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원은 서서히, 그들이 진심으로 자신과 친구로 지내려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그저 양지원이라는 고객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한현진은 예외였다. 그는 처음부터 자신의 목적을 분명하게 밝혔다. 오히려 그 모습에 반감이 줄어들었다. 양지원이 덤덤하게 말했다. “저와 비즈니스를 하고 싶은 거라면, 오늘 그 디자이너를 내쫓지 마셨어야 했어요.”“전 양지원 씨를 제 단골로 만들고 싶어요. 하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건 아니에요. 단지 양지원 씨가 제 가게에서 더 많이 소비하게 하기 위해 예쁘지도 않은 걸 예쁘다고 칭찬하는, 그런 식의 강매라면 전 차라리 하지 않을 거예요.”양지원이 코웃음치며 말했다. “뭐가 다르다는 거죠. 결국은 제가 그쪽 가게에서 제품을 사게 하려는 거잖아요.”한현진이 웃음을 거두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양지원 씨. 맞지 않는 곳에 억지로 어울리려고 하실 필요 없어요. 지원 씨는 그 사람들과 달라요. 이 바닥에서 양 대표님 정도면, 지원 씨가 본인을 억지로 바꿔가며 맞추려고 하지 않으셔도 돼요. 오히려 그들이 지원 씨에게 맞춰야 하죠.”멍해졌던 양지원이 곧 창피한 듯 한현진의 말을 받아쳤다. “누가 맞췄다고 그래요? 전 단지 그런 스타일을 좋아할 뿐이에요.”한현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정말 좋아하는 거라면 제가 지원 씨 액세서리를 뺐을 때, 그렇게까지 불편한 기색을 하지 마셨어야 해요. 지원 씨에게 그건 단순히 액세서리가 아니라, 그들과 어울리는 통행증 같은 거잖아요. 하지만 사실 지원 씨에게 그런 건 필요하지 않아요. 양 대표님께서 지원 씨를 위해 가꿔주신 세상은, 지원 씨가 자유롭게 지원 씨 답게 살기에 충분해요. 힘들게 다른 사람에게 맞출 필요는 없다는 얘기죠.”양지원이 뭐라고 얘기를 하려는데 커튼 너머로 불만을 늘어놓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라고 불러놓고는 한참이나 지났는데, 어디 간 거야?”“나도 못 봤어. 설마 우리 갖고 장난하는 거야?”안하윤이 코웃음치며 말했다.
안하윤이 굳어버린 몸을 돌려 억지로 미소를 쥐어짜 냈다. “지원아. 네... 네가 여기 어떻게?”양지원이 냉랭한 눈빛으로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내가 여기 없었으면, 저에 대한 안하윤 씨의 진심을 어떻게 알았겠어요?”“지원아, 그... 방금 그건 오해야. 난...”양지원이 차가운 태도로 안하윤의 말을 끊었다. “안하윤 씨, 저희 이름 부를 정도로 친하진 않은 것 같은데요.”안하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양지원이 주변을 슥 훑어보았다. “저와 안하윤 씨는 친하지 않아요. 친구도 할 수 없고요. 여러분 중 안하윤 씨 친구가 계시다면 앞으로는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전 이런 사람과 인연을 맺고 싶지 않거든요. 친구의 친구로도 말이죠.”양지원의 뜻은 너무도 분명했다. 방금 한 얘기는 못 들은 거로 할 테니 안하윤과 친구를 할 것인지, 자신과 친구를 할 것인지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그건 선택지가 없는 문제였다. 안하윤을 포함한 그들 모두 양지원와 친분을 쌓고 싶어 했다. 유씨 가문이 사건에 휘말린 후, 그들과 제일 친분이 깊었던 안하윤 집안이 제일 큰 손해를 입었다. 그들은 지금 억지로 겨우겨우 버티는 중이었다. 안하윤이 업계의 많은 파티에 참석하는 건 더 많은 인맥을 만들어 사업을 늘리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지 못했다. 양지원의 스타일이 아무리 촌스러워도, 안하윤은 양지원에게 사업을 구걸하는 입장이었다. 그런 언행은 사실 가당치도 않은 것이었다. 그러니 양지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람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안하윤에게서 멀어졌다. 심지어 단 한 명도 안하윤을 대신해 설명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변명의 여지도 없는 일이었다. 양지원이 안하윤이 하는 말을 전부 들었다는 건 자신들이 한 말도 당연히 들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양지원이 그걸 문제 삼지 않아 준 상황에 그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굳이 안하윤의 편을 들 필요는 없었다. 안하윤은 창백한 얼굴로 이 상황을 지켜보
“아무것도 모르면서, 현진 씨가 뭔데 멋대로 구는 거예요?”한현진은 양지원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말했다. “양지원 씨. 전에 만나셨던 친구분들은, 지원 씨가 패션에 대해 모른다고 비웃던가요?”양지원이 멈칫하더니 입술을 앙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럴 리가 없었다. 친구는 그저 친구일 뿐이었다. 높은 곳에 올랐다고 비교하거나 질투하지 않고, 인생의 밑바닥을 걷고 있을 때 혼자 내버려두지 않는 것. 가끔 욕도 하고 싸우기도 하지만 절대 뒤에서 칼을 꽂지 않았다. “지원 씨. 친구를 사귀려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아요. 주변 환경에 어울리려는 것도요. 하지만 그 방향과 사람이 틀렸어요. 정말 지원 씨를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모든 곳에서 지원 씨 덕을 보려고 하지 않아요.”“지원 씨도 보셨다시피, 이 바닥의 많은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살아요. 겉모습은 화려해 보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목적과 이익을 위해, 자신조차도 역겨운 모습을 연기하죠. 하지만 지원 씨는 그럴 필요 없어요. 지원 씨를 뭐라고 하든, 지원 씨가 가진 모든 것, 지원 씨 지금의 위치는 그런 인간들이 평생을 노력해도 만질 수 없는 높은 곳이라고요.”“그 인간들은 어두운 구석에서 지원 씨를 깎아내리면서 정신적인 만족을 추구할 뿐이에요. ‘봐, 양진환 대표 딸이면 뭐 어쩔 거야? 결국은 촌년일 뿐이잖아.’라고 하면서 말이에요. 하지만 현실은요? 그 인간들은 지원 씨 앞에선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조아리며 지원 씨 비위를 맞추려고 하죠. 지원 씨 한마디면 그들은 쉽게 계약을 따낼 수 있으니까요. 제가 전에 말했던 것처럼 지원 씨는 여기에 맞출 필요가 전혀 없어요. 여기 있는 사람들이 지원 씨에게 맞춰야 하죠.”양지원이 입술을 짓이기며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현진도 이번 도박엔 그다지 자신이 없었다. 비록 양지원은 강민서처럼 곱게 자란 부잣집 딸 만의 도도하고 오만한 모습은 없었지만, 그녀가 자신이 생각한 것처럼 현실을 직시했을지는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한현진이 그를 밀어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그냥 이혼해. 2천억이면 너보다 젊고 멋있는 남자를 한 무더기 찾을 수 있어.”“...”‘쓸데없는 얘기는 꺼내지 말았어야 했어.’파티가 끝나기도 전에 송병천에게서 전화가 왔다. “현진아. 몇 시에 올 거니? 아빠가 이미 침대 정리를 끝냈어. 네 오빠가 수면에 좋은 아로마 오일도 준비했고. 얼른 돌아와서 마음에 드는지 보렴.”한현진이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9시가 되었다. 아버지가 집에서 자신이 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린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죄책감이 몰려왔다. “아빠, 저 얼른 들어갈게요. 늦었는데 기다리지 마세요.”“늦긴. 너도 기다릴 겸 아직 TV 보고 있었어. 운전 번거로울까 봐 데리러 가게 사람 보내겠다고 해도 싫다고 하니, 네 오빠더러 가라고 할까? 이렇게 늦었는데, 마음이 놓이질 않네.”“걱정하지 마세요, 아빠. 강한서가 데려다줄 거예요.”“...”마음이 놓이지 않는 건 바로 강한서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막 집으로 데려온 딸이, 곧 다시 강씨 집안의 며느리가 되면 다시 한집안에서 지내는 건 어려운 일이 되니까. 하지만 한현진이 좋아하니, 더 이상 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송병천은 어쩔 수 없이 당부했다. “한서에게 운전 조심하라고 해. 급할 것 없다고. 안전이 제일이라고 말이야.”“네.”전화를 끊은 후, 강한서와 한현진은 양진환 부부와 친구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파티장을 빠져나왔다. 한성우는 일 처리 하나는 빨랐다. 한현진이 그에게 부탁한 물건은 진작 준비되어 있었다. 강한서가 차에 옮긴 후 한현진을 태우고 청하구에 있는 송씨 가문의 별장으로 향했다. 송병천은 실제로 집에서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TV의 내용이 하나도 머리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의 모든 신경은 문밖에 집중되어 있었다. 차량이 지나가는 소리만 들려도 그는 몸을 일으켜 창가로 다가갔다. 옆에 앉아있던 송민준은 그런 아버지를 보며 놀리듯 말했다. “아예 의자를 가져가 문 앞에
송가람은 싸구려 에코백을 보며 자신은 한 번도 들어보지도 못한 명품 가방을 떠올렸다. 그녀는 하마터면 미소도 유지하지 못할 뻔 했다. 이런 싸구려 물건으로 자신의 명품 가방을 바꾸다니. ‘대체 어떻게 뻔뻔하게 저런 얘기를 하는 거야?’송병천이 한현진을 칭찬했다. “역시 현진이가 생각이 깊어. 이런 부분까지 신경 쓰다니.”송가람은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질투를 누르며 에코백을 열었다. 안을 확인한 그녀의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비웃음이 걸렸다. 역시나, 송가람의 생각대로 한현진이 가지고 온 물건은 전부 싸구려뿐이었다. 한현진이 눈을 예쁘게 휘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람 언니, 마음에 들어요? 마음에 안 들면 저기 더 있어요. 마음에 드는 거로 바꿔요.”송가람은 위선적인 한현진의 얼굴을 보며 미소 지었다. “당연히 현진 씨에겐 제일 좋은 거로 직접 골랐겠죠. 우리가 취향이 그렇게 비슷한데, 현진 씨 마음에 드는 물건이면, 저도 마음에 들어요.”한현진이 멈칫하더니 고개를 들어 송가람을 쳐다보았다. 그리곤 입꼬리를 씩 올려 미소 지었다. “그러면 다행이네요.”한현진이 집으로 돌아온 후, 송병천은 기쁜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는 행여라도 딸이 불편할까, 집에서 누구보다 분주하게 다녔다. 정리를 마치고 송병천은 또 한현진을 끌고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눴다. 대부분 그녀의 어렸을 적 이야기였다. 한현진도 차분하게 송병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눈 깜짝할 사이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계속 말이 없던 서해금이 귀띔했다. “여보, 시간이 늦었어요. 이제 방으로 들어가요. 현진이도 첫날인데, 잠자리가 적응되지 않을지도 모르잖아요. 새 방에 적응도 좀 해야죠.”송병천이 아쉬움 가득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고개를 돌려 한현진에게 말했다. “현진아, 일찍 쉬어. 아빠 방은 바로 네 위층이야. 무슨 일 있으면 아빠 불러.”“네. 그럼 아빠, 아주머니도 일찍 쉬세요.”송가람도 옆에서 그녀에게 잘 잘고 인사를 전한 뒤 송병천 부부와 함께 자리에서
송민준이 목을 가다듬더니 말했다.“나야.”한현진이 장난스럽게 말했다.“오빠, 시크한 척 하더니 100일에도 기저귀를 했네요.”송민준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침대에 실수도 했는걸.”한현진이 웃음을 터트리며 계속 사진첩을 넘겼다.송민준이 태어난 후 사진 속 가족은 눈에 띄게 점점 화목해졌다. 사진첩엔 송민준의 성장을 기록 했을 뿐만 아니라 세 식구의 가족사진도 꽤 있었다.마지막 가족사진으로 넘어 가자 송민준은 이미 5, 6살 정도로 보였고 그의 앞에는 송병천이 한아름을 부축 한 채 그녀의 뒤에 서 있었다. 한아름은 코트를 입고 있었지만 그녀의 배는 이미 눈에 띄게 커져 있었다.한아름은 누구보다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마 임신 때문이었는지 전 사진들과 달리 얼굴은 조금 더 통통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엄마 특유의 따뜻한 기운이 흘러나왔고, 그 따뜻함 그녀의 모습을 한껏 기품 있게 만들었다.그것이 마지막 사진이었다.사진첩에 담겨 있던 모든 기록은 거기에서 또 끊어졌다.송민준이 말했다.“엄마가 널 가졌을 때 계속 식욕이 없으셔서 자신이 음식을 먹지 못해서 네가 제대로 크지 않을까 봐 걱정했었어. 그래서 매일 억지로 조금이라도 먹으려고 했고 몇 개월 뒤에야 체중이 조금 붙기 시작했지. 너 어렸을 때 몸은 좀 어땠어?”한현진이 시선을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길러 주신 엄마가 그러셨는데 전 신생아 중에서는 제법 튼실했대요.”송민준이 웃으며 말했다.“엄마가 아셨으면 흐뭇해 하셨을 거야.”한현진은 코끝이 찡 했고 눈시울도 붉어졌다.“오빠, 엄마... 엄마는 절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신 거예요?”송민준도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고개를 돌리며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다 지나간 일이야. 네가 이제라도 건강하게 돌아왔으니 그것보다 중요한 건 없어.”한현진이 사진첩을 닫으며 잠시 마음을 진정하고 입을 열었다.“오빠 전 대체 어떻게 바뀌게 된 거예요? 알아 내셨어요?”송민준이 입술을 짓이겼다.“요즘 새로운 정보를 입수했어
한현진이 태연하게 말했다. “직원과 그렇게 친하면 제가 왜 그 디자이너를 해고했는지도 알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송민준이 웃으며 말했다. “무슨 이유에서였든, 뭐라도 얘기 좀 해줘. 그래야 나도 가서 대답해 주지.”송가람이 직접 물어봐달라고 부탁했으니 송민준도 당연히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그는 단지 한현진에게 둘러댈 핑곗거리를 달라고 물어보는 것뿐이었다. 송가람은 서해금과 달랐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라 아꼈었던 동생이었다. 송민준에게도 당연히 어느 정도 감정이 있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사건 후, 송가람 역시 그들 남매 사이를 돌리려 애쓰고 있었다. 물론 송민준은 송가람과 거리감이 생겼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었다. 한현진이 입술을 삐죽였다. “오빠, 스트레인지는 이제 제 소관이에요. 그러니 제가 당연히 정리해야죠. 저도 그렇게 빨리 사람을 해고할 생각은 없었어요. 하지만 그 디자이너가 기어코 기어오르잖아요. 능력도 없으면서 아부 밖에 할 줄 모르고. 입만 열면 서 대표님이 어쩌고 하면서요. 지금 스트레인지 대표는 저예요. 전 대표로 저를 누르려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죠. 날 대표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저에게도 굳이 곁에 남겨둘 이유가 없어요. 스트레인지는 명품만 취급하는 곳이에요. 그러니 호객 행위는 절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요. 통 큰 고객만 보면 어떻게든 들러붙는 게 아니라, 브랜드라면 당연히 브랜드의 자신감과 자존심이 있어야 해요. 제가 만약 쇼핑하면서 이런 사람을 마주친다면, 구매 욕구가 완전히 사라졌을 거예요. 스트레인지에는 문제점이 많아요. 저를 대표로 생각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제품과 서비스도 엉망이에요. 제가 어떻게든 먼저 해결할 구멍을 찾아야죠.”송민준이 물었다. “전부 바꿀 생각인 거야?”한현진이 멈칫했다. “설마요. 밖에서 스카우트해 오고, 새로운 직원을 모집하고 다시 교육하고 맞춰가면 시간도 길고 너무 많은 정력이 필요해요. 게다가 전부 갈아엎는 건 좋은 일이 아닐 수도 있어요. 제가 오자마자 가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잠이 솔솔 오기 시작했다. 몸을 뒤척인 그녀는 그렇게 점차 꿈나라로 떠나게 되었다.송씨 가문으로 들어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전쟁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생각과 달리 겉으로는 화목하게 지내고 있었다.특히 송가람이 더 그랬다. 정말로 친자매라도 된 것처럼 송가람은 그녀를 불러 쇼핑을 하자고 하면서 내일은 같이 머리하러 가기, 모레는 피부 관리받으러 가거나 오후 티타임을 가지자고 그녀와 약속을 잡으려 했다.그녀는 아주 뻔뻔하게 친한 척 들이댔다. 설령 한현진이 여러 차례 그녀의 약속을 거절해도 말이다.송가람은 피부 관리받으러 갔다가 오면 한현진을 위해 산 것이라며 피부 관리 제품을 주었고, 나가서 쇼핑하러 갔다 오면 또 그녀를 생각하며 고른 것이라고 옷을 선물하기도 했다.그렇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흐르자 송가람이 그녀에게 선물한 옷만 벌써 10벌이 넘었다.다만 송가람이 일부러 그런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선물한 옷 사이즈는 전부 스몰 사이즈였다.한현진은 키가 컸기에 골격이 작은 편은 아니었다. 게다가 몸무게는 50kg 정도였기에 스몰 사이즈 입기엔 확실히 몸에 꼈다.자존심이 있었던 그녀는 당연히 송가람에게 스몰 사이즈가 몸에 맞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다.그녀는 송가람이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잘해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여하간에 원래 송가람의 것이었어야 할 스트레인지를 그녀가 가져갔으니 말이다.역시나 송가람이 그녀에게 옷을 선물했다는 소식은 ‘자연스럽게' 송병천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고 송가람에게 세심하고 다정한 언니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졌다.누구든 한현진에게 잘해준다면 송병천은 다 마음에 들어 했다. 그래서 며칠이 지난 뒤, 송병천은 바로 송가람에게 차 한 대를 선물했다. 물론 한현진의 몫도 있었다.다만 송가람은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아빠, 난 차 필요 없어. 그 대신 Caline의 생산팀에 가게 해줘.”한현진은 멈칫했다. ‘이게 목적이었구나?'그러자 송병천은 미간을 찌푸렸다.“생산팀엔 여러 가지 향
신하리는 말하며 예쁜 눈웃음을 지었다. “저 정신병 있는 거 다들 아시죠?”그 말에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얼마 전, 신하리가 한 드라마 촬영 중 현장에서 갑자기 귀신에 쓰인 사람처럼 아무런 안정장비도 하지 않은 채 6미터가 넘는 곳에서 뛰어내려 뼈가 부러진 사건이 있었다. 다들 신하리에게 왜 뛰어내렸냐고 묻자 그녀는 아래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그러나 당시 상황을 증명해 줄 동영상은 없었고 그 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듣고 지나보냈었지만 지금 신하리의 입으로 직접 그녀에게 정신병이 있다고 말하니 그때의 사건을 떠올린 사람들은 순산 오싹함을 느껴야 했다. 이건 분명한 경고였다. 마치 난 심신이 미약한 사람이라 너에게 정말 염산을 뿌려도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으니 내 말을 장난으로 가볍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신하리의 등장으로 [아기 고양이]의 라이브 방송의 인기는 더 뜨거워졌다. 댓글에도 다양한 의견이 더 많아졌다. [사랑에 눈이 먼 연예인 1위! 보상은 산에서 산나물 캐기 18년!][신하리 미친 거 아녜요? 이렇게 대놓고 협박이라니.][면전에 협박하는데 아직도 신고하지 않는다고? 증거가 없는 거야, 아님 애초부터 한열을 모함하고 있었던 거야?][성추행을 한 사람도 경찰서에 신고했는데 당한 사람은 대체 뭐가 무서워서 신고하지 않는 거야.][지난번에 스스로 신고한 인간은 아직도 감옥에서 사회봉사 중이예요.][만약 지금 당장 신고한다면 전 아기 고구마 말을 믿을 거예요. 계속 이런 식으로 수작을 부리는 건 오히려 한열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작당 모의에 더 가까워 보여요.][지금 루머를 퍼뜨리는 건 너무 쉬운 일이 됐어요. 스크린샷 몇 장이면 바로 스토리를 짤 수 있으니까요.]여론이 점차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멀어지자 [아기 고구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이를 악물었다. “지금 저 협박하시는 거예요? 아
신하리의 라이브 방송 연결 요청에 [아기 고구마]가 잠시 멍해졌다. 무의식적으로 옆을 바라보던 그녀가 곧 시선을 돌렸다. 많은 사람들은 그 미세한 행동을 포착하지 못했지만 한현진에겐 들키고 말았다. [아기 고구마]는 혼자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 듯 했다. 그녀의 옆에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던, 궁금증 해소를 위해 모인 사람들과 진실 규명을 바라는 팬들이 미친 듯이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겁쟁이! 네가 그러고도 무슨 남자야! 사건이 터지면 뒤로 물러나 여자친구가 나서서 모든 걸 감당하게 하다니. 네 팬이었다는 게 너무 후회돼!][끼리끼리는 과학이라잖아요. 한열이 이런 쓰레기라면 신하리도 그리 좋은 인간은 아니지 않겠어요? 연결해요.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죠.][언니! 얼른 입도 벙긋 못하게 증거를 뿌려버려요. 저런 인간은 아이돌을 할 자격이 없어요.][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난 영원히 한열을 믿을 거야!][덕질에 도덕 같은 건 중요하지도 않나보네.]...[아기 고구마]는 사람들의 부추김에 신하리와 라이브 방송을 연결했다.신하리의 모습이 라이브 방송 화면에 나타나자 카메라는 신하리의 얼굴을 향해 바짝 다가갔다. 후드 차림에 화장도 하지 않은 신하리가 카메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그쪽 대신 경찰에 신고했어요. 얼른 오세요.”카메라가 홱 회전하며 한주 용하구의 경찰서 대문을 비췄다. 그에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순간 멍해졌다. ‘신하리, 미친 거야? 어제 저녁에도 한열 대신 해명해주더니.’[아기 고구마]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전, 전 신고한다고 안 했어요.”신하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한열이 그쪽을 성추행했다면서 신고를 안 해요? 성모 마리아세요? 방송으로 울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보다 신고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요? 경찰은 그쪽을 도와줄 수 있는데도 싫다고요?”네티즌들도 신하리의 말을 따라 댓글을 남겼다. [맞아요
알겠다고 대답한 한현진이 전화를 끊기 전 호기심을 못 이겨 물었다. “오빠, 문채영 씨와는 어떻게 됐어요?”멈칫한 송민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한서 그 자식 혹시 네 옆에 있어?”한현진이 움찔하며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가로젓는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가볍게 목을 가다듬은 한현진이 대답했다. “아뇨. 샤워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말을 믿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개의치 않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걔한테 내 말 똑바로 전해. 다음에 또 이렇게 입을 가볍게 놀렸다간 내가 그 입을 꿰매 버릴 거라고.”강한서: ...그 말에 한현진이 어색하게 하하, 웃어버렸다. “사실 강한서는 별말 안 했어요...”송민준은 더는 아무 말 없이 일찍 쉬라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송민준의 얼굴이 공개된 후, 한열의 바람 스캔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사람들도 점차 한현진이 한열의 사촌누나라는 사실을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열의 성추문은 여전히 일파만파 퍼져나갔다.한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여성의 페이스북 계정은 [아기 고구마]였다. 이 계정은 피드를 올릴 때마다 다음 업로드 시간을 예고하며 다음엔 마치 증거를 공개할 것처럼 사람들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에 [아기 고구마] 계정의 팔로워는 점차 늘어갔다. 하지만 예고와는 달리 매번 터무니없는 사실들만 업로드 했고 그 피드의 내용으로는 한열이 여자 연예인을 성추행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계정의 인기는 줄어들지 않았다.하룻밤 사이, 한열의 팔로우는 십만 명 이상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한열의 회사 측에서는 변호사가 작성한 소장을 공개하며 이미 경찰에 신고를 마쳤고 루머를 퍼뜨린 사람을 찾아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열의 회사에서 소장을 공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고구마]도 페이스북에 점심 열두시부터 라이브 방송으로 빼박 증거를 공개해 한열과 직접 맞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에 네티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말을 아끼던 윤명훈이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계약 해지 때문에 문제가 좀 있어서요. 회사에서는 쿨하게 한열을 보내줄 마음이 없거든요.”그가 한현진에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현진도 알 수 있었다. 윤명훈은 똑똑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한열이 아직 취해 있는 지금 그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은 채 윤명훈은 한현진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리가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제가 잠시 후 해명글을 올릴게요. 명훈 씨는 신하리 씨에게 인터넷에 떠도는 쓸데없는 기사들 처리해 달라고 연락하세요. 제가 변호사를 선임해 보내드릴게요.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해요.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해명하기 어려워질 거예요.”한열의 바람 스캔들을 터트린 건 그저 페이크에 불과했다. 성추문으로 한열에게 흙탕물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이 그들의 진짜 목적이었다.만약 한현진이 한열의 회사 대표였다면, 자신의 두 손으로 탑급의 자리까지 올린 아이를 이렇게 쉽게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계약을 해지 한다고 해도 한열의 빛을 어느 정도는 계속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한열은 신하리라는 충무로 연기파 배우의 인맥까지 갖고 있으니 앞으로 어느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까지 끝장을 볼 이유는 없었다. 연예계에게는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 영원한 적은 없는 법이었다.그러니 이번 일은 오히려 누군가 한열을 나락으로 보내기 위해 꾸미고 있는 일 같았다. 전화를 끊은 한현진은 세남매가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업로드 했다. 다만 송민준의 눈은 모자이크 처리했다.[저희 오빠와 사촌 동생이 그렇게까지 닮은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신하리]사진 속에서 한현진은 가운데 서 있었고 그녀의 왼쪽엔 송민준이, 그리고 오른쪽엔 한열이었다. 막내 동생인 한승은 아예 잘라버린 후 사진을 업로드 했다.비록 송민준의 눈을 모자이크 처리하긴 했지만 하관만 보아도 한열과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닮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
[두 여배우 모두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나면서, 대체 얼마나 보는 눈이 없어야 한열을 좋아할 수 있는 거지?][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한열도 미남상이긴 하잖아.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지만.][세 사람 같이 촬영했었잖아요. 한현진이 한열과 신하리가 사귀는 걸 몰랐을까요? 이건 뻔히 알면서도 만난 거잖아요.][살려줘! 나 한현진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전에 햇살 유치원 사건 때문에 엄청 호감이었는데. 봄의 연인의 중전마마 역도 완전 잘 소화했었다고. 대체 바람은 왜 핀 거야. 연예계에 사고 안 치는 연예인이 있긴 한 거야?] [두 여신을 동시에 만나다니. 한열, 능력도 좋아. 지까짓게 뭔데...] [한열은 신하리에게 빌붙으려는 목적이었던 거예요. 지금 소속사와 계약 해지를 준비 중이예요. 회사에서도 전혀 신경 안 쓰고 있고요. 신하리가 아니었으면 한열 주제에 어떻게 유명 감독에게 캐스팅 될 수 있었겠어요. 정말 어떻게든 여자 덕 좀 보겠다고 애쓰네.]아래의 댓글들은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도 없었다. 대부분은 그들을 욕하는 악플이었다. 한열과 신하리의 공개 연애에 대해 두 사람의 팬들은 자신의 배우가 아깝다며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부터 양측의 팬들은 줄곧 다툼을 이어왔다. 두 사람의 커플 팬계정인 [이열치열]은 팬들의 감정 쓰레기통 같은 곳이 되어버려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열은 열애 인정으로 회사와 갈등을 빚어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회사 측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렸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던 터라 잠깐의 파장을 일으킨 후 곧 사그라들었다. 공개 연애 후 꽤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한열의 인기는 요즘 다시 천천히 오르고 있는 추세였다. 회사 측에서 밀어주던 신인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한열의 뒤를 이어받아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회사 측은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 한열이 바람 폈다는 기사가
한현진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금 예능부 기자 채용 문턱이 이 정도로 낮아진 거야? 두 눈이 멀어도 기자로 활동할 수 있나봐?”진윤: ...‘우리 여신님 사석에서는 이렇게 독설을 날리는 사람이었어?’휴대폰 너머에서 한참을 듣고 있던 차미주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 사진 너와 한열 아니야?”한현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건 나랑 오빠야.”“하지만 이 사진들은 정말 한열과 비슷해 보여. 게다가 네 오빠가 운전한 거 한열 차 아니야?”한현진은 그날 송민준이 운전한 차를 눈 여겨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정말 한열의 차를 운전하고 온 거라면 파파라치가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 다시 페이스북을 다운로드 받고 인기 검색어를 확인한 한현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연예 부문의 인기 검색어의 TOP 5는 전부 한열의 바람에 관한 이슈가 차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새로운 꽃뱀, 이열 커플 사이에 끼어들다], [이열 커플, 결별 위기 스크린 밖에서도 삼각관계], [한열 살아있네], [찐사랑을 못 숨겨] 등이었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검색어들이 가득 했다. 한현진이 페이스북에 로그인하자 수백 개의 DM과 십만 개가 넘는 댓글이 쏟아졌다.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신하리와 한열 두 사람의 팬들의 남긴 수많은 욕이거나 일반 네티즌의 호기심에 가득한 댓글일 것이 분명했다. 인터넷이 얼마나 필터 없이 악랄한 글로 난무한 곳인지 잘 알고 있는 한현진은 아예 댓글을 확인하지도 않고 뉴스피드로 들어갔다. 한열과 한현진의 기사는 두 시간에 터졌다. 그러니 지금쯤이면 각 마케팅 계정에서는 이미 타임 라인까지 정리한 피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한현진은 관련 피드를 대충 훑었다. 마케팅 계정의 분석에 의하면 한열과 신하리는 [살의] 촬영 이전에 이미 사귀기 시작했고 송민영이 하차된 후 한열이 자신의 여자친구인 신하리를 여주인공으로 추천했으며 영화 홍보 현장에서의 친밀한 스킨십 사진이 폭로되어 어쩔 수 없이 공개 연애를 택한 것이었다. 그 계정
한현진은 반나절이 걸려서야 일의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쩐지 지난번 홍혜림 씨 사건이 있었을 때 왜 진윤 씨가 갑자기 나타나 상황을 반전시키나 했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거잖아.’순간 한현진은 뻘쭘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방금 전화를 받고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입도 벙긋하지 말았어야 했다. 진윤의 말처럼 이건 정말 비열한 짓이었다. 유치한 강한서가 벌일 만한 일이 맞긴 한 것 같았다. 강한서 본인 역시 이번 일은 너무 얍삽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어쩌다 아이를 달래주었다.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탓이라고 해. [정상에서]에서 지금 자체 테스트 중인 스킨 한 세트 줄게. 어때?”진윤이 작게 울먹이며 말했다. “스킨 세 세트?“강한서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와중에 딜을 하는 걸 보니 그리 큰 상처를 받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세 세트 전부 줄게.”진윤이 곧바로 울음을 멈췄다. 절판되어 더는 살 수 없는 게임 스킨과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한 여신 중 아무리 바보라도 그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래요. 제가 오해한 거라고 하죠.”말하며 한현진을 쳐다보던 진윤은 여전히 아쉬워하며 말했다. “현진 누나, 왜 이렇게 빨리 결혼하셨어요. 남자 때문에 손에 넣었던 트로피도 놓칠 수가 있어요.”강한서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결혼이 커리어 영향주지 않아. 이간질 하려고 하지 마.”“형님은 남자니까 당연히 영향을 안 받으시겠죠.”강한서에게 농락을 당한데다 하루아침에 구닥다리에게 여신을 뺐긴 진윤은 누구보다 빨리 흑화 했다. “결혼하면 아이도 낳아야 하잖아요. 어떤 유명한 감독이 임산부를 캐스팅하려고 하겠어요. 제일 예쁠 나이를 남편과 아이에게 바치면 나중에 아이가 클 때쯤엔 본인의 레전드 시절은 이미 지났다고요. 제가 다 아쉬워서 그래요. 너무 불공평해요.”비록 진윤은 그저 이간질을 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그 말은 현실이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커리어엔 고난과 역경이
한현진: ?강한서가 들고 있던 휴대폰 너머로 들려온 것은 차미주의 목소리였다. “현진아! 너 내연녀가 되어버렸어. 게다가 그 상대가 네 사촌 동생이래.”강한서: ?강한서는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그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전여친, 현여친이 뭐야?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게다가 이 목소리, 왜 이렇게 귀에 익은 거지?’“저... 저기 혹시 전화 잘못 하신 거 아녜요?”한현진이 나지막이 물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곳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 현진 누나?”한현진이 멍해졌다. ‘날 알아?’“네. 제가 한현진이예요. 누구세요?”상대방은 말이 없었다. 그에게서는 그저 조금 흥분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강한서가 한현진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무슨 일이야?”진윤이 이를 악물었다. “방금 전화 받은 사람 누구예요!”강한서가 말했다. “내 와이프.”“그럴 리가 없어!”진윤이 바득 이를 갈았다. “이 사생팬 같은 아저씨가! 혹시 일부러 날 속이려고 옆에 성대모사하는 분이라고 모셔놓은 거 아녜요?”강한서가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너처럼 유치한 인간인 줄 알아? 그리고 현진이는 아무도 대체할 수 없어.”진윤은 강한서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거짓말 좀 그만 해요. 현진 누나는 지금 그 티베탄 마스티프와 데이트하는 중이라고요. 만약 누나가 정말 형님 와이프라면 형님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누나가 딴 남자와 데이트하는 걸 지켜볼 수 있어요?”더 이상 진윤을 대꾸하기 귀찮았던 강한서가 그에게 영상통화를 보냈다. 몇뿐 후, 휴대폰 화면으로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여신과 딱 붙어 앉아있는 전남편 형님을 확인한 진윤은 순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한현진은 휴대폰에 비춰진 진윤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진윤 씨가 강한서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인 거야?’진윤은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어댔다. “거짓말쟁이! 뻔뻔한 인간! 전
유난히 예쁘게 잘 나온 사진을 보며 한 현지는 신난 얼굴로 고개를 돌려 강한서에게 보여 주었다. 하지만 멍청하게 나온 것 같다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강한서는 굳이 자신이 찍겠다면 휴대폰을 달라고 했다.한현진이 눈을 실룩거렸다. “네가 사진을 찍겠다고? 168cm인 나를 138cm로 만들어 버리는 네가? 강 대표님 본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강한서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내 실력이 그렇게 별로야?”한현진이 말했다. “쌀을 뿌린 휴대폰을 닭이 부리로 쪼아도 내가 찍은 것 보단 낫다고 할 수 있어.”왠지 수치를 당한 것 같은 기분에 강한서가 이를 악 물면 말했다. “그럼 난 왜 우리가 데이트했을 때 내가 찍어준 사진을 밤새도록 보고 있었던 거야?”강한서가 괜히 그 얘기를 꺼낸 탓에 잊혀 가던 한현진의 기억이 문득 돌아왔다.“사진을 보면서 넌 그저 사진을 찍을 줄 모르는 것뿐이라고 날 설득 하지 않는다면 호텔 앞에서 바로 너와 싸우 버릴 것 같았거든. 내 외모에, 감독님께서도 나에게 각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 하셨는데 넌 대체 어떻게 날 사실 눈으로 찍을 수 있었던 거야?”강한서: ...“사시눈... 처럼 나왔어?”한현진이 일을 악물었다. “내가 뛰어다니는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하니까 유체 이탈한 것처럼 찍어줬잖아! 내가 피드를 업로드할 때 실수로 그 사진까지 넣었더니 애들이 나한테 대체 어디서 이런 심령사진을 찍었냐고 물었었어.”“...”활활 타오르던 강한서의 분노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어쩌다 가끔... 몇 십 장뿐이었잖아.”한현진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하.”뭔가를 말하려던 강한서가 고개를 숙이자 무릎 정도까지 오는 어린 아이가 옆에 쭈그려 앉아 불쌍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아저씨, 아직 더 놀 거예요? 저희 잠깐 놀게 해주시면 안 돼요?”강한서가 고개를 돌리자 뒤에는 어린 라이 대여섯 명이 줄을 서 있었다. 한현진: ...창피함에 고개