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누가 쓰러졌어요!”사람들 속에서 황급한 고함소리가 들렸다.사도현은 이미 차에 탄 상태였고, 자신과 무관한 여자의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결국,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고, 생각이 불순한 남자들도 있는 것이니, 사도현은 미간을 찌푸리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다 비켜!”사도현은 빽빽이 들어찬 인파를 헤치고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구경꾼들은 딱 봐도 부잣집 도련님인 사도현의 모습을 보고 순순히 길을 비켜주었다.하지만, 사도현을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의식을 잃은 윤설을 독점하려는 건방진 인간도 있었다.“그 손 놔!”사도현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윤설의 몸에 손대고 있는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남자에게 명령했다.“네가 뭔데 참견이야? 이 여자는 내가 먼저 발견했어! 빼앗아 갈 생각하지 마!”칼자국 남자는 윤설의 팔을 잡아당기며 당당하게 그녀를 업고 떠나려 했다.구경꾼들도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만류하기는커녕 오히려 부러워하는 눈치였다.이건 확실히 이 지역의 ‘특색’으로, 흔히들 ‘시체 줍기’라고 한다.이곳에서 거리에 쓰러져 의식을 잃은 모든 여자들은, 술에 취했든, 배가 고파서 기절했든, 아니면 아파서 쓰러졌든, 모두 생수처럼 공공자원으로 여겨져 먼저 주운 사람이 임자라는 규칙이 있었다.윤설 같은 절세미인은 보기 드문 보물이라, 그녀를 주운 사람은 당연히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그 여자 놓으라고!”사도현은 큰 체구로 남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차가운 기운이 극도에 달해 사람을 섬뜩하게 만들었다.물론, 칼자국 남자도 현지에서 꽤 유명했다. 일반인들은 그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니, 당연히 사도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네가 뭔데 나한테 명령이야?”“이 여자는 내 사람이야!”사도현은 또박또박 말한 후, 찢은 계약서를 꺼내 냉소를 지었다.“방금 블랙한테서 받아온 신체 매매 계약서야. 굳이 이 여자를 데려가겠다면 네가 블랙을 찾아가든가!”“블랙... 형님?”칼자국 남자는 갑자기 침을 꿀꺽 삼키더니 당황한
“뭐? 뭘 들었는데?”“저는 도현 씨의 사람이라고. 이건 저를 받아드렸다는 뜻이죠, 맞죠?”“오해하지 마. 방금 돌발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고마워요!”윤설은 웃으면서도 눈시울을 붉히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이 말을 들었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네요. 저승길에서 외로운 혼령이 아닐 거예요.”“그게 무슨 말이야? 죽다니?”사도현은 윤설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마치 임종 전의 유언을 남기는 것 같았다.“제가 작은 부탁을 해도 될까요?”윤설은 사도현의 팔을 붙잡고 불쌍하게 말했다.사도현은 여자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졌다.“말해봐.”“제가 죽으면 유골을 작은 상자에 담아 이장의 오래된 우물에 묻어주세요. 장례식도 필요 없고, 그저 기일에 아무나 보내서 제사를 지내면 돼요.”여기까지 말한 윤설은 이미 호흡이 약해졌다.사도현은 생각할수록 이상해서 엄숙한 표정으로 물었다.“대체 뭔 일이야? 나한테 숨기는 거 있어?”“아니에요. 그저… 콜록!”윤설은 갑자기 피를 토하더니 의식을 잃었다.사도현은 당황하여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차에 태우고 계속 말했다.“조금만 버텨, 당장 병원으로 데려다줄 테니, 조금만!”차는 사람들이 붐비는 길을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어쩌면 이 순간부터 두 사람의 운명은 함께 묶였는지도 모른다.그 늙은 어르신의 말씀대로 윤설은 사도현의 운명이자 재난일 지도 모른다.성도윤은 성가 저택으로 돌아왔고, 이미 늦은 밤이었다.여전히 차설아에 대한 소식을 얻지 못했다.‘이 여자 진짜 지구에서 사라진 거 아니야?’강진우는 위로하며 말했다.“도윤아, 조급해하지 마. 이미 사람들을 더 보내서 전국에서 찾고 있어… 다른 나라의 정보 부서와도 연락해서 설아 씨 행적을 찾고 있으니까, 곧 소식이 있을 거야.”성도윤은 의욕을 잃고 덤덤히 말했다.“찾지 마. 그냥 내버려 둬!”“도윤아, 그게 무슨 말이야? 포기하겠다는 소리야?”“우리 사이는 이미 너무 많이 멀어졌어. 찾더라도 서로 상처만 줄 거
성도윤은 이 지도의 지형구조와 선로의 방향이 성가의 북성 노군산에 있는 선조의 무덤 입구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랐다.성가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었고,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도, 대대로 장군 대신으로 세력이 뛰어났다. 가문은 북성 일대에서 활동했고, 조상들도 북성에서 가장 풍수가 좋고 외부인의 접근이 가장 어려운 노군산에 묻혔다.증조할아버지 때 온 가족은 해안 시로 와 지금의 성과를 이룩했다.몇 년 동안 성가는 주요 제삿날을 제외하고는 북성으로 돌아가지 않았다.“이상하네. 성씨 가문의 지형도가 왜 차설아의 포대기에 있지?”‘혹시 두 가문 사이에 어떤 인연이라도 있었나? 할아버지한테 기회를 봐서 여쭤야겠어.’성도윤은 조심스럽게 이불과 비단을 작은 상자에 넣었다.그는 갑자기 또 무슨 생각이 나서 차설아의 노트를 꺼내 사도현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 사도현은 응급실 문밖의 벤치에 앉아 윤설을 기다리고 있었다.사도현은 자신이 아마 미쳤다고 생각되었다.종래로 남 일에 나서지 않고 독선적으로 행동하던 자신이 열정적으로 나서서 밥도 못 먹은 채로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있으니 말이다!“형,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야?”사도현은 성도윤의 전화를 받았지만, 주의력은 여전히 끊임없이 반짝이는 응급실의 빨간 불에 있었다.빨간 불이 멈추면 응급처치가 끝났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사도현은 윤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녀에 대한 강한 끌림으로 인해, 그녀가 이렇게 죽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내가 전에 차에서 너한테 노트를 보여줬잖아. 나 도와주겠다고 했던 말 기억나?”전화기 너머에서 성도윤이 느릿느릿 물었다.“콜록, 기억 안 난다고 해도 돼?”성도윤의 말투를 들은 사도현은 분명 좋은 일이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이건 성도윤이 함정을 파놓고 사도현에게 ‘네가 약속했으니, 뛰어들어!’라고 말하는 격이었다.“긴장할 필요 없어. 돈을 버는 일이니까, 너한테 손해 가지 않아.”“고마워, 형. 하지만 난 돈이 부족하지 않아. 이렇게 좋은 일
“3개월 안에 그 내용을 영화로 만들어. 전 세계적으로 상영하고, 돈을 퍼부어서 올해 최고의 영화로 만들어.”성도윤은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의 요구를 말했다.사씨 가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엔터테인먼트 회사 ‘윈스 엔터테인먼트’를 갖고 있었고, 소속 연예인은 모두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영화, 드라마, 예능 등 다수에 출연한 세계적인 스타들이었다. 이 일을 사도현에게 맡긴다면 성도윤은 충분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나도 그때 보고 똑같은 생각을 했었어!”사도현은 눈을 반짝이더니 급히 말했다.“그 팬 픽션은 주인공의 캐릭터가 입체적이고 갈등과 충돌이 심해서 상품으로 만들기 딱이야. 하지만… 내용이 좀 막장이라 아이돌 드라마로 만들기 더 적합해. 영화로 만들고, 또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로 만들기에는 난이도가 좀 높아.”“난이도가 낮은 일이었으면 내가 왜 널 찾았겠어?”성도윤의 태도는 강경했고 군령을 내리는 듯 말했다.“3개월 후에, 난 이 영화가 세계적으로 퍼지는 것을 봐야겠어.”사도현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형,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내가 영화로 만든다고 해도, 줄거리와 결말이 없잖아. 배우는 또 어떻게 구해? 저작권 분쟁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 안 해봤어?”“그건, 나랑 상관없는 일이지.”성도윤은 더욱 강력한 말투로 차갑게 명령했다.“3개월 후에 나한테 결과를 보여줘. 만약 성공하지 못한다면 넌 끝이야.”“휴, 형, 제발! 내 말 좀 들어봐…”“뚜뚜뚜…”성도윤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사도현은 제자리에서 울분을 토했다.영화로 만드는 건 식은 죽 먹기이지만, 이런 막장 로맨스물을 세계적인 영화로 만드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이때, 계속 깜빡이던 응급실의 빨간 불이 멈췄다.수술실에서 나오는 의사의 안색이 꽤 좋았다.“어떻게 됐어요? 선생님.”사도현은 얼른 다가가서 물었다.“환자분 명이 길어요. DDVP를 반 병 마시고도 살았으니. 아주 기적이에요.”의사는 감탄하며 말을 이었다.“약 먹고 자살한
3개월 후, 동남아시아의 어느 개인 섬.차설아는 하얀 해먹에 누워 차가운 수박을 여유롭게 먹으며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출산 예정일이 두 달 남짓하여 배가 이미 크게 불렀다.해안을 떠난 후, 차설아는 줄곧 이 섬에 머물면서, 매일 바닷바람을 쐬고, 먹고 마시고, 원격으로 천신 그룹과 법률사무소의 일을 보며 편안하고 여유로운 삶을 보냈다.역시, 인터넷에서 말했듯이 남자를 가까이하면 불행해진다는 말이 맞았다!성도윤의 세계에서 완전히 물러난 후부터, 차설아는 잘 먹고 잘 자며, 행복하게 지내서 몸도 마음도 좋아져 살까지 올랐다.이 개인 섬은 수년 전, 그녀가 학술 상금과 특허 비용,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모은 돈으로 샀고, 자신이 꿈꾸던 모습으로 만들었다.원래 이 섬을 무릉도원처럼 개조하여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이곳에 휴가로 데려오려고 했다.아쉽게도 섬을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집안에 변고가 생겼고, 그녀는 성가로 시집갔기 때문에 한 번도 섬에 온 적이 없었다.최근 몇 년 동안 이 섬은 배경수가 자비를 털어 유지한 덕에 황폐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기지국도 건설되어 자주적으로 신호를 제공할 수 있었다.이것이 바로 차설아가 계속 인터넷을 사용하지만, 행적이 전혀 잡히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이 작은 섬은 작은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섬에는 없는 것이 없었고, 차설아가 마음만 먹으면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고 살기에 충분했다.차설아는 이 섬을 ‘해바라기 섬’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녀는 섬에 해바라기 꽃을 가득 심었다. 아이들이 태어나면 해바라기처럼 영원히 햇빛을 따라 강인하고, 낙천적인 삶을 살기를 바랐다.차설아와 섬에서 함께 지내고 있는 사람은, 그녀의 유모 민이 이모였다.민이 이모는 조상의 의술을 물려받아 태아의 발육에 주의를 기울이고 매일 다양한 영양가 있는 식사를 준비했다.두 사람은 아이가 태어나 이 섬에 더 많은 생명력을 가져다줄 것을 더없이 기대하고 있었다.‘다다다’
“알았어! 잔소리 그만해! 여기까지 오는 동안 쉬지 않고 말했잖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오빠가 아이 아빠인 줄 알겠어!”배경윤은 짜증스럽게 배경수를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차설아를 안았지만 이번에는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안았다.배경윤은 손으로 차설아의 볼록한 배를 만져보고 생명의 위대함에 감개무량했다.“대박, 언니, 배가 이렇게 커졌어? 너무 신기해. 이 안에 정말 아기가 두 명 있다고?”배경수가 이미 배경윤에게 말한 것을 깨닫고, 차설아도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맞아, 이란성 쌍둥이야. 이제 두 달 남았어.”차설아도 생명이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다.섬에 있는 동안, 차설아는 느린 삶을 살며 뱃속에서 두 아이가 조금씩 자라는 것을 몸소 느꼈다.매일 아이들에게 말을 걸고, 노래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들은 마치 알아들은 듯 꼬물거리며 그녀에게 답해주어서 너무 행복했다.“이란성 쌍둥이라니!”배경윤은 눈알이 땅바닥에 떨어질 정도로 놀랐다.“언니, 역시 대단해. 한 번 하는 임신 제대로 하네! 성도윤 그 인간이랑 절대 관계를 가진 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꽤 닭살 부부였나 봐? 아니면 어떻게 한방에 이란성 쌍둥이를 임신해!”“음...”차설아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으며 난처했다.배경윤의 노골적인 말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하지만, 성가네 집안에는 이란성 쌍둥이 유전자가 없는 거로 아는데. 혹시...”배경윤은 갑자기 흥분하여 펄쩍 뛰었다.“혹시 우리 오빠 아이를 가진 거 아니야? 우리 집에는 이란성 쌍둥이 유전자가 있잖아! 나 고모 되는 거야? 너무 좋아!”차설아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차설아도 오히려 배경수의 아이이기를 바랐다. 그러면 적어도 아이에게 좋은 아빠가 있으니 말이다.요즘 배경수는 그녀를 만나러 하루가 멀다 하고 섬에 들락거렸다. 천신 그룹의 상황을 보고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차설아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였다.배경수는 올 때마다 차설아와 아이를 위해 선물을 잔뜩 가져오고, 재미있
“뭐?”차설아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얼른 다가갔다.배경윤은 영화관에서 찍은 듯한 영상을 보여주더니, 여러 남녀가 스크린 앞에 서서 영화를 홍보하는 듯한 모습이었다.“이건...”차설아는 남녀 배우의 자기소개를 보고는 붉은 입술이 살짝 벌어져 외계인을 본 듯 충격을 받았다.“하하, 놀랍지! 영화 ‘차성커플’의 시사회야... 언니 예상이 맞아. 언니랑 성도윤의 팬 픽션을 영화로 만들었어. 내가 봤는데 엄청 재밌는 거야. 얼마나 펑펑 울었다고!”배경윤은 영화를 다시 한번 보고 싶을 정도로 깊은 감동을 받았다.“알겠는데, 왜 남자 주인공이... 하필 성도윤이야?”‘이 자식 소문난 워커홀릭 아니었어? 1분에 몇백억의 돈을 버는 재계 엘리트, 재벌가 도련님이 이런 막장 로맨스 영화를 찍으러 갔다고? 한가한 거야? 아니면 투자사한테 약점이라도 잡힌 거야?’“그러니까! 이 영화는 비밀리에 촬영해서 갑자기 개봉했잖아. 출연진이 발표되고, 연예계, 비즈니스계, 재벌계, 네티즌 등등 모두 깜짝 놀라서 바로 실검에 올랐어. 성도윤이 직접 출연하게 된 건 대본의 진짜 작가가 성도윤이기 때문이래. 그러니까 인터넷을 핫하게 달군 팬 픽션은 사실 본인이 쓴 것이고, 영화로 만든 건 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래.”“개소리 치고 있네.”차설아는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나 욕설을 퍼부었다.“누가 그 팬 픽션을 성도윤이 썼대? 그 인간 너무 뻔뻔한 거 아니야? 다른 사람의 창작 성과를 멋대로 갈취해? 사람들도 어리석지. 빙산처럼 차가운 냉혈인간이 어떻게 그런 따뜻하고 감정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겠어?”“참, 언니 일단 진정하고 앉아서 천천히 얘기해. 아기한테 안 좋아.”배경윤은 차설아를 잡고 앉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나도 그 점이 이상하단 말이야. 냉혈하고 무자비한 인간은 절대 그렇게 감동적인 소설을 쓸 수 없어. 하지만 지금까지 원작자가 나타나서 소송을 걸지 않은 거로 보아 성도윤이 맞는 것 같단 말이지.”“게다가... 전에 인터넷에 발표된 소설은 완결되지 않았지만 이
배경윤은 마당발로서 자연히 모든 방면의 찌라시들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녀는 스크린에 비친 여배우를 가리키며 말했다.“이 여자 좀 눈에 익지 않아? 언니랑 많이 비슷한 것 같아!”차설아는 미간을 구겼다.“그러고 보니, 어디서 본 것 같네.”“기억력하고는. 바로 성도윤이 술집에서 데리고 나간 그 어린 여자애잖아. 언니랑 엄청 닮은!”“아, 맞다!”차설아는 겨우 생각났고, 마음이 좀 복잡했다.성도윤은 죄책감 때문에 임채원에게만 집중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상대를 바꿀 줄은 몰랐다.‘남자는 역시 똑같아!’“성도윤 진짜 무슨 속셈이야? 왜 이렇게 희생을 해가면서 이 여자를 꼬시는 거야?”배경윤은 차설아를 보고 또 휴대폰 속의 여자를 보며, 너무 닮은 모습에 연신 감탄했다.“혹시, 언니에 대한 미련 때문에, 언니를 닮은 여자를 대역으로 삼은 건 아닐까?”“말도 안 되는 소리!”차설아는 흔들림 없이 차갑게 말했다.“나한테 미련이 남은 게 아니라, 원한이 남은 거지. 나 때문에 그 사람 아이가 죽고, 사랑하는 여자는 자궁까지 적출 했잖아. 날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큰 은혜를 베푼 거야.”“그럼 언니가 그 사람 아이를 가진 건 알아? 만약 알게 된다면 두 사람 혹시...”“그만해!”차설아는 배경윤의 말을 끊고 귀찮은 듯 말했다.“나를 진짜 언니로 생각한다면, 내 앞에서 그 사람 거론하지 마. 이 두 아이는 다른 사람이랑 상관없는 내 자식이야. 자꾸 헛소리하면 나도 어떻게 나올지 몰라.”“미안해, 언니. 내 생각이 짧았어. 언니 마음 충분히 이해해. 앞으로 다시는 그 인간 말하지 않을게. 다시 말하면 내 입을 찢어버려!”배경윤은 얼른 손을 들어 맹세했다.배경윤은 영화를 보고 ‘차성커플’의 결말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지금 세상에, 남편은 없고 자식만 있는 여자가 더 행복할지도 모르니, 배경윤은 당연히 차설아를 지지했다.차설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옆에 있던 배경수에게 말했다.“서재로 가자. 우리 따로 얘기해!”
다음날.아침햇살이 비추는 섬은 몽롱하고 매력적이었다.아침 조깅하는 습관 있는 배경윤은 다들 자고 있을 때 이미 일어나 뛰고 있었다.산 주위를 따라 2킬로 정도 뛰면서 땀에 흠뻑 젖은 그녀는 개운한 느낌이었다.산 중턱에 있는 전망대에 서서 파란 바닷가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좋은 아침이에요.”배경윤이 기지개를 켜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뒤돌아보았더니 진찬영이었다.“이런 우연이. 찬영 오빠도 조깅하러 오셨어요?”진찬영을 향해 손을 흔드는 그녀의 얼굴은 자기도 모르게 발그레해졌다.어제저녁 진찬영이 대놓고 고백하는 바람에 두 사람 사이의 장벽이 무너져 이제는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우연이 아니라...”진찬영은 오늘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살짝 가르마를 탄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어 청춘 로코물에 나오는 여주인공이 잊지 못하는 킹카처럼 보였다.그는 난간을 잡고 옆모습으로 의미심장하게 배경윤을 쳐다보았다.“저번에 경윤 씨가 조깅하는 습관이 있다고 들어서... 일부러 만나려고 온 거예요.”배경윤과 이곳에서 만나려고 그녀보다 한 시간이나 더 일찍 일어난 것이다.그때는 아직 날도 밝지 않았던 때였다. 그는 혼자서 산 중턱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와 하늘이 서서히 물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세상이 참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속으론 배경윤과 함께 이 경치를 보면 얼마나 좋았겠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배경윤이 흔들린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제가 이 코스를 달릴지 어떻게 알았어요? 그러다 못 만나면요?”“만나지 못해도 아쉬운 대로 아름다운 경치를 봤잖아요.”진찬영은 고개돌려 전방에 있는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부드럽게 말했다.“저는 어떤 일이든 결과를 바라지 않아요. 과정만 아름다우면 된 거예요. 그리고 결국엔 경윤 씨를 만났잖아요.”배경윤은 잘생긴 그의 옆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그렇다. 결과보다는 과정만 아름다우면 되었다.이 부분에서는 진찬영과 생각이 똑
“에헴!”하늘을 신경 쓰지도 않던 사도현은 두 사람이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길래 질투심을 느꼈다.하늘도 그제야 선을 넘었다는 것을 눈치채고 바로 입을 닫으면서 자세를 고쳐잡았다.“죄송해요. 경윤 씨, 저는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 다른 사람을 선택해 보세요.”“그게 뭐 어때서요? 어차피 저희 서로 선택하는 과정이잖아요. 하늘 씨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과 셋이 함께 스노클링하면 되잖아요. 둘이든 셋이든 저는 상관없어요.”배경윤이 웃으면서 말했다.그녀는 하늘이 컨트롤하기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거기다 제일 안전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진찬영에게 폐를 끼치지도 않고 사도현도 어쩔 수가 없었다.“그래요? 경윤 씨는 정말 내일 아침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과 함께 스노클링할 수 있는 거예요?”하늘은 억울한 강아지처럼 순진한 표정으로 배경윤을 쳐다보고 있었다.“그럼요. 저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에요. 3각 구도는 제일 안정적이니까요.”배경윤이 익살스럽게 말했다.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입이 자기 말을 듣지 않았다.“그래요. 그러면 내일 경윤 씨, 저, 그리고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 세 명이 함께 스노클링하는 거예요. 마음이 변하면 안 돼요.”“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빠지는 일이 없을 거예요. 제가 빠지면 평생 짝을 찾지 못할 거예요.”배경윤은 하늘에 대고 진지하게 맹세했다.이때 하늘이 진지하게 말했다.“사실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은 사도현 씨에요. 그리고 오늘 모든 사람 앞에서 사실대로 말했고요.”사도현이 눈썹을 움찔하더니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배경윤을 쳐다보았다.“저희 내일 봐요.”‘왜 이렇게 된 거지?’배경윤은 흐뭇한 표정의 사도현을 보면서 그가 일부러 함정을 파놓았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바로 이때, 진찬영이 입을 열었다.“3각 구도가 안정적이긴 하지만 재미가 없잖아요. 저도 끼워주시면 안 돼요?”진찬영은 사도현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사도현을 쳐다보았다.“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은 배경윤
“처음 그대를 만났을 때 다부진 몸매에 끌려 그대를 쭉 지켜보게 되었어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그대의 모습을 보면서 심장이 떨려왔어요. 자신감이 넘치는 그대가 유독 빛나 보였거든요. 그대는 정말 멋진 사람이에요.”하늘은 배경윤이 쓴 편지를 천천히 읽으면서 진찬영을 힐끗 쳐다보았다. 남성 참가자 중에서 진찬영이 텔레비전에 가장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진찬영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앉아 있었다. 사도현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쥐었고 당장이라도 한 대 때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첫인상 1위가 누구냐고 물으면 그대라고 하고 싶어요. 하늘 씨, 앞으로 우리 잘 지내봐요. 하늘 씨랑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요. 하늘 씨의 마음도 궁금해요. 단둘이 얘기 나누고 싶어요.”편지를 다 읽은 하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늘은 부끄러워하면서 머리를 긁적였고 배경윤을 쳐다보면서 물었다.“경윤 씨, 언제부터 저한테 호감이 생긴 거예요?”하늘을 포함한 게스트들은 전부 두 눈을 크게 뜨고 배경윤을 쳐다보았다.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배경윤은 사도현, 진찬영이 아닌 뜬금없는 하늘한테 고백했던 것이다.[지금 사람 마음 갖고 장난하는 거야? 거짓말하지 마. 누구한테 마음이 있는지 다 보이는데 왜 저러는 거야?][이거 대본 맞지? 대본의 냄새를 맡았어. 제작진한테 너무 실망이야.][대본이든 말든 나는 사도현과 배경윤이 이어지길 기도할 거야. 두 사람 진짜 잘 어울리잖아. 이러다가 진짜 이어져서 결혼할 수도 있어.][결혼이라니, 너무 앞서간 거 아니야? 사도현이 혼자 짝사랑하는 것 같아. 배경윤은 진찬영을 더 좋아한다고!]네티즌은 댓글 수백 개씩 달면서 열렬하게 토론했다. 진찬영의 평온한 얼굴에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사도현도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사도현은 하늘을 쳐다보면서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내가 열렬하게 구애했는데도 하늘 씨한테 졌어요. 정말 아쉬워요.”“사도현 씨, 제 말 좀 들어봐요. 경윤 씨가 장난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래요. 저는 오늘 경윤 씨랑
배경윤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진찬영은 배경윤이 손을 아무리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동안 꾸준하게 좋아했던 연예인이기도 했다.배경윤은 그동안 진찬영과 지내면서 연예인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매력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열정적인 팬에서부터 진찬영을 좋아하는 여자가 되었다.가끔 진찬영과 손을 잡고 천천히 늙어가는 평화로운 삶을 그리기도 했었다.진찬영은 자신을 향해 뻗은 배경윤의 손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불쾌함을 전부 씻어버리고 손을 잡으려고 했었다.그런데 이때 사도현이 갑자기 나타나서 배경윤의 손을 잡았다.“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 밤에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아있으니 아무도 빠지면 안 된다고 했어요.”말을 마친 사도현은 진찬영을 힐끗 쳐다보고는 씩 웃었다. 그리고 배경윤을 데리고 게스트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이 손 안 놔? 누구 마음대로 내 손을 덥석 잡는 거야? 때리기 전에 놔줘.”배경윤은 살기가 넘치는 눈으로 사도현을 쳐다보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당장 사도현을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었다.사도현은 진찬영과 배경윤이 한 발짝 더 가까이 가려고 하면 어김없이 나타나 훼방했다.“내가 잡고 싶어서 잡은 줄 알아? 제작진이 너를 데리고 오라고 했어.”사도현은 게스트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배경윤을 데리고 왔다. 그러고는 사회자 최빈을 향해 말했다.“다 모인 것 같으니 시작하죠.”최빈은 뒤쪽에 서 있는 진찬영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찬영 씨, 얼른 이쪽으로 오세요. 곧 고백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질 거예요.”>은 매일 밤에 게스트들이 모여 앉아 호감이 있는 사람한테 진심이 담긴 편지를 써야 했다. 다 쓴 편지는 추첨함에 넣고 제작진이 지목한 게스트가 나와서 뽑은 편지를 읽으면 되었다.낯부끄러운 시간이었지만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 게스트들의 마음이 어디로 향했는지 아주 궁금했다.마음을 편지에 담아 공개하기에
배경윤은 초가집의 뒷문으로 나온 뒤에 일부러 바닷가를 돌아서 바비큐 파티가 열린 곳으로 향했다. 게스트들은 배경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반가워했다.“경윤 언니, 오셨어요? 언니가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경윤 언니가 와서 너무 기뻐요.”장유빈이 머무는 숙소는 배경윤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장유빈은 바비큐 파티에 같이 참가하자고 했지만 배경윤은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못내 아쉬웠던 장유빈은 배경윤을 발견하고는 신나서 벌떡 일어났다.“모두 참가했는데 저만 빠지면 그렇잖아요. 저만 유별난 것도 아니고요. 아무튼 늦게 와서 죄송해요.”배경윤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이제라도 와줘서 고마워요. 경윤 씨, 이것 좀 봐요. 찬영 오빠가 경윤 씨를 위해서 쉬지 않고 고기만 구웠어요. 경윤 씨가 고기를 그렇게 좋아한다더라고요.”소수민은 불판에 올려진 고기를 보면서 부러운 어조로 말했다.“같은 여자라도 어떤 남자를 만나는지에 따라 달라요. 저희는 먹고 싶은 걸 구워주는 사람이 없어서 직접 구웠어요. 그런데 경윤 씨가 고기를 좋아하니까 찬영 오빠가 양념 고기, 불닭 소스 고기, 허니 고기를 준비했대요. 먹음직스러워서 침이 저절로 고였어요.”배경윤은 진찬영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한편으로 고마웠고 다른 한편으로 미안했다.“찬영 오빠, 고기를 굽느라 고생 많았어요.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돼요. 제가 오빠를 위해서 뭐라도 할게요.”배경윤은 진찬영의 옆으로 걸어가서 같이 고기를 굽고 양념을 발랐다.“조심해요!”진찬영은 튀어 오르는 숯불을 막아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숯불은 그대로 진찬영의 손에 튀었다.“찬영 오빠, 괜찮아요? 이 고귀한 손으로 왜 막은 거예요! 흉이 지면 안 되니까 얼른 가서 약부터 발라요.”소수민은 입을 틀어막고 기겁하더니 이내 소리를 질렀다.“찬영 오빠, 저...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오빠가 다쳤어요.”깜짝 놀란 배경윤은 어쩔 줄 몰라 했다.“괜찮아요. 덴 것도 아
사도현은 배경윤의 귓가에 속삭였다.“지금 가서 문을 열어주면 어떻게 될까?”“그러지 마!”배경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사도현의 팔을 꼭 붙잡았다. 사도현은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이상한 소리라도 낸다면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입 다물고 있어.”배경윤은 진찬영한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진찬영과 시작해 보지도 않고 끝나기에는 너무 아쉬웠다.뻔뻔스러운 감이 있긴 하지만 인성은 늘 그렇듯 욕심이 끝도 없었다.“안에 누구 없어요? 없으면 문 열고 들어갈게요.”쾅!소수민은 문을 점점 세게 두드렸고 허술하게 지어진 초가집이 무너질 것 같았다. 벽이 흔들거렸고 먼지가 떨어졌다.배경윤은 사도현을 끌어안은 채 미간을 찌푸렸고 이 난감한 상황이 빨리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사도현은 잔뜩 긴장해 있는 배경윤이 우스웠다.어쩐지 기분이 언짢았던 사도현은 일부러 배경윤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혔다.“하하하!”배경윤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고 말았다. 문밖에 서 있던 진찬영과 소수민은 그 소리를 듣게 되었다. 소수민은 큰 소리로 물었다.“계세요? 화장실을 쓰고 싶은데 문을 열어주세요. 저기요!”배경윤은 입을 틀어막고는 사도현을 노려보았다. 사도현은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약을 올렸다.“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으니 다른 곳에 가봐요. 쉬고 있는 사람을 방해하면 안 되니까요.”진찬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알겠어요. 찬영 오빠는 참 다정해요.”소수민은 짜증이 밀려왔지만 진찬영과 같이 다른 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발걸음 소리가 희미해지자 배경윤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러고는 주먹으로 사도현을 마구 때리면서 말했다.“사도현, 너 진짜 미친 거지! 일부러 나를 난처하게 만들었잖아. 이러고도 네가 남자야?”“사람들은 이미 우리를 한 쌍의 커플로 보고 있어. 커플이 같은 침대를 쓰는 게 그렇게 부끄러운 일이야?”사도현은 굳은 표정을 하고서 배경윤을 내려다보았다. 배경윤이 진찬영의 목소리에 반응한 것이 마음에 걸렸고 신경이 거슬렸
“그, 그게...”배경윤은 입술을 깨물면서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배경윤은 사도현을 아직도 좋아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감정이 드는지도 몰랐다.‘내가 아직 좋아하고 있는 걸까? 그래도 설레는 순간은 있었어.’배경윤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매일 마음을 졸여야 하는 사도현보다 잔잔한 물결 같은 진찬영이 더 좋았다. 진찬영은 다정하고 친절해서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진찬영과 진지하게 만나서 결혼할 생각도 있었다.만약 이 프로그램을 통해 두 사람이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한다면 그대로 진찬영한테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싶었다.사도현은 빛이 나는 태양이라 열정적이고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다치는 건 결국 배경윤이었다.진찬영은 차가워 보이지만 어둠으로 모든 것을 품어주는 달이었다. 달을 바라보고 가까이하는 것만으로 행복해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도현아, 사실 나는...”배경윤은 심호흡하고는 솔직한 감정을 전달하려고 했다. 그런데 사도현은 이미 대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배경윤의 입을 막아버렸다.“읍!”배경윤은 또다시 사도현과 입을 맞추게 될 줄 몰랐다. 요트 위에서 나눴던 키스와는 달리 한편으로는 부드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운 입맞춤이었다.가볍게 부딪친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사도현은 두려워했고 비굴하게 보이더라도 배경윤한테 떠나지 말라고 빌고 싶었다.화가 나서 밀치려고 했던 배경윤은 손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가만히 쳐다보다가 더 가까이 다가가 입을 맞추었다.‘이 세상에 불쌍하고 가엾은 강아지 같은 남자를 마다할 여자는 없을 거야. 그저 불쌍해 보여서 어쩔 수 없었어.’두 사람은 서로를 껴안고 사랑을 퍼부었다. 몸이 달아올라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너의 대답이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아. 네가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사도현은 배경윤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도현아, 혹시 아까 그것도 작정하고 그런 거야? 너는 나를 너무 잘 알아. 나는 네가 미워!”배경윤의
당장이라도 별이 쏟아질 것처럼 몽환적인 순간이었다. 배경윤은 사도현의 어깨에 기대고는 조용히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 알 수 없는 기류가 흘렀고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이렇게 많은 별을 볼 수 있다는 게 꿈만 같아. 몇 년 전에 보고 나서 한 번도 보지 못했었는데 말이야...”배경윤은 제일 빛나는 별 하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슬픔이 가득 묻어나는 눈으로 사도현을 바라보았다.“마지막으로 별을 본 건 대학교 시절에 나, 우리 오빠와, 설아까지 셋이 외국에 여행 갔을 때야. 높은 산과 낮은 산 사이에 있는 구역에 차를 세우고 텐트를 쳤어. 밤만 되면 두 설산 사이로 반짝이는 별들이 얼마나 예뻤는지... 그 별을 따라 가면 이 은하의 끝에 닿을 것만 같아서 손을 뻗어보기도 했어.”“네 말을 들으니까 상상이 돼.”사도현은 아름다운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고원지대에서 보는 별을 사뭇 다르다고 들었기에 늘 가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바삐 돌아치는 바람에 가보지 못해서 아쉬웠다. 배경윤의 말을 들은 사도현은 마치 고원지대에 간 것처럼 기분이 묘했다.“그때의 우리는 걱정할 것도 없이 행복하게 지냈어. 시간이 나면 운전해서 바람 쐬러 갔고 등산도 자주 갔었어. 바다를 많이 보지 못한 게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지. 별들은 여전히 그대로이고 제 자리를 잘 지키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변했을까?”배경윤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행복했던 대학 시절을 돌이켜보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사도현은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평소에는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긍정적인 여자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진지하고 우울한 면이 있었네? 의외의 모습을 보게 되었어.”배경윤은 사도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별똥별이 한 획을 긋고 떨어지는 것처럼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너는 모든 사람이 너처럼 겉만 화려하고 속은 텅 빈 줄 알아? 사람은 대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는 말도 모르냐고!”“공주님이 웬일로 울고 있어? 그렇게 슬
“응. 보고 싶어. 그게 어딘데?”배경윤은 진지한 표정을 한 사도현을 바라보았고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다. 그래서 겨우 진정하고 태연하게 물었다.“그럼 나랑 같이 가볼래?”사도현은 배경윤한테 손을 내밀면서 부드럽게 물었다.“이 시간 때에 가야 볼 수 있어. 너만 괜찮다면 같이 가고 싶어. 네가 싫다면 강요하지 않을게.”배경윤은 사도현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가자! 혼자서 심심했었어.”“나의 공주님한테는 최고의 선물이 될 거야.”사도현은 눈이 휘어지게 웃으면서 배경윤을 데리고 자신만의 아지트로 달려갔다.두 사람이 멀어진 뒤로 배경윤이 처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날이었다.사도현은 자신이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준 모습에 배경윤이 감동했을 것이라고 여겼다.몇 분 후, 두 사람은 섬의 다른 한 끝에 도착했다. 그곳은 사도현이 지내는 초가집이었고 마당에서 게스트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모여 앉아 해산물을 구워 먹고 기타를 쳤다. 남성 참가자와 여성 참가자 사이에 핑크빛 기류가 흘렀고 분위기가 한층 더 무르익어갔다.“설마 제일 예쁜 풍경이 저 사람들이 해산물을 구워 먹는 모습은 아니겠지?”배경윤은 멀리서부터 한곳에 모여 놀고 있는 게스트들을 발견했다. 사도현한테 속은 것 같아서 화가 솟구쳐 올랐고 배신감이 들었다.‘이럴 줄 알았어. 진지한 척만 하고 항상 나를 놀리고 싶어 했지. 내가 또 속을 줄 알아?’“그쪽 말고 여기로 가자.”사도현은 배경윤을 데리고 아무도 모르게 뒷문으로 초가집 안에 들어갔다. 배경윤은 미간을 찌푸린 채 사도현을 노려보았다.“고작 초가집을 보여주려고 데리고 온 거야? 그럴 바에는 나가서 다른 사람들이랑 노는 게 낫겠어. 너는 왜 항상 나를 놀리는 건데? 단 한 번만이라도 진지할 수는 없어?”“잠깐만 기다려 줘. 곧 보게 될 거야.”사도현은 배경윤의 두 눈을 손으로 가리고 불을 껐다.“사도현,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또 허튼수작을 부렸다가는 소리 질러서 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