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미안해...”사도현은 배경윤의 말을 듣고 시무룩한 표정을 짓더니 어린아이처럼 조심스럽게 말했다.“직원들은 내가 욕해도 신경 안 썼어. 그리고 욕해도 잘못한 것을 바로 잡지지 않으니까 일단 욕부터 하는 게 습관 되었나 봐.”“신경 쓰지 않을 리가 있어? 네가 폭력적으로 구니까 반항하지 못하는 거지!”배경윤은 사도현을 노려보더니 이마에 난 상처를 만지면서 소리를 질렀다.“난 널 만나고 나서부터 왜 이렇게 재수 없는 일만 생기는지 몰라.”“이리 와봐.”사도현은 배경윤의 손을 떼어내고는 이마에 난 상처를 보면서 울상을 지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김을 불어주더니 상처 위에 입을 맞추었다.“잠깐만 기다려줘. 나한테 연고랑 밴드가 있거든. 내가 연고 발라줄게.”사도현은 배경윤을 소파에 앉힌 뒤, 재빨리 서랍에서 약상자를 꺼냈다. 사도현은 평소와 다르게 무척 다정했고 상처에 연고를 천천히 바른 후에 밴드를 붙여주었다. “그만해. 나는 누구처럼 연약한 여자도 아니잖아. 조금만 지나면 아물 상처인데 뭘 굳이 연고까지 바르고 그래...”배경윤은 사도현한테 빠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할까 봐 일부러 도도하게 말했다. 사실 사도현이 이마에 뽀뽀해 준 뒤부터 자꾸 사도현한테 눈길이 갔고 당장이라도 사도현을 끌어당겨 키스를 퍼붓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나쁜 놈, 우린 이미 헤어졌는데 왜 애틋하게 쳐다보는 거야! 넌 태어날 때부터 바람둥이였구나.’소파에 앉아 있던 배경윤은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래서 사도현이 다가올 때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단단한 머리로 사도현의 턱을 들이받았다.“아!”사도현은 밀려오는 통증을 못 이기고 곡소리를 내면서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내 턱 어디 갔어? 뾰족하고 멋진 내 턱! 너무 아파서 사라진 줄 알았잖아. 아직 붙어있어서 너무 다행이야.’“시끄러우니까 입 다물어. 지나가는 사람이 들었으면 내가 널 때린 줄 알 것 아니야. 조용히 하라고!”배경윤은 턱을 부여잡고 소리를 지르는 사도현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배경윤은
“잔말 말고 이리 오지 못해? 안 아프게 해줄게!”배경윤은 미간을 찌푸린 채 사도현의 얼굴을 붙잡았다. 한 손으로 턱을 잡고 대학교 교양 수업 때 배웠던 턱관절 복원법을 회억하면서 힘을 주어 비틀었다.뚜두둑!“이제는 괜찮을 거야. 천천히 움직여봐.”배경윤은 손을 툭툭 털면서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짓고 말했다. 사도현은 천천히 턱을 움직였고 통증이 사라진 것을 보아 제대로 복원했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일부러 아픈 척했다.“아, 아파! 내 잘생긴 얼굴 이제는 어떡해? 경윤아, 네가 날 평생 책임질 거야?”“아직도 아플 리 없는데...”배경윤이 미간을 찌푸린 채 다가가더니 사도현의 얼굴을 다시 한번 붙잡았다.“내가 다시 해줄까?”“아, 아니! 이제는 아프지 않아.”사도현은 재빨리 옆으로 피했다. 한 번 더 배경윤의 손맛을 봤다가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하는 게 아니라 목숨마저 잃을 수 있었다. 배경윤은 사도현이 거짓말했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화를 냈다.“넌 좀 진지하게 굴면 안 돼? 나한테 장난치면 재밌어?”“재밌지!”사도현은 미소를 짓고는 씩씩거리는 배경윤한테 다가갔다.“넌 너랑 티키타카 하는 게 재밌어. 너 말고 다른 사람은 나한테 함부로 그러지 않거든. 너랑 헤어진 뒤에 날 약 올리는 사람도 없으니까 너무 지루하더라고...”“내가 네 웃음거리란 뜻이구나? 그리고 내가 없다고 해도 직원한테 화풀이하면 안 되지!”“그런 말이 아니잖아. 네가 날 화나게 했으니까 어쩌다 보니 직원한테 화풀이하게 된 거야. 사실 직원들이 이렇게 힘든 것도 다 너 때문이야. 네가 직원들을 힘들게 한 거라고! 직원들한테 사죄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사도현, 적당히 해.”배경윤은 사도현과 말싸움해서 이겨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아예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어차피 두 사람은 헤어진 사이이기에 사도현이 무슨 짓을 하든 배경윤과 상관없는 일이었다.사도현은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배경윤의 상처를 매만지면서 물었다.“그런데 갑자기
“울지 말고 내 말 좀 들어봐.”사도현은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고는 울먹이는 배경윤을 위로해 주었다.“네가 어떤 마음인지 잘 알아. 하지만 이 일은 네 생각처럼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아. 일단 윤설과 차성철은 만난 적도 없고 엮일 일도 없었어. 윤설은 목숨과 연예인으로서의 앞날을 잃을 각오까지 하면서 차성철을 해하려 들지 않았을 거야.”“하, 결국 너도 윤설 편이야?”배경윤은 사도현의 말에 당장 자리를 떠나고 싶었지만 사도현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배경윤은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말을 이었다.“그 의사가 수술 전에 윤설과 전화하면서 실수 없이 처리하겠다고 말하는 걸 들은 사람이 있어! 그런데도 너는 윤설이 그럴 이유가 없다면서 내 생각이 틀렸다고 하는 거야? 아니, 그 여자는 네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아! 넌 윤설을 그저 맑고 순진한 첫사랑으로 기억하고 싶은데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잖아.”“아니, 이번에는 네가 틀렸어.”사도현이 싸늘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난 윤설이 얼마나 이기적인 인간인지 누구보다 잘 알아. 그래서 윤설을 내 곁에서 떼어놓은 거야. 난 네가 이성적으로 누가 진정한 범인인지 잘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어.”사도현은 냉정하게 말했다. 이 상황에서 성형병원 의사한테 연락한 사람이 윤설이 아닌 다른 사람이더라도 사도현은 똑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배경윤은 그제야 굳었던 표정이 풀어졌다.“윤설이 범인이든 아니든 이 사고에 연루된 건 사실이야. 그럼 윤설을 찾아서 물어보면 되는 거 아니야?”사도현은 턱을 매만지면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나랑 같이 가자.”“왜? 내가 네 첫사랑한테 해코지라도 할까 봐?”사도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아니, 윤설이 널 해코지할까 봐 그래. 너처럼 솔직하고 단순한 사람을 괴롭히기 좋아하거든.”“내가 단순하다고?”“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보일 정도거든. 내가 네 옆에 있어서 안심이 될 것 같아.”사도현은 곧바로 관리팀한테 전화를 걸어 물었다.“윤설 스케줄을
사도현은 지프차를 준비했고 가기 전에 트렁크에 배경윤이 좋아하는 과일과 간식을 가득 사 넣었다. 배경윤은 대표가 되어서도 직접 움직이는 사도현을 보면서 설렜다.배경윤은 차에 기대서 사도현에게 티슈를 건넸다.“이미 헤어진 마당에 뭘 이렇게 잘해주고 그래. 난 네가 나한테 미련 남은 줄 알고 오해할 뻔했잖아!”배경윤은 장난하려다가 분위기가 싸해진 것을 눈치채고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장난이니까 오해하지 마. 난 헤어진 후에 전 남자 친구와 잘 지내는 사람 아니야!”“나도 아니야.”사도현은 차갑게 말한 뒤, 배경윤이 제일 좋아하는 과자 한 상자를 트렁크에 던졌다.쾅!‘화나고 짜증 나는데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안고 싶은 느낌이 들어. 이 짜릿함을 못 잊어서 사랑하는 거지.’두 사람은 차에 올랐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조수석에 앉은 배경윤은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차설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설아야, 몸은 어때? 성철 오빠는 괜찮아?”“신경과에서 제일 유명한 의사가 오빠 수술을 맡았어. 곧 깨어날 것 같아.”“그래, 정말 다행이야.”배경윤은 마음에 걸린 돌멩이가 내려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며칠 동안 연락 못 할 것 같으니까 밥도 잘 먹고 기운 차려야 해. 급해하지 말고 걱정하지 마. 성철 오빠 곧 깨어날 거야.”“왜? 어디 멀리 가는 거야?”“응, 촬영장 구경하러 다녀올게.”배경윤은 차설아가 걱정할까 봐 거짓말했다.“너도 고생 많았는데 푹 쉬어.”“우리 모두 수고 많았어. 곧 다시 만나.”두 사람은 30분 동안 얘기를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옆에서 듣던 사도현은 운전하면서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여자들은 어떻게 아무리 말해도 끝이 없을까?”“여자는 고급 동물이라 그래. 남자는 신체만 사람이고 사상은 여전히 동물처럼 본성에 따른다니까!”“아니, 왜 말이 갑자기 그쪽으로 튀어?”“내 말이 틀렸어?”배경윤이 말을 이었다.“너랑 성도윤은 둘 다 나쁜 놈이야. 품에 안은 여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여자를 뚫
진흙 길인 데다가 비가 내려서 사람이 걷기 어려울 정도로 질퍽거렸기에 차로 들어갈 수 없었다.“이럴 줄 알았어. 지금이라도 돌아갈까?”사도현은 진흙 길을 바라보면서 미간을 찌푸렸고 차를 돌리려고 했다. 어릴 적부터 온실 속 화초로 자란 재벌가 아가씨 배경윤이 이런 험한 길로 걸어가려고 할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안 가고 뭐 해?”배경윤은 고민도 없이 바지를 걷어 올리더니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사도현의 예상과 달리 배경윤은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이런 진흙 길에서 언제 또 걸어보겠어? 영화에서만 보던 길 위를 걸을 수 있는데 돌아가라니... 왔던 바에 진흙 길이 어떤지 직접 들어가 보겠어!”배경윤은 곧바로 신발을 벗어 던지고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진흙 길로 들어섰다.“아니, 너 정말 여자 맞아? 흙이 묻어서 더러울 텐데, 넌 괜찮은 거야?”사도현은 멀리까지 걸어간 배경윤의 뒷모습을 보면서 머뭇거렸다. 결벽증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맨 발로 질퍽한 진흙을 딛고 가려고 하니 어쩐지 속이 울렁거렸다.“거기서 뭐 해? 남자라는 놈이 약해빠져서는... 빨리 와! 진흙이 묻으면 나중에 씻으면 되는데 뭘 망설이는 거야?”배경윤이 100미터 정도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사도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머뭇거리는 사도현의 모습을 보고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예전에는 왜 저놈이 이렇게 약해빠진 놈인 줄 몰랐었지?’성별을 막론하고 사람이라면 나약한 면이 있을 수 있지만 배경윤이 아는 사도현과 지금 눈앞의 사도현은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사도현이 진흙 길을 맨 발로 걷지 못해서 쭈뼛거리자 배경윤은 콩깍지가 벗겨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저런 놈을 뭐가 좋다고 따라다녔는지 몰라. 난 남자 보는 눈이 없다니까.’“거기 약해빠진 분, 셋 셀 때까지 안 오면 나 혼자 갈 거야. 하나!”배경윤은 허리에 두 손을 올린 채 미간을 찌푸렸다. “너 딱 기다려! 그 마을에 도착하면 아주 혼을 내줄 거야. 지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해서 잠
“난 강아지가 제일 무섭단 말이야! 강아지가 벌써 여기까지 오지 않았겠지?”사도현은 배경윤의 뒤에 숨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키가 190센티미터나 되는 성인 남자가 드라마 속 청순가련 여주인공보다도 연약했다.배경윤은 입술을 깨문 채 겨우 웃음을 참더니 말했다.“우리 도현이 무서웠어? 괜찮아. 이 누나가 있는 한, 강아지는 널 어쩌지 못할 거야. 누나 따라 빨리 와야 해. 또 소리 지르면 강아지들이 한 번에 몰려올 거야.”배경윤은 사도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어린아이 달래듯 말했다. 두 사람은 손을 꼭 잡은 채 걷기 힘든 진흙 길을 걸었고 예능 >의 촬영 장소에 겨우 도착했다.“드디어 다 왔어! 드디어...”사도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았다. 지옥에서 도망친 것 같은 사도현의 모습에 배경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엄살 부리지 마. 외진 곳에 있는 마을이면 도시처럼 잘 닦인 길이 없을 수도 있어. 이런 마을에서 강아지와 진흙 길은 아주 흔한 거라고! 그렇게 무서워할 거면 왜 나 따라온 거야?”“그걸 몰라서 물어?”사도현은 강가로 가서 발에 묻은 흙을 씻었고 의미심장한 말을 뱉었다.“내가 할 일이 없어서, 시간이 남아돌아서 널 따라온 것 같아?”“그런 것 같은데?”배경윤의 말에 사도현은 어이가 없었다.“난 누가 또 칠칠치 못하게 물건을 잃어버리고 다닐까 봐 옆에서 보살펴 주려고 했어. 그런데 이 고생을 하고도 듣는 말이 죄다 잔소리라니... 잘해줘도 소용없나 봐. 나만 바보처럼 간이고 쓸개고 다 바쳤지!”“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 이곳으로 오는 동안 내가 널 보살폈어! 네가 소리 지르고 징징대지 않았으면 난 진작에 촬영 장소에 도착했을 거라고!”“그래. 내가 오지랖이 넓어서 너한테 민폐 끼쳤어. 정말 미안하다. 됐어?”사도현은 화가 솟구쳐 올랐다. 배경윤을 돕기 위해 모든 일을 뒤로 하고 직접 운전해서 마을까지 왔는데 배경윤한테서 고맙다는 말 대신 빈정 상하는 말만 듣게 되었다.
가수 진혁이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저는 더 이상 못 하겠어요. 데뷔해서 지금까지 이렇게 막무가내인 사람은 처음 봐요! 마을에서 마음 편하게 있으면서 힐링하는 촬영인데 윤설은 마을의 물도 마시지 않고 고급 브랜드 물만 마시겠다잖아요. 아니, 이 마을에 그런 물이 있을 리가 없는데 일부러 저를 난처하게 하려고 그러는 걸까요?”진혁은 요리를 맡았고 고정 멤버들의 입맛을 고려해서 맛있는 식사를 준비했다. 모두의 인정을 받으면서 ‘요리하는 섹시한 남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윤설이 투입되면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쌀이 덜 있었다거나 야채에 벌레가 있다면서 트집을 잡더니 고급 브랜드 물로 지은 밥이 아니면 입에 대지도 않겠다고 했다.“데뷔한 지 오래되었다고 기강 잡는 선배는 봤어도 이런 사람은 처음이에요. 지금은 사람들한테 잊혔을 수도 있지만 예전에는 저도 인기가 많은 가수였다고요! 그런데 저런 여자 때문에 촬영 분위기가 흐려지고 저의 요리가 지적받는 건 말도 안 돼요. 윤설이 하차하지 않으면 제가 하차하겠어요!”진혁은 책상을 내리치면서 씩씩거렸다. 진혁이 윤설을 못마땅해하다가 결국 하차하겠다고 하자 사회자 하은진이 나서서 말렸다.“진혁 씨, 그런다고 달라지는 거 없어요. 윤설은 윈스 엔터테인먼트에서 밀어주는 연예인이라서 갑자기 투입된 거예요. 그런데 내쫓겠다고 해버리면 윈스 엔터테인먼트와 적이 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윈스 엔터테인먼트는 연예계를 주름잡는 회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괜히 건드렸다가 소리 소문 없이 묻힐 바에는 가만히 있는 게 나아요.”“제가 듣기로는 윈스 엔터테인먼트에서 윤설을 버린 카드 취급 한대요. 이 예능에서 활약하지 못하면 영원히 묻힐 수도 있다던데요? 어차피 회사에서 버림받은 사람이니 내쫓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죠.”배우 강지훈도 윤설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잠시만요. 진정하고 제 말부터 들어봐요.”하은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윈스 엔터테인먼트 대표와 주주들이 윤설 대
진혁이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사 대표님, 바쁘시다고 들었는데 여기서 뵙게 되네요. 오늘 특별 게스트로 오신 거예요? 아니면 촬영 현장이 어떤지 보러오신 거예요? 제작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거든요.”촬영은 저녁쯤에 끝났기에 사도현이 특별 게스트로 온 것인지, 촬영 현장을 보러 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때 배경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윤설 씨를 찾으러 왔어요.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윤설 씨를요?”진혁은 윤설이라는 말에 표정이 굳어지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뱉었다.“윤설 씨 별명이 백설 공주잖아요. 공주님이 어떻게 이런 곳에서 지내겠어요.”“그게 무슨 뜻이에요? 그럼 윤설 씨는 다른 곳에 있다는 말이에요?”배경윤은 몇 시간 동안 차를 타고 진흙 길을 한참 걸어서 촬영 장소에 왔는데 윤설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를 수도 있었다.“지금은 다른 곳에 있지만 촬영이 시작되면 이곳에 나타날 거예요.”진혁이 차갑게 웃더니 말을 이었다.“그럼 지금 어디에 있어요?”배경윤이 계속해서 따져 물었다.“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호텔에 머물고 있어요. 이곳에 방이 많지만 공주님은 이런 누추한 곳을 싫어하거든요. 촬영이 끝나자마자 호텔로 달려갔어요. 아, 마을로 들어오는 길 중간부터 진흙 길이잖아요? 마을 사람에게 돈을 주고 업혀서 마을을 빠져나갔대요. 마을 사람들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좋아하더라고요.”“흠!”하은진이 진혁의 팔을 살짝 잡아당기면서 눈짓했다. 진혁 옆에서 가만히 있었다가는 괜한 불똥이 튈 수도 있었다.“윤설 씨는 더위를 잘 타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에어컨도 없고 씻기도 불편하니까 좋은 곳에서 쉬고 싶어 할 수도 있죠. 배우로서 컨디션을 제일 중요하게 여겨야 하니까요.”“하, 꼴에 연예인이라고 잘난 척하는 거잖아요. 뭘 또 그렇게 포장해서 얘기해요?”배경윤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그럼 윤설 씨를 만나려면 마을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뜻이네요?”배경윤은 진혁과 하은진한테 물었다.“맞아요. 지금 시간이 늦었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