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알겠습니다!”블랙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흑인은 놀란 마음에 오줌이라도 지릴 것 같았다.그는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사도 도련님, 감사합니다! 제가 정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그들에게 있어서 사씨 가문은 워낙 지위가 높았기 때문에 이렇게 비굴하게 굴 수밖에 없었다.아무도 쉽게 손댈 수 없는 그레이 존에서 그들은 법을 안중에 두지 않았지만 사씨 가문 만큼은 뼛속까지 두려워했다. 사씨 가문을 건드린다면 이 바닥에서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사도현은 여기로 오기 전에 블랙에 소식을 전하라고 부하들을 분부했다. 그래서 그는 아까 아무 걱정도 없이 날뛸 수 있었던 것이었다.“카지노 안의 냄새가 너무 코를 찌르네. 1분도 더 못 있겠어!”사도현이 코를 막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어쩔 수 없어요, 도련님. 카지노는 이렇게 해야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으니까요. 여기가 좀 혼란스럽기는 해도 원하는 물건이라면 모두 얻을 수 있는 곳이에요. 다른 곳에서 살 수 없다면 이곳에서 따내 가면 되거든요.”블랙은 지하 카지노의 보스가 아닌, 기껏해야 책임자였다.최근 몇 년 동안 그는 보스의 지시로 이곳을 잘 운영해 왔다. 심지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도 했다.사도현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그렇지, 모든 걸 얻을 수 있는 곳이지. 감히 우리 도윤 형 와이프를 두고 도박을 해? 정말 대단해!”블랙이 그 말을 듣더니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도윤 형이라고 말씀하신 분이 성대 그룹의 성...”“그렇다!”“네? 세상에, 세상에!”블랙은 하늘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성씨 가문은 해안 8대 가문 중 서열 1위, 지위는 심지어 사씨 가문보다 더 위였다. 하지만 그들은 성도윤의 아내를 두고 도박판을 벌였으니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아마 죽음밖에 없을 것이다!블랙은 또 바닥에 쓰러진 흑인을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너 죽을래? 성대 그룹 대표님의 아내분에게도 손을 대? 정말 죽으려고 작정한 모양이구나. 내가
성도윤은 덤덤하게 말하고는 차설아를 힐끗 쳐다보고 돌아섰다.“휴, 형, 그냥 가는 거야?”사도현은 쿨하게 돌아서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 장난이 심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급해서 소리쳤다.“방금 농담이었어. 왜 그래? 내가 구했지만, 설아는 여전히 형 거야. 나 선은 지킨다고!”“선을 지키든 말든, 상관없어.”성도윤은 그들에게 등을 돌린 채 OK 손짓을 하고,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사도현은 성도윤을 미처 말리지 못하고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 서 있었다.‘자기 마누라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할 만큼 통이 큰 사람이었나?’사도현은 아직도 온몸이 묶여 있는 차설아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모습은 마치 주인을 기다리는 선물상자 같아 괜히 쑥스러웠다.“그게, 형수, 무서워하지 마. 도윤이 형이 질투가 났는지 먼저 가버렸어. 지금부터는 내가 보살펴줄게.”사도현이 처음으로 차설아를 ‘형수’라고 불렀다. 그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한없이 깨끗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함이었다.하지만 지금 보니, 사도현이 차설아에게 공손할수록 오히려 그녀에게 딴마음을 품은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어쩔 수 없었다. 지금 차설아는 흰 레이스 치마를 입고 있었고, 그 모습이 너무 매혹적이었다.“윽윽윽!”차설아는 입이 테이프로 막혀 말을 잇지 못하고 고양이처럼 연약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많이 놀란 모습이었다.“기다려, 일단 밧줄부터 풀어줄게.”사도현은 말을 마치고 차설아의 몸에 묶인 밧줄을 풀어주느라 바빴다.이 굵은 밧줄은 차설아의 몸에 여러 바퀴 휘감겨져 있어 시간이 꽤 걸렸다.두 사람의 몸은 어쩔 수 없이 조금 붙게 되었다.여자의 비단결 같은 머리카락은 라일락꽃의 은은한 향기를 풍기며 사도현의 잘생긴 뺨을 스쳤고, 이는 사도현의 마음을 간지럽혔다.“잠깐만, 곧... 다 풀었어.”사도현은 심호흡을 하며 간지러운 마음을 달랬다.‘휴, 정말 미치겠네. 내가 가장 하찮게 생각했던 차설아에게 이런 매력이 있다니. 귀엽고 섹시한 매력을 누가 당해내겠어?”드
사도현은 침을 꿀꺽 삼켰고, 여자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 모습이었다.“저는 저를 카지노에 팔았어요. 카지노는 저를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죠. 어떤 남자의 손에 들어가도 죽기보다 못한 인생이니 살 마음도 없었어요. 그런데 하느님이 절 불쌍히 여기셔서 당신을 제게 보내셨네요...”여자는 감정이 격해져서 자기도 모르게 사도현에게 다가갔다.“잠깐! 다가오지 마요!”건장한 체구의 사도현은 마치 맹수라도 본 듯 연신 뒷걸음질 치며 여자와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다.그녀의 가녀린 몸은 멈칫하더니, 상처를 받은 눈빛으로 말했다.“제가 당신에게 빌붙을까 봐 걱정하시는 거예요?”“아니요! 아니요!”사도현은 손을 내저었다. “그 뜻이 아니라, 제 말은, 당신은 사람이지 물건이 아니잖아요. 자기 인생을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안 되죠!”“무슨 뜻인지 알아요. 하지만 저는 이미 카지노와 신체 매매 계약을 했고, 만약 당신이 저를 원하지 않으시면, 전 분명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요. 더 이상 상품처럼 카지노 테이블에 묶여 징그러운 남자들의 비위를 맞추기 싫어요.”“신체 매매 계약이 있다고요?”사도현은 눈살을 찌푸리고 옆에 있는 블랙을 바라봤다.블랙은 겁에 질려 당장이라도 도망갈 기세였고, 즉시 갈치를 재촉하여 신체 매매 계약을 내놓았다.“여기.... 여기 있습니다. 카지노에서는 이 여자를 2억에 샀습니다. 이제 도련님의 것입니다.”갈치는 전전긍긍하여 가방에서 여자의 서명과 손도장이 찍힌 계약서를 꺼냈다.사도현은 위에 적힌 이름을 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윤설?”그리고 눈을 반짝이더니 문득 깨달았다.“생각났어. 그날 술집에서 도윤이 형이랑 춤을 추던 여자지? 어쩐지 눈에 익더라고!”“맞아요, 드디어 제가 생각나셨군요. 전에 술집에서 뵙고 당신한테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윤설은 물결처럼 부드러운 눈으로 사도현을 바라보았다.그날 밤, 그녀는 성도윤에게 설렜을 뿐만 아니라, 사도현에게도 끌렸었다.늘 사도현처럼 밝은 에너지가 넘치는 스타일을 좋아했었
“아, 누가 쓰러졌어요!”사람들 속에서 황급한 고함소리가 들렸다.사도현은 이미 차에 탄 상태였고, 자신과 무관한 여자의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결국,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고, 생각이 불순한 남자들도 있는 것이니, 사도현은 미간을 찌푸리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다 비켜!”사도현은 빽빽이 들어찬 인파를 헤치고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구경꾼들은 딱 봐도 부잣집 도련님인 사도현의 모습을 보고 순순히 길을 비켜주었다.하지만, 사도현을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의식을 잃은 윤설을 독점하려는 건방진 인간도 있었다.“그 손 놔!”사도현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윤설의 몸에 손대고 있는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남자에게 명령했다.“네가 뭔데 참견이야? 이 여자는 내가 먼저 발견했어! 빼앗아 갈 생각하지 마!”칼자국 남자는 윤설의 팔을 잡아당기며 당당하게 그녀를 업고 떠나려 했다.구경꾼들도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만류하기는커녕 오히려 부러워하는 눈치였다.이건 확실히 이 지역의 ‘특색’으로, 흔히들 ‘시체 줍기’라고 한다.이곳에서 거리에 쓰러져 의식을 잃은 모든 여자들은, 술에 취했든, 배가 고파서 기절했든, 아니면 아파서 쓰러졌든, 모두 생수처럼 공공자원으로 여겨져 먼저 주운 사람이 임자라는 규칙이 있었다.윤설 같은 절세미인은 보기 드문 보물이라, 그녀를 주운 사람은 당연히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그 여자 놓으라고!”사도현은 큰 체구로 남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차가운 기운이 극도에 달해 사람을 섬뜩하게 만들었다.물론, 칼자국 남자도 현지에서 꽤 유명했다. 일반인들은 그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니, 당연히 사도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네가 뭔데 나한테 명령이야?”“이 여자는 내 사람이야!”사도현은 또박또박 말한 후, 찢은 계약서를 꺼내 냉소를 지었다.“방금 블랙한테서 받아온 신체 매매 계약서야. 굳이 이 여자를 데려가겠다면 네가 블랙을 찾아가든가!”“블랙... 형님?”칼자국 남자는 갑자기 침을 꿀꺽 삼키더니 당황한
“뭐? 뭘 들었는데?”“저는 도현 씨의 사람이라고. 이건 저를 받아드렸다는 뜻이죠, 맞죠?”“오해하지 마. 방금 돌발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고마워요!”윤설은 웃으면서도 눈시울을 붉히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이 말을 들었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네요. 저승길에서 외로운 혼령이 아닐 거예요.”“그게 무슨 말이야? 죽다니?”사도현은 윤설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마치 임종 전의 유언을 남기는 것 같았다.“제가 작은 부탁을 해도 될까요?”윤설은 사도현의 팔을 붙잡고 불쌍하게 말했다.사도현은 여자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졌다.“말해봐.”“제가 죽으면 유골을 작은 상자에 담아 이장의 오래된 우물에 묻어주세요. 장례식도 필요 없고, 그저 기일에 아무나 보내서 제사를 지내면 돼요.”여기까지 말한 윤설은 이미 호흡이 약해졌다.사도현은 생각할수록 이상해서 엄숙한 표정으로 물었다.“대체 뭔 일이야? 나한테 숨기는 거 있어?”“아니에요. 그저… 콜록!”윤설은 갑자기 피를 토하더니 의식을 잃었다.사도현은 당황하여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차에 태우고 계속 말했다.“조금만 버텨, 당장 병원으로 데려다줄 테니, 조금만!”차는 사람들이 붐비는 길을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어쩌면 이 순간부터 두 사람의 운명은 함께 묶였는지도 모른다.그 늙은 어르신의 말씀대로 윤설은 사도현의 운명이자 재난일 지도 모른다.성도윤은 성가 저택으로 돌아왔고, 이미 늦은 밤이었다.여전히 차설아에 대한 소식을 얻지 못했다.‘이 여자 진짜 지구에서 사라진 거 아니야?’강진우는 위로하며 말했다.“도윤아, 조급해하지 마. 이미 사람들을 더 보내서 전국에서 찾고 있어… 다른 나라의 정보 부서와도 연락해서 설아 씨 행적을 찾고 있으니까, 곧 소식이 있을 거야.”성도윤은 의욕을 잃고 덤덤히 말했다.“찾지 마. 그냥 내버려 둬!”“도윤아, 그게 무슨 말이야? 포기하겠다는 소리야?”“우리 사이는 이미 너무 많이 멀어졌어. 찾더라도 서로 상처만 줄 거
성도윤은 이 지도의 지형구조와 선로의 방향이 성가의 북성 노군산에 있는 선조의 무덤 입구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랐다.성가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었고,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도, 대대로 장군 대신으로 세력이 뛰어났다. 가문은 북성 일대에서 활동했고, 조상들도 북성에서 가장 풍수가 좋고 외부인의 접근이 가장 어려운 노군산에 묻혔다.증조할아버지 때 온 가족은 해안 시로 와 지금의 성과를 이룩했다.몇 년 동안 성가는 주요 제삿날을 제외하고는 북성으로 돌아가지 않았다.“이상하네. 성씨 가문의 지형도가 왜 차설아의 포대기에 있지?”‘혹시 두 가문 사이에 어떤 인연이라도 있었나? 할아버지한테 기회를 봐서 여쭤야겠어.’성도윤은 조심스럽게 이불과 비단을 작은 상자에 넣었다.그는 갑자기 또 무슨 생각이 나서 차설아의 노트를 꺼내 사도현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 사도현은 응급실 문밖의 벤치에 앉아 윤설을 기다리고 있었다.사도현은 자신이 아마 미쳤다고 생각되었다.종래로 남 일에 나서지 않고 독선적으로 행동하던 자신이 열정적으로 나서서 밥도 못 먹은 채로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있으니 말이다!“형,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야?”사도현은 성도윤의 전화를 받았지만, 주의력은 여전히 끊임없이 반짝이는 응급실의 빨간 불에 있었다.빨간 불이 멈추면 응급처치가 끝났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사도현은 윤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녀에 대한 강한 끌림으로 인해, 그녀가 이렇게 죽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내가 전에 차에서 너한테 노트를 보여줬잖아. 나 도와주겠다고 했던 말 기억나?”전화기 너머에서 성도윤이 느릿느릿 물었다.“콜록, 기억 안 난다고 해도 돼?”성도윤의 말투를 들은 사도현은 분명 좋은 일이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이건 성도윤이 함정을 파놓고 사도현에게 ‘네가 약속했으니, 뛰어들어!’라고 말하는 격이었다.“긴장할 필요 없어. 돈을 버는 일이니까, 너한테 손해 가지 않아.”“고마워, 형. 하지만 난 돈이 부족하지 않아. 이렇게 좋은 일
“3개월 안에 그 내용을 영화로 만들어. 전 세계적으로 상영하고, 돈을 퍼부어서 올해 최고의 영화로 만들어.”성도윤은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의 요구를 말했다.사씨 가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엔터테인먼트 회사 ‘윈스 엔터테인먼트’를 갖고 있었고, 소속 연예인은 모두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영화, 드라마, 예능 등 다수에 출연한 세계적인 스타들이었다. 이 일을 사도현에게 맡긴다면 성도윤은 충분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나도 그때 보고 똑같은 생각을 했었어!”사도현은 눈을 반짝이더니 급히 말했다.“그 팬 픽션은 주인공의 캐릭터가 입체적이고 갈등과 충돌이 심해서 상품으로 만들기 딱이야. 하지만… 내용이 좀 막장이라 아이돌 드라마로 만들기 더 적합해. 영화로 만들고, 또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로 만들기에는 난이도가 좀 높아.”“난이도가 낮은 일이었으면 내가 왜 널 찾았겠어?”성도윤의 태도는 강경했고 군령을 내리는 듯 말했다.“3개월 후에, 난 이 영화가 세계적으로 퍼지는 것을 봐야겠어.”사도현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형,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내가 영화로 만든다고 해도, 줄거리와 결말이 없잖아. 배우는 또 어떻게 구해? 저작권 분쟁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 안 해봤어?”“그건, 나랑 상관없는 일이지.”성도윤은 더욱 강력한 말투로 차갑게 명령했다.“3개월 후에 나한테 결과를 보여줘. 만약 성공하지 못한다면 넌 끝이야.”“휴, 형, 제발! 내 말 좀 들어봐…”“뚜뚜뚜…”성도윤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사도현은 제자리에서 울분을 토했다.영화로 만드는 건 식은 죽 먹기이지만, 이런 막장 로맨스물을 세계적인 영화로 만드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이때, 계속 깜빡이던 응급실의 빨간 불이 멈췄다.수술실에서 나오는 의사의 안색이 꽤 좋았다.“어떻게 됐어요? 선생님.”사도현은 얼른 다가가서 물었다.“환자분 명이 길어요. DDVP를 반 병 마시고도 살았으니. 아주 기적이에요.”의사는 감탄하며 말을 이었다.“약 먹고 자살한
3개월 후, 동남아시아의 어느 개인 섬.차설아는 하얀 해먹에 누워 차가운 수박을 여유롭게 먹으며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출산 예정일이 두 달 남짓하여 배가 이미 크게 불렀다.해안을 떠난 후, 차설아는 줄곧 이 섬에 머물면서, 매일 바닷바람을 쐬고, 먹고 마시고, 원격으로 천신 그룹과 법률사무소의 일을 보며 편안하고 여유로운 삶을 보냈다.역시, 인터넷에서 말했듯이 남자를 가까이하면 불행해진다는 말이 맞았다!성도윤의 세계에서 완전히 물러난 후부터, 차설아는 잘 먹고 잘 자며, 행복하게 지내서 몸도 마음도 좋아져 살까지 올랐다.이 개인 섬은 수년 전, 그녀가 학술 상금과 특허 비용,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모은 돈으로 샀고, 자신이 꿈꾸던 모습으로 만들었다.원래 이 섬을 무릉도원처럼 개조하여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이곳에 휴가로 데려오려고 했다.아쉽게도 섬을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집안에 변고가 생겼고, 그녀는 성가로 시집갔기 때문에 한 번도 섬에 온 적이 없었다.최근 몇 년 동안 이 섬은 배경수가 자비를 털어 유지한 덕에 황폐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기지국도 건설되어 자주적으로 신호를 제공할 수 있었다.이것이 바로 차설아가 계속 인터넷을 사용하지만, 행적이 전혀 잡히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이 작은 섬은 작은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섬에는 없는 것이 없었고, 차설아가 마음만 먹으면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고 살기에 충분했다.차설아는 이 섬을 ‘해바라기 섬’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녀는 섬에 해바라기 꽃을 가득 심었다. 아이들이 태어나면 해바라기처럼 영원히 햇빛을 따라 강인하고, 낙천적인 삶을 살기를 바랐다.차설아와 섬에서 함께 지내고 있는 사람은, 그녀의 유모 민이 이모였다.민이 이모는 조상의 의술을 물려받아 태아의 발육에 주의를 기울이고 매일 다양한 영양가 있는 식사를 준비했다.두 사람은 아이가 태어나 이 섬에 더 많은 생명력을 가져다줄 것을 더없이 기대하고 있었다.‘다다다’
“설아야...”차성철이 천천히 손을 뻗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설아야, 그동안 나 때문에 힘들었지? 정말 고생했어. 미안해...”“오빠, 그런 말 하지 마. 오빠가 깨어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차설아는 차성철이 누워있는 병실 침대맡에 꿇어앉아 눈물을 흘렸다.“사실 의식을 잃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작은 상자에 갇힌 채로 꼼짝도 하지 못했던 거야. 상자를 열지 못해서 이 안에서 죽는 줄 알았거든. 그런데 자꾸 네 생각이 나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난 하느님께 정말 감사해. 나에게 기회를 주어서 널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야.”차성철이 울먹이면서 말했다. 이번 사고로 인해 차성철은 많이 변했다. 예전처럼 날카롭고 예민하게 굴지 않았고 한결 부드러워졌고 말투도 다정해졌다.“뭘 자꾸 그런 말을 해! 오빠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면서 우리 달이랑 원이가 커서 결혼하는 모습을 봐야지. 손주도 봐야 하는데 불길한 말은 하지 마. 오빠는 그냥 오래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거야. 하느님의 힘을 빌릴 정도까지는 아니었어. 다시 깨어나 줘서 정말 고마워... 오빠가 너무 보고 싶었어.”차설아는 눈물을 닦으면서 차성철을 와락 안았다.“그래. 너랑 달이, 원이를 위해서라도 건강하게 지내야지. 앞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자. 우리 가족 모두 모여서 재밌게 지내자. 네가 하고 싶었던 걸 같이 하고 가족 여행도 가자.”“말한 대로 해야 해. 지금 약속하자. 앞으로 오빠가 또 다치면 다시는 나 못 볼 줄 알아! 그때는 오빠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남매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눈물의 약속을 했다. 보는 사람마저 눈물이 나는 광경이었다. 배경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렸다. 배경윤은 배경수가 생각났던 것이다.차설아의 말에 의하면 배경수는 아주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처음 보는 여자와 결혼했다. 배경윤은 배경수가 걱정되었다. 차설아는 울다가 차성철이 베고 있는 베개의 아래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은반지였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값이 꽤 되는
바람이 멈칫하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뭐, 뭐라고?”“네가 스파이지? 네가 사주받고 우리 오빠를 죽이려고 한 거잖아! 그렇지 않으면 왜 우리가 식당에 간 사이에 오빠한테 이런 일이 벌어진 거냐고!”차설아는 붉어진 두 눈을 하고서 물었다. 그동안 차성철의 상태에 대해 아는 사람은 바람과 차설아 두 사람뿐이었다.‘아무리 바람이 날 보살펴 주고 내 곁을 지켰다고 해도 누군가가 바람한테 지시해서 나를 감시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 내가 방심한 틈을 타서... 그래. 바람은 선우 가문 사람이니까 가문의 이익을 위해서 오빠를 죽이려고 했을 수도 있어. 그러면 차씨 가문의 자리를 빼앗을 수도 있으니까!’배경윤이 차설아를 뜯어말렸다.“설아야, 말이 좀 심하다? 바람 씨가 어떻게 사주를 받고 그랬을 수가 있어. 네 말이 사실이라면 바람 씨가 너한테 온갖 심혈을 쏟아부을 리가 없잖아. 성철 오빠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움직였겠지. 바람 씨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쳐다보며 물었다.“넌 알고 있었지?”“그, 그게...”배경윤은 주먹을 꽉 쥔 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때 의사와 간호사들이 병실에서 걸어 나왔다.“의사 선생님, 오빠 어떻게 되었어요?”차설아는 사건의 배후에 대한 생각을 뒤로 하고 의사한테 다가가 물었다.“제때 발견한 덕분에 환자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어요. 호흡도 정상적으로 돌아왔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다행이에요. 정말 감사해요...”차설아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고개 숙여 인사했다. 최근 차설아는 감정 기복이 심해서 울었다 웃기를 반복했다. 몸에 무리가 가면서 차설아도 점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들어가 봐도 돼요. 박 선생님의 말씀대로 곧 깨어날 것 같거든요.”의사의 말에 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감사해요!”차설아는 병실로 들어가 차성철을 바라보았다. 배경윤도 그 뒤를 따라갔지만 바람은 굳은 표정을 하고서 밖에 서 있었다.“바람 씨, 거기서 뭐 해?”배경윤이 고개를 돌려
검은 그림자는 다름 아닌 서씨 가문 서은아였다. 서은아는 그동안 차설아를 감시하고 있었다. 차설아가 식당에 밥 먹으러 간 사이에 차성철이 있는 병실을 책임지는 간호사에게 돈을 쥐여주었고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수술을 마친 뒤, 침대에 누워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차성철은 살짝 다쳐도 부서질 것처럼 나약해 보였다. 서은아는 병실 침대 앞에 서서 한참을 쳐다보다가 작은 물건을 차성철 베개 옆에 올려놓고는 산소마스크를 벗겼다.“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미안해. 당신이 식물인간이 되면 당신 여동생도 기가 죽어서 나대지 못할 거라고 믿었어. 그런데 박성훈이 와서 당신을 살렸지 뭐야? 성도윤이 박성훈한테 부탁한 거라면서? 정말 어이가 없더라. 보나 마나 차설아가 성도윤한테 부탁한 거겠지. 뻔뻔스러운 년이...”서은아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날 탓하지 마. 탓하려면 그 못난 여동생을 탓해. 차설아는 내가 성도윤과 약혼한 사이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 성도윤한테 달라붙으면서 날 괴롭혔어. 동생이 저지른 잘못은 오빠인 당신이 책임져야지. 안 그래?”서은아는 말을 마친 뒤, 감시 카메라를 피해 조용히 병원을 나섰다. 식당에 앉아 있던 차설아는 바람이 포장한 음식을 보면서도 어쩐지 불안해서 먹고 싶지 않았다.“설아야, 네가 제일 좋아하는 탕수육이야. 다른 식당에서 하는 건 눅눅해서 맛없지만 이 식당에서 하는 건 바삭하잖아. 바람 씨가 널 위해서 사 온 건데, 한 입이라도 먹어 봐.”배경윤은 불안해하는 차설아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바람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이 식당에 줄을 서려고 아침 일찍 깨어났어. 하지만 스파크가 좋아하는 거라면 눈이 오든 비가 내리든 사러 가야지.”바람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피식 웃었다. 그동안 차설아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온갖 시도를 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쯧쯧. 바람 씨한테 설아를 맡겼다가는 뚱보가 되겠어. 한 달 안에 10킬로 찐다는 것에 내 머리카락을 걸겠어.”“스파크는 살이 쪄도 예뻐서 괜찮아. 지금처럼 귀여울 거
배경윤은 박성훈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박성훈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성도윤이 데려온 의사라는 말에 성도윤처럼 나쁜 사람인 줄 알고 경계했다.“경윤아, 그러지 마. 박 선생님은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오빠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준 분이야. 오빠가 깨어날 수만 있다면 차씨 가문의 은인이 될 분이거든.”차설아는 다시 일어나더니 박성훈한테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했다.“박 선생님, 죄송해요. 경윤이는 늘 저를 아껴주고 보호해 주는 사람이라 이런 일에서는 예민하게 굴거든요.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괜찮아요. 병원에서는 예민할 수밖에 없죠. 만나본 보호자 중에서 제일 정상적인 반응이거든요. 저는 이해해요.”박성훈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저 말고 성 대표님께 고맙다고 해야죠. 저는 수술할 생각이 없었는데 성 대표님이 간절하게 부탁했고 제가 좋아하는 바다낚시까지 같이 해주셔서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바다낚시 내기에서도 졌으니 성 대표님 말대로 수술해야 했어요.”“성도윤이 어렵게 모신 분인 건 알고 있었어요. 나중에 오빠가 깨어나면 인사하려고요.”“잘 생각했어요.”박성훈이 차설아의 어깨를 토닥이더니 말을 이었다.“생각이 많으면 마음이 힘들 거예요. 사실 생각처럼 최악의 상황까지 가는 일은 없으니 마음 편안하게 먹고 환자분이 깨어나길 기다리세요.”말을 마친 박성훈은 사무실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지금 오후 4시라서 박성훈이 말한 시간까지는 아직도 4시간이나 남아있었다. 배경윤은 차설아가 또 쓰러질까 봐 걱정되었다.“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밥부터 먹자.”“괜찮아. 난 배고프지 않아. 오빠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싶어. 오빠가 일어나야 내 마음도 편해질 것 같아.”차설아는 병실 밖에 서서 침대에 누워있는 차성철을 바라보며 말했다.“너 이러다가 또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래? 오빠도 네가 이러는 걸 원하지 않을 거야.”차설아는 고개를 돌려 배경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배경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설마 네가 말한 사람이 그 나쁜 놈은 아니겠지? 아니라고 말해.”차설아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그 사람 말고 또 누가 있겠어. 그래도 도움받았잖아.”“아...”배경윤은 주먹을 꽉 쥔 채 머뭇거렸다. 차설아한테 사실대로 말해야 할지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이 사고는 목적, 증언, 사건 발생 시간으로 보았을 때 성도윤이 배후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 없이 성도윤을 범인으로 몰아갈 수 없었다. 만약 이 말을 꺼냈다가 차설아와 성도윤이 싸우게 된다면 손해 보는 건 차설아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성도윤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설아야, 그저 네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데 성도윤을 너무 믿지 마. 성도윤이 어떤 사람인지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진심을 드러내지 말고 계속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알겠지?”배경윤은 머뭇거리다가 결국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했다.“나도 알아. 지금까지 성도윤을 용서한 적 단 한 번도 없어. 오빠 얼굴에 남은 흉터를 볼 때마다 성도윤이 떠올라서 화가 솟구쳐 오르거든... 성도윤이랑 잘 해볼 생각이 아니라 그저 좋은 의사를 데려와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야. 네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야.”차설아는 수술실을 바라보면서 말했고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다. 눈에 핏줄이 가득 서렸지만 차성철이 나올 때까지 쉴 수 없었다. 성도윤에 관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차설아의 마음이 아팠기에 더는 신경 쓰지 않았고 애매모호한 선을 넘지 않았다. 지금처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더 마주치지 않는 것이 두 사람을 위한 일이었다.“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 더 이상 그 사람과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 건 알지만 항상 경계해야 해. 그 사람이 얼마나...”“알겠어. 곧 수술이 끝날 테니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오빠가 무사히 나오기를 바라면서 기다리자.”차설아는 배경윤의 말을 끊었다.“그래. 같이 기다려보자.”배경윤은 슬픔이 가득 서려 있는 차
사도현은 턱을 쳐들더니 거만하게 말했다.“내가 바로 배경윤 남자 친구예요.”사도현의 말에 같이 식사하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두 사람이 보통 사이가 아닌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회사 대표가 당당하게 공개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뭐?”배경윤은 어이가 없었다. 사도현이 미친 짓을 저지를 줄 예상 못했는지 사도현을 향해 부르짖었다.“사도현, 너 정말 미친 거야? 장난이 너무 심하잖아!”‘헤어진 지 얼마나 지났는데 이제 와서 남자 친구라고?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찬영 오빠 앞에서 공개하다니... 정말 제대로 미친놈이구나. 내 미래의 남자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사람한테 알려주려고 작정한 거야!’“내 말이 틀렸어? 우리 사귀는 사이 맞잖아.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온 첫 번째 날에 어떻게 같은 방, 같은 침대에서 잤겠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텐데 말이야.”사도현이 피식 웃더니 부르짖는 배경윤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꼈다. 배경윤의 시선을 느끼면서 이제야 자신의 것을 되찾은 것 같았다.“그, 그건...”배경윤은 말문이 막혔다. 설명하면 할수록 말려드는 것 같아서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이때 진찬영이 입술을 깨물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만약 두 사람이 한방에 들어가는 것이 사귄다는 증거라면, 사도현 씨는 배경윤 씨가 아니라 윤설 씨의 남자 친구인 것 같은데요? 윤설 씨 곁을 떠난 적이 없잖아요. 도대체 두 분 중에서 누구의 남자 친구인지 헷갈리네요. 아니면 두 분을 속여서 양다리를 걸친 게 아닐까 싶어요.”진찬영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반격할 수 있는 틈을 찾았다. 그러고는 도덕적인 면에서 사도현을 비난하기 시작했다.“맞아요! 같은 방을 쓰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날에 남은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그랬어요. 우리 두 사람 모두 외양간에서 자기 싫었거든요. 그날 밤에 아무 일도 없었지만 윤설 씨랑 사도현 씨 사이는 각별했어요. 정성을 다해서 보살핀 여자랑 사귀는 것 같은데 왜 나를 언급하고 난리야! 난 너처럼 미친놈이랑 사귈 바
그 말을 들은 장윤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장윤태가 다급히 뜯어말렸다.“집에 갈 정도로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거죠! 그런 설정을 할 생각도 없었어요. 찬영이도 커플 설정을 원하지 않을 테니 강요할 수 없었거든요. 다들 장난치는 거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장윤태는 게스트들이 말하는 커플 중 한 쌍이 진찬영과 배경윤임을 확신했다. 옆에 앉아 있던 사도현은 굳은 표정으로 진찬영을 노려보고 있었다.“장 감독님, 그것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에요.”배경윤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개인적인 일로 해안시에 다시 돌아가야 해요. 프로그램 촬영하는 동안 정말 재밌었어요. 게다가 찬영 오빠랑 커플로 촬영할 수 있다고 하면 더 행복했을 거예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해요.”“잘생긴 남자라면 다 좋아하나 보지?”말을 마친 사도현은 혼자서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장윤태는 배경윤을 설득하지 못하자 재빨리 다른 제안을 했다.“급한 일이 있으니 어쩔 수 없죠. 곧 연애 예능 촬영이 있는데 그때 시간이 되면 우리 찬영이랑 같이 게스트로 출연하지 않을래요?”“좋아요!”배경윤은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 진찬영과 함께 촬영할 수 있다면 무슨 프로그램이든지 무조건 출연할 것이다. 진찬영과 떨어지려니 아쉬웠지만 돌아가서 차설아의 곁을 지켜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작별 인사를 했다.“배경윤 씨랑 같이 출연한다면 저도 좋아요.”진찬영은 배경윤을 향해 말했다. 애초에 진찬영은 배경윤이 출연한다는 소식에 이 마을까지 달려왔던 것이다. 그러기에 배경윤이 있는 곳에 꼭 따라갈 것이다.“그럼 두 사람이 사인한 계약서 말고 다른 계약서를 준비할 테니 이제 만나서 얘기해요. 조건을 구체적으로 적으면 이 프로그램 계약서대로 하지 않아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요.”장윤태는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너무 기쁜 나머지 술을 마시면서 껄껄 웃었다.“안 돼요.”사도현이 차갑게 말했다.“배경윤은 너무 바빠서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할 시간이 없을 거예요.”배경윤
사도현은 직설적으로 말했다. 누가 진찬영을 밀어주든지 상관없이 배경윤에게 나쁜 의도를 갖고 접근한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재벌가 아가씨의 마음을 얻으면 평생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윤설 씨가 사도현 씨한테 빌붙어서 드라마 여주인공 역만 맡는 것처럼요?”진찬영이 말을 이었다.“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도 사도현 씨랑 같은 줄 알고 섣불리 판단할 수밖에 없겠죠. 더 이상 의미 없는 대화는 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진찬영이 가마뚜껑을 열어보자 향긋한 냄새가 풍겨왔다. 추어탕 안에 청양고추를 넣으니 배경윤이 좋아하는 매콤한 추어탕이 완성되었다. 사도현이 뭐라고 더 말하려고 할 때, 진찬영이 추어탕을 옮겨 담고는 주방을 나섰다. 사도현은 불을 피우면서 흘러나오는 연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두 남자의 대결은 사도현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여러분, 오늘 메뉴는 추어탕이에요! 어서 드셔보세요!”진찬영은 환하게 웃으면서 쉬고 있던 게스트들을 불렀다. 배경윤은 터벅터벅 걸어 나와서 식탁 앞에 마주 앉았다. 진찬영이 해준 밥을 먹어서 기쁘긴 했지만 웃을 힘조차 없었다.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진찬영은 직접 국을 떠주면서 말했다.“먼저 밥부터 먹고 다시 생각해요. 배경윤 씨를 위해 만든 건데, 한 입도 먹지 않으면 좀 속상할 것 같거든요.”“아, 죄송해요. 생각할 게 많아서 신경 쓰지 못했어요.”배경윤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추어탕을 먹기 시작했다.“먹어봤던 추어탕 중에서 제일 맛있어요!”“당연히 그렇겠죠. 추어탕에 진찬영 씨의 사랑이 가득 들어갔으니 맛없을 리가 없잖아요. 우리 같은 구경꾼들은 배경윤 씨가 부러워 죽겠다니까요!”“최우수 남우주연상을 받은 분이 누군가를 위해서 직접 미꾸라지를 손질했다니깐요. 보통 정성이 아니에요! 그 여자 덕분에 저희도 이렇게 맛있는 추어탕을 먹어보네요.”추어탕을 맛보던 게스트들이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진찬영은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들으면서 배
윤설이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나는 그렇다고 한 적 없어요.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라 더 알려줄 것도 없고요. 정말 궁금하다면 의심 가는 사람을 찾아가서 물어보세요.”배경윤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쥔 채 온몸을 덜덜 떨었다. 이미 배후가 밝혀진 마당에 더 캐묻는 건 멍청한 사람이나 할 짓이었다. “그리고 이건 진심으로 하는 말이니 새겨들어요. 도현 씨랑 성도윤은 생사를 함께 겪은 형제이니 도현 씨를 멀리하는 게 좋을 거예요. 무슨 일이 있어도 도현 씨는 성도윤 편을 들 테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차성철이 수술했다는 것을 성도윤이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요? 게다가 성형외과 의사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요?”윤설은 배경윤의 반응을 지켜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사실 성도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성도윤이 사랑하는 사람과 조금 연관된 일이긴 하지만 그게 결국 성도윤의 일이 되는 거지. 난 사실만 말했으니 아무 잘못도 없어. 배경윤, 이제는 도현 씨 곁에서 떨어져!’“난 성도윤이 그런 일을 벌일 줄 알았어요! 천하의 나쁜 놈 같으니라고...”윤설의 말을 들은 배경윤은 모든 것이 성도윤과 연관된 일이라고 확신했고 사도현이 성도윤을 도와주었다고 여겼다. ‘계속 여기에 남아있어서는 안 돼. 얼른 해안시로 돌아가서 설아한테 알려줘야지. 그놈 때문에 또 누군가가 다칠 수도 있어! 설아야, 조금만 기다려줘!’주방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은 두 남자의 대결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진찬영은 앞치마를 두르고 소매를 올린 채 두부를 썰었다. 집중하는 모습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멋있어서 여자든 남자든 진찬영에게 반하고 말 것이다.하지만 부뚜막 앞에 앉아 불을 피우고 있는 사도현은 진찬영을 노려보기에 바빴다. 사도현은 장작을 진찬영의 팔이라고 생각하면서 두 토막으로 끊이고 불 속에 집어넣더니 차갑게 말했다.“우리 둘밖에 없으니 솔직하게 말해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예요? 돈 때문이라면 원하는 만큼 줄 테니 말해봐요. 얼마면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