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음식이 있다는 말에 한성우가 바로 답했다.“저녁에 별다른 일이 없으니까 일찍 들어갈 거야.”차미주가 차갑게 웃으며 일부터 얌전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그럼 기다릴게.”한편, 유현진은 한참 뒤에서야 강한서의 답장을 받게 되었고 내용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그 사진은 바로 자신이 일하고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었다.그는 검은 셔츠를 입고 있었고 실험실 책상에 기대어 서 있었다. 무테안경을 쓴 그는 패드에 있는 자료를 훑어보고 있었다.사진은 우측면에서 찍힌 사진이었고 강한서의 날카로운 턱선이 선명하게 찍혔다. 검은 셔츠를 입은 그는 소매를 팔꿈치까지 거두고 있었고 단추는 두 개 정도 푼 상태였다. 살짝 튀어나온 그의 목젖은 완벽한 턱선과 아주 조화로웠고 안경 쓴 그의 엄격 근엄 진지한 모습에서 금욕적인 느낌이 온몸에서 풍겨 나왔다.한열의 사진을 보았을 땐 생기있고 활발한 소년미가 느껴졌었다.하지만 강한서가 주는 이런 엄격 근엄 진지한 느낌과 엄청난 카리스마에 굳이 소년미를 풍기지 않아도, 그저 그곳에 서 있기만 해도 사람들은 홀린 듯 쳐다보았다.다만, 이 사진은 강한서가 찍은 사진이 아닌 것 같았다.강한서는 자신의 매력에 대해 알지 못했고 그는 무대 위에서 트로피를 안고 있는 사진이 제일 잘 나온 사진이라고 생각했었다.예전에도 집안 벽에 사진을 걸려고 할 때, 강한서는 그녀에게 자신의 사진을 골라 달라고 부탁했었다.그리고 강한서는 그녀에게 상을 받은 모습이 찍힌 사진을 수두룩 보냈었다.대학 시절 받은 경진 대회 1등 상, 디자인 특별상, 과학기술대회 공로상 등...그가 무조건 트로피를 안고 있는 사진만을 고집했고 사진 속 트로피에 이름까지 선명하게 보여야 만족했었다.당시 그녀는 강한서가 일부러 그녀를 놀리려고 그러는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그는 자신이 상을 받은 모습이 제일 멋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방금 그가 보낸 사진은 아주 완벽한 사진이었다. 강한서는 사실 카메라만 보면 경직되는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이 찍어준 사진에서 더
순간 방심하고 있었던 유현진은 바로 그의 앞으로 나오게 되었다.그녀를 끌어당긴 한열은 공간이 비좁다는 것을 발견하고 고개를 돌려 송민영에게 말했다.“옆으로 좀 가봐요.”“...”송민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사람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었지만 송민영의 표정은 한껏 일그러졌다.한열은 자신과 다른 연예인을 붙여 커플이라고 엮는 사람을 아주 싫어했다. 전에도 송민영과 드라마를 찍게 되었을 때 두 번이나 엮인 적이 있었고 그는 바로 그녀의 SNS를 언팔로우 해 버렸다.그때 당시 기사가 아주 크게 났었고 실검에도 오른 적이 있었다. 한열의 팬들 반응은 그녀가 일부러 노린 것이라고 말했고 송민영의 팬들은 한영에게 댓글을 달며 아니라고 해명해 주길 원했었다. 한열은 그날로 바로 송민영과 연관된 회사 계정과 번호까지 지워버렸다.‘나와 커플로 엮이는 건 싫어도 유현진과 커플로 엮이는 건 두렵지 않은 건가?'‘게다가 내가 왜 유현진에게 자리를 양보해 줘야 하는 거지?'‘이 바닥에서 내가 선배고 유현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위치인데?'송민영이 움직이지 않고 우뚝 서 있다 한열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왜 안 움직이시죠?”“...”송민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쉬더니 그제야 마지못해 살짝 움직였다.한열은 그런 그녀의 행동에 불만이 많았다.‘고양이나 들어갈 수 있을 만한 공간에 사람이 어떻게 설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그가 다시 입을 열려고 하자 유현진이 말했다.“그냥 제가 뒤에 설게요. 전 키가 커서 앞에 서면 다른 사람을 가리게 될 거예요.”한열은 어쩌면 좋은 마음으로 그녀를 당긴 것이었지만 유현진은 눈에 띄는 센터 자리에 서고 싶지 않았다.그녀의 말에 한열은 바로 입을 열었다.“그럼 저도 뒤에 설게요. 저도 키가 크거든요.”그렇게 사람들은 사진의 주인공인 한열이 유현진의 곁에 꼭 붙어 센터 자리에서 뒤로 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사람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들은 이제 어떻게 서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
송민영은 잔뜩 어두워진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연예계에 있는 사람들은 아주 현실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녀가 유명해지기 전에 단체 사진을 찍을 때마다 항상 제일 끝자리로 밀려나거나 다른 사람의 얼굴을 가리게 되면 항상 작은 목소리로 사과해야 했다.만약 찍은 사진이 주인공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인공의 한마디에 바로 그녀를 사진에서 제외하기도 했었다.그래서 그녀는 유명해지게 된 후부터 단체 사진을 찍을 때마다 자리에 엄청 신경 썼다.원래 드라마 팀과 같이 찍는 단체 사진에는 그녀가 드라마 여주인공이었기에 응당 그녀가 센터 자리에 서야 했지만 방금은 그녀가 아닌 유현진이 센터 자리에 서게 되었다.이혼한 유현진은 강 대표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잃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운도 좋아 아주 손쉽게 브랜드 뉴 엔터랑 계약까지 했다. 그녀는 비록 대작의 여주 역할을 손쉽게 얻을 수 있었고, 인기도 아주 많았지만, 그녀를 무시하고 심지어 그녀와 엮이지 않으려고 했던 한열이 유현진의 곁에 강아지처럼 헥헥거리며 붙어 있으려고 했다.그리고 이 모든 것은 송민영의 질투와 시기로 이어지게 되었다.그녀는 그렇다 할 대표작도 없을 뿐만 아니라 고작 ‘선셋 스타'라는 호칭 하나로 연예계에서 인기를 얻게 되었고 만약 그녀에게 내세울 만한 작품이 있었다면 아마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을 것이다.그래서 같은 회사였던 송민영은 불안감과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그녀는 반드시 유현진이라는 보석이 뜨기 전에 유현진을 다시 진흙탕 속으로 밀어 넣어야 했다.만약 유현진이라는 보석이 뜨게 되면 더는 그녀의 빛을 가릴 수 없게 될 것이었다.사색에 잠긴 송민영은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그냥 자리일 뿐이에요. 별거 아니에요.”그녀의 말에 방이진은 바로 정의감이 폭발했다.“민영 언니가 너무 착해서 그래요. 연예계에서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잖아요. 배우들과 단체 사진을 찍게 되면 반드시 핫한 배우에게 센터 자리를 양보해 주는 규칙 말이에요. 그 여자는 이런 규칙도 모른대요? 그 여자는 그냥 언니
그러나 그 계정은 반년 이상의 게시물을 확인할 수 없게 설정되어 있었고 계정주 또한 마침 반년 전에 게시물을 올렸었다.유일하게 보이는 게시물은 바로 공식 계정 인증마크가 있는 어떤 반도체의 기술에 관한 복잡한 내용의 기사를 리트윗한 것이었다.그리고 그 게시물의 아래에는 수많은 댓글이 달려있었다.유현진은 그 댓글을 펼쳐보았다.「수저남 님, 오늘은 일상을 공유 안 해 줘요?」「싸운 게 분명해요. 수저남 님은 싸웠을 때마다 기사를 올리시잖아요.」「솔직히 전 두 사람이 싸우는 걸 더 좋아해요. 특히 수저남 님께서는 상금까지 올려주면서 아내 분 화 푸는 방법 알려달라고 하시잖아요. 정말 너무 멋져요.」「정말 멋지다고 생각해요? 그건 님이 수저남 님의 상금을 탐내신 거잖아요!」「사실 전 수저남 님께서 올린 '미래 과학 발전에 관한 N 가지 추측' 게시글을 보고 팔로우했었어요. 그런데 점점 수저남 님과 아내 분의 팬이 되어버렸네요.」「저도 이해해요. 댓글에 절반 이상이 수저남 님께서 올린 기계 측정과 과학에 관한 잡다한 지식 게시글을 보고 팔로우했다가 수저남 님과 아내분의 일상을 더 기대하는 댓글이더라고요.」「수저남 님은 분명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가 일거에요. 수저남 님께서 올리신 게시글만 봐도 우리 학교 교수님이 바로 논문으로 써도 되겠다고 하시더라고요.」「그래도 전 수저남 님이 올리시는 일상을 더 좋아해요. 하하하하하. 분야에 관한 내용은 엄청 진지하게 글을 쓰지만 아내 분이 화가 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불쌍하면서도 웃음이 나네요.」「웃지 마세요. 그러다 수저남 님께서 돈을 보내주면서 조용히 하라고 할 겁니다. 하하하하」「수저남 님이 올리신 게시글의 내용이 안 좋다고 말해도 상관 하지 않지만 아내 분이 나쁘다고 말하기만 하면 수저남 님께서 한바탕 당신의 말에 반박할 거예요. 수저남 님은 아주 침착하게 논리적으로 상대가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반박하는 타입이시거든요.」「5개월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게시물이 업데이트 안 되어있
어리둥절했던 유현진은 순간 강한서의 뜻을 알게 되었다.그는 아마도 인터넷에 올라온 부정적인 댓글을 본 게 틀림없었고 그녀가 걱정되어 바로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유현진이 물었다.“페이스북 본 거야?”“응. 사람들이 뭐라 하든 신경 쓰지 마.”강한서가 답했다.“난 사람들이 뭐라 말하든 신경 안 써.”그녀가 졸업할 때 선생님이 학생에게 해줬던 말씀이 있었다.‘강한 멘탈과 마음이 없이 뭐든 잘해 낼 생각을 하지 말아라.'그녀가 신경 쓰는 댓글은 바로 그녀의 작품을 평가하는 댓글과 연기력에 관한 댓글이었고 이런 오합지졸들이 남긴 댓글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마음이 놓인 강한서가 말했다.“내가 이미 사람을 시켜서 실검을 없애라고 했으니까 일단 당분간은 페이스북 하지 마.”유현진은 바로 벌떡 일어나 앉았다.“왜 그런 곳에 돈을 써? 차라리 그 돈을 나에게 줘! 사람들이 뭐라 하든 그냥 내버려 둬. 어차피 그 사람들에게도 언론 자유가 있잖아. 그리고 이것 또한 무료로 내 존재를 알릴 기회인데 그걸 왜 없애려고 해?”“...”강한서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다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넌 신경 안 쓰지만 내가 신경 쓰여서 그래. 넌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닌 걸 내가 잘 아는데 어떻게 그런 소리를 듣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그리고 자꾸 돈 아깝다고 생각하지 마! 네 남편은 돈이 아주 많아! 인지도가 필요하면 나한테 말해! 내가 당장 돈을 써서라도 인지도를 높여줄 테니까. 이런 어그로 형식의 인지도는 필요 없어.”“...”유현진은 순간 카리스마가 넘쳐흐르는 강한서에 살짝 당황했다.그리고 이내 그녀는 자신이 전에 읽었었던 카리스마 넘치는 남주의 소설을 떠올리며 웃기 시작했다.들려오는 그녀의 웃음소리에 마음이 누그러진 강한서가 나직하게 말했다.“내 말이 그렇게 웃겨?”“아니, 그게 아니라.”유현진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꾹 참으며 말했다.“갑자기 전에 인터넷에서 읽었던 로맨스 소설이 생각나서.”“뭐?”비록 강한서는 로맨
‘결혼하고 싶은 사람...'‘아 진짜... 이 남자는 이혼 후에야 날 여러 번 설레게 만드네.'유현진의 가슴이 한참이나 요동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다.“그럼 첫사랑 상대가 정말로 송민영 씨가 아니야?”“...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지?”곰곰이 생각하던 강한서는 전에 수혈하러 자주 은서를 병원에 데려가면서 확실히 송민영과 마주친 적이 아주 많았고 욕심이 많았던 송민영은 몰래 언론사를 찾아가 두 사람의 모습을 찍으라고 했었다.그때 당시 아주 화가 났던 그는 그 일로 그 언론사를 파산시켜 버렸으며 언론사의 파산으로 송민영에게 경고한 셈이었다.그러나 송민영의 인지도는 점점 높아졌고 대부분 기사도 전처럼 쉽게 막을 수 없었다.하지만 언론사들은 그의 기사를 낼 엄두를 내지 못했기에 그는 유현진이 자신과 송민영이 바람피우고 있다며 오해를 할 줄은 모르고 있었다.더욱 어처구니가 없었던 건, 그녀는 심지어 송민영이 그의 첫사랑 상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유현진은 입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결혼식 며칠 전, 웨딩사진을 찍을 때 이미 다른 사람한테서 들었었어.”“네가 어떤 인지도가 없는 연예인을 좋아하고 있는데 집안에서 허락하지 않는다고. 무조건 그 무명 연예인이랑 떨어지라고 해서 하는 수 없이 맞선 보러 나간 거라고 그러던데. 나와 결혼을 선택한 것도 사실은 맞선 상대 중에서 집안 조건이 제일 나빴다고, 마침 집안에 복수하기 위해 나랑 결혼한 거라던데?”한참 동안 말이 없던 강한서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도대체 네 눈엔 나는 어떤 사람이야?”유현진이 바로 답했다.“양다리를 걸치고, 남의 그릇을 탐내고, 성격도 더럽고, 말도 예쁘게 못 하고, 쪼잔하고, 질투 많고, 고집도 아주 센...”강한서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너한테 평가해달라고는 안 했어.”“아, 그래.”유현진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강한서는 미간을 꾹꾹 누르며 말했다.“네가 방금 한 말 모순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집안에서 내가 무명
강한서가 입을 열었다.“넌 그때 나이가 어렸잖아. 그래서 순진했고.”“... 그럼 왜 결혼한 그 날밤, 나에게 손도 대지 않은 건데?”“... 이건 사적인 문제야. 너무 자세하게 알려고 하지 말아줄래?”유현진이 계속 말을 이었다.“다른 사람들 앞에서 한 것도 아니고 지금은 우리 두 사람만 얘기하고 있는데 이런 것도 못 물어봐?”“그런 거 아니야.”강한서는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이런 말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서 그래. 이런 대화를 이어갔다간 내가 너를 희롱한다며 또 감점할 것 같아서 그래.”‘이럴 때만 신경 쓰는 거야? 전에 망사옷을 입어 보여주겠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럴 때만 감점될까 봐 신경 쓰는 거야?'유현진이 말했다.“감점 안 할게. 대신 가산점을 줄게.”“얼마나 줄 건데?”“200점.”강한서가 말했다.“500점으로 해줘. 사적인 문제잖아.”강한서가 점수 흥정에 거의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유현진이 말했다.“그럼 됐어.”“??? 안... 궁금해?”“응, 생각해 보니 네 개인 프라이버시는 지켜줘야 할 것 같아서. 너에게도 프라이버시는 있을 거 아니야.”“... 사실 200점도 괜찮은 것 같아.”그는 일단 200점이라도 받기로 했다.“무리하는 거 아니야?”“그럴 리가.”유현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그럼 말해 봐.”강한서는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다소 오랫동안 망설이며 말했다.“사실 그날은 준비가 안 되어있었어.”“??? 내가 널 덮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준비가 필요해?”“... 앞으로 말 좀 가려서 해줄래?”유현진도 헛기침하며 말했다.“다음엔 가려서 할게. 일단 빨리 말해 봐.”강한서는 순간 말하고 싶지 않았다.‘왜 현진이가 이토록 궁금해하는 거지?'“별거 아니야.”강한서는 나직하게 이어서 말했다.“사실 그냥 그 방면에 관한 지식이 적어서 책으로 일단 배워두고 불쾌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할 생각이었어.”한참이나 말이 없었다던 유현진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그래,
강한서는 살짝 실망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멀리서 보기만 할게.”유현진은 강아지처럼 주눅이 들어 부탁하는 모습이 마음이 약해졌다.“그럼, 성우 씨랑 같이 와. 혼자 오면 다른 사람들이 또 이상한 글을 올릴 거야.”강한서는 순간 아주 기뻤다.“알았어. 그럼 얼른 대본 봐. 너무 늦게까지는 보지 말고.”“응.”통화가 종료되어 살짝 아쉬웠지만, 유현진은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였다.너무 즐겁게 통화한 탓에 전혀 대본을 훑어볼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병원에서 돌아온 한열은 실검을 보자마자 순간 화가 났다.그는 매니저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얼른 페이스북에 로그인하고 게시글을 올렸다.「좋은 대본을 놔두고 굳이 그런 관종짓을 할까요? 그래서 언제 같이 대본을 맞춰 볼까요? #유현진」원래 강한서는 이미 기사를 대부분 삭제해 버린 상태였지만 한열의 게시글에 다시 실검으로 오르게 되었다.한열은 지금 유현진을 감싸주고 있는 것이 분명했고 게다가 ‘인지도는 없지만 관종인 연예인'을 자신으로 비유하면서 그가 유현진의 인지도를 이용하고 있다는 의미로 말했다.그러자 그의 팬들은 난리가 났다.한열은 데뷔한 후부터 지금까지 페이스북에서 다른 여자 연예인을 위해 나선 적도 없었고 소통한 적도 없었다.그러나 그는 지금 여자 연예인과 소통하려 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주의를 자신에게로 돌려 남친미가 넘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다.그런 글을 올렸으니 그의 팬들도 분명 그의 편을 들 것이었다.이윽고 유현진의 ‘인지도는 없지만 관종인 연예인'이라는 실검은 사라졌고 대신 ‘유현진에게 대본 리허설 신청한 한열'라는 실검이 올라왔다.팬들은 비록 한열의 대응에 불만을 품었지만, 불만은 그저 팬들 내부의 불만이었고 그들은 한열에게 불만을 품지 않았다.한편 방이진은 자신이 일으킨 여론이 뒤집히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이 일은 당연히 그녀가 벌인 일이었다.공식 계정이 단체 사진을 올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바로 다른 한 장의 단체 사진을 올렸다. 하지만 그녀가
송민준은 매주 서너 번씩 주승관을 찾아왔다. 말도 많고 멍청한 데다 시끄럽기까지 한 사람이었다. 매번 재미없는 얘기만 늘어놓다 마지막은 꼭 같은 말로 마무리했다. “내 동생도 이렇게 컸으면 세은이만큼 귀여웠을 거예요.”그 후 여동생이 아파서 송민준은 두 달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주승관은 주세은과 함께 송민준을 만나러 갔고 그곳에서 그의 여동생인 송가람을 만났다. 송민준의 말과 달리 주세은은 그의 여동생이 귀엽기는커녕 오히려 멍청하다고 느꼈다. 송민준과 비슷한 구석이 조금도 없었다. 주세은과 주승관을 배웅하며 송민준은 주세은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장난스레 말했다. “양심도 없는 꼬맹아. 의사에겐 오빠라고 하면서 우리 알고 지낸 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왜 오빠라고 안 불러?”주세은이 대답했다. “멍청하니까요.”그 말에 송민주은 순간 멍해졌다. 그는 마치 못 들을 충격적인 말을 듣기라도 한 사람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주세은은 자신이 틀린 말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멍청한 거 맞잖아. 6개월 동안 비행기 조종사 자격증 하나 따지 못하다니. 대체 뭘 배운 거야.’주세은의 말에 자극을 받은 송민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만약 내가 너보다 똑똑하다는 걸 증명하면 날 오빠라고 부를 거야?”주세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저 인간이 어떻게 나보다 똑똑하겠어? 아빠가 가르쳐준 건 이젠 나도 거꾸로 외울 수 있는 수준인데도 아직 기억하지 못하잖아.’송민준이 말했다. “그럼 내가 문제 낼게. 네가 정답을 맞힐 수 있으면 난 네가 나보다 똑똑하다는 걸 인정할게. 하지만 만약 네가 틀리면 앞으론 날 볼 때마다 얌전히 오빠라고 불러.”주세은이 송민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송민준이 말했다. “내 머리카락이 얼마나 있을까?”“...”“모르겠어?”빨갛게 얼굴을 붉히던 주세은이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얼마나 있는데요?”송민준이 씩 눈웃음 지으며 대답했다. “내 머리에 붙어 있는 만큼.”“...”자신에게 농락당해 얼굴이
송가람은 약 올리는 한현진의 말투에 화가 나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현진 씨는 뭔데 뿌듯해하는 거예요. 현진 씨가 제조한 것도 아니잖아요.”한현진이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세은이는 제가 특례로 입사시킨 천재잖아요. 제가 왜 뿌듯하면 안 되는 거예요?”말하며 한현진은 서해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서 대표님, 세은이가 제조에 성공했으니 이젠 억울하게 오일을 깨뜨렸다는 누명을 쓴 일에 관해 얘기해 볼까요? 그리고 서하 씨의 보너스 삭감이 정말 규정에 따란 이행된 건지, 아니면 누군가 그걸 빌미로 사적인 화풀이를 하려고 한 건지 회사 감사위원회에 조사를 맡겨야 하지 않을까요?”한현진을 쳐다보던 서해금이 태연하게 말했다. “향이 비슷하긴 하지만 사용 여부에 대해선 테스트를 진행해 봐야 해.”한현진이 어이없는 실소를 터뜨렸다. “그럼 일단 오일을 깨뜨린 일부터 조사하시죠.”한현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해금의 휴대폰이 울렸다. “대표님, 경찰이 도착했어요. 누군가 회사의 재물손괴가 있었지만 범인을 찾지 못했다고 신고를 해 조사하러 왔다고 하네요.”서해금이 휙 고개를 돌려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한현진은 눈꼬리를 휘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주머니, 아무래도 경찰에게 맡기는 편이 효율적인 것 같아서요. 값비싼 물건인 만큼 만에 하나 범인을 색출하지 못한다면 저희가 그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잖아요. 제가 소유하고 있는 지분이 제일 많으니 손실을 제일 많이 보는 것도 저예요. 그러니 저도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린 거예요. 이해하시죠?”서해금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한현진은 지금의 서해금은 어쩌면 옆에 놓은 물을 자신의 얼굴에 부어버리고 싶어 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현진은 성월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해금이 손을 움직이는 순간 성월의 등 뒤로 숨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서해금의 인내심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신고까지 한 거냐며 난리를 피우는 송가람과 달리 서해금은 몸을 일으켜 한현진을 힐끔 쳐다보더니 곧 아무
[한 대표님이요...]채팅방은 다시 정적이 흘렀다. 누군가 물었다. [한 대표님, 돈을 이렇게 많이 거셨다가 지면 어쩌시려고요.]한현진이 대답했다. [한 번 걸어보는 거죠. 돈방석에 앉게 될지도 모르잖아요.]그리고 채팅방은 곧 [대표님, 쿨하시네요.]라는 문자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곧이어 또 몇십 명의 사람들이 실패에 베팅했다. 심지어 돈을 더 거는 사람도 생기기 시작했다. 몇 분 후, 딜러가 또 말했다. [송 팀장님께 실패에 2000만 원을 거셨어요.]멈칫한 한현진은 고개를 들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송가람을 쳐다보았다. 송가람은 마치 한현진이 자신을 쳐다보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입꼬리를 올리며 씩 웃은 송가람이 고개를 살짝 돌리더니 말했다. “그냥 재미로 하는 거죠.”미소를 짓던 한현진이 입 모양으로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으며 물었다. “사기당한 40억은 돌려받았어요?”송가람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버럭 화를 내려던 송가람은 자신을 쳐다보는 서해금의 시선에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주세은은 매번 제조해 낸 오일의 향에 따라 원료의 비율을 조절했다. 1시간이 흐르자 그녀는 10가지가 넘는 샘플을 만들어냈지만 넘버 S 오일에 완벽히 일치하는 건 아직 없었다. 서해금은 서서히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주세은이 시도한 비율은 서해금의 제조 방안 중 넘버 S 오일과 제일 근접했던 샘플과 비슷했다. 게다가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오일의 비율을 조절했다. 그러니 주세은이 넘버 S 오일을 제조해 낼 리가 없었다. 현장에서 제조 과정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점점 흥미를 잃어갔다. “전교 일 등인 척하는 전교 꼴찌를 지켜보는 기분이네요. 대체 제가 뭘 기대하고 있었던 거죠?”넘버 S의 성분 분석에 참여했던 사람이 말했다. “세은 씨가 정확한 오일을 고르긴 했어요. 정말 천재라도 되는 줄 알았더니 그저 우연일 뿐이었네요.”“한 대표님께서 성공에 2000만 원이나 거셨던데 그 돈이
주세은이 제조에 실패할 것이라고 확신한 송가람은 벌써 냉소적인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손놀림은 꽤 전문가답네요. 현진 씨는 세은이가 제조에 성공하려면 얼마 정도 걸릴 것 같아요?”한현진이 송가람을 힐끔 쳐다보며 태연하게 말했다. “늦어서 2시간이요. 세은이가 그랬잖아요. 청력에 문제 있어요?”송가람이 비웃으며 말했다. “정말 2시간 안에 성공한다면 능력이 있다고 할 수 있겠죠. 회사는 불필요한 사람을 키워줄 이유가 없거든요.”한현진이 냉담한 태도로 받아쳤다. “줄곧 필요 없는 사람을 먹여 살리고 있었잖아요.”멈칫하던 송가람은 그제야 한현진이 말 한 필요 없는 사람이 자신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바로 표정이 굳어버렸다. 송가람이 한현진을 반박하려는데 서해금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보려거든 조용히 해. 시끄럽게 굴 사람은 나가.”‘얘는 철이 안 들어! 하필 지금 여기서 한현진과 설전을 벌여야겠어?’송가람이 불퉁한 얼굴로 입을 닫았다. 그녀는 주세은이 창피를 당하기만을 기다렸다. 한현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주세은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제조에 성공해도 걱정, 실패해도 걱정이었다. 만약 실패한다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만약 제조에 성공해 너무 일찍 실력을 드러낸다면 서해금의 경계 대상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현장에서 지켜보는 사람의 대부분은 주세은이 우스운 꼴을 당하는 것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도 낙하산으로 들어온 어린 꼬맹이가 넘버 S 오일을 제조해 낼 것이라 믿지 않았다. “차라리 잘못을 인정하는 게 나을 텐데요. 일을 이렇게까지 키워서 제조에 실패하면 얼마나 창피해요.”“오일을 제조하겠다는 건 핑계고 그저 나대고 싶은 것 같아요. 오늘 이 일이 아니었다면 전 회사에 저런 사람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지금 어린 친구들은 너무 허황한 꿈을 꾸는 것 같아요. 착실함과는 거리가 멀다니까요.”...그나마 눈치를 보며 말을 내뱉는 현장의 사람들과 다르게 단체 채
물론 서해금은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꼬맹이에게 그 오일을 제조할 만한 실력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넘버 S 오일은 한아람이 세상을 뜨기 전 제조해 낸 것이었다. 당시엔 오일을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다. 심지어 서해금도 한아람이 세상을 뜬 후 회사에서 유품을 정리하던 중 발견한 것이었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서해금은 그 오일을 제조하기 위해 수많은 조향사들과 수천 가지가 넘는 방법을 시도했었다. 그녀는 심지어 화학성분 분석까지 의뢰했지만 그 어떤 조합으로도 한아람이 만든 오일을 재현할 수 없었다. 서해금이 재현해 낸 오일 중 넘버 S 오일과 제일 근접했을 때도 딱 2%가 부족했다. 하지만 그 2%의 부족함으로 인해 만들어진 향수의 향기는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그러니 서해금은 넘버 S 오일을 장기 보관할 방법을 연구해 최대한 오일의 휘발을 감소해야 했다. 이렇게 오랫동안의 노력으로도 아무도 만들어내지 못한 오일을 주세은이 향만 맡고 제조에 성공한다는 것은 그저 터무니없는 환상에 불과했다. 본인 스스로 불구덩이에 뛰어든다면 당연히 기회를 줘야 했다. 어차피 서해금은 애초부터 주세은의 입사를 반대했었다. 아버지를 꼭 닮은 그 눈은 보기만 해도 심기가 불편했다. 이 기회에 회사에서 내쫓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생각하던 서해금이 말했다. “그럼 너에게 하루의 시간을 줄게.”“아뇨.”주세은이 말했다. “만약 지금 당장 시작한다면 최대 두 시간이면 충분해요.”그 말에 주세은을 보는 사람들은 더 이상 허풍을 떠는 인간을 보는 눈빛이 아닌 바보를 보듯 주세은을 쳐다보고 있었다. 만약 주세운이 두 시간 사이 오일을 제조해 낸다면 그건 회사의 모든 조향사의 자존심을 짓밟은 것이었다. 한현진은 스르륵 다리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주세은의 손을 꼭 잡고 나지막이 말했다. “먼저 내려가서 밥이라도 먹고 마음을 진정시키는 건 어때?”‘만약 제조에 실패해 서해금이 이 기회를 빌려 회사에서 쫓아내기라도 한다면 오빠에겐 뭐라고
주세은의 말 한마디에 현장엔 침묵만이 감돌았다. 물론 한현진도 멍해졌다. ‘어린애가 이런 말을 당당하게도 하네. 그렇게 쉽게 제조할 수 있는 오일이었으면 서해금도 지금까지 한 병밖에 갖고 있지는 않았겠지. 뭐라도 되는 것처럼 아끼던데.’만약 오일의 제조는 사실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고 그저 단순히 마케팅을 위해 서해금이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 아닌 이상 오일의 제조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회사의 많은 조향사들은 넘버 S 오일을 본 적이 있었다. 만약 정말 마케팅에 불과하다면 진작 들켰을지도 몰랐다. 이 세상엔 영원한 비밀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경쟁자로 가득한 이 업계에 이런 비밀로 캐내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정말 제조가 어려운 오일일 가능성이 높았다. 기껏해야 배상 문제만 해결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주세은은 말을 내뱉었고 만약 서해금이 정말 주세은에게 제조를 맡긴 후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한현진은 정말 주세은을 지킬 수 없을지도 몰랐다. ‘지금 MZ는 왜 이렇게 무모한 거야?’지금 주세은에 대한 한현진의 평가는 그나마 무난한 편이었다. 주위에 몰려 구경 중이던 직원들은 한현진보다 훨씬 직설적인 얘기를 꺼냈다. “음식 양념장이라도 만드는 건 줄 아나 봐. 그렇게 쉽게 제조할 수 있는 오일이었으면 깔린느가 지금껏 향수 업계에서 인기를 누릴 수 있었겠어? 진작 라이벌 회사에 뺏겼을 거야.”“서 대표님도 본인이 제조하셨지만 다시 똑같은 오일을 만들지는 못하셨어요. 이제 갓 졸업한 어린 꼬맹이가 뭘 믿고 저렇게 큰소리예요?”“하룻밤 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른다잖아요.”“만약 세은 씨가 넘버 S 오일을 완벽하게 재현한다면 제 손에 지지겠어요.”송가람의 얼굴에 은은한 멸시가 감돌았다. 아마도 주세은이 이렇게까지 “멍청”하게 본인이 직접 불구덩이에 뛰어들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한현진은 마치 담임 선생님에게 불려 온 학부모 같았다. 어떻게든 뒷수습을 하려고 했지만 사
한현진은 말하며 송가람을 쳐다보았다. “전 주주의 신분으로 깔린느에서 일하고 있어요. 언니도 세은이와 마찬가지로 모두 임원인 누군가의 연줄로 입사하게 된 거고요. 언니가 이런 방식으로 저와 세은이를 제약하려고 한다면 당연히 똑같은 방식으로 언니와 서 대표님을 대해야 하는 것 아닌가?”송가람은 논리정연하면서도 은근히 비꼬는 한현진의 말투에 화가 치밀어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한현진의 그 한마디는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의 마음에 묵직한 한 방이 되었다. 낄린느의 창시자에 대해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 한아람이 세상을 뜬 후 입사한 직원이 알고 있는 회사의 대표는 서해금이 전부였다. 깔린느의 공식 홈페이지의 소개에도 서해금을 깔린느의 창시자인 듯 추앙하고 있었다. 예전의 파트너에 대해서는 그저 몇 마디의 간략한 설명이 전부였다. 경력 2, 30년 이상의 고참 직원을 제외하면 모두 깔린느가 모든 위기를 헤치고 지금 이 자리에까지 오른 것은 전부 서해금의 공로로 알고 있었다. 설사 한현진이 회사의 대표로 취임했어도 다들 서해금이 옛정을 생각해 파트너였던 사람의 딸을 챙겨주는 것이라고 여겼다. 성월이든 송가람이든 한현진의 얘기만 나오면 은연중에 그런 뜻을 내비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언급되지조차 않던 창시자인 한아람은 애초부터 깔린느의 최대 주주였고 심지어 그녀는 90%에 가까운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돈을 깔린느의 창업에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10%밖에 되지 않는 서해금의 투자금이 부족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사실 서해금은 그저 적은 투자금을 들여 깔린느와 파트너쉽을 맺고 다른 사람이 심은 나무 아래에서 시원한 바람을 만끽했다는 얘기였다. 자수성가, 커리어우먼, 비즈니스 천재, 조향 천재라는 타이틀은 그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한아람 덕에 누린 이득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과 더불어 “주세은이 문제를 일으키면 한현진이 모든 책임을 진다”던 송가람의 말을 곱씹어 본 직원들의 눈빛이 조금은 의미심
한현진의 말에 성월은 말을 잇지 못했다. 입술을 파르르 떨던 성월은 한현진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조차 갈피를 잡지 못했다. 서해금이 무겁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현진아, CCTV를 확인할 자신 있어? 만약 정말 세은이가 한 짓이면 넌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니?”“경찰에 신고해야죠.”한현진이 똑바로 서해금을 직시했다. “만약 정말 세은이가 깨뜨린 거라면 비싼 물건이니 경찰에게 맡겨 처리하도록 해야겠죠.”서해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송가람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현진 씨, 세은이의 입사를 강력 추진한 건 현진 씨였어요. 그래서 엄마도 동의했던 거고요. 하지만 지금 현진 씨는 이렇게 큰 문제를 생기자 모든 책임을 세은이에게 뒤집어씌우고 있어요. 정말 현진 씨에게는 전혀 책임이 없는 건가요?”한현진이 잠시 침묵했다. “가람 언니, 그런 얘기는 저희끼리 있을 때 해도 되잖아요. 왜 굳이 이곳에서 그 얘기를 꺼내는 거예요?”한현진이 겁을 먹었다고 생각한 송가람이 일부러 더 그녀를 밀어붙였다. “넘버 S 오일이 깨졌으니 회사 전체의 이익과도 관련되어 있어요. 저희도 직원에게 제대로 된 사건의 진위를 알려야 해요. 그러니 굳이 저희끼리 조용히 이야기할 필요가 없죠.”한현진이 시선을 올렸다. “여기서 얘기해도 문제 될 건 없어요. 언니가 계속 제게 책임을 지라고 하는 건 제가 세은이를 입사시켰기 때문인 거잖아요. 세은이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저도 당연히 그에 상응한 책임을 져야겠죠. 그럼 제가 물을게요. 언니의 업무 실수로 인해 저희는 하마터면 홍혜림 씨라는 고객을 잃을 뻔했어요. 그럼 왜 당시 언니를 회사로 불러들인 서 대표님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신 거예요? 실수를 저지른 사람은 심지어 멀쩡히 회사에 다니고 있잖아요. 언니도 서 대표님 추천으로 입사하신 거잖아요. 왜 그 일에 관해선 한 글자도 언급하지 않는 거예요?”부끄러움에 송가람은 버럭 화를 냈다. “저와 세은이는 달라요. 깔린느는
역시나 성월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현장엔 수군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한 대표님이 호언장담해서 데려온 사람이라니, 이게 무슨 말이야?”“소문이긴 한데. 나도 그냥 들은 거야. 주세은 씨 경력으론 우리 회사에 입사할 수 없대. 하지만 한 대표님이 세은 씨 아버지에게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취직을 시켜주려고 했지만 서 대표님이 반대하셔서 한 대표님이 만약 주세은 씨가 문제를 일으키면 한 대표님이 책임지고 물러나시기로 약속하셨다고 했어.”“세상에. 하지만 이번 일은 작은 일은 아니잖아.”“우리가 입사할 땐 면접만 4차까지 있었어. 면접도 없이 입사하기에 대단한 실력자인가보다 했는데, 이렇게 큰 사고를 치다니.”“입사한 지도 시간이 꽤 흘렀는데 아직 실력을 보지 못했어.”“넘버 S 오일은 이것 하나밖에 없잖아. 이렇게 큰 사고를 쳤는데 한 대표님이 어떻게 지켜주겠어.”“지키긴 뭘 지켜. 한 대표님 본인도 책임을 면치 못할 텐데. 자신이 꽂은 사람이 이렇게 큰 사고를 쳤는데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겠어?”...한현진을 힐끔 쳐다본 송가람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음모를 달성한 비열한 인간의 표정이었다. 한현진은 그런 송가람 따위는 신경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성월을 직시하며 말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제대로 가르치고 싶으셨다면 직접 데리고 다니며 하나하나 알려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왜 익숙하지도 않은 곳에서 물건을 가져오라고 세은 씨 혼자 보내신 거죠?”성월이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땐 다들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어요. 일손이 부족한 데다 저도 자리를 비울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세은 씨를 보낸 거예요. 저장실은 제가 세은 씨와 함께 간 적이 있었어요. 세은 씨도 저장실 구조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한현진이 물었다. “다들 식사 중이었다는 건 그리 급한 업무도 아니었단 얘기겠네요. 왜 하필 사람 없는 점심시간에 세은 씨를 불러서 오일을 가져오게 한 거예요?”한현진의 질문에 말문이 막힌 성월이 결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