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부가 말리려고 하였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산산조각이 된 물건을 본 가정부는 아연실색이 되어 어쩔 줄을 몰라 하였다.“아가씨, 그걸 밟으시면 어떡해요?”강민서는 콧방귀를 뀌며 말을 이어나갔다.“유 씨 가문에서 주는 보잘것없는 물건은 울 엄마도 안 받아!”“그래도 밟고 망가뜨리면 안 되죠. 이걸 사모님께 어떻게 드려요? 강 대표님께서 특별히 저한테 직접 사모님께 드리라고 당부하셨는데 이렇게 만들어 놓으시면 강 대표님한테 뭐라고 말씀드려요?”“오빠가 물어보면 그냥 엄마한테 드렸다고 해. 오빠가 어떻게 알아? 줬는지 안 줬는지?”“그래도…”강민서는 매서운 얼굴로 가정부를 째려보았다.“뭐가 그래도 야. 내가 다 책임질 테니까 이 쓰레기 빨리 갖다 버려. 보는 것도 짜증 나니까!”가정부는 그저 묵묵히 치우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유현진이 돌아오자마자 차미주는 그녀의 목에 붙혀진 반창고를 발견하였다. 그녀의 집요한 추궁 끝에야 그녀는 어제 유현진에 일어난 일에 대해 알 수 있었다.“미친년 아니야 진짜, 배속의 애가 두렵지도 않대?”차미주는 그녀의 일이라면 항상 자신 일처럼 화내곤 하였다. 그리고 뒤이어 물었다.“벤틀리남이 너 도와준 거고? 그래서 커피 사다 준거야?”“아니면?”차미주는 그녀의 다리를 치며 소리쳤다.“야 밥이라도 사줘야지! 커피가 말이 돼? 너무 성의 없잖아!”“두 번밖에 안 본 사이에 밥은 너무 오버 아니야?”“오버?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처음 본 사이에도 밥 먹는데 너희 둘 삼 일 동안 두 번이나 마주쳤어. 그런데도 인연이 아니라고? 벤틀리남 몇 살이래? 잘 생겼어?”유현진은 그녀가 뭘 생각하는지 알고 있었다.“하고 싶은 말이 뭐야?”“아무것도, 그냥 사람 좋아 보이길래 어장에서 키워도 될 거 같아서 말이야."유현진은 베개를 그녀의 얼굴에 던지며 말했다.“키우긴 뭘 키워 나 유부녀야! 뭐라는 거야 진짜!”차미주는 베개를 만지며 배시시 웃었다.“곧 이혼하는거 아니야? 미리 썸 타는
“네 그 가방 말이야, 인터넷에 올리라고 했잖아. 벌써 물어본 사람 엄청 많아.”유현진은 너무 놀랐다.“그렇게 많아? 우리나라 1인당 소비 수준이 그 정도야?”“뭐라는 거야? 와서 다 보기만 한 거야. 아직 이 가방 인터넷에 올라온 적 없거든. 빌려 달라는 인플루언서들은 몇 있었어. 빌려서 사진만 찍고 싶은 거겠지.”유현진은 머리를 가로저었다.“구입만 되지 빌리는 건 안돼”“이미 말했지, 거기서 몇 명 걸렀거든. 근데 한 분이 진짜로 사고 싶은 의향이 있나 봐. 삼 일 동안 나한테 카톡 보냈거든. 그리고 상세 컷도 여러 장 요구하기도 했어. 그리고 직접 물건 보고 가격 협상할수 있냐고 물어보길래 일단 너 대신 답해줬어.”“왜 그러는지 알아?”차미주는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말을 이었다.“내 생각에는 부잣집 사모님들 같지는 않았어. 그 사람 약속 잡은 장소가 중고 사치품 가게거든. 알아봤더니 거기 브랜드 후원 없는 연예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래. 물론 명문가 자제들도 많이 애용하는 곳이기도 하고.”유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일 직접 한번 가볼게.”“마지막 이건 오늘 완전 진짜 제일 중요한 일.”차미주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말을 이었다.“차이현 감독님 신작 ‘봄의 연인’ 배우 찾고 있는 중이야. 물론 주인공은 이미 확정된 상태이긴 하지만 너도 알잖아, 차이현 감독님 여성 위주로 작품 찍는 거. 조연이라도 거기에 출연하기만 하면 대박 나. 이번 주 금요일 힐튼 호텔에서 카메라 테스트 있어. 네 프로필 그쪽으로 보냈으니까 가봐.”유현진은 너무 놀랐다.“나 작품 한 것도 없는데 프로필 어떻게 보낸 거야?”“나도 이 바닥에서는 잔뼈가 굵네요. 이래 봬도 인맥 있어! 매니저란에는 일단 내 이름 적어 놓기는 했는데 회사랑 계약하게 되면 그때 가서 바꿔.”차미주는 웃으며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오디션 보러 갈 거야?”“당연하지, 이 기회 네가 잡아준 거잖아, 안 갈 이유 없는데?”차미주는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말했다.“근데 두 가지
놀라움이 묻어나는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너무 익숙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혐오감이 몰려왔다.유현진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힐긋 바라보았다.“송민영 씨, 오랜만이네요.”뒤늦게 찾아온 사장님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서로 아는 사이인가요?”송민영은 코트를 여미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이내 여유롭게 걸어가 유현진의 맞은편에 앉았다.“알다 마다요. 아주 잘 알고 있죠.”순간 그녀의 말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사장님은 웃으면서 말했다.“지인이셨군요. 그럼 두 분이 따로 얘기해볼래요?”송민영은 사장님을 힐끔 바라보았다.“단지 알고 있을 뿐 친분이 있는 건 아닙니다.”단 한마디로 두 사람의 관계가 밝혀지자 사장님은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유현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박스를 앞으로 내밀었다.“사장님, 매장 방침대로 하시면 돼요. 우선 검수부터 하시죠.”송민영도 딱히 코멘트가 없자 사장님은 가방을 들고 그 자리에서 살펴보기 시작했다.룸 안에 아주 좁은 티 테이블이 있었고, 유현진과 송민영의 거리는 불과 1m도 되지 않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팽팽한 분위기 때문에 몇 미터나 떨어진 사장님마저 가슴이 조마조마했다.“얼굴이 꽤 두껍군요. 선물 받은 물건을 팔아버리다니? 창피하지도 않아요?”“단지 필요 없는 물건을 처리했을 뿐인데, 그게 왜 창피한가요? 그쪽 말에 따르면 남이 버린 물건에 환장하는 사람은 얼마나 창피하겠어요? 그냥 죽어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네요?”유현진은 싱긋 웃었다.“송민영 씨도 멀쩡하게 잘살고 있잖아요?”송민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사장님도 같이 있는지라 괜히 소란을 피웠다가 소문이라도 날까 봐 억지로 화를 꾹 참았다.20분 정도가 흐르자 사장님은 검수를 마치고 정품임을 확인한 후 유현진한테 얼마에 팔 건지 물었다.“10억이요.”말이 끝나자마자 사장님이 가격을 감정하기도 전에 송민영이 펄쩍 뛰었다.“10억? 당신 돈에 미쳤어요? 4억 정도 되는 가방을 나한테 10억에 파는 거예요? 내가 바보인 줄 알아요?”유현진은
송민영은 자신의 추측에 더욱 확신하며 입꼬리를 올렸다.“자기 것도 아닌데 붙잡아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그녀는 이 한마디로 유현진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을 거로 확신했다. 비록 만난 적이 몇 번밖에 없었지만, 감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쉽게 보아냈다. 그녀가 강한서와 조금이라도 다정하게 붙어있기라도 한다면 유현진의 두 눈에는 늘 질투심으로 가득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그녀의 예상과 달리 유현진은 아무렇지 않은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힐긋 쳐다보았다.“송민영 씨의 생각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그래서 살래요? 말래요?”이번에는 송민영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사자니 손해 보는 것 같고, 안 사자니 마치 그녀를 조롱하는 듯한 유현진의 모습이 너무 얄미웠다.유현진은 그녀의 생각을 훤히 꿰뚫어 보았다. 곧이어 가방을 다시 박스에 집어넣고 뚜껑을 닫는 순간 송민영이 불쑥 말했다.“살게요!”유현진은 멈칫하더니 고개를 들었다.“일시불이에요.”송민영은 이를 악물었다.“걱정하지 마세요. 한 푼도 빼먹지 않을 테니까.”10억은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이내 송민영은 밖으로 나가서 통화했고, 유현진이 룸에서 30분 넘게 기다리고 나서야 그녀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하지만 그녀는 어두운 얼굴로 룸으로 들어섰다.사장님이 지켜보는 와중에 두 사람은 거래를 성공적으로 진행했고, 송민영은 그 자리에서 유현진의 계좌에 10억을 이체했다.송민영이 사인하려고 팔을 뻗는 순간 손목이 드러났는데, 유현진은 그녀의 손목에서 반짝거리는 낯익은 다이아몬드 팔찌에 시선이 사로잡혔다.디자인과 모양이 그녀가 강한서에게 돌려준 팔찌와 매우 유사했다.사인을 마친 송민영은 자신의 손목을 빤히 바라보는 유현진을 발견하고는 팔을 들어 올려 생긋 웃었다.“이 팔찌는 내가 데뷔한 해에 한서가 선물해준 거예요. 그쪽한테도 다이아몬드 액세서리만 선물하지 않았어요? 왜 그런지 알아요?”유현진은 흠칫하더니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그녀의 표정은 이미 송민영의 추측이 정
송민영은 어이가 없었다.입 아프게 떠들어댔더니 머릿속으로 재산을 회수할 궁리만 했단 말인가?송민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유현진 씨, 당신 제정신 맞아요? 한서가 그쪽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난 이미 한서의 아이까지 가졌다는데 끈질기게 사모님의 자리를 꿰차고 있는 건 뭐죠? 좀 뻔뻔스럽다는 생각은 안 드나요?”유현진이 피식 웃었다.“송민영 씨는 연예인 아닌가요? 나랑 했던 말들을 혹시라도 온라인에 유포하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내연녀 신분인 걸 뻔히 알면서도 왜 집착하는 거예요? 심지어 와이프한테 이혼하라고 강요하다니, 그동안 어렵게 쌓아온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망가지고, 이것 때문에 엄청난 위약금을 물어줘야 할지도 모르는데 수지가 맞는다고 생각해요?”송민영은 그녀의 말에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내가 이 바닥에 몸을 담근 지 몇 년이라고, 이미 별의별 상황을 다 겪어봤죠. 지난번 추돌사고만 하더라도 온 동네가 떠들썩했지만, 결국에는 없던 일로 마무리되지 않았나요? 매번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하지 않아요? 한서를 제외하고 과연 그럴만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비록 한 달 동안이나 잠수 타게 되었으나 그 대가로 ‘정상에서’의 더빙을 손에 넣었죠.”유현진의 미소가 서서히 굳었다.“무슨 더빙이라고요?”“’정상에서’라고 형편없는 게임이...”송민영은 눈을 흘기며 말했다.“얘기해봤자 내 입만 아프지, 제발 눈치 챙겨서 제 발로 나가줄래요? 나중에 내 배가 점점 커지면 당신은 쫓겨날 신세밖에 더 있겠어요? 그때 가서 할머니가 아무리 원치 않더라도 자기 집안의 핏줄을 밖에 남겨둘 수는 없잖아요.”유현진은 손이 떨리고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 들었다.어쩐지 오디션 당일에 그가 섬블 컴퍼니에 나타났더라니, 이미 결정 난 계약을 섬블 컴퍼니에서 번복한 이유가 고작 다른 여자에게 잘 보이려고 그녀의 손에서 계약서를 빼앗아 간 거였어?‘강한서, 정녕 날 한 번이라도 존중해
“대표님, 대추차 좀 끓였는데 한 잔 드릴게요.”강한서는 안경을 벗고 눈가를 문지르더니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마워요. 거기 두시면 돼요.”가정부는 찻잔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다.한 모금 마시자마자 강한서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맛은 예전 같지 않았고, 쓴맛이 감돌아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이내 찻잔을 옆으로 치워두고 책을 집어 들려는 순간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고개를 돌려 힐긋 쳐다보니 낯선 번호라서 그는 받지 않았다.벨 소리가 멈춘 뒤 곧바로 다시 전화가 걸려왔는데, 그제야 느긋하게 통화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 한수 씨 맞으시죠? 다름이 아니라 아내 분이 저희 바에서 술 마시다가 취했는데 데리러 와줄 수 있으실까요?”“잘못 걸었어요.”강한서는 쌀쌀맞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그런데 잠시 후 상대방한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고, 강한서는 눈살을 찌푸리며 받았다.“번호 맞는데요? 아내 분께서 이 번호를 알려줬거든요. 혹시 아내 분 댁에 계신가요? 어떻게 아니라고 확신하죠?”강한서는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전 한수가 아닙니다.”말을 마치고 나서 다시 전화를 끊었다.상대방한테서 재차 전화가 걸려오지는 않았지만, 몇 분 뒤 문자로 사진 한 장을 받았다.사진 속 배경은 어두컴컴했으나 카운터에 엎드려 인사불성이 된 여자가 바로 유현진이라는 걸 똑똑히 보아낼 수 있었다.강한서의 눈빛이 서서히 어두워지더니 곧바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가게가 어디시죠?”...“내 술은?”유현진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빈 술잔을 흔들며 혀 꼬인 소리로 물었다.“누가 내 술 마셨어?”바텐더는 그녀에게 물 한 잔을 건네며 말했다.“여기요.”유현진은 헤실헤실 웃는 얼굴로 술잔을 들고 벌컥벌컥 마셨는데 곧바로 몽땅 토해내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지금 술이라고 하면서 물을 준 거야? 잘 들어, 내 남편 완전 부자야! 한주시 모든 술집을 다 사들일 수 있는데, 고작 술값을 못 낼 것 같아? 술 따라!”바텐더도 이런
문을 열고 들어선 남자는 슈트를 쫙 빼입고 어딘가 차분한 분위기를 풍겼는데, 바를 찾은 다른 손님과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이러한 차림새는 별의별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술집보다는 셀럽들만 드나드는 회원제 클럽에서나 볼 법했다.물론 부자들의 생각은 종잡을 수 없었다. 어쩌면 동네 술집의 푸근한 분위기를 체험해보고 싶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바텐더는 가식적인 미소를 장착했다.“어서 오세요.”유현진은 불쾌한 듯 술잔으로 테이블을 내리치며 말했다.“어서 오세요는 무슨, 아직 술도 안 따라줬잖아. 얼른 따르지 않고 뭐해?”바텐더도 술주정하는 그녀에게 두손 두발을 들었기에 꾹 참고 달래주었다.“손님, 곧 마감할 거라서 남은 술이 없어요.” “거짓말, 다른 사람들은 다 술 마시고 있는데 왜 나만 없어?”그녀를 속이기 쉽지는 않은 듯싶었다. 부가티 차주가 코앞까지 다가오자 바텐더는 문득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다.“진짜 없어요. 저분이 술을 몽땅 결제했는데, 아니면 내일 다시 오실래요?”유현진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제 몸도 가누지 못한 채 뒤돌아 앉았고, 깔끔한 옷차림의 누군가가 걸어오는 모습을 어렴풋이 보았다.테이블을 짚고 휘청거리며 일어선 그녀는 상대방의 멱살을 덥석 움켜쥐더니 손가락으로 턱을 가리켰다.“술을 몽땅 결제했다는 사람이 당신이야?”발갛게 달아오른 볼과 흐트러진 옷, 헝클어진 머리카락, 그리고 온몸으로 술 냄새를 풍기는 그녀한테서 평소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강한서는 미간을 찌푸리며 턱을 가리키고 있는 그녀의 손가락을 아래로 내렸다.“대답해, 네가 술 다 샀냐고!”바텐더가 대충 둘러댄 말을 철석같이 믿은 그녀는 단단히 따질 기세로 강한서를 노려보았다.“내가 먼저 왔는데 그쪽이 무슨 자격으로 술을 다 결제하는 거지? 선착순 몰라?”바텐더는 강한서가 화를 낼까 봐 조마조마한 가슴을 부여잡고 얼른 끼어들었다.“손님, 이분이 술에 취해서... 신경 쓰지 마세요.”“안 취했거든!”유현진은 고개를 홱 돌리면서 두 눈을 부릅떴다.“
그녀는 강한서의 턱을 받쳐 들고는 엄지손가락으로 그의 입술부터 목까지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곤드레만드레 취한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그의 입술에 가까이 다가가 나지막이 말했다.“네가 잘 생겼으니까 난 솔로야.”술기운이 살살 풍기는 따뜻한 숨결에 왠지 모르게 야릇한 분위기가 풍겼다.그녀의 하얗고 가느다란 손이 그의 가슴팍을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반쯤 감긴 두 눈으로 유혹의 눈빛을 보냈다.“내가 60만 원 주면 내 남자친구 할래?”그러자 강한서의 낯빛이 무서울 정도로 어두워졌다. 그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그녀를 차갑게 빤히 쳐다보았다.“60만 원? 너무 적은 거 아니야?”유현진이 눈썹을 치켜올렸다.“지금 시세에 60만이면 적지 않을 텐데?”“지금 시세?”강한서가 코웃음을 쳤다.“아는 게 많은가 보네.”그녀는 잠깐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마음을 굳게 먹은 듯했다.“알았어! 얼굴값 하는 것 같으니까 10만 더 줄게. 70만, 어때? 더는 못 줘.”지금 이 순간 강한서는 그녀가 정신을 차리게끔 당장이라도 그녀의 머리를 옆에 있는 어항에 푹 담가버리고 싶었다.‘오늘 밤 내가 안 왔더라면 아무 남자랑 자겠단 말이잖아!’그 생각에 강한서의 낯빛이 또 더 어두워졌다.유현진은 위험이 닥쳐온 줄도 모르고 지갑에서 은행 카드 한 장을 꺼내 강한서의 셔츠 옷깃을 풀어 카드를 옷깃 안에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남자에 굶주린 여자처럼 그의 가슴을 만지며 빵끗 웃었다.“내 돈 떼먹어서는 안 돼.”강한서는 깊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그녀의 목덜미를 잡고 밖으로 나왔다. 그때 바의 종업원이 그를 불러세웠다.“한수 씨, 사모님께서 아직 계산 안 하셨어요.”강한서는 발걸음을 멈추고 속만 썩이는 여자를 힐끗 보고는 들고 있던 가죽 재킷을 종업원에게 건넸다.“안에 골드카드 있어요. 비번 없으니까 그냥 긁으면 돼요.”짜증 섞인 강한서의 표정을 본 종업원은 한시도 지체할세라 째깍 결제한 뒤 카드를 다시 재킷에 넣어 두 손으로 강한서에게 건넸다.“조심히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