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578화

작가: 배시아
차설아는 남자에게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녀는 감기에 걸렸을 뿐이지 전신 마비가 온 것도 아니니 굳이 직접 방으로 데리고 갈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여자의 방에 어떻게 낯선 남자를 들일 수 있을까?

하지만 그녀는 지금 온몸이 나른해져 그와 입씨름할 힘이 별로 없었다. 그냥 누워서 푹 자고 싶어 손가락을 들어 계단을 가리켰다.

“2층 첫 번째 방.”

남자는 그녀를 안고 2층 침실로 향했다.

차설아의 방은 그녀의 성격과 정반대였다. 귀여운 핑크색과 티파니 블루색이 어우러졌고, 인형 수공예품 같은 것들이 가득 있었다. 침대 주위에는 얇은 베젤이 달려 매우 아름답고 환상적이었다.

“호랑이 같은 성격을 가진 설아 씨에게도 이렇게 귀여운 면이 있는 줄 몰랐네요.”

미스터 Q는 차설아를 침대에 눕힌 뒤 그녀의 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차설아는 머리가 아프고 힘이 없어 이를 악물고 말했다.

“별다른 일 없으면 나가서 일 보세요. 여기서 시간 낭비할 필요 없어요.”

“그건 안 되죠. 이미 민이 이모님에게 설아 씨를 잘 돌봐주겠다고 약속했어요.”

“진짜 그럴 필요 없어요. 한 잠 자고 나면 괜찮아져요.”

“그럼 설아 씨는 주무시죠. 전 구경할 테니.”

남자는 말을 마치고는 허리를 굽혀 차설아가 피아노 뚜껑에 올려놓은 인형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차설아는 화가 치밀어 올랐고, 이 눈치 없는 남자를 발로 차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체결하지 않은 전당포 계약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예 이불을 잡아당겨 머리를 가리고 쿨쿨 잠들었다.

차설아는 잠결에 민이 이모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지만, 또 이내 나가는 것 같았다.

“괜찮아요?”

이불을 사이에 두고 미스터 Q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설아는 온몸이 뜨겁고 힘이 없어서 그를 상대하기 귀찮아 눈을 감고 계속 잤다.

“민이 이모가 약을 끓여왔어요. 먹고 자세요.”

미스터 Q는 침대 옆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약을 손에 들고 숟가락으로 떠서 열을 식히고 있었다.

차설아는 여전히 이불 안에서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선 이혼, 후 집착   제579화

    “휴, 당신 대체 왜 이래요? 제가 아프든 말든, 약을 먹든 말든, 그쪽이랑 뭔 상관이죠? 왜 자꾸 나에게...”“아무래도 제가 먹여줘야 할 것 같네요?”남자는 입꼬리를 올리더니 천천히 여자에게 다가가서 차설아에게 ‘먹여’줄 포즈를 취했다.차설아는 순간 꼬리를 내리고 코를 쥐고는 인상을 찌푸리고 한 모금 마셨다.‘젠장... 너무 써!’여자는 조심스럽게 눈을 들어 기회를 잡아 ‘반칙’을 하려 했지만 남자의 살인적인 눈빛을 보고는 계속 약을 마셔야 했다.‘하느님, 맙소사, 내 팔자는 왜 이 약처럼 쓴 거야? 내 집에서 다른 남자에게 약을 먹으라고 강요당하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경우냐고!’차설아가 고통스럽게 약을 마시는 것을 본 남자는 벌떡 일어나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더니 피아노 옆으로 가서 우아하게 앉았다.곧이어 그의 갸름한 손가락은 마치 흐르는 물처럼 흑백 피아노 건반에서 미끄러지더니 아름다운 선율이 천천히 방안을 휘감았다.차설아는 흠칫 놀랐다.‘자정 살인마라고 불리는 인간이 피아노도 칠 줄 안다고? 게다가 수준급이야!’음악은 마치 진정제처럼 그녀의 짜증 나는 마음을 한순간에 고요하게 만들었다.더 신기한 것은 그녀의 몸도 그렇게 아프지 않고, 온몸이 편안해졌다.손에 든 약도 별로 쓰지 않은 것 같았다.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젖히고는 약을 전부 마셨다.피아노를 치던 남자는 순식간에 몰입하더니, 심지어 눈까지 감은 채 음악에 흠뻑 취해 있었다.차설아는 약그릇을 침대 캐비닛 위에 올려놓고 침대 위에 반듯하게 누워 눈을 감았다.어느새 그녀는 잠이 들었다...은은하고 부드러운 선율 속에서 그녀는 아름다운 꿈을 꾸었다.꿈속에서 차설아는 오색영롱한 정원에 도착했다. 공기 중에는 꽃과 풀의 향기로 가득했고 하늘도 푸르러 마치 천국에 온 것 같았다.그녀는 정원에서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매우 즐겁게 웃으며 함께 하늘 끝까지 달려갔다.그 끝자락에는 몸집이 큰 남자가 등을 돌린 채로 그들을 오래 기다린 듯했다.민이 이모는 방으로

  • 선 이혼, 후 집착   제580화

    “휴, 뭐겠어요? 성씨 가문의 둘째 아들 성도윤 도련님밖에 더 있겠어요?”민이 이모는 이 이름을 언급하며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아가씨가 전에 결혼한 적이 있다는 걸 알고 있죠? 그 결혼생활에 많은 정성을 쏟았고, 성씨 가문에도 많은 정을 쏟았지만, 안타깝게도 결국 불행한 결말을 맞이했죠...”“여자는 말이에요, 아주 강하지만 정이라는 것을 만나면 집착이 되죠. 우리 아가씨는 계속 그 실패한 결혼생활에 갇혀서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미스터 Q는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 가면 아래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온몸에 싸늘하고 우울한 기운이 감돌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이모님 말씀을 들어보니, 설아 씨는 오랜 세월 동안 계속 전남편을 사랑하고 있고,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밤잠을 설치면서 불면증을 앓고 있다는 건가요?”“꼭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죠.”“전 남편에게 벗어날 수 없는 건 꼭 사랑 때문만이 아니라, 아쉬움일 수도 있어요.”“아쉬움이요?”“맞아요, 감정이라는 건 주식과도 같잖아요. 투자를 많이 할수록 점점 헤어나올 수 없죠. 한번 손해를 보면 손을 떼기는커녕 더 많은 원금을 걸고 도박을 하고는 결국 많은 것을 잃게 되죠... 마음속에 그렇게 큰 구멍이 뚫렸는데, 어떻게 쉽게 풀릴 수 있겠어요.”민이 이모의 말은 아주 철학적이라 미스터 Q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그는 깊은 감명을 받은 듯 차갑게 말했다.“이모님 말씀이 맞아요. 감정이라는 건 주식과도 같아 승패를 결정하기 어렵죠. 유일한 해결책은 너무 많은 것을 투자하지 않는 거죠. 100%의 감정에 1%를 투자하면 언제든지 회수할 수 있고, 자연히 아쉬움도 없겠죠.”민이 이모는 이해할 수 없는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우리 아가씨에게 어떤 감정이신가요? 만약 1%의 감정만 투자할 생각이라면 흔들지 마세요. 우리 아가씨는 한 번 빠지면 나오기 어려워해요. 이미 한번 사랑의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절

  • 선 이혼, 후 집착   제581화

    차설아는 어색한 마음에 꼼짝 못 한 채 제자리에 굳어서고는 웃으며 말했다.“하하, 깼, 깼어요? 얼굴에 모기가 있어서 치워주려고 했죠.”“참으로 친절하시네요.”남자는 여전히 누운 자세였지만 카리스마가 넘쳤고 터프하게 긴 팔로 여자를 품에 끌어당기더니 웃는 듯 마는 듯 말했다.“제가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요?”차설아는 남자의 가슴팍에 반쯤 엎드리고 있었는데 섣불리 움직이지도 못했다. 발버둥 치면 오히려 더 어색한 자세로 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그녀는 일부러 덤덤한 표정을 보이며 말했다.“보답은 필요 없어요, 저도 그냥 은혜를 갚은 것뿐이에요. 온밤 동안 저를 돌봐주셨잖아요. 약 먹는 것도 도와주고 피아노도 쳐줬으니 모기 하나 잡는 것쯤이야 아무 일도 아니죠.”“하긴.”남자가 느긋하고 여유롭게 말했다.“아픈 사람 돌보는 게 어디 쉬운 줄 알아요? 특히 당신은 약을 먹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다고요. 온밤 동안 고생을 하니 허리 시큰시큰하고 눈꺼풀도 무겁네요. 설마 모기 하나 잡는 것으로 퉁 칠 셈은 아니죠?”“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차설아가 어금니를 깨물며 말했다.‘이 녀석 완전 얍삽하네? 나한테 당한 거 바로 써먹어?’“뭐 별거 없어요. 어깨랑 다리 주물러주고 노래나 불러봐요.”차설아의 얼굴색은 한껏 어두워졌다.“그만하시죠? 이런 농담 좋아하지 않아요.”미스터 Q는 그제야 차설아를 놓아주고는 창밖의 쟁반 같은 밝은 달빛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저랑 얘기 좀 하고 달이나 구경하는 건 괜찮겠죠?”“네.”차설아가 손가락을 튕기고는 자리에서 일어서 간식과 과일을 챙겨왔다.“시작하죠.”그녀는 몸에 담요를 두르고 손에 빨간 사과를 쥐더니 느긋하게 말했다.남자가 허리를 곧게 펴고는 그녀를 위아래로 살펴봤다.“이제 열은 안 나는 거예요?”“네.”“감기 기운도 없어요.”“없어요.”차설아는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는 으쓱해하며 말했다.“나 엄청 건강한 체질이에요. 감기에 걸려도 잠을 자면 바로 나아요.

  • 선 이혼, 후 집착   제582화

    미스터 Q는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되물었다.“내가 누군지 많이 중요한가요? 혹시 저에게 무슨 특수한 감정이 생긴 건가요?”“아니거든요!”차설아는 온몸에 소름이 돋아 곧바로 설명했다.“난 그냥 당신이랑 있으면 오랜 친구를 만난 듯한 편안한 느낌이 들어요. 당신이 소문과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아요.”“내 정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면 끝까지 캐물을 필요가 없죠. 굳이 따지자면 우리는 바이어와 셀러의 관계일 뿐이에요. 당신은 나에게 이 섬을 팔고, 나는 그 돈을 지불하는 거죠. 아주 간단해요.”“하긴!”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어쩌면 그녀가 잠시 어리석게 행동한 것일지도 모른다.눈앞의 남자는 그저 약을 먹여주고 피아노를 연주했을 뿐인데 그녀는 바로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언제 뒤통수를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경계심을 낮췄다.차설아가 깊은숨을 들이마시더니 다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마치고는 미스터 Q에게 물었다.“이 섬이 어떤 것 같아요? 언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데요?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언제 돈을 지불할 수 있어요?”배성준에게 약속한 돈을 더 미룰 수는 없었으니 먼저 돈을 받고 그 구멍을 때워야 했다.미스터 Q가 입꼬리를 씩 끌어올렸다.‘이 여자, 왜 갑자기 태도가 급변한 거야? 방금까지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편안한 느낌이 든다더니 갑자기 나에게 돈을 내라며 재촉하는 거야?’“섬이 마음에 드네요. 돈은 언제든지 지불할 수 있어요. 하지만...”남자가 흠칫했다. 다른 조건이 있는 게 분명했다.차설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일이 이렇게 쉽게 풀릴 리가 없지. 자정 살인마라는 별명이 괜히 생긴 것도 아닐 것이고. 성심 전당포를 제대로 이름을 날리게 했으니 분명 거래하기 까다로운 사람일 것이야.’“무슨 조건이 있는데요? 말해봐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할게요.”“그 말, 확실해요?”그는 차설아를 위아래로 살펴보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물었다.차설아는 담요를 다시 몸에 꼭 두르고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나를 욕심

  • 선 이혼, 후 집착   제583화

    차설아는 정곡에 찔려 분노의 표정으로 말했다.“세상에 어떤 엄마가 자기 아이들이 아버지 없이 자라길 바라겠어요? 아이들 아버지가 너무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서 이런 방식으로 아이들이 다른 상처를 받지 않도록 보호할 수밖에 없었어요.”“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요?”미스터 Q가 피식 웃더니 말했다.“믿을 만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데요? 당신의 그 기준이 아이들의 생각보다 중요한가요? 오히려 아이들은 당신이 믿음직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요.”“당신이 뭘 알아요?”차설아가 반박했다.“두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내가 키웠어요. 세상에서 나보다 아이들을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고요. 아이들이 어떤 아버지를 원하는지 내가 알아서 판단할 수 있으니 당신이 지적할 필요는 없어요.”“정말로 고집불통이네.”미스터 Q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푹 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럼 나는 왜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내가 왜 꼭 그 역할을 해내지 못할 거로 생각하는데요?”‘당신이 아이들 아버지의 원수니까!’하지만 차설아는 차마 이 말을 내뱉지 못했다.“그럼 이렇게 하죠...”차설아가 난감한 얼굴을 보이자 남자가 말했다.“나한테 시간을 주는 건 어때요? 지금부터 당신이 다시 섬을 되찾아갈 때까지 내가 달이 아버지 역할을 하는 거예요. 그때도 내가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나도 포기할게요. 어때요?”미스터 Q의 말은 너무나도 의외였다.자정 살인마라고 불리는 사람이 물러설 줄이야?그녀는 남자를 바라보더니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되기는 하지만 왜...”“이유는 없어요. 그냥 달이와 인연이 있는 것 같아서요. 어쩌면 내가 전생에 달이 아빠였을지도 모르죠.”남자가 웃는 듯 마는 듯 말했다.결국 돈이 필요한 차설아는 일단 미스터 Q의 제의에 동의했다.계약서를 체결한 그녀는 순조롭게 돈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워낙 새로운 것을 좋아하던 달이 녀석은 더는 그녀에게 달라붙지 않고, 미스터

  • 선 이혼, 후 집착   제584화

    차가 해안에 도착했을 때 차설아와 미스터 Q는 가는 길이 달라 헤어지려고 했다.차설아는 이 순간을 진작 바랐지만 순수한 달이는 입을 삐죽 내밀더니 남자에게 달라붙고는 놓아주지 않으려고 했다.“아빠, 이제 헤어지는 거예요? 너무 아쉬워요. 같이 집으로 가서 엄마와 오빠랑 같이 살면 안 돼요?”“그게...”미스터 Q가 대답하기도 전에 차설아가 굳은 얼굴로 거절했다.“안 돼!”“왜 안 돼요? 엄마랑 아빠랑 달이가 같은 집에 살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달이야, 엄마 말 들어봐. 이 사람 말이야, 좋은 사람이 아니거든. 그냥 같이 놀면 모르겠는데 왜 집까지 들이려고 해? 이거 완전 나쁜 사람 집에 초대하는 격이야, 너무 위험해. 그래서 안 되는 거야.”“하지만 미스터 Q는 나쁜 사람이 아닌 좋은 사람 같아요. 우리를 해치지 않고 오히려 잘해주고 챙겨주고 있잖아요.”귀여운 달이는 이제 미스터 Q를 굳게 믿고 있었다.달이는 미스터 Q와 알고 지낸 지 이틀밖에 안 되었지만 미스터 Q가 진심으로 자기에게 잘해주는 걸 느낄 수 있었다.엄마와 똑같이 오직 그녀를 위한 순수한 마음이 느껴졌고, 충분히 믿음직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얘가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내가 안 된다면 안 되는 거야.”차설아는 정말 화가 나 두 팔을 두르면서 말했다.“그렇게 좋으면 미스터 Q를 따라가. 엄마를 왜 따라오는 거야?”그 말을 들은 달이는 얼른 미스터 Q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는 차설아의 허벅지를 끌어안으며 귀여운 목소리로 말했다.“엄마, 질투하지 마세요. 달이는 영원히 엄마를 제일 사랑해요. 달이에게 엄마보다 더 중요한 사람은 없다고요. 두 사람 중에 굳이 한 명을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엄마를 선택하죠.”“됐어, 나랑 얘기하지 마.”차설아가 고개를 홱 돌리고는 씩씩거리며 말했다.‘흥, 내가 그렇게 쉽게 달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야?’차설아는 오늘 오는 길에도 여러 번 질투를 느꼈다. 달이에게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 선 이혼, 후 집착   제585화

    차설아는 달이가 연애에 눈이 멀어 모든 걸 포기하는 사랑밖에 모르는 여자가 되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얼마 후 택시는 곧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차설아는 아직 집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난리가 난 집 안의 상황을 예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아니나 다를까,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배경윤은 울면서 난리를 부리고 있었고, 원이는 덤덤한 얼굴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원이야, 제발, 내가 부탁할게. 내 휴대폰에 있는 바이러스를 지워줘. 휴대폰에 엄청 중요한 파일이 있단 말이야, 절대 외부에 알려지면 안 돼.”“무슨 중요한 파일이 있겠어요? 한 번 봤는데 이모 셀카 사진밖에 없던데요?”“셀카 사진이 안 중요해? 이모 부탁을 들어줘. 다른 건 몰라도 휴대폰을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단 말이야. 경윤 이모가 패배를 인정할 테니까 제발 지워줘. 이렇게 부탁할게.”“패배를 인정하면 엄마가 어디로 갔는지 빨리 알려주세요. 엄마는 왜 인사도 안 하고 떠난 거예요? 엄마가 제 연락을 받지 않던데 설마 저를 버린 건 아니겠죠?”원이가 입을 삐죽 내밀더니 씩씩거리며 배경윤에게 물었다.배경윤은 죽고 싶은 마음이 다 생겼다.“그게, 나도... 나도 잘 몰라. 그냥 너를 잘 돌봐달라고 문자가 왔었어. 그리고 사라졌단 말이야. 그런데 지금 너를 돌봐주러 온 게 아니라 완전 너에게 당하고 있잖아. 무슨 어린아이가 어른보다 더 상대하기 더 까다로워? 내가...”“무슨 일이야?”차설아가 문을 열고 들어오고는 미간을 구기며 물었다.원이는 듬직하게 앉아있더니 차설아의 목소리를 듣고는 쌩 달려갔다.“엄마, 돌아오셨어요? 원이는 엄마가 원이를 버리는 줄 알았단 말이에요.”녀석은 엄마 뒤에 있는 사랑스러운 동생과 존경하는 민이 이모까지 발견하고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달이랑 민이 이모님도 온 거예요? 정말 잘됐어요!”“오빠, 드디어 달이랑 만나게 되었네. 안아줘!”두 녀석은 반가운 마음에 서로 껴안았다.“언니, 드디어 돌아왔어? 언... 언니 아들이 어떤 짓을 했는

  • 선 이혼, 후 집착   제586화

    차설아가 그 말을 듣더니 곧바로 흥분한 목소리로 맞장구를 쳤다.“그래, 아무나 아빠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엄청 중요한 사람이니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고. 아무 남자에게나 아빠라고 부르면 돼? 원이야, 달이가 평소 원이의 말을 잘 듣잖아. 이번에 달이를 제대로 교육해야 해.”그렇다, 차설아가 달이를 설득하기 위한 ‘최종 비밀 병기’는 바로 원이었다.그녀가 한 말이면 달이가 꼭 듣는 건 아니었지만 원이의 말은 무조건 믿으며 따랐다.아니나 다를까, 원이가 진지한 얼굴로 말하면서 달이를 교육하기 시작했다.“달이야, 오빠가 말했었잖아. 이 세상은 아주 복잡한 거라고. 엄마랑 오빠, 민이 이모, 경수 아빠랑 경윤이 이모 빼고는 우리를 접근하는 사람 모두 나쁜 사람일 수 있어. 아무 사람을 아빠로 따랐다가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면 어떻게 해? 우리를 해치려고, 심지어 엄마를 해치려고 하면 어떻게 해?”평소의 달이라면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원이의 말을 새겨듣겠지만 이번에 달이는 보기 드물게 원이의 말을 듣지 않고 반박했다.볼이 빨개진 달이는 귀여운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말했다.“오빠의 말이 맞지 않은 것 같아. 이 세상에 나쁜 사람이 어디 그렇게 많겠어? 적어도 내가 만난 사람은 다 엄청 좋은 사람들이었어. 아빠도 좋은 사람이야. 엄마가 편찮으실 때 챙겨주셨고, 나랑도 놀아주고 비행기도 태워줬어. 그리고 헬리콥터도 타 하늘을 나는 느낌을 받게 해주겠다며 약속했단 말이야... 그렇게 좋은 사람이 어떻게 나쁜 사람일 수 있겠어?”차설아와 원이가 그 말을 듣고는 마음이 답답해 발을 동동 구르며 한숨을 쉬었다.“네 동생 좀 어떻게 해 봐. 이거 완전 사랑에 눈먼 여자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야? 얼른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설득해. 아니면 나중에 커서도 나쁜 남자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고생할 게 뻔해.”차설아가 원이에게 말했다.그녀는 모든 희망을 원이에게 걸었다.원이가 더 엄숙한 얼굴로 달이를 보며 말했다.“달이야, 계속 그렇게 고집을 부린다면

최신 챕터

  • 선 이혼, 후 집착   제1517화

    성도윤은 인내심을 가지고 아이들이 식사를 마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누가 많이 먹고 먼저 다 먹으면 그 사람이 결정권을 가지는 거야. 그런다고 해서 체하면 안 돼. 알겠지?”두 아이는 다시 진지하게 밥을 먹는 것으로 경쟁하기 시작했다.“너희 먼저 먹어. 난 배불러서 잠깐 햇볕 좀 쬐고 올게.”차설아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녀는 우유 한 잔만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마당으로 가서 햇볕을 쬐었다.성도윤은 차설아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채고는 김정민더러 아이들을 돌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그녀를 따라 마당으로 나갔다.“무슨 일이죠, 주인님?”그는 차설아 옆에 서서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차설아는 담담하게 대답했다.“분명 뭔가 신경 쓰이는 게 있을 텐데... 내가 한번 맞혀볼까?”성도윤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혹시 두 아이에게 미안해서 그러는 거야? 아이들은 가고 싶은 곳이 많은데 네가 함께 즐겁게 놀아줄 수 없어서?”차설아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선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작은 얼굴에는 마치 어른에게 생각을 간파당했을 때의 아이처럼 놀라운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어떻게 알았어요?”그녀는 자신이 감정을 꽤 잘 숨기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성도윤에게 들키고 말았다.그는 차설아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잘 알고 있어서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너무 많이 알고 있다고 경계해야 할지...’다른 사람을 너무 깊이 이해해 버리면 그건 양날의 검과도 같았다. 행복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고통스러울 때도 있으니 말이다.“오랜 세월을 함께했잖아. 부부이기도 했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이기도 했고 또 연인이기도 했어. 원수였던 적도 있지만... 내가 어떻게 널 모를 수 있겠어?”성도윤은 차설아 앞에 쭈그려 앉으며 그녀의 차가운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었다.“그렇게 많이 생각할 필요 없어. 네가 아이들이랑 뭘 하는지는 중

  • 선 이혼, 후 집착   제1516화

    “그렇다니까?”서은아는 이를 꽉 깨물며 차갑게 말했다.“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바로 차설아한테로 갔어. 강아지처럼 따라붙더라고. 난 성도윤 얼굴조차 못 봤다니까? 진짜 한심하기도 하지. 내가 생각해도 내가 제일 바보인 것 같아. 안 그러면 이렇게 화내면서 극단적인 제안을 할 이유도 없잖아.”“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차설아는 어떤 반응이었어?”성진은 손가락을 살짝 움켜쥐며 계속해서 물었다.그는 자신의 감정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최대한 무덤덤한 태도를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감정을 감추려 해도 자신이 차설아에 대한 마음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어떤 반응이겠어? 당연히 좋아하겠지. 가족끼리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 거잖아.”서은아는 어이없어하며 성진이 뻔한 질문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불만을 쏟아내듯 말을 이어갔다.“두 사람은 처음부터 끊어지려야 끊어질 수 없는 사이였어. 우리가 힘을 합쳐서 엄청난 노력을 한 것도 맞긴 하지만 결국 두 사람 사이를 더 깊이 이어준 셈이지.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바보였던 거야. 어쩌면 우리가 해온 일들도 그들을 돕는 역할밖에 못 했던 거지. 우리는 그저 한낱 도구였을 뿐이라고!”서은아가 이렇게 불만을 토로하는 이유는 단순히 속상해서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성진의 질투심을 자극해 성도윤과 차설아의 관계를 완전히 망가뜨리고 싶었다.“그렇다고?”성진의 눈빛 속에는 점점 더 강한 분노와 불만이 차올랐다.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럼 본때를 보여줘야지.”“무슨 계획이라도 있는 거야?”“네가 말한 거잖아.”성진은 주먹을 꽉 움켜쥐고 한 글자 한 글자 뱉었다.“성도윤을 완전히 무너뜨려서 빈털터리로 만들자며?”“그래, 좋아! 또다시 동맹을 맺게 됐네. 솔직히 너라는 놈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일 처리 하나는 잘하니까 말이야. 너랑 손잡는 게 제일 마음이 놓이네.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을게!”서은아는 기분 좋게 말했다.“너도 만만치 않지.”성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사랑해서

  • 선 이혼, 후 집착   제1515화

    “눈이 다 나았다고 하길래 특별히 축하해주러 왔지.”서은아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성진에게 선물을 툭 던져주었다.“이렇게 신경 써주니 참 고맙네.”성진은 선물을 받으며 냉랭하게 말했다.“형이랑 결혼이라도 할 건가?”“성진아, 너 지금 나 가지고 노는 거야? 밖에서 떠도는 소문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건 아닐 거고.”서은아는 말하다가 화가 나서 소파를 두 번이나 세게 걷어찼다.“성도윤 그 배은망덕한 놈! 양심이 있으면 그러지 말았어야지... 내가 서씨 가문의 미래까지 걸고 도왔는데! 그땐 내가 눈이 멀었어.”“그렇게 화낼 것까지야... 나도 한때 그랬었어. 너도 그때 나랑 마찬가지인 거고. 이젠 헛된 꿈에서 깨어나 제대로 앞을 봐야 할 때인 거지.”성진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래. 진작에 정신을 차렸어야 했는데...”“근데 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감이 안 와. 너도 전에 그랬었다며. 조언이라도 해줄 수 있어?”서은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성진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욕심이 가득했지만 말이다. 사실 그녀가 성진을 찾아온 건 이미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다만 성진이 어떤 조건을 제시할지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그럼 네가 뭘 해줄 수 있는지 말해봐. 원하는 게 뭔데?”“서씨 가문의 모든 걸 이용해서 널 도울 수 있어. 대신 내가 원하는 건 성도윤이 완전히 무너져서 빈털터리가 되는 거야.”“진짜 그렇게 하겠다고? 네가 가장 사랑했던 남자 아니었어?”“내가 독하게 굴지 않으면 성도윤이 깨닫긴 하겠어? 누가 진짜로 그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인지 알게 하려면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어.”서은아는 싸늘한 말투로 말을 이어 나갔다.“모든 걸 잃어 봐야만 내가 도윤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게 될 거야.”“재밌는 생각이네...”성진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솔직히 말해서 만약 차설아가 없었더라면 그는 서은아 같은 여자를 꽤 높이 평가했을 것이다. 그녀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에 거침

  • 선 이혼, 후 집착   제1514화

    민이 이모의 말을 들은 성도윤은 계속해서 물었다.“왜 따라 배우면 안 되는 거예요? 저는 설아의 부모님이 금슬이 좋다고 들어서 무척 부러웠거든요. 저도 설아랑 알콩달콩 지내고 싶어요.”그러자 민이 이모는 미소를 지으면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금슬이 좋은 부부로 알려진 건 맞지만 두 분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몰라요. 부부마다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 다르기에 굳이 따라 배울 필요 없다고 한 거고요. 설아 아가씨랑 지금처럼만 지내시면 돼요.”“그러면 설아 아버지는 예전에 어떤...”“도련님, 죄송하지만 예전의 일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어요. 나이를 먹다 보니 기억력도 나빠졌거든요.”민이 이모는 성도윤의 말을 잘랐다.“저는 이만 가볼게요. 도련님도 일찍 쉬세요.”문을 열고 나가려던 민이 이모는 뒤돌아서서 성도윤을 향해 말했다.“혹시 알게 된 것이 있다고 해도 밝히지 마세요. 궁금한 게 있더라도 계속 조사하지 마시고요.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몰라요. 그럴 바에는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요?”민이 이모가 나간 뒤, 성도윤은 생각에 잠겼다.‘이모님의 말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어. 비밀에 부친 일을 굳이 조사해 봤자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거야. 설아한테 더 이상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몇 분 후, 성도윤은 진무열한테 전화를 걸었다.“저번에 내가 부탁한 건 잠시 멈춰. 아직은 때가 아니야.”한편, 성진의 별장.어두운 불빛과 가라앉은 분위기는 성진의 기분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정말 네가 나한테 두 눈을 기증한 거라고?”성진은 책상 앞에 앉아서 기증자의 자료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현청아라는 여자와 사진 속의 여자를 번갈아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도련님께 기증할 수 있어서 영광이에요.”현청아는 선글라스를 끼고 대답했다. 두 눈은 움푹 파였고 성진이 기억하던 그 여자의 목소리와 똑같았다.하지만 성진은 현청아가 수술 전에 얘기를 나누었던 여자와 같은 사람이 아닐 거라

  • 선 이혼, 후 집착   제1513화

    성도윤은 차가워진 밤공기보다 소영금이 숨긴 사실이 더 궁금했다. 민이 이모는 젊었을 때부터 차씨 가문에서 일했기에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도 있었다.“조금 쌀쌀해지긴 했어요. 마침 추웠는데 가져다주셔서 감사해요.”성도윤은 문을 열면서 미소를 지었다.“도련님한테 괜히 제가 더 미안해져요. 설아 아가씨는 어릴 적부터 고집이 세고 뒤끝이 길거든요. 아직도 도련님한테 화가 났는지 계속 오두막에서 지내게 하네요. 이 이불을 덮으면 따뜻할 거예요.”민이 이모는 침대 위에 이불을 펴주면서 부드럽게 말했다.“이모님, 차씨 가문에서 일한 지 몇 년 되셨어요?”민이 이모는 멈칫하더니 어색하게 웃으면서 물었다.“갑자기 그런 건 왜 물으시는 거예요? 도련님이 궁금해할 줄은 몰랐어요.”“이모님처럼 한 가문에서 평생 일하시는 분은 드물잖아요. 게다가 진심으로 차씨 가문 사람들을 생각해 주고 보살펴주는 게 대단해서요.”“저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회장님과 사모님이 저한테 아주 잘해주셨어요. 그래서 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는 거고요.”“설아한테서 들었는데 이모님은 대대로 의학을 전공했다면서요? 이모님 아버지는 이름을 날린 의사였고 이모님 실력도 훌륭하다고 들었어요. 사용인이 아니라 의학의 길을 걸으셨다면 더 큰 재부를 누리셨을 텐데, 미래를 포기하고 차씨 가문에 평생을 바쳤다는 게 정말 대단하고 멋져요.”“설아 아가씨가 과장해서 설명한 것 같아요. 저의 실력은 어디 내놓을 만큼 대단한 수준이 아니거든요. 긴급상황이 벌어지면 머리가 하얘져요. 그리고 누군가를 보살피는 게 더 적성에 맞고요. 설아 아가씨는 저를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해 주셨어요. 설아 아가씨와 원이 도련님, 달이 아가씨를 보살피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해요.”민이 이모는 성도윤이 무언가를 물어보려고 한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말을 이었다.“도련님, 궁금한 것이 있으면 편하게 말씀하세요. 알고 있는 건 전부 알려드릴게요.”“역시 이모님은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계시네요.”성도윤은 어색하게

  • 선 이혼, 후 집착   제1512화

    “무슨 사이냐고?”소영금은 성도윤이 이런 질문을 던질 줄 예상하지 못했는지 몹시 당황했다. 몇 초 후, 소영금은 애써 침착하게 대답했다.“무슨 사이긴, 사돈이지.”“엄마랑 설아 아버지는 그저 사돈 관계일 뿐이라고요?”성도윤은 소영금의 말을 믿지 않았다. 차설아의 아버지가 일기장에 기록한 내용을 보면 소영금과 차우진은 애틋한 사랑을 했던 사이였던 것이 분명했다.절대 단순한 사돈 관계가 아니었다.“도윤아, 지금 엄마를 의심하는 거야?”소영금은 덤덤하게 대답했지만 목소리에 분노가 깔려있었다.“그저 엄마한테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불안해서...”“불안하다고?”소영금은 피식 웃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불안해할 필요 없어. 차설아는 너의 배다른 동생이 아니야. 네 동생이었다면 내가 너랑 차설아가 잘되게 계속 도와주었을 것 같아? 너도 참 단순하다니까...”“엄마는 내가 왜 불안해하는지 알고 있는 모양이네요. 엄마랑 설아 아버지는 예전에 연인 사이였던 거죠?”성도윤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그렇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소영금은 긴 한숨을 내쉬면서 지난날들을 떠올렸다.“그 사람은 이미 하늘나라로 떠나갔어. 나도 살면 얼마나 더 살까? 시간 앞에서 과거는 한없이 초라하고 보잘것없단다. 지나간 일은 그저 지나가도록 내버려둬야 해. 이 일에 대해서 더는 묻지 마.”“하지만...”“도윤아, 늦었으니 너도 일찍 쉬어. 엄마는 늙어서 일찍 자지 않으면 다음 날에 기운이 없어. 너는 그저 설아랑 잘 지내고 차씨 가문과 성씨 가문의 인연을 계속 이어 나가면 돼. 알겠지?”소영금은 성도윤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해줄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었다.소영금은 차우진과 연관된 다른 얘기를 절대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몇십 년을 거쳐 겨우 아문 상처를 꺼내면 곪아서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다.“알겠어요. 엄마, 시간 될 때 원이랑 달이를 보러 오세요. 네 식구가 함께 지내니까 얼마나 행복

  • 선 이혼, 후 집착   제1511화

    그 뒤로는 전부 차씨 가문에서 벌어진 일이거나 소소한 일상이 담긴 내용이었다. 성도윤의 어머니가 언급되지 않은 일기에서 성도윤은 차설아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알게 되었다.차설아의 부모님은 다정하고 상냥한 분이었고 차설아에게 모든 사랑을 퍼부으면서 행복하게 지냈다. 차씨 가문은 다른 재벌가보다 더 가족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문이었다.성도윤은 미소를 지으면서 일기를 읽었다.“오늘은 우리 설아가 3살이 되는 날이다. 내 자식이지만 이렇게 사랑스럽게 클 줄 몰랐다. 설아는 다른 아이들과 사뭇 달랐다. 세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 블록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500조각이 되는 블록을 이용해 집을 만들었다. 무려 두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총명한 기질이 드러나서 얼마나 뿌듯한지 모르겠다.”성도윤은 몇 페이지를 넘기고는 계속해서 읽었다.“시간이 흘러 어느덧 설아의 12살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아내는 설아가 더 이상 어린 여자아이가 아니라고 했다.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나오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우리 설아에게도 그날이 찾아왔다. 설아는 여자라서 남자보다 더 많은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 지금 느끼는 것보다 수백 배 강한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버지가 되어서 딸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한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고 슬프다. 좋은 남자를 만나게 되면 그 남자에게 설아를 잘 부탁한다고 말해주고 싶다.”성도윤은 눈물을 흘리면서 읽어 내려갔다. 성도윤은 차설아에게 행복한 삶을 선물하지 못했고 차설아가 다치지 않게 보호해 주지도 못했다.성도윤은 자신이 좋은 남편이 아니라고 자책했다.“장인어른, 정말 죄송해요. 그동안 설아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주었지만 남은 생을 통해 반성하고 설아한테 모든 것을 쏟아부을 거예요. 설아를 보살피면서 행복하게 잘 살게요.”성도윤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두꺼운 일기장을 계속 펼쳐보았고 이상한 내용을 발견하지 못했다.그러나 마지막

  • 선 이혼, 후 집착   제1510화

    차설아는 성도윤의 말을 듣더니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그럴 일 없으니까 꿈도 꾸지 말아요.”“알겠어. 이만 가볼게.”성도윤은 풀이 죽은 채 뒷마당에 있는 오두막으로 들어가서 휴식했다. 그리고 오전에 발견했던 그림 한 장이 계속 마음에 걸려서 뭐라도 찾으려고 했다.단서가 될 만한 것은 전부 차설아의 아버지가 쓰던 오두막 안에 있기 때문이다.만약 차설아의 아버지가 성도윤의 어머니를 사랑해서 그린 그림이라면 성도윤과 차설아가 한 가족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성도윤은 불안한 마음에 문을 안에서 잠그고 서재를 샅샅이 훑어보았다. 낡은 일기장이 유독 눈에 띄었는데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성도윤은 일기장을 손에 든 채 어쩔 줄 몰라 했다.‘장인어른의 일기장을 내가 봐도 되는 걸까? 하지만 보지 않으면 그 그림에 대해 설명할 수가 없어. 설아에게 전부 얘기해주기로 했으니까 확인해야 해.’주저하던 성도윤은 결국 자물쇠를 풀고 단서를 꼭 찾아야겠다고 다짐했다.자물쇠의 비밀번호는 소중한 사람의 생일로 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성도윤은 차설아의 아버지, 어머니, 차설아의 생일을 순서대로 입력했지만 자물쇠가 열리지 않았다.“설마 어머니의 생일은 아니겠지? 그, 그럴 리가 없어.”성도윤은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만약 일기장 자물쇠의 비밀번호가 성도윤의 어머니 생일이라면 드라마틱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 뻔했다.성도윤은 저도 모르게 손을 덜덜 떨었다.소영금의 생일은 3월 31일이었고 별자리는 전형적인 양자리였다. 솔직하고 화끈한 성격에 착한 마음씨를 지녀서 매력덩어리였다.성도윤이 소영금의 생일을 입력하자 자물쇠가 기적적으로 열렸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성도윤은 차설아와 한 가족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머리가 하얘졌다. 그리고 잔뜩 긴장한 채 일기를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10월 17일, 날씨 맑음. 화창한 날씨와는 달리, 나의 마음속에 먹구름만 가득했다. 오늘은 나랑 영금이가 헤어진 지 5년이 되는 날이다. 나는 영금을 진작

  • 선 이혼, 후 집착   제1509화

    차성철은 차설아를 설득할 수 없었기에 차설아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두었다.“설아야, 시간도 늦었으니 일찍 쉬어. 성도윤이 너한테 도움이 되면 이용해도 좋지만 계속 의지하고 기대면 결국 너만 힘들어져.”“그럼 도윤 씨랑 다시 만나도 간섭하지 않겠다는 뜻이야? 오빠는 역시 내 편이었어!”차설아는 신이 나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차성철과 성도윤 사이의 원한은 오래전부터 존재했었다. 그래서 차설아가 성도윤과 다시 만나게 되면 차성철이 극구 반대할 줄 알았다.하지만 차성철은 두 사람을 응원하기로 했다.“내가 반대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잖아. 어차피 네 선택이니 나는 너를 믿어보기로 했어. 성도윤과 싸우면서 둘 다 크게 다쳤지만 성도윤은 결국 나를 구해주었지. 이제는 원한 따위 내려놓아야 할 것 같아.”차성철은 흉터 회복 수술을 받은 후부터 성도윤을 향한 원망과 분노가 사그라들었다.게다가 두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의식을 되찾았기에 생명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차설아가 살아만 있다면 다른 건 더 바라지 않는 오빠의 마음이었다.“오빠, 고맙고 사랑해. 오빠가 나를 응원해 주니까 마음이 놓여. 정말 다행이야!”차설아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차성철이 반대할까 봐 성도윤을 다시 만난다는 소식을 차마 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른 차성철의 반응에 차설아는 감동했고 날아갈 듯이 기뻤다.“나는 응원해 준다고 한 적 없어. 성도윤이 믿음직스러운 남자인지 아닌지는 집으로 돌아가서 직접 보고 판단할 거야. 만약 내 마음에 들지 않게 행동한다면 집에서 내쫓을 테니까 각오하라고 전해. 내 동생이 좋아하는 남자라도 일단 내 눈에 들어야 해.”“알겠어. 오빠가 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게. 오빠, 얼른 끝마치고 집으로 와.”차성철은 가라앉은 보물과 배를 찾고 당당하게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야만 성도윤과 대면했을 때 기죽지 않을 것이다.전화를 끊은 뒤, 차설아와 성도윤 사이에 오묘한 기류가 흘렀다. 차설아는 성도윤의 표정을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