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설아가 그 말을 듣더니 곧바로 흥분한 목소리로 맞장구를 쳤다.“그래, 아무나 아빠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엄청 중요한 사람이니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고. 아무 남자에게나 아빠라고 부르면 돼? 원이야, 달이가 평소 원이의 말을 잘 듣잖아. 이번에 달이를 제대로 교육해야 해.”그렇다, 차설아가 달이를 설득하기 위한 ‘최종 비밀 병기’는 바로 원이었다.그녀가 한 말이면 달이가 꼭 듣는 건 아니었지만 원이의 말은 무조건 믿으며 따랐다.아니나 다를까, 원이가 진지한 얼굴로 말하면서 달이를 교육하기 시작했다.“달이야, 오빠가 말했었잖아. 이 세상은 아주 복잡한 거라고. 엄마랑 오빠, 민이 이모, 경수 아빠랑 경윤이 이모 빼고는 우리를 접근하는 사람 모두 나쁜 사람일 수 있어. 아무 사람을 아빠로 따랐다가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면 어떻게 해? 우리를 해치려고, 심지어 엄마를 해치려고 하면 어떻게 해?”평소의 달이라면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원이의 말을 새겨듣겠지만 이번에 달이는 보기 드물게 원이의 말을 듣지 않고 반박했다.볼이 빨개진 달이는 귀여운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말했다.“오빠의 말이 맞지 않은 것 같아. 이 세상에 나쁜 사람이 어디 그렇게 많겠어? 적어도 내가 만난 사람은 다 엄청 좋은 사람들이었어. 아빠도 좋은 사람이야. 엄마가 편찮으실 때 챙겨주셨고, 나랑도 놀아주고 비행기도 태워줬어. 그리고 헬리콥터도 타 하늘을 나는 느낌을 받게 해주겠다며 약속했단 말이야... 그렇게 좋은 사람이 어떻게 나쁜 사람일 수 있겠어?”차설아와 원이가 그 말을 듣고는 마음이 답답해 발을 동동 구르며 한숨을 쉬었다.“네 동생 좀 어떻게 해 봐. 이거 완전 사랑에 눈먼 여자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야? 얼른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설득해. 아니면 나중에 커서도 나쁜 남자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고생할 게 뻔해.”차설아가 원이에게 말했다.그녀는 모든 희망을 원이에게 걸었다.원이가 더 엄숙한 얼굴로 달이를 보며 말했다.“달이야, 계속 그렇게 고집을 부린다면
차설아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엄숙한 얼굴로 배경윤에게 물었다.“돈을 구했다고? 벌써?”배경윤은 놀란 마음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오빠가 은행에서 빌린 돈에 이자까지 더하면 최소 1조는 된다고 하던데 그렇게 많은 돈을 언니가 벌써 모았다고? 그럴 수가 있나?’“언니, 이 돈 어떻게 구한 거야? 설마 또...”“걱정하지 마. 다시는 그 바닥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할아버지와 약속했었어. 이 돈은 빌린 돈이야. 때가 되면 다시 돌려줘야 해.”“누구한테서 빌렸는데?”“그건 몰라도 돼. 아무튼... 문제없는 돈이니 걱정하지 마. 높은 이자가 붙은 것도 아니고 출처가 불분명한 돈도 아니니 안심하고 써도 돼.”차설아는 배경윤에게 너무 많은 걸 알리고 싶지 않아 미스터 Q와 있었던 일을 숨겼다.“그럴 리가 없어!”배경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하늘에서 이렇게 큰돈이 주어진다고? 1조가 쉽게 빌릴 수 있는 돈이야? 전체 해안시에서 돈 많은 성씨 가문을 빼고는 이 돈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네. 그래서... 설마 성씨 가문에 가서 빌린 건 아니겠지?”“그게...”차설아는 배경윤이 이런 기상천외한 생각을 할 줄은 몰랐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전체 해안시에서 1조의 큰돈을 내놓을 수 있는 가문은 성씨 가문밖에 없었으니 말이다.그래서 차설아는 아예 배경윤을 따라서 말했다.“역시 네가 눈치가 빨라 속일 수 없다니까. 성씨 가문에 가서 돈 빌린 거 맞아. 그때 나에게 미안한 짓을 한 것도 있고, 선뜻 도와주겠다고 하더라고.”“이렇게 생각하면 성씨 가문이 완전히 매정한 것도 아니란 말이야. 만약 성도윤이 언니를 구하려다가 죽은 걸 알게 되고, 또 빌려 간 이 돈을 천신 그룹이 성대 그룹의 자리를 대체하기 위해 쓰인 걸 알게 된다면 얼마나 화가 치밀어 오를까?”“그건 내가 상관할 것 없지. 비즈니스계가 얼마나 살벌한 곳인데, 그건 그들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야. 차씨 가문이 재기할 수 있는 기
배성준은 의외인 듯 놀란 표정을 보이더니 차설아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정말 돌아올 줄이야. 그래도 그 패가망신한 자식을 쉽게 안 놓아줄 생각인가 보지? 하지만 경수는 배씨 가문 도련님이라는 이름밖에 없어. 아무리 들볶는다고 해도 돈을 내놓지 못할 거라고. 그러니 얼른 다른 사람에게 빌붙는 게 좋을 거야.”그 말을 들은 배경윤은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당장이라도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아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오빠가 먼저 언니에게 달라붙었거든요. 설마 설아 언니가 배씨 가문 돈을 보고 오빠를 받아줬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죠? 언니는 성씨 가문도 미련 없이 쿨하게 떠난 여자라고요. 그런데 왜 우리 배씨 가문의 돈을 탐내겠어요. 김칫국 그만 마셔요.”“닥쳐!”배성준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가장 아끼는 두 자식이 모두 그의 체면을 구기고 있었으니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제가 틀린 말을 했어요? 설아 언니는 전혀 돈이 부족하지 않아요. 작정하면 몇천억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데 왜 돈을 보고 오빠를 받아들였겠어요? 제발 정신을 차리세요.”“그래?”배성준의 얼굴색이 갑자기 바뀌더니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차설아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당신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찾아온 거란 말이야?”차설아가 씩 웃고는 말했다.“그래요, 돈은 이미 마련했어요. 아버님께서 약속을 지키셨으면 하는데요. 더는 경수를 괴롭히지 마세요. 그리고 약속대로 부성 그룹의 지분도 모두 넘겨주셔야 해요.”배성준이 대답했다.“당신이 돈을 갚는다면 당연히 약속을 지키지. 다만... 조건이 하나 있네. 그 조건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경수에게는 상속권도 차려지지 않을 거야.”“무슨 조건이죠? 말씀해 보세요.”“부성 그룹의 지분은 그 패가망신한 놈에게 넘겨도 돼. 앞으로 부성 그룹은 그놈의 것으로 되겠지. 하지만 당신이 그놈이랑 연을 끊어야 해. 다시는 경수의 마음을 받아주지 말라고. 두 사람 앞으로 얼굴 볼 일도 없었으면 해.”배성준이 단호하게 말
배성준이 테이블을 세게 내리쳤다.“이 집에서 나 배성준의 말을 듣는 사람이 있기는 한 거야? 다들 나 화나게 만들려고 작정한 거야?”차설아는 그들이 싸우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그저 조용히 계약서에 사인하고는 말했다.“사인했어요, 그리고 돈은 경수 개인 계좌에 보낼게요. 경수에게 한 마디만 전해주세요. 그동안 저를 위해 한 모든 것이 고마웠다고요. 앞으로는 다시 만날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말을 마친 그녀는 그대로 배씨 저택을 떠났다.허전한 마음보다는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그동안 차설아는 배경수의 도움을 무상으로 받아왔기 때문에 사실 마음의 부담이 매우 큰 건 사실이었다.하지만 배성준이 얘기를 꺼냈으니 그녀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도 자연스레 그와 선을 그을 수 있다.다만 천신 그룹은 그녀와 배경수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낸 것이나 두 사람이 완전히 선을 긋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차설아는 이 일을 될수록 빨리 처리해야겠다며 다짐했다.배씨 저택에서.배경수는 드디어 자유를 되찾았다.배경윤이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그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있었다.“왜 아버지가 갑자기 나를 풀어주신 거야? 상속권도 넘겨주시겠다고... 설마 보스가 정말 돈을 모은 거야?”배경수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배경윤을 보며 물었다.“그래, 설아 언니가 어디서 그렇게 많은 돈을 구한 건지 모르겠어. 그래서 아빠가 오빠를 풀어준 거고. 두 사람 계약서까지 하나 만들어 사인했어...”배경수는 계약 내용을 배경수에게 알려줬다.“젠장!”배경수는 화가 치밀어 올라 상처에 약을 채 바르지 못했는데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고는 씩씩거리며 말했다.“보스 방금 떠났지? 내가 쫓아가야겠어.”“그냥 가지 마. 내가 말했잖아, 계약 내용 중에 두 사람 다시 얼굴을 보게 된다면 설아 언니가 거액의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조항이 있다고. 지금 쫓아간다고 해도 설아 언니에게 폐만 끼칠 거야.”“무슨 계약 내용이 그래? 내가 당장 가서 찢어버리겠어.”“오빠, 좀 진정해. 급
배경윤의 ‘좋은 방법’을 들은 배경수는 그제야 구겨진 미간을 폈다.이때 배성준이 그의 방 앞으로 다가왔는데 그는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처럼 득의양양했다.“아들, 기분이 어때? 맞은 곳은 많이 아파?”그는 기분이 좋은지 미소를 머금은 채 배경수에게 말을 걸었다.배경수는 차가운 얼굴을 보였다. 배성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씩씩거리며 말했다.“그래도 아버지가 봐주신 덕분에 이렇게 숨을 붙이고 살고 있잖아요.”“쯧쯧, 말투를 들어보니 아직도 나에게 화가 난 거야? 내가 다 너를 생각해서 그렇게 한 거 아니야. 나 배성준의 아들로 살아가는데 너에게 시집오고 싶어 하는 여자가 한둘이야? 왜 꼭 이혼한 여자에게 매달리는 건데? 그래도 그 여자가 양심은 있어. 네가 은행에서 빌린 돈을 모았다니. 이렇게 보면 넌 역시 나 배성준의 아들이야. 여자를 홀리는 마성의 매력이 있다고.”배성준이 말하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배경수의 어깨를 툭툭 쳤다.“...”배경수의 어깨에는 아직 깊은 채찍 자국이 남아 있었다.배성준이 그 상처를 건드리자마자 극심한 고통이 몰려왔는데도 배경수는 입을 꾹 다물었다.배경윤이 얼른 배경수의 편을 들어주며 분노의 목소리로 말했다.“아빠, 왜 그렇게 매정하게 구신 거예요? 오빠가 설아 언니를 얼마나 오랫동안 쫓아다녔는데요. 이제 설아 언니가 겨우 마음을 열었는데 아빠도 참... 두 사람 사이를 그대로 갈라놓다니. 정말 독하시네요. 아빠처럼 독한 사람을 평생 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이제 와서 오빠를 아들이라고 부르시는 거예요? 전에는 패가망신한 놈이라고, 때려죽이겠다고 욕하시더니. 역시 돈이 최고네요. 아빠의 마음을 돌려놨으니. 사람들이 우리 배씨 가문을 무시하는 것도 이유가 있어요, 돈에 눈이 먼 게 맞잖아요.”“안 닥쳐? 이 계집애가 가만히 보면 맨날 내 체면을 구겨!”배성준은 배경윤의 말을 듣고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막냇딸을 워낙 예뻐했기 때문에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씩 웃으며 말했다.“아빠가 일석이조인 일을 한
“그동안 보스와의 인연이 깊어요. 특히 천신 그룹은 보스와 함께 시작한 회사고요. 정확히 말하자면 천신 그룹은 보스의 노력으로 성장한 회사죠, 저는 그저 돈만 냈고. 만약 정말 보스와 인연을 끊으려고 하면 천신 그룹의 경영권 소속을 제대로 나눠야 해요.”배경수가 잠깐 뜸을 들이며 배성준의 표정을 관찰하고는 조심스럽게 떠보듯 물었다.“만약 제 이름으로 된다면 저는 보스에게 돈을 물어야 하고 보스 이름으로 된다고 해도 나는 돈을 달라고 차마 입을 열지 못하겠어요. 아니면...”배성준이 손을 젓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보잘것없는 회사 가지고 뭘 고민을 해? 계속 빚지고 있다면서? 아무리 애를 써도 살릴 방법이 없을 거야. 차설아와 더 얽히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그냥 차설아에게 경영권 넘겨줘.”배성준은 천신 그룹이 배경수가 차설아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만든 회사라고 생각했다. 배씨 가문에서 투자해 80%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맞지만 지금 계속 적자를 보고 있기 때문에 빨리 넘겨주는 것도 손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인 듯싶었다.“시원시원하시네요. 그런데 경림 누나가 천신 그룹의 세 번째 주주예요. 누나가 동의할까요?”배경수가 한숨을 푹 쉬고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만약 경림 누나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배씨 가문은 결국 천신 그룹과 연을 끊으려야 끊을 수 없을 거예요. 그러면 앞으로 보스 얼굴을 보지 않고 산다는 일도 절대 이루어질 수 없겠죠.”“경림이는 내가 잘 설득할게. 계속 적자를 보는 회사를 왜 시간 낭비를 하면서 경영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네.”배성준은 천신 그룹이 절대 일어서지 못할 거로 생각했다.배경수는 묵묵히 배경윤과 눈을 마주쳤다. 두 사람 모두 한시름을 놓게 되었다....차설아가 배씨 저택을 떠날 때 이미 늦은 밤이었다.그대로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왠지 모르게 그녀는 차를 성씨 저택으로 운전했다.이곳은 그녀가 4년 동안 지내온, 그녀와 성도윤의 집이었다.물론 그녀에게만 ‘집’이었을 것이다. 집주인인 성도윤에게는
성씨 저택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아 텅 비었다. 정원에 꽃도 심어있지 않았고 거실에 불도 안 켜져 별장 내부는 어두컴컴했을 뿐만 아니라 쿰쿰한 냄새까지 났다.하지만 유독 2층에 있는 성도윤의 방에만 어두운 등이 켜져 있었고, 창문에 큰 체구 남자의 그림자가 위에 비쳤다.차설아는 거실을 지나고 계단을 따라 살금살금 2층으로 올라갔다.성도윤의 방문은 반쯤 닫혀 있었다. 문틈 사이로 그녀는 창가에 한 남자가 서 있다는 걸 똑똑히 볼 수 있었다.하지만 남자의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다.훤칠하고 꼿꼿하고 차가운 뒷모습을 가진 남자가 성도윤이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순간 차설아는 오랜만에 피가 들끓는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다짜고짜 앞으로 걸어가더니 문을 확 열고는 말했다.“성도윤, 역시 살아있을 줄 알았어!”창가의 남자가 천천히 몸을 돌리고는 입꼬리를 씩 끌어올렸다.그는 그윽한 눈빛으로 차설아를 바라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형수님, 아쉽게 되었네요. 실망하게 해 죄송합니다. 나는 형수님이 그리워하는 남자가 아닌걸요?”“성진? 당... 당신이 왜 여기에?”피가 들끓던 차설아는 남자의 얼굴을 똑똑히 본 뒤 곧바로 마음이 식어버렸다.그녀는 창피한 마음에 이마를 짚었는데 당장이라도 쥐구멍을 찾아 숨고 싶었다.‘X발, 또 사람을 잘못 본 거야? 정말 너무 부끄러워.’“내일이면 나는 그 잘난 도윤 형을 대신해 성대 그룹의 대표 자리에 앉게 될 거예요. 그리고 도윤 형이 가졌었던 모든 걸 손에 넣게 되겠죠. 그래서 오늘 밤에 형이 누리던 형의 인생을 미리 느껴보려고 온 거예요. 너무나도 당연한 거 아닌가요?”성진의 잘생긴 얼굴에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는데 모든 걸 손에 넣어 두려울 게 없다는 자신이 담겨 있었다.차설아는 괜히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말했다.“그렇다고 우쭐댈 게 뭐가 있어. 당신은 결국 성대 그룹이 가장 혼란스러운 틈을 타 대표 자리에 앉은 비겁한 사람일 뿐인데 말이야. 정말 치사하다고. 당신 같은 사람은 절대 영
괜히 이 미친놈의 팔다리를 부러뜨렸다가는 그가 평생 매달릴 수도 있었다!“역시 형수님이 저를 아끼시네요. 힘을 쓰지도 않는 걸 보니...”성진은 거의 빠질 뻔한 팔을 휙휙 돌리고는 계속 겁 없이 촐싹거리면서 차설아의 한계를 도발했다.차설아는 겨우 진정하고는 떠보듯 물었다.“설마 진짜 도윤 씨 자리를 대신하고 도윤 씨의 모든 것을 가지려는 건 아니지?”“도윤 형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라고요. 성대 그룹이 계속 대표 없이 운영될 수도 없고. 지금 내가 성대 그룹을 맡는 게 성대 그룹을 돕는 것이지, 가져가려고 한다는 말은 타당치 않죠.”“흥, 네 생각대로 쉽게 일이 진행되진 않을 거야. 도윤 씨가 없다고 해도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님이 계시잖아. 당신이 제멋대로 움직일 때까지 그분들이 가만히 있겠어? 빨리 포기하는 게 좋을 거야. 괜히 스스로 궁지에 몰아넣는 뻘쭘한 짓이나 하지 말고.”차설아는 성대 그룹의 세대교체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성주혁은 자기가 겨우 쌓아 올린 결과를 쉽게 남에게 넘기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형수님, 지금 내 걱정을 하는 거예요?”“김칫국이나 마시고 있네!”차설아는 어이가 없어 눈을 희번덕거렸다.성진이 걱정되는 게 아니라 그저 일이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쉽게 진행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성진이 이렇게 쉽게 성대 그룹의 대표 자리를 차지하는 게 너무나도 이상했다!“할아버지와 아버님뿐만 아니라 성대 그룹의 직원부터 사업 파트너까지 모두 도윤 씨만 인정할 텐데. 당신이 성대 그룹의 대표로 된다는 건 너무 터무니없는 소리야.”차설아는 경멸이 깃든 눈빛으로 성진을 바라봤다.이런 비겁한 사람이 성도윤의 자리를 대신하다니, 세상에 이보다 더 우스운 일이 어디 더 있겠는가?“그건 형수님이 걱정하실 바가 아니죠. 인심을 매수하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이 어디 있어요? 내가 성대 그룹 대표 자리에 앉으면 바로 KCL 그룹과 G6 칩에 관한 계약을 체결할 거예요. 그때면 하이 테크 분야
박서영은 그녀를 믿지 못하겠는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정말 기꺼이 두 눈을 내놓을 생각이 있으신가요?”그녀는 세상에 이렇게 바보 같은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분명 무슨 속셈을 꾸미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제가 성진한테 빚진 걸 갚는 거예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관없어요.”차설아가 말했다.“저를 못 믿겠다면 제가 무사하다는 것을 굳이 알릴 필요 없어요. 다만 그때 가서 일이 커지면 알아서 처리하세요.”거짓말할 마음도 없는 차설아는 진심으로 이 일이 잘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었다.항상 성진의 헌신 덕분에 남의 인생을 도둑질한 것처럼 느꼈고, 가끔 즐거울 때도 불안한 마음에 죄책감을 느꼈다.이 기간에 성진에게 연락하지 않았지만, 밤이 깊어질 때마다 그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이 남자가 어떤 어둠 속에 처해있을지, 어떤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을지를 상상했다. 어쩌면 원수의 손에 잡혔을 수도 있고, 어쩌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가능성이 마치 비수처럼 심장에 꽂혀 잠을 이루지도 못하고 고통스럽기만 했다.차설아는 더 이상 이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빚을 한 번에 갚고 싶어 했고, 그렇게 되면 그나마 좀 더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그럼 어떤 방법으로 무사하다고 전할 건데요?”박서영은 차설아를 냉정하게 바라보며 여전히 경계하는 어조로 물었다.“SNS에 올리면 되죠.”차설아가 웃으면서 말했다.“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위험에 처했을 때 SNS를 올릴 마음이 있겠어요? 제가 SNS를 올려버리면 적어도 제가 안전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SNS만 올리게요?”박서영은 나름대로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SNS면 충분해요.”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차성철도, 배경윤도, 선우 시원도 각자 바빴기 때문에 그녀를 신경쓸 새도 없었다.이럴 때 SNS를 올리면 최소한 무사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좋아요. SNS 올리는 것만은 허락해 줄게요.”박서영이 여러 번 고민
“하하. 성도윤 씨랑 데이트하고, 선우가문의 도련님과 애정 어린 농담을 주고받고, 배씨 가문 도련님과 술 마시는 시간은 있으면서 저희 도련님을 찾을 시간은 없었나 보죠? 저희 도련님을 잊어버릴 정도로 바빴나 봐요.”서영이 흥분한 나머지 차설아의 목을 직접 움켜잡으면서 말했다.“그거 알아요? 당신이 성도윤 씨랑 얽히고설켜 있을 때, 저희 도련님은 좌절감에 스스로 인생을 끝내려고 했어요. 손목에 상처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아무리 칼날을 숨겨봤자 어떻게든 찾더라고요. 그렇게 강하던 사람이 이제는 약해빠져서 더 이상 살 수 없다고요. 알아요?”차설아는 저항하지도 않고 박서영이 자기 목을 조르는 대로 놔두었다. 애처롭게 바라보던 그녀의 두 눈에는 핏줄이 보이기 시작했다.“흥. 절대로 당신이 쉽게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예요.”박서영은 그제야 차설아를 놓아주며 차갑게 말했다.“당신한테 죗값을 치르게 하려고 이 저택으로 데려온 거예요.”“켁! 켁! 켁!”차설아는 잠깐의 질식 때문에 기침하면서 숨을 헐떡이며 박서영에게 물었다.“제가 어떻게 죗값을 치르기를 원해요?”“아주 간단해요. 저희 도련님의 시력을 돌려주면 돼요.”박서영은 앞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그동안 저는 도련님을 위해 거부반응이 없고 잘 맞는 한 쌍의 눈을 찾으려고 노력해 왔지만, 아쉽게도 찾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설아 씨의 건강 검진 데이터를 우연히 얻게 되었는데 아주 특별한 두 눈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마침 저희 도련님한테 빚진 것도 있으니까, 설아 씨의 눈을 저희 도련님의 눈과 바꾸는 거 어렵지 않겠죠?”차설아는 박서영의 최종목적을 듣고 침묵하고 말았다.“제 눈이 정말 성진한테 맞나요?”그때 성도윤이 실명했을 때도 눈을 물색하고 다녔는데 오직 혈연관계가 있는 성진의 눈만 거부반응이 없었다.그때는 성도윤이 빨리 낫기를 바라면서 성진을 신경 쓰지도 못했다.하지만 마음의 빚 때문에 계속 숨이 안 쉬어졌다.만약 자기 눈으로 성진의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면 마음의 위로 때문이라
차설아는 다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커다란 침대에 누워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온통 흰색 인테리어인 낯선 이곳은 영안실에 온 기분이었다.“드디어 깨셨군요, 약효가 너무 강해서 무려 사흘 동안 혼수상태였어요. 이러다 죽어버리는 줄 알았어요...”창가에서 한 여자의 덤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에게는 생과 사가 그저 자거나 깨어난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았다.경계 태세로 창가를 바라보던 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당신이었어요?”그날 밤 병원에서, 몰래 차설아의 병실로 들어간 그녀였다.“저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네요. 영광이에요.”박서영은 창가에 앉아 꽃다발을 정리하고 있었다.그녀의 옆에 놓인 꽃병에는 이제 막 정원에서 따온 해바라기가 꽂혀있었다.박서영은 황금빛으로 만개한 해바라기 줄기를 비스듬히 잘라 하나씩 예쁘게 꽃병에 꽂아 넣었다.“저희 주인님께서는 설아 씨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해바라기라면서 정원에 해바라기를 심으라고 했어요. 이제는 만개했는데 볼 수 없어서 너무 아쉬워요. 마치 다른 사람한테 보이지 않는 주인님의 마음처럼 말이에요.”이때 박서영은 눈빛이 차가워지면서 꽃가지를 단단히 잘라버렸다.“주인님이라 하면 성진을 말씀하시는 거예요?”차설아는 사고가 날카로운 사람이라 바로 상대방을 추측해 냈다.그녀의 기억 속에서 일편단심이면서 실명한 사람은 성진뿐이었다.“도련님을 아직 기억하고 계셔서 다행이네요. 도련님 정성이 헛되지 않았네요.”박서영은 차설아가 성진을 아직 기억하고 있어 그나마 그녀를 향한 증오가 줄어드는 듯했다.“정말 성진이에요?”차설아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려 했지만, 온몸이 무기력해 마치 마비된 것처럼 전혀 힘을 쓸 수 없었다.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린 채 박서영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저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예요?”“걱정하지 마세요. 그저 마취제 때문에 잠깐 의식을 잃고 침대에 누워있었을 뿐이니까요.”차설아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마에 식은땀을 흘렸다. 아무리 일어나고 싶어
진찬영은 배경윤에게 핸드폰을 건네면서 이 둘의 말다툼을 중단시켰다.“고마워요. 찬영 오빠는 역시 최고예요.”배경윤은 배시시 웃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 차설아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정말 제가 좋다면 이제는 찬영 오빠라고 부르지 마요...”진찬영은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찬영 씨라고 불러요.”“아, 그게...”배경윤은 진찬영의 갑작스러운 감정변화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심지어 조금 화가 난 것 같았다.“찬영 오빠는 팬분들이 불러주는 호칭인데 저희는 그런 사이가 아니니 이제부터는 찬영 씨라고 부르는 거 어때요?”“알았어요. 찬영 씨...”호칭을 바꿔 부른 배경윤은 얼굴이 발그레해졌다.‘왜 이렇게 부끄럽지?’역시 호칭은 알게모르게 두 사람이 얼마나 가까운지 설명할 수 있었다.찬영 오빠라고 부를 때에는 팬이 연예인에 대한 애정으로 별로 부끄럽지 않았는데 찬영 씨라고 부르니 확 부끄러워지는 느낌이었다.옆에 있던 사도현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지금 저를 투명 인간 취급하는 거예요?”지금 사도현이 비꼬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다 느낄수 있었다.“너랑 무슨 상관이야. 보기 싫으면 나가든가.”배경윤의 말을 비수처럼 심장에 박혔고, 사도현의 체면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흥! 누가 설아에 대해 나쁜 말을 하라고 했어?’배경윤은 차설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계속해서 무응답 상태였다. 반복해서 네다섯 번을 걸었지만, 여전히 아무도 받지 않았다.“무슨 일이지?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지? 뭔가 잘못됐어.”비경윤은 불안한 예감에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지금쯤 병원에 있어야 하는 설아는 원래 지루한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언제나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는데, 왜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 걸까? 분명 무슨 일이 있어!’배경윤이 이불을 걷어차고 침대에서 일어나려 한다.“제발 가만히 있어!”사도현이 다시 그녀를 침대에 눕히면서 말했다.“설아가 어린애야? 실력도 좋은데 무슨 일이 있겠어. 다른 사람을 건드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두세 시간 뒤에요.”진찬영이 대답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모든 독소를 제거하려면 세 시간 후에 전신 마취를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물을 마시면 안 돼요.”“아직 시간이 많네요...”배경윤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했다.“제 핸드폰은 어디 있어요? 설아에게 안부를 전해야 하거든요.”사도현이 배경윤을 다시 침대에 눕히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지금이 어떤 때인데, 너나 잘 챙겨. 설아를 챙기는 사람은 많고도 많아.”“누군데? 설마 너의 그 쓰레기 같은 친구 성도윤은 아니지?”배경윤이 무례하게 반박했다.“난 그 자식이 방해할까 봐 걱정돼서 설아랑 계속 연락하려고 하는 거야.”사도현은 무심코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도윤이 형이 대체 너한테 뭘 잘못했다고 그래?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야. 그 두 사람은 딱봐도 재능과 미모를 갖춘 천생연분인데, 그냥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을 뿐이잖아. 우리 도윤이 형을 바람둥이라고 단정 짓지는 말지?”“그 사람이 바람둥이 아니면 누가 바람둥이인데!”배경윤은 격렬하게 반응하면서 침대에서 일어나 사도현과 따지려고 했다.“혼인 중에 바람을 피우고, 다른 여자를 임신시키고, 겨우 설아 마음을 되돌리더니 또 다른 재벌 딸과 약혼하고. 이게 바람둥이가 아니면 뭔데?”“설아도 너의 오빠랑 그렇고 그런 사이였잖아. 요즘에는 선우 가문 도련님과도 뜨겁게 보내더니. 그리고 도윤이 형은 왜 이렇게 되었는데! 어떻게 실명하고 기억을 잃게 되었는지 설아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거야?”“그건 그냥 사고일 뿐인데 설아랑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러는 거야. 원망할 거면 하느님을 원망해. 누가 그런 악행을 많이 저지르라고 했어. 하느님도 노해서 가만두지 않은 거지.”“배경윤,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나한테 막말은 해도 도윤이 형한테는 그러면 안 되지.”“내가 뭘 어쨌다고? 너도 방금 우리 설아한테 뭐라고 했잖아!”두 사람은 마치 싸움닭처럼 감정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이것은 두 사람이 계속 다투게 되는 주제라
진찬영은 사도현이 지금까지 만난 가장 자아도취적이고 오만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경윤 씨한테 물어봤어요? 당신과 저 사이에 도대체 누가 외부인인지.”사도현은 말을 끝내자마자 진찬영의 품에서 배경윤을 뺏어오려고 했다.이때 이미 힘이 풀린 배경윤이 입술이 약간 창백해져서 말했다.“싸우지 않으면 안 돼요? 계속 싸웠다간 제가 죽을지도 몰라요. 빨리... 저 좀 병원에 데려다줘요!”배경윤은 눈앞이 어두워지면서 의식을 잃고 말았다.다시 깨어났을 때는 이미 근처 병원의 환자 침대에 누워있었다.병상 앞에는 사도현과 진찬영이 앉아있었고, 분위기는 쓰러지기 전과 같았다.하지만 다행히도, 아직은 죽은 목숨이 아니었다.“경윤아, 깼어? 목말라? 물 따라줄까?”배경윤이 눈을 뜨자, 진찬영은 두 눈이 반짝거렸다.“이틀 동안 혼수상태였는데, 목마르냐고 묻는 시간에 이미 다 마셨겠어요.”사도현이 이 말을 할 때, 진찬영은 이미 따뜻한 물을 배경윤한테 건넸다.배경윤은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고 싶었지만, 오른손에 아무런 감각도 없어 전혀 힘을 쓸 수가 없었다.“내... 내 손...”그녀는 침을 삼키면서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머릿속에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손을 절단해야 하는 건가? 이제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걸까?’“걱정 안 해도 돼요. 괜찮아요. 독이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아서 마비된 느낌이 들 거예요.”진찬영은 부드럽게 그녀의 마음을 안심시켰다.“아... 깜짝 놀랐잖아요.”배경윤은 절단할 필요가 없다는 말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도현은 배경윤에게 직접 물을 먹여주면서 대뜸 말했다.“24시간 이내에 독을 깨끗이 배출하지 못하면 신경이 마비되어 절단해야 할수도 있어.”“푸!”배경윤은 물을 다 마시기도 전에 뿜어내고 말았다.“뭐라고?”긴장한 채로 사도현을 쳐다보던 배경윤은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만약 손을 정말 절단해야 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아직도 이해 못 했어? 독이 말끔히 없어지기 전까진
야맹주를 확인한 배경윤은 신속히 잠수했다.“천천히 가!”사도현은 그녀가 걱정되어 조심하라고 말했다.정말 화려하고 아름다운 산호바다였지만 단면이 너무 높아 일부 산호는 쉽게 만졌다가 위험할 정도로 날카로웠다.하지만 이때, 동심의 세계로 들어간 배경윤은 마치 큰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흥분하면서 야맹주 위에 덮여 있던 산호초를 맨손으로 제거했다.그녀는 차설아가 평안 무사할수 있도록 이 야맹주를 선물하고 싶었다.“아!”배경윤이 야맹주에 손을 대려는 순간, 갑자기 산호초 틈새에서 은색 원형 물체가 튀어나와 그녀의 손등을 덥석 물었다.“바다뱀이야!”바다뱀이 배경윤을 물고 옆을 쓱 스쳐 자나가자 머릿속이 하얘진 사도현은 급히 잠수하여 그녀의 손을 잡았다.“봐봐...야맹주!”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배경윤은 그저 벌레에게 물렸다고 생각하면서 순진하게 사도현에게 야맹주를 자랑했다.“입 다물어!”사도현은 눈앞의 이 덜렁거리는 여자를 보고 있자니 너무 화가 나고 안타까웠다. 그녀는 과연 이런 바다뱀이 독성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걸까?진찬영은 그렇게 많은 것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긴 팔로 배경윤의 허리를 감싸고, 긴 다리를 쭉 뻗어 빠르게 수면으로 올라갔다.진찬영과 하늘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차례로 수면으로 떠올라 잠수 마스크를 벗었다.“여기 도와주세요! 보트를 준비해 주세요. 병원으로 가야겠어요!”사도현의 잘생긴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고, 잠긴 목소리로 육지에 있는 안전요원에게 외쳤다.“무슨 일이에요?”진찬영이 신속히 배경윤 곁으로 다가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아, 별거 아니에요. 그냥 벌레에게 물렸을 뿐이에요...”배경윤은 뱀에게 물린 손등을 들면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보였고, 오히려 사도현이 너무 예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일반적으로 뱀에게 물리면 독이 체내에 바로 퍼지지 않아 아직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그녀는 다시 야맹주를 들어 올리며,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다들 이것 좀 보세요, 제가
진찬영은 이런 중요한 기회를 사도현을 놓칠 수가 없었다.“저는 저의 파트너로 하늘 씨를 선택하고 싶어요.”진찬영이 사도현을 쳐다보지도 않고 안전요원에게 이렇게 말하자 사도현과 배경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이 자식 뭐하는 거야. 포기라도 하는 거야?”사도현은 믿기지 않는지 진찬영을 째려보면서 말했다.“어떻게 하늘 씨를 선택할 수 있어요? 어쩌다 정면으로 승부를 겨룰 기회가 생겼는데 왜 포기하는 거예요?”진찬영이 사도현을 냉랭하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지금은 잠깐 경윤 씨를 도현 씨한테 맡길게요. 꼭 잘 지켜주셔야 해요.”사도현은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잠수복을 입고 하늘과 함께 바다로 뛰어드는 진찬영을 쳐다보았다.“왜 저래?”제대로 한판 붙어볼 줄 알았는데 도전장을 내민 사람은 자기뿐이라 갑자기 김이 새는 느낌에 불쾌하기만 했다.“갑시다. 파트너님.”사도현은 더는 생각하기도 싫어 멍한 표정의 배경윤한테 터벅터벅 걸어갔다.“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너랑 짝이 된 거야.”배경윤은 싫증난 표정을 하고있었다.진찬영과 손잡고 바다 경치를 즐길 줄 알았는데 말이다.그런데 아무리 봐도 믿음직스럽지 못한 사도현한테 자기 운명을 맡겨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아까 등산할 때까지만 해도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는데 이 타이밍에 진찬영이 뒤로 물러설 줄 몰랐다.“난 다이빙 챔피언까지 땄던 사람이야. 기다려 봐. 오늘 야맹주를 꼭 찾아줄게.”사도현의 오늘 주요 목적은 야맹주를 찾는 것이었다.비록 전설일 뿐이었지만 만약 정말 찾아서 배경윤한테 준다면 이보다 더 의미 있고 로맨틱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사람들은 하나둘씩 바다에 뛰어들었다.하트섬은 물고기 떼, 가지각색의 산호초가 훤히 보일 정도로 수질이 좋았다. 더 깊이 내려가면 잭피시가 보이기도 했다.배경윤은 산소 호흡기를 꽉 깨물고 천천히 밑으로 향했다.파트너인 사도현은 그녀에게 무슨 사고라도 일어날까 봐 옆에 꼭 붙어있었다.진찬영은 몇 미터 밖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중이염을
이들은 어제저녁 약속한 대로 섬 근처에 있는 청정지역에서 스토클링하기로 했다.이때 감독 최빈이 말했다.“이 섬은 모양이 하트로 되어있어 하트섬이라고 불리는데 물이 맑아 산호초와 열대 물고기를 많이 볼 수 있을 거예요. 다들 오늘 운이 좋으면 하트섬 특유의 야맹주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보던 밤이면 빛이 나는 그런 야맹주요.”“정말 야맹주가 있는 거예요?”배경윤이 이번 스노클링이 점점 더 기대되었다.사실 그녀는 일찍 하트섬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섬 중앙에는 고가의 진주가 들어있는 천연 조개가 많다고 했다. 최빈이 언급한 야맹주는 그저 전설일 뿐이었다.전설 속에서는 야맹주를 찾은 사람이 평생 행복할 거라고 했다.신난 배경윤은 야맹주를 찾아서 차설아한테 선물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 존재하는지, 아니면 호객행위인지 몰랐다.“당연히 있죠. 수년 전에 섬에서 살던 분들이 발견했대요. 찾을 확률은 낮지만, 없는건 아니에요.”최빈이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했다.“그럼 뭘 기다려요. 저희 얼른 가요...”조급해 난 배경윤이 이때 대담하게 제의했다.“저희 스노클링하지 말고 아예 다이빙하는 거 어때요? 6미터 가까이 되는 그런 다이빙을 하면 야맹주를 찾을 수 있는 확율이 더욱 높지 않을까요?”“좋아요.”사도현이 손을 들면서 말했다.“스노클링을 해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다이빙해야 얻고 싶은 걸 얻을 수 있죠.”“저도 좋아요. 저는 폐활량이 좋아서 물속에서 산소통이 없어도 몇 분씩이나 있을 수 있다고요.”하늘도 찬성의 의미도 손을 들었다.올림픽 금메달 수영선수로서 물을 전혀 무서워하지도 않았다.오직 진찬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찬영 씨는 스노클링하실 거예요? 아니면 다이빙하실 거예요?”최빈이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진찬영에게 물었다.“저는 경윤 씨랑 같은 걸 할게요.”진찬영의 표정이 안 좋았던 것은 전에 중이염 수술을 받은 적 있어 수압을 견디지 못해 너무 깊게는 내려가지 못했다. 5미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