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 대추차 좀 끓였는데 한 잔 드릴게요.”강한서는 안경을 벗고 눈가를 문지르더니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마워요. 거기 두시면 돼요.”가정부는 찻잔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다.한 모금 마시자마자 강한서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맛은 예전 같지 않았고, 쓴맛이 감돌아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이내 찻잔을 옆으로 치워두고 책을 집어 들려는 순간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고개를 돌려 힐긋 쳐다보니 낯선 번호라서 그는 받지 않았다.벨 소리가 멈춘 뒤 곧바로 다시 전화가 걸려왔는데, 그제야 느긋하게 통화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 한수 씨 맞으시죠? 다름이 아니라 아내 분이 저희 바에서 술 마시다가 취했는데 데리러 와줄 수 있으실까요?”“잘못 걸었어요.”강한서는 쌀쌀맞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그런데 잠시 후 상대방한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고, 강한서는 눈살을 찌푸리며 받았다.“번호 맞는데요? 아내 분께서 이 번호를 알려줬거든요. 혹시 아내 분 댁에 계신가요? 어떻게 아니라고 확신하죠?”강한서는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전 한수가 아닙니다.”말을 마치고 나서 다시 전화를 끊었다.상대방한테서 재차 전화가 걸려오지는 않았지만, 몇 분 뒤 문자로 사진 한 장을 받았다.사진 속 배경은 어두컴컴했으나 카운터에 엎드려 인사불성이 된 여자가 바로 유현진이라는 걸 똑똑히 보아낼 수 있었다.강한서의 눈빛이 서서히 어두워지더니 곧바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가게가 어디시죠?”...“내 술은?”유현진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빈 술잔을 흔들며 혀 꼬인 소리로 물었다.“누가 내 술 마셨어?”바텐더는 그녀에게 물 한 잔을 건네며 말했다.“여기요.”유현진은 헤실헤실 웃는 얼굴로 술잔을 들고 벌컥벌컥 마셨는데 곧바로 몽땅 토해내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지금 술이라고 하면서 물을 준 거야? 잘 들어, 내 남편 완전 부자야! 한주시 모든 술집을 다 사들일 수 있는데, 고작 술값을 못 낼 것 같아? 술 따라!”바텐더도 이런
문을 열고 들어선 남자는 슈트를 쫙 빼입고 어딘가 차분한 분위기를 풍겼는데, 바를 찾은 다른 손님과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이러한 차림새는 별의별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술집보다는 셀럽들만 드나드는 회원제 클럽에서나 볼 법했다.물론 부자들의 생각은 종잡을 수 없었다. 어쩌면 동네 술집의 푸근한 분위기를 체험해보고 싶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바텐더는 가식적인 미소를 장착했다.“어서 오세요.”유현진은 불쾌한 듯 술잔으로 테이블을 내리치며 말했다.“어서 오세요는 무슨, 아직 술도 안 따라줬잖아. 얼른 따르지 않고 뭐해?”바텐더도 술주정하는 그녀에게 두손 두발을 들었기에 꾹 참고 달래주었다.“손님, 곧 마감할 거라서 남은 술이 없어요.” “거짓말, 다른 사람들은 다 술 마시고 있는데 왜 나만 없어?”그녀를 속이기 쉽지는 않은 듯싶었다. 부가티 차주가 코앞까지 다가오자 바텐더는 문득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다.“진짜 없어요. 저분이 술을 몽땅 결제했는데, 아니면 내일 다시 오실래요?”유현진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제 몸도 가누지 못한 채 뒤돌아 앉았고, 깔끔한 옷차림의 누군가가 걸어오는 모습을 어렴풋이 보았다.테이블을 짚고 휘청거리며 일어선 그녀는 상대방의 멱살을 덥석 움켜쥐더니 손가락으로 턱을 가리켰다.“술을 몽땅 결제했다는 사람이 당신이야?”발갛게 달아오른 볼과 흐트러진 옷, 헝클어진 머리카락, 그리고 온몸으로 술 냄새를 풍기는 그녀한테서 평소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강한서는 미간을 찌푸리며 턱을 가리키고 있는 그녀의 손가락을 아래로 내렸다.“대답해, 네가 술 다 샀냐고!”바텐더가 대충 둘러댄 말을 철석같이 믿은 그녀는 단단히 따질 기세로 강한서를 노려보았다.“내가 먼저 왔는데 그쪽이 무슨 자격으로 술을 다 결제하는 거지? 선착순 몰라?”바텐더는 강한서가 화를 낼까 봐 조마조마한 가슴을 부여잡고 얼른 끼어들었다.“손님, 이분이 술에 취해서... 신경 쓰지 마세요.”“안 취했거든!”유현진은 고개를 홱 돌리면서 두 눈을 부릅떴다.“
그녀는 강한서의 턱을 받쳐 들고는 엄지손가락으로 그의 입술부터 목까지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곤드레만드레 취한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그의 입술에 가까이 다가가 나지막이 말했다.“네가 잘 생겼으니까 난 솔로야.”술기운이 살살 풍기는 따뜻한 숨결에 왠지 모르게 야릇한 분위기가 풍겼다.그녀의 하얗고 가느다란 손이 그의 가슴팍을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반쯤 감긴 두 눈으로 유혹의 눈빛을 보냈다.“내가 60만 원 주면 내 남자친구 할래?”그러자 강한서의 낯빛이 무서울 정도로 어두워졌다. 그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그녀를 차갑게 빤히 쳐다보았다.“60만 원? 너무 적은 거 아니야?”유현진이 눈썹을 치켜올렸다.“지금 시세에 60만이면 적지 않을 텐데?”“지금 시세?”강한서가 코웃음을 쳤다.“아는 게 많은가 보네.”그녀는 잠깐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마음을 굳게 먹은 듯했다.“알았어! 얼굴값 하는 것 같으니까 10만 더 줄게. 70만, 어때? 더는 못 줘.”지금 이 순간 강한서는 그녀가 정신을 차리게끔 당장이라도 그녀의 머리를 옆에 있는 어항에 푹 담가버리고 싶었다.‘오늘 밤 내가 안 왔더라면 아무 남자랑 자겠단 말이잖아!’그 생각에 강한서의 낯빛이 또 더 어두워졌다.유현진은 위험이 닥쳐온 줄도 모르고 지갑에서 은행 카드 한 장을 꺼내 강한서의 셔츠 옷깃을 풀어 카드를 옷깃 안에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남자에 굶주린 여자처럼 그의 가슴을 만지며 빵끗 웃었다.“내 돈 떼먹어서는 안 돼.”강한서는 깊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그녀의 목덜미를 잡고 밖으로 나왔다. 그때 바의 종업원이 그를 불러세웠다.“한수 씨, 사모님께서 아직 계산 안 하셨어요.”강한서는 발걸음을 멈추고 속만 썩이는 여자를 힐끗 보고는 들고 있던 가죽 재킷을 종업원에게 건넸다.“안에 골드카드 있어요. 비번 없으니까 그냥 긁으면 돼요.”짜증 섞인 강한서의 표정을 본 종업원은 한시도 지체할세라 째깍 결제한 뒤 카드를 다시 재킷에 넣어 두 손으로 강한서에게 건넸다.“조심히 가세요,
그녀의 두 눈은 동그랗고 큰 데다가 눈꼬리도 길었다. 정신이 또렷했을 때는 늘 차가운 빛이 담겨있었지만 웃을 때는 또 아름답고 매력이 넘쳤다. 지금처럼 술에 취해 실눈을 떴을 때가 가장 유혹적이었고 저도 모르게 사람을 홀렸다.강한서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런 그녀를 빤히 내려보다가 낮은 중저음으로 말했다.“어디서 자고 싶은데?”유현진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진지하게 고민하더니 결국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너희 집.”강한서의 두 눈이 번쩍였다.“정말이야?”눈앞이 빙빙 돌아 유현진은 찌푸린 얼굴로 고개를 마구 저었다. 그러고는 강한서의 얼굴을 받쳐 들고 해롱해롱한 눈빛으로 말했다.“너한테 70만 원이나 줬는데 호텔 방까지 잡으면 돈 너무 많이 쓰잖아. 돈도 아낄 겸 그냥 너희 집으로 가. 나중에 이혼 소송할지도 모르거든.”강한서는 이마에 핏줄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의 주도면밀한 계획을 칭찬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그가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우리 집 간 걸 남편이 알기라도 하면 어떡해?”그러자 유현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난 남편 없어. 과부야.”말문이 막힌 강한서는 이를 꽉 깨물었다.“과부가 이혼을 해?”유현진이 미간을 확 찌푸렸다. 정신이 해롱해롱한 탓에 앞뒤 말이 전혀 맞지 않았다. 강한서 때문에 술을 깨기는커녕 오히려 더 헷갈렸다.“짜증 나! 넌 무슨 말이 이렇게 많아! 내 남자친구 하기 싫으면 돈 다시 돌려줘!”그러고는 손을 마구 흔들며 강한서의 몸을 더듬거렸다. 강한서는 그녀의 두 손을 꽉 누르고 안전벨트를 해준 뒤 무덤덤하게 말했다.“이미 늦었어.”그러고는 차에 시동을 걸어 질주해갔다.“차 세워. 내릴 거야!”유현진이 낮은 목소리로 반항했다.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긴 했지만 핸들을 뺏는 등 위험한 행동은 하지 않고 그를 빤히 째려보기만 했다. 그 모습은 마치 위협만 가하고 할퀼 용기는 없는 버려진 길고양이 같았다.강한서는 그녀의 말을 들은 체 만체했다.“지금 날 납치하려고?
유현진이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눈시울도 점점 붉어졌다. 그녀가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네 말이 맞아. 그 사람은 날 신경 쓰지도 않아...”그녀가 추돌 사고를 당하고 언제라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그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있었다.강한서의 얼굴이 찌푸려졌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이상했다. 그는 변명하듯 설명을 늘어놓았다.“이런 말도 안 되는 꿍꿍이를 누가 믿냐 이거야.”유현진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고개를 홱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강한서는 아직 하고 싶은 얘기가 더 남았지만 꾹 참았다.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사람과 무슨 말이 통하겠는가 말이다. 무슨 얘기를 하든 결국에는 화가 날 것인데 그럴 바엔 차라리 아무 얘기도 하지 않는 게 나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아름드리 펜션에 도착했다. 멀리서부터 인기척을 들은 가정부가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가려던 그때 강한서가 차에서 그녀를 안고 내렸다. 가정부가 우산을 들고 가까이 가서야 그 여자가 유현진이라는 걸 알았다.“사모님 왜 이래요?”강한서는 가정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욕실에 가서 물 좀 받아놔요.”유현진을 안고 위층으로 올라가던 그때 강한서의 시선이 그녀의 눈가에 닿았다. 눈가가 촉촉한 걸 보니 아무래도 아까 울었나 보다. 그 모습에 강한서는 입을 삐죽거렸다.“대표님, 물 다 받아놓았어요.”가정부가 도와주려 하자 강한서가 그녀의 도움을 피하며 덤덤하게 말했다.“해장국 좀 끓여주세요.”가정부는 유현진을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물러났다.욕조의 뜨거운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면서 욕실 전체가 수증기로 자욱했다.강한서는 그녀를 침대 위에 눕히고 잠깐 내려보다가 그녀가 입은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그녀의 하얀 속살이 예고 없이 드러났다. 그는 움직임을 멈추고 찌푸린 얼굴로 수건을 그녀의 몸에 휙 던지고는 돌아섰다.욕실 문을 연 순간 문 앞에 있던 가정부와 딱 마주치고 말았다. 그가 갑자기 문을 열어 당황한 가정부는 말까지 더듬거렸다.“
유현진은 마치 렉에 걸린 것처럼 멈칫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강한서가 그녀 옆에 비스듬히 누워있었는데 얼굴 절반이 베개에 가려져 있었다. 갑자기 잠에서 깨서 그런지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시선을 아래로 향해보니 그녀의 손이 강한서의 가슴팍에 머물러 있었고 그의 가슴 근육을 어루만지고 있었던 것이었다.화들짝 놀란 그녀는 재빨리 손을 거두었다.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지면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이런 질문을 내뱉었다.“네가 왜 여기 있어?”강한서는 눈 뜨기도 귀찮았다.“네가 나랑 밤을 보내겠다고 했잖아.”유현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필름이 끊겼던 장면들이 갑자기 머릿속에 하나둘 생각나기 시작했다.“너랑 밤을 보내고 싶은데 얼마야?”“귀하게 생긴 게 싸지는 않겠어.”“너랑 자고 싶어.”...유현진은 지금 당장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내가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어!’그녀는 선택적 난청처럼 강한서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런데 그때 강한서가 손을 뻗어 그녀를 확 잡아당겼다.“아직 돈 안 줬어. 어딜 도망가려고?”“누... 누가 도망간다고 그래?”유현진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이불로 몸을 감쌌다. 그녀의 두 볼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그나저나 무슨 돈?”강한서는 왼손으로 머리를 지탱하고 오른손으로 이불을 잡아당겼다.“밤 함께 보낸 값 그러지. 70만 원.”‘취해서 한 소리인데 정말 믿은 거야?’유현진이 빨개진 얼굴로 이를 꽉 깨물었다.“우린 그저 침대에서 단순히 잠만 잤을 뿐인데 내가 왜 70만 원을 줘야 해?”‘날 바보로 아나? 어젯밤에 아무 일도 없었잖아!’강한서가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단순히 잠만 잤길래 그 정도지, 다른 게 있었으면 그 돈으로 됐겠어?”유현진은 할 말을 잃었다.“어젯밤에 취해서 한 말을 곧이곧대로 지켜야 해?”그러자 강한서가 무섭게 실눈을 뜨며 말했다.“취하면 아무 남자랑 같이 밤을 보내도 돼? 유부녀라는 사
이건 키스가 아니라 깨문 것이었다!유현진은 그를 벗어나려 힘껏 발버둥 쳤지만 강한서는 이불로 그녀의 사지를 마치 누에처럼 꽁꽁 감싸고 그녀의 입술을 마구 비벼댔다.남자의 힘을 이길 수 없었던 그녀는 반항하지도 못했고 발버둥 치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렇게 강한서도 힘을 점점 풀었고 깨물던 것이 나중에는 키스로 변해버렸다.강한서의 입술이 그녀의 하얗고 섹시한 쇄골에 닿는 순간 유현진이 갑자기 말했다.“강한서, 지금 질투 나서 나한테 화내는 거야?”강한서는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의 몸 아래에 있던 유현진이 그를 빤히 올려다보며 또박또박 물었다.“나 사랑해?”강한서는 손에 힘을 풀고 몸을 일으키더니 그녀를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착각하지 마, 유현진! 우리가 이혼하기 전까지 넌 여전히 한주 강씨 가문 맏며느리야! 자신의 본분을 지켜. 괜히 사고 쳐서 따라다니면서 사고 수습하게 하지 말고!”그는 옷을 입고 안방을 나섰다. 유현진은 천장을 빤히 올려다보며 자신을 비웃었다. 그의 마음속에 그녀의 자리가 없다는 걸 뻔히 알고 있는 그녀였다. 그의 화를 돋우기 위해 한 말이었지만 그런데도 그 질문을 내뱉는 순간 약간의 기대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여전히 반전이라곤 없었다.그녀는 강한서의 스킨십에 가슴이 떨린 자신이 너무도 싫었고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기대하는 자신이 너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그때 휴대폰 벨 소리가 다시 울리자 유현진은 충전기를 빼고 통화버튼을 눌렀다.“현진아.”차미주의 목소리에 유현진이 대답했다.“응.”차미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놀라 죽는 줄 알았잖아. 어젯밤에는 왜 안 들어왔어? 연락도 안 되고 대체 어디 간 거야? 나 하마터면 신고할 뻔했어!”숙취 때문에 두통이 생겨난 유현진은 관자놀이를 주물렀다.“아무 일 없어. 어젯밤에는... 엄마랑 있었어. 배터리가 없어서 휴대폰이 꺼졌어. 충전기도 없었고.”그녀는 차미주가 걱정할까 봐 술에 잔뜩 취했었다는 사실을 숨겼다.“알았어.
신미정은 무슨 뜻이지?송민영이 임신한 사실을 아는 상황에서 가정부를 통해 약을 먹이다니. 여자는 그들 가문을 위해 아이를 낳아주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인가?‘아이를 낳기만 한다면 혼인을 하든 말든 상관이 없다는 거야?’유현진의 찡그린 표정을 본 가정부가 말했다.“큰 사모님께서 특별히 대추를 많이 넣으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쓰지는 않을 거예요.”유현진은 입술을 잘근 씹더니 말했다.“장씨 아주머니, 아주머니도 보셨잖아요. 저와 한서는 곧 이혼해요. 약은 필요 없어요.”“무슨 말씀이세요, 사모님. 부부 사이에 마찰도 있는 거죠. 싸울 때마다 이혼을 입에 달고 사실 수는 없어요. 대표님께서 만약 사모님을 걱정하지 않으셨다면 어젯밤 전화를 받고 곧바로 오시지 않았을 거예요. 그리고 말인데요, 곧 이혼할 부부가 잠자리를 가지는 법은 없어요.”유현진은 할 말을 잃었다.그녀는 어떻게 가정부에게 어젯밤에 두 사람은 같은 침대에서 잠만 잤다고 알려야 할지 몰랐다.“큰 사모님께서 이 약은 두 분이 잠자리를 가진 후에 드시라고 했어요. 임신 확률을 높여준대요. 사모님께서 임신을 하시면 가정에도 행복이 깃들 거예요.”유현진이 수차례나 들었던 말이었다.처음에는 그녀 역시 이런 줄로만 알았다. 강한서와 그녀의 혼인에 감정의 기초가 없었기 때문에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긴다면 그들을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것으로 말이다.하지만 모든 건 그녀의 헛된 희망이었고 강한서는 그녀와 아이를 가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녀 역시 서서히 강한서를 묶어두는 도구로 아이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아이는 무고한 생명이었고 부모의 사랑의 결실로 태어나야 하는 것이지 도구로 사용되어선 안 되었다.지금의 그녀는 강한서와 아이를 가지려고 들지 않았고 그녀 자신의 가치를 아이를 낳는 것에 두지 않았다.“장씨 아주머니, 저희는 지금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어요.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을 거예요.”“사모님, 큰 사모님께서 저한테 반드시 사모님께서 약을 드시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