까지 빌려야 한다니, 쯧쯧. 역시 오빠가 제일 대단해!”원이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성도윤을 한심하게 여겼다.“내가 진작 말했잖아. 이 집은 나 없이 돌아가지 않는다고.”“...”차설아는 가끔 자신이 낳은 아이들이 진정 아이들이 맞나 하는 의심이 들 때가 있다. 이들은 어른들을 성가시고 챙겨줘야 할 존재로 인식하는 것 같다.차설아는 자신의 태교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닌지 참으로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두 아이에게 당부했다.“너희들 엄마 말 말들어. 엄마도 사실은 너희들과 같은 생각이야. 이대로 있는 것보다 아빠와 같이 싸우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 하지만 적들이 너무 교활하고 잔인해서 아빠한테는 엄마 혼자 갈 거야. 너희들은 이곳에서 엄마랑 아빠를 기다리고 있어. 그게 도와주는 거야. 알겠어?”“알겠어요, 엄마! 그렇게 할게요!”달이는 알겠다고 했지만 원이는 눈썹을 찡그리며 계속 같이 가겠다고 했다. 차설아 혼자 보내는 게 어지간히도 눈에 밟히는 듯싶다.하지만 차설아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아니, 이번은 타협의 여지가 없어. 너희는 엄마랑 아빠가 돌아올 때까지 이곳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면 안 돼. 만약 엄마 말을 안 들으면 혼내줄 거야!”차설아는 엄한 표정을 지으며 원이를 가리켰다.“특히 원이 너, 절대 허튼짓하지
이런 거북이 속도는 부가티 같은 스포츠카에게는 모욕이나 다름없다.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이 화면은 그야말로 드라마의 한 장면이 현실에서 벌어지는 것 같았다.부잣집 도련님이 짝사랑하던 여자를 화나게 한 후 수억 원짜리 한정판 스포츠카를 몰고 뒤에서 강아지마냥 졸졸 따라다니는 장면이라니 생각만 해도 재밌었다.차설아는 원래 이 녀석을 투명인간 취급하고 싶었지만 성진이 그 후과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행동하는 바람에 교통 마비를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적절하지 않은 말까지 해 대여 여간 골치가 아픈 게 아니었다.하여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주먹을 불끈 쥔 채 조수석 문을 열고는 달갑지 않게 차에 올랐다."야 이 미친놈아, 또 무슨 미친 짓이야? 지난번에 네가 성도윤한테 한 번 혼쭐이 나서 정신 좀 차렸나 했는데 왜 또 이러는 거야!”차설아는 일부러 모진 말을 내뱉어 또 다른 언어폭력의 목적을 달성하려 했다.이런 미친놈을 상대하려면 그녀는 더 미친년이 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성진은 화를 내지 않고 천천히 차를 몰고 공항의 꽉 막힌 구역을 빠져나갔는데 오히려 입꼬리가 점점 더 올라갔다.보아하니 그는 지금 기분이 매우 좋은 듯하다. 차설아가 그를 욕할수록 그는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형수가 그 수모를 겪어도 다시 도윤이랑 만나는데 내가 그렇게 나약해서야 되겠어요?”차는 천천히 환해 대교로 들어섰고 햇빛이 바람막이 유리를 타고 쏟아져 내려와 그를 더욱 잘생기게 비춰주었는데 온몸이 마치 한 겹의 빛을 입힌 듯 몽롱하고 부드러워서 지극히 불 현실적이었다.차설아는 두 팔을 끼고 차창 밖의 푸른 바다 풍경을 바라보며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네가 도윤이보다 잘난 게 그 나불대는 입 빼고 뭐가 있어? 내가 너라면 진작 포기하고 맘 편안히 매일 주식 배당금을 받기만 기다리면서 살 거야. 허구한 날 쓸데없이 일이나 벌리니까 가문에서 지금 이렇게 지나가는 개보다도 못한 대접을 받는 거 아니야?”이 말은 성진의 아픈 곳을 찌른 셈인데 그의 눈빛은 순간 매서워졌고 차
"조급해하지 말아요, 곧 알게 될 거니까.”성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차의 속도를 높였다.한 시간 후, 차는 해안의 유명한 5성급 리조트 호텔에 도착했다.호텔은 오늘 연회가 있어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으며 앞쪽의 큰 잔디밭은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꾸며져 있었고 수영장 옆에는 다양한 술과 정교한 디저트가 예쁘게 쟁반 위에 놓여 있었다.해안 명문가의 도련님 아가씨들이 모여서 아주 신나게 놀고 있었는데 비키니 차림의 미녀와 근육질의 잘생긴 남자가 수영장에서 쫓고 쫓기며 장난을 치고 또 어떤 이들은 심지어 서로 끌어안은 채 주변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서로 물어뜯고 난리도 아니었다.차설아는 이런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눈살을 찌푸렸고 옆에 있던 성진에게 말했다."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거야.”성진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웃으며 말했다. "나더러 공을 세워 예전의 잘못을 만회하라면서요? 형수랑 성도윤 구하러 왔죠. 지금 여기서 아주 잘 놀고 있을 텐데!”차설아는 순간적으로 놀라 되물었다."성도윤이 여기 있다는 말이야?”"여기 있을 수도 있고 방에 있을 수도 있으니 잘 찾아보세요.”그리고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다만 마음의 준비를 잘해야 할거예요. 형수가 그가 너무 '고통받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플까 봐 두렵거든.”"허튼 수작 부리지 마!”차설아는 퉁명스럽게 남자를 힐끗 쳐다보고는 호텔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수영장 옆에 사람이 제일 많았는데 귀에 거슬리는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틀어놓고 스프링클러 들고 수영장 중앙에 서서 분위기를 띄우는 사람도 있고 그 사이로 남녀들이 리듬을 타면서 같이 흔들고 어수선했는데 차설아는 이런 장면을 보는 것조차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시선을 돌려 다른 지역을 찾으려는데 갑자기 수영장의 한 리클라이너에 하얀 가운을 입고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긴 손과 발을 가진 익숙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그의 옆에는 흑백 비키니를 입은 섹시한 여인이 앉아 그한테 포도를 정성껏 먹이고 있었다.차
"자기야, 오랜만이네? 난 당신이 너무 소식이 없길래 암살당한 줄 알았는데 여기서 햇볕을 쬐고 있었던 거야? 나한테 설명 좀 해야지 않겠어?”차설아는 성도윤 앞에 서서 위에서 그를 내리깔아 보며 물었다.그녀의 몸은 날씬하고 가벼웠지만 이 순간만큼은 마치 큰 산처럼 모든 햇빛을 가려 남자에게 그림자를 드리웠다.성도윤은 그윽한 눈망울로 여인을 한참 바라보다가 침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다 봤으니까 내가 더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차설아는 입술을 꼭 깨물었고 손가락은 손바닥을 꼬집으며 감정을 다스리려고 애썼다.어떻게 배신할 수 있지? 그의 마음은 돌로 만들어졌단 말인가? 어찌 조금도 미안한 마음이 없어 보이지?서은아는 성도윤의 입에 포도를 까서는 계속 먹여주며 간드러지게 웃으며 말했다."도윤아, 내가 여기 있는 건 좀 아니지 않아? 자리 좀 피해 줄까?”“그럴 필요 없어.”성도윤은 서은아를 긴 팔로 껴안고는 차설아를 싸늘하게 바라보며 말했다."아직도 안 가고 뭐 해? 우리랑 같이 놀려고?”차설아는 여전히 높은 곳에서 그들을 내려다보았는데 벤치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마치 광대를 보는 것 같았다.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성도윤을 보며 물었다. "성가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나도 알아, 그래서 서가와의 관계를 잘 처리해야 한다는 것도. 그래서 일부러 내 앞에서 서은아한테 잘 보이려고 이러는 거지? 그러면 성가가 난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그렇게 생각해.”성도윤은 괜찮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서씨 가문과 성씨 가문의 결합은 해안에 새로운 질서를 가져다줄 거야. 만약 그 대가가 두 가문의 정략결혼이라면 내가 하는 게 맞지.”"어쩔 수 없었다는 건 이해해, 그래서 마지막으로 너한테 기회를 줄게...”차설아는 마치 하느님처럼 남자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나랑 가자, 우리 같이 이 고비를 넘기는 거야.”그녀는 줄곧 그녀와 성도윤의 사랑이
”거절할게.”성도윤은 차설아의 카운트다운이 끝나기도 전에 바로 답을 내놓았다.그의 표정은 냉담했는데 마치 낯선 사람을 보는 것같이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너란 사람은 항상 이렇게 잘난 체하길 좋아하지. 본인이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나 본데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너를 가지고 논 거야. 이미 너의 진심을 확인했고 이는 내가 이겼다는 것을 의미하니 난 당연히 이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았지. 당신이 이렇게 밀어붙일 줄은 몰랐는데... 정말 역겹게.”“그만해!은성진은 주먹을 불끈 쥐며 감정이 다소 격해졌는데 성도윤을 보며 비꼬았다. "이럴 시간 있으면 어떻게 성대 그룹을 위기에서 벗어나게 할지 생각이나 하는 건 어때? 한 여자에게 이렇게 매너없이 굴면 소문이 나도 성가의 체면이 깎이지 않겠어?”"네가 원했던 거 아니야?”성도윤의 눈동자는 마치 예리한 칼처럼 성진을 향해 쓸고 가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이는 한 치도 양보하지 않던 성진의 아픈 곳을 찔렀고 그는 더 이상 성도윤과 논쟁하지 않았다.그리고 그는 뒤돌아 차설아의 손을 잡고 속삭였다.“얼굴도 봤고 이제 정도 끊었으니 이만 가죠?”"급할 거 뭐 있어...”차설아의 고운 얼굴은 슬픔도 기쁨도 없이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속을 알 수 없었다.슬픔? 분노? 아니면 허탈?"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아직도 단념하지 않은 거야?”성진은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 "보아하니 여전히 전과 마찬가지로 이 남자를 위해서는 여자의 기본적인 존엄조차 버리는군요. 그러니 배신당해도 싸고 모욕당해도 싸네요!”“시끄러워.”차설아는 성진을 흘기며 말했다. "죽기 싫으면 멀리 빠져있어. 무고한 사람까지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무슨 말이에요?”성진은 어리둥절했지만 그래도 그녀의 말을 듣고 멀리 섰다.서은아는 침을 삼키고 성도윤의 품속으로 몸을 움츠렸다."너, 뭐 하는 거야, 여기 서 씨네 사람이 얼만데, 함부로 막 나올 생각하지 마...아!”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차설아는 그녀를 들어 수영장에 '
일주일 뒤, 병원에서 정밀 검사 결과를 알려주었다. 차설아의 허리가 심하게 다친 건 맞지만 치료를 제때 받고 푹 쉬어서 생각보다 빨리 나았다. 그러기에 반신불수가 될 거라는 의심을 거두어도 되었다.그 소식을 알게 된 뭇사람들은 기쁨에 눈물을 흘렸다.“복 받은 사람들은 내가 딱 알아본다고 했잖아. 우리 설아가 복 받아서 빨리 나은 거야.”배경윤은 차설아를 끌어안고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배경윤은 제대로 자지 못하고 먹지 못해서 살이 많이 빠졌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배경윤이 다친 줄 알 것이다.“앞으로 높은 곳에 올라가야 하는 운동은 절대 하면 안 돼! 암벽 등반, 등산은 절대 안 되고 계단을 오를 때는 꼭 옆에 누군가가 있어야 해.”차성철은 미간을 찌푸린 채 진지하게 말했다. 한 번 큰 사고를 당했기에 차설아가 다치는 일이 없도록 더 신경 쓰고 싶었다.“성철 형,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옆에 붙어있으면서 스파크가 다치는 일이 없도록 할게요.”선우시원은 차설아를 힐끗 쳐다보면서 사뭇 엄숙하게 말했다.“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한 달 정도 입원하면 거의 다 나을 거래. 병실에만 있어서 답답하겠지만 참아. 오빠가 병원에 퇴원 신청을 하면 예정일보다 더 빨리 퇴원해서 집에 데려갈 거야. 간병인을 미리 알아보았으니 너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차성철은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차설아를 바라보면서 울상을 지었다.“그러지 않아도 돼.”차설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말을 이었다.“나는 병원에 있는 게 좋아. VIP 병실이라 편하게 지낼 수 있잖아. 미리 퇴원 신청을 하지 않아도 돼. 귀찮고 복잡한 건 딱 질색이야.”“설아야, 너를 위해서라면 귀찮은 일도 다 해줄 수 있어. 너는 걱정하지 말고 푹 쉬어. 퇴원 예정일을 앞당기는 건 복잡한 절차도 아니야.”차성철은 차설아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말했다.“오빠가 다 해놓을 테니 그날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자. 설아야, 오빠 믿지?”“아...”차설아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차설아가
사실 차성철은 최근 들어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하고는 차설아의 병실에 긴급 신고 버튼을 설치해 주었다. 버튼만 누르면 병원의 긴급 벨이 울리면서 차성철이 배치한 보디가드가 병실로 달려올 것이다.차설아는 성도윤과 같이 있는 것이 좋아서 차성철한테 아무 일도 없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다. 그런데 성도윤을 향한 마음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 있는 선을 지키지 못했다. 성도윤은 차설아를 떠보다가 결국 그 선을 넘어왔다.“나는 그저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게 행복할 뿐이야. 그래서 당신의 입도 닦아준 건데 싫으면 얘기해. 내일 밤부터 다시 오지 않을게. 케이크를 사던 가게의 파티시에를 스카우트해서 매일 케이크를 만들게 했지만 이제는 필요 없겠지...”성도윤은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을 이었다.“내일 메뉴는 헤이즐넛 케이크라고 했어. 아쉽지만...”“잠시만요!”차설아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차설아가 제일 기대하던 메뉴가 바로 헤이즐넛 케이크였기에 성도윤을 내쫓을 수 없었다.“파티시에도 일하느라 고생했는데 어떻게 함부로 자르겠어요. 내일도 와주면 고맙겠지만 앞으로는 뭐가 묻어도 도와주지 말아요. 손은 멀쩡하니까 내가 직접 닦을게요.”“그래. 당신이 이토록 애원하니 한 번 고려해 볼게.”성도윤은 피식 웃으면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 눈빛은 여우처럼 교활하기 그지없었다.“휴...”차설아는 긴 한숨을 내쉬면서 후회하기 시작했다. 성도윤은 예전처럼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다. 차설아를 부드럽게 다가가면 마음을 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맛있는 케이크로 경계심을 무너뜨렸다.성도윤의 존재가 습관 되어갈 때쯤 차설아는 이미 함정에 빠진 것이다.성도윤은 시계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차설아를 바라보았다. 오늘 밤의 성과는 그 무엇보다도 만족스러웠다.“이제는 병실로 돌아갈 테니 푹 쉬어. 내일 밤에도 올 테니까 기다려. 잘자.”차설아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자는 척했다. 머릿속은 두 사람이 뜨겁게 키스를 퍼붓던 화면으로 가득 차서 얼굴이 화끈
차설아는 병실 침대에 누워 꼼짝하지도 못했다. 그러기에 성도윤이 늦은 밤에 가져다주는 야식이 유일한 낙이었다. 차설아는 누워서 입을 벌리고 성도윤이 주는 대로 다 받아먹었다. 두 사람의 모습은 애틋한 커플 같아서 오글거렸지만 케이크를 먹기 위해 꾹 참았다.“역시 다크 초콜릿 케이크는 정말 맛있어요. 어떻게 이런 맛을...”크림과 초콜릿이 조화를 이루어서 입안에 가득 퍼졌다. 차설아는 케이크를 먹으면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졌다.“내일도 가져올 테니까 천천히 먹어. 체하면 어쩌려고 그래.”성도윤은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말하면서 허겁지겁 먹는 차설아를 지그시 바라보았다.차설아는 성도윤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정신없이 먹다가 의도치 않게 성도윤의 손가락을 물게 되었다.긴 손가락이 차설아의 입에 들어가자 성도윤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찌릿했고 닭살이 돋았다.“어머. 정말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급하게 먹다보니...”차설아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면서 성도윤한테 사과했다.“더 먹을래?”성도윤은 뜨거운 눈빛으로 차설아를 바라보면서 물었다.“아, 아니요! 안 먹어도 될 것 같아요.”차설아는 민망해서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성도윤을 쳐다볼 수가 없었고 더 이상 케이크를 먹을 분위기도 아니었다. 쥐구멍이라도 있었다면 당장 숨을 기세였다.“안 먹으면 입부터 닦아. 다 묻히고 먹었잖아.”성도윤은 낮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차설아한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차설아의 입가에 크림이 묻어있었는데 그 모습은 음식을 몰래 훔쳐먹은 고양이 같아서 더 귀여웠다.“그럼 티슈 좀 주세요. 입에 묻은 줄도 몰랐어요.”차설아는 혀로 입가를 날름거리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성도윤은 내가 며칠 굶은 줄 알겠어. 아, 손가락까지 물어버릴 생각은 없었는데 왜 그랬지?’“그럴 필요 없어.”성도윤이 덤덤하게 말했다.“뭐가 필요 없다는 말이에요?”“티슈 같은 건 필요 없다는 뜻이야.”“왜요? 다 썼어요?”“아니. 내가 닦아
박서영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뉴스에서 차설아 씨가 허리를 다쳤다고 했어요...”성진의 심장은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성진은 심호흡하고는 진지하게 말했다.“지금 당장 그 병원으로 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 정확히 어쩌다가 다쳤고 상황이 어떤지 알아내서 보고해.”“하지만 제가 성진 도련님의 곁을 떠나면 혼자서 괜찮으시겠어요? 걱정이 되어서 그래요.”“나는 신경 쓰지 말고 일단 설아한테 가봐. 설아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나는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거야.”성진은 잔뜩 긴장한 채 박서영을 재촉했다.“알겠어요. 준비하고 바로 갈게요.”박서영이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성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가기 전에 뒷마당에 있는 해바라기 꽃을 가져가. 해바라기 꽃을 보면 설아도 좋아할 거야.”“네. 그렇게 할게요.”박서영은 성진을 바라보면서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눈물을 훔쳤다. 사람은 감정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동물이었다. 이득을 얻기 위해 사람을 죽여도 눈 깜빡이지 않던 성진은 완전히 달라졌다.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는 여자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순애보가 되어있었다.한편, 병원.성도윤은 늦은 시간마다 차설아의 병실에 들어가서 앉아 있었다. 때로는 의견이 맞지 않아 싸우기도 했고 때로는 얘기를 나누면서 웃기도 했다.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두 사람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성도윤의 존재가 습관이 된 차설아는 점점 마음이 편해졌다. 가끔 성도윤을 만나기 위해 차성철 혹은 병문안을 온 사람들을 일부러 내보내기도 했다.성도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다던 차설아는 어쩐지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성도윤이 찾아오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내가 허리를 다치지 않았다면 당신을 제일 먼저 내쫓았을 거예요.”어느 조용한 밤, 차설아는 성도윤이 몰래 가져온 다크 초콜릿 케이크를 먹으면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러자 성도윤은 차갑게 대꾸했다.“말로만 그러지 말고 직접 날 내쫓아 봐. 얼른 나아서 나를 내쫓기를 바랄게.”“딱
“그럴 필요 없어!”성진이 부르짖는 소리가 어둠 속을 뚫고 울려 퍼졌다. 귀신 같은 몰골로 도저히 차설아를 만나러 갈 수가 없었다. 성진은 긴 한숨을 내어 쉬고는 덤덤하게 말했다.“내가 차설아를 두고 떠난 건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바라서였어. 나의 선택을 후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뜻이야.”성진은 차설아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차설아한테 평생 책임지라고 말하면 차설아는 주저 없이 승낙하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다.그렇지 않으면 반년 전에 어렵게 상봉한 차성철과 귀여운 아이들, 겨우 이어가고 있던 사업을 내팽개치고 성진과 함께 멀리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차설아는 반년 동안 성진을 아기처럼 지극정성으로 보살폈고 힘들다고 투정 부린 적이 없었다. 성진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다.두 눈과 피를 기부함으로써 사랑하는 여자와 반년 동안 같이 살았기에 이번 생에 여한이 없었다. 성진은 평생 그 나날들을 기억할 것이고 더는 바랄 것이 없었다.하지만 박서영은 성진을 이해하지 못했다. 총명하고 이득을 위해 기회를 쟁취하던 성진이 도대체 왜 소극적으로 변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성진 도련님, 차설아 씨를 잊지 못했으면서 왜 만나러 가지 않는 거예요? 성진 도련님을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이때 갑자기 나타나면 감동해서 성진 도련님과 결혼하려고 할 수도 있어요.”박서영은 굳은 표정을 하고 앉아 있는 성진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설아가 그러자고 해도 내가 거절할 거야.”성진은 피식 웃더니 말을 이었다.“자존심이 있는 남자라면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할 거야. 밥을 먹고 옷을 갈아입는 것조차 스스로 하지 못하는 내가 어떻게 감히...”성진은 고상한 품격을 지닌 사람이 아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음험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다. 성진은 좋은 사람이 되기를 포기했지만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성진 도련님, 다른 사람들이 도련님을 나쁘고 간사한 사람이라고 욕하지만 저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서은아는 심호흡하고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과감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여겼다. 성진이 전화를 끊으려고 하자 궁금해 난 서은아는 천천히 물었다.“요즘 어디로 갔기에 도통 보이지 않는 거야? 차설아를 데리고 해안시를 떠나겠다고 약속했었잖아. 그런데 차설아가 왜 아직도 내 눈앞에서 알짱대는지 설명해 봐. 네가 나타나지 않으면 차설아는 또 성도윤한테 달라붙어 있을 거야. 그럼 네 눈과 피를 성도윤한테 준 건 뭐가 되는데?”성진의 희생은 차설아뿐만 아니라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서은아도 놀라게 했다.멀쩡하던 사람이 좋아하는 여자가 마음에 두고 있는 남자를 위해서 자신의 눈과 피를 기부했다. 그로 인해 성진은 어둠 속에서 살고 있었다.이 세상에서 가장 헌신적인 순애보는 성진일 것이다. 서은아는 성도윤을 위해 이 정도로 희생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성진은 큰 희생으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차설아는 반년 동안 성진과 가까이 지내다가 자신만의 삶을 위해 떠났다. 성진의 노력은 전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뭐가 되든 네가 알 바 아니야. 나는 너랑 달라. 설아를 많이 사랑하고 설아가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바라. 하지만 너는 성도윤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결국 너를 위해서 수술을 막으려는 거잖아. 너는 성도윤이 아니라 너 자신을 사랑하는 거야.”성진이 직설적으로 말하자 서은아는 허를 찔려 제대로 반박할 수가 없었다. 서은아는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이제 와서 그런 말이 다 무슨 소용이야? 차설아를 사랑하는 순애보가 이런 끔찍한 일을 꾸며냈다는 걸 누가 알았겠어... 나는 그저 네 말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일 뿐이야. 성도윤을 이렇게 만든 것도 전부 너라고!”“여기서 멈추라고 하면 멈출 거야? 너는 나의 꼭두각시라고 했잖아.”“뭐? 뭘 멈추라는 건데?”서은아는 주먹을 꽉 쥐고는 차갑게 물었다.“도대체 무슨 뜻이냐고 묻잖아.”“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말라는 뜻이야. 성도윤이 수술을 받게 내버려둬. 잊었던 기억을 찾고 나서 너한테 따지면 내가 꾸민 일이라고 말해. 너는
긴 연결음만 이어질 뿐,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이 개같은 놈!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야? 설마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제발 좀 받아. 할 얘기가 있단 말이야.”서은아는 서태원이 방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전화를 걸었다. 여러 통 걸었지만 상대는 전화를 계속 받지 않았다. 서은아의 전화번호를 진작에 스팸 번호로 설정했거나 전화번호를 아예 바꾸었을 수도 있었다.“하, 정말 짜증 나! 아직 살아있다면 전화라도 좀 받으라고! 정말 속 터져.”서은아는 방에 놓여있던 화분을 전부 바닥에 던지면서 씩씩거렸다. 서은아가 절망스러워서 힘없이 주저앉자 갑자기 조용하던 전화가 울렸다.“무슨 일로 전화했어?”전화를 건 사람은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서은아와 말을 섞기 싫은 모양이었다.“성진, 이 개자식아! 도대체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야? 내가 몇 번이나 전화를 건 줄 알아?”서은아는 휴대폰을 꽉 잡고 울분을 토해냈다. 긴급상황이 아니었다면 서은아는 절대 이런 나쁜 놈과 엮이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니까 무슨 일인데?”성진의 목소리는 더 차가워졌다.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러자 서은아는 잔뜩 겁을 먹어서 목소리를 낮추었다.“성도윤이 벌써 의심하고 있어. 대단한 신경외과 의사를 찾았다고 하면서 뇌수술을 다시 받겠다고 했단 말이야. 만약 성도윤이 뇌수술을 받으면 지난 기억도 다 떠오를 거고 우리가 한 짓이 들통날 것 같아. 우리 이제 어떡해?”“그럼 어쩔 수 없어. 나의 실력은 예전과 달리 많이 녹쓸었지만 성도윤이 복수하고 싶다면 기다리고 있어야지.”“나쁜 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서은아는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나한테 부탁할 때와 말이 다르잖아. 들통나면 너는 성도윤한테 좀 맞으면 되겠지만 나는 어떡해? 성도윤이 알게 되면 나뿐만 아니라 서씨 가문, 우리 부모님까지 가만두지 않을 거야. 너 하나로 끝날 일이 아니라서 연락한 거야.”“그러니까 네 말은 성도윤이 뇌수술을 받으면 안 된다는 거지?”
성도윤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가 선우시원이었다면 모든 방법을 써서라도 아이를 데려올 거야. 아이의 엄마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내 알 바 아니지. 강요하지도 않을 거고 원하는 대로 하게 내버려둘 거야.”“그, 그래요?”차설아는 멋쩍게 웃더니 차오르는 슬픔을 겨우 삼켰다. 선우시원은 차설아와 결혼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지만 성도윤은 두 아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면했다.차설아는 성도윤이 기억을 잃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성씨 가문에서 아이의 양육권을 빼앗으려고 차설아와 싸울 것이다.“시간도 늦었는데 얼른 가서 쉬어요. 궁금한 거에 대해 다 알려주었잖아요.”차설아는 마음이 아파서 혼자 있고 싶었다. 성도윤은 천천히 일어나더니 대답했다.“이제는 가봐야겠어...”병실 문을 열려던 성도윤은 그 자리에 멈춰서서 말했다.“만약 당신이라면 뭐라고 하든 내 곁으로 데려왔을 거야.”“뭐라고요?”차설아는 성도윤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더 캐물으려고 했지만 성도윤은 이미 가버렸다. 아직 기억해 내지 못한 부분이 있었기에 성도윤은 확실하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모든 것은 박성훈한테 수술을 받고 나서 기억이 돌아온 뒤에 결정될 것이다.한편, 서씨 가문 저택.병원에서 돌아온 서은아는 화가 나서 손에 잡히는 모든 물건을 모조리 바닥에 던졌다.“은아야,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설마 성도윤 그놈이 너를 화나게 했어? 지금 당장 그놈한테 전화해서 따져야겠어.”서태원은 서은아를 끔찍이 사랑했기에 다른 사람이 자신의 딸을 괴롭힌다면 두 눈이 뒤집어질 것이다. 상대가 성도윤이라고 해도 서은아를 위해서 따져 물을 수 있었다.“그런 거 아니에요! 제가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멍청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어요.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서 화풀이하고 있었던 거예요.”서은아는 침대에 누워 눈물을 펑펑 흘렸다.“아빠, 저는 이제 끝이에요. 도윤이가 기억을 되찾으면 저 같은 건 쳐다보지도 않을 거라고요!”“기억을 되찾는다고?”서태원이 미간을 찌
병실 안은 숨 막히는 적막이 흘렀고 오묘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성도윤은 이를 부득부득 갈더니 차갑게 말했다.“차설아, 당신은 정말 대단해. 얌전해 보였는데 어느새 아이를 두 명이나 낳은 거야? 당신에 비하면 나의 인생은 보잘것없어 보여.”“서씨 가문 아가씨와 하루라도 빨리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요. 지금 도윤 씨의 실력이라면 몇 년 안에 아이를 세 명 정도는 낳을 수 있어요.”차설아는 성도윤이 오해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오해로 인해 두 사람이 멀어진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결과가 없을 것이다.“나는 아이를 가지지 않을 거야.”성도윤이 차갑게 받아쳤다.“왜 가지지 않겠다는 거예요? 아이한테 발목이 잡힐까 봐 그러는 건가요? 아직도 다른 여자랑 놀아나고 싶은가 보죠.”차설아는 성도윤을 힐끗 쳐다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정말 아이를 원하는 게 아니라면 가지지 않는 게 좋긴 해요. 책임감으로만 키울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아이를 향한 사랑을 꾸준히 표현해 주고 아이의 곁에 있어 줘야 해요. 나처럼 자유분방한 삶을 꿈꾸는 사람은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낼 거예요. 우리 아이들도 나 때문에 고생했고요.”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 차설아는 잘 알고 있었다. 아이의 삶을 위해서 부모는 자신을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극진히 사랑하지 않는 이상 해낼 수 없었다. 달이와 원이를 키우는 동안, 차설아는 수도 없이 포기하고 싶었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포기했을 것이다.“당신 말대로라면 잘 고려해보고 아이를 가졌다는 거네? 아이들을 무척 사랑하나 봐?”성도윤을 차설아를 쳐다보면서 차갑게 물었다.“애초에 아이를 가질 생각조차 없었어요.”차설아는 솔직하게 대답했다.“두 아이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어요. 처음에는 아이를 지우려고 했었지만 의사가 이란성 쌍둥이를 임신하는 건 드문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아이를 지우면 다시 아이를 가지기 힘들다고 해서 낳은 거예요. 두 아이는 내가 원해서 생긴 건 아니지만 지금은 아무도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