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는 다름 아닌 연아의 친엄마 이현이었다.“연아야, 괜찮아? 목에 피가 나. 아프지? 당장 병원에 가자!”이현은 연아를 안고 위아래로 검사하더니 눈물을 뚝뚝 흘렸다.원래 문서를 연구하던 이현은, 갑자기 생방송을 보고 자신의 소중한 딸이 인질로 잡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다른 건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가장 빠른 속도로 사고 현장으로 달려왔다.다행히 그녀의 소중한 딸은 약간의 피부 외상을 입었을 뿐 큰 문제가 없었다. 이 모든 건 차설아가 목숨을 바쳐 구한 덕이었다.원래 이현은 차설아를 똑바로 보기도 싫어했지만, 지금은 감사한 마음이 가득했다.“정말 고마워요. 만약 설아 씨가 아니었다면 우리 연아 어떻게 됐을지 몰라요. 연아의 생명의 은인은 곧 저의 생명의 은인이에요. 앞으로 제 목숨은 설아 씨 거예요.”차설아는 손사래를 쳤다.“별것 아니에요. 오늘 납치된 아이가 연아가 아니었어도 당연히 구했을 거예요. 하지만 이번 일로 이현 변호사님의 호감을 얻게 되었다면, 제가 목숨을 바쳐 구한 것이 충분한 가치가 있네요.”이현은 인정 사정 없이 말했다.“오해하지 마세요. 전 여전히 설아 씨에게 호감은 없으니까. 하지만 당신에게 보답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전 거절하지 않을 거예요.”“아...”차설아는 조금 난처했다.그리고 이토록 상대하기 어려운 이현 변호사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개성 있는 여자였다!이때 연아는 강하게 이현을 밀어내고 차설아의 뒤로 달려가 숨어 말했다.“누구세요? 엄마, 아빠가 모르는 사람이 날 안게 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전 아줌마 몰라요. 아줌마는 나쁜 사람이에요, 경찰 아저씨한테 잡아가라고 할 거예요.”“연아야...”이현의 개성 있던 표정은 눈에 띄게 슬퍼졌다.친딸에게 나쁜 사람 취급을 받고 또 경찰에게 잡혀가야 한다니, 이건 친엄마인 이현에게 커다란 상처였다.차설아는 연아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했다.“연아야, 이 아줌마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방금 너를 얼마나 걱정했다고 그래. 너무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마침내 쇼핑몰은 평온을 되찾았다.차설아는 연아의 목을 보고 걱정스러운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상처가 깊지는 않지만 붕대를 감는 게 좋겠어. 병원으로 가자.”차설아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성도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아 속으로 화가 났다.이 녀석은 정말 이기적이고 냉혈하고 무자비한 인간이다. 이렇게 큰일이 일어나고, 생사를 같이했는데, 이렇게 가버리다니...차설아는 연아를 데리고 쇼핑몰 입구로 가서 택시를 잡으려 했다. 성도윤의 익숙한 은색 고급차가 천천히 그녀들 앞에 다가와 멈춰 섰다.‘그래도 인간이라고 가지는 않았네!’차설아의 찌푸린 얼굴이 마침내 펴졌다.그녀는 뒷좌석의 문을 열고 연아와 차례로 올라탔다.성도윤은 운전석에 앉아 선글라스를 낀 채 차갑게 말했다.“연아만 남기고, 당신은 내려.”“뭐?”차설아는 표정이 일그러졌다.이 남자는 30도가 넘는 날씨에, 어떻게 이렇게 냉랭한 말을 내뱉을 수 있을까?“이렇게 더운 날씨에, 방금 그런 일을 겪었는데, 날 차에서 내쫓는다고? 날 죽이려는 속셈이야?”차설아는 차 문을 잡고 이치를 따졌다.“죽는다고?”성도윤의 얇은 입술은 차가운 곡선을 그리며 차갑게 말했다.“방금은 죽지 못해서 안달 났잖아. 그렇게 살고 싶은 욕망이 있어 보이지는 않던데? 당신 소원대로 해주는 거야!”“성도윤!”차설아는 화가 나서 이를 갈며 피를 토할 지경이었다.차설아는 이 남자의 생각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방금 용기를 내어 많은 사람을 구했는데,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오히려 비꼬고 있었다.“성도윤, 설마 나 질투하는 거야?”“당신을 질투해?”성도윤은 눈썹을 살짝 찡그리고, 여자의 뜻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차설아가 말을 이어갔다.“방금 내가 쇼핑몰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서, 당신이 무능한 사람처럼 보여서... 그래서 날 질투하는 거야?”“...”그의 무표정한 얼굴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화가 나서 웃음이 났다.차설아는 역시 생각이 이상한 사람이었다.그
차는 근처 병원에 도착했다.의사는 연아의 상처를 처리해 주고, 성도윤과 차설아를 보며 말했다.“단순한 찰과상일 뿐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물에 닿지 않도록 주의하고, 담백한 음식과 매운 음식은 삼가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연고를 바르시면 됩니다.”“다행이네요.”차설아는 마침내 마음이 놓였고, 연아의 손을 잡고 말했다.“연아야, 미안해. 언니가 부주의해서 널 잘 돌보지 못해서 나쁜 아저씨한테 잡혀가게 만들었어. 언니 용서해 줄 거지?”연아는 눈물을 가득 머금은 큰 눈을 깜박이며, 어른처럼 차설아의 머리를 쓰다듬고 귀엽게 말했다.“언니, 바보예요. 언니는 이렇게 귀엽고, 용감하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구했으니, 연아가 당연히 용서해야죠.”그리고, 옆에 있는 빙산처럼 차가운 성도윤을 보며 물었다.“도윤 오빠, 우리 언니 너무 귀엽지 않아요? 엄청 용감하죠?”성도윤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귀여움이나 용감함은 모르겠고, 충동적이고 머리가 나쁜 건 알겠네.”성도윤은 여전히 쇼핑몰에서의 일 때문에 심장이 벌렁거렸다.만약 그 중년 남자의 칼이 조금 빨랐거나, 차설아가 폭탄을 제거하지 못했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이왕 병원에 왔으니, 당신도 머리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검사받아 봐.”성도윤은 말을 마치고, 진지하게 의사를 보며 말했다.“이 여자도 검사해 주세요.”여기까지 들은 차설아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정교하고 작은 얼굴로 화가 나서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성도윤, 적당히 해! 사람이 목숨을 구해줬더니,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계속 비꼬고 있어? 대체 무슨 생각이야? 어쩌면 사람이 그렇게 인정머리가 없어? 6살짜리 애보다도 못 해!”성도윤의 그녀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잘생긴 얼굴은 아무 표정 없이 의사를 향해 계속 말했다.“철저하게 검사해 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이상이 있는 것 같아요.”방금 쇼핑몰에서 중년 남자와 대치할 때, 차설아는 상처를 입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성도
그렇다! 분명 목적이 따로 있을 것이다!다음날, 성운 법률 사무소.성우는 자신의 눈을 비비며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이현 변호사가 3일도 안 되어 차설아에 의해 정복되었다.계약 해지 수속을 밟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단독 사무실에 앉아 사무소의 사건을 맡고 있었다.“대단해요, 대표님, 대단하세요.”성우는 차설아의 사무실로 들어감 참지 못하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차설아는 손에 든 서류를 열심히 살펴보며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성우 변호사 한가해요? 수중에 사건이 없어요? 몇 개 더 나눠줄까요?”“아니요, 아니요.”성우는 손을 흔들며 숭배하는 눈빛으로 차설아의 주위를 어슬렁거리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대표님, 어제 백화점에서 용감하게 폭탄을 해체하는 장면을 우리 직원들도 모두 봤어요. 너무 멋져요. 대체 어디서 배운 기술이에요? 혹시 숨겨진 신분이 있는 건 아니에요? 예를 들면 국정원 비밀 요원 같은?”차설아는 어이없다는 듯 성우를 보더니 말했다.“제 할아버지는 당시 이름을 떨쳤던 차무진 대장군이세요. 폭탄 해체 같은 기초적인 기술은 유치원 때 거의 다 배웠어요.”“와, 대단하네요.”성우는 눈을 반짝이며 감탄했다.“우리 대표님이 대장군의 손녀라니! 그럼 폭탄 해체 말고 다른 것도 할 줄 알아요?예를 들면 격투기나 총 해체 같은 기술?”“그 정도는 눈 감고도 해요.”차설아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다소 오만하게 말했다.“만약 직원들도 배우고 싶다면, 시간 날 때 가르쳐 주죠.”“좋아요. 저희 배우고 싶어요.”갑자기 사무실 문이 밖에서 엿듣는 직원들에 의해 열렸고, 전 직원들이 기대하는 얼굴로 서 있었다. 차설아를 그들의 신으로 여기는 눈빛이었다.직원들이 처음에 차설아에게 복종하지 않은 건, 성도윤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차설아에게 완전히 매료되었고, 그녀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도 있었다.회사의 대표가 대장군의 손녀이고, 폭탄 해체는 물론, 총기 해체, 게다가 격투기까지 할
“그렇게 하죠!”차설아는 이현의 계획을 듣더니 흥분에 겨워 두 눈을 반짝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이현 변호사님은 역시 다르시네요. 이렇게 어려운 사건도 돌파구를 찾으시다니. 이 법률사무소를 쟁취하길 잘했네요!”“세 분의 변호사님 덕분에 그 어떤 분야에서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온 해안시에서도... 아니, 온 세상이 다 내 거인 것 같아요.”“보스, 너무 들뜬 거 아니에요? 그나저나 노력하면 해안시 3, 40%는 보스 걸로 만들 수 있겠지만요.”차설아는 미간을 구기더니 불만을 드러냈다.“왜 겨우 3, 40%인 거예요? 나머지 6, 70%는요?”“생각해 보면 모르겠어요?”성우가 차분한 얼굴로 차설아에게 찬물을 끼얹었다.“나머지 6, 70%는 당연히 보스의 전 남편, 그리고 저희 전 보스였던 성도윤 대표님 거죠.”성씨 가문은 해안시 8대 가문 중 서열 1위였다. 나머지 일곱 개의 가문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차씨 가문이 다시 옛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수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했다. 그래서 3, 40%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이때, 카리스마 있는 이현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시작도 하기 전에 주눅이 들 건 없죠... 이 소송에서 이길 수만 있다면 앞으로 성씨 가문은 차씨 가문의 돈벌이 도구로 쓰일 거예요. 그럼 차씨 가문이 성씨 가문을 따라잡는 게 아예 가능성 없는 일은 아니죠.”“그러게 말이에요. 예전에 우리 차씨 가문은 성씨 가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문 가문이었어요. 단지 차씨 가문은 잘못된 길을 걸어 많이 뒤떨어졌을 뿐이에요...”차설아가 말하고는 한숨을 푹 쉬더니 단호하게 말했다.“나 차설아는 차씨 가문의 유일한 핏줄로서 더는 가문이 잘못된 길을 걷게 하지 않을 거예요.”성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두 사람 정말 너무 순진한 거 아니야? 소송 하나로 나락 갔던 차씨 가문이 어떻게 실력이 가장 막강한 성씨 가문을 쫓아갈 수 있겠어? 너무 일을 쉽게 생각하
강진우의 말에 분위기는 삽시에 무거워졌다.사도현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그래도 사랑하느니 마느니 얘기라도 할 수 있잖아. 나는 그런 고민조차도 없다고. 난 여자를 사랑하지 않고 오로지 자유만을 사랑해. 그 빌어먹을 소송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난 앞으로 자유도 없을 거야!”말을 마친 그는 잔에 들어있는 술을 쭉 들이켜고 박수를 치더니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됐어. 우리 세 사람 모두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고. 언제까지 분위기를 축 처지게 만들 거야? 재미있는 거 할래?”강진우가 흥미진진하게 물었다.“뭔 재밌는 거?”“묵찌빠 같은 거 말이야. 진 사람이 무조건 벌칙 받는 거 어때?”“재미없어.”성도윤이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별 흥미가 없는 모양이었다.하지만 그는 갑자기 뭔가 떠올랐는지 다시 말했다.“보리보리쌀은 어때?”“그래, 난 다 돼.”“그럼 보리보리쌀로 해.”성도윤은 갑자기 흥미를 보였다.전에 그는 번마다 차설아에게 졌었다. 그래서 이 기회를 빌려 자기 게임 실력이 정말 뒤떨어지는지, 아니면 차설아가 너무 잘하는 것인지 검증하고 싶었다.그렇게 세 사람은 차례대로 게임을 시작했다.아니나 다를까, 좀처럼 놀러 나오지 않는 워커홀릭 성도윤이 꼴찌로 되었다.강진우와 사도현은 손쉽게 그를 이겼다.게임은 게임이니 성도윤은 두 사람이 준 벌칙을 달게 받을 생각이었다.“내가 먼저 할래!”사도현이 말했다.“도윤 형, 지금 휴대폰으로 당장 차설아한테 전화를 걸어서 최소 10분 이상 얘기해.”“뭐야? 재미도 없고!”성도윤은 바로 거절했다.하지만 사도현은 이대로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쉴 새 없이 옆에서 쫑알쫑알 시끄럽게 굴곤 했다.“전화하는 것 가지고 그래? 이것도 못한다니 도윤 형 겁먹은 거 아니야?”사도현의 도발에 성도윤은 바로 휴대폰을 꺼내 차설아에게 전화를 걸었다.결과는 뻔했다. 그는 여전히 차설아의 블랙리스트에 있어 전화가 전혀 연결이 되지 않았다.“푸하하하하!”이것이 바로 그들이 원하는
여인은 청순하고 앳된 얼굴에 똘망똘망한 큰 눈을 가지고 있었다. 사회 초년생 여대생과도 같은 풋풋한 모습을 보였다.세 사람은 그 여인이 바 앞에 앉을 때까지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사도현은 성도윤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도윤 형, 운이 좋네. 저 여자애 엄청 괜찮아 보이는데? 전에 내가 벌칙에 걸렸을 때에는 얼마나 불운했는지 알아? 덩치 큰 형님 아니면 4, 50대 아줌마를 만났었다고. 멍해서 뭐해? 얼른 가지 않고.”강진우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이 여자애 괜찮아 보이는데? 그리고 설아 씨 얼굴도 있는 것 같아. 성격은 설아 씨보다 훨씬 부드럽겠지? 가서 춤 한 번 추자고 해, 거절하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야.”“...”성도윤은 입술을 씰룩거리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흰 치마를 입은 여인을 주시하고 있었을 뿐이다.그녀는 누굴 기다리고 있는지 혼자 바 앞에 앉아있었다. 표정은 어색해 보였는데 아마 이런 곳은 처음인 듯해 보였다.청순하고 순진한 그녀의 모습에서 차설아가 보인 건 사실이었다.물론 예전의 차설아였다.성도윤은 자리에서 일어서고는 늘씬한 다리로 성큼성큼 여자애에게 다가갔다.그는 워낙 존재감이 뛰어났고 또 카리스마가 있었기 때문에 여자애는 처음부터 그를 눈여겨봤다.그가 점점 가까워지자 여자애도 긴장했는지 볼이 발그레해졌고, 그러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는 다급하게 음료수만 들이키고 있었다.“혼자 왔어요?”성도윤이 여자애를 내려다보며 알 수 없는 얼굴로 물었다.“아, 그게... 저한테 물어보시는 거예요?”여자애는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들더니 황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자기가 이렇게 잘생기고 훤칠한 남자에게 플러팅당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여자애의 반응이 귀여워 성도윤은 눈썹을 치켜들었다.그는 어쩐지 자꾸 예전의 차설아가 떠올라 입꼬리를 씩 올리고는 말했다.“제가 말 거는 게 싫어요?”“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말 거는 거 좋아요...”여자애는 이런 설명이 가당치 않다고
차설아도 오늘 흰 치마를 입고 있었다. 화장기 없는 담백한 얼굴에 부드러운 머리카락은 어깨 한쪽에 넘겨 있었는데 청순함은 물론, 더 치명적인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그녀는 입꼬리를 씩 끌어올리더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은 곳이네, 앞으로 모임은 계속 여기서 가져도 되겠어. 오늘 이현 변호사님이 내 후환을 해결했으니 제대로 축하해야지...”차설아는 말하는 중 배경수 남매의 표정이 심상치 않는 것을 발견했다.“언니, 저 사람 좀 봐봐. 잘생긴 저 사람, 언니 남편처럼 생겼는데?”배경윤은 차설아의 팔을 흔들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차설아는 배경윤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봤는데 역시 그녀의 말대로 훤칠하고 잘생긴 성도윤을 발견하게 되었다.배경수와 배경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어떻게 차설아를 위로할지 고민하고 있었다.하지만 차설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웃고는 말했다.“뭔 남편이야? 전 남편이지. 호칭 헷갈리지 마.”“누나, 만약 저 사람이 신경 쓰인다면 우리 장소 바꿔도 돼. 거긴 어때...”“왜 장소를 바꿔야 하는데?”차설아는 턱을 치켜들고는 우아한 백조처럼 그들의 앞을 지나가며 말했다.“이 클럽이 무슨 성도윤이 차린 것도 아닌고. 저 사람도 여기서 놀 수 있는데 우리는 왜 못 놀아?”“맞아, 우리가 더 신나게 놀아야지!”배경수는 차설아와 배경윤을 이끌고 미리 예약한 자리에 앉았다.세상에 이런 우연이 있을까, 그들의 자리는 마침 성도윤의 맞은편에 있었다.이 클럽에서 가장 비싼 두 VIP 자리였다.강진우와 사도현도 차설아를 발견하고는 어색한 얼굴을 보이더니 차설아와 인사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차설아는 술잔을 그들을 향해 치켜들었다. 우아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으니 분위기는 차설아의 완승이었다.강진우도 허공에 대고 차설아와 잔을 부딪쳤다. 그는 이 상황이 점점 흥미로워졌다.사도현은 차설아의 인사를 무시하고는 강진우에게 말했다.“진우 형, 차설아한테는 왜 인사를 하는 거야? 허공에 대고 잔까지 부딪쳐? 왜 저렇게 허
이들은 어제저녁 약속한 대로 섬 근처에 있는 청정지역에서 스토클링하기로 했다.이때 감독 최빈이 말했다.“이 섬은 모양이 하트로 되어있어 하트섬이라고 불리는데 물이 맑아 산호초와 열대 물고기를 많이 볼 수 있을 거예요. 다들 오늘 운이 좋으면 하트섬 특유의 야맹주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보던 밤이면 빛이 나는 그런 야맹주요.”“정말 야맹주가 있는 거예요?”배경윤이 이번 스노클링이 점점 더 기대되었다.사실 그녀는 일찍 하트섬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섬 중앙에는 고가의 진주가 들어있는 천연 조개가 많다고 했다. 최빈이 언급한 야맹주는 그저 전설일 뿐이었다.전설 속에서는 야맹주를 찾은 사람이 평생 행복할 거라고 했다.신난 배경윤은 야맹주를 찾아서 차설아한테 선물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 존재하는지, 아니면 호객행위인지 몰랐다.“당연히 있죠. 수년 전에 섬에서 살던 분들이 발견했대요. 찾을 확률은 낮지만, 없는건 아니에요.”최빈이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했다.“그럼 뭘 기다려요. 저희 얼른 가요...”조급해 난 배경윤이 이때 대담하게 제의했다.“저희 스노클링하지 말고 아예 다이빙하는 거 어때요? 6미터 가까이 되는 그런 다이빙을 하면 야맹주를 찾을 수 있는 확율이 더욱 높지 않을까요?”“좋아요.”사도현이 손을 들면서 말했다.“스노클링을 해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다이빙해야 얻고 싶은 걸 얻을 수 있죠.”“저도 좋아요. 저는 폐활량이 좋아서 물속에서 산소통이 없어도 몇 분씩이나 있을 수 있다고요.”하늘도 찬성의 의미도 손을 들었다.올림픽 금메달 수영선수로서 물을 전혀 무서워하지도 않았다.오직 진찬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찬영 씨는 스노클링하실 거예요? 아니면 다이빙하실 거예요?”최빈이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진찬영에게 물었다.“저는 경윤 씨랑 같은 걸 할게요.”진찬영의 표정이 안 좋았던 것은 전에 중이염 수술을 받은 적 있어 수압을 견디지 못해 너무 깊게는 내려가지 못했다. 5미터
배경윤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머리를 긁적거렸다.“급할 필요 없어요. 아직 시간은 많아요. 어제저녁 하늘 씨를 선택한 것은 저랑 사도현 씨의 모순을 와해시키려고 그랬다는 거 알아요. 그런데 오늘 저녁은 경윤 씨 마음에 따라 선택하고 싶은 사람을 선택했으면 좋겠어요.”진찬영은 배경윤한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계속 지금처럼 애매모호하지 말았으면 했다.이런 명분 없는 사이가 싫기도 했고, 사도현의 맹렬한 공격하에 배경윤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도 했다.그래서 하루빨리 결정짓고 싶었다.“알았어요.”배경윤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저녁은 제 마음에 따라 더는 흔들리지 않을 거예요.”오늘 아침 진찬영과 함께 잠깐 아침햇살을 만끽하면서 롤러코스터처럼 기복이 심한 생활이 아니라 평온한 생활을 기대했다.배경윤과 진찬영이 함께 하산할 때, 사도현도 마침 기상했다.사도현은 지금까지 스코어가 가장 높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배경윤과 방을 바꾸기로 하고 짐을 배경윤의 바다뷰 별장으로 옮기기로 했다.복식 별장에는 방이 네 개나 있었고, 모두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속으로는 배경윤이 상냥하게 대해준다면 기꺼이 방을 하나 내어주겠다고 했다. 두 사람이 같은 지붕 아래에 있는 모습만 상상해도 기분이 좋았다.입이 귀에 걸려있을 때, 배경윤과 진찬영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웃으면서 걸어오는 것이다.“어디 갔었어요?”사도현의 안색은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제가 어딜 갔든 보고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배경윤이 미간을 찌푸린 채 냉랭하게 말했다.“그러다 저를 놓칠 수도 있어요. 지금 경윤 씨한테 방을 하나 내어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말이죠...”사도현이 턱을 만지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지금, 이 상황에서 할수 있는 가장 진지한 말이었다.배경윤은 어이가 없었다.“유치하긴. 어차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디서 지내든 상관없어요. 도현 씨한테는 천장에 별이 가득 붙어있는 저 방이 어울릴 것 같
다음날.아침햇살이 비추는 섬은 몽롱하고 매력적이었다.아침 조깅하는 습관 있는 배경윤은 다들 자고 있을 때 이미 일어나 뛰고 있었다.산 주위를 따라 2킬로 정도 뛰면서 땀에 흠뻑 젖은 그녀는 개운한 느낌이었다.산 중턱에 있는 전망대에 서서 파란 바닷가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좋은 아침이에요.”배경윤이 기지개를 켜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뒤돌아보았더니 진찬영이었다.“이런 우연이. 찬영 오빠도 조깅하러 오셨어요?”진찬영을 향해 손을 흔드는 그녀의 얼굴은 자기도 모르게 발그레해졌다.어제저녁 진찬영이 대놓고 고백하는 바람에 두 사람 사이의 장벽이 무너져 이제는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우연이 아니라...”진찬영은 오늘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살짝 가르마를 탄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어 청춘 로코물에 나오는 여주인공이 잊지 못하는 킹카처럼 보였다.그는 난간을 잡고 옆모습으로 의미심장하게 배경윤을 쳐다보았다.“저번에 경윤 씨가 조깅하는 습관이 있다고 들어서... 일부러 만나려고 온 거예요.”배경윤과 이곳에서 만나려고 그녀보다 한 시간이나 더 일찍 일어난 것이다.그때는 아직 날도 밝지 않았던 때였다. 그는 혼자서 산 중턱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와 하늘이 서서히 물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세상이 참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속으론 배경윤과 함께 이 경치를 보면 얼마나 좋았겠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배경윤이 흔들린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제가 이 코스를 달릴지 어떻게 알았어요? 그러다 못 만나면요?”“만나지 못해도 아쉬운 대로 아름다운 경치를 봤잖아요.”진찬영은 고개돌려 전방에 있는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부드럽게 말했다.“저는 어떤 일이든 결과를 바라지 않아요. 과정만 아름다우면 된 거예요. 그리고 결국엔 경윤 씨를 만났잖아요.”배경윤은 잘생긴 그의 옆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그렇다. 결과보다는 과정만 아름다우면 되었다.이 부분에서는 진찬영과 생각이 똑
“에헴!”하늘을 신경 쓰지도 않던 사도현은 두 사람이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길래 질투심을 느꼈다.하늘도 그제야 선을 넘었다는 것을 눈치채고 바로 입을 닫으면서 자세를 고쳐잡았다.“죄송해요. 경윤 씨, 저는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 다른 사람을 선택해 보세요.”“그게 뭐 어때서요? 어차피 저희 서로 선택하는 과정이잖아요. 하늘 씨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과 셋이 함께 스노클링하면 되잖아요. 둘이든 셋이든 저는 상관없어요.”배경윤이 웃으면서 말했다.그녀는 하늘이 컨트롤하기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거기다 제일 안전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진찬영에게 폐를 끼치지도 않고 사도현도 어쩔 수가 없었다.“그래요? 경윤 씨는 정말 내일 아침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과 함께 스노클링할 수 있는 거예요?”하늘은 억울한 강아지처럼 순진한 표정으로 배경윤을 쳐다보고 있었다.“그럼요. 저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에요. 3각 구도는 제일 안정적이니까요.”배경윤이 익살스럽게 말했다.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입이 자기 말을 듣지 않았다.“그래요. 그러면 내일 경윤 씨, 저, 그리고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 세 명이 함께 스노클링하는 거예요. 마음이 변하면 안 돼요.”“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빠지는 일이 없을 거예요. 제가 빠지면 평생 짝을 찾지 못할 거예요.”배경윤은 하늘에 대고 진지하게 맹세했다.이때 하늘이 진지하게 말했다.“사실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은 사도현 씨에요. 그리고 오늘 모든 사람 앞에서 사실대로 말했고요.”사도현이 눈썹을 움찔하더니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배경윤을 쳐다보았다.“저희 내일 봐요.”‘왜 이렇게 된 거지?’배경윤은 흐뭇한 표정의 사도현을 보면서 그가 일부러 함정을 파놓았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바로 이때, 진찬영이 입을 열었다.“3각 구도가 안정적이긴 하지만 재미가 없잖아요. 저도 끼워주시면 안 돼요?”진찬영은 사도현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사도현을 쳐다보았다.“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분은 배경윤
“처음 그대를 만났을 때 다부진 몸매에 끌려 그대를 쭉 지켜보게 되었어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그대의 모습을 보면서 심장이 떨려왔어요. 자신감이 넘치는 그대가 유독 빛나 보였거든요. 그대는 정말 멋진 사람이에요.”하늘은 배경윤이 쓴 편지를 천천히 읽으면서 진찬영을 힐끗 쳐다보았다. 남성 참가자 중에서 진찬영이 텔레비전에 가장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진찬영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앉아 있었다. 사도현은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쥐었고 당장이라도 한 대 때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첫인상 1위가 누구냐고 물으면 그대라고 하고 싶어요. 하늘 씨, 앞으로 우리 잘 지내봐요. 하늘 씨랑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요. 하늘 씨의 마음도 궁금해요. 단둘이 얘기 나누고 싶어요.”편지를 다 읽은 하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늘은 부끄러워하면서 머리를 긁적였고 배경윤을 쳐다보면서 물었다.“경윤 씨, 언제부터 저한테 호감이 생긴 거예요?”하늘을 포함한 게스트들은 전부 두 눈을 크게 뜨고 배경윤을 쳐다보았다.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배경윤은 사도현, 진찬영이 아닌 뜬금없는 하늘한테 고백했던 것이다.[지금 사람 마음 갖고 장난하는 거야? 거짓말하지 마. 누구한테 마음이 있는지 다 보이는데 왜 저러는 거야?][이거 대본 맞지? 대본의 냄새를 맡았어. 제작진한테 너무 실망이야.][대본이든 말든 나는 사도현과 배경윤이 이어지길 기도할 거야. 두 사람 진짜 잘 어울리잖아. 이러다가 진짜 이어져서 결혼할 수도 있어.][결혼이라니, 너무 앞서간 거 아니야? 사도현이 혼자 짝사랑하는 것 같아. 배경윤은 진찬영을 더 좋아한다고!]네티즌은 댓글 수백 개씩 달면서 열렬하게 토론했다. 진찬영의 평온한 얼굴에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사도현도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사도현은 하늘을 쳐다보면서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내가 열렬하게 구애했는데도 하늘 씨한테 졌어요. 정말 아쉬워요.”“사도현 씨, 제 말 좀 들어봐요. 경윤 씨가 장난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래요. 저는 오늘 경윤 씨랑
배경윤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진찬영은 배경윤이 손을 아무리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동안 꾸준하게 좋아했던 연예인이기도 했다.배경윤은 그동안 진찬영과 지내면서 연예인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매력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열정적인 팬에서부터 진찬영을 좋아하는 여자가 되었다.가끔 진찬영과 손을 잡고 천천히 늙어가는 평화로운 삶을 그리기도 했었다.진찬영은 자신을 향해 뻗은 배경윤의 손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불쾌함을 전부 씻어버리고 손을 잡으려고 했었다.그런데 이때 사도현이 갑자기 나타나서 배경윤의 손을 잡았다.“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 밤에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아있으니 아무도 빠지면 안 된다고 했어요.”말을 마친 사도현은 진찬영을 힐끗 쳐다보고는 씩 웃었다. 그리고 배경윤을 데리고 게스트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이 손 안 놔? 누구 마음대로 내 손을 덥석 잡는 거야? 때리기 전에 놔줘.”배경윤은 살기가 넘치는 눈으로 사도현을 쳐다보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당장 사도현을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었다.사도현은 진찬영과 배경윤이 한 발짝 더 가까이 가려고 하면 어김없이 나타나 훼방했다.“내가 잡고 싶어서 잡은 줄 알아? 제작진이 너를 데리고 오라고 했어.”사도현은 게스트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배경윤을 데리고 왔다. 그러고는 사회자 최빈을 향해 말했다.“다 모인 것 같으니 시작하죠.”최빈은 뒤쪽에 서 있는 진찬영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찬영 씨, 얼른 이쪽으로 오세요. 곧 고백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질 거예요.”>은 매일 밤에 게스트들이 모여 앉아 호감이 있는 사람한테 진심이 담긴 편지를 써야 했다. 다 쓴 편지는 추첨함에 넣고 제작진이 지목한 게스트가 나와서 뽑은 편지를 읽으면 되었다.낯부끄러운 시간이었지만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 게스트들의 마음이 어디로 향했는지 아주 궁금했다.마음을 편지에 담아 공개하기에
배경윤은 초가집의 뒷문으로 나온 뒤에 일부러 바닷가를 돌아서 바비큐 파티가 열린 곳으로 향했다. 게스트들은 배경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반가워했다.“경윤 언니, 오셨어요? 언니가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경윤 언니가 와서 너무 기뻐요.”장유빈이 머무는 숙소는 배경윤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장유빈은 바비큐 파티에 같이 참가하자고 했지만 배경윤은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못내 아쉬웠던 장유빈은 배경윤을 발견하고는 신나서 벌떡 일어났다.“모두 참가했는데 저만 빠지면 그렇잖아요. 저만 유별난 것도 아니고요. 아무튼 늦게 와서 죄송해요.”배경윤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이제라도 와줘서 고마워요. 경윤 씨, 이것 좀 봐요. 찬영 오빠가 경윤 씨를 위해서 쉬지 않고 고기만 구웠어요. 경윤 씨가 고기를 그렇게 좋아한다더라고요.”소수민은 불판에 올려진 고기를 보면서 부러운 어조로 말했다.“같은 여자라도 어떤 남자를 만나는지에 따라 달라요. 저희는 먹고 싶은 걸 구워주는 사람이 없어서 직접 구웠어요. 그런데 경윤 씨가 고기를 좋아하니까 찬영 오빠가 양념 고기, 불닭 소스 고기, 허니 고기를 준비했대요. 먹음직스러워서 침이 저절로 고였어요.”배경윤은 진찬영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한편으로 고마웠고 다른 한편으로 미안했다.“찬영 오빠, 고기를 굽느라 고생 많았어요.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돼요. 제가 오빠를 위해서 뭐라도 할게요.”배경윤은 진찬영의 옆으로 걸어가서 같이 고기를 굽고 양념을 발랐다.“조심해요!”진찬영은 튀어 오르는 숯불을 막아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숯불은 그대로 진찬영의 손에 튀었다.“찬영 오빠, 괜찮아요? 이 고귀한 손으로 왜 막은 거예요! 흉이 지면 안 되니까 얼른 가서 약부터 발라요.”소수민은 입을 틀어막고 기겁하더니 이내 소리를 질렀다.“찬영 오빠, 저...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오빠가 다쳤어요.”깜짝 놀란 배경윤은 어쩔 줄 몰라 했다.“괜찮아요. 덴 것도 아
사도현은 배경윤의 귓가에 속삭였다.“지금 가서 문을 열어주면 어떻게 될까?”“그러지 마!”배경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사도현의 팔을 꼭 붙잡았다. 사도현은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이상한 소리라도 낸다면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입 다물고 있어.”배경윤은 진찬영한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진찬영과 시작해 보지도 않고 끝나기에는 너무 아쉬웠다.뻔뻔스러운 감이 있긴 하지만 인성은 늘 그렇듯 욕심이 끝도 없었다.“안에 누구 없어요? 없으면 문 열고 들어갈게요.”쾅!소수민은 문을 점점 세게 두드렸고 허술하게 지어진 초가집이 무너질 것 같았다. 벽이 흔들거렸고 먼지가 떨어졌다.배경윤은 사도현을 끌어안은 채 미간을 찌푸렸고 이 난감한 상황이 빨리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사도현은 잔뜩 긴장해 있는 배경윤이 우스웠다.어쩐지 기분이 언짢았던 사도현은 일부러 배경윤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혔다.“하하하!”배경윤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고 말았다. 문밖에 서 있던 진찬영과 소수민은 그 소리를 듣게 되었다. 소수민은 큰 소리로 물었다.“계세요? 화장실을 쓰고 싶은데 문을 열어주세요. 저기요!”배경윤은 입을 틀어막고는 사도현을 노려보았다. 사도현은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약을 올렸다.“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으니 다른 곳에 가봐요. 쉬고 있는 사람을 방해하면 안 되니까요.”진찬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알겠어요. 찬영 오빠는 참 다정해요.”소수민은 짜증이 밀려왔지만 진찬영과 같이 다른 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발걸음 소리가 희미해지자 배경윤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러고는 주먹으로 사도현을 마구 때리면서 말했다.“사도현, 너 진짜 미친 거지! 일부러 나를 난처하게 만들었잖아. 이러고도 네가 남자야?”“사람들은 이미 우리를 한 쌍의 커플로 보고 있어. 커플이 같은 침대를 쓰는 게 그렇게 부끄러운 일이야?”사도현은 굳은 표정을 하고서 배경윤을 내려다보았다. 배경윤이 진찬영의 목소리에 반응한 것이 마음에 걸렸고 신경이 거슬렸
“그, 그게...”배경윤은 입술을 깨물면서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배경윤은 사도현을 아직도 좋아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감정이 드는지도 몰랐다.‘내가 아직 좋아하고 있는 걸까? 그래도 설레는 순간은 있었어.’배경윤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매일 마음을 졸여야 하는 사도현보다 잔잔한 물결 같은 진찬영이 더 좋았다. 진찬영은 다정하고 친절해서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진찬영과 진지하게 만나서 결혼할 생각도 있었다.만약 이 프로그램을 통해 두 사람이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한다면 그대로 진찬영한테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싶었다.사도현은 빛이 나는 태양이라 열정적이고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다치는 건 결국 배경윤이었다.진찬영은 차가워 보이지만 어둠으로 모든 것을 품어주는 달이었다. 달을 바라보고 가까이하는 것만으로 행복해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도현아, 사실 나는...”배경윤은 심호흡하고는 솔직한 감정을 전달하려고 했다. 그런데 사도현은 이미 대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배경윤의 입을 막아버렸다.“읍!”배경윤은 또다시 사도현과 입을 맞추게 될 줄 몰랐다. 요트 위에서 나눴던 키스와는 달리 한편으로는 부드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운 입맞춤이었다.가볍게 부딪친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사도현은 두려워했고 비굴하게 보이더라도 배경윤한테 떠나지 말라고 빌고 싶었다.화가 나서 밀치려고 했던 배경윤은 손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가만히 쳐다보다가 더 가까이 다가가 입을 맞추었다.‘이 세상에 불쌍하고 가엾은 강아지 같은 남자를 마다할 여자는 없을 거야. 그저 불쌍해 보여서 어쩔 수 없었어.’두 사람은 서로를 껴안고 사랑을 퍼부었다. 몸이 달아올라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너의 대답이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아. 네가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사도현은 배경윤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도현아, 혹시 아까 그것도 작정하고 그런 거야? 너는 나를 너무 잘 알아. 나는 네가 미워!”배경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