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지훈이 놀란 얼굴로 참지 못하고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자신의 감정 문제를 굳이 석지훈에게 얘기하고 싶은 않은 진명은 그저 혼자서 술을 가득 따른 뒤, 또다시 벌컥벌컥 마셨다.“진 도련님, 이 술은 도수가 높아서 이렇게 마시면 금방 취해요.”석지훈이 다급하게 말렸다. 그는 진명에게 사연이 있을 거라고 짐작했지만 진명을 말을 하지 않으니 그도 별수가 없었다.“취하면 취하는 거죠, 취하면 모든 걸 다 잊을 수 있을 텐데, 잘 된 거 아닌가요?”“천천히 마셔요… 아닙니다, 제가 같이 마셔 드릴게요.”진명은 씁쓸하게 웃으며 계속 들이켰고 석지훈은 어쩔 수 없이 술잔을 들어 진명과 같이 마셨다.따르릉!바로 이때, 진명의 핸드폰이 울렸고 기분이 우울한 진명은 누구인지 확인조차 하기 싫었기에 받지 않았다.“진 도련님, 전화가 오셨어요.”석지훈의 말에 진명은 손을 내저었다.“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하지만, 상대방은 포기하지 않고 전화를 세 번이나 더 걸어왔고 귀찮아진 진명이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서윤정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여보세요, 윤정 씨, 무슨… 무슨 일이에요?”진명은 힘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방금 전에 마신 술기운이 이제 올라온 바람에 그의 목소리에도 취기가 묻어 있었다.“진명, 왜 계속 내 전화를 안 받아?”화가 잔뜩 난 서윤정이 진명에게 쓴소리를 하려던 찰나, 진명의 목소리에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말을 이어갔다.“진명, 왜 그래, 혀가 왜 꼬였어?”“별거 아니에요, 술집에서 술 마시고 있어요…”진명은 취기를 참으며 겨우 대답했고 서윤정은 들으면 들을수록 진명이 이상해 보였다.“어느 술집인데?”“블루문 술집에 있어요…”“그래, 그럼 거기서 날 기다려, 너에게 해줄 말이 있어, 지금 거기로 갈게!”대충 대답하는 진명의 말에 서윤정은 신신당부를 한 채 전화를 끊었다.전화가 끊기자 진명은 대수롭지 않게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고 석지훈에게 한잔 더 하자고 말을 걸었다.“석지훈 씨, 자, 더 마셔요…
물론 진명의 주량이 괜찮긴 편이지만 연속으로 술을 많이 들이켠 탓에 그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눈은 충혈된 채 많이 취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석지훈의 빠른 상황 판단으로 양주를 도수가 낮은 맥주로 바꿨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진명은 지금쯤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취했을 것이다!끽!이때, 뒤편에 있던 룸 문이 열리고 서윤정이 드디어 나타났다.“서윤정 씨, 오셨어요.”석지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방금 전에 진명과 통화를 했던 사람이 서윤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진명이 서 씨 가문과 인연이 깊다는 것도 잘 알고 있기에 얼른 몸을 일으켜 서윤정을 반겼다.주변을 쓱 훑던 서윤정은 룸 바닥에 널브러진 술병들과 테이블에 엎드려 취기가 오른 진명을 발견했고 깜짝 놀라서 물었다.“지훈 씨,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진명은 왜 저러고 있어요?”“자세한 건 저도 잘 몰라요… 진 도련님이 기분이 안 좋아 보이셨고 저한테 술 한잔 같이 하자고 하셨는데, 한 잔 두 잔 계속 마시다가 이렇게 됐어요…”석지훈은 난감하게 웃으며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알겠어요, 볼 일 보세요. 진명은 제가 케어할게요, 더 이상 술은 못 마시게 해야죠.”서윤정은 어두워진 얼굴로 대체 진명에게 무슨 일이 있기에 이 정도까지 술을 마신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네, 알겠습니다.”석지훈은 직원들을 데리고 룸을 나섰고 나오면서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룸 문을 닫아버렸다.이내 룸에는 진명과 서윤정 두 사람만 남았다. 서윤정은 진명에게 다가가 앉은 뒤, 테이블에 엎드려 있는 진명을 가볍게 툭툭 밀면서 말했다.“진명아, 일어나 봐, 너 대체 무슨 일이야?”“아린아, 제발 날 떠나가지 마…”해롱해롱한 진명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손을 뻗어 더듬거리다가 서윤정의 손을 덥석 잡았고 그녀의 손이 잡히자 진명은 그제야 안심되는 듯했다.“임아린?”진명의 말에 서윤정은 얼굴이 순간 어두워지더니 이내 모든 걸 깨달았다. 진명의 이런 퇴폐한 모습은 아무래도 임
진명은 서윤정의 말이 믿기지가 않아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았고 술에 취한 탓인지 반응이 무뎌진 그는 서윤정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되지 않았다.“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얼굴이 빨개진 서윤정은 그제야 자신의 말이 좀 심했다는 생각에 재빨리 말을 돌렸다.“진명아, 너와 임아린 씨는 왜 갑자기 헤어진 거야?”“그게…”한숨을 내쉰 진명은 착잡한 마음에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기에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서윤정에게 말해주었다.“임정휘 부자 너무한 거 아니야! 네가 임 씨 가문을 그렇게 여러 번 도와줬는데 고맙다는 말은 못 할망정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이건 해도 너무 하잖아! 임아린 씨도 그래, 나 같은 외부인도 너의 품행이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하고 절대 그런 비겁한 짓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아는데. 여자친구라는 사람이 너를 못 믿는 것도 모자라서 임 씨 가문의 돈과 세력을 노린다고 생각하다니, 정말 말도 안 되게 웃기네!”화가 치밀어 오른 서윤정은 진명의 편에 서서 대신 욕해 주었고 안색이 어두운 진명은 마음이 너무 착잡했다.“저도 아린이가 왜 저렇게까지 저를 못 믿는지 모르겠어요…”임정휘 부자의 비난에 비해, 임아린의 불신이 진명을 더 상심하게 만들었다!“진명아, 슬퍼하지 마, 너처럼 훌륭한 사람을 좋아해 줄 여자는 많아! 임아린 씨가 널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건 그 여자가 복을 발로 차버린 거야, 너무 신경 쓰지 마…”서윤정이 진명을 위로해 주었다.“날 좋아해 주는 여자가 많다고? 그럴 리가, 난 네가 말한 것처럼 훌륭하지 않아!”흠칫하던 진명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했다.고아인 탓에 진명은 어릴 때부터 수많은 비웃음을 받고 눈칫밥을 먹었고 예전부터 여자애들은 그를 피하기 바빴지 그를 좋아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왜 없어! 예를 들면 나, 나도 널 좋아해! 저번에 내가 원기단을 실수로 과다 복용한 탓에 네가 날 구해준다고 목숨까지 잃을 뻔했잖아, 그때부터 나도 모르게 너를 좋아하게 된 거 같아…”서윤정은 입술을 깨문 채
당황한 진명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했다.“왜 안 돼? 나와 임아린 씨는 똑같이 강성 시 4대 미인에 속해, 물론 임아린 씨가 나보다 순위가 높지만 외모나 집안 배경으로 보았을 때 난 그 여자보다 못한 게 없어! 임아린 씨는 받아줄 수 있으면서 왜 나는 안 되는데?”진명이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거절할 줄 몰랐던 서윤정은 창백해진 얼굴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의 외모와 가정 형편으로 강성 시의 수많은 부잣집 도련님과 성공한 청년들은 꿈에서도 그녀를 원하는데, 난생처음 남자에게 고백하는 지금, 이렇게 단호하게 거절당할 줄이야! 서윤정은 마음이 착잡했다!“그건…”진명은 말을 이어가지 못한 채 복잡해진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서윤정은 강성 시 4대 미인 중 2순위로 뽑히는 여인으로 여신 급의 아름다운 외모는 모든 남자들을 설레게 만들었고 사지가 멀쩡한 진명도 당연히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서윤정을 친구로 생각했을 뿐, 단 한 번도 그 이상의 감정은 느껴본 적이 없었다.더군다나 진명이 사랑하는 사람은 임아린이고 마음속에는 그녀로 가득 찼으며 그녀와 헤어진 지금도 진명은 임아린을 쉽게 잊을 수가 없었다! 이게 바로 진명이 서윤정을 받아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진명아, 잘 생각해 봐, 너와 임아린 씨는 이제 끝난 사이야! 감정이라는 건 강요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야, 임아린 씨가 너를 믿지 못한다는 건 그만큼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야, 네가 계속 고집을 부려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 지나간 일은 이미 지나간 거야, 너도 새로운 인연을 만나 자신의 인생을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겠어!”서윤정은 진명이 그녀의 마음을 받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최선을 다해 그를 설득시키려 했지만 진명은 씁쓸한 얼굴로 대답했다.“윤정 씨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요. 하지만 전 아린이와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아직 아린이를 잊을 수가 없어요.”서윤정이 말한 대로 진명과 임아린은 이미 헤어진 사이로 이 결과는 절대 바뀔 리가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진명과 임아린 사이의 문제는 아직 생각하긴 이르니, 그가 자신의 누명을 벗을 수 있을 때 다시 대책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맞다, 진명아, 너 어디 살아? 너 지금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혼자서는 못 걸어, 내가 데려다줄게!”서윤정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전… 전 아직 지낼 곳이 없어요, 그냥 근처 아무 호텔에 데려다줘요.”진명은 난감한 얼굴로 웃으며 대답했다. 그는 오늘 밤 일단 호텔에서 하루 보내고 내일 바로 집을 사러 거처를 마련할 생각이었다.“호텔에 왜 가? 그냥 우리 집에 와서 며칠 지내!”서윤정은 환하게 웃으며 진명의 팔짱을 꼈고 마치 이미 진명의 여자친구가 된 듯 행동이 자연스러웠다. 팔뚝에 느껴지는 말캉한 촉감에 진명은 흠칫하며 그대로 굳어버렸고 그가 거절을 하기도 전에 서윤정은 강제로 진명을 끌고 술집을 나섰다.서 씨 가문 저택에서.거실에 있던 서 씨 어르신과 서준호는 취기 때문에 비틀거리는 진명을 부축하면서 들어오는 서윤정을 보고 잠시 흠칫하다가 이내 가까이 다가가서 물었다.“윤정아, 진 선생에게 술 냄새가 많이 나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아, 기분 안 좋은 일이 좀 있어서 술을 많이 마셨어요.”서윤정은 상황만 간단하게 설명할 뿐 자세한 얘기는 더 하지 않았다.“그럼 너랑 진 선생은…”서 씨 어르신은 진명을 꼭 안고 있는 서윤정을 보며 어리둥절한 얼굴이었고 서윤정은 발그레한 얼굴로 이내 다정하게 안고 있던 손을 빼더니 대답했다.“할아버지, 진명이 잠시 지낼 곳이 없어서 우리 집에 며칠 묵으라고 했어요…”술을 너무 급하게 많이 마신 진명은 술집에서 나오자 불어오는 바람에 취기가 더해졌지만 서 씨 어르신과 서준호를 본 순간,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서 씨 어르신, 늦은 밤에 민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진명이 난감한 듯 웃으며 말했다. 그는 오늘 밤 호텔에서 잘 생각이었는데 서윤정의 성화에 끌려오고 말았다. “괜찮아요. 진 선생은 남도 아니고 우리 가문의 은인인데, 그렇게 체면 차릴 필요 없어요. 앞으로
솔직하고 대담한 성격의 서윤정은 할아버지에게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기에 자신의 생각을 할아버지에게 고백했다.“역시 그렇구나!”서 씨 어르신은 어느 정도 손녀의 마음을 눈치채긴 했지만 그녀에게서 직접 들으니 여전히 놀라웠다.“할아버지, 저랑 진명의 일을 반대하진 않으실 거죠?”서윤정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진명은 고아에 가정 배경도 없었고 그가 임아린과 헤어진 것도 결국엔 서로의 신분 차이라는 것을 서윤정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서 씨 가문도 임 씨 가문과 마찬가지로 강성 시의 4대 가문 중의 하나인데 할아버지도 진명의 신분 때문에 반대를 할까 봐 걱정되었다.서윤정은 임아린의 길을 똑같이 걷고 싶진 않았다!“반대? 내가 반대를 왜 해?”서 씨 어르신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고 서윤정이 안절부절못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진명은 고아이고 가정 배경도 안 좋잖아요, 할아버지는 그런 게 신경 쓰이지 않아요?”“자고로 위인은 고난 속에서 생기는 법이야! 진 선생은 능력이 뛰어나신 데다가 우리 서 씨 가문을 여러 번 도와준 것도 모자라서, 성품까지도 그렇게 훌륭한데, 네가 진 선생과 만날 수만 있다면 세상 고마운 일이지, 반대를 왜 해?”서 씨 어르신은 수염을 만지면서 자상하게 웃었다.서 씨 가문은 4대 가문 중 행실이 가장 겸손한 가문으로 서 씨 어르신은 명예와 이익에 집착하지 않았으며 사상에서도 다른 가문들처럼 진부하지 않았다. 때문에 진명에게 출중한 능력이 없다고 해도 서윤정만 좋다고 하면 어르신은 반대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진짜요? 할아버지, 역시 할아버지가 최고예요!”불안한 마음이 싹 사라진 서윤정은 기분이 너무 좋아서 서 씨 어르신의 품에 와락 안겼다.강성 더 힐 별장.저녁 식사를 할 때 안색이 좋지 않은 임아린을 보며 하소정이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언니, 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데, 누가 언니를 화나게 했어?”“아니야, 그냥 기분이 좀 안 좋아서…”임아린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진명과 오랜 시간 알고 지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우린 이미 헤어졌어!”임아린은 차분한 척 말하긴 했지만 마음은 숨 막힐 정도로 착잡했다.“헤어졌다고? 아니… 대체 왜?”멍한 하소정은 이내 뭔가 깨달은 듯, 테이블을 탁 치고 일어서더니 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언니, 혹시 진명이 나쁜 짓이라도 한 거야? 아님 언니를 괴롭혔어? 걱정하지 마, 내가 지금 당장 찾아가서 그 사람 무릎 꿇게 만들게!”“아니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 아니야…”임아린은 말을 하려다 다시 입을 닫았고 마음이 급한 하소정은 임아린과 진명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짐작이 가지 않아서 임아린을 계속 추궁했다.“그럼 대체 뭣 때문에 이러는 거야?”“됐어, 이 일은 너랑 상관없는 일이니까 너까지 끼어들지 마.”임아린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녀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하소정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안 그래도 마음이 복잡한데 하소정까지 일을 만들까 봐 걱정되었다.“안 돼, 이렇게 끝낼 수는 없어! 언니가 얘기를 안 해주면 지금 당장 진명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직접 물어볼 거야!”하소정은 핸드폰을 꺼내 진명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다.“소정아, 제발 가만히 있어…”임아린은 하소정의 끈질긴 추궁에 어쩔 수 없이 오늘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얘기해 주었고 조용히 듣고 있던 하소정은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언니, 언니 말은 저번에 언니를 납치한 사람들의 배후가 진명이라는 말이야? 그리고 진명이 임 씨 가문의 돈과 세력에 눈이 멀어 언니를 통해 그 모든 걸 손에 넣으려고 했다고?”어안이 벙벙한 하소정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닐까 귀를 의심했고 임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응, 아마도.”“아니, 그건 말도 안 돼! 내가 진명을 오래 본 건 아니지만 진명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아. 진명은 절대 그런 비겁한 사람이 아니야! 성품이 훌륭한 사람이야!”하소정은 단호하게 말했다. 방금 전까지 그녀는 진명이 임아린을 괴롭힌 건 아닐까 의심돼서 진명이 살짝 원망스러웠지만 이제 보니 진정한
솔직히 임아린도 하소정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진명이 일부러 납치범들을 죽인 일만큼은 불변의 사실이었기에 진명이 이 일을 설명하지 않으면 그녀는 절대 진명을 믿지 않을 것이다! 이는 임 씨 가문의 가업과 운명이 걸린 일이라 임아린은 어마어마한 가업을 가지고 장난칠 수 없을뿐더러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그건 절대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왜 설명을 하기 싫은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 말 못 할 사정이 있을 수도 있지.”하소정의 애매한 대답에 임아린은 쌀쌀하게 말했다.“내가 보기엔 사정이 있는 게 아니라 불순한 의도가 있었던 거겠지!”“언니, 그런 생각만 하지 마, 당사자는 사리 판단이 흐려진다고, 언니가 진명과 그렇게 오래 알고 지냈는데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아직도 모르겠어? 그런 사소한 일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하소정이 최선을 다해서 설득시키려 했지만 임아린은 계속 고집을 부렸다.“아닐 수도 있어!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야! 그 사람의 그 모습이 가식일 수도 있지!”“하지만…”하소정이 계속 설득하려 했지만 말이 시작되기도 전에 임아린에게 거절당하고 말았다.“됐어, 그만해. 피곤해, 방에 가서 좀 쉴게.”밥 생각이 전혀 없는 임아린은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운 임아린은 하소정의 말에 동의하진 않지만 자꾸 그 말들이 생각나서 밤새 몸을 뒤척이며 쉽게 잠들지 못했다.이튿날 아침, 임아린은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한희정과 오진수를 사무실로 불렀다.“희정 씨, 오늘부터 Z 그룹과의 합작 건은 희정 씨가 전적으로 책임져요. 오 부대표님, 부대표님은 전과 똑같이 회사 생산 관리와 원자재 구매를 책임져 주세요…”임아린은 업무를 다시 분배했고 그녀의 뜬금없는 말에 깜짝 놀란 한희정이 물었다.“임 대표님, 혹시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닌가요? Z 그룹과의 합작 건과 생산 쪽은 지금까지 진명 씨가 책임졌었는데, 진명 씨 업무를 저와 오 부대표님한테 맡기면 진명 씨는 앞으로 무슨 업무를 해요?”“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