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가람이 한현진 남매에게 말했다. “오빠, 현진 씨. 여기서 호텔은 가까우니까 제가 데리고 걸어갈게요. 조금 쉬다가 호텔 근처 야시장 구경하면 돼요. 하루 종일 고생했는데 일찍 집에 들어가 쉬어요.”한현진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래요. 저도 마침 친구와 헤어샵에 가기로 했거든요.”레스토랑에서 나온 한현진은 친구가 데리러 온다는 핑계로 송민준을 쫓아보냈다. 송민준이 떠나고 얼마 후 하얀색 아우디가 한현진 눈앞에 멈춰 섰다. 한현진이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탔다. 운전석에 앉은 사람은 바로 한현진의 절친인 차미주였다. 차미주는 검정색 티에 검정색 바지를 입고 있었고 심지어 마스크까지 검정색이었다. 그녀의 올블랙 착장에 놀란 한현진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왜 이렇게 입었어?”“무협 영화 안 봤어? 저녁에 뭔가 일을 꾸밀 때는 이렇게 입어줘야 한다고. 그래야 눈에 안 띄지.”한현진이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고대에는 불빛이 없으니까 이렇게 입으면 다른 사람들이 쉽게 발견하지 못하겠지만 지금은 어디를 가든 불빛이 있잖아. 이렇게 관종처럼 입으면 누가 못 봐?”“...”차미주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그러네.”차미주는 말하며 뒷좌석에서 남자 외투를 걸쳤다. “이러면 좀 괜찮아?”“...”한현진이 뭔가를 얘기하려는데 차미주가 그녀의 어깨를 툭툭 쳤다. “손가락 나왔어.”한현진이 얼른 차미주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송가람과 친구들은 함께 레스토랑에서 나왔다. 입구에서 잠시 대화를 나눈 후 그 사람들을 그곳을 떠났고 송가람은 잠시 기다리더니 택시에 올라탔다. 차미주가 이내 시동을 걸어 택시 뒤를 따랐다. 송가람을 태운 택시는 한참을 달려 한 요양원 근처에 멈췄다. 차에서 내린 송가람이 요양원으로 곧장 들어갔다. 주차할 곳을 찾는 차미주는 기다릴 새도 없이, 한현진은 먼저 차에서 내려 송가람을 뒤쫓았다. 송가람은 익숙한 곳인 듯 들어오자마자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향했다. 한현진은 옆에 놓인 표
한현진은 옷을 꽉 움켜쥐고 가쁜 숨을 내쉬었다. 옷을 한참이나 잡아당겼지만 꿈쩍도 하자 간병인이 한현진을 불렀다. 번쩍 정신이 든 한현진이 손을 놓으며 쉰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간병인은 한현진을 이상하게 여겼지만 얼른 세탁물을 가져다줘야 했기에 별 다른 생각 없이 옷을 안고 자리를 벗어났다. 가방에 있던 휴대폰이 진동했다. 전화를 받은 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12층이야. 올라와.”차미주가 곧 12층으로 올라왔다. 그러자 한현진은 차미주에게 방금 발견한 일을 말하자 그녀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제대로 본 거 맞아?”한현진이 조금 흥분하며 말했다. “미주야, 그 옷은 강한서가 입던 옷과 사이즈가 같아. 똑같이 등 쪽 상처로 피가 스며있었고. 난 이 세상에 이런 우연이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아. 난 어쩐지 강한서가 이곳에 있는 것 같아. 느껴져.”차미주는 늘 한현진의 편이었다. 물론 말도 안 된다고 여겨지는 이 상황에서도 말이다. “그러면 우리 들어가서 손가락이 대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 한 번 확인해 봐.”한현진은 진작 그러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송가람이 나오면 그때 들어가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강한서가 이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한현진은 단 일초도 더 기다릴 수 없었다. 차미주는 기세등등하게 한현진을 끌고 병실 문을 열었다. 병실의 침대는 비어있었고 창가에 서 있던 송가람은 소리를 듣고 몸을 돌리더니 곧 멈칫 행동을 멈추었다. “현진 씨, 여긴 어떻게?”한혀진이 입을 열기도 전에 차미주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강한서는요? 강한서 어디에 숨겼어요?”“내가 무슨 한서 오빠를 숨겨요?”송가람이 어리둥절하며 물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모른 척 하지 말아요. 아픈 것도, 사고가 난 것도 아니면서 이 저녁에 병원엔 왜 왔어요? 그것도 몰래 사람 눈 피해 가면서요.”송가람이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요. 전 병원에 제 선생님 병문안 온 거예요. 나
자리에 앉아있던 송가람의 선생님은 그 상황을 보더니 얼른 싸움을 말리려 했다. 그러다 어떻게 된 일인지 휠체어에서 미끄러졌고 마침 송가람의 종아리에 부딪혔다. 순간 중심을 잃은 송가람은 휘청이다 바닥에 넘어졌다. 그 휠체어도 위태위태 당장 넘어질 것 같았다. 문어구에 도착한 송민준은 바로 그 장면을 목격했다. 그와 함께 들어온 여자가 깜짝 놀라며 얼른 달려가 휠체어를 잡았다. 그 여자는 한현진을 향해 화를 쏟아냈다. “왜 사람을 밀고 그래요?”차미주가 얼른 말했다. “대체 어느 눈으로 현진이가 미는 걸 봤다는 거예요? 분명 저 할아버지가 본인이 미끄러져서 송가람 씨와 부딪힌 건데.”“당신들은 누구예요? 아무 이유 없이 제 할아버지 병실에 들이닥쳐서는 뭐가 그렇게 당당해요?”송민준이 얼른 앞으로 나와 사과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여긴 제 여동생인 한현진입니다. 아마 가람이에게 볼 일이 좀 있는 것 같아요.”그는 말하며 송가람을 부축하더니 한현진은 한쪽으로 끌어와 속삭였다. “나가서 얘기해.”그러나 한현진은 송민준의 손을 뿌리치며 나가기를 거부했다. 한현진이 말했다. “오빠, 강한서가 여기 있어요.”송민준이 움찔 행동을 굳혔다. “뭐?”“강한서가 여기 있다고요.”한현진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오빠. 강한서 아직 살아있어요. 강한서가 이 병원에 있다고요.”송민준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현진아, 힘들지?”“오빠. 틀림없어요. 강한서 정말 여기 있어요. 저 강한서 필적을 봤다고요.”말하며 한현진은 송민준을 그 화이트보드 앞으로 데려갔다. 그녀는 오른쪽 하단을 가리켰다. “오빠. 이거 봐요. 이거— 글 어디 갔어?”한현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조금 전까지 화이트보드 오른쪽 하단에 있던 흐릿한 글씨체가 이젠 자취를 감추었다. 순간 흥분한 한현진이 눈을 붉히며 송가람에게 따졌다. “가람 씨가 지웠어요?”송가람은 두려움에 떠는 척 불쌍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전 모르는 일이에요.”한현진이 송민준의 팔을 잡아당겼다.
한현진의 문자에 차미주는 놀라고 말았다. 이미 한 번 찾아봤으니 차미주는 한현진이 이젠 포기할 줄 알았지만 전혀 아니었다. 차미주는 어쩐지 오늘 일어난 일들이 환상처럼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참지 못하고 한성우에게 얘기했다. “현진이가 본 글씨와 피 묻은 옷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떠나서, 민준 오빠가 그렇게 마침 그 타이밍에 나타난 것도 조금 이상해. 안 그래?”“내 생각을 묻는 거야?”한성우가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며 말했다. “난 형수님이 한서를 송가람 씨가 숨기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는 발생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거라 생각해. 만약 한서가 살아있으면 우리에게 연락 안 했겠어? 송가람이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살아있는 사람을 무슨 수로 막아둬?”차미주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네 말도 맞아. 하지만 난 송가람이 좋은 사람 같지 않아. 친구와 놀러 간다고 했으면서 병원으로 간 건 대체 뭐야?”“갑자기 전화 받고 갔을 가능성은 없는 거야?”말문이 막힌 차미주가 불퉁하게 말했다. “넌 대체 왜 자꾸 손가락 편을 들어?”“편을 드는 게 아니라 난 그저 형수님이 너무 슬픔에 빠져서 신경이 곤두서서 그런 환상을 한 거라고 생각해. 넌 형수님이 현실을 직시하도록 도와야지, 같이 미쳐 날뛰지 말고.”말하며 한성우는 사과를 차미주 입가에 가져갔다. “달아, 먹어 봐.”차미주가 인상을 쓰무 한성우가 건네는 사과를 밀어냈다. “같이 미쳐 날뛴다니? 난 무조건 내 절친을 지지하겠다던 약속을 지키고 있는 것뿐이야. 정말 현진의 억측이라고 해도 현진이가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함께 할 거야.”“난 의리밖에 모르는 여장부 같은 네 모습이 좋다니까.”한성우는 말하며 차미주 앞으로 다가갔다. “친구만 도와주지 말고 네 남자친구도 좀 도와줘.”차미주는 한성우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널 도울게 뭐가 있어?”“한서 사고로 우리 부모님께서 생각이 많으신가 봐. 요즘 또 맞선을 주선하시기 시작했어. 여자친구가 있다고 하니까 집에
이해가 된 주강운은 이내 낮게 웃으며 말했다. “배우고 싶으시면 당연히 가능하죠. 하지만 스카이다이빙 자격증은 그렇게 쉽게 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제가 먼저 체험할 수 있게 해드릴게요.”한현진이 곧이어 물었다. “언제요?”주강운이 반문했다. “언제 체험해 보고 싶어요?”한현진이 말했다. “내일요.”“내일요?”“시간 안 돼요?”주강운은 옆에 놓은 서류를 힐끔 쳐다보더니 입술을 짓이겼다. “돼요. 그러면 제가 내일 데리러 갈게요.”“그래요.”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고마워요.”“일찍 자요. 내일 제가 전화드릴게요.”주강운은 다정하게 한현진과 인사를 나눈 후 전화를 끊었다. 그러더니 곧장 몸을 일으켜 옷장을 열고 안에서 옷을 꺼냈다. 준비를 마치고 내려오자 주강운의 어머니가 마침 컵을 들고 올라가고 있었다. 늦은 저녁에 차려입고 집을 나서는 아들을 보더니 다급하게 주강운을 불러세웠다. “강운아, 이렇게 늦었는데 어디 가는 거니?”주강운이 신을 갈아신으며 대답했다. “회사에 물건을 놓고 와서요. 가지러 가요.”“무슨 물건이길래 꼭 이 밤에 가야 해?”“의뢰인 물건이라서요.”주강운이 외투를 걸치며 말을 이었다. “금방 돌아올게요.”곧이어 주강운의 어머니가 “기사님에게 데려다 달라고 해.”라는 말을 입밖으로 내뱉기도 전에 주강운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주강운의 어머니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어쩐지 주강운이 조금 흥분해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집을 나선 주강운은 새벽 2시가 되어서야 돌아왔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또 집을 나섰다. 그는 8시에 송씨 본가 근처에 도착해 한현진에게 전화했다. 한현진은 금방 깬 듯 목소리가 조금 쉬어있는 것 같았다. 한현진이 말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제가 금방 준비하고 나갈게요.”주강운이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천천히 준비해요. 급해하지 않아도 돼요.”전화를 끊은 주강운은 어쩐지 조금 긴장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손을 뻗어 차광판을 내
주강운이 의아해했다. “사진이요?”“네.”한현진이 대답했다. “스카이다이빙은 처음이라 기념하고 싶어서요.”주강운이 말했다. “액션캠은 가져오지 못했어요.”“그냥 내리기 전에 몇 장 찍으면 돼요. 가능할까요?”주강운이 웃으며 대답했다. “찍고 싶으면 찍어요. 전 그냥 액션캠이 없어서 사진이 현진 씨 생각처럼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요.”한현진이 휴대폰 잠금을 해제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충분해요.”말하며 카메라를 켠 한현진은 셀카를 몇 장 찍더니 휴대폰을 한편으로 던져버리곤 심호흡하더니 눈을 감고 말했다. “이제 됐어요.”주강운이 피식 소리 내 웃더니 장난스럽게 말했다. “단두대에 올라가는 장군 같네요.”한현진이 막 주강운의 말을 받아치려는데 주강운은 그녀를 데리고 비행기에서 뛰어내렸다. 차가운 바람이 순간 얼굴을 때리듯 스쳤다. 그 느낌은 마치 바늘이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 자유낙하로 인해 귀압이 변화하면서 한현진은 귀에 찌릿한 통증을 느꼈다. 거대한 윙윙 소리를 제외하면 다른 건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죽음에 대한 공포에 한한현진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누군가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주강운이 그녀의 손을 잡고 두 팔을 벌리고 다리를 구부리라고 눈짓해서야 한현진은 정신이 들었다. 낙하산이 펴진 후 낙하 속도는 줄어들었다. 귓가에 맴돌던 바람도 점차 평온해졌다. 목을 꽉 막고 있던 공포도 조금씩 사라졌다. 한현진은 보호 안경 너머의 넓게 펼쳐진 땅을 보고 있었다. 한현진은 바로 그 순간 인간이란 자연과 우주 가운데서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착륙하면서 작은 사고가 있었고 한현진은 바닥에 무릎을 부딪쳤다. 피가 나지는 않았지만 멍이 들었고 주강운은 굉장히 미안해했다. 같이 온 조종사가 주강우에게 뼈를 다치지는 않았다고 했지만 주강운의 미간은 전혀 펴지지 않았다. “그래도 병원에 가 봐요.”주강운이 제안했다. “괜찮아요.”한현진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한 번 더 뛰어요.”주강운이
예술영화에 들어갔다는 소문 외엔 아무 소식도 없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조용하더니 갑자기 나타난 이유가 “연애” 때문이라니. 게다가 마케팅 계정은 증거나 논리가 명확했다. 한현진이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을 근거로 그녀 뒤에 턱이 반쯤 나온 남자의 사진과 전에 백화점에서 한현진을 지켜주던 변호사의 사진을 대조해 보니 목에 있는 점까지 똑같았다. 그러니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팬들은 곧 그 실검으로 인해 화가 나 죽을 지경이었다. 아무리 성공할 의지가 없는 사람을 많이 봐왔어도 한현진 같은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한현진의 페이스북의 댓글은 짧은 몇 시간 사이 벌써 몇만 개나 달렸다. [이 연애, 꼭 해야 해요?][언니, 일에만 몰두하면 얼마나 좋아요? 왜 남자를 만나요?][연예계에서 남자친구를 찾으면 뭐라고 안 하겠어요. 하필이면 변호사예요. 혹시 헤어지면 흑역사를 퍼뜨려 앞길을 막을까 두렵지 않아요?][수연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한현진이 다 까먹었어. 성취욕이 하나도 없네.][수연(중전의 어렸을 적 이름)은 수연이고, 한현진은 한현진이죠. 좋은 건 배우가 아니라 캐릭터의 이미지와 감독이에요. 모두들 콩깍지를 벗어버려요.][지나가는 사람인데, 전 꽤 어울리는 것 같아요. 팬들이 너무 많은 것까지 간섭하는 거 아니에요? 20대인데 연애도 못 해요? 어차피 아이돌도 연기파 배우로 나가는데, 좋아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에요?][댓글 중에 몇 개는 송민영 팬들이 한현진 팩인 척하는 거예요. 주인은 이미 나락 가버렸는데 계집종이 아직도 여기서 난리네요. 다른 사람 인기에 묻어가지라도 않으면 사람들이 잊어버릴까 겁이라도 나나 봐?][죄송. “봄의 연인”은 현진 언니의 시작이었지만 누군가는 영원히 오르지 못할 정상이었죠.]안티팬을 반박하던 사람들은 순간 뭔가를 떠올렸다. [전에 현진 언니가 페이스북에서 두 사람은 그저 친구 사이일 뿐이라고 했었잖아요. 이번엔 해명하지 않았어요. 게다가 실검에 오른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 아무런 반응도 없잖아요. 설마… 묵인하는
“소문이 나든 말든 놔둬요. 가짜가 진짜가 되지는 않잖아요.”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현진의 태도에 송민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네가 해명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정말 너와 강운이 사이에 뭐가 있는 줄 알아. 강한서가 간지 이제 얼마나 됐다고 이런 소문은 너한테 불리해.”“우리 주변 사람들이 다 알았을까요?”한현진은 마치 다른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보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모든 사람이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가 더 중요한 듯 보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든 신경 쓰지 말고 지금 당장 돌아와. 주강운과는 거리 둬.”한현진이 태연하게 말했다. “오빠. 날조된 기사 때문에 친구와 절교할 거예요?”“이건 달른…”“뭐가 달라요. 저도 주 변호사님도 신경 안 쓰는데 관련 없는 사람들만 다급해하네요. 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하라고 하세요. 바이크 출발해요. 먼저 끊을게요.”말하더니 한현진은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송민준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젯밤 한현진 뜻대로 온 병원을 뒤져 강한서를 찾은 후 조금 진정된 것 같더니 이렇게 다음날 바로 이런 사고를 칠 줄이야. 그는 드디어 강한서가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깨달았다. 한현진은 제어할 수 있다니, 보통은 아니었다. 이때 벨소리가 울렸고 주강운이 휴대폰을 확인하니 주아름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굳이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주씨 가문에서 떠보기 위한 것임이 틀림없었다. 송민준은 휴대폰을 무음모드로 전환한 후 벨소리가 울리든 말든 한편으로 던져버렸다. 한현진을 제어할 수 없으니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다. 한편, 전화를 끊은 한현진은 헬멧을 쓰고 주강운의 허리를 감싸안고 나지막이 말했다. “출발해요.”주강운의 몸이 움찔 떨렸다. 그는 고개를 숙여 허리에 올려진 손을 바라보았다. 심장이 두근두근 세차게 뛰었다. “민준이가 현진 씨에게 무슨 볼일이 있대요?”한현진이 말했다. “마케팅 계정에서 강운 씨가 제 남자친구라고 했대요. 오빠가 저더러 강운 씨와 거리를 두
알겠다고 대답한 한현진이 전화를 끊기 전 호기심을 못 이겨 물었다. “오빠, 문채영 씨와는 어떻게 됐어요?”멈칫한 송민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한서 그 자식 혹시 네 옆에 있어?”한현진이 움찔하며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가로젓는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가볍게 목을 가다듬은 한현진이 대답했다. “아뇨. 샤워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말을 믿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개의치 않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걔한테 내 말 똑바로 전해. 다음에 또 이렇게 입을 가볍게 놀렸다간 내가 그 입을 꿰매 버릴 거라고.”강한서: ...그 말에 한현진이 어색하게 하하, 웃어버렸다. “사실 강한서는 별말 안 했어요...”송민준은 더는 아무 말 없이 일찍 쉬라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송민준의 얼굴이 공개된 후, 한열의 바람 스캔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사람들도 점차 한현진이 한열의 사촌누나라는 사실을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열의 성추문은 여전히 일파만파 퍼져나갔다.한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여성의 페이스북 계정은 [아기 고구마]였다. 이 계정은 피드를 올릴 때마다 다음 업로드 시간을 예고하며 다음엔 마치 증거를 공개할 것처럼 사람들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에 [아기 고구마] 계정의 팔로워는 점차 늘어갔다. 하지만 예고와는 달리 매번 터무니없는 사실들만 업로드 했고 그 피드의 내용으로는 한열이 여자 연예인을 성추행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계정의 인기는 줄어들지 않았다.하룻밤 사이, 한열의 팔로우는 십만 명 이상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한열의 회사 측에서는 변호사가 작성한 소장을 공개하며 이미 경찰에 신고를 마쳤고 루머를 퍼뜨린 사람을 찾아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열의 회사에서 소장을 공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고구마]도 페이스북에 점심 열두시부터 라이브 방송으로 빼박 증거를 공개해 한열과 직접 맞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에 네티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말을 아끼던 윤명훈이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계약 해지 때문에 문제가 좀 있어서요. 회사에서는 쿨하게 한열을 보내줄 마음이 없거든요.”그가 한현진에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현진도 알 수 있었다. 윤명훈은 똑똑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한열이 아직 취해 있는 지금 그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은 채 윤명훈은 한현진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리가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제가 잠시 후 해명글을 올릴게요. 명훈 씨는 신하리 씨에게 인터넷에 떠도는 쓸데없는 기사들 처리해 달라고 연락하세요. 제가 변호사를 선임해 보내드릴게요.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해요.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해명하기 어려워질 거예요.”한열의 바람 스캔들을 터트린 건 그저 페이크에 불과했다. 성추문으로 한열에게 흙탕물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이 그들의 진짜 목적이었다.만약 한현진이 한열의 회사 대표였다면, 자신의 두 손으로 탑급의 자리까지 올린 아이를 이렇게 쉽게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계약을 해지 한다고 해도 한열의 빛을 어느 정도는 계속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한열은 신하리라는 충무로 연기파 배우의 인맥까지 갖고 있으니 앞으로 어느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까지 끝장을 볼 이유는 없었다. 연예계에게는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 영원한 적은 없는 법이었다.그러니 이번 일은 오히려 누군가 한열을 나락으로 보내기 위해 꾸미고 있는 일 같았다. 전화를 끊은 한현진은 세남매가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업로드 했다. 다만 송민준의 눈은 모자이크 처리했다.[저희 오빠와 사촌 동생이 그렇게까지 닮은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신하리]사진 속에서 한현진은 가운데 서 있었고 그녀의 왼쪽엔 송민준이, 그리고 오른쪽엔 한열이었다. 막내 동생인 한승은 아예 잘라버린 후 사진을 업로드 했다.비록 송민준의 눈을 모자이크 처리하긴 했지만 하관만 보아도 한열과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닮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
[두 여배우 모두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나면서, 대체 얼마나 보는 눈이 없어야 한열을 좋아할 수 있는 거지?][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한열도 미남상이긴 하잖아.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지만.][세 사람 같이 촬영했었잖아요. 한현진이 한열과 신하리가 사귀는 걸 몰랐을까요? 이건 뻔히 알면서도 만난 거잖아요.][살려줘! 나 한현진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전에 햇살 유치원 사건 때문에 엄청 호감이었는데. 봄의 연인의 중전마마 역도 완전 잘 소화했었다고. 대체 바람은 왜 핀 거야. 연예계에 사고 안 치는 연예인이 있긴 한 거야?] [두 여신을 동시에 만나다니. 한열, 능력도 좋아. 지까짓게 뭔데...] [한열은 신하리에게 빌붙으려는 목적이었던 거예요. 지금 소속사와 계약 해지를 준비 중이예요. 회사에서도 전혀 신경 안 쓰고 있고요. 신하리가 아니었으면 한열 주제에 어떻게 유명 감독에게 캐스팅 될 수 있었겠어요. 정말 어떻게든 여자 덕 좀 보겠다고 애쓰네.]아래의 댓글들은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도 없었다. 대부분은 그들을 욕하는 악플이었다. 한열과 신하리의 공개 연애에 대해 두 사람의 팬들은 자신의 배우가 아깝다며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부터 양측의 팬들은 줄곧 다툼을 이어왔다. 두 사람의 커플 팬계정인 [이열치열]은 팬들의 감정 쓰레기통 같은 곳이 되어버려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열은 열애 인정으로 회사와 갈등을 빚어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회사 측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렸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던 터라 잠깐의 파장을 일으킨 후 곧 사그라들었다. 공개 연애 후 꽤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한열의 인기는 요즘 다시 천천히 오르고 있는 추세였다. 회사 측에서 밀어주던 신인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한열의 뒤를 이어받아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회사 측은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 한열이 바람 폈다는 기사가
한현진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금 예능부 기자 채용 문턱이 이 정도로 낮아진 거야? 두 눈이 멀어도 기자로 활동할 수 있나봐?”진윤: ...‘우리 여신님 사석에서는 이렇게 독설을 날리는 사람이었어?’휴대폰 너머에서 한참을 듣고 있던 차미주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 사진 너와 한열 아니야?”한현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건 나랑 오빠야.”“하지만 이 사진들은 정말 한열과 비슷해 보여. 게다가 네 오빠가 운전한 거 한열 차 아니야?”한현진은 그날 송민준이 운전한 차를 눈 여겨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정말 한열의 차를 운전하고 온 거라면 파파라치가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 다시 페이스북을 다운로드 받고 인기 검색어를 확인한 한현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연예 부문의 인기 검색어의 TOP 5는 전부 한열의 바람에 관한 이슈가 차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새로운 꽃뱀, 이열 커플 사이에 끼어들다], [이열 커플, 결별 위기 스크린 밖에서도 삼각관계], [한열 살아있네], [찐사랑을 못 숨겨] 등이었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검색어들이 가득 했다. 한현진이 페이스북에 로그인하자 수백 개의 DM과 십만 개가 넘는 댓글이 쏟아졌다.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신하리와 한열 두 사람의 팬들의 남긴 수많은 욕이거나 일반 네티즌의 호기심에 가득한 댓글일 것이 분명했다. 인터넷이 얼마나 필터 없이 악랄한 글로 난무한 곳인지 잘 알고 있는 한현진은 아예 댓글을 확인하지도 않고 뉴스피드로 들어갔다. 한열과 한현진의 기사는 두 시간에 터졌다. 그러니 지금쯤이면 각 마케팅 계정에서는 이미 타임 라인까지 정리한 피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한현진은 관련 피드를 대충 훑었다. 마케팅 계정의 분석에 의하면 한열과 신하리는 [살의] 촬영 이전에 이미 사귀기 시작했고 송민영이 하차된 후 한열이 자신의 여자친구인 신하리를 여주인공으로 추천했으며 영화 홍보 현장에서의 친밀한 스킨십 사진이 폭로되어 어쩔 수 없이 공개 연애를 택한 것이었다. 그 계정
한현진은 반나절이 걸려서야 일의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쩐지 지난번 홍혜림 씨 사건이 있었을 때 왜 진윤 씨가 갑자기 나타나 상황을 반전시키나 했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거잖아.’순간 한현진은 뻘쭘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방금 전화를 받고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입도 벙긋하지 말았어야 했다. 진윤의 말처럼 이건 정말 비열한 짓이었다. 유치한 강한서가 벌일 만한 일이 맞긴 한 것 같았다. 강한서 본인 역시 이번 일은 너무 얍삽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어쩌다 아이를 달래주었다.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탓이라고 해. [정상에서]에서 지금 자체 테스트 중인 스킨 한 세트 줄게. 어때?”진윤이 작게 울먹이며 말했다. “스킨 세 세트?“강한서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와중에 딜을 하는 걸 보니 그리 큰 상처를 받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세 세트 전부 줄게.”진윤이 곧바로 울음을 멈췄다. 절판되어 더는 살 수 없는 게임 스킨과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한 여신 중 아무리 바보라도 그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래요. 제가 오해한 거라고 하죠.”말하며 한현진을 쳐다보던 진윤은 여전히 아쉬워하며 말했다. “현진 누나, 왜 이렇게 빨리 결혼하셨어요. 남자 때문에 손에 넣었던 트로피도 놓칠 수가 있어요.”강한서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결혼이 커리어 영향주지 않아. 이간질 하려고 하지 마.”“형님은 남자니까 당연히 영향을 안 받으시겠죠.”강한서에게 농락을 당한데다 하루아침에 구닥다리에게 여신을 뺐긴 진윤은 누구보다 빨리 흑화 했다. “결혼하면 아이도 낳아야 하잖아요. 어떤 유명한 감독이 임산부를 캐스팅하려고 하겠어요. 제일 예쁠 나이를 남편과 아이에게 바치면 나중에 아이가 클 때쯤엔 본인의 레전드 시절은 이미 지났다고요. 제가 다 아쉬워서 그래요. 너무 불공평해요.”비록 진윤은 그저 이간질을 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그 말은 현실이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커리어엔 고난과 역경이
한현진: ?강한서가 들고 있던 휴대폰 너머로 들려온 것은 차미주의 목소리였다. “현진아! 너 내연녀가 되어버렸어. 게다가 그 상대가 네 사촌 동생이래.”강한서: ?강한서는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그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전여친, 현여친이 뭐야?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게다가 이 목소리, 왜 이렇게 귀에 익은 거지?’“저... 저기 혹시 전화 잘못 하신 거 아녜요?”한현진이 나지막이 물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곳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 현진 누나?”한현진이 멍해졌다. ‘날 알아?’“네. 제가 한현진이예요. 누구세요?”상대방은 말이 없었다. 그에게서는 그저 조금 흥분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강한서가 한현진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무슨 일이야?”진윤이 이를 악물었다. “방금 전화 받은 사람 누구예요!”강한서가 말했다. “내 와이프.”“그럴 리가 없어!”진윤이 바득 이를 갈았다. “이 사생팬 같은 아저씨가! 혹시 일부러 날 속이려고 옆에 성대모사하는 분이라고 모셔놓은 거 아녜요?”강한서가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너처럼 유치한 인간인 줄 알아? 그리고 현진이는 아무도 대체할 수 없어.”진윤은 강한서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거짓말 좀 그만 해요. 현진 누나는 지금 그 티베탄 마스티프와 데이트하는 중이라고요. 만약 누나가 정말 형님 와이프라면 형님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누나가 딴 남자와 데이트하는 걸 지켜볼 수 있어요?”더 이상 진윤을 대꾸하기 귀찮았던 강한서가 그에게 영상통화를 보냈다. 몇뿐 후, 휴대폰 화면으로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여신과 딱 붙어 앉아있는 전남편 형님을 확인한 진윤은 순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한현진은 휴대폰에 비춰진 진윤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진윤 씨가 강한서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인 거야?’진윤은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어댔다. “거짓말쟁이! 뻔뻔한 인간! 전
유난히 예쁘게 잘 나온 사진을 보며 한 현지는 신난 얼굴로 고개를 돌려 강한서에게 보여 주었다. 하지만 멍청하게 나온 것 같다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강한서는 굳이 자신이 찍겠다면 휴대폰을 달라고 했다.한현진이 눈을 실룩거렸다. “네가 사진을 찍겠다고? 168cm인 나를 138cm로 만들어 버리는 네가? 강 대표님 본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강한서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내 실력이 그렇게 별로야?”한현진이 말했다. “쌀을 뿌린 휴대폰을 닭이 부리로 쪼아도 내가 찍은 것 보단 낫다고 할 수 있어.”왠지 수치를 당한 것 같은 기분에 강한서가 이를 악 물면 말했다. “그럼 난 왜 우리가 데이트했을 때 내가 찍어준 사진을 밤새도록 보고 있었던 거야?”강한서가 괜히 그 얘기를 꺼낸 탓에 잊혀 가던 한현진의 기억이 문득 돌아왔다.“사진을 보면서 넌 그저 사진을 찍을 줄 모르는 것뿐이라고 날 설득 하지 않는다면 호텔 앞에서 바로 너와 싸우 버릴 것 같았거든. 내 외모에, 감독님께서도 나에게 각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 하셨는데 넌 대체 어떻게 날 사실 눈으로 찍을 수 있었던 거야?”강한서: ...“사시눈... 처럼 나왔어?”한현진이 일을 악물었다. “내가 뛰어다니는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하니까 유체 이탈한 것처럼 찍어줬잖아! 내가 피드를 업로드할 때 실수로 그 사진까지 넣었더니 애들이 나한테 대체 어디서 이런 심령사진을 찍었냐고 물었었어.”“...”활활 타오르던 강한서의 분노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어쩌다 가끔... 몇 십 장뿐이었잖아.”한현진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하.”뭔가를 말하려던 강한서가 고개를 숙이자 무릎 정도까지 오는 어린 아이가 옆에 쭈그려 앉아 불쌍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아저씨, 아직 더 놀 거예요? 저희 잠깐 놀게 해주시면 안 돼요?”강한서가 고개를 돌리자 뒤에는 어린 라이 대여섯 명이 줄을 서 있었다. 한현진: ...창피함에 고개
“하하하.”한현진이 마른 웃음을 지었다.“오빠. 제가 티슈 없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강한서가 눈을 씰룩였다. 그야말로 완벽한 핑계였다. 그는 입술을 달싹여 아내를 따라 염치 없이 말했다. “형님, 저도 없어요.”송민준이 가방과 티슈를 두 사람에게 던지며 강한서를 노려보았다. 탁, 소리와 함께 문이 닫겼다. 한현진: ...“오빠가 나한테 화 난 건 아니겠지?”강한서가 우울하게 말했다. “너보단 날 먼저 걱정해야 할 것 같아. 네 오빠가 아무리 너에게 화가 나도 결국은 나에게 그 화살이 돌아올 거야.”한현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마음이 좀 놓이네.”강한서: ?한현진이 그의 손을 잡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어차피 오빠가 널 탐탁지 않아 한게 하루 이틀도 아니잖아. 오늘 이 일로 크게 달라지진않을 거야.”“...”‘행복은 본인이 누리고 잘못은 내가 뒤집어쓰고. 정말 좋은 아내네.’강한서는 한현진을 데리고 호텔 라운지로 향했다. 입덧이 끝난 이후로 한현진의 식욕은 줄곧 안정적이었다. 매 끼니마다 많이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지만 배고픔도 빨리 찾아왔기에 하루에 몇 끼씩 먹어야 했다. 그 덕에 지금의 한현진은 송아지처럼 튼튼하기만 했다. 강한서는 임신한 한현진을 위해 오랫동안 공부했지만 한현진에게는 하나도 쓸모가 없었다. 그의 주변엔 임산부가 많이 없었지만 많은 아내들이 임신 후 남편을 괴롭힌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현진에겐 모든 임신의 호르몬 변화가 거짓말처럼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 의사는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큰 반응 없이 잘 먹고 잘 지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의사는 강한서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시간이 날 때마다 산책을 자주 다니며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으면 된다고 했다. 한현진은 정서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심지어 조금 유치해지기도 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한현진은 강한서의 팔을 끌며 굳이 아이들의 흔들 목마에게 타게 해달라며 떼를 썼다.
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채영 언니.”문채영이 가방에서 포장한 선물 박스를 건넸다. “첫 만남이라 어떤 선물을 준비하면 좋을지 몰라 제가 직접 향낭을 만들었어요. 향 맡아봐요.”한현진이 조금 의외라는 듯 말했다. “언니도 조향하세요?”문채영이 미소 지었다. “제가 조향에 입문하게 된 것도 민준이 덕분이었어요. 전엔 이런 거 만드는 거 좋아했었거든요.”한현진은 다시 한 번 충격에 휩싸였다. 그녀는 조향하는 송민준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줄곧 송민준은 그쪽으론 취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송민준은 그 얘기를 꺼내는 것이 불쾌한 듯 담담하게 말했다. “주문부터 해. 배고파.”멈칫하던 문채영이 시선을 내려 눈에 맴도는 서운함을 숨겼다. 한현진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 “언니, 오랜만에 오셨을 텐데 오늘은 한주 음식으로 드시는 게 어때요?”문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요. 현진 씨가 먹고 싶은 거로 주문해요.”주문한 음식 서빙을 마치고 룸을 나서려는 종업원에게 송민준이 갑자기 말했다. “장어 국수도 주문할게요.”문채영이 힐끗 송민준을 쳐다보자 시선을 올린 그가 마치 변명이라도 하듯 말했다. “환영회에 국수가 빠질 수 없지.”‘그래, 환영회에 국수가 빠질 수 없다고 하는 건 그렇다고 쳐. 하지만 하고 많은 국수 중에 왜 하필 장어 국수야?’‘오빠가 장어 국수라고 말할 때 언니 표정을 보면 설마 두 사람 사이에 장어 국수와 관련된 스토리가 있었던 건가?’호기심이 활활 불타오른 한현진이 몰래 테이블 아래로 강한서의 손을 꼬집었다. 그러자 강한서는 그녀에게 새우를 발라 주었다. 한현진: ...강한서과 문채영은 너무 친한 사이였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한현진은 문채영의 외할머니와 강한서의 할머니가 먼 친척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워낙 촌수가 먼 사이라 피가 거의 섞이지 않은 가족이라고 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알고 지낸지 한참 후에야 두 가문이 몇 세대 전에는 친척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