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땅바닥에 쓰러질 거라는 차설아의 예상과 달리 순간 단단하고 늘씬한 팔이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페퍼민트처럼 상쾌한 향기가 코끝에 닿자, 그녀는 한순간에 매료되었다.“몸이 엄청 뜨겁네? 열이 나는 건가?”성도윤은 품에 안긴 여자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평소 얼음장처럼 차갑기만 하던 그의 얼굴에 걱정이 담겨 있었다.이렇게 말랐을 줄이야! 깃털처럼 가벼운 몸은 남자의 보호 본능을 자극했다.“너랑 상관없어.”차설아는 중심을 잡고 이를 꽉 악물더니 애써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자고로 이혼은 깔끔하게 해야 한다. 전 남편한테 미련 없이 떠나는 뒷모습을 보여줘야 후련하기 마련이니까.따라서 그녀는 감성팔이라도 하는 것처럼 비실비실한 모습은 절대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말은 세게 할 수 있어도 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이미 기력을 다한 차설아는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이내 성도윤은 그녀를 번쩍 안아 올렸다.“병원까지 데려다줄게.”“지금 뭐 하는 거야? 이거 놔!”차설아는 아픈 것도 있지만 민망한 나머지 계속해서 몸부림쳤다.“우린 이미 이혼했다고, 잊었어?”“숙려기간 동안 넌 여전히 내 아내야.”단호하고 강압적인 남자의 말투는 차설아에게 거절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당장이라도 떠날 것 같은 두 사람을 보자 임채원은 발을 동동 굴렀다.이건 결코 그녀가 예상했던 시나리오가 아니었다.곧이어 잽싸게 허리를 짚고 힘든 척 가냘픈 목소리로 외쳤다.“도윤아, 잠깐만. 나 배가 슬슬 불러와서 걷기 불편하다고.”“거기서 기다려. 진무열한테 픽업하러 오라고 할 테니까.”말을 마친 성도윤은 품에 안긴 차설아를 내려다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어.”이에 차설아는 기가 막혔다.지금 뭐 하자는 거지? 임신한 애인 데리고 이혼을 강요할 때는 언제고, 인제 와서 자상한 척 챙겨주겠다는 건가?이렇게 뻔뻔스러운 남자가 있을 줄이야! 관계는 끝냈어도 남 주기 아깝다는 뜻인가?여우 같
세상 가벼운 말투로 말을 이어가던 배경수는 병실에 떡하니 서 있는 만년설 같은 성도윤을 발견하는 순간 입을 다물었다.그는 성도윤을 위아래로 훑었고, 성도윤도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병실 안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팽팽해졌다.“둘이 알아?”성도윤은 차설아를 바라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천하의 바람둥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남자와 재벌가 며느리로 조용한 삶을 사는 여자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이지 않은가? 교집합이 전혀 없을 텐데...“그게...”차설아는 골치 아픈 듯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그녀가 배경수한테 병원에서 만나자고 문자를 보낸 건 사실이지만, 솔직히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전남편과 외간 남자의 만남이라니, 어딘가 수라장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는 뭐지?“그냥 아는 사이가 아니라 무려 저의 여신이라고요.”배경수는 노란색 해바라기 꽃다발을 들고 한껏 들뜬 걸음걸이로 차설아를 향해 다가갔다. 이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성도윤을 바라보았다.“성도윤 씨는 모를 테지만, 당시 설아 누나는 우리 학교의 아이돌이었죠. 누나한테 대시하려는 남자들이 줄을 섰을 지경이니까. 물론 전 수많은 추종자 중에서도 가장 충성스러운 팬이었죠. 오늘은 누나가 이혼을 신청한 경사스러운 날인데, 찐 팬으로서 당연히 제일 먼저 축하해 줘야 하지 않겠어요?”말을 마친 배경수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싹 지우고 정중하면서도 다정한 모습으로 차설아에게 꽃다발을 건네주었다.“나의 여신이여, 이 해바라기꽃을 당신에게 바칩니다. 제 기억이 맞는다면 해바라기는 누님이 가장 좋아하는 꽃이죠? 갖은 역경에도 오로지 햇빛만 보고 자라나라는 것이 꽃말이잖아요. 누님한테 해바라기보다 더 잘 어울리는 꽃은 없을 거예요.”물론 차설아가 해바라기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다.다만 해바라기의 꽃말은 오로지 한 사람만 바라보는 한결같은 사랑이다. 마치 성도윤을 향한 그녀의 마음처럼 말이다.그를 처음 보는 순간부터 여태껏 다른 남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하지만 이제는 시야를 넓게 가져야 할 때가
“당연하죠, 누님께서 부탁한 일인데 제가 어찌 감히 소홀히 대할 수 있겠습니까?”배경수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우고 두툼한 자료 뭉치를 예의 바르게 건넸다.자료를 건네받은 차설아는 고열에 시달려 불편한 몸을 억지로 일으키고 빠르게 훑어 내려갔다.곧이어 그녀의 뽀얗고 여린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차츰 떠올랐다.“역시 평범한 변호사들이 아니었어. 가치를 따지면 800억 현금과 아파트 펜트하우스는 아무것도 아니야.”“쳇, 성도윤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 대단하면 얼마나 대단하겠어요?”배경수는 늘씬한 다리를 꼬고 침대 난간에 몸을 기대며 시큰둥하게 말했다.“이 사람들보다 더 잘나가는 변호사를 알고 있거든요? 만약 필요하다면 당장 소개해줄게요.”“아니야, 난 이 사람들이 필요해.”차설아는 서류를 정리하면서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이혼 따위 전혀 영향받지 않은 듯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누님, 지금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거예요? 내 레이더망에 음모가 탐지되었는걸요?”배경수는 급 관심이 생겼다.드디어 4년 만에 사업의 여신이 다시금 부활하다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얼른 얘기해 봐요!”차설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됐어, 곧 알게 될 테니까.”차설아의 성격을 잘 아는 배경수는 굳이 캐묻지 않았다.어차피 물어봤자 알려줄 사람도 아니었고,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 또 차단당하면 말짱 도루묵이었다.“다만...”배경수는 똑바로 일어서서 조심스럽게 차설아를 떠보았다.“진짜 그 사람을 포기할 수 있어요?”그는 차설아가 성도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어찌 쉽게 잊겠는가?“내가 붙잡는다고 해서 될 일인가?”차설아는 절망에 빠진 얼굴로 무심하게 말했다.“성도윤의 와이프로 산다는 건 너무 힘든 일이야. 애초에 손해 보는 장사라서 이제 진짜 차설아로 살아가고 싶어.”...성가네 별장.성명원과 소영금은 배가 나온 임채원을 보고 서로 다른 표정을 지었다.소영금은 기쁨을 주체하지
늘씬한 몸매를 가진 성도윤은 특유의 카리스마를 뿜어냈고, 마치 이 막장 싸움과 무관한 사람 같았다.그는 살짝 튀어나온 임채원의 배로 천천히 시선을 돌리더니 무덤덤하게 말했다.“보시다시피 채원은 임신한 지 3개월이 되었죠. 아이는 우리 성씨 집안의 혈육인지라 떳떳한 신분이 필요해요. 전 이미 차설아와 이혼을 신청했고, 혼인 관계를 완전히 정리하고 나면 채원이랑 결혼할 겁니다.”그의 말에 소영금과 임채원은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만 성명원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이 불효자 녀석을 당장이라도 때려죽이고 싶었다.“이 자식아, 진심이야? 밖에서 얻은 여자는 갖고 놀면 그만이지, 지금 내연녀를 집에 들이려고 와이프까지 내팽개칠 정도로 어리석은 거야? 정신 나갔어? 설아 할아버지께서 알게 된다면 저승에서 쫓아올지도 몰라. 왕년에 얼마나 용맹한 장군이었는지 알기나 해? 수십만 명의 대군을 이끄는 모습은 정말 위풍당당했는데, 설아 할아버지가 널 해코지하는 게 두렵지도 않냐?”“말도 마세요.”소영금은 팔짱을 끼고 잔뜩 경멸하는 표정으로 눈을 흘겼다.“그렇게 대단하다는 사람이 결국에는 한순간에 몰락했잖아요. 그동안 우리가 차씨 집안 하나뿐인 손녀딸을 거둬주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대가 끊겼을 거예요. 당시 차씨 집안과 원수를 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잊었어요? 그런 압박까지 무릅쓰고 차설아와 결혼하면서 본의 아니게 적을 만들게 되었는데, 아무리 은혜를 갚는다고 해도 할 만큼 하지 않았을까요? 게다가 그때 노인네가 직접 둘이 결혼 생활을 4년 동안만 이어가면 된다고 정했잖아요. 4년이 지나도 여전히 정이 없으면 좋게 헤어지는 거라고 했는데, 딱히 우리 도윤의 잘못도 아니잖아요?”당장이라도 말다툼을 벌일 것 같은 부모님을 보자, 성도윤은 못마땅한 듯 눈살을 찌푸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고, 두 분이 싸우고 싶으면 다른 데 가서 싸우세요.”“됐다, 됐어!”성명원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탄식했다.“넌 어렸을 때부터 성격이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성도윤은 평생을 걸더라도 3개월 전 그날 밤으로 돌아가고 싶었다.당시 형과 함께 뉴욕 거리를 걸으며 성씨 집안의 미래 발전 방향에 대해 논의하던 중 갑작스러운 습격을 당하면서 그를 향해 날아오는 총알을 형이 대신하여 온몸으로 막아줬었다.형은 숨을 거두기 전 정말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있는데 임채원이라고 했다.게다가 그녀는 아이를 가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채원이랑 결혼해서 나 대신 보살펴 줘. 그리고 채원과 아이에게 온전한 가정을 만들어줘.”그는 피범벅이 된 손으로 자신을 꽉 붙잡고 애원하던 형의 간절한 눈빛을 영원히 잊을 수 없었다.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성도윤은 자기 앞을 가로막은 형을 밀어내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것이다.“나랑 아이를 위해 아버님의 심기까지 건드리고 설아 씨한테도 상처를 줬잖아. 솔직히 말하면 진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데... 됐어! 나 혼자서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어. 비록 아이까지 딸린 미혼모라서 생활이 어려울 테지만, 도현 오빠의 아이를 위해서라면 난 참을 수 있어.”임채원은 계속해서 훌쩍거렸다.그녀는 자신의 필살기에도 성도윤이 끄떡없을 거로 믿지 않았다.성도윤은 싸늘한 얼굴로 임채원과 슬며시 거리를 두었다.“아빠는 속사정까지 모르니까 너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서 그래. 신경 쓰지 마. 그리고 차설아는...”성도윤은 멈칫하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애초에 별다른 감정이 없었어. 심지어 4년 동안 관계를 가진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너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혼했을 거야.”“그럼 설아 씨는? 아마 널 많이 사랑하고 있을 거야. 너처럼 잘생기고 능력 있는 남자가 어디 있겠어?”임채원의 목소리는 애교가 넘쳤고, 성도윤을 바라보는 눈빛에 미련이 가득했다.그녀는 진정한 어장관리녀로서 사실은 재미로 성도현처럼 고분고분한 남자한테 대시했을 뿐이다. 그러나 너무 고지식하고 아부만 떨어서 정이 안 갔다.하지만 성도윤을 보는 순간 첫눈에 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드디어 깨달았다.따
차설아는 조마조마한 마음을 안고 병원으로 향했다.간호사가 건넨 검사 결과를 본 그녀는 어안이 벙벙했다.“차설아 씨, 혈액 검사 결과 HCG 수치와 프로게스테론 수치가 높은 편이라 임신한 지 한 달 정도 된다고 볼 수 있겠네요.”“뭐라고요? 임신한 지 한 달 됐다고요?”“네, 축하드립니다. 이제 엄마가 되셨네요.”간호사가 떠난 후에도 차설아는 여전히 넋을 잃고 있었다.막장도 이런 막장이 어디 있냐는 말이다.그딴 짓거리를 딱 한 번 저질렀을 뿐인데 바로 당첨되다니? 그녀의 생식 기능이 뛰어난 건가, 아니면 그놈의 유전자가 너무 강한 탓인가? 대체 하느님은 왜 그녀에게 이런 시련을 준단 말이지?물론 성도윤의 아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한 달 전 그날 밤, 성도현의 장례식을 마치고 나서 집안 분위기는 유난히 가라앉았다.차설아는 그동안 늘 안하무인에 고고하던 성도윤이 모든 벽을 허물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얼굴을 가린 채 흐느끼며 술을 연신 들이켜는 모습을 처음 봤다.결국 함께 슬퍼해 주다가 같이 울면서 술까지 마셔줬다.그러다 술에 취해 잠자리도 들게 되었는데...결혼 4년 만에 그날은 부부로서 가장 친밀한 관계를 나눈 밤이었다.차설아는 그날 밤 이후로 성도윤과 좀 더 친해질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친해지기는커녕 이대로 끝날 줄이야!게다가 깔끔하게 끝내면 그만일 텐데, 뜬금없이 아이까지 생겨 그녀의 계획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렸다.“역시 남자는 동정하는 게 아니라더니, 이렇게 재수 없을 줄이야.”차설아는 후회가 물밀듯이 몰려왔다.과연 성도윤에게 임신 소식을 알려줘야 할까? 어쨌거나 아이의 아버지로서 살릴지 말지 두 사람이 함께 결정해야 하는 게 맞지 않겠는가?“설아 씨, 이런 우연이 있나? 병원에는 무슨 일이야?”이때, 뒤에서 임채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차설아가 돌아서는 순간 허리를 짚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임채원이 눈에 들어왔다.그리고 임채원의 옆에는 곧 전남편이 될 성도윤이 서 있었다.훤칠한 키와 잘생긴 얼굴
성도윤의 진지한 눈빛과 단호한 표정을 본 차설아는 손에 검사 결과를 꼭 쥔 채 속으로 몇 번이고 망설였다.옆에 있던 임채원은 무언가를 눈치챈 듯 재빨리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더니 자기 검사 결과를 꺼내 차설아에게 다가갔다.“설아 씨, 우리 아가 좀 봐봐. 벌써 3개월이야. 방금 입체 초음파 검사를 받았거든? 벌써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대, 사진 볼래? 어때? 귀엽지? 오늘 모처럼 설아 씨를 만났는데, 배 속의 아이를 대신해서 감사의 인사를 꼭 전해야겠어. 설아 씨가 넓은 마음으로 허락해 주지 않았더라면 아이한테 온전한 가정은 사치였을 테니까. 게다가 도윤처럼 완벽한 아빠도 없었을 거야.”이건 누가 봐도 자랑이었다.차설아는 임채원이 건넨 입체 초음파 사진을 흘끗 내려다보았다.아니나 다를까 팔다리와 이목구비가 또렷한 다 자란 아기 사진이었다.반면, 그녀의 아이는 엄밀히 따지면 아직 생명이라고 할 수도 없는 배아에 불과했다.이러한 격차는 그녀에게 무언의 조롱거리로 다가왔다.마치 그녀와 아이가 성도윤에게 얼마나 불필요한 존재인지 조롱하는 것처럼 말이다.말없이 꾹 참고 있는 차설아가 만만하게 느껴진 임채원이 계속해서 비꼬았다.“설아 씨는 우리 아기한테 은인과 다름없잖아. 참, 이렇게 하는 건 어때? 설아 씨가 우리 아기의 이름을 대신 지어주는 거야. 그렇다면 아기도 감사한 마음을 안고 평생 고마워할 테니까.”차설아는 처음으로 임채원을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장난하나?자기 남편과 바람 핀 것도 모자라 그녀한테 아이의 이름마저 지어달라니? 지금 너 죽고 나 죽자는 건가? 그녀의 아픈 곳에 비수를 꽂는 상황이 따로 없었다.차설아는 피식 웃으며 마치 임채원이 하찮은 듯 시큰둥하게 바라보았다.“진심으로 나한테 부탁하는 거야?”“당연하지, 설아 씨만 원한다면.”임채원은 최대한 겸손하게 말했다. 물론 본심은 성도윤 앞에서 차설아를 망신 주는 것이다.왜냐하면 차설아가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거로 예상했기 때문이다.아무리 마음이 넓고 인내심이 강하더라
성도윤은 화가 나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그동안 아무런 의지가 없는 꼭두각시처럼 따분한 줄만 알았던 여자에게 이토록 날카롭고 톡 쏘는 면이 있다는 사실을 왜 인제야 깨달았지? 마치 발톱을 바짝 세운 새끼 고양이가 긁어대는 것처럼 사람을 미치게 했다.대체 어딜 봐서 보호가 필요한 모양새인가!이를 본 임채원은 곧바로 다시 아양을 떨며 성도윤의 팔을 잡아당겼다.“도윤아, 설아 씨 탓하지 마. 따지고 보면 나랑 아기 잘못이지, 뭐. 설아 씨가 널 그렇게 사랑하는데 우리의 행복을 지켜주려고 강제로 이혼당했으니, 나랑 아기를 미워하는 건 당연한 거야. 그냥 화풀이하도록...”“아니.”차설아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굳이 나한테 고마워할 필요 있나? 아까도 말했다시피 당신들의 행복 따위를 지켜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개념도 없는 쓰레기를 버렸다가 마침 그쪽이 재활용했을 뿐이야. 그래서 아이 이름이 성재기라고 하는 게 찰떡이라고 했잖아.”곧이어 그녀는 성도윤을 바라보며 웃는 둥 마는 둥 했다.“개념이 없는 사람은 보통 운이 좋지 않기 마련이라던데, 성도윤 씨... 최근에 재수 털리는 일이 생길 거로 감히 예상해 볼게.”성도윤의 잘생긴 얼굴에 먹구름이 잔뜩 드리웠고,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어릴 때부터 엄마가 재수 없는 사람은 가까이하지 말라고 가르쳐줬거든. 아니면 같이 불행해질 수 있다고. 둘이 끼리끼리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오래오래 함께하길 바랄게. 축하해, 안녕!”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는 것과 다름없었다.죽고 싶어 환장했나?해안시에서 ‘성도윤’이라는 세 글자는 절대적인 권위를 의미하기에 아무도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따라서 성도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차설아는 잽싸게 자리를 피했다.어차피 화풀이는 다 했으니 기분은 후련했다. 물론 한 쌍의 불륜 남녀가 화를 내든 말든 자신이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차설아가 떠난 후 임채원은 성도윤을 몰래 살폈다.그의 성격대로라면 대놓고 모욕당했으니 절대로 가만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