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난 이력서에 있는 이름 모두 호명했어요. 호명되지 않았다는 건 이력서가 제출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하죠.”여자는 답하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그럴 리가 없어요! 내가 분명 관계자를 통해 이력서를 넣었다고요. 혹시 누락된 건 아닐까요? 언니, 다시 한번만 체크해 주면 안 돼요?”여자는 인상을 구기며 대꾸했다.“왜 이렇게 성가시게 굴어요? 없다니까요. 이력서가 몇 개나 된다고 내가 그걸 누락해요?”차미주가 얼른 웃으며 수습했다.“언니, 그런 뜻이 아니라 우리에겐 정말 중요한 오디션이거든요. 제발 우리 좀 도와주면 안 돼요? 우리한테 오디션 볼 기회 좀 주세요. 시간 많이 안 뺏을게요.”“나한테 그럴 권리가 없어요. 배우는 이미 정해진 마당에 다른 오디션을 찾아보는 게 더 빠르겠어요.”말을 마친 그녀는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이력서가 어떻게 사라질 수 있지?”차미주는 씩씩거리며 부탁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유현진은 그녀의 곁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사실은 너무도 명확했다. 그녀의 이력서를 누군가 중간에서 가로챈 것이다.차이현의 작품은 원래 배우들 캐스팅 경쟁이 어마어마했는데 차미주가 누군가에게 부탁하여 이력서를 넣을 수 있다는 건 다른 누군가가 그녀의 이력서를 바꿔치기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뜻이었다.소속사가 없는 신인인 그녀로서는 이력서가 바뀌어도 상대에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전화를 끊은 차미주는 온갖 욕을 내뱉었다.한참을 욕하던 차미주는 죄책감이 들었다. 애초에 유현진을 향해 그토록 호언장담을 했는데 결국에는 이런 결말을 맞이하니 마음이 괴로웠다.“현진아, 미안해. 나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다른 배역 알아볼게...”“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에는 정해진 건 없는 거지?”유현진의 던지듯 내뱉은 말에 차미주가 멈칫하며 물었다.“뭘 하려고 그래?”유현진이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말했다.“시도는 해 봐야지. 만약 내가 쫓겨나면 너는 날 모르는 사람 취급하면 돼.”차미
“감독님! 제발 기회라도 주세요. 7분, 아니 5분이면 됩니다. 차이현 감독님!”양쪽 모두 물러날 기세가 없던 순간. 객실 문이 열리고 차이현이 안에서 몸을 반쯤 빼고 찡그린 표정으로 물었다.“밖이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직원들이 설명하려고 할 때 유현진이 두 사람에게서 벗어나며 말했다.“감독님, 저는 오디션 17번 배우 유현진입니다. 저한테 오디션을 볼 기회를 주세요.”차이현은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말했다.“당신 이력서는 못 받았는데요.”“저는 유현진이고 25세입니다. 한성 대학 연영과 19기입니다.”“포트폴리오 있어요?”그녀의 물음에 유현진이 주먹을 꽈악 쥐며 낮은 소리로 답했다.“없어요.”“없다고요?”차이현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졸업하고 취직했어요?”“아뇨...”유현진은 멈칫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졸업하고 개인적인 일로 인해 줄곧 무직 상태로 있었어요. 캠퍼스 연극을 해본 게 다예요.”“그럼 연기 경력이 아예 없다는 거네요.”유현진은 침묵으로 답했다.“졸업하고 3년 동안 연기에는 손도 안 대고 있다가 이제 와서 다시 시작하는 이유가 뭐죠?”차이현과 같은 경험이 풍부한 감독 앞에서 감성팔이는 소용이 없다고 판단한 유현진은 솔직하게 답했다.“돈이 필요해서요.”차이현이 조금 놀란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유현진이 말을 이었다.“또한 저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커요. 감독님, 제발 한 번만 오디션을 볼 기회를 주세요. 캐릭터에게도 다시 배우를 선택할 기회를 주시고요.”차이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나이는 어린데 배짱은 두둑하네. 연기 경험도 없으면서 어디에서 난 자신감이에요?”유현진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저는 감독님께서 배우를 고르실 때 아주 신중하다는 걸 믿을 뿐이에요.”차이현이 말하기도 전에 방 안에서 소음이 들렸고 이어 차이현은 방으로 들어갔다가 한참 뒤에 다시 나왔다.차이현이 문을 닫는 찰나의 순간 유현진은 방안에 정장을 입고 있는 기다란 다리를 보았다.“그래요. 당신에게 기
차이현은 굳어진 표정으로 입술을 잘근 깨물고 유현진의 연기를 계속하여 보았다.유현진의 감정선은 섬세했고 분량이 많은 대사였지만 단 2분 만에 완벽하게 암기했다. 또한 훌륭한 대사 전달력은 전혀 연기 경험이 전무한 사람 같지 않았다.그녀의 연기가 끝날 때까지 현장에 있는 누구도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았다.비록 유현진은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지만 너무도 짧은 시간에 모든 감정을 완벽하게 처리할 수는 없었고 다만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다.차이현은 좋다 나쁘다 평가하는 대신 곁에 있던 사람에게 귓속말을 하더니 고개를 들어 유현진을 향해 말했다.”하나만 더 해봐요.”유현진은 눈빛을 반짝였다. 아마 희망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첫 번째 시도에서 이미 쫓겨났을 테니 말이다.다른 대사가 그녀의 손에 쥐여졌고 이번에는 방금 연기했던 배역이 아닌 드라마의 여자 3번이었는데 귀비 역할이었다.방금 나인과는 또 다른 성격의 캐릭터로서 귀비라는 고귀한 신분과 경국지색의 미모에 안하무인의 성격으로 왕의 총애를 잔뜩 받으며 궁궐에서 제멋대로 사는 여인이었는데 중전마저 그녀를 당해낼 수 없다는 설정이었다.여주인공을 모질게 대하는 분명한 악역이지만 왕의 앞에서는 애교 가득한 요물로서 캐릭터에 이중성이 잔뜩 묻어있기 때문에 만약 배우가 소화를 잘 한다면 아주 인기가 많은 캐릭터가 될 것이다.여자 3번은 이미 정해졌는데 차이현이 왜 자신에게 테스트를 시키는지 의아했지만 유현진은 입 밖에 내지 않고 묵묵히 대사를 외우다가 고개를 들어 말했다.“시작하시죠.”차이현이 고개를 끄덕였다.감정을 추스르고 고개를 쳐든 유현진의 눈빛은 도도하고 오만한 분위기를 풍겼다.그녀의 얼굴은 경국지색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을 만큼 경이로웠다. 모든 후궁들을 미모로 승부를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혹적인 자태에 애교가 섞인 말투는 왕은 물론이고 그녀를 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그녀에게 홀렸을 것이다.두 번째 테스트가 끝나자 현장은 또다시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두 번의
유현진은 그녀의 손목을 꽉 잡으며 나지막이 말했다.“나가서 얘기해.”차에 탄 후 그녀는 안에서 발생한 일을 모두 말했다. 이에 차미주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대박! 차이현이 너더러 귀비 캐릭터를 테스트하라고 했단 말이야? 정말 귀비 연기를 시키려고 그러나 봐.”유현진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몰라 나도. 이렇게 중요한 캐릭터를 어떻게 나한테 주겠어? 게다가 누가 연기할지 이미 정해졌다던데?”차미주는 차 문을 닫으며 말했다.“사실 그거 다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이야. 진짜 누구로 정했는지는 아무도 몰라. 게다가 차이현은 신인도 꺼리지 않아.”유현진은 그녀의 말을 듣고도 여전히 자신이 없었다.오히려 차미주가 자신만만하게 되물었다.“네가 연기를 마친 후 차이현 씨 아무 말 없었어?”유현진은 고개를 내저었다.“전화번호만 남기라고 했어. 임시방편으로 날 한번 테스트해본 것 같아.”차미주는 웃으며 말했다.“귀비 연기하면 너무 좋겠다. 물론 조연도 좋고. 이따가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제대로 축하파티 해줄게.”유현진은 웃으며 답했다.“아직 정해진 거 아무것도 없어. 너무 빨리 축하해주는 거 아니야?”“그럼 이제 곧 결혼의 무덤에서 벗어나는 걸 축하해줄게. 어차피 다 기쁜 일이잖아.”동인동에 새로 선 고깃집이 하나 있는데 요즘 장사가 아주 잘 되는 듯싶었다. 인스타그램에서도 고기가 맛있다고 해시태그를 하는 걸 자주 봐왔었다.두 사람이 도착했을 때 아니나 다를까 손님들이 꽉 차 있었고 입구엔 주차할 공간도 없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맞은편 백화점의 지하주차장에 주차했다.차미주는 3개월 전에 운전면허를 땄는데 자진해서 나서며 후진 스킬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이에 유현진은 차에서 내려 그녀를 도와 장애물이 있는지 체크했다.바로 이때 유현진은 유상수가 한 젊은 여인과 함께 맞은 편에 세워진 흰색 아우디에서 내리는 걸 발견했다.그 여인은 중 단발에 제법 영하게 옷을 차려입었는데 가격대도 꽤 높아 보였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녀는 유상수
그야말로 허울 좋은 말이었다.남들이 음탕한 생활을 즐기려고 애인을 만들 때 그는 식물인간이 된 아내 때문에 자신의 생리적 욕구를 채우지 못하여 마지못해 애인을 만나다니!이유만 바꾸면 아주 당연한 일이 되는 듯싶었다.인간은 동물도 아닌데 생리적 욕구가 웬 말인가?남자들은 불륜을 저지르면 다 이렇게 뻔뻔스러워지는 걸까? 모든 책임을 배우자한테 뒤집어씌운단 말인가?“네 엄마가 잘살아만 있다면 나 절대 딴 여자 안 만났을 거야. 우리가 어떻게 동고동락하며 회사를 세웠는데, 그런 감정은 아무나 대체할 수 없다고.”하현주가 사고를 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상수는 서둘러 이혼하겠다고 다그쳤었다. 유현진이 만약 이 일을 몰랐다면 지금 그의 말을 믿었을지도 모른다!유현진과 강한서의 결혼이 유씨 집안에 큰 도움이 되었기에 유상수는 비로소 이혼 생각을 접고 하현주를 보살핀다는 명목으로 딸아이를 견제했다.유현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그 여잔 이름이 뭐예요?”유상수는 흠칫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그걸 네가 알아서 뭐해? 네가 싫으면 앞으로 안 만나면 되잖아.”유상수는 이 얘기를 더 하고 싶지 않아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전에 보내라고 한 물건은 다 보냈어?”유현진은 입술을 앙다물며 대답했다.“네.”“한서랑 함께 나온 거야?”“아니요, 친구랑 왔어요.”유상수는 미간을 찌푸렸다.“결혼한 여자가 종일 노는 것에만 정신 팔지 말고 어떻게 하면 한서 마음을 잘 사로잡을지나 연구하란 말이야. 결혼한 지가 몇 년인데 아직도 애가 없어. 강씨 가문에서 퍽이나 널 예뻐하겠다.”그의 말을 들은 유현진은 헛구역질이 났다. 글자마다 그녀에게 이 결혼의 본질을 일깨워 주는데 그녀와 강한서는 애초에 평등한 사이가 아니었다. 남편의 비위를 잘 맞추어 유씨 가문을 지켜주는 것만이 그녀의 유일한 임무였다.이토록 의도성이 강한 결혼인데 강한서가 어찌 그녀를 존중해줄 수 있겠는가?유상수가 계속 말을 이어가려 할 때 휴대폰 벨 소리가 갑자기 울려 퍼졌다. 전화를
“그럼 일단 밥부터 먹으면서 생각해. 정 안 되겠다 싶으면 흥신소를 찾아서 너희 엄마를 위해 복수하자!”유현진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하현주가 의식만 있었으면 아마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끝장을 봤을 것이다. 그녀는 이런 치명적인 실수를 절대 용서치 않는 여자니까.한편 유현진은 일을 그 지경까지 크게 번지고 싶지 않았다. 그 여자가 대체 누구인지, 왜 그렇게 눈익은지 알아내고 싶을 뿐이었다.다음날 유현진이 꿈속에서 헤맬 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비몽사몽 하여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현진아, 아직 안 일어났어?”낮고 침착한 여자의 목소리에 유현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는 허둥지둥 침대에서 일어나 목소리를 가다듬고 나지막이 말했다.“어머님, 무슨 일이세요?”신미정이 담담한 어투로 대답했다.“오늘 친구 몇 명이 집에 놀러 오기로 했는데 네가 와서 좀 반겨주렴.”유현진은 너무 가기 싫었다. 신미정의 친구들은 전부 재벌집 사모님들이라 그녀가 상대하기엔 너무 버거웠다.하여 그녀는 조심스럽게 거절 의사를 표했다.“아가씨 집에 있잖아요? 아가씨가 저보다 그 사모님들과 더 잘 소통해요. 저는 말주변이 없어서 분위기만 어색해질 것 같아요.”“민서는 친구들과 함께 놀러 나갔어. 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널 부르겠니. 너 이후에 한서랑 함께 나가면 소통을 해야 할 장소가 꽤 많아질 거야. 그때마다 매번 피할 생각이니? 소문이라도 새어나가면 우리 한주 강씨 가문의 며느리가 얼마나 뒤처지는 줄 알겠어.”유현진은 입을 꾹 다물었다.“정리 다 하거든 일찍 와.”말을 마친 신미정은 전화를 툭 끊었다.유현진은 마지못해 물건을 정리하고 신미정의 집으로 향했다.신미정은 젊을 때 한주시의 상류층 여인이었다. 한주 강씨 가문으로 시집온 후 가문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그녀도 사모님들 사이에서 지위가 점점 높아졌다. 한주 강씨 가문과 일적으로 왕래가 있는 사모님들을 자주 불러 모임을 갖곤 했는데 일상 소통을 한다기보단 서로 정
“이 사모님, 그런 말 함부로 하면 안 돼요.”진 사모님이 그녀에게 눈치를 줬다. 유현진이 아무리 못나도 어쨌거나 신미정의 며느리이기에 평소 몇 마디 놀려대는 건 괜찮지만 지나치게 헐뜯는 건 다소 부적절했다.다만 이 사모님은 진 사모님이 믿지 못하는 줄로 착각했다.“함부로 한 말 아니에요. 내 조카가 그해 교통관리센터에서 일했는데 마침 그 사건을 조사하면서 얘기한 거예요. 차가 훼손이 워낙 심하여 두 사람 다 살아남지 못했을 텐데 구조할 때 보니 저 아이 엄마만 심하게 다치고 저 아이는 찰과상만 입었다니까요.”“애가 팔자가 너무 세요. 여자가 팔자가 세면 남편과 자식이 일찍 죽는다던데...”“이 사모님!”신미정의 표정이 언짢아지자 진 사모님이 탁자 밑에서 발로 그녀를 걷어찼다.이 사모님은 그제야 자신이 무심결에 신미정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걸 알아챘다.신미정이 바로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었는데 그런 그녀 앞에서 남편과 아이가 빨리 죽는다는 둥 입을 나불거리고 있으니 누가 봐도 그녀를 겨냥한 말이었다.이 사모님은 당황해하며 횡설수설 변명했다.“강 사모님, 그러니까... 그 뜻이 아니라...”신미정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봤다.“무슨 뜻인데요?”이 사모님은 손이 벌벌 떨리고 말까지 더듬었다.이때 백 사모님이 웃으며 말했다.“미정 씨 화내지 마세요. 이 사모님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닐 거예요. 이분이 어떤 사람인지 미정 씨도 잘 알잖아요.”신미정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담담하게 말했다.“이 나이가 되도록 계속 단순한 것도 이 회장님의 복인 것 같아요.”이 사모님은 야유에 찬 그녀의 말을 바로 알아채고는 표정이 굳어버렸지만 감히 한마디도 반박하지 못했다.신미정은 오늘 백 사모님만 초대했고 남은 두 명은 그저 들러리일 뿐인데 다함께 있는 자리에서 이 사모님이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다. 신미정이 당장에서 버럭 화내지 않은 걸 천만다행으로 여겨야 했다.유현진은 복도 모퉁이에 서서 사모님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한가하게 체리를 먹었다.
강한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대응할 능력도 없으면서 거길 왜 가? 큰코다쳐야 정신 차리지.”여기까지 말하니 민경하도 입을 꾹 다물었다....백 사모님은 위엄이 있는 듯싶었다. 신미정은 다른 두 사모님보다 그녀에게 더 깍듯이 대했다. 밥은 입맛에 맞는지, 수다 떨 얘기가 적절한지, 늘 백 사모님의 취향을 맞춰주었다.유현진은 당연히 그녀들의 대화에 끼지 못했다. 다행히 그녀들도 애초에 유현진을 의논한 것 외에는 더이상 입에 올리지 않았다.하여 유현진은 얌전히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나름대로 홀가분하게 시간을 보냈다.식사를 마친 후 사모님들은 화투를 시작했고 유현진은 그녀들에게 차와 디저트를 대접했다.그러고는 옆에 앉아 잠자코 구경했다.손님이 떠나지 않으니 그녀도 먼저 집을 나갈 수 없었다. 신미정이 무척 싫어할 테니까.유현진은 화투에 흥취가 없어 잠시 구경하더니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선셋 스타의 페이스북 계정을 보름 동안 업데이트하지 않아서 얼핏 들어가 봤는데 댓글이 수천 개 달렸다. 그중 대부분은 신작이 언제 나오냐고 재촉하는 내용이었고 악플도 적잖게 보였다. 이 악플러들은 절대다수가 송민영만 덕질하는 팬이었다.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 ‘비밀의 연인’이 방영되면서 그녀는 송민영의 인기를 너무 많이 빼앗았다.사실 유현진은 처음에 그 작품의 더빙을 하고 싶지 않았다. 송민영과 자꾸 엮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제작팀에서 여러 번 찾아왔고 출연료도 꽤 높았다. 마침 그때 강한서의 생일선물을 고르다가 스톤 하나가 마음에 들었는데 수중의 돈이 모자라 결국 이 작품을 받았다.이 작품으로 송민영은 국민 인지도가 상승했다. 앞선 교통사고로 조작만 하지 않았어도 인기작품을 하나만 더 받으면 톱스타 계열에 오를 게 뻔했다.다만 인기작품의 더빙을 맡은 유현진의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인기 검색어 순위에 올랐어도 동종업계의 사람들이 아닌 이상 더빙인지 원음인지 딱히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송민영의 팬들이 그녀가 인기 검색어에 올랐다고 꼬박 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